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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치바나 아리스의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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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5-01, 2016 17:58에 작성됨.

졸업식. 

타치바나 아리스에게 졸업식이란 단어는, 약간은 두근거리고, 약간은 떨리고, 약간은 걱정되는, 그런 단어였다. 초등학교가 끝나고, 중학교로 올라가는, 사복을 벗고 교복을 입게 되는 그런 통과의례. 머릿속으로는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도, 어쨌든 아리스에게 졸업식이란 특별해야할 무언가였다.

....그 특별해야할 무언가를 망치고 있는 누군가가, 아니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아리스는 학부모 좌석에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아리스의 마음도 모르고, 학부모 대기석에 앉아있는 누군가는 다시 한번 손을 흔들었다.

아리스는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렸다. 손에 쥔 답사가 살짝 구겨지고 있었다. 아리스의 눈 구석에서, 그 누군가가 대놓고 실망한 표정을 연기하며 옆 사람이랑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근처로 다가가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듣고 싶었지만... 답사를 하는 졸업생이 학부모 좌석에 난입했다가는 아마 상당히 독특한 졸업식이 될 테니 아리스는 한숨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

 

아리스는 다시 연단 앞쪽을 바라보았다. 교장 선생님의 연설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리스는 어느 정도 연설을 흘려 들으면서, 옆을 바라보았다.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졸업식을 구경할 수 있도록 조금 더 높게 만들어진 그 곳에는, 알고 있는 얼굴 여럿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아리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다들 할 일이 태산인 사람들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귀중한 휴일인 ,쉬어야 할 사람들인데 왜 여기 와 있는 건지...

아리스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노려보았다. 이 사건의 시작은 저기 저 사람, 녹색 머리를 가진 사람이 일으킨 것이었다. 모든 사건의 발단은, 아리스가 학교에서 집을 들리지 않고 바로 346프로덕션으로 갔을 때에 발생했다. 보통 때라면 집을 들려서 가방을 놓고 갔겠지만... 하필이면 그날은 레슨이 일찍 예정되어 있었고, 하필이면 그 날 가방을 허겁지겁 놓고 가는 충격에 가방의 후크가 느슨해져 있었고, 하필이면 카에데 씨가 그날 일이 없었다는 것, 3개의 우연이 겹친 결과는 참담했다. 아리스가 댄스 레슨으로 계절에 맞지 않은 땀을 살짝 흘리면서 프로덕션으로 돌아오자, 아리스의 졸업식 공고문 옆에는 이미 프로덕션의 4명이 달라붙어서 일정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리스는 당연히 결사반대했으나...

 

“하지만, 아리스, 졸업식에는 혼자 아니니?”

“그, 그렇긴 하지만!”

 

분명 그랬긴 했다. 부모님은 바빴고, 졸업식에는 참석하기 힘들 것이라고는 했지만, 그리고 그 때의 카에데 씨는 정말 어른 여성 같았지만!... 거기에 힘을 보탠 것이, 옆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후미카 씨였다. 아리스는, 그 때 잠시 눈을 비볐다. 후미카 씨가 남이 먼저 흔들어서 깨우는 일 없이, 책에서 눈을 떼는 상황은, 적어도 아리스가 보기에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럼, 저도... 동행할까요?”

“후미카 언니?!”

 

몇 달 전에 언니라고 부르셔도 된다고 말했던 후미카였지만, 설마 후미카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설 줄을 몰랐던 아리스는 자기도 모르는 틈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후미카 뒤쪽에서 두 명의 고개가 쏙 하고 튀어올랐다. 

 

“그럼, 우리도 참석해도 되는 거지?”

“아, 심심했으니까 잘 됬네.”

 

한쪽은 회색에 가까운 백금발의 머리, 한 쪽은 노란색에 가까운 밝은 금발의 머리. 성격조차 정 반대. 하지만, 두 명의 공통점이 있다면, 아리스의 머리를 아프게 아는 것에는 도가 텄다는 점이었다.

 

“가도 되지? 아리스짱?”

“타치바나입니다!”

“뭐, 나도 가 볼까, 안 그래도 그날은 일정이 없고.”

그렇게 아리스의 졸업식은, 346프로의 달력에 크게 붉은 동그라미가 쳐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리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모노톤의 교장선생님의 말소리도, 내용을 봐서는 점점 끝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리스는 손에 쥔 답사 원고를 꼭 쥐었다. 

 

“열심히 하네, 아리스짱.”

“의외로 기뻐하고 있는 것 같고.”

“나 때문일까나아?”

‘그건 아닐 듯 합니다만.’

