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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0, 2016 22:43에 작성됨.


 눈앞에는 텅 빈 객석이 펼쳐져 있습니다. 라이브를 할 때는 불이 꺼져있어서 사이리움의 불빛과 희미하게 비치는 얼굴들만 보이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약간은 주황빛이 나는 조명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어서 붉은색의 푹신해 보이는 의자들이 가득했습니다. 보통 아이돌의 라이브는 스탠딩이나, 스탠딩이 아니더라도 제법 수평적인 관객석을 많이 보게 됩니다. 가장 많이 보는 건 무채색의 플라스틱 의자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학교의 커다란 강당 같은 느낌입니다.

 

 "리허설 곧 시작하겠습니다. 모두 자리 잡으셨죠?"

 

 스태프분의 외침에 발밑을 바라보았습니다. 무대에는 관객들은 보이지 않게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습니다. 각자 자신이 서야 하는 위치를 표시해놓은 것들입니다. 이 스티커들은 이정표 같은 것이어서 없으면 안 될 정도입니다. 아무리 동선을 완벽히 외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위치를 알려주는 스티커가 없다면 모두의 위치에 조금씩 차이가 생기기 시작하고 이내 무대 전체의 밸런스가 무너지고 맙니다. 자리를 바꿔가며 이동을 하는 댄스를 추면서 움직이는 거리를 센티미터 단위로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 붙여진 번호를 따라 우리들은 무대를 누빕니다. 스티커에 붙어있는 번호대로요.

 

 그리고 지금 제 발밑에는 0이라는 숫자가 쓰여 있습니다.

 

 "10초 후에 시작하겠습니다!"

 

 시작이 가깝다는 말에 다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역시 아무도 없었습니다. 리허설이기 때문에 자리하지 않은 관객들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0번은 제로 포지션. 센터의 자리입니다. 센터에 서는 사람 앞에는 객석밖에 없습니다. 뒤쪽, 특히 참가 인원이 많을 때 2열이나 3열에 서면 수많은 동료들의 등이 보입니다. 객석이 잘 보이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때는 오히려 안심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저를 이끌어주고 있다는 점도, 만약에 실수를 해도 크게 티가 나지 않겠다는 안일한 생각도 들곤 합니다. 3열에 자주 서는 분들 중에서는 적당적당히 하는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음악 방송을 녹화한다고 해도 3열은 한 장면, 3초나 찍힌다면 많이 찍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센터는 정반대입니다. 센터의 앞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 누구의 등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 등을 보고 있습니다. 정면에서는 카메라와 관객들이 저를 보고 있습니다. 마치 모래시계의 병목 부분 같습니다.

 

 "3, 2..."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고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저는 멍하니 책을 보는 것처럼 그걸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잠깐, 스톱, 스톱. 사기사와 씨, 어떻게 된 거야?"

 

 음악이 끊기자 화들짝 놀라 몸을 떨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연신 고개를 숙였습니다. 뒤를 돌아 다른 동료들에게도 사과했습니다.

 

 "뭐야, 후미카, 긴장한 거야?"

 "조금, 그럴 지도요...."

 

 제 바로 옆쪽에 서 있던 카나데 씨가 와서 저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모르게 약한 말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연습 때는 괜찮았잖아? 긴장만 안 하면 괜찮을 텐데. 솔로로 서본 적도 많으니 너무 걱정할 건 없잖아?"

 

 저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가볍지 않았습니다. 솔로는 무대를 망쳐도 피해를 보는 건 자신밖에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관객분들도, 스태프분들도, 프로듀서 씨도, 회사도 모두 피해를 보겠지만 어디까지나 모두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센터는 다릅니다. 자신이 실수를 하면 모두의 무대를 망쳐버리게 된다는 중압감에 짓눌릴 것만 같습니다. 물론 무대에 서는 모두가 같은 마음이겠지만 가장 앞에 서서 모두를 이끌고 무대의 얼굴이 되는 것과는 정도가 다릅니다.

 

 "잠깐 멍하게 있었나 봐요. 정말 죄송했습니다. 다시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저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기사와 후미카, 인생 첫 센터,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럼 다시 갈게요."

