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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카 생일 축전] 10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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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03, 2016 18:59에 작성됨.

'10년 뒤의 하루카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분명 그 때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겠지.'

정말로, 정말로 그리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중요한 기억이지만,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수많은 시간들 사이에서 실수로 떨어트려 버린 그 때의 추억.

'아니, 기다려봐... 어쩌면 유명한 파티셰가 되었거나, 아니면...'

어째서일까요. 지금의 저는 그 때보다 더 성장했고, 더 어른이 되었고, 그에 대한 모든 것이 더 익숙해져 있을 텐데,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저는 그 시절의 저와 같이 심장이 빨리 뛰고 있습니다.

'미래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있겠지.'

'물론, 불안도.'


떠올랐습니다.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 때, 그와 보았던 수많은 별빛.
그의 옆에서 느꼈던 그의 온기.
그와 함께 했던 대화. 그리고...

'하루카.'

제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어 주는, 그의 손길.

'미래는 지금의 연장이야. 그러니까...'

-끼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끼기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

어두운 방안을 가득 채우는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음에 저는 그리운 꿈을 꾼 그런 행복한 기분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잠은 순식간에 깨버렸지만, 덕분에 방금 전까지 제가 꾼 꿈이 무엇이었는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습니다. 어쩐지 아쉬운 기분이 든 저는 한숨을 쉬고 요상한 디자인을 한 알람시계의 뒷면을 열어 건전지를 빼냈습니다.

「이건, 다시 미츠코한테 돌려줘야겠다.」

어제, 만면에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으며 저에게 피카소 그림에나 나올 것 같은 기이한 사람 모양의(아, 본인은 다른 무언가를 형상한 예술이라고 했지만요) 이 알람시계를 안겨준 아이를 떠올렸습니다. 다음엔 무슨 말을 하더라도 미츠코가 준 발명품은 받지 않겠다고 벌써 몇 번째인지도 모를 다짐을 하면서요.

「하아......」

다시 고요함을 찾은 침실에서, 저는 아직 잠이 덜 깬 머리로 침대에 몸을 던졌습니다. 대체 무슨 꿈이었을까. 정말로 그리우면서, 너무나도 소중하지만, 잠깐 잊어버린 무엇인가를 본 듯한 느낌이 계속해서 미련을 남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머리는 텅 빈 것 같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방금 전 보다 한껏 더 아쉬운 기분이 되어, 오늘은 그냥 늦잠 자버릴까 하는 못된 유혹이 슬며시 들었습니다. 아까 꾸던 꿈을 마저 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기도 했지만요.

「...아.」

점점 감기는 눈이 문득 벽에 붙어 있는 달력에 멈춰섰습니다. 1일과 2일에 표시되어 있는 X표. 그리고 그 다음 날에 별 모양과 함께 여러번 쳐져있는 동그라미. 큰일날 뻔 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날을 저는 늦잠으로 헛되게 소비해버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 아까 전 소름끼치는 알람소리보다 더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끼며 저는 벌떡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 방 반대편 창문의 커텐을 젖혔습니다.

-차르륵-

「으으으으음~. 오늘도 날씨 좋네.」

방을 어둠게 하던 커텐을 젖히고, 그 너머에 펼쳐진 아침햇살을 받으며 저는 아까까지 침울했던 기분은 없었던 것인 마냥 상쾌하게 기지개를 켰습니다. 조금은 억지로 기분 전환을 한 건 맞지만, 그래도 오늘은 정말로 좋은 날씨입니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맑은 하늘과 화창한 햇빛. 창밖을 내려다 보면 강아지와 함께 아침 산책을 하고 있는 할머니와, 아내분의 배웅을 받으며 이른 출근을 하고 있는 아저씨까지.
모든 게 어제와 같았고 아마 내일도 오늘과 같지 않을까 싶어질 정도로 아무것도 없는 평화로운 하루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단 하나, 저에게 있어서 오늘은 조금은 더 의미를 가져도 될 그런 날입니다.

모든 사람은 가지고 있는, 저 마다의 특별한 날.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모두에게 특별한 그런 날.

오늘은 바로 저, 하루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입니다.

