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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월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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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22, 2016 15:10에 작성됨.

은빛의 달이 하늘 위에 애달프게 걸려있다. 검은 구름에 가려질 듯 말 듯 희끄므레한 빛을 내뱉으며 그 자리에서 지상을 내려보고 있는 달을 향해, 금발의 여성이 손을 내뻗었다. 그 손은 달만큼이나 새하얀 색이었다.


"흐-응, 좀 더 재미있게 해 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여성은, 허공을 지운다. 지워질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도. 역시나 달은 그 자리에서 여성을 보고 있었다. 금빛의 머리카락에 달의 애처로운 빛이 와 닿는다. 그 모습을 보며 여성은 달을 손으로 지우듯 손을 움직였다.


"신월이라... 곧 삭인가~"


달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채 여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달을 마주하기 위해서인 듯, 손을 내렸다.


"심심하니 장난이나 좀 쳐볼까나~?"

 

 

 

 

 

 

 

 

 

"우리랑 같이 가겠다고?"
"네, 우리도 수업삼아 여행 중이고... 일행은 많을수록 즐겁다고 생각해서. 이오리쨩이랑 이야기했는데, 이오리쨩도 찬성했어요."
"나, 치하야는 마음에 드니까. 같이 가면 좋지? 응? 괜찮지?"
"뭐 그거야... 나는 상관없지만..."
"으음.."


날이 밝고, 마을을 떠나고 서로의 목적지가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야요이가 내놓은 '함께 가자'라는 갑작스런 제안에 치하야는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다가 뒤를 돌아본 것을 후회했다. 뒤를 돌아봐야 하루카는 언제나의 싱글싱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물어봐야 '원하는 대로 해'라는 대답 외에 무엇을 듣는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한숨을 푹 내쉰 치하야는 다시 야요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말했다.


"저희는 정처없이 그냥 여행하는건데 그걸로도 괜찮다면..."
"물론이에요! 고마워요, 치하야씨, 마코토씨! 허락해줘서!"
"아, 아니, 뭐. 하루카도 그걸로 괜찮지?"
"응? 나야... 치하야쨩이 좋다면 상관없어요~"


생각 없는 듯한 대답을 받고 나서, 치하야는 야요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 대답에, 야요이가 생긋 미소지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하루카는,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타카츠키 야요이.
요괴와 계약해서 요괴를 다루는 북쪽의 주술사─ 일종의 요괴술사. 그녀의 술법과 기력에 따라 부리는 요괴의 힘도 정해진다. 그리고 자신이 보기에도 이오리는 어려보이는 것 치곤 꽤 솜씨 좋고 능력 있는 요괴다. 저런 요괴를 부리고 있으니, 확실히 능력이 있는 소녀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굉장히 귀여운 여성이다. 하루카는 그 점이 신경쓰였다.

 

'끄응, 역시... 신경쓰이는데. 반대할 걸 그랬나...'

 

조금 치졸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본다.
분명 치하야의 감정에 자신이 끼어들 권리는 없을 것이고, 치하야가 정말 만약에 야요이에게 반한다손 쳐도 자신에겐 그걸 막을 권리도 없다. 그래도 저 사람을 좋아하니까, 타인을 바라보는 건 싫은게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카는 조금 생각에 잠겼다.

고집인가.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은 그랬다.


'어쩐지 바보같아...'


사랑한다는 감정이라는 건 사랑하는 상대에게는 바보가 되어 버린다는 감정이라는 말은, 언젠가 우연히 죽였던 주술사가 가지고 있어 읽었던 책에서 나온 말이지만, 이렇게까지 잘 들어맞을 줄 몰랐다. 자신도 이렇게 자기 자신이 치졸하고 유치할 줄은 몰랐으니까.


"하루카."
"예, 예이?"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숨을 내쉬던 하루카는, 치하야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치하야는 그녀를 돌아보고선 말했다.


"어때? 찾아냈다는 그 [증거]에는 가까이 가고 있어?"
"아, ... 아마도? 그게 동쪽에 있었다고 하고, 애초에 대륙의 동쪽이라면 여기니까 그렇게 멀진 않다고 생각해"
"확실한거지?"
"적어도 짐작으로는?"


치하야의 의심스러운 표정에 쓰게 웃으며 하루카는 그렇게 대답했다.
전에 있던 일을 치하야가 추궁하는 바람에 하루카는 결국 자신이 그 사령에게서 꺼냈던 모든 이야기를 우연히 찾아낸 증거에서 얻은 이야기들이라고 둘러댔다. 치하야는 당연히 그 이야기를 의심했지만 의심한다고 해서 증거도 없고, 그래서 그 이야기의 진위를 알아내고자 자신을 앞세워 가고 있는 것이다.
진위는 맞지만, 이야기의 출처는 다른데. 아마 그 점은 치하야도 조금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치하야는 그 때를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별 수 없다.


