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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왕자님은 아닐지라도』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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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10, 2016 19:11에 작성됨.

"이쯤 해두지 그래."

 

터벅, 터벅. 검은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미소년. 아니, 그를 방불케할 정도의 용모를 지닌 소녀가 주저앉아있는 소녀 앞에 당당하게 멈춰섰다. 날카로운 시선이 이 주변 한 바퀴를 슥 돌다가 이 모든 것의 원흉에게 푹 꽂혔다.

 

"다, 당신.....여긴 어쩐 일로!?"

"지나가는 길에 신경이 쓰여서 말이야. 꽤나 요란한 소리가 났거든."

"이, 이, 이이 이건.....그러니까....."

 

원흉, 꽤나 표독스럽게 생긴 여학생은 당혹감을 가감없이 얼굴에 드러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시선의 주인은 검은 셔츠와 대조를 이루는 붉은 넥타이를 살짝 느슨하게 하고는 냉소를 지었다.

 

"아, 굳이 안되는 머리를 굴려서 변명할 필요는 없어."

"아니, 그게요!"

"거기 있는 덩치들, 뒤로 물려.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해서 죽을 것 같거든."

 

여자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뒤에 있는 이들에게 손짓했다. 그러나 그 신호에 따르는 이는 없었다. 꽤나 힘좀 쓰는 것처럼 보이는 그들은 일부러 뿌득뿌득 손가락 뼈마디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가며 두 소녀에게 걸어갔다.

 

"잠깐! 저 사람에게는 손을 대지마!"

"하, 싫은데?"

"글쎄~ 네 짹짹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도 한계가 왔거든."

 

처음부터 저런 여자의 말에 끝까지 순순히 따라줄 마음은 없었다. 뭔 이상한 놈이 왔지만 체격으로도 쪽수로도 꿀리지 않는다. 너도 사정없이 밟아주지. 5명 남짓한 양아치 무리는 기분나쁜 웃음을 흘리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와, 왕자님! 도망치세요!"

 

주저앉아 있던 소녀가 안절부절한 얼굴로 검은 옷자락을 잡았다. 왕자님. 그렇게 불린 검은 양복차림의 소녀는 다정한 미소로 답했다.

 

"괜찮아. 널 괴롭히는 것들은 전부 날려버릴테니까."

"어디까지 그런 폼 잡고 있을 거냐 빌어먹을 자식!"

 

잠깐 대화를 나누는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한 녀석이 급하게 끼어들었다.

 

"이야앗!"

 

훅, 허공만을 가로지르고 마는 우악스러운 주먹. 검은 소녀는 아무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반격을 날렸다.

 

"크억!"

 

작은 체구에서 나오리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위력에, 그는 맞은 부위를 움켜잡으며 크게 비틀거렸다.

 

"어, 어이!"

"어떻게 된거야!"

"젠장! 엄살 부리지마! 저딴 녀석에게 맞고도 부끄럽지도 않냐!"

 

뒤이어 달려오던 다른 녀석들의 얼굴이 차례차례 경악에 물드는 순간. 소녀는 첫 타를 맞고 끙끙거리는 녀석을 완전히 재기불능으로 만들어버린 뒤 빠른 속도로 나머지 놈들에게 뛰어들었다.

 

"이 녀석이! 지금 우리를 뭘로 보고!"

"잡아! 본 때를 보여주자!"

 

나머지 4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소녀는 물 흐르듯 유려한 움직임으로 거칠고 추악한 손들을 전부 피하거나 치워버리고, 정확하고 깔끔한 타격으로 한 놈 한 놈씩 차분하게 격침시켜나갔다.

 

"우욱, 끄어억....."

"가, 강하다!"

"마, 말도 안....끄윽!"

 

털퍽, 툭.

 

"거, 거짓말......"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은 이제 2명. 덜덜 떨며 뒷걸음질 치는 여자에게, 검은 소녀는 일갈했다.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군! 폭력을 써서 죄없는 사람을 뭉개버리려고 하는 것도 모자라, 그 폭력마저 제어할 수 없다니!"

"죄송합니다! 저, 저만큼은 제발 용서해주세요! 부탁입니다!"

 

걱정 마, 너 같은 건 상대할 가치도 없어. 소녀는 그 여자에게 송곳 같은 한 마디를 마저 내뱉고는 뒤르 돌아보았다. 방금 벌어진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두 눈만을 껌뻑거리고 있는 소녀가 눈 앞에 보인다.

 

터벅, 터벅.

 

"설 수 있겠습니까, 공주님?"

 

소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 검은 왕자는 찡긋 윙크하며 스스럼없이 한 손을 뻗었다.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주춤하던 소녀가 우물거리듯이 물었다.

 

"저, 저어.....그, 다친 곳은 없나요?"

"저런 잔챙이들한테 당해서야 제 체면이 말이 아니죠."

 

그 말에 소녀는 안심하며 그 손을 붙잡고는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한 순간-

 

"오케이! 거기까지!"

 

어떤 중년 남성의 목소리가 호쾌하게 튀어나왔다.

 

"에, 정말인가요!?"

