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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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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17, 2016 04:48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8월 29일

오다이바 플래티넘 아이돌 페스티벌.

말 그대로 오다이바에서 3일간 열리는 아이돌 페스티벌이다. 신인 아이돌에겐 꿈같은 무대이며, 이 페스티벌 참가 여부로 그 아이돌이 얼마나 인지도 있는지 잘 나타내는 지표 역할도 한다.

1999년부터 시작한, 나름 긴 역사를 자랑하는 페스티벌이지만 이런 역사보단 다른 면에서 더 주목을 받는 행사다. 바로 까다롭기로 유명한 참가 자격. 페스티벌은 오다이바 페스 실행 위원회에 의해 운영되며 운영회 판단으로 실력, 인지도, 인기 이 세 가지 면에서 조건이 충족하는 대상에게만 초대장을 발부하기 때문이다.

단, 여기에도 허점은 있다. 초대장만 있으면 누구나 다 참가할 수 있기 때문. 그래서 모종의 루트로 초대장을 양도받거나, 소속사 판단으로 같은 소속사의 인지도가 덜한 아이돌에게 초대장을 넘길 수도 있다.

이는 위원회에서 거를 수 있는 사항이지만 위원회는 이렇게 참가하는 아이돌을 제지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제는 제지하지 않는다. 예전 행사 초기 몇 년 동안은 참가자를 철저하게 확인하고 걸렀다.

위원회는 그렇게 행사 수준을 높였고 관객의 눈을 높였다. 그리고 그 몇 년 후에 위원회는 초대장을 직접 받은 아이돌만 참가할 수 있다는 조건을 삭제했다.

그래서 자격 없는 아이돌 몇 명이 무대에 섰다. 그리고, 그렇게 무대에 선 아이돌 아이들은 페스티벌이 끝난 후 아이돌 시장에서 사장되었다. 자격 없는 사람이 무대에 서는 행위가 곧 팬들과 관객들의 실망과 비난으로 이어졌다.

자격 없는 아이돌이 아이돌 업계에서 쓸쓸하게 자취를 감추는 일이 몇 번 일어나자 아이돌 프로덕션들도 현실을 깨닫곤 자기네들이 내보낼 수 있는 최고의 아이돌에게만 표를 건네주었다.

지금의 오다이바 플래티넘 페스티벌은 수준 낮은 아이돌은 감히 나갈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힘겹고 무서운 무대다.

그리고, 그런 무서운 무대에 신인 아이돌 안즈가 서게 되었다. 오다이바 페스는 지금의 안즈가 오르기엔 너무나도 멀고 먼 무대. 신데렐라가 덜 세공된 유리구두를 신고 성으로 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데렐라가 실수로 유리구두를 깨 먹지만 않으면 다행인 상황. 안즈의 유리구두는 아직 미완성이다.

프로듀서는 이런 말을 몇 번 입에 올렸다.
“너한테는 너무 이른 무대야. 난 이 제안을 받아들인 걸 계속 후회하고 있어. 거기 나가기엔 넌 아직 덜 다듬어졌어. 준비 기간도 너무 촉박했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말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네가 그 무대를 해낼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하고 있어. 난 너의 재능을 믿으니까.”

안즈가 오다비아 페스 무대에 서기 위한 최소한의 대비는 애초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안즈 혼자가 아닌 유닛으로 참가하는 방법. 유이는 5명쯤은 있어야 자기와 맞붙을 수 있다면서 초대장 5장을 넘겨주었지만, 초대장 5장은 안즈가 이 무대에 서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최소한의 장치에 기대는 데에도 최소한의 기준이 있다. 안즈가 유닛을 따라가지 못하면 그 반동이 안즈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 실력 없는 아이돌이 다른 아이돌의 이름과 실력에 편승해서 참가. 과거에도 다른 프로덕션이 시도했지만 실패한 방법이다.

이처럼 안즈가 다른 멤버들의 퍼포먼스를 따라가지 못하면 안즈의 이미지가 다운될 가능성이 있다.

5명이 같은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이상 취약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같은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 다른 멤버들과 자동으로 비교되니까.

결국 안즈가 무대에서 버티느냐 마느냐는 안즈에게 달려있다.