 

2.
「잘 먹겠습니다.」

어제 산 신선한 버섯을 넣고 끓인 된장국, 간단하게 드레싱만 올려낸 샐러드, 고소한 향이 올라오는 꽁치와 곁들일 메실장아찌, 단순해 보여도 혼자 먹는 것 치고는 호화로운 식단을 앞에 두고 저는 TV를 켰습니다.

-그러면 모로보시씨는 이번에 한신의 선전은 힘들다는 의견이십니까?-

-완전히까지는 아니지만~, 역시 모두들 생각하는 것 처럼 이번 시즌은 힘들지 않을까니~-

-(빠직)키라리 니 뭐라 캤노?-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키라리는 생각하는 거얼. 확실히 주력이 많이 빠져나갔는데다가 얼마 전에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에이스가 나가 버렸는데.-

-오호... 말 한븐 잘했다. 그러는 야쿠르트는 우짠데. 감독도 다 나가고, 선수들도 지금 다 개판이고. 게다가 그 뭐시기냐, 늬네 4번 타자는 갑자기 성적이 올랐는데, 들어보믄 약물 논란도 있다고 카던데?-

-(빠직)요코야마씨? 이 세상에는 해야할 말과 해선 안될 말이 있어요?-

-자, 잠깐 모로보시씨. 말투가 갑자기 바뀌...-

-믄저 시작한게 누군데 그라노? 와? 이제 와서 내가 이 카니까 뭔가 찔리는 모양이제?-고고고고고고

-... 역시 요코야마씨와는 결착을 내야 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고고고고고고

-바라던 바다 안카나...-고고고고고고

-자, 잠깐. 여러분, 이거 생방...-


「나오랑 키라리는 오늘도 여전하구나.」

 

 첫 화면부터 저를 반겨주는 반가운 얼굴에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요즘에는 다들 유명해져서 안 보이는 날이 거의 없을 정도지만요. 어떤 채널로 돌려도 그곳에는 제가 아는 얼굴들이 저를 반겨주고, 이제는 그것이 익숙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활약하고 있는 제 친구들과 후배들의 모습을 볼 때 마다, 그 이는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고 있습니다.

「......」

그 이를 떠올리자 마자, 원래 그 이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를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지금은 사무소 투어 라이브 일정으로 출장을 가, 며칠 전부터 있어야 할 곳에 없는 그 사람. 이 집에 있을 때는 언제나 함께였는데 며칠, 단 며칠 이렇게 자리를 비운 것 만으로 마음 한 쪽이 뚫린 것 처럼 허전합니다.

「일이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토끼는 외로우면 죽어버린다구요...」

왠지 갑자기 울적해져서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 나머지 식사를 처리합니다. 생일 아침인데 벌써부터 이렇게 침울해져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래, 긍정적인 생각. 즐거운 생각으로 기분을 전환하는 겁니다. 오늘은 제 생일. 1년에 한번밖에 없는 중요한 날입니다. 어제 12시 부터 저희 아이돌 그룹 라인 방에는 저를 축하해주는 말로 가득찼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좋고~. 아, 그리고 무엇보다 그 이가 출장에서 돌아오기로 한 날도 오늘입니다.

「그리고...전해줘야 할 것도 있으니까.」

가장 중요한 것, 지금의 저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어떤 것을 떠올린 저는 솟아 오르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마 거울을 보면 지금의 저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그리고 약간의 장난기가 섞인 미소를 짓고 있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 어느 순간부터 배틀로얄물이 된 아침방송을 보며 샐러드를 음미했습니다.


3.
아침식사를 끝내고, 간단하게 집 청소를 끝낸 저는 집을 나섰습니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지하철을 타고 10분, 그곳에서 다시 걸어서 10분정도 가면 나오는 자그만 골목이 현재 제가 일하고 있는 직장입니다. 2시간 통근길이 당연했던 그 때에 비하면 너무나도 좋아진 환경을 느끼며 오늘도 사뿐하게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골목을 걸어갔습니다. 바로 근처에 여자 고등학교가 있어 시간에 따라서 여자아이들의 수다소리로 가득찰 이 곳도, 이렇게 9시 넘어서 오게 되면 들리는 것이라고는 담장위의 고양이가 하품하는 소리 밖에 없습니다.
그런 평화로운 골목을 걷다보면 한쪽에 보이는 카페.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외관의 카페의 간판에는 이렇게 써 있었습니다.


