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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히기 전부터 꽃봉오리가 품고 있던 것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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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11, 2016 00:22에 작성됨.

* [프로듀서의 P는 퍼스널리티의 P] 에 등장하는 프로듀서가 등장합니다. 

* P의 구체적인 프로필이 궁금하시다면 상기한 프로듀서~ 어쩌구를 먼저 읽으시면 이해하기 편합니다.

* 사실 이것만 읽어도 별 상관 없습니다.

* 글쓴이 주관의 개똥철학이 들어가 있습니다. 마음껏 비웃으셔도 됩니다.

 

 

인생은 오르막길과 같다.

쉴 새 없이 오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한 번은 뒤를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인생이, 자연이 파 놓은 함정. 높은 곳을 지향하는 자에게 내려치는 철퇴.

모든 사람에게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낮은 곳에서 출발한 자는 올라가는 과정에서 그것을 극복할 용기를 갖게 되지만, 높은 곳에서 시작한 ‘천재(Gifted)’이기에, 자신이 얼마나 높이 있는지를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얼마나 높은 곳에서 출발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격차는, 무심결에 뒤를 돌아보았을 때, ‘공포’라는 감각으로 나타나게 된다.

‘만약에 내가 잘못해서 떨어지면, 어떻게 되지?’

처음으로 앞길이 막혔을 때, 그래서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을 때, 자신이 지나온 길의 높이를 그제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낮은 곳에서 올라간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무얼,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면 되지. 한 번 했는데 두 번이라고 못할까.

 

 

 

**********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노래를 부르는 본인은, 평소의 여유 따윈 찾을 수 없는 무언가에 짓눌리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음정에 쫒기고, 가사에 짓눌리는 것처럼 보인다.

노래가사는 희망을 부르지만, 가수는 안개 속을 헤매고 있다.

방음유리의 건너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노래를 쥐어 짜내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오른쪽 팔꿈치와 왼쪽 어깨가 아릿하게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다 아물었다고 생각했던 치기 어린 시절의 흉터가 마치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듯 떠올랐다.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간 이카루스가 어떻게 되었더라?

 

 

방음유리로 된 문을 열고 녹음실 안으로 들어간다.

“수고했다.”

땀에 범벅이 된 채, 거칠게 호흡을 몰아 쉬는 그녀에게 수건과 드링크를 건네었다. 흥건하게 흘러내린 땀을 닦아내고 드링크를 쭉쭉 빨아먹은 그녀는 푸핫,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뒤따라 들어온 디렉터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치노세 양, 오늘 컨디션 별로야?”

“그…….”

“죄송합니다.”

무언가 말하려는 그녀를 눈빛으로 제지하고, 나는 돌아서서 그녀 대신 디렉터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오늘은 페이스가 안 올라오는 모양이라……조금 더 가다듬어서 다음 번에는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치노세, 인사드려.”

“저……오늘의 수록, 시간을 끌어서 죄송했어요. 다음부터는 조금 더 잘 할게요……가 아니라, 부를 수 있도록, 하겠어!”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정수리를 꽁, 하고 내리쳤다.

“흐갹!?”

“말버릇이 그게 뭐야.”

“하하하, 괜찮아, 괜찮아. 컨디션은 멀쩡한 듯 하구만. 그럼, 오늘은 이 정도에서 그만하지.”

나는 호쾌하게 웃는 디렉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오늘은 고생했으니 이만 조심해서 들어가요. 컨디션 관리 잘 해주고. 뭐, 자네라면 아무 걱정 없지만.”

“네, 그럼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시키를 먼저 밖으로 내보내고, 남은 스태프들에게 거듭 인사를 한 뒤 나는 무거운 방음문을 닫으며 복도로 나왔다. 다소 서늘한 공기가 맴도는 복도에 설치된 자판기로 향한다.

“인사, 끝났어?”

그녀는 복도의 한 켠에 설치된 자판기 옆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자판기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흰색 가운 아래에 아무거나 되는 대로 걸치거나 교복 비슷한 차림새로 돌아다니던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오프숄더 스타일의 니트라는, 나름대로 갖춰 입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래, 끝났다.”

가까이 다가가면 슬며시 이쪽을 올려다본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힘없이 웃으며 지친 기색이 역력한 주제에 히죽거리면서 내게 달라붙어 왔다.

“다른 사람 본다, 떨어져.”

“지쳐있을 땐~ 너의 냄새지요~.”