오다이바 페스티벌에서 노래를 부를 기회는 하루에 두 번 씩 해서 총 6번이다. 하루에 두 번씩. 하루에 길어야 10분 정도 되는 무대에 서고 싶어서 신인들은 오늘도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

매년 페스티벌에선 올해의 플래티넘 아이돌을 뽑는다. 선출 과정은 심플. 인터넷, 전화, 현장 투표로 점수를 매겨 순위를 뽑는다. 현장 투표, 전화, 인터넷 순으로 투표 포인트가 많으며, 투표 횟수는 한 사람이 세 가지 방법을 다 써서 투표한다고 가정하면 한 사람당 최대 3회.

단순히 무대에 서기만 하는 게 아닌, 쟁쟁한 아이돌과 경쟁해야 하는 무대.

종류는 다르지만 이 무대는 아이돌 얼티밋이나 아이돌 아카데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갈고닦은 기량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무대다. 그리고 안즈는 짧은 시간 동안 자기 기량을 최대한 갈고닦았다.

그리고 최대한 갈고닦은 실력을 무대에서 유감없이 선보일 생각이다. 그게 안즈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니까.

나태한 안즈의 삶의 방식을 정면으로 충돌하지만, 이 무대를 이겨 나가야 나태고 뭐고 있는 거다.

공연은 평상시 스포츠 경기에 사용되는 스타디움에서 이루어진다. 개폐 지붕이 있어 비가 와도 경기할 수 있는 곳이다. 물론 공연도 마찬가지. 이 스타디움은 페스 기간이 다가오면 며칠에 걸쳐 무대와 무대 장비를 설치한다.

무대는 관객이 주목할 수 있게 전광판 바로 아래에 설치된다.
그 무대에 지금 안즈가 서기 직전이다. 어둑어둑한 저녁에 스포트라이트가 수만 명의 머리 위를 지나 무대를 비춘다. 지금 무대에서 메인 MC가 조금 전에 내려간 아이돌 아이들에 관해 몇 마디 코멘트한다. 그와 동시에 전광판에 숫자가 올라간다.

이번 무대로 얻은 포인트. 최종 결과는 아니지만 무대 직후라서 의미 있는 수치다.

“키타자와 시호 씨의 라이어 루즈! 잘 들었습니다! 폭발적인 감성이 잘 전해지는 곡이었습니다! 지금 포인트는 84만 3547포인트! 현재 8위입니다! 멋진 무대 감사합니다! 그리고 카메라가 자꾸 제 머리 위만 찍는데 제발 내려주세요! 놀리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
이제 안즈를 비롯한 C5가 무대에 올라갈 차례다. 안즈는 무대로 향하는 계단을 강하게 밟았다.

“네! 이번 무대는 요즘 화제인 기간 한정 유닛! C5! 보기만 해도 마음에 포근해지는 큐트함이 매력인 유닛입니다!”
MC의 소개를 받으며 C5가 무대에 올랐다.

조명 연출에 맞추어 멤버들이 각자 자리에 섰다.
관객들의 시선이 화살처럼, 아니 머신건처럼 쏟아진다.

멤버들은 마음속으로 시간을 맞춘다. 3……. 2……. 1…….

오토튠을 입힌 음성이 전주로 흘러나온다. 마치 고장 난 기계에서 나오는 것 같은, 이질적인 목소리. C5는 그 목소리를 자기가 내는 것처럼 연기했다.

“나는 고철 안드로이드. 주인님 좋, 아.”
반주가 흘러나온다. C5는 반주에 맞춰 팔을 양옆으로 뻗고 몸을 흔들었다. 춤이 계속 이어지는 구간. 몸을 흔들 때마다 관객의 시선이 출렁거린다. 관객의 시선이 실처럼 엮여 마치 실에 흔들리는 인형이 된 기분이다.

귀엽다, 뭐지, 신곡이다, 예쁘네, 좋아……. 호의적인 시선이 C5를 옭아맨다.

안즈의 몸에 자의와 타의……. 인공적인 의지가 뒤섞인다. 어디부터가 자의고, 어디부터가 타의인지 혼란스럽지만, 오히려 좋다. 이 노래는 이런 기분에 휩싸여 노래하는 게 제격이니까!

