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오프 더 레코드

댓글: 6 / 조회: 1642 / 추천: 4


관련링크


본문 - 06-04, 2016 03:49에 작성됨.

 

 

 

현관에 설치된 작은 거울 앞에서, 그녀는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보면서 마지막으로 임전태세를 점검했다.

“응, 좋아!”

평소에는 항상 세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도 오늘만큼은 포니테일로 과감하게 스타일을 바꾸었다. 친구에게 듣기로는, 남자들은 슬쩍 드러나는 목덜미의 선을 좋아한다고 한다.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아니,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기에, 필살의 각오로 그녀는 전장으로 나설 준비를 마쳤다.

“어머, 벌써 시간이……!”

확인 차 살펴본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본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약속 장소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린 그녀는 다리를 훑고 지나가는 늦가을의 칼바람에 가볍게 떨면서 다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다행히 약속 시간을 막 넘긴 참이었다.

‘이 정도면 애교로 어떻게든 때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그녀는 약간 빠른 발걸음으로 약속 장소인 역 앞을 향해 걸었다.

역의 모퉁이를 돌기가 무섭게 햇볕이 내리쬐는 기둥 앞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항상 딱딱한 슈트 차림이던 평소와는 다르게 청바지와 드레스 셔츠, 그 위에 후드 점퍼를 걸친 모습이었다. 평소에도 지나치면서 흔하게 보는 패션이었지만, 190cm는 우습게 넘는 그 사람이 입고 있으니 마치 패션잡지의 모델이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서,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점퍼의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휘파람을 불고 있는 그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약속 장소인 역 앞에 도착한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 사람들보다 머리 두 개 정도는 더 높아 보일 정도로 키가 큰 남자였다.

늦가을의 싸늘한 바람이 흐르는 한 낮의 역 앞은 주말이라는 것을 광고하듯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았다. 약속 시간까지는 2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생각보다는 빨리 왔군.’

중천에 떠오른 해가 공기를 덥히기 시작한다. 손목시계의 알람을 설정해두고, 그는 햇빛이 내리쬐는 기둥에 기대어 서서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 앞으로의 일정이 빼곡하게 적힌 수첩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남자는 안경을 고쳐 썼다.

얼마간 수첩을 노려보며 일정을 정리하고 있자니 손목시계에서 시간을 알리는 작은 종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누가 볼세라 재빨리 수첩을 집어넣고, 문을 열지 않은 가게의 유리창을 거울삼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휘파람을 불면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자니 옆에서 자주 듣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혹시 프로듀서……인가요?”

낯익은 목소리였기에, 그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센카와 씨, 인가요?”

“네, 네!”

남자. 프로듀서는 한순간이지만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레깅스 위에 핫팬츠를 입고, 그 위에 터틀넥 스웨터와 얇은 코트를 걸치고, 평소에 농담 삼아 ‘미모 봉인구’라고 농담을 던졌던 댕기머리를 풀어헤쳐 포니테일로 정리한 그녀의 모습에서 한 순간이지만 뭔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연녹색 리본으로 머리를 정리한 것이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모습이었다.

‘이름을 안 들었다면 지금쯤 명함을 꺼냈겠지……’

“아하하, 신선하네요, 어쩐지.”

“그, 그러게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무언가 화제가 필요했기에 프로듀서는 주머니에서 티켓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티켓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영화의 상영 시간이 거의 임박해 있었다.

“시간이 다 됐으니 일단 영화부터 보러 갈까요?”

“네, 네! 그렇게 해요.”

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영화관의 매표소 앞에서 팝콘과 음료수를 사 들고, 프로듀서와 치히로는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로비에 들어서자 곧바로 눈에 띄는 것은, 대문짝만한 포스터의 한켠을 장식하고 있는 타카가키 카에데의 얼굴이었다.

“조연이라더니, 꽤나 비중이 있나 보네요.”

“그러게요.”

흥, 하고 콧바람을 내뿜으며 반짝이는 눈으로 포스터를 바라보는 프로듀서의 표정을 슬쩍 올려다본 치히로가 그의 옆구리를 살짝 찌른다.

“뿌듯하죠? 프로듀서 씨.”

“들켰나요?”