 

후미카는 아리스가 연단에 올라가자, 조용히 읽던 책을 덮고, 눈을 연단에 향했다. 후미카 자신과 달리, 같이 온 3명은 벌써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이돌이라는 자각은 전부 갖추고 있었는지, 사무소 내에서의 나사 빠진 모습은 보여주지 않고 적당히 접대하고 있었다. 카에데 씨는, 조용히 웃으면서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주변 어머님들과의 대화를 이루고 있었고, 슈코와 프레데리카는 각각 비슷한 나이대인 듯한, 졸업생의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벌써 그룹 비스무레한 것을 만들고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좋지만요...’

 

하지만, 여기에서는 아리스를 지켜보자. 자신에게는 없는, 자신과 닮았지만 어딘가는 다른 똑소리나는 소녀가 한 발짝을 내딛는 것을. 아리스의 목소리는 평소의 하던 보컬 레슨의 탓인지, 아니면 아리스의 성격인지는 몰라도 큰 강당을 또랑또랑하게 울리고 있었다.

 

“...저희는 이곳을 떠나고자 합니다...”

 

후미카는 살짝,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며 미소를 지었다. 후미카의 기억은, 아리스가 저 답사를 쓰던 며칠 전으로 돌아갔다. 후미카가 레슨을 끝내고 돌아와 문을 열자, 큰 책상 위에 사전과 흰 종이, 그리고 접시 하나를 펼쳐둔 아리스가 눈에 보였다.

 

“...뭐 하니? 아리스 짱?”

“아, 후미카 언니...”

 

아리스는 샤프펜슬로 무엇인가를 쓰던 종이에서 고개를 들고, 후미카를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같은 행동을 반복했는지, 무언가가 적혀 있다 지우개로 지워진 종이가 아리스 옆에 작은 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졸업식에 쓸 답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답사?”

 

후미카는 살짝 말문이 막혔다. 답사, 랄까 앞에 나서서 하는 그런 행동들과 후미카의 성향은 상당히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졸업식의 기억 역시, 졸업장을 받은 후 집에 가서 일찍 끝난 졸업식에 감사하며 조용히 책 속에 파묻힌 것이 다였다. 

 

“에, 하지만...”

“잘 안 된다고?”

“네, 잘 안 되네요.”

 

후미카는 밑을 흘끗 내려다보았다. 흰 종이는, 절반도 채 채워지지 못한 채, 단어만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후미카는 살짝 손가락을 내려서 빈 종이의 한 곳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결별, 이라고 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

“결별, 이요?”

아리스는 아이패드의 버튼을 눌렀다. 아까까지 한자를 찾고 있었던 듯, 아이패드의 화면에는 이미 한자사전의 페이지가 떠 있었다. 후미카는 글자를 차례차례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건...안 익숙하네요.”

“후미카 언니는 종이사전이 더 좋으신가요?”

“네, 저는 지금까지 계속 종이로 써 왔으니깐요...”

 

익숙하지 않은 한자에 고민하듯, 아리스는 한 획씩 한자를 적어나갔다. 후미카는 조용히 한 줄씩 아리스의 문자를 짚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치고는 깔끔하고, 세련된 글자체였다. 하지만...

 

“그 한자, 우방변에 붙이는 것이 살짝 잘못됬어요.”

 

역시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인지, 이곳저곳에서 실수가 나오고 있었다. 아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의식적으로 옆에 손을 뻗었다. 접시의 크기를 봐서, 상당히 많았을 딸기 과자는 이제 분홍색 부스러기밖에 남지 않았다.

 

“앗...”

 

아리스가 허공만 짚는 손에 이상함을 느껴 고개를 돌리자, 이미 과자접시에는 부스러기밖에없었다. 아리스는 고개를 다시 돌렸다. 이제는, 접시의 흰 바닥만큼이나 하얀 종이가, 아리스의 눈 앞에 들어왔다. 아리스의 표정이 점점 안좋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아리스 씨...아리스.”

 

후미카는 말을 고쳤다. 몇 달 전에 언니라고 불러달라고 하자, 아리스는 이제 경칭을 떼고 불러달라고 하는, 그런 말을 해 왔었다. 후미카는 품에서 작은 봉투 하나를 꺼냈다.

 

“아리스 짱”

 

투명한 봉투 안에서 비치는 작은 분홍색에, 아리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오늘은, 이걸로 끝이에요?”

“하, 하지만! 당분은 머리에 좋다고도 하고!...”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미 충분하다고요?”

“우으으...”

 

아리스는 한동안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어쩔 수 없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미카는, 살짝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 의자를 하나 빼 와서 아리스 옆에 앉았다. 후미카는 고개를 돌렸다.

 

“자, 그 대신이라기에는 뭣 하지만 제가 도와드릴께요.”

“네, 감사합니다. 후미카 언니.”

 

후미카도 답사를 써 본 적은 없었지만, 그럭저럭 한 시간정도가 지나자, 희었던 종이는 검은 글자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후미카는, 지친 표정을 하고 있는 아리스 앞으로 찻잔을 놓았다. 