'아마미(甘味) 카페'


사실 지금도 출근하고 나서 제 가게의 간판을 읽을 때는 살짝 볼이 붉어집니다. '아마미(天海)'.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불리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 제 이름이었지만, 어느 사이엔가 이렇게 그 이름을 읽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색해져 버렸습니다. 옛 친구들이 저를 '아마미'라고 부를 때 '지금은 아마미가 아니니까'라고 정정해 주기도 할 정도입니다. 거의 제 일생을 불려운 이름보다, 이제 갓 1년 불리게 된 이름이 더 편하다는 걸 느낄 때 마다, 원래 결혼한 여자들은 다 이런 건지, 아니면 제가 이상한 건지 고민하곤 합니다.

'아마미'라고 불리는 게 쑥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이런 카페 이름인 이유는 다름 아닌 그 이입니다. 가게를 장만하고, 어느 정도 정리가 마무리 되어 가게 이름을 고민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이 이 아이디어를 말해 주었습니다. 왠지 아미나 마미가 생각할 법한 말장난에, 자기 이름을 가게 이름으로 내거는 것도 부끄러웠고, 무엇보다 아까도 말한 '아마미'라고 불리는 게 어색해져 버린 저는 처음에는 반대를 했습니다.
사실, 이 모든 이유보다 그렇게 반대했던 건 다름아닌 불안감이었습니다. 가게 이름을 '아마미'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그 이의 말에, 이 사람이 좋아하는 '나'는 대체 어떤 모습일까. 이 사람이 결국 사랑한 건 '내'가 아닌 '아이돌 아마미 하루카'가 아니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는 우물쭈물하며 가게 이름을 반대하는 제 모습에서 그 불안을 읽어냈는지, 따스하게 제 손을 잡아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카'가 '아마미 하루카'가 아니어도 상관없어. 나는 '하루카'를 사랑하니까. 하지만 그저, '아마미 하루카'였던 '하루카'도 포기하기 싫을 뿐이야.-


정말이지... 치사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이 사람과 만나고 벌써 10년. 그동안 느낀 거지만, 저는 평생을 가도 아무런 자각없이 저를 흔들어 놓는 그 이한테는 이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 날 이후로, 가게 이름은 '아마미(甘味) 카페'로 정해졌고, 저는 그 이가 좋아하는 '아마미(天海)'로서의 저도 버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카페에 있는 이 순간은, 제가 '아마미 하루카'로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4.

카페에 들어섰지만 간판은 아직 '준비 중'으로 두고, 저는 가게 영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아이돌에서 은퇴하고 난 뒤, 제 어릴 적 또 다른 꿈이었던 '달콤한 것을 만드는 사람'. 그것을 이루기 위해 저는 이 자그만 카페를 장만했습니다. 소박하고 앤티크한 분위기의 가게 내부와, 아기자기한 테이블. 개점을 하고도 특별히 주변에 사시는 분들이나 학생들에게 선전도 하지 않았지만, 그랬기에 가질 수 있는 조용함이 장점인 카페입니다. 그런데 사실 '카페'라고는 해도, 주력으로 내는 건 커피나 마실거리라기 보다는 제 취향대로 만드는 케이크와 파이, 마카롱 같은 디저트류입니다. 이렇다면 '베이커리'가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지금 와서는 들지만, 원래부터 제멋대로 만든 가게이니만큼 신경쓰지 않은지 오래입니다.

대로 근처가 아니라 여기 학교 학생이 아니면 보통 사람은 잘 들르지 않을 작은 골목에 있는 단촐한 찻집. 출근은 9시 넘어서. 하지만 급하게 준비하기 보다는 느긋하게, 그리고 착실하게 그날 팔 케이크나 마카롱을 만들다 보면 오픈하는 시간은 12시나 심하면 1시. 그런 주제에 퇴근은 6시 되면 바로인데다, 가끔씩 예전 직장에서 저를 찾을 경우 바로 문을 닫고 자리를 비워버리는, 정말이지 장사할 생각이 있는 건지 주인인 저조차도 의문인 기묘한 카페입니다.

하지만 더 신기한 건, 그런 와중에도 이 카페는 저희 집의 저녁 반찬으로 할 카레에 더 크고 먹음직스러운 고기를 넣는다거나, 미나코네 집에서 만드는 수제 된장이나 간장을 필요한 만큼 산다거나, 그 이의 이름으로 도니 적금을 꾸준히 넣거나, 그러고도 남는 돈을 모아서 몇 달에 한 번, 그 이에게 새 양복을 맞춰준다거나 할 정도의 수입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유는 짐작이 가지만요.