“아하하, 방금 전 표정, 제가 상 탔을 때 저희 부모님이 짓던 표정이랑 느낌이 비슷해서요.”

‘부모님’이라는 말에 쑥쓰러운 듯 뒷목을 주무르던 프로듀서는 화제를 돌리듯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

“아, 저쪽이네요. 따라오세요.”

“후훗, 네.”

그들이 상영관 내부로 들어가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이 꺼지면서 광고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중간에 스쳐 지나가듯 카나데가 나오는 립글로스 광고를 보는 프로듀서의 얼굴이 아까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본 치히로는 소리 죽여 웃었다.

영화의 내용은 평범한 로맨스 영화였다. 과거 유명한 기자였던 주인공이 은퇴 후 고향에 돌아와서 어릴 적 느꼈던 향수를 더듬어 가다가 청년 시절에 헤어졌던 소꿉친구를 만나 다시 삶의 활력을 얻는다는, 다소 진부하지만 그만큼 팔리기도 쉬운 스토리였다.

다만, 프로듀서의 눈에 비치는 영화는 조금 다른 쪽이었다. 이 영화에서 카에데는 회상씬에 나오는 20대 시절의 히로인을 연기했다. 회상 장면에서나 가끔씩 나오는 수준이라 실제 출연 시간을 다 합하면 30분도 채 되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인상을 남기는 데는 충분한 분량이었다. 이제부터는 ‘아이돌 타카가키 카에데’뿐만 아니라, ‘배우 타카가키 카에데’로써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뭐, 사실 노래 부르는 걸 빼면 이미 아이돌보단 멀티엔터테이너에 가까웠으니…….’

프로듀서가 한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옆에 앉아 있던 치히로가 그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일까 싶었던 그는 상체를 그녀에게 약간 기울였다.

“……프로듀서, 또 일 생각 했죠? 정말……!”

“……죄송합니다…….”

프로듀서는 팝콘을 한 움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 다음부터는 일 생각은 최대한 억누르고 영화의 내용에만 집중하도록 노력했다. 직업병인지 중간중간 계속 일 생각이 나서 여러 번 옆구리를 찔리기는 했지만.

 

엔딩의 스탭롤이 올라가고 상영관의 불이 켜졌다. 옆에 앉은 프로듀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치히로는 지금부터 자신이 하기로 마음먹은 행동에 온통 정신이 팔려서 도저히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기, 긴장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 하는 거야!’

 

영화가 끝나고, 두 사람이 영화관을 나올 무렵 시간은 오후 네 시가 되어 있었다. 세 시간을 넘어서는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영화였지만, 구성이 워낙 좋았던 덕분에 그다지 지루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역시 감독의 능력이란 게 중요하구나, 라고 생각하며 프로듀서가 영화관의 출구의 한쪽 모퉁이에 서서 찌뿌둥한 몸을 풀고 있자니 잔뜩 긴장한 치히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저기, 프로듀서 씨.”

“네?”

“혹시, 이후에 일정 있으신가요?”

“음……아뇨, 별 다른 건 없네요.”

그의 대답에 그녀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가 금세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마치 나오처럼 표정이 휙휙 바뀌는 그녀를 보면서 프로듀서는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억눌렀다.

“저, 저기! 그러면, 저……부탁이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등 뒤로 보낸 두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평소와는 달리 좀처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던 그녀는 입을 몇 번인가 벙긋거리더니 마침내 말을 꺼냈다.

“저……오늘 저녁까지, 저랑 어울려 주세요!”

그 말을 듣고, 프로듀서는 머릿속으로 물음표를 띄웠다. 애초에 주말에 영화를 보러 가자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 치히로였기에 당연히 이후의 일정도 다 생각해 놓은 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이 사람, 정말로 영화만 보러 온 거였을까?

“네, 좋습니다.”

그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또 다시 그녀의 표정이 밝아진다. 정말로 표정이 풍부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프로듀서는 허리를 숙여 약간 차가워진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에, 에엣!?”

“출출하지 않으세요? 일단 뭐라도 가볍게 먹죠.”

그의 말에 치히로는 머뭇거리면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저기, 실은 예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는데요…….”