“주간지에 얼굴 실리기 싫으면 떨어지세요.”

“후히힛.”

얼굴뿐만 아니라 차츰 문질러져 오는 면적이 넓어졌기에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정수리를 꾹 눌렀다. 으겍, 소리를 내며 주르륵 미끄러져나가는 그녀의 두 팔을 붙잡고, 만세를 하듯 벌떡 일으켜 세운다.

“높다~높다~!”

“그거 아냐. 자, 돌아가자.”

“……네.”

 

 

시간이 꽤나 초과된 것인지, 스튜디오 밖으로 나올 무렵엔 이미 노을이 세상을 온통 불태우고 있었다. 이따금씩 빌딩 외벽의 유리창에 반사되는 노을 빛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 어땠어?”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작게 질문이 날아왔다. 아마도 정지 신호가 아니었으면 듣지 못했을 정도로 조그마한 질문. 나는 정지 신호를 틈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았다. 조수석에 앉은 그녀는 턱을 괸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좋았어.”

“그래?”

정지신호가 끝나고 다시 녹색 불이 켜졌다. 조용히 몸을 짓누르는 가속도를 느끼면서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나머지 답안을 제시했다.

“그래도 최고는 아니었지.”

“역시 당신다운 대답이야. 응, 좋지만 최고는 아니다. 후후.”

아무래도 만족스런 답변인 듯, 조수석에서 꼼지락거리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마치 속삭이듯,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아니, 프로듀서……오늘은 미안했어.”

“뭐가?”

“솔직히, 내가 가진 역량으로는 이 정도밖에 할 수 없어서…….”

“흐음.”

“꽃의 노래……식물학 쪽이라면 자신 있었으니까, 충분히 이해했다. 라고 생각했는데.”

다시 정지 신호. 나는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고개를 돌려 조수석을 바라보았다. 시키는 여전히 턱을 괴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의 뒤통수를 향해 나는 말을 걸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 없으니까. 노래라는 건 그런 거야.”

“그런 걸까……?”

여전히 자신 없는 대답을 흘리면서 시키는 턱에서 손을 풀고 나를 바라본다. 흔들리는 담청색의 눈동자에는 안경에 반사된 노을빛이 어렴풋이 비쳤다.

“역시, 천하의 시키님이라 해도, 마냥 놀고만 있을 상황은 아닌 걸까……이번에야말로, 라는 느낌이지만.”

“하하하, 너도 거짓말이 늘었네.”

“왜 웃는 거야?”

“그야 웃기지.”

파란 불이 들어온 것을 곁눈질로 확인하고, 기어를 다시 주행으로 내리면서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놀면서 했었어? 아이돌.”

“…….”

“적어도 나한테는 놀면서 하는 거론 안 보이던데.”

“흐흥, 뭐 적당적당히 하는 거랑 노는 거랑은 좀 다른 거니까.”

“그래그래, 고생했다.”라고 말하며, 나는 왼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나는 할 수 있는 아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든 하는 게 지니어스’……라고 했었지? 아까 두 번째 리테이크때.”

“들었구나.”

“나도 귀는 있으니까.”

“응…….”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넌 나나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진짜 천재니까.”

“너는 예외인 것 같은데…….”

“응? 방금 뭐라고 했어?”

“아, 아니, 아무것도.”

백미러를 보면서 조심스레 방향을 전환했다. 저 멀리, 회사 본관의 커다란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노을을 마주볼 일은 없다고 판단한 나는 내렸던 햇빛가리개를 다시 위로 올렸다.

“이치노세.”

“응?”

“너는 분명히 천재고 똑똑한 아이지만, 지금은 그냥 아이돌이야. 지금은 유닛 활동을 하고 있는.”

“그렇지. 그런데 그게 왜?”

“아니, 뭐. 그냥 알아만 두라고. 그 사실을 잊지 말고, 일을 할 땐 언제나 염두에 둬.”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입을 다물고 운전에 집중했다. 시키 또한 내가 더 이상 말 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다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녀왔습니다.”

“다녀왔엉~?”

사무실에 도착하자, 퇴근 준비를 마친 치히로가 우리를 반겼다.

“아, 이제 오세요? 오래 걸렸네요.”

“네. 센카와 씨는 오늘도 정시퇴근입니까?”

내 질문에 그녀는 자랑스러운 듯 가슴을 펴면서 콧방귀를 뀐다.

“네~저는 유능하니까요! 프로듀서 씨는요?”