「여보세요? 응, 오랜만이야 이오리. 지금 어디? 응, 으응. 파티용 케이크? 그야 만들 수는 있지만, 그런 건 나보다 이오리네 집 요리사분한테 맡기는 게... 그렇구나. 아니야. 그래. 맡겨줘. 그래서 언제까지? 응, 그 정도라면 문제없어. 응, 그러면 열심히 만들어 볼게.」


「어머나, 세리카. 오랜만이다~. 응, 요즘 잘 지내? 응응! TV에서 항상 보고 있어! 요즘 드라마에서 엄청 멋있었어! 아니야, 오히려 세리카가 이렇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기뻐져. 응, 부탁?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할게. 아, 이번에 안나랑 시호와 같이 하는 라이브 투어 말이지? 그렇구나... 응, 그 둘이 좋아할 만한 디저트라면 나한테 맞겨줘. 그래. 응, 그럼 이따 3시에 봐.」



이렇게 이오리나 세리카 뿐만이 아니라 765프로덕션 동료들이나 시어터조 후배들, 그리고 활동중에 인연이 깊었던 346프로덕션 아이들이 가끔씩 이렇게 연락으로 주문을 하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데뷔를 막 준비하려는 아이들도, 어째선지 제 카페에 한 번씩 찾아와 인사를 하고 케이크를 사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어쩐지 이미 은퇴를 해버린 저를 위해 이제 신인인 아이들이 너무 신경써주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생각을 말했더니 이오리가 한숨을 쉬면서 '저 아이들 입장에서는 네 이름값을 고려하면 그냥 공짜로 받아가는 거니까 신경쓰지마.' 라고 말했습니다. 대체 무슨 의미일까, 아직도 고개를 갸웃하곤 합니다.


5.

「그러면... 먼저 세리카네. 어떻게 해볼까...」

-짤랑-

「응?」

카페에 은은하게 음악을 틀어 놓고, 오븐에 오늘 내어 놓을 빵과 케이크를 넣어둔 뒤 제 친구들한테서 온 주문을 고민하고 있을 무렵, 작게 들리는 카페문의 종소리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시간은 아직 11시. 가게 문에 걸어 놓은 푯말은 아직 '준비 중'으로 되어 있고, 카페의 주 고객인 여고생들이 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간에 준비 중이라고 되어 있는 가게문이라도 일단 열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문을 여는 사람이라면, 분명 저를 잘 아는 사람이고, 제가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실례합니다.」

늘씬한 키와 흑비단과 같은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진 여성. 10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부터 지금까지 저절로 '미인이다'하고 감탄했었던 아이. 물론 지금은 더욱 더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 너머에서 모습을 보인 건,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치하야를 떠올리게 하는 쿨한 성격을 가진 아이. 린, 시부야 린이었습니다.


「린이구나! 안녕!」

「안녕하세요, 하루카씨. 역시 지금은 너무 이른 시간이었나요?」

「아니야. 안 그래도 이제 개점하려고 했거든. 오늘은 린이 첫 손님인 셈이네.」

「그런가요. 왠지 기쁘네요.」

「응! 그런데 이 시간에 린을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오늘은 휴일?」

「비슷하지만 아니에요. 원래 오늘 아침에 예정됐었던 촬영이 갑자기 다음 주로 미뤄졌거든요. 덕분에 점심까지 갑자기 한가해져서... 그러다 보니 역시 오늘 같은 날은 하루카씨를 축하하러 와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여기.」

린은 활짝 웃으며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화분을 저에게 건냈습니다. 심어져 있는 건 푸른 빛의 싱그러운 꽃. 꽃에 대해서 그렇게 자세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평범하게 잘 키워진 꽃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어머나! 고마워. 예쁘다... 이건 무슨 꽃이야?」

「루피너스에요. 저희 집에 원래 씨앗으로 팔던 건데, 특별히 하루카씨를 위해 구해 왔습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응! 너무 마음에 들어. 고마워, 린.」

「후훗. 다시 한 번 정말로 축하드려요, 하루카씨.」

「고마워.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와줘서.」

「아직 가게 준비중이신 것 같은데, 혹시 제가 폐가 됐나요?」

「아니아니. 그럴 리 없잖아. 어서 들어와. 온 김에 간단한 거라도 먹고 갈래? 아실 어제 만든 마카롱이 내가 생각해도 꽤 잘 됐다고 생각하거든.」

「으음. 그러면 하루카씨의 호의니까,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래. 잠시만 기다려줘. 금방 내올게.」


6.