 

영화관에서 역 다섯 개 정도를 이동한 끝에 그들이 도착한 곳은 개점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한 케이크 카페였다.

꽤나 유명한 곳인 듯, 한 두 자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 특유의 커다란 덩치 덕분에 가게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치히로의 뒤를 따라 가게에 들어선 프로듀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기자기한 과일 장식이 가게 곳곳에 장식되어 있었고, 분주하게 내부를 돌아다니는 웨이트리스의 제복 여기저기에도 과일을 연상시키는 무늬로 꾸며진 가게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런 곳이 진짜로 있었네요.”

“전에 카렌에게 들었거든요, 새로 생겼다고. 그런데 딱히 같이 올 사람이 없어서…….”

“그렇긴 하겠네요.”

프로듀서는 또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무겁다……분위기가 무거워…….’

방문한 손님의 대부분은 여성 일행이나 커플이었다. 린 일행이나 연하조는 시간이 안 맞고, 연상조인 유키, 카에데, 미즈키는 이런 곳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미나미나 후미카 또한 이런 곳과는 거리가 있는 이미지니까 치히로의 입장에서는 아마도 오고 싶어도 올 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웨이트리스 한 명이 다가와 일행을 빈 테이블로 안내했다.

자리에 앉아서 테이블 위에 놓인 메뉴판을 열어 안쪽을 들여다보는 프로듀서를 치히로가 미안한 듯 바라보았다.

“저, 정말로 괜찮으세요? 저는 좋긴 하지만…….”

“괜찮아요. 저도 한 번쯤은 이런 곳에 와보고 싶었거든요.”

메뉴판을 펼쳐 본 그였지만, 그곳에는 온통 핑크빛 이름만 있었을 뿐 그가 확실하게 아는 단어라고는 과일 이름 뿐이었다. 이 부분은 전문가에게 맡기자고 생각하고, 프로듀서는 곧바로 메뉴판을 접어 맞은편에 앉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치히로에게 건네었다.

“도저히 봐도 모르겠네요……센카와 씨가 드시고 싶은 거 주문하세요.”

고개를 끄덕이고 메뉴판을 받아든 치히로는 눈을 반짝이며 메뉴판을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을 정한 듯, 그녀는 웨이트리스를 불러 이것저것 주문하기 시작했다. 마치 소녀 같은 그녀의 모습에 건너편에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프로듀서의 입꼬리가 자기도 모르게 올라갔다.

‘신선하네. 참…….’

주문을 확인한 웨이트리스가 떠나가자, 그제서야 프로듀서의 시선을 의식한 듯 치히로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죄, 죄송해요! 너무 들떠서 그만…….”

“괜찮아요. 뭐, 이렇게만 보면 센카와 씨도 여전히 젊은이구나, 싶어서요.”

“뭐에요~ 프로듀서 씨도 아직 20대잖아요!”

“하하, 저는 내년이면 서른이구요. 센카와 씨는 내년에도 20대잖아요.”

“그, 그건 그렇긴 하지만…….”

“실례하겠습니다. 주문하신 음료 먼저 드리겠습니다.”

“아, 에스프레소는 저한테 주세요. 마키아토는 저쪽 분께.”

새까만 음료가 담긴 작은 잔을 받고 프로듀서는 웨이트리스에게 가볍게 목례를 건넸다. 마찬가지로 치히로에게 잔을 전해주고 꾸벅 인사를 건넨 뒤 멀어져가는 웨이트리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치히로는 프로듀서의 앞에 놓인 작은 잔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프로듀서 씨는 항상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만 드시네요? 사무실에서는 블랙만 드시고…….”

“단맛은 이제 슬슬 입에 안 맞네요.”

“늙어서 그런가봅니다.”라고 덧붙이면서 실없는 웃음을 지어 보이는 프로듀서를 빤히 바라보며 그녀는 자신의 앞에 놓인 마키아토를 한 모금 마셨다. 입 안을 맴도는 은은한 단맛이 기분 좋다. 가게의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는 프로듀서를 향해 그녀는 달콤한 열기를 품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마주 앉아 있지만, 저 사람의 눈은 나를 보고 있지는 않구나.’