 

 아까는 들리지 않던 가느다란 샤미센 같은 소리를 시작으로 음악이 다시 흘러나왔습니다. 수십 번이나 들은 노래에 맞춰 타이밍을 세고 움직일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그다지 빠르거나 격렬한 곡은 아니었습니다. 댄스 네임 같은 곡이었다면 제 쪽에서 절대로 못 하겠다고 억지를 부렸을지도 모릅니다. 곡 자체는 편안하고 무난한 편이었지만 안무가 문제였습니다. 이동하는 동선이 큰 것도 아니고 거의 고정에 가까웠지만 조금씩 움직이며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안무였기 때문에 오히려 어려웠습니다. 딱 맞게 짜인 안무라면 그저 정답에 가깝게 연습하면 그만이었지만 관객석에 다가가서 손을 흔들거나 옆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가볍게 장난을 치거나 마주 보고 웃는 자연스러움은 제게 확실히 어려웠습니다.

 

 봄의 마법으로 햇살은 바뀌고-

 

 일단은 가사도 놓치지 않고 잘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노래를 부르는 파트에서는 큰 안무 없이 노래만 부를 뿐이라 다행이었습니다. 뒤쪽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바쁘다고 해야 할까요.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연습 때에는 자연스럽고 웃음이 넘치는 얼굴로 곡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제 파트는 금방 끝나고 뒤에서 다른 멤버들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2열로 밀려난 저는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습니다. 바로 옆에 있던 카나데 씨도, 유미 씨도 가볍게 리듬을 타며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 혼자 어색하게 떨어져 나온 것만 같았습니다. 혼자서 바라볼 카메라도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누구를 바라보면 되는 걸까요. 어떻게 웃으면 되는 걸까요.

 

 제가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사이 3열의 멤버들까지 순서가 돌아가고 이내 끝나 후렴구가 다가왔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저는 다시 가장 앞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후렴만큼은 기억하고 있어. 

 슬프게 빛나던 어린 날들이 다시 떠올라.

 

 그래도 이번엔 가사를 놓친다거나 정해진 기본적인 안무를 빼먹는 실수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습니다. 간주 부분은 이제 저도 움직여야 합니다. 뒤편으로 도망칠 수도 없고, 가장 앞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저는 어색한 움직임으로 객석으로 조금 다가가며 안무가 선생님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다지 밝은 표정은 아니셨습니다. 저는 더 주눅이 들어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떻게 진행이 된 건지, 노래가 언제 끝났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기계적으로 몸에 익힌 안무와 노래를 소화했을 뿐 단 하나도 제가 스스로 한 게 없었습니다.

 

 "일단 잠깐 휴식시간을 가질게요. 그리고 사기사와 씨는 잠시만 이쪽으로."

 

 아니나 다를까 안무가 선생님이 저를 따로 불렀습니다. 저는 고개를 숙이고서 천천히 무대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무슨 일 있어요? 표정도 어둡고."

 

 안무가 선생님의 목소리는 저를 탓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제가 부족해서..."

 "연습때는 괜찮았잖아요?"

 "...죄송합니다."

 

 저는 고개를 더 숙였습니다. 뒤쪽에서는 다른 멤버들이 자그마한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제 마음은 착잡하기만 했습니다. 역시, 저에게 센터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 게 분명합니다. 어둡고, 음침하고, 말도 잘하지 못하고...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너무 어색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중간에 끊지는 않은 거고. 조금만 더 편하게 마음먹어요."

 

 선생님은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그 말만 하고서 다른 곳으로 가셨습니다. 저는 힘없이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괜찮아, 후미카?"

 

 옆에서 이름을 불려 고개를 들어보니 카나데 씨와 슈코 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뇨. 전부 제 잘못이니까..."

 

 마음 같아서는 센터를 그만둬버리고 싶었지만 이젠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겨우 내일로 다가온 무대인데 이제 와서 센터를 바꾼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슈코 씨."

 "응?"

 "웃음은 어떻게 지어야 할까요?"

 

 저는 아무렇게나 슈코 씨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뭐야 그게."

 

 슈코 씨는 제 질문을 듣고 시원하게 웃었습니다. 저렇게나 쉬운 일인데. 어째서 저는 그것조차 못 하는 걸까요.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즐기고 웃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

 "슈코도 섬세함이 부족하기는."

 

 카나데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후미카.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큰 무대도 아니고, 무대의 완성도가 그렇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가요..."

 

 힘없이 대답하는 저에게 카나데씨는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정 힘들다면 차라리 마음대로 망쳐버리자고 생각하는 건 어때? 의외로 크게 변하는 건 없는데 마음은 편해져."

 "우와, 그거 정말이야? 무서운 소리를 하는 구만."

 

 카나데 씨의 파격적인 말에 슈코 씨는 놀라며 입을 손으로 가렸습니다. 아마, 어느 정도는 연기겠지요. 그런 사람이니까.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어요."