작은 카페지만, 그래도 가장 좋다고 할 수 있는 창가 자리에, 저와 린은 마실 거리를 하나씩 들고 앉았습니다. 제가 다 준비하려고 했지만, 린이 그럴 순 없다며 결국은 티타임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받아버렸습니다. 정말이지...... 너무 성실해서 탈이라니까요, 린은.
마카롱을 가득 쌓은 접시를 가운데에 두고 생수가 든 컵을 든 제 앞에, 린은 얼음이 띄워진 레모네이드 잔을 내려놓았습니다.

「이런 것 까지 신경써주지 않아도 되는데.」

「별로 그런 건 아니지만요.」

「거짓말. 린이 방금 주문하려다 취소한게 사탕(아메)이 아니라 아메리카노라는 것 정도는 이 하루카 선배는 다 알고 있답니다.」

「아, 틀켰나요?」

나이에 맞지 않게 입을 삐죽 내밀며 제가 삐진 말투를 하자, 린은 조용하게 웃으며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머금었습니다.

「그야 알지. 사실 린만이 아니었어. 어제는 미즈키... 아, 카와시마씨가 아니라 내 사무소 후배 미즈키가 왔었는데, 노골적으로 '원래부터 커피보다 건강한 과일주스를 좋아했습니다.'라고 하질 않나. 미라이랑 시즈카는 요즘 건강 챙기고 있다며 여기까지 와서는 우롱차를 주문하지...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너무 쉽게 보인다니까.」


「후훗. 모두들 이런 건 처음이고 잘 모르니까요. 다들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도 왠지 조심하게 되는 거 아닐까요?」

「그건 그렇지만... 카페 주인을 앞에 두고 노골적으로 커피를 피하는 모습을 보면 많이 복잡한 기분이 들어.」

한탄인지 아닌지 스스로도 잘 모를 말을 하며 저는 붉은 색 마카롱을 입에 넣었습니다. 린 역시 파란색 마카롱을 집어 들었습니다. 아, 참고로 이 짙은 파란색 마카롱은 원래 디저트류 색감으로는 영 아니어서 빼려고 했지만... 제 동료와 후배들의 강력추천으로 메뉴에 넣은 것입니다. 정작 사가는 건 그 추천자인 치하야와 린, 시즈카 밖에 없지만요.

그렇게 달콤한 마카롱을 앞에 쌓아 두고, 저와 린은 간만의 담소를 나눴습니다. 사실 이렇게 린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드문일이 아닙니다. 아이돌 활동을 할 때 부터 린과는 친분이 있었고, 결혼을 하고 나서 장만한 집이 우연히 린의 집과 가까운 곳이었기에 평소에도 자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은퇴를 하고 난 뒤 카페를 개점하려고 할 때 이 가게를 추천해 준 사람이 다름 아닌 린이었습니다. 조용하고 어딘가 포근해지는, 린과 함께 처음 이 카페에 왔을 때 딱 제가 원하던 곳이라 보자마자 아무런 고민 없이 결정을 했습니다.

-저 카페는... 제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고 있었을 때, 제가 열중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을 수 있게 한 곳이에요. 제가 열중할 수 있는 일과, 지금은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 그 모두와 처음 만났었던 소중한 곳입니다.-

나중에 왜 린이 저에게 이곳을 추천해 주었는지 물었을 때 린이 한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 가게는 린에게 있어서 정말로 중요한 추억을 간직한 곳 같습니다.
이렇게 가게를 추천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처음 개점을 했을 때 아네모네를 한 가득 가져와 선물한 아이도, 제가 아이돌이었을 시절의 영향으로 카페가 너무 많은 사람으로 붐빌 때(주로 여학생들) 스스로 나서서 정리를 해 준 것도 린입니다.(아무래도 제 카페 근처의 여고는 린의 모교인 것 같습니다)

「뭐랄까. 린 한테는 항상 신세만 지는 것 같네.」

「신세는요. 저야말로 처음 데뷔하고 나서 계속, 지금까지도 하루카씨의 신세를 지고 있는 걸요. 지금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하루카씨는.」

「하하하. 지금의 나는 그저 평범한 카페 언니일 뿐인데.」

「그 카페 언니가 고작 1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전 인구가 알고 있는 슈퍼 아이돌이었다는 건 전혀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요.」


정말이지... 말은 정말 잘한다니까요, 린은. 차갑고 이지적인 외면과는 다르게, 속은 이렇게 남을 배려하고 상냥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저희는 평화로운 오전의 한때를 같이 보냈습니다.