사무실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들면 눈을 마주치기 쉬운 자리에 위치하고 있지만, 실제로 업무 시간에 눈을 마주치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프로듀서는 자신이 아니라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가슴 한 켠이 답답해졌다. 때마침 그런 그녀를 위로하려는 듯, 여섯 종류의 케이크가 담긴 쟁반을 들고 웨이트리스가 다시 나타났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주문하신 케이크입니다.”

테이블 위에 1/6사이즈로 잘린, 제각각 다른 여섯 종류의 케이크가 올라왔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반짝이는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던 치히로는 프로듀서의 눈치를 보면서 천천히 포크를 집어들었다.

“자, 어서 먹읍시다.”

“네!!”

프로듀서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그나마 무난한 체리가 장식된 생크림 케이크를 조금 잘라서 입으로 가져갔다. 해일처럼 몰려드는 단맛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달다. 커플 일행 중 남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미묘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으응~맛있어!”

그에 비해 입안 가득 생크림 덩어리를 집어넣고, 황홀한 듯한 표정을 짓는 치히로를 바라보면서 프로듀서는 생크림이 잔뜩 묻은 포크를 내려놓고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셨다. 조금 전에 느꼈던, 부담스러울 정도의 단맛이 강렬한 쓴맛에 적당히 씻겨 내려간다.

‘역시, 저런 건 나한테는 안 맞아…….’

내심 혀를 내두르며 프로듀서는 또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절반 정도 남아있던 당분이 이제는 완전히 씻겨 내려갔다.

테이블 위에 늘어놓은 여섯 종류의 케이크를 하나씩 먹을 때마다 무지개처럼 표정이 바뀌는 그녀를, 프로듀서는 팔짱을 끼기도 하고, 이따금씩 턱을 괴기도 하면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거, 혼자 다 먹을 수 있을까?’

 

잠시 후, 계산을 마치고 나온 프로듀서의 손에는 가게의 로고가 그려진 종이상자가 들려 있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한 조각의 절반도 다 먹지 못했고, 치히로가 혼자서 분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케이크는 꽤나 많이 남아 있었다.

“죄송하네요. 어쩐지 저만 계속 먹은 것 같아서.”

“아뇨, 저도 꽤나 먹었는데요. 그러면, 다음엔 어딜 갈까요?”

슬쩍 바라본 시계는 어느새 오후 6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프로듀서를 치히로가 불렀다.

“아, 프로듀서 씨, 혹시 저기 가 보셨어요?”

치히로의 손이 가리키는 곳에는, 휘황찬란한 조명이 번쩍거리는 게임센터가 있었다.

“아뇨. 아직은…….”

“그럼 이 참에 한번 가 보죠!”

그녀의 손에 이끌려 게임센터에 들어선 프로듀서는 마치 박물관에 오기라도 한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던 와중에 뽑기 코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그는 자석에 이끌리듯 그 쪽을 향해 걸어갔다. 프로듀서가 향한 곳의 기계에는 돌돌 말린 뉴 제너레이션의 포스터가 꽂혀 있었다.

“센카와 씨, 이거 봐요.”

“뉴 제너레이션이네요.”

“첫 번째 라이브 포스터에요. 사인까지 들어간……이걸 여기서 볼 줄이야. 정말, 신기하네요.”

그 이후에도 연신 ‘신기하네’를 연발하며 프로듀서는 인형 뽑기 코너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최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늘어난 아이들의 인기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인형뽑기 기계의 상품 중에 적잖은 상품이 CG프로덕션 소속 아이돌의 굿즈였다. 친필 사인이 들어간 CD에서부터 시작해서, 라이브 장면이 프린트된 머그잔이나 트라이어드 프리머스의 라이브에서 사용할 수 있는 푸른색 계통의 사이륨 세트도 있었다.

“자, 여기 말고도 볼 거 많으니까, 저 쪽으로 가 봐요!”

한동안 1층을 맴돌던 프로듀서의 손을 잡고, 치히로는 뽑기 코너를 나와 다른 코너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던 중, 그녀의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다트를 이용해 경품을 뽑는 게임이었다.

“프로듀서 씨, 저거 한번 해 볼래요?”

“다트네요? 우와, 이런 것도 있구나.”

