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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바다와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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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14, 2016 01:57에 작성됨.

 

 

촬영장 바깥. 스포트라이트의 빛이 닿지 않는 장소는 마치 어릴 적 보았던 무서운 밤바다를 떠올리게 해서, ‘모델’의 가면을 쓰고 있다가도 이따금씩 그것을 의식하는 나를 위축시킵니다. 온갖 괴담과 전설, 비보(悲報)가 떠도는 바다. 모든 것을 흔적도 없이 집어삼켜 모두가 두려워하던 그 검은 바다. 저 어둠에, 밤바다에 잠겨 들면 어디로 사라지게 되는 걸까요?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이 찾아온 공포와는 또 다른 무언가를 피해, 저는 촬영장의 쏟아지는 빛 속에 있으면서도 가면의 뒤에 숨어 지내는 나날이 계속 됐습니다.

그 때 만난 그 사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돌이켜보면 제가 두려워하는 실내 촬영 때는 항상 그 사람이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스포트라이트의 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안경은, 밤바다에서 길을 밝히는 불빛, 마치 등대처럼 내 앞길을 비추었습니다.

그의 모습을 본 다음부터는 이상하게 바깥의 어둠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아니, 적어도 촬영장에 그를 발견한 그 때만큼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밤바다에 홀로 남겨지더라도 저 빛을 따라가면 반드시 육지가 나타날 것이므로.

 

훗날 이 이야기를 그에게 한다면, 그 때 그 사람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겠죠.

“그건 등대가 아니라 마법사의 요술봉”이라고.

 

 

아직은 추운 2월의 어느 날.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이것이 우리들의 첫 만남이었을 겁니다.

 

 

********

 

 

매니저에게 지난 촬영한 사진이 수록된 잡지를 받았습니다.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왠지 모르게 위축되어가는 자신이 보입니다. 냉정하게, 지금까지 해 온 ‘직업’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아무런 이상이 없지만, ‘여자’의 눈으로 보면 그것이 어렴풋이 보여요.

‘구체적으로 꼽아보자면 자신감이라는 녀석일까?’

절반쯤 넘긴 잡지를 다시 덮어 탁자 위에 올려놓고, 침대에 올라가 무릎을 세워 앉아 봅니다.

올해로 나이 25세. 키는 그럭저럭 큰 편, 자기관리도 아직은 양호하다……고 생각합니다. 군살은 보이지 않고 있고, 주위에서도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 편이니까요.

고개를 살짝 들자, 바로 맞은편 벽에 설치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모델로써의 자신은 분명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최근에는 무언가 자꾸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뭘까…….’

끌어안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니, 잠겨들려고 했습니다만, 탁자 위에 놓아둔 휴대전화의 벨 소리가 제 의식을 다시 현실로 끌어옵니다.

‘그러고 보니 다음 일정이 있었지.’

저는 서둘러 침대에서 튕겨나듯이 일어나 욕실로 향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서둘러서 움직인 덕분에 촬영 시작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습니다. 다행히 제 순서는 뒤쪽이라 흘러내린 땀을 식힐 시간도, 메이크업을 정리할 시간도 충분합니다. 탈의실로 들어가자 회사 소속의 매니저가 밝게 웃으면서 저를 반깁니다.

“카에데가 지각을 다 하고. 별 일이네.”

“죄송해요. 잠깐 집에서 다른 생각 좀 하느라.”

 

 

*******

 

 

“으~음.”

책상에 놓인 전화기와 벽걸이 시계를 번갈아 노려보며 나는 신음을 흘렸다. 연락을 주기로 한 시간은 진작에 지난 상황. 이번 스카우트도 결국 이렇게 허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벌컥,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녹색 옷차림의 여성이 들어왔다.

“프로듀서 씨, 아직 연락 안 왔죠?”

“아, 치히로 씨. 유감스럽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아깝네요. 이번엔 느낌 좋았는데.”

“그러게 말이에요……프로듀서인데 아이돌이 없는 프로듀서라니.”