7.

한가한 담소를 나누고 슬슬 린이 다음 스케쥴로 가야할 때, 린이 돌아서서 말했습니다.

「아, 이왕 온 김에 케이크 한 조각 사 가도 될까요?」

「응, 물론이야. 아직 막 준비중이라 어제 만들어 놓은 것 정도 밖에 없긴 하지만...」

「괜찮아요. 그럼, 어떤 걸로 할까...」

린은 익숙하게 조각 케이크를 진열해 놓은 곳으로 가서 안에 있는 제 작품들을 찬찬히 바라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조금은 긴장하면서 바라보는 아마미 카페의 주인. 린은 별로 그런 의도가 아니겠지만, 진지한 눈으로 제가 만든 케이크를 바라보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왠지 평가받는 기분이 들어서 항상 긴장하게 됩니다.

「으음. 여기 이 가운데 있는 초콜릿 케이크로 해도 될까요?」

「응, 이거 말이네.」

잠시 후 린이 주물할 것을 선택하자 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리고 약간의 기쁨을 느끼면서 케이크를 포장할 도구를 꺼냈습니다.

「가져갈 건 한 조각이면 돼?」

「아......」

유리문을 열면서 물어본 저의 말에 린은 입을 열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다시 입을 닫았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만든 초콜릿 케이크를 보면서 어딘가 고심하는 듯한 표정. 저는 그런 린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린?」

「아...네... 그게... 2조각으로 부탁할 게요. 똑같은 걸로요.」

「아, 응. 두 개네. 알았어.」

어딘가 멍하게 있던 린에게 말을 걸자, 린은 그제야 나를 다시 바라보고는 약간은 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을 잠깐 본 저는 린의 주문을 받고 포장을 하기 위해 자리로 갔습니다.

「흐응...」

어느 덧 익숙해진 포장을 하면서 살짝 곁눈질로 린을 쳐다봤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린. 하지만 아이돌과 카페 주인이라는 직업을 합친 제 사회경력은 10년. 제 직감이, 방금 린의 반응은 재밌는 무엇인가를 예감하게 했습니다. 제 머리속에 떠오른 건, 아이돌 시절, 몇번이고 마주했었던 덩치가 크고 조금은 인상이 사나운 한 남자.
 이건, 한 번쯤 눌러볼 가치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자, 여기. 다 됐어.」

「아, 네. 감사합니다.」

초콜릿 케이크를 담은 상자를 카운터 위에 두자, 린은 제 쪽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린이 상자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 저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린의 프로듀서씨, 겉모습과는 다르게 달콤한 거 좋아했었지?」

「......읏//////」

아, 정답이었습니다. 제가 살짝 흘린 말에 린은 멈칫하더니, 아까까지 조신하고 침착한 모습과는 다르게 눈에 띄게 당황하고는 얼굴을 붉혔습니다.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응? 뭐가 아니라는 거야? 나는 그저 린의 프로듀서는 단 걸 좋아했었지~ 라고 말한 것 뿐인데. 응? 혹시 다른 의미라고 생각했어?」

「그, 그건 맞지만 그런 게 아니라...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죄송합니다! 머, 먼저 실례할게요!」

붉어진 얼굴을 숨기며 빠른 걸음으로 가게문을 열고 나서는 린을 저는 카운터에 기대며 즐겁게 바라보았습니다. 린은 이제 어엿한 성인 여성이지만, 이럴 때는 아직 풋풋한 소녀같은 모습을 보여주니까 볼때마다 언제나 흐뭇해지곤 합니다.