“두근두근 사랑에 빠졌어. 좋아좋아~ 주인니뮹~”
“셀룰로이드 안경이 러블리~”
“가정부 수수로이드가 사랑에 빠지다니 말도 안 돼~”
“당신은 아마 모를 거야~“
C5가 오늘 공개한 신곡 이름은 ‘나는 고철 안드로이드’. 사랑을 각성한 가정용 안드로이드의 심정을 노래하는 곡이다. 기계처럼 삐걱거리는 안무에 사랑의 감정을 자각한 부드러움이 깃들어 묘한 귀여움이 묻어 나온다. 팬 라이트를 흔드는 관객의 손이 점점 흥겨워진다.

안즈는 관객의 시선을 느끼고, 관객이 노래의 흐름에 따라오는 걸 느꼈다. 마치 낚싯대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물고기처럼 관객들이 끌려온다.

“두근거린 순간에 무언가가 시작됐어~”
시선이 점점 모인다……. 조금만 더…….

“고철 덩어리 내가 이제 곧 터질 것만 같아~”
조금만 더…….

“큐잉~“
더…….

“근질근질근질근질 두근두근~”
지금이다!

“알몸이 되어볼까?”
“알몸이 돼!”
노래의 백미가 지금 터졌다!

“하트를 보여줄까?”
“보여줘!“
“지금 막 태어난 주얼은 핑크”
“회로는 진작에 쇼트했어!”
이 시점에서 관객들의 머리가, 손이, 발이, 리듬에 휩싸여 흔들린다! 노래의 에너지가 관객을 집어삼켰다.

이 노래에는 포텐셜이 특히나 터지는 부분이 있다. 잔잔하고 귀여운 흐름으로 가다 터지는 곡의 특징은 관객을 순식간에 사로잡기 좋다는 점이다.

C5는 관객을 성공적으로 사로잡았다. 노래가 계속 흐른다. 춤도 이어진다. 관객들은 호응을 멈추지 않는다. 안즈는 노래에 집중했다. 유닛 모두가 그러했다.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짧게, 한편으로는 영원으로 느껴질 정도로 느리게 지나간다.

노래가 어느새 끝나간다.

“오늘부터 부조리하고 큐트한 소녀랍니다! 쨘쨘! 소녀랍니다! 쨘쨘! 쨘쨘! 쨘!”
허리를 들썩이고 손을 관객석을 향해 훑는다. 멤버들의 손끝에 관객들의 관심이 달라붙는다. 그 손을 흔들어 관객들에게 인사. 이윽고 손이 얼굴 근처로 가면서 안무를 마무리. 반주가 끝나고 노래가 끝났다.

그리고,
“우오오오오오! 귀여워! 오늘부터 팬 할래!”
“오늘부로 미쿠냥 팬 그만두고 C5팬 하겠습니다!”
“한 곡 더! 한 곡 더!”
“오늘은 너희로 찍을 거야!”
“여기 봐줘!”
박수갈채가 폭풍처럼 쏟아졌다.

수만 명이 무대에 경의를 표한다. 귀가 따가울 정도로 산만하고 시끄러웠지만, 더 듣고 싶어지는 묘한 마력이 있었다. 안즈는 가슴을 자극하는 묘한 뜨거움을 느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네! C5였습니다! 나는 고철 안드로이드! 사랑에 빠진 기계의 마음이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자, 그럼 포인트를 볼까요?”
MC가 전광판을 손으로 가리키자 전광판에 숫자가 떠올랐다. 숫자가 정신없이 빠르게 쌓인다.

“네! 지금 시점으로 152만 547포인트! 순위는 3위입니다!”
관객들의 환호성이 MC에 말에 뒤따랐다. C5가 내려간 텅 빈 스테이지를 향해 관객들이 환호한다.

안즈가 살아오면서 겪은 최고의 환호가 TV 속이 아닌 거기에 있었다.
안즈는 무대를 계속 바라봤다. 다음 아이돌이 올라올 때까지.

“안즈 쨩.”
“응? 어.”
미쿠가 어깨를 건드리고 나서야 안즈는 무대에서 고개를 돌렸다.
멤버들이 안즈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미쿠가 그 한가운데에서 심술궂은 표정을 지었다.