 

 카나데 씨 만큼은 반쯤 입에 발린 제 감사를 간파한 것같이 미심쩍은 눈빛이었지만 더 뭐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

 

 휴식 시간이 끝나고 그 후의 세트리스트의 리허설도 모두 끝났습니다. 그 이후의 구성으로는 저는 단체곡 이외에는 출연도 없었고 단체곡의 포지션도 제법 뒤쪽이어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불안은 그대로였습니다. 당장 내일, 제대로 되지 않은 모습으로 모두의 가장 앞에 서야 한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오우, 수고했어. 고생이 많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프로듀서 씨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약간 삐죽삐죽한 머리에 양복 차림이었습니다. 아이돌은 무대에서만 의상을 입고 이런 리허설 때는 레슨복 그대로인데 프로듀서 씨는 언제나 양복 차림이었습니다.

 

 "아뇨, 저 때문에 제대로 진행도 안 되고...."

 

 리허설은 아슬아슬하게 합격점. 간신히 어떻게든 된 모양새지만 저 자신이 보기에는 완성도도 연습 때에 비해서는 눈에 띄게 떨어졌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뭐어, 처음엔 다 그런 거잖아. 무대에서 긴장을 하는 건 당연한 인간다움의 증거라고."

 

 어떤 만화에서 '상처에서 아픔을 느끼는 건 인간다움의 증거'라는 말을 보고 인상에 깊게 남으셨는지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적당한 긴장은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적당하지가 않습니다. 

 

 저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었습니다.

 

 "...역시 저는 센터 같은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모두를 이끌고 나갈만한 성격이 못됩니다. 제 앞가림도 벅찰 정도인데 센터같은 중요한 역할은 버겁습니다. 이미 잘 알고 있던 것이지만 믿고 맡겨준 프로듀서 씨를 실망시킬까봐 말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말해야 한다고,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후미카를 센터로 정한 건데?"

 "...네?"

 

 프로듀서 씨는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가볍게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장난을 칠 때처럼 조금은 경박한 얼굴이었습니다. 

 

 "나는 딱히 후미카한테 모든 걸 짊어지라고, 바뀌라고 하는 건 아니야. 물론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땐 어느 정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 사실이지만.... 내가 후미카한테 바라는 건 카나데처럼 모두의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자신감도 아니고, 프레데리카처럼 가볍게 무대를 즐길 수 있는 낙천성도 아니야. 후미카에겐 후미카 나름의 장점이 있는 거니까."

 "그게 무슨..."

 "쉽게 말하면 후미카가 평소보다 실력을 못 낼 걸 알고도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센터를 맡겼다는 거야."

 

 뭔가 그런 말을 들으니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부담감과 싸우고 있던 자신이 부정당한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면 차라리 빨리 말씀해주시지 그랬어요. 너는 원래 그 정도니까 그 이상은 할 필요 없다고."

 

 저는 실망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역시 프로듀서도 저에게 실망한 거겠죠.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가벼운 투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게 아냐. 나는 후미카의 프로듀서라고? 언제나 후미카를 봐왔으니까 알 수 있어. 숫기 없고 소극적인 성격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한다는 것도. 나는 항상 그걸 믿고 있어."

 

 프로듀서 씨는 제 어깨에 손을 얹었습니다. 커다란 손은 생각보다 무거웠습니다. 가려진 눈동자의 저편에서 프로듀서 씨의 눈은 평소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에서 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물론 부족한 점이 있어. 한계가 있어. 하지만 지금은 그걸로 괜찮다는 거야. 후미카가 할 수 있는 걸 천천히 해나가는 거로 충분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어깨에 놓인 손에 약간 힘이 들어갔습니다. 레슨복 너머로도 약간의 온기가 전해져오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로 이걸로 괜찮을까요? 이 정도로 충분한 걸까요?"

 "물론 앞으로 계속 걸어나가야겠지. 하지만 날개는 필요 없어. 스스로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후미카는 후미카다운 그대로 천천히 걸어가면 되는 거야."

 

 프로듀서의 손이 다가왔습니다. 그 손이 제 눈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넘겼습니다. 그리고 가볍게 쓰다듬었습니다.

 

 "내일, 기대하고 있을게. 항상 뒤에서 지켜보고 있어."

 

 저는 눈을 마주하고 있기 힘들어서 무심코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래도 왠지 내일은 굉장히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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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작정 써 봤는데 사실 왜 썼는지 딱히 의미를 모르겠네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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