「우으으으으음! 오늘도 벌써부터 좋은 일 했네~.」

저는 상쾌한 기분으로 기지개를 켜고, 계속하게 가게 개점 준비를 하러 오븐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븐에서는 벌써부터 맛있는 향기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8.
「응, 다 됐다.」

다양한 과일로 장식 된 새하얀 생크림 케이크. 거기에 마지막 데코레이션을 올리면서 저는 만족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마에 살짝 맺힌 땀을 닦아내며 시계를 보니 벌써 2시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가게를 둘러보면 창가에 온화하게 앉아 계신 할머님 한 분 밖에 없어 한적하지만, 그런 이곳도 이제 하교시간이 다가 온 만큼, 조금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딸랑~-

「어서오세... 어머나?」

「안녕하세요, 하루카 선배.」


「시호구나! 이게 얼마만이야?」

열리는 가게문에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던 저는 시호를 보고 저도 모르게 목소리 톤이 올라갔습니다.

「그렇네요. 전에 시어터에서 라이브 할 때 보러 오셨으니까, 이제 딱 1달...」

「아이 참. 그렇게 구체적인 기간을 물어 본 게 아니잖아. 시호를 만나서 기뻐서 하는 말인데 좀 받아줘.」

「...네, 그렇네요. 저도 오랜만이에요, 하루카 선배.」

「응!」

언제나 진지한 시호를 그렇게 마음을 놓게 하고 저희는 다시 한 번 인사했습니다. 아, 참고로 시호가 항상 이러는 건 아닙니다. 저희 765 프로 시어터에 정식으로 들어왔을 때는 언제나 굳어있고 진지했지만, 요즘에는 동료들을 상대로 편하게 대하고 농담도 하면서 많이 순해졌습니다. 다만 아직 저를 상대할 때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깍듯하게 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시 저희의 첫 아레나 라이브 때를 아직도 신경쓰고 있는 걸까하는 기분은 들지만,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으음...」

「응?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 생일 축하드려요. 여기, 선물.」

「아? 응. 고마워...」

시호는 어딘지 망설이는 듯한 모습으로 조용히 양손에 든 바구니를 건냈고, 저는 잠깐 멈칫하고 그것을 받았습니다. 안에 든 것은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운 과일들. 레몬, 오렌지, 귤... 그리고 다양하게 보기만 해도 침샘을 자극하는 새콤한 계열의 과일들이었습니다. 그것을 빤히 본 저는 얼마 후, 왜 시호가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돼버려 저도 모르게 그만 웃어버렸습니다.

「......푸훗...!」

「자, 잠깐만요, 하루카 선배! 갑자기 왜 웃으시는 거죠?!」

저의 반응에 얼굴을 붉히는 시호를 보며, 역시 그랬구나 하고 확신을 가졌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연상인 저조차도 밀릴 것 같은 강한 인상을 가진 아이지만, 이렇게 보면 정말로 순진하고 착한 아이구나하고 세삼스럽게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게... 후훗. 정말, 시호는 상냥하구나~ 하고 느끼게 돼버려서 말이야. 미안, 결코 놀리려거나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

「그런가요... 사실 이럴 때 무엇을 드려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이런 과일이 가장 낫다고 하길래 백화점에서 사온 건데요. 계시던 아주머니도 이렇게 가져가면 좋아할 거라고...」

뺨을 긁적이는 시호의 말에 현재 가장 잘나가는 아이돌 중, 가장 쿨뷰티하다고 소문이 난 미녀 보컬이, 백화점 과일매장에서 진지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며, 그리고 아주머니의 조언을 받으며 하나하나 과일을 고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푸훗...! 후...! 시호가... 시호가 말이지...!」

「그, 그만 웃으세요 선배!」

웃음을 참지 못하는 저와, 아까보다 얼굴을 더 붉히며 어쩔 줄 몰라하는 시호. 아아, 정말. 이 아이는 알면 알수록 쿨하기 보다는 귀여운 것 같습니다. 전에 린이 말했던 '카미야 나오'라는 아이도 이런 느낌일까요.