“뭐, 저는…….”

‘아직 잔업이 남아서.’라고 말하려고 할 때, 내 뒤에 서 있던 시키가 작게 옷깃을 당겼다. 그녀답지 않은 소심한 리액션에 나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손을 뒤로 뻗어 시키의 머리에 손을 살짝 얹었다.

“이치노세가 연습하는 것 좀 봐주고 갈게요. 아무래도 영 불안해서.”

대답을 망설인 것이 의아했는지 치히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쓸데없는 짓 하시면 안 돼요? 가령 혈기에 못 이겨서…….”

“아무리 그래도 띠 동갑인데, 제정신이라면 손 안 댑니다.”

등 뒤에서 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녀석, 배라도 아픈건가…….’

“아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그럼 저 먼저 들어가보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타임카드를 찍고, 치히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업무용 휴대전화를 꺼내 ‘오늘 일정 끝나면 각자 귀가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메일을 작성해, 일정이 있는 인원들에게 발송한다. 발송 확인 표시를 확인하고, 휴대전화를 다시 가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사무실의 입구에 걸려 있는 상태표의 내 표시를 ‘연습실’로 옮겨두고, 불을 끈 뒤 사무실의 문을 잠갔다.

“자, 연습실 가자.”

“에에~진짜로 가는 거야?”

“그럼. 내가 빈말로 연습얘기 꺼내는 거 봤어?”

“아아, 그치마아아안~!”

“시끄러워, 얼른 따라오기나 해.”

나는 우물쭈물하는 시키의 손목을 잡고, 성큼성큼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지하에 위치한 보컬 트레이닝 룸은 스튜디오와 달리 방음실 같은 것은 없지만, 트레이닝 룸 자체가 방음설비가 되어 있기에 노래를 부르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커다란 음향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시키를 제외한 4명의 목소리가 녹음된 반주에 맞추어 시키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노래의 제목은 ‘꽃봉오리’.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너’와 함께 있음으로써 드디어 한 송이의 꽃으로 거듭나는 희망적인 가사를 담은 노래다. 하지만.

‘무겁군. 페이스가 안 올라와…….’

단 한번,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완주했을 뿐인데도 시키는 마치 메들리라도 부른 것 마냥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체력도 꽤나 소모한 모양인지 호흡도 크게 망가져 있었다. 나는 기계를 정지시키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시키에게 수건을 내밀었다.

“어깨에 왜 그렇게 힘이 들어가 있어? 곡의 분위기는 잘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그, 그렇긴 한데…….”

“꽃밭을 걷는 노래인데 너는 왜 뉴욕 한 가운데를 걷고 있는거야?”

“꽃밭, 꽃밭……그래, 한 번만 더……!”

리테이크를 요청하는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여기까지만 하자. 낮부터 이것만 했으니까, 너 슬슬 목도 한계야. 자, 이거 마시고 숨이라도 좀 골라.”

“으, 응……고마워……요.”

“힘들면 앉아도 돼.”

“으응, 앉으면 못 일어날 것 같아서.”

“내가 일으켜 줄게. 힘들면 앉아.”

그러자 시키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담청색 눈동자가, 이제는 안경을 끼고 있지 않은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하는 순간. 벌써 두 번째로, 양쪽 팔에서 이미 사라졌을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서.”

갑갑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다소 단호한, 꾸짖는 어조로 말이 나왔다. 그러자, 그녀는 크게 움찔하더니 조심스레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딘가 모르게 내 눈치를 살피는 듯한 모양새였다.

나는 쪼그려 앉아 시키를 바라보았다.

“이치노세.”

“ㄴ, 네. 아니, 응?”

“……너 괜찮아?”

눈을 마주치자 그녀답지 않게 내 시선을 피한다. 여기서 나는 이 아이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괜찮……은가? 냐하하, 잘 모르겠네……뒤죽박죽이냥.”

“……소리쳐서 미안해. 세워줄까?”

“응, 부탁할게.”

나는 일어서서 시키에게 손을 내밀었다. 머뭇거리면서도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밖에 나가서 잠깐 바람 좀 쐬자. 땀도 좀 식힐 겸. 그리고 집에 데려다 줄게.”

“네엥…….”