“어땠어?”
미쿠가 묻는다. 안즈는 입을 우물거리다 겨우 말했다. 하지만 안즈의 입에서 나온 건 굳이 분류하자면 대답이 아닌 질문.

“안즈가……. 조금 전에 저기 있다가 온 거 맞아?”
자기가 저기 서서 성원을 받은 게 믿어지지 않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모든 의욕을 잃고 그저 숨 쉬는 것과 기본적인 삶의 욕구, 그리고 게임, 애니, 만화 등등으로 빨아들이는 에너지만 받아들였던 안즈가 지금은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수 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달아오르게 했다.

“맞아. 미쿠랑 같은 스테이지에 섰어. 냥.”
미쿠의 보증. 그리고 다른 멤버들도 든든한 눈빛으로 보증한다.
안즈는 조금 전까지 저기 서 있었다. 그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수 만 명이 목격한 사실이다.

“저, 실수하지 않았겠죠?”
“미호 쨩, 걱정 마요! 괜찮았어요!”
나나가 미호를 격려하려고 미호에게 하이터치. 그게 통했는지 미호가 활기차게 우즈키에게 하이터치.
“우리 앞으로도 힘내요!”
우즈키가 미쿠에게 하이터치.
“이 기세로 나가면 문제없을 거야! 냥!”
미쿠가 안즈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즈 쨩. 손!”
“어, 응.”
안즈는 미쿠의 손을 살짝 건드리기만 했다.

“아아, 이 무대에 서다니 꿈만 같아요! 정말!”
“드디어 어엿한 아이돌로 인정받은 느낌이에요!”
“그 기분 저도 알죠! 오다이바 페스 무대를 처음 밟았을 땐 나나도……!”
“그러고 보니 나나 쨩이 처음 오바이바 페스에 나갔을 때는 몇 살이었지? 냥.”
“아, 그게 그…….”
네 명이 함께 즐겁게 재잘거린다.

안즈는 다른 멤버와 같이 있으면서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거울 박스 안에 격리당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마치 군중 속의 고독 같은……. 같은 장소에 있지만 같은 장소에 존재하지 않는 걸 보는 듯한 그런 허무함이 몰려온다.

이윽고, 안즈는 그게 무엇인지 눈치챘다.

오늘 안즈가 선 큰 무대……. 이건 안즈가 노력해서, 안즈의 힘으로 올라온 무대가 아니다. 조금 전에 느낀 벅차오르는 감정은 원래 지금 안즈가 느낄 만한 것이 아니다.

목표로 하지 않았던 무대. 목표로 삼을 예정조차 없던 무대…….
다른 네 명은 목표로 삼았던 적이 있거나, 목표로 삼은, 지금은 실현한 무대.

안즈는 아니다.

감동의 여운에 먹혀 실감을 못 느끼는 게 아니다. 여기 지금 안즈가 설 필요가 있나? 물론 이유는 있다. 유이의 도전장을 받고, 프로듀서와 앞으로도 함께 있기 위해 이 무대에 섰다. 유이에게 떠밀려서 오른 무대. 원래라면 자격 있는 다른 사람이 올라올 무대.

지금 느낀 감동은 그 누군가가 느껴야 했던 게 아닐까?

“아아, 정말 아이돌이 되길 잘했어요!”
우즈키가 두 손을 모아 감격한다. 빛이 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즈키는 멋들어진 미소를 짓고 있다. 우즈키가 여태까지 한 노력이 전부 담긴 미소. 미소에, 열정을 담아 정성스레 깎은 조각상 같은 훌륭함이 비춰 보인다.

그리고 그런 우즈키를 중심으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자, 여기서 이러면 다른 사람들한테 폐가 되니까 어서 대기실로 돌아가자. 냐.”
미쿠가 분위기를 다듬었다.

“안즈는 잠깐 음료수 좀 마시고 갈게.”
“좀 있다가 한 곡 더 해야 하니까 너무 늦게 오진 마. 냥.”
다른 멤버들은 그대로 대기실행. 안즈는 혼자서 참가자 휴게실로 향했다. 단 걸 먹고 머리를 비우자. 고민 한둘쯤은 안고 갈 수 있지만 그것도 한도가 있지, 머리 복잡해지게 이 이상 늘어나는 건 사절이다.