나는 속이 빈 웃음을 흘리며 왼손으로 목덜미를 긁었다.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하하, 낙담하긴 아직 이르죠. 사장님께서 모처럼 힘도 써주셨는데. 양성소 쪽은 어떻게 됐나요?”

“방금 참가자 명단이 나왔어요. 다음주에 **프로덕션에서 오디션을 본다고 하네요.”

“흠, 다음주라.”

그녀가 건넨 서류를 받아 몇 페이지를 넘겨보니 확실히 ‘그 사람’에 관한 자료가 들어 있었다. 나는 서류를 원래대로 돌려놓고 가방에 집어넣은 뒤 자그마한 원망을 담아 전화기를 흘겨보곤 그것을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다 놓았다.

“자,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옷걸이에 걸려 있던 얇은 코트를 걸치고 거울을 보며 옷 매무새를 다듬었다.

“아, 또 스카우트 가시나요?”

“네, 신경 쓰이는 곳이 좀 있어서요. 좀 늦을 수도 있으니까 일 끝나면 먼저 퇴근하셔도 됩니다.”

“네. 오늘도 수고해주세요.”

“치히로 씨야말로.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사무실 밖으로 나온 뒤 손목시계를 재차 확인했다.

남은 시간은 20분, 회장까지는 택시로 약 10분 정도……잘하면 대기실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자세 좋고! 입꼬리 약간 올려봐!”

“좋아, 좋아! 오른손을 조금 아래로!”

“다음! 샘플C로!”

 

결과적으로는 교통이 혼잡했던 탓에 이동에만 20분이 걸렸다. 즉, 대기실 근처에는 발도 못 붙여보고 나는 이렇게 촬영장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역시, 다들 모델이라 그런지 프로모션이 장난이 아니구나.’

대기 중인 모델들을 곁눈질로 살펴 보면서 느낀 감상이었다. 모델이라는 것은 이를 테면 제품의 포장지. 아름다움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우아한 아름다움이든, 고상한 아름다움이든.

“여기까지! 타카가키 씨, 다음 준비해주세요.”

지금 막 촬영장으로 들어선 한 여성이 여기저기 떠돌던 내 시선을 단박에 끌어당겼다. 풍성한 단발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옅은 녹색으로 반짝인다. 우선은 장신. 키를 감안하면 다소 볼륨은 부족하지만 손발이 길다. 그야말로 모델에 최적화된 조형미. 문제라고 한다면 표정 정도.

‘저건 뭐, 마네킹이 더 생기가 있겠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아닌 쪽. 마치 부평초처럼, 물결이 흐르는 대로 이리저리 떠다닌다는 감상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웃으면 정말 멋질텐데.’

이미 일에 익숙한 듯, 여성은 능숙하게 자세를 잡는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에메랄드처럼 반짝이는 그녀의 시선이 촬영장 밖을 향할 때마다 그녀의 표정이 뻣뻣해지는 것이 눈에 띄었다.

계속해서 그녀를 보다 보니 그녀는 이상하게 어두운 곳을 피하는 듯 했다. 물론 사진사 또한 아마추어가 아니라면 그녀의 그런 변모를 모를 리가 없을 터.

이상하다는 듯 고갤 갸웃거리면서 사진사는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았다.

“저기, 타카가키 씨. 자세는 정말 좋은데, 표정이 좀 딱딱해. 오늘 컨디션 별로에요?”

사진사의 말에, 마치 목덜미에 차가운 것이 닿은 듯 움찔한 그녀는 시선을 조심스레 촬영장 안으로 돌려놓았다.

“에? 아, 아뇨. 컨디션은 나쁘진 않은데…….”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프로필에 비하면 약간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가늘다고 생각하면 약간 허스키하고, 허스키하다고 생각하면 또 가늘게 들리는, 그런 신기한 목소리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무언가가 느낌이 왔다. 사장식 표현으로 하자면, “팅, 하고 왔다.”

그래, 저 사람이다.

저 사람에겐 걸 수 있다.

아니, 내가 만들어낼 수 있다!

