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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색의 작은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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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9, 2016 18:18에 작성됨.

"...아마미씨가 접대용 찻잎을 사러 가는 데 왜 저까지 따라가야 하는거죠?"
"뭐 괜찮잖아? 친목도 다질겸. 어차피 할 일도 없으면서. 코토리씨나 나는 업무로 바쁘다고."
"큿...그건 프로듀서가 일을 제대로 못하신 거 아닌가요?"
"윽, 꼭 그렇게 말해야 하는거냐.. 아무튼 어차피 지금 레슨도 없고, 하루카 좀 도와주지 그래?"


프로듀서의 고집에 치하야는 할 말을 잃었다. 레슨이 없어도 개인적인 연습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거 아닌가, 라는 반박을 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간의 경험으로 반박해봤자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단지 한심하다는 듯 프로듀서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알았어요."
"응, 좋아!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와~ 치하야쨩이랑 데이트~"
"야..."
"......"


힘차게 뛰어나가는 하루카를 바라보며 치하야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에라도 거절할까? 그랬다가는 아무래도 프로듀서와 아마미씨가 무슨 소리를 해댈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결국 가야만 하는 건가. 저절로 옅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때는 여름. 햇살은 강하게 내리쬔다. 하지만 습도는 높지 않아, 딱히 불쾌지수는 높지 않다. 다만 땀이 흐를 뿐.
얇은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묶은 하루카는 손부채질을 하며 치하야를 돌아보았다. 더울 것이 분명한데도 입고 있는 푸른 가디건. 보기만 해도 더워지는 그 모습에 하루카는 물었다.


"치하야쨩, 안더워? 좀 벗는 건 어때? 잠시 벗는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잖아?"
"글쎄요."
"...저어기~치하야쨩~, 내 말에 대해서 생각은 하고 있는 거야?"
"글쎄요."
"아~! 정말, 치하야쨩!!"
"그렇게 크게 안 불러도 들려요. ..그리고 아이돌로서 기본적인 품위는 지켜요. 아무리 무명이라지만, 주변에서 보니까."
"...!"
 

순간 하루카의 얼굴이 붉어졌다. 여긴 사무소가 아니다. 사무소에서야 일상적인 일이지만 지금 이 거리를 걷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 걸 알 리 없었다.
이런 것에서 지다니, 어쩐지 분한 생각이 들었지만 치하야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은지 그녀가 조용해지자 그녀의 손목을 놓고선 앞서 걸어가 택시를 세웠다.


"안 갈 거에요?"
"...갈 거야!"

 


 

 

 

 

 

 

 

'...바람에 습기가...'
 

찻잎을 고르겠다며 가게 안으로 들어간 하루카를 밖에서 기다리던 치하야는 문득 불어 오는 바람에 젖은 느낌이 드는 것을 깨닫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하늘은 맑다. 하지만 어쩌면 비가 올 지도 모른다. 이렇게 햇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에- 라고 생각하며 치하야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의 먼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비구름이 약간 보이는 것 같다.


'아직일까...'


고르는 것 뿐인데 꽤 오래 걸린다.
기껏해야 찻잎을 사는 건데 택시까지 타고 왜 이렇게 멀리까지 온 건지 약간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차피 하루카의 행동은 그녀가 이해할 성질의 것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치하야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걸 잘 알고 있으면서 대체 부득불 날 끌고 온 이유가 뭘까. 단지 할 일이 없다는 이유 하나로? 그렇다고 하기엔 오늘 하기와라씨도 사무소에 남아있었는데.
아무래도,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그냥 만만한 게 자신이었던 걸까.


치하야는 하늘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햇살이 따사롭다. 하지만 뺨에 느껴지는 옅은 습기는 약간 끈적거리는 느낌도 가져온다. 얼마 안 있어 비가 올 것 같다고 치하야는 확신했다.


"미안- 기다렸지?"


그 순간 딸랑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감사합니다-」라는 상투적인 인사를 뒤로 한 채로 하루카가 가게 밖으로 나왔다. 생글거리는 미소는 과연 미안한 것인지 의심이 들었지만, 치하야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곤 물었다.


"끝났나요?"
"응, 오늘 오후에 배달해준대."


결과적으로 그냥 주문하면 되는 거 아닌가. 여러 가지로, 아직도 그녀가 자신을 끌고 온 이유를 모르게 되어 버린다. 하지만 어쩐지 그 이유를 물어봤다가는 화를 낼 것 같은 듯한 느낌에 치하야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치하야쨩."
"네?"
"돌아갈 땐, 걸어서 돌아가지 않을래?"
"..어째서?"
"바람이 좋잖아~"


이 바람에 있는 습기는 안 느껴지는 건가. 치하야는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습기는 느껴지지만 아직 비구름은 먼 곳에 있다. 사무소에 돌아갈 때까지는 괜찮을 지도 모른다.


"..괜찮겠죠"
"응, 바람도 좋고, 날씨도 좋으니까!"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긴 하지만요."
"우..너무 매정하다구 치하야쨩은..."
 

그렇게 대답하며 치하야는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가 없다. 아직 아마미 하루카라는 여자는 그녀에게 이해 불가능의 영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치하야는 그녀의 팔을 잡아 끄는 하루카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내 곧 치하야는 완전히 자신의 예측이 틀렸음을 인정해야 했다. 정확히는 비가 오는 원인이 틀렸다- 지만, 한창 사무소로 향하는 길을 별다른 말 없이 걸어가고 있던 도중 갑작스런 소나기가 쏟아질 것은 그녀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꽤나 많은 양이 쏟아진 덕분에 치하야과 하루카 둘 다 폭삭 젖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자신의 동행은 꽤나 문제인 듯 해, 비를 피할 만한 장소를 찾던 두 사람은 겨우 편의점을 하나 찾을 수 있었다. 