"해냈다!"

"휴, 이걸로 한 건 해결이라는 느낌이네요."

"네, 네. 맞아요. 이번에는 얼마나 길어지나 했더니 금방 끝냈네요!"

"키쿠치씨, 수고하셨습니다."

"아, 네. 그 쪽도."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방금전까지 오들오들 떨고 있던 여자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그쪽으로 종종 걸어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수고했다는 인사를 서로서로에게 건네는 세 사람. 잔뜩 날이 서있던 날카로운 대립각은 우르르 무너져내렸다.

 

"어구구.....삭신이야....."

"멋지게 쓰러지는 것도 일이구만."

"설마 다시 찍어야하는 건 아니겠지?"

 

쓰러져있던 다섯 명도 아무렇지도 않게 먼지 묻은 옷을 툭툭 털고는 일어나며 카메라가 늘어선 곳에 시선을 두었다. 잠시 후, 마지막까지 영상을 점검해보던 다른 스탭들이 그들을 향해 엄지를 척 보였다.

 

"야호!"

"오늘 운수 완전 좋은데!"

 

그렇다. 이 모든 것은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를 촬영하는 과정이었다. 액션 연기는 보통 몇 번이고 다시 찍는 게 보통이건만, 오늘따라 아무 실수도 사고도 없이 잘 뽑히기까지 했다. 다른 연기 부분도 이상한 곳이 없었다. 성공, 대성공. 모든 것이 딱딱 맞아떨어진 보기 드문 날.

 

"으음....."

 

이럴 때는 기뻐해야할텐데. 지금까지 왕자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던 보이쉬한 소녀, 키쿠치 마코토는 혼자서 떨떠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음? 키쿠치씨?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니요."

"키쿠치씨! 아까 연기 정말 좋았어요! 진짜 왕자님이 나타난 것만 같아서, 두근두근거렸다고 해야할까."

"아하하....."

 

돌아오는 칭찬의 말에도 마코토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불편해지기까지 했다. 마코토는 억지 웃음으로 대화를 넘기고는 전에 대기하고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끼릭, 끼긱.

 

"휴우."

 

근처에 놓인 간이 의자에 등을 푹 기대 앉고는, 작은 한숨을 흘리는 마코토. 방금 그건 정말로 연기에 불과하다는 걸 알려주는 것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모습.

 

".....괜찮아. 널 괴롭히는 것들은 전부 날려버릴테니까, 라니."

 

입에 올리는 건 똑같은 대사.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건 흘러넘치는 자신감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자조.

 

"그런 건, 그냥."

 

마코토는 옆자리 다른 의자를 더듬어 올려두었던 만화책을 꺼내 들어 파라락 펼쳐들었다. 평범한 여자아이와 멋지고 능력있는 남자와의 극적인 첫 만남부터 시작되는, 현실에서는 있을 리 없는 지나치게 반짝반짝하고 낭만적인 사랑이야기. 마코토는 이미 몇 번이고 읽어 내용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읽어나가는 걸 멈추지 않았다.

 

파락, 파락.

 

적당한 속도로 넘어가는 페이지들. 마코토는 두 남녀의 행적을 눈으로 쫒다가, 어느 순간부터 딱 멈춰섰다. 여자가 악역의 계략에 빠져 궁지에 몰렸을 때 남자가 나타나는 부분. 오늘 촬영을 위해 특별히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보면서 연기에 참고했었다.

 

그만둬! 이 이상 이 여자를 괴롭히면 너희들은 전부 죽은 목숨이다!

 

박력 넘치는 대사를 시작으로, 양아치 무리에게 덤벼드는 남자. 그는 털 끝 하나 다치지 않고 아주 멋지게 무리 전원을 때려눕힌 뒤, 여자를 구출해내는데 성공한다. 마코토에게 있어서는 은근 이루어졌으면 하는 시츄에이션이었다. 바람과는 달리 자기가 구하는 역이긴 했지만. 뭐 그래도, 역할이 바뀐 것 외에는 바라왔던 것이 이루어졌다. 드라마 촬영의 형식으로나마.

 

그런데도 마코토의 축 가라앉은 입꼬리는 여전했다. 아니, 그보다 더 더 울적해졌다. 사람들은 자기에게 공주님보다는 왕자님 쪽을 더 많이 원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아직 공주님을 동경하고 있긴 하지만, 누군가의 왕자님이 되어주는 것 또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그 왕자님이라도 될 수 있는 걸까?

 

마코토는 다시 한 번 그 장면을 돌려보았다. 여긴 정말 몇 번을 봐도 짜릿하다. 여자가 위기에 빠졌을 때 멋진 남자가 와서 구해주다니. 진부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이 나오긴 해도 재미가 그리 퇴색되거나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현실에는 이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사무소 사람들에게 순정만화 매니아라고 불리는 나라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여기 나오는 남자는, 왕자님은 가짜다.

 

존재하지 않는 가짜.

 

"거짓말.....같은 거잖아, 결국."