단 하루 만에 산을 점령하고 있던 모든 사령들이 사라져 버린 일.
하루카는 그걸 자신이 그랬다고 했고,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이 그런 건 맞다. 치하야에게 말한 대로 치하야를 찾으러 갔다가 산에 있던 봉인이라는 걸 건드린 건 아니었지만. 뭐 하여간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거다, 라고 생각하고 적당히 둘러댔지만─


"...저 그런데, 꼭 가야만 하거야? 그런 곳에."
"왜?"
"아니... 좀 꺼림칙한 기분이라 말이죠..."


되도록 가고 싶지 않다. 그런 대규모의 사령을 움직인 주축이라니,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걸까. 그 사령은 강한 힘이 자신들을 움직였다고 믿고 있었다. 상대는 굉장한 사령술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은 사령이다.
비록 치하야와 계약관계 하에 있다곤 하지만, 어쩌면 진짜 사령술사는 강제로 사령을 움직이는 방법을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자신은 어떤 주술사든 치하야를 제하곤 모두를 죽여왔기 때문에 주술사들의 능력에 대해선 잘 모른다는 게 더 무서웠다.
어쩌면 이번엔 그녀를 지켜줄 수 없을 지도 모른단 일이.


"뭐야. 거짓말이라도 한 거야?"
"그, 그런게 아니라! 다만... 그 정도의 사령을 움직였다면, 역시... 어려운 상대가 아닐까 생각해서..."
"응?"


자신의 심정은 아예 모르는 건지, 어두운 하루카의 표정에도 치하야는 고개를 갸웃 해 보일 뿐이었다.


"뭐, 방법이 있겠지. 꼭 적이 되리라는 일도 없고. 거기다 꼭 싸우러 가는 일도 아니잖아? 너무 그렇게 긴장하지 마."
"흐응..."
"그리고, 너도 있고... 마코토도 왠만한 주술사와 싸워선 지지 않아. 미나세씨의 치료술과 결계술도 틀림없이 엄청나게 도움이 될거고."
"그래, 맡겨둬! 어떤 공격이든 막아줄 수 있으니까!"
"믿음직하네, 미나세씨."


그렇게 말하며 웃는 치하야의 미소에도 어딘가 어두운 구석은 지울 수 없는 표정인 채 하루카는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코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점차, 붉은 빛에서 어두운 보랏빛을 띄어가고 있었다.

 

 

 

 

 

 

 


노숙은 평소와 별 다를 바 없었다. 두 사람이 추가된 걸 제외하면. 장작을 모아 불을 피우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불침번을 세워둔 채 잠이 든다. 불침번은 효율성을 고려하여 쉬지 않아도 피로가 쌓이지 않는 사령인 자신이 맡는다. 그 점엔 이제 불평조차 하지 않게 된 하루카는 멍하니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 달이 뜬 하늘을 바라보았다.


"신월이네. 곧 삭인걸까나..."


신월은 달이 완전히 사라지는 삭 이전에 나타나는 희끄므레한 달을 가리키는 말. 이 때는 모두들 제령제를 지낸다. 삭에는 밤에도 대지를 비추는 달이 없어서 사령이나 요괴 등, 사람이 아닌 것들이 장난을 치기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있을 때는, 신월이 뜨는 것이 정말로 싫었다.


저주받은 아이로 불리웠던 자신은, 신월의 제령제에서는 말 그대로 산 제물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나 자신을 때렸고 자신은 늘 도망쳐 다녀야만 했다. 평소보다 더 심해지는 이유없는 폭력에, 무슨 일만 틀어지면 그 날은 자신에게 화풀이를 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평소보다도 더 깊은 곳에 숨어서 누구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도록 숨죽이고 숲 속에서 하루 종일 있던 날이 신월이 뜨는 제령제의 날이었다.
그 마을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도망쳐도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곳에 있으면 언젠가 자신을 낳은 부모님이 데리러 와주실 거라고 믿었다. 자신을 데리러 올 것이라고.


결국엔 아무도 오지 않았고, 자신은 17살이 되던 해, 제령제의 산제물로 동굴 안에 갇혀 버리게 되었지만. 그리고 거기서 배고픔과 피로에 지쳐 죽었는데도 스스로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500년을 그 곳에 있었다.
비참한 삶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웃는다. 인간들에겐 인간 취급조차 받지 못했다. 그렇다고 자신이 요괴인 것은 아니었다. 정령같은 건 더더욱 아니다. 자신은 인간이었고 남들과 조금 달랐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죽은 몸이어도 그 어두운 동굴에서 나왔는데 세상은 순식간에 500년이 흘러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사령으로, 보는 이들 모두가 자신을 쫓아내고 죽이려고 했다.
이미 죽어있었는데도.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조금 웃는다. 죽어있었는데도 자신은 죽기 싫어서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살아있는 이들을 죽이기도 했다.