스태프들의 한쪽 끝에 서 있던 나는 그녀와 사진사가 이야기를 나누는 틈을 타 조심스레 카메라의 뒤쪽으로 움직였다. 그녀의 시선이 이따금씩 향하던 방향으로.

이 어둠 속에서 대체 무엇을 본 것일까.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자리를 옮긴 탓에 사진사와 그녀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신난 듯 한 사진사의 목소리와 셔터 소리만 들려오는 것을 보면 촬영은 잘 되고 있는 것이리라.

눈이 완전히 어둠에 익자 나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혹시 그녀의 주의를 끄는 물건이라도 있을까, 싶었지만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비상구 전등조차도.

‘귀신이라도 봤나?’

중얼거리며 다시 몸을 돌리는 순간, 셔터소리가 멎었다. 터져 나오는 스포트라이트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두 눈에 잔뜩 힘을 주며 촬영장을 바라보자, 좀 전처럼 이 곳을 바라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음, 아니. 마주쳤다고 느꼈다. 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때, 나는 그녀의 분위기가 무언가 바뀌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녀 주위의 잔뜩 굳어 있던 공기가 부드럽게 풀린 것이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그녀의 미소. 그것은 비록 금방 바람에 흩어질 듯한 옅은 것이었지만 내 눈에는 그 어떤 것보다도 단단히 각인되었다. 그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뒤죽박죽이었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정신을 차려 보니 분장실 앞에서 보안요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는 것뿐.

 

 

*********

 

 

바깥이 소란스러웠습니다.

제 메이크업을 정리하던 매니저는 불평을 하며 잠시 기다려, 라고 말하곤 밖으로 나갔습니다. 곧이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들어온 그녀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아, 별 일 아냐. 그냥 외부인이 난리를 조금.”

“정말로요?”

“……응, 정말로.”

“알았어요.”

거짓말이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정말로 외부인이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시끄럽진 않았을 테죠. 하지만 이렇게까지 숨기려 한다면 알고 싶어도 알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그 때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던 그 빛. 그래요. 등대처럼 밝게 빛나던 그 빛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그 사람?’

그것을 떠올리자 갑자기 가슴이 고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저기, 정말로 외부인인가요?”

“왜? 관심 있어?”

“네? 아니, 그…….”

“별일이네, 카에데가 다른 사람한테 관심을 다 가지고.”

“아뇨, 저, 딱히.”

“맞아. 외부인이란 건 거짓말.”

프로듀서야. 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프로듀서?”

“응. 얼마 전에 회사에 아이돌 부서가 새로 생겼다던데, 그 쪽 사람인가보지.”

매니저는 계속해서 소음이 들려오는 복도 쪽을 힐끗 바라보면서 말을 계속합니다.

“사장이 직접 미국에서 데려왔다고 들었는데. 꽤나 신뢰받는 모양새더라? 인사권한을 아주 빠방하게 넣어줬다던데. 뭐 듣기로는 본인만 OK하면 바로 빼낼 수 있다는 소문도 있고.”

“저, 혹시 옮긴 사람은.”

“없어. 저 사람 아직 한 명도 스카우트 못 한 모양이더라.”

눈이 높은 건지, 능력이 없는 건지. 라고, 매니저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아이돌…….’

아이돌이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방송에서 보는 것도 있지만, 촬영을 하다 보면 마주치는 일이 잦으니까요. 이따금씩 무대에서 반짝거리는 그녀들을 보고 있자면 나이에 걸맞지 않게 가슴이 뛰곤 합니다. ‘나도 어쩌면.’ 하고요. 물론 이런 이야기는 가슴 속에서만 할 뿐. 밖으로 내지는 않습니다. 술김에라도 그런 이야기를 꺼냈다간 한동안 안주거리가 되면서 나잇값을 못한다는 소리를 들을 테지요. 이제 곧 스물 다섯. 나이 얘기엔 민감해질 때입니다.

 

“저기, 이건.”

“명함, 인데요.”