 

 

카페나 여가시설이 내부에 밀집된 제2별관과는 반대로, 우리 아이돌 부서가 있는 제1별관에는 별관 외곽과 본관 외곽을 함께 둘러싸는 작은 공원이 있다. 야근이 잦은 업종의 특징상, 직원의 복지에는 꽤나 신경을 쓰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 공원 한 켠에 마련된 작은 광장에서, 시키와 나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 오르는 종이컵을 들고 궁상맞게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저기, 너……아니, 프로듀서.”

“왜.”

“’꽃봉오리’는 희망을 노래하는 노래잖아? ‘너’와 함께 나아갈 빛나는 미래.”

“그렇지.”

“희망이란 뭘까?”

얘가 또 무슨 소릴 하나 싶었던 나는 대답하는 것도 잊고 고개를 돌려 시키를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고개를 들어 이 쪽을 바라보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벌써 세 번째 같은 눈빛. 욱씬, 하고 아까보다 조금 더 강한 통증이 올라와, 하마터면 컵을 떨어뜨릴 뻔 했다.

“나는, 모르겠어. 희망이란 게 뭔지.”

“흠. 희망이라. 어려운 질문이네.”

“그렇지? 냐하하……나 자신이 희망이라고, 마마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렇게 말하는 시키의 목소리가 흔들리면서 가라앉았다. 마치 바다 속에 잠겨드는 것처럼. 더는 방관할 수 없겠다고 판단한 나는, 생각했던 답변을 내놓았다.

“나한테 있어서는, 너희들이려나.”

“흐냥?”

“너희들이 있기에, 나는 몇 번을 넘어져도 일어설 수 있어. 어디까지고 비굴해질 수 있고, 비참해질 수 있지. 그러니까, 너희들이 내게 있어서는 희망이 되지 않을까.”

“냐하하, 뭐야 그게!”

한참을 웃어젖히던 시키는 시계의 초침이 두 번 정도 회전했을 때가 되어서야 웃음을 멈추었다.

“야, 너무 웃는 거 아냐?”

“냐하항, 그래도 웃긴걸 어쩌겠어. 완전히 그거잖아, 삼류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 마인드.”

“너무 돌직구라서 가슴이 아픈데.”

“그렇구나. 당신도, 희망이란 게 있었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서 있을 수는 없지. 그럼 이번에는 내가 물어볼 차례군.”

내 말에, 시키는 숨을 삼키면서 이 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돌……이 아니라, 천재소녀 이치노세 시키에게 묻겠어. 지금 너는 뭐가 두려운거야?”

“……그건, ‘선배’로서 하는 말이냥?”

“아니, 프로듀서로써 하는 말인데.”

시키는 몇 번인가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모르겠어.”

“그럼, 아이돌인 이치노세 시키로써는?”

“으음……아마도, 지금 내 상태이려냥.”

“지금?”

“경계가 흐릿해졌어. 어디까지가 시키냥이고 어디까지가 시키인지.”

“원인은, 역시 노래 때문?”

“……모르겠어 그래서 불안하다냥”

나는 폐부에 쌓인 공기를 뱉으며 턱을 문질렀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히 저번 레코딩에는 제대로 불렀던 것 같은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허리를 풀었다.

“으으으, 복잡하네!”

그리고 정적이 흘렀다. 서로 차를 홀짝이는 소리만 번갈아 들려올 뿐. 그 정적을 깬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내 쪽이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했던 이야기, 기억해?”

“으음~잠시만, 요까지 올라왔냥……아, 기억났어, 기억났어. 유닛 어쩌구 하던 그거지?”

“아니 그거 말고 더 전에 했던 말.”

“으으음~아, 노래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라는 말?”

“그래, 잘 기억했네. 이따가 집에 들어가거든, 그 말의 의미를 한번 잘 생각해 봐. 그리고 가사도 한번 잘 곱씹어 보고.”

“응? 그 말에 숨은 뜻이 있었냥?”

나는 시키가 들고 있던 종이컵을 받아 내 것과 겹친 뒤 적당히 접어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지. 가자, 집까지 바래다 줄게.”

“차 태워줄 거야?”

“그래. 너 지금 걸을 상황이 안 되니까.”

“야호-!”

 

시키의 집 앞에서, 그녀가 내리기 직전에, 나는 정면을 주시한 채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이치노세.”

“넹~?”

“내일 하루, 오프로 돌려 놓을 테니까 모레는 머릿속을 비우고 와. 알겠지?”

“응. 고마워.”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나는 운전석 뒤에 챙겨놓은 가방 속에서 책 하나를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

“이건……시집?”

“꽃에 관련된 시를 모아놓은 거야. 이미지를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고마워. 늘 도움만 받네.”