 

“중학교에 들어간걸 축하드려요 아리스, 고생 많으셨어요. 학교 결과는 나왔던가요?”

 

아리스는 사립이 아닌 공립 중학교를 선택했었다. 하지만, 공립도 공립 나름. 후미카는 몇 개월 전까지 사무소에서도 책을 펼치고 있는 아리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찻잔을 입에 댔다.

 

“네, 무난하게 합격했어요.”

“아, 사무소와 가깝나요?”

“아니요.”

 

아리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초등학교보다는 조금 멀 것 같아요, 전철 세 개 역 정도 더 가야 하니깐요. 거기다 시간표도 늘어나니...”

“아, 그래도 사무소에는 자주 올 거에요! 아마요.”

 

아리스는 억지로 표정을 밝게 했다. 

 

“...아리스의 학교에서, 그 중학교를 간 학생이 얼마 정도 되나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아리스는 고개를 숙였다. 후미카는 아리스를 바라보았다. 후미카는, 조용히 손을 뻗어 아리스의 손을 잡았다. 후미카는 아리스를 생각했다. 타치바나 아리스, 보통 때의 학생들보다 훨씬 조숙한 이 소녀는, 몇 년간의 시간을 거쳐 후미카의 동생 비스무리한 위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후미카는 아리스를 알고 있었다. 이름에 콤플렉스가 있어 타치바나라고 불러달라고 하고, 항상 살짝 화난 표정을 짓고 있고, 목소리가 또박또박하고, 끝은 단호하고,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쁘고, 마음은 소녀답고, 딸기와 단 걸 정말 좋아하고, 자기의 동생같은 소녀에게 후미카 자신의 마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손을 꼭 잡았다.

 

“아리스, 걱정 마세요.”

“가면, 또 다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리고, 아리스, 잊지 마세요.”

 

후미카는, 조용히, 이럴 때만은 작은 자신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나와주길. 이 말 한 마디씩이 아리스의 귀에 확실히 남길 바라며, 한 마디씩 말했다.

 

“우리는, 항상, 여기에, 있어요”

 

“아리스 짱! 여기야!”

 

모든 식전이 끝나자, 강당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앉아있던 학생들과, 기다리던 학부모들은 맞이하는 졸업식에 감정으로 가득차서 서로를 찾고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었다. 아리스는 한 손에 졸업장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애초에 졸업식을 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들리지는 않겠지만, 아리스는 조용히 나올 뻔한 말을 입 속에서 삼켰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둘러본다기 보다는 멀리서 떨어져서 보고 있었다. 카에데는 이미 그 이름이 알려진 아이돌. 슈코와 프레데리카 역시 카에데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었기에, 그 셋이 모인 장소는 이미 사람들로 바글바글 넘쳐나고 있었다. 

 

“아리스 짱 부모님 대신 온 거랍니다?”

“아, 사인은 지금은 조금...나중에 해드릴께요?”

 

그 와중에 후미카는 셋 사이에 감싸여, 우물쭈물하는 것 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리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대로라면 아는 체 하지 말고 사무소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리스! 여기야! 여기!”

 

저기서 대 놓고 소리지르는 금발머리 모 아이돌 때문에, 아리스의 탈출시도는 그저 꿈으로만 남게 되었다. 아니, 애초에 후미카 언니가 뒤쪽에 떨고 있는 시점에서 아리스의 탈출경로는 막혀 있다고 봐도 상관없었다.

 

“타치바나입니다! 이것, 의외로 민폐인게 아닌가 하는데요!”

“에이, 이것도 영업이라고. 카에데 씨 안 보여?”

“하아, 일단 빨리 나가기나 하죠.”

“아, 잠깐만.”

 

프레데리카와 슈코는, 조용히 손을 흔들었다.

 

“아리스. 졸업, 축하드려요.”

 

후미카가, 조용히 꽃다발이랑 읽던 책 한 권을, 아리스에게 내밀었다.

 

“앞으로, 중학교에서도 좋은 인연, 좋은 시간 되길 바래요.”

 

아리스가 가장 좋아하는 색인 딸기에 맞춰서, 분홍색과 붉은색, 그리고 하얀색으로 멋낸 꽃다발. 아리스는 그 꽃다발과 책을 받아들었다. 입 한 가운데에서, 평소의 아리스에게는 보이지 않던 웃음이, 차례차례 번저나가, 아리스의 모든 얼굴을 밝게,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조명이라도 받는 것처럼 환하게 물들였다.

 

“감사합니다! 후미카 언니!”

 

타치바나 아리스의 졸업식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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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은 2년째인데 글은 처음이네요....

아리스 시리즈 1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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