프로듀서는 옆에 붙어 있는 안내문과 매달려 있는 상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남자라면 이런 걸 보면 한 번은 해 보고 싶어지는 법이다. 자판기에 천 엔짜리 한 장을 넣자, 다트 열 발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끄트머리에 자석이 붙은 것으로, 경품이 달려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조작하기 쉬운 모델이었다.

“으음, 생각보다 어렵네요. 야구공 던지는 건 자신 있는데.”

결과적으로 열 발 중에서 제대로 점수를 뽑은 것은 다섯 발에 불과했다. 합계 70점이라는 초라한 점수로 받을 수 있는 경품은 무뚝뚝한 인상의 올뺴미 인형 뿐. 다만 인형치곤 제법 커다란 크기인데다 배 안쪽에는 향기가 나는 비즈가 들어가 있어 여차하면 베개 대신 베고 잘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자, 여기요. 저는 가지고 있어봤자 베개로밖에 쓸 일이 없으니…...센카와 씨 드릴게요.”

“정말요? 고마워요!”

인형을 받아든 치히로는 인형과 프로듀서를 몇 번이나 번갈아 보았다.

“이거, 왠지 프로듀서 씨랑 인상이 좀 비슷한 것 같은데요? 눈 주위라던가.”

“에이 설마요. 그래도 제가 더 낫지 않나요.”

“글쎄요~?”

이후에도 코인 가라오케나 에어 하키 등 간단한 게임을 한 번씩 즐기고 두 사람은 게임센터를 나왔다. 어느덧 여덟 시를 넘어가는 시간. 이제는 도시의 가로등 너머로 하나 둘씩 반짝이는 별이 보이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처음 만났던 역 앞으로 돌아와 역 앞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치히로는 프로듀서가 박자에 맞춰 북을 치는 게임을 하면서 보기 드물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던 조금 전의 광경을 떠올렸다.

“프로듀서 씨, 정말로 게임센터는 처음이었네요. 유원지 촬영 때에도 한 번도 안 가보셨어요?”

그러자 “업무 중인데 가긴 어딜 가나요”라는, 그라면 그 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치히로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맞아.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지.’

여전히 인형을 끌어안은 채, 캄캄해진 하늘을 올려다보는 치히로에게 프로듀서는 방금 떠오른 사실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아참, 센카와 씨, 저번 애니버서리 파티 때 못 오셨죠? 헤어지기 전에 선물 하나 사 드릴게요.”

“선물요? 으음…….”

그런 그의 말에, 치히로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저는 그냥 이거면 되요.”

“네?”

“프로듀서 씨가 직접 얻어 준 거니까, 지금은 이거면 충분해요.”

“……더 좋은 것도 드릴 수 있는데.”

“그러면 그건 다음 제 생일 때 부탁드릴게요. 그래도 되죠?”

“좋습니다.”라고 말하며 떨떠름한 표정으로 프로듀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와는 대조적으로 발그레한 얼굴로 무뚝뚝한 인상의 올빼미 인형을 꼬옥 끌어안는 치히로의 표정은 무언가, 여자아이의 ‘그것’이 떠오르는 표정이었다.

 

 

 

그 다음 주 월요일.

 

“다녀왔습니다~!”

프로듀서가 영업을 나간 사이, 오전 레슨을 마친 카에데가 드링크 병을 손에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프로듀서의 자리를 바라본 그녀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프로듀서……는 아직 안 오셨구나.”

“카에데 씨, 수고하셨어요.”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치히로를 바라보던 카에데의 눈초리가 한 순간 다소 날카로운 빛을 품었다. 그녀의 자리에 지금까지는 못 보던 물건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치히로 씨?”

“네?”

“그 인형, 원래부터 있던 거였나요?”

“아아. 이거요?”

치히로는 카에데가 가리킨 올빼미 인형을 두 팔로 꼬옥 끌어안았다.

“프로듀서 씨한테 받은 거에요.”

“……호오?”

비록 미세한 정도라지만, 그 말을 들은 카에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치히로와 프로듀서가 노닥거리는 걸 써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런 사전준비도 없이, 그냥 손 가는 대로 막 휘갈기다 보니까 퀄리티가 처참하네요.

4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