그래서 뒷정리가 끝나고 촬영장을 나서자마자 마주친 그 사람. 저보다 머리 두 개는 더 높은, 어마어마하게 키가 큰 그 사람이 건넨 명함을 멍하니 받아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도 할 겸, 매니저와 잡담을 나누느라 두어 시간 남짓 늦게 나왔는데, 그 사람은 건물 옆 골목길에 서서 제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미 해가 떨어져서 밖은 상당히 추워진 상태였습니다. 나를 향해 웃는 얼굴의 코와 뺨은 새빨갛게, 명함을 건네는 손은 서리가 내린 듯 새하얗게 곱아서, 주머니에서 나온 내 부드러운 손이 살짝 스치기만 했음에도 마치 얼음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CG프로덕션 아이돌 부서 프로듀서 P].

명함에는 제가 소속된 회사와 같은 이름, 같은 로고가 그려져 있습니다.

“정말로 있었네.”

“네?”

“아, 미안해요. 잠시 다른 생각을 좀…….”

“하하, 저도 자주 그래요. 혼자서 오래 일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혼잣말이 밖으로 툭.”

그의 사람 좋아 보이는 표정에 넘어간 것일까요? 저는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것도 잊고, 촬영장 입구 옆에서 그와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습니다. 배려인 것인지, 아니면 습관인 것인지. 이 사람은 저와 대화할 때 자세를 약간 구부정하게 하여 제게 눈높이를 맞춥니다. 그러면서 말을 할 때는 손짓, 발짓을 섞어 말을 합니다. 평범한 대화도 이렇게 재미있게 할 수 있다니. 대단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부럽네요.

“저기, 질문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왜 저인가요?”

이 질문에, 남자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답변을 선택하고 있는 듯, 시선이 이리저리 춤을 춥니다.

“음, 글쎄요…….”

“……?”

“딱 보는 순간에 팍! 하고 왔다고 해야 할까요?”

무슨 뜻인가 싶어 말을 곱씹고 있자니, 그가 다시 익살꾼처럼 고개를 과장되게 갸웃거립니다.

“아니면 첫 눈에 반했다고 해야 할까요오?”

“노, 농담이죠?”

“네, 농담입니다.”

숨김 없는 웃음을 지으며 그는 자세를 곧게 세웁니다. 제 눈높이에 있던 안경을 쓴 그의 얼굴이 삽시간에 저 위로 치솟았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이곳으로 오시면 말씀 드릴게요.”

“제가 안 가면요?”

“오늘처럼 졸졸 따라다닐 겁니다. 일주일간.”

“일주일요?”

“네. 나름 열심히 따라다닐 생각인데, 그래도 안 오신다면, 인연이 아닌 거겠죠.”

한 걸음 물러서서, 시간 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라며 깊게 허리를 숙이고 그는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어째서인지 그의 커다란 뒷모습이 잔뜩 기대하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통통 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샤워까지 모두 마친 저는 낮에 미처 다 하지 못한 생각을 마무리하기 위해 침대에 올라와 무릎을 끌어안고 앉았습니다. 낮과 차이점이라면, 제 손에는 작은 명함이 들려 있었다는 점이네요.

“프로듀서, 29살……?”

조금 놀랐습니다. 저랑 동갑이거나 한 살쯤 어릴 거라 생각했는데 29살이라니. 역시 즐겁게 사는 만큼 젊게 사는 걸까요. 그 순간, 낮에 매니저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사장이 직접 미국에서 데려왔다고 들었는데. 꽤나 신뢰받는 모양새더라?’

우리 회사의 사장은 성격은 다소 괴팍하지만 안목 하나만큼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직접 데려온 것이라면, 그 프로듀서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일까요? 궁금해진 저는 침대 옆에 있는 노트북을 열어 인터넷을 켰습니다.

“어디, 성함이 P…… 29살이면 1985년생…….”

인터넷에 생년과 이름을 치자, 뜻밖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예계 정보는 온데간데 없고, 영어로 된 야구 뉴스만 엄청나게 나왔거든요.

“동명이인……?”

검색결과를 좀 더 열어보았지만 별 다른 소식은 없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노트북을 덮었습니다.

 

 

 

*********

 

 

그녀에게 명함을 건넨 다음 날.

 

“끄으으윽…….”