 

내가 왕자님이 되어도, 그것 또한 가짜, 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거기까지 진행되었을 쯤에는 목구멍에서 쓴물이 왈칵 솟아올랐다. 이래서 기쁘지 않았다. 촬영이 딱 맞아떨어진 것처럼 끝나도. 다른 사람에게 연기를 칭찬받아도. 결국 없는 걸 잔뜩 꾸며서 보여줘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게 아닐까. 마코토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바닥쪽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어이, 마코토!"

"네!?"

 

돌연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코토는 무릎 맡에 펼쳐놓았던 책을 탁 덮고는 고개를 황급히 그 쪽으로 들었다. 적당한 키에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안경 낀 청년이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가 익히 아는 인물, 프로듀서였다.

 

"어려운 씬을 단번에 해치웠다며? 대단하네! 역시 마코토라니까."

"헤, 헤헤헷. 이 정도야 뭐 저한테 걸리면 어린애 팔 비틀기죠."

".....우와, 비틀어봤나보네. 마코토는 의외로 잔학무도하군."

"에에-? 그런 건 아니에요! 단순한 속담이잖아요 이런 건."

"농담이야."

"흥, 그것 참 재미없는 농담이네요."

 

프로듀서는 일부러 짖궂은 말을 던지면서도, 어설픈 웃음 속에 감춰진 마코토의 속마음을 약간이나마 캐치했다.

 

"그런데 너, 별로 기뻐보이질 않네. "

"아, 그게.....괜찮아요."

"괜찮아요, 가 아니잖아. 그러고 보니 혼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도 좀 수상한데."

"에이, 괜찮다니까요."

"누구하고 싸우기라도 했어?"

"아, 정말! 저는 절대로 괜찮으니까!"

 

프로듀서가 자꾸만 캐묻자 마코토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크게 소리질렀고, 멀리 떨어져 있던 다른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 쪽을 바라보았다. 무안해진 마코토는 주변 눈치를 슬슬 보며 정반대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내었다.

 

"죄, 죄송해요. 그러고 싶었던 아닌데."

"마코토, 너......"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이제 그만하고 사무소로 돌아가요."

 

마코토는 멋쩍게 웃으면서 귀환을 재촉했다. 프로듀서는 좀 더 자세한 사정을 듣고 싶었지만 주변의 시선이 신경쓰였다. 우선은 저 애 말대로 하자. 프로듀서는 마코토한테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보낸 뒤, 주변에 널브러져있는 짐들을 하나 하나 주워들었다. 짐이라고 해봤자 그리 대단한 건 아니고, 마코토가 쓰고 왔던 모자와 가방 정도지만.

 

"음?"

 

프로듀서는 바닥에서 만화책 하나를 새로 발견해 주워들었다. 떨어진 위치를 보나 표지를 보나 마코토가 읽고 있던 게 확실했다. 내용까지 슬쩍 확인한 프로듀서는 자기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감성에 표정을 구겼다.

 

"윽, 역시 이런 건 쥐약이라니까."

 

마코토에게 있어서는, 촬영장에까지 들고 올 정도로 재밌었다는 걸까. 때로는 담당 아이돌의 취향에 어울려줄 필요도 있을 지도 모른다. 프로듀서는 꾸역꾸역 페이지를 넘기다가 멈췄다.

 

"아, 여기 촬영한 거하고 비슷하네."

 

프로듀서는 그제서야 연기에 참고하려고 가져왔다는 걸 알아채고는 주의 깊게 그 부분을 보았다. 마코토의 기분이 별로였던 게 어쩌면 이것과 연관되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프로듀서, 저 왔.....아, 그거 제 책인데. 어때요? 재밌죠? 그쵸?"

 

그가 열심히 둘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사이에, 원래 옷으로 갈아입은 마코토가 돌아와 그걸 보고는 두다다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이런 취향이 아니고......"

"부끄러워하시기는. 뭐 어때요. 남자가 순정만화를 읽을 수도 있는 거지."

"아니라니까."

"이 참에 다른 것도 추천해드릴까요?"

"됐거든."

 

프로듀서는 들어오는 공세를 적당히 넘기며 문제의 그 부분을 펼쳐보였다.

 

"아.....거기."

"아까 이 부분을 열심히 읽고 있던 것 같은데. 혹시 연기가 참고했던 것과 좀 다르게 나오기라도 했어?"

"그렇지는, 않았어요."

 

마코토는 고개를 저었다. 연기 자체는 그녀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 좋게 나왔다. 하지만 그럴 수록 마음이 아팠다. 솜씨 좋은 거짓말을 늘어놓은 것만 같아서.

 

"그럼 뭔데."

"그냥.....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건줄 아세요."

 

마코토는 부루퉁한 얼굴로 프로듀서에게 손을 내밀었다. 프로듀서는 더 이상의 질문을 그만두고 모자와 가방, 책을 건네주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예. 그 쪽도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촬영 때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물품을 받아든 마코토는 모자를 푹 눌러쓰며 곧장 바깥으로 향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프로듀서도 황급히 허리를 숙이고는 담당 아이돌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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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마스 17화를 참고로 적당히, 한 4편 정도로 예상 중. 그러나 완결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인겁니다 으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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