“한고비 넘기면 또 한고비……. 정말 말도 안 돼……. 이건가. 안즈는 초대 프리큐어를 리얼 타임으로 본 적도 없는데 말이지.”
우선 지금 직면한 상황부터 헤쳐나가야 한다.

안즈는 휴게실에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발걸음을 멈췄다. 휴게실 한가운데에서 웬 털 뭉치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게 아닌가. 자세히 보니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목줄을 늘어트리곤 휴게실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주인이 강아지를 놓쳤나? 안즈가 의아해하고 있으니 강아지가 안즈를 발견했다. 강아지는 혀를 길게 빼곤 꼬리를 정신없이 흔들면서 안즈를 올려다보았다.

“하나코! 하나코!”
문밖에서 깨끗한 목소리가 들렸다. 강아지의 귀가 쫑긋 섰다. 강아지가 안즈의 다리 사이를 지나 순식간에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뭐였지?”
안즈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자판기로 향했다.
뭐, 머리를 식히기엔 좋은 촌극이다. 안즈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판기 버튼을 눌렀다.

“으으으……!”
자판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고장 났나? 안즈는 버튼을 한 번 더 눌렀다.

“우으으으……!”
“음성 안내? 소리가 작은데…….”
“저, 저기요오…….”
“성우는 아사쿠라 아즈미인가? 아니면 하세 유리나?”
안즈는 자판기 스피커를 찾아봤다. 버튼 쪽? 아니면 동전 투입구? 지폐 투입구? 모두 다 깨끗하다. 딱히 음성이 흘러나올 만한 구멍은 없었다.

“개, 개 아직도 있나요?”
자세히 들어 보니 자판기 뒤에서 들린다. 자판기 뒤에 누가 밀기라도 한 것처럼 공간이 비어 있다. 사람 하나 정도는 아슬아슬하게 들어갈 정도로. 누구지? 자판기 회사 직원? 정비라도 하나?

“저기요……. 개……. 지금도 있어요?”
“갔어.”
“다, 다행이다아…….”
자판기 뒤에서 사람이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안즈와 비슷한 나잇대로 보이는(외모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잇대로) 소녀였다. 무대 의상을 차려입은 걸 보니 아이돌인가 보다. 그나저나 어디서 본 것 같이 낯이 익다. 어디서 봤더라…….

소녀는 불안한 얼굴로 울먹거리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개가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한시름 놓았다.

안즈는 자판기에서 홍차 캔을 뽑아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마실래?”
“아, 고마워.”
안즈는 콜라를 뽑고 자리에 앉았다. 소녀도 옆자리에 앉았다.

“참가자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아.”
안즈는 그때야 소녀를 알아봤다. 예전에 아이돌 얼티밋 관련 동영상을 찾아봤을 때 연관 동영상에 떴던 아이다.

“하기와라 유키호야.”
하기와라 유키호.
키사라기 치하야, 프로젝트 페어리와 같은 765 프로덕션 소속 아이돌.

“난 후타바 안즈. 개 싫어해?”
“으응, 개랑 남자가 무서워서…….”
“남자까지? 아이돌 활동하기 힘들 텐데 용케도 하네.”
“그게, 난 글러 먹은 나 자신을 바꾸고 싶어서 아이돌을 하고 있거든…….”
유키호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방어적, 소심 소극적 자세. 유키호는 불안에 떠는 햄스터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그래도 요즘에는 남자는 어느 정도 괜찮아졌어. 담당 프로듀서가 남자분이고…….”
“개는?”
유키호는 고개를 붕붕 가로저었다. 어찌나 세게 저었는지 세팅된 머리 모양이 다소 흐트러질 정도였다.

“삽을 가져올 걸 그랬어……. 그럼 구멍을 파서 숨을 수 있을 텐데…….”
삽? 대리석 바닥을? 유키호 나름의 농담인가? 디그 더그? 미스터 드릴러?
그런 거겠지……. 설마 진짜로 대리석 바닥을 뚫을 순 없을 테니까. 안즈는 머릿속에서 의문을 치웠다.

“자기를 바꾸고 싶어서 아이돌 활동을 하는 거라……. 대단하네.”
“별거 아니야. 난 아직도 글러 먹었는걸……. 주변에 정말 대단한 아이들도 많고……. 무대에 서는 것도 지금도 긴장되고…….”
안즈는 유키호를 힐끔 훑어보았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유키호한테서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진다. 주변의 대단한 사람들한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신세. 동질감은 여기에서 온다.