사무용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나는 탁자 위에 놓인 시계를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었다.

“저기, 프로듀서 씨.”

“네.”

“정신 사나워요.”

“네…….”

의자를 멈추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무실 안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프로듀서 씨.”

“네.”

“정신 사나워요.”

“네…….”

나는 책상 서랍에서 큐브를 꺼내 사무실 구석의 소파에 앉아서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야 나는 내가 큐브를 전혀 맞출 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판사판으로 색상을 막 뒤섞은 다음 천천히 돌려 가면서 어거지로 색깔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이 저기 저편으로 가 있는데 집중이 될 리가.

큐브를 돌리면 돌릴수록 한 면조차 제대로 맞지 않는 것을 보면서 잡지를 읽고 있던 치히로 씨가 한숨을 내쉬었다.

“프로듀서 씨.”

“네.”

“대체 누구 연락을 기다리길래 이렇게 목을 빼놓고 계세요?”

“있어요, 그런 사람이.”

그 때, 내 책상에 있는 전화기가 벨소리를 울렸다. 치히로 씨가 전화를 받기 전에, 나는 잽싸게 달려가 먼저 수화기를 들어 올린다.

“네! CG프로덕션 아이돌 부서 프로듀서 P입니다!”

목소리가 좀 컸던 것일까, 아니면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일까. 옆에서 내 목소리를 들은 치히로 씨가 풋, 하고 웃는 것이 느껴졌다.

수화기 너머의 상대는, 약간 망설이는 듯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기를 몇 번 반복했다.

[저기……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 목소리의 주인을 떠올리자 히죽히죽,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진다.

[저, 혹시 기억하시나요?]

“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바로 어제 만난 사이인데.”

[기억, 해주시는군요.]

당신의 목소리는 제가 한평생 못 잊을 겁니다. 라는 말은 목구멍 속에 담아두었다. 생각만 해도 느글느글거린다.

“네, 타카가키 씨. 연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기…… 혹시 가능하시다면 오늘 저녁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저 지금 썩어나는 게 시간이거든요.”

[다행이다……. 그럼, 6시에 회사 입구에서 뵈어요.]

“알겠습니다. 네, 그럼 그때 뵙죠. 연락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나는 눈을 가늘게 뜬 치히로 씨와 눈을 마주쳤다.

“프로듀서 씨, 방금 전화 여자였죠?”

“네.”

“너무 티 나게 좋아하는데요.”

“그야 당연하죠. 제가 지금까지 오매불망 기다리던 사람인데.”

“어머, 그게 누군데요?”

“비밀입니다. 비이밀~.”

“눼에~. 그래요. 저 같은 노처녀한테 말해줄 건 없다 이거죠?”

이봐요, 지금 전화 온 사람 댁이랑 동갑이야.

입을 비죽이면서 치히로 씨는 읽고 있던 잡지로 눈을 돌렸다.

“아아~ 나도 다른 어시스턴트처럼 일 하고 싶다……”

“곧 실컷 하게 될 겁니다. 기대하세요.”

나는 옷걸이에 걸쳐놓은 코트와 목도리를 챙겼다.

“저 오늘은 양성소 갔다가 바로 퇴근할게요. 치히로 씨도 적당히 있다가 들어가세요.”

“네에~.”

 

 

양성소에서 후보생 면접을 보는 데 의외로 시간이 걸려서 회사 입구에 도착하니 시간은 이미 6시를 약간 넘긴 상태였다. 택시에서 내려 헐레벌떡 뛰어가자, 휴대폰의 시계를 확인하던 타카가키 씨가 나를 바라보며 살짝 목례를 했다.

“죄송합니다. 양성소에 잠깐 갔다 온다는 게 시간이 이렇게.”

“아뇨, 괜찮아요. 저도 방금 온 참이거든요.”

“사과하는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제가 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감사히 어울리도록 할게요.”

나는 왼팔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18시 05분.

이 시간대라면 역시 ‘그곳’이 좋겠지.

“식사 아직 안 하셨죠? 좋은 식당 있는데 가실래요?”

“네. 기꺼이…….”