"너무 멀리 나왔나? 편의점 하나 찾기도 어렵네.."
"시내에서도 좀 벗어난 곳으로 갔으니.."


딸랑, 하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 카운터에 쪽지 하나만 남겨둔 채.


"우산이라도 살 생각이었는데 화장실에 가신 모양이네."
"아마미씨, 바닥이 젖어있으니까 그렇게 막 걸어다니시는 건.."
"괜찮아 괜찮아~ 설마 걸릴 것도 없는데 넘어질..우와앗?!"


말하기가 무섭게, 하루카가 발을 내딛은 순간 넘어져버리는 것을 본 치하야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요?"
"응. 아야야... 쓰려라..."


발목을 어루만지는 하루카를 보고 치하야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의자에 앉아있는 두 사람의 뒤로 있는 커다란 창문에 빗방울이 노래를 부르듯 일정한 리듬으로 떨어졌다. 툭, 툭. 투두둑. 그 음률에 맞춰 손가락으로 무릎을 톡톡 두드리던 치하야는 문득 옆에 앉아 있는 하루카의 옅은 떨림을 느꼈다. 고개를 들어 돌아보면 두 손으로 무릎을 모은 채로 앉은 그녀의 몸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온도가 꽤 내려 가 있다. 거기에 비까지 맞은 상태에서 저런 얇은 옷으론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 모습을 잠깐 바라보던 치하야는 아무 말 없이 가디건을 벗어 하루카에게 덮어 씌우듯 건네주었다.


"에?"
"...체온이 떨어질테니까요. 안 쪽은 젖지 않았어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치하야쨩은?"
"전 됐습니다."


예상 외의 친절에 당황한 듯 하루카의 눈동자가 떨렸지만 치하야는 물이 똑똑 떨어지는 천장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도저히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어쩐지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가 어색해, 치하야의 표정을 살피던 하루카는 결국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 추워?"
"비가 오니까 확실히 체온이 떨어지긴 하겠죠."
"아니..그..치하야쨩 말이야."
"전 상관 없어요."


무뚝뚝한 말에, 어쩐지 그 하얀 피부와 푸른 머리칼, 그리고 시린 눈동자는 보고 있는 사람이 차갑고, 춥게 느껴진다. 정말로 차가운 이미지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루카는 잠깐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옆에 기댔다. 움찔, 하고 당황하는 것이 팔 너머로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고 있는 대도 시선이 느껴진다. 하루카는 황급히 고개를 숙인 채로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 이, 이렇게 하면 두 사람 다 따뜻할 테니까! 치하야쨩도 추워보이니까, 그런 것 뿐이야! 알겠지? 뭐 다른 게 아니니까! 응? 알았지?!”


약간 피식, 하고 얕게 웃는 느낌이 든 것 같다. 그 느낌에 하루카가 다시 뭔가 변명을 하려는 순간, 치하야도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있는 하루카의 머리에 기댔다.
순간 얼굴에 열이 오르며 심장이 마구 폭주하기 시작했다.
귓가에 작게 심장소리가 들렸다. 느리지만 일정한 박동이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자 지긋이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어 빗소리를 듣고 있는 듯한 치하야가 보였다.
언제나 차갑고 인정이라고는 잘 쓰지 않는 듯 보이지만 의외로, 상냥하다.


"따뜻해?"


조심스레 입을 열어 물어보자, 잠시 뒤에야 대답이 들려왔다.
 

"...네"
"치하야쨩은, 이미지랑 다르게 되게 따뜻하네."
"...그런가요?"
"응."


투두둑, 강한 빗줄기가 그들이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편의점의 창문을 때렸다.

 

 

 

 

 

 

 

 

 

"휴우- 그래도 빨리 그쳤네."
"소나기니까요."


그 편의점에서 밖으로 나오자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파랗게 갠 하늘에 어쩐지 분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그 눈동자를 바라보면 왠지 몰라도 분한 느낌은 사라지고 오히려 얼굴이 붉어졌다.
치하야가 손을 뻗어 하루카의 어깨에 걸쳐있던 가디건을 가볍게 빼내었다. 아, 하는 하루카의 작은 목소리와 함께 가디건이 치하야의 손에서 펄럭였다.


"사무소로 돌아가죠, 이제."
"아, 응... 어?"


젖은 탓인지 가디건을 입지 않고 그냥 들고 앞장서는 그녀를 쫓아가던 하루카는 하늘을 바라보고 작게 탄성을 내질렀다.
하늘에 걸린 오색의 다리.


"무지개.."
"응... 예쁘다."


그 오색의 다리는 하늘을 길게 연결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빛이 산란되는 것뿐인데, 꽤나 보기 좋다- 라고 생각하던 치하야의 팔을 붙잡는 부드러운 손길이 있었다.
돌아보면, 결 좋은 갈색 머리칼을 흩날리고 있는 사람.


"그럼, 돌아갈까!"
"....네."


오색빛의 무지개가 뜬 푸른 하늘이 배경으로 있던 날의 자그마한 기적으로, 그 소녀들의 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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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재구축만 하다가 그냥 쓰니까 기분이 묘하네요<..그래봐야 단편이지만 '~`
하지만 역시 귀차니즘이 너무 강하다! 그냥 스레식으로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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