“이게 내 일이니까.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고. 내일 푹 쉬고.”

“응.”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알겠지?”

“알았어. 너……아니, 프로듀서도, 오늘 수고했어.”

나는 그녀에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총총거리는 발걸음으로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차를 돌려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오늘 하루는 시키를 상대하느라 소모했으니 퇴근은 얌전히 포기하자.

 

 

“으음, 눈 아프다.”

나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의자를 빙글, 돌려 창 밖으로 펼쳐지는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시간은 새벽 한시를 막 넘어간 참. 스태미나 드링크 덕분에 피곤하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 남은 것 때문에 쉽사리 일의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경계가 흐릿해졌어. 어디까지가 시키냥이고, 어디까지가 시키인지.

 

“으음…….”

어째서인지 계속 왼쪽 어깨가 뻐근했다. 자신의 존재를 내게 각인시키려는 듯.

 

그 통증에 불현듯 떠올랐다.

눈 앞에 마주친 벽을 그저 벽이라 인식하고, 그것을 넘는 데 모든 것을 바쳤던 한 청년의 모습이.

청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 벽을 넘었을 때, 벽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앞을 막는 벽이 아니라, 언덕 바깥의 절벽으로 나가떨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방호벽이었다는 사실을.

청년은 추락했다.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넘었던 절벽은 그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갔다. 오른쪽 팔과 왼쪽 어깨. 정점에서 모든 이의 우러름을 받던 청년은, 그렇게 단 몇 줄의 기록만을 남겨두고 정점에서 스스로 사라졌다.

“희망이라.”

나는 생각했다.

그저 숨만 쉬는, 살아가기만 할 뿐이던 청년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청년은 무엇을 보았기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다시 한번 꿈을 꿀 수 있게 했을까?

어릴 적 꾸었던, 신데렐라를 이끄는 마법사의 모습. 작게나마 가슴 속에 남아있던 그 꿈이 그의 희망이었다. 만신창이로 떨어진 절벽 아래에서, 청년은 희망이라는 한 줄기 밧줄에 의지해서 간신히 그 절벽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치노세 시키는 천재이기에 실패를 모른다. 실패를 모르기에, 넘어졌을 때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방법을 모른다.

살아오면서 겪었던 대부분의 상황이 자신의 계산 하에 존재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신경 쓸 필요조차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이돌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녀가 이따금씩 마주한 것들은 자신들의 계산은 무위로 돌려버리는, 혹은 그것을 아득히 초월하는 상황들. 그렇기에 그녀는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그것을 앞에 두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마치 자전거를 처음 타는 아이처럼,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넘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지? 일어서면 된다.

일어서도 다시 넘어질 거라면, 왜 일어서지? 언젠가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일어선다.

저런 의식의 흐름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이 쪽에서 무작정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저 사실은 어디까지나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치노세 시키라는 아이를. 아니, 아이돌을 믿고 그녀에게 '꽃봉오리'를 맡겼다.

'등은 열심히 밀어주겠다만……나머지는 자기가 하기 나름이겠지.'

나는 노래의 배정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티스트가 아니기에, 아이돌에게 있어 노래는 화장품과 같이 자신을 빛나게 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노래에 집어 삼켜져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치노세 시키라는 개인의 모호한 점을 확실하게 확립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분위기의 노래도 언젠가 한 번은 접해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일부러 시키를 유닛에 포함시킨 것도, 홀몸으로만 살아온 그녀에게 ‘동료와 함께 발 맞추어 나아간다’라는 것의 의미를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뭐……그 쪽은 내 생각이랑은 좀 다르게 돌아가고 있지만…….’

책상 한 켠에 붙은 스케줄을 보았다. 슈코, 유미, 카에데, 미쿠, 모두 제각각의 일정으로 바쁘게 채워져 있었다. 이 대로라면 라이브 직전에나 한 번, 서로의 호흡을 겨우 맞춰볼 수 있을 수준이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태연히 반짝거리는 밤하늘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크게 기지개를 펴고는 다시 업무로 돌아갔다. 밀린 일을 처리하는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제2, 제3의 플랜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파기되기를 반복했다.

 

 

 

***********

 

[꽃봉오리] 이치노세 시키SR을 특훈시키던 도중 팍! 하고 꽂혀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앞길이 막막합니다.

쓸 때는 양이 꽤 되었던 것 같은데 쓰고나서 보니 짧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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