“혹시 술, 좋아하십니까?”

‘술’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그녀의 표정이 단박에 밝아졌다. 옳은 선택지를 골랐구나, 라고 생각한 나는 미리 머릿속에 담아 둔 그 장소를 향해 그녀와 함께 걷기 시작했다.

빌딩의 숲을 헤치고 10여분쯤 골목길을 헤매다보면 간판은 없지만 멋드러진 니와노렌이 걸린 이자카야가 있다. 예전에 우연히 퇴근길에 길을 잃었다가 발견한 곳으로, 간판도 없고 가게도 작은 주제에 음식 맛은 기가 막힌 곳이었다.

“이런 가게가 있었군요.”

“네, 저도 우연히 발견한 곳이에요. 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것 같지만요.”

노렌을 걷어올리자 줄에 매달린 방울이 딸랑딸랑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반응해 주방에서 젊은 요리사가 머리를 쑥 내밀었다. 씨익 웃으면서 목례를 하고,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그리고 나만의 특별한 사인을 같이 그려 보이자 요리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주방으로 쑥 들어갔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타카가키 씨에게 자리를 권하자 그녀는 신기한 듯 가게의 여기저기를 살펴보면서 조심스레 의자에 앉았다.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경험자분께 맡길게요.”

“알겠습니다. 여기, 정식 2인분 주세요!”

주방 안에서 ‘네~이!’하고 대답이 돌아온다. 돌아갔던 시선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자, 잔뜩 기대한 눈치의 타카가키 씨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었다.

“저기, 혹시 술은.”

“음식이랑 같이 나옵니다. 사케뿐이지만……아, 사케 혹시 싫어하세요?”

‘사케’라는 말에 반응해 반짝거림이 더욱 밝아졌다. 이 사람,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저 사실 사케 엄청 좋아해요.”

“잘 됐네요.”

 

 

*********

 

 

프로듀서가 안내한 곳은 제 예상보다 훨씬 멋진 곳이었습니다.

저도 모델 경력이 결코 짧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근사한 이자카야는 금시초문입니다.

이런 말을 꺼내기엔 미안하지만, 저는 고급스러운 바나 레스토랑을 예상했거든요. 혹시나 비싼 곳이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속으로 조금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프로듀서는 고개를 돌려 다시 저를 바라봅니다.

안경 너머로 착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가 저를 응시합니다. 약간 들떠 있는 자신이 들킬까 부끄러웠습니다. 그래도 궁금한 건 물어봐야겠어요.

“저기, 혹시 술은.”

“음식이랑 같이 나옵니다. 사케뿐이지만……아, 사케 혹시 싫어하시나요?”

‘사케’라는 단어에 다시 한번 마음이 들뜹니다. 이런 숨겨진 장소에서 파는 술은 보통 명가의 것이거나, 혹은 비장의 물건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눈치챈 것인지 프로듀서의 표정이 약간 풀어집니다. 동시에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조금 화끈거리는 것을 느낍니다.

아무리 들떴다고 하지만 초면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무슨 소릴 한 걸까요…….

전등이 노란색이니 들키지는 않겠지요. 잠시 대화가 중단됩니다. 탁자 위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고개를 돌려 가게 내부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습니다. 자그마한 가게이지만 주방은 충실하게 갖춰져 있고, 벽장에는 비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술통이 몇 개 들어있습니다.

“타카가키 씨.”

프로듀서의 목소리에 저는 다시 시선을 되돌렸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용건을 여쭤 봐도 될까요?”

“저, 실은 낯을 꽤 가리는 편이에요.”

대답 대신, 프로듀서는 분명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제 이후로 이것저것 여쭙고 싶은 게 많았는데, 낯을, 가리는 편이라서.”

말씀하세요, 라고 말하듯 다시 한번 끄덕.

“저,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술자리에서는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군요. 좋은 생각입니다.”

“이런 여자, 역시 좀 이상하지요?”

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자신의 단점을 알고, 단점을 이겨내는 방법을 압니다. 과연 어른이군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또 빙긋 웃었습니다. 칭찬을 들으니 괜히 쑥스러워져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습니다.