“안즈 쨩은 어때?”
“나?”
“아이돌이 된 목적이 있어?”
“굳이 말하자면……. 돈이려나……. 그리고, 안즈가 진짜로 뭘 하고 싶은지 알기 위해서. 이 두 가지네.”
안즈에게 있어 아이돌은 목적이 아닌 수단. 안즈는 아이돌이 되어서 무대에서 긴장, 압박감, 환호, 환희, 투지를 느꼈지만 그것들이 그냥 몸을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목적지가 없기에 머물 곳을 잃어 그냥 지나간다.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지만 확신이 안 선다.
이게 진짜 안즈가 걸어갈 길인지.

“그러니까 여기서 멈출 순 없어……. 좀 더 걸어야 해……. 귀찮지만.”
안즈는 작게 중얼거렸다. 유키호는 안즈가 중얼거린 걸 똑똑히 귀로 담았다. 그리곤
“여기서 멈출 수 없어. 좀 더 걸어야 해.”
안즈가 했던 것처럼 똑같이 중얼거렸다. 유키호는 조금 풀어진 투로 안즈에게 말했다.

“고마워, 안즈 쨩, 안즈 쨩 덕분에 기분이 나아졌어.”
어느새 유키호의 어깨가 떨리지 않게 되었다. 유키호는 쿡쿡 웃으면서 말했다.

“난 아직 글러 먹었지만 무대에 서면 도망칠 수 없게 돼. 무대에 서면 도망칠 곳이 없게 되거든. 그리고, 도망치고 싶지 않아.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 그걸 다시 확인했어.”
안즈는 지금 어떤 대답을 해야 하나 망설였다. 몇 가지 대답이 목구멍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그중에서 고르려고 했지만, 알맞은 대답이 보이지 않는다. 안즈는 콜라 한 모금으로 기어 올라온 대답을 전부 밀어냈다.

“강하네.”
탄산 섞인 숨과 함께 짧게 대답했다. 콜라의 탄산이 강했다. 그리고 유키호의 대답도 강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대답했다. 대충 생각하고, 대충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렇기에 가장 기분에 가까운 대답이었다. 안즈는 대답에 이어 이번에는 유키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저기 말이야, 아이돌이 목표가 아닌 사람이, 무대에 오르는 건 이상할까?”
“으음……. 글쎄, 이상한지는 모르겠지만…….”
유키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정말 당연한 것을 질문받은 양 의아한 투로.

“무대에 서는 사람은 아이돌일 테고……. 아이돌이 무대에 서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안즈는 콜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톡 쏘는 탄산이 혀를 어루만진다.

무대에 서는 사람은 아이돌, 그리고 아이돌이 무대에 서는 건 당연하다.
안즈는 지금 아이돌이다.

“으음, 역시 겪고 있는 상황이 다르니까 해답이 되질 않네…….”
안즈는 다 마신 캔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다. 캔이 깨끗한 궤적을 그리며 쓰레기통에 골인.

“미안해.”
“사과할 거 없어. 그래도 기분 풀기엔 충분하니까. 고마워. 유키호 쨩.”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다. 어라, 근데 지금 시간이……. 아앗! 오, 올라가야 해!”
유키호는 핸드폰 시계를 살펴보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미, 미안해! 안즈 쨩! 지금 올라가야 해서! 가볼게! 으으으……. 난 정말 글러 먹었어! 우으으……. 기, 기다려주세요! 지금 나가요오!”
유키호는 허겁지겁 휴게실을 나갔다.

안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털었다. 볼일은 다 봤다. 기분도 풀어졌으니, 이제 대기실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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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10일에 올렸어야 하는 걸 이제야 올리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다이바 페스티벌이 이 글에서 나름 중요한 파트라서 압박감 때문에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손을 놓고 있다가 어디까지나 이 글의 목표는 완주이므로 압박감에 짓눌릴 바에야 그냥 되는 대로 써버리자고 결정하곤 그냥 막 쓰기로 했습니다.
아무것도 못 쓰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다음 화는 5월 20일에 올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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