"...하루카."
"응? 아, 안 자고 있었어? 치하야쨩?"


그런 자신이 한심해서 조금 씁쓸하게 웃던 하루카는 자신의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녀의 옆에는 이젠 늘 그렇듯이 치하야가 자리잡고 자고 있다. 하루카는 치하야가 분명히 잠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치하야는 잠이 오지 않은 것인가, 자신의 외투를 덮은 채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잠이 안 와서. 근데, 뭘 혼자 그렇게 웃고 있어?"
"아, 아니. 아무 것도 아냐. 조금 재미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래... 지루하지? 불침번."


그렇게 말하며 치하야는 부스럭대며 일어나선, 외투를 걸친 채로 일어나 앉았다. 자신의 옆에 자리하는 치하야를 바라보며, 하루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알고 있잖아?. 그렇게 오랜 시간 혼자 있었다는 거... 이 정도야 문제없어."
"...그래도 지루한 건 지루한 거잖아?"
"뭐, 그건 그렇지만~"
"하아, 춥다..."


긍정하는 자신을 보고 피식 웃었던 치하야는, 몸을 조금 움츠리더니 불가 쪽으로 좀 더 가까이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 모습을 본 하루카는 치하야의 어깨를 붙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겨 품 안에 앉혔다.


"왓, 뭐하는거야!"
"춥다고 했잖아? 불가에 앉는 것 보다 이렇게 하는게 더 따뜻할거야."
"...좀 말하고 행동해줄래?."


자신의 말에 치하야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별달리 화는 내지 않았다. 그 이유가 진짜로 따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하루카는 살짝 미소지었다.
자신은 죽은 존재. 하지만 원한다면 그 형태도, 질량도, 온도도 살아있는 상태와 똑같이 만들 수 있다. 그 이야기는 그에 해당하는 모든 것을 자신이 원하는 상태로 조절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자신의 체온은 지금 인간의 체온보다 좀 높은 상태고, 치하야쨩은 분명 이 온도가 맘에 들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조금 웃곤 하루카는 치하야를 품에 안은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치하야쨩도, 애정결핍일까?."
"무슨 소리야? 갑자기."
"뭐랄까... 치하야쨩, 사람의 온기는 싫어하는 것 같아서? 근데 사람보다 더 따뜻한 물건은 좋아하잖아? 사실은 따뜻하게 감싸주는게 좋은게 아닌가,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 사람의 체온을 싫어하는 건 아냐."


서투를 뿐이지. 그렇게 덧붙이곤 고개를 돌리는 치하야의 모습에 하루카는 미소지었다. 그런 하루카를 보지 않은채 하늘로 시선을 돌린 치하야는 중얼거렸다.


"신월인가. 제령제하겠네."
"응..."
"싫겠다? 제령제."
"그거야 사령이니 당연히 싫지만... 살아 있을 때부터 싫었다구 그건."
"흐음, 나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지만..."


거기까지였다.
치하야도, 하루카도 거기까지만 말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치하야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하루카는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 침묵에서 하루카는 거리감을 느꼈다.


자신도 치하야에게 자신이 왜 제령제를 싫어하는지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아마 치하야도, 틀림없이─ 왜 제령제를 좋아하지 않는지 말하고 싶지 않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침묵이 지속되고 있겠지.


둘 사이엔 아직도 그런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신월... 제령제... 삭이라...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치하야쨩?"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치하야가 그렇게 작게 중얼거렸다. 그 힘없는 목소리에 치하야에게로 시선을 돌린 하루카는, 치하야의 눈꺼풀이 서서히 닫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려 버린다.

방금 전과 같은 거리같은 건 하나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이 사람을 알고 싶다. 그러니까 계속 이 사람의 곁에 있기로 한 거다. 현세에 자신을 붙잡아두었던 미련이 해결되고서도 다시 한 번 이승에 가지 못하고 현세에 붙잡힌 미련. 그것은 이 사람에 대한 모든 미련이다.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


"...잘 자, 치하야쨩. 좋은 꿈 꿔."


그렇게 속삭이며, 그녀의 머리카락에 살짝 입을 맞춘다. 깨지 않도록,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리고 동시에 생각한다.
언젠가 이 사람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할 수 있게 되기를.


─그렇게 된다면 성불해 버릴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웃고, 하루카는 조금 치하야가 편하도록 앉은 자세를 고쳤다.
하늘엔 흐릿한 선이 그어진 것처럼 달이 보일 듯 말 듯 떠 있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그 때까진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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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예비군 훈련이 거의 한달내내 하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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