“저기, 이번에는 제가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왜 저인가요?”

“음, 그거 어제 물어보신 것 같은데요.”

“저를 선택하신 이유를 듣고 싶어서 그래요.”

“구체적으로요?”

“네.”

“으음, 이거 곤란한데…….”

프로듀서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면서 음, 하는 신음을 흘렸습니다. 괜한 질문을 한 걸까요.

“저, 대답하기 곤란하시면 안 하셔도.”

역시 괜한 질문을 한 걸까요. 라고 생각한 순간, 그가 대답을 했습니다.

“느낌 입니다.”

“네?”

“뭐라고 할까…… 그렇지, 팅, 하고 왔어요.”

“팅, 하고 왔다는게…….”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촬영장의 당신을 본 순간, 그리고.”

턱을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그는 두 손으로 탁자를 짚으면서 저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습니다.

“당신의 미소를 본 순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소, 라니.”

저는 당신이 저를 바라보는 동안은 웃은 기억이 없는데요.

“분명히 웃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 눈에 이렇게 콩깍지가 씌일 이유가 없죠.”

아까보다도 한결 더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프로듀서. 무언가 더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지만, 마침 음식이 나온 탓에 그것은 약간 뒤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식사와 함께 병째 나온 것이. 두 병이나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와모리네요. 그리고 이거는…….”

“매실주입니다.”

주문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싶어서 저는 주방을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처음 들어오면서 인사를 했던 그 점원분이 미소를 띤 얼굴로 맛있게 먹으라는 제스쳐를 취했습니다. 아무래도 정말로 우리 테이블에 나온 물건인 모양입니다.

“두 병 다 제 거에요. 걱정 말고 드세요.”

프로듀서의 말에 또다시 가슴이 뜁니다. 병에 붙은 라벨에 따르면 이건 25년은 된 오래된 것이고, 포장도 뜯지 않아 아직까지 숙성이 진행중인 고급 아와모리였기 때문입니다.

‘아이돌이 되면 이런 거 쉽게 먹을 수 있어요’라고 작게 말하면서 그는 커다란 병을 받아 옆의 의자에 세워두었습니다.

“매실주는 요전에 와카야마에 가서 사 온 겁니다. 식후에 한 잔씩 먹으니까 좋더라고요.”

자그마한 병에 든, 와카야마의 지도가 그려진 매실주를 프로듀서는 조용히 탁자 옆으로 밀어놓았습니다. 문득 저 병을 보니, 최근 몇 달간 가지 못한 고향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반주로 아와모리를 곁들인, 호화롭지만 평범한 식사가 대충 마무리되고, 우리는 구운 은행과 오징어를 앞에 두고 한 잔씩 매실주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의 매실이 들어간 술이라 그런지 오늘따라 더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말이죠, 제 친구가 거기서 폼을 잡고 올라가는데, 그만 마이크 줄을 밟고 이렇게.”

의자에 앉은 채로, 프로듀서는 상체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넘어지는 시늉을 합니다. 마치 익살꾼처럼 행동하는 그의 얼굴엔 적당히 취기가 오른 듯 발그레한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아하하하,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버티려고 막 이렇게 춤을 추는데, 그게 카메라에 딱! 잡혀서 말이죠. 다음날 교내 뉴스 1면에 올라갔어요. 그 얘기를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이불을 걷어차곤 했었죠.”

“재밌는 친구분이시네요.”

“그렇죠? 제 생각도 그래요. 뭐, 지금은 그 친구는 엄청 성공한 몸이 됐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는 프로듀서의 눈빛은 취기 탓인지 한 순간 약간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것을 눈치챈 것일까요, 그는 넘치기 직전까지 담아놓은 매실주를 쭉 들이키곤 잔을 탁! 내려놓았습니다.

“저도 얘기 많이 했으니까, 이젠 타카가키 씨가 말씀해주시죠. 상담할 거 있다면서요.”

이제는, 저도 각오를 해야 할 때가 온 모양입니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제 앞에 놓인 술잔을 한 번에 쭉 비웠습니다.

 

 

********

 

 

타카가키 씨가 술잔을 크게 비웠다.

자그마한 입에서 뜨거운 숨을 토해낸 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만약의 이야기인데요. 만약, 제가 스카우트를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구체적인 대답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제 이상을 원하십니까?”

약간은 의외의 대답이었던 것 같다. 그녀는 다른 색으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약간 휘둥그렇게 떴다.

“가능하면 둘 다, 듣고 싶어요.”

“그렇군요.”

나는 옆에 놓인 매실주 병을 집었다. 이제 1/5정도 남은 매실주는 나와 그녀가 한 잔씩을 나눈다면 텅 빌 것이다. 비어있는 두 잔에 술을 마저 채우고, 안경을 벗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편광 가공된 렌즈가 사라지자 전반적으로 시야가 약간 밝아진 느낌이 든다.

“이상(理想)은 당신을 최고의 아이돌. 신데렐라로 만드는 것입니다.”

‘최고’라는 부분에서 그녀의 눈이 흔들린다. 하지만 아직은 흔들림 뿐.

“제가, 할 수 있을까요? 25살인데요.”

“하하, 못 할게 뭐가 있나요. 25살 밖에 안 됐는데. 재능과 노력과 그에 걸맞은 보조만 있으면, 탑의 자리에 올라서는 건 생각보다 금방입니다.”

“그럼, 구체적으로는요?”

“글쎄요, 그거는…….”

나는 몇 개 남지 않은 구운 은행을 한 알 집어 삼켰다. 그녀는 대답 대신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영업 비밀입니다.”

“에에…….”

“뭐어, 타카가키 씨가 저희 부서로 와 주신다면 그때 가르쳐 드리죠. 하지만, 이 것만큼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나는 자세를 자세를 기울여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더 밝게 빛날 수 있습니다.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가면 아래에서 그 광택을 숨기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 가면을 벗을 때가 됐어요. 저와 함께, 진정으로 자신을 빛나게 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

“…….”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내 눈을 마주보던 그녀는 조심스레 시선을 옆으로 돌린다.

“저기, 얼굴이, 가까워요.”

“조, 죄송합니다. 좀 흥분한 모양이네요.”

좀 전의 행동을 다시 떠올리자 삽시간에 얼굴에 피가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단박에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시계에 맞춰 둔 알람이 울렸다.

“아, 이런.”

“무슨 일인가요?”

“저, 기숙사에 살거든요. 이제 곧 통금이 걸리는 시간이라서.”

“통금이라니……푸훗.”

“웃지 마세요. 저도 부끄러우니까.”

“미, 미안해요. 그래도 다 큰 어른이 통금이라니…….”             

“으으…….”

 

가게를 나오자 취기로 달아오른 피부를 차가운 밤바람이 식혀주었다.

큰 길가에 도착해서, 택시를 세워두고 타카가키 씨는 한 손에 절반 정도 남은 아와모리 병을 든 채 나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프로듀서 씨. 오늘은 덕분에 즐겁게 즐겼습니다. 이렇게 좋은 선물도 주시고…….”

“제가 오히려 감사하죠. 제 혼자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다 못 먹었을걸요. 어울려주신 덕분에 감사히 즐겼습니다.”

“좋은 이야기도 고마워요. 그래도,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네,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시길.”

그녀를 태운 택시가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기숙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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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 03:43 AM, 16/02/@@

From. [email protected]

Subtitle : 타카가키 카에데입니다.

Message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가까운 시일 내 찾아 뵙겠습니다.

          부디, 저에게 반짝이는 세계를 보여주세요. 나의 프로듀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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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 서면 스포트라이트 건너편은 시꺼멓게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실제로 그런 환경에서 공포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무대에 섰을 때 느꼈던 감정을 한번 섞어봤습니다.

 

....라는 건 좀 과장이고, 사실은 예전에 해돋이 보러 갈 때 등대를 보고 생각했던 소재를 이제야 쓴 겁니다.

아마도 이 P 시리즈에서 메인은 25세 어린이, 붉은 실을 좋아하는 아이돌, 이 두명이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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