「저기, 주인 아가씨. 여기 뭐 하나 부탁하려고 하는데...」

「후... 아,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주머니! 미안, 시호. 잠깐만 기다려 줄래?」

「하아... 네.」

그렇게 웃던 저는 잠시 시호를 기다리게 하고, 주문판을 가지고 할머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는 테이블로 갔습니다. 할머님께서는 가게 메뉴가 어떤 디저트를 말하는 건지 잘 모르셔서 저에게 물어보려고 부르신 것 같았습니다. 할머님께서 원하시는 간식거리를 여쭤보고, 무엇인지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내오는 저. 그 모습을 시호는 카운터 앞에 서서 왠지 빤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미안, 기다렸지?」

「별로 오래 기다리지도 않았는 걸요. 신경쓰지 마세요.」

「으음... 오랜만에 와 줬는데 이렇게 세워두는 것만으로는 미안한 걸. 차라도 한 잔 마시고 갈래?」

「죄송합니다. 바로 이 다음에 음악방송 촬영이 있어서, 사실 여기에 오래 있을 시간이 없어요.」

「그렇구나... 아, 그렇지. 여기 이거 가져가. 세리카가 오늘 부탁한 케이크. 라이브 투어 결정된 거 축하해!」

「아, 이거군요. 감사합니다.」

제가 자신있게 만든 3사람을 위한 케이크를 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받고 카드를 건냈습니다. 사실 동료나 아이돌 시절의 친구들한테 돈을 받기가 싫어서 한동안 실랑이를 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돈 관련은 친한 사람일 수록 확실하게 해야해!' 라던 이오리의 일침에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게 되었습니다.

 

 
「저기...」

「응? 왜 그래, 시호?」

케이크를 받고 가게를 나서려다, 갑자기 다시 몸을 돌려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 시호에게 저 역시 그 아이의 눈을 마주보았습니다. 시호가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건, 정말로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밖에 없다, 고 이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말해줬습니다. 잠깐의 침묵 후, 시호는 말했습니다.


「하루카 선배... 역시 카페 일, 그만 두실 순 없나요?」

「흐응?」

시호는 진지하게 저를 바라보며 하는 말에 저는 눈을 깜빡였습니다. 조금은 느닷없는 말에 당황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지만, 잠깐 생각해보고 이내 시호의 생각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이돌을 은퇴할 때, 시호가 했던 그 말.



-꼭 그만두셔야 하는 건가요?-


...정말이지, 너무나도 상냥하고, 너무나도 정이 많은 아이입니다.



「...미안해, 시호. 내 대답은 그 때랑 같아.」

「그런가요...」

「응. 시호한테는 언제나 고마워. 아이돌을 그만 두고, 평범한 카페 주인이 된 나를 필요로 해 줘서. 함께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어설픈 모습만 보였던 이 한심한 선배를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해줘서. 그리고 나를 필요하다고 해주는 시호, 그리고 765 프로덕션 모두에게 정말 고맙고 사랑하고 있어. 이렇게 나를 지지해주고 도와준 소중한 동료들, 그리고 시호와 다른 아이들이 만약 나를 필요로 한다면 무슨 일이든 도와주고 싶어. 모두와 함께 하고 싶어. 이건 진심이야. '아마미 하루카'의 진심.」

「......」

「하지만... 지금의 '나'의 욕심을 말하자면... 조금만. 잠시만 지금은 모두와의 행복이 아닌 나만의 행복을 찾게 시간을 주지 않겠니? 모두와의 행복을 괄시하는 건 아니야. 으응, 그럴리 없는 걸. 모두와 함께 해온 시간들. 모두와 함께 섰던 스테이지. 모두와 함께 봤던 그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 기회가 허락한다면 설령 그 방법이 아이돌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라고 해도, 모두와 함께하고 싶어. 다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광경... 이 작은 카페에서 보이는 광경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걸으면서 보이는 광경... 지금은 그걸 조금 더 보고 싶어.」

「... 그렇군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는 시호. 하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시호를 보며 저는 마음 한켠이 조금 욱신했습니다.

「미안해... 이기적인 선배라.」

「아니에요. 저야말로 죄송했습니다. 괜한 말을 꺼내서.」

「아니야. 오히려 정말, 정말로 기뻤어.」

「그다지, 이번으로 포기하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요. 어차피 지금 당장은 하루카씨도 힘들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요.」

「그렇네... 조금은 유예기간이 필요할까나...」

「하지만 딱 1년이에요? 다음번에 왔을 때도 귀찮게 물어볼테니까, 각오해 두시는 게 좋을 걸요?」

「아하하... 응. 기다리고 있을게.」

숨을 크게 내쉬면서 지금은 털어 놓겠다는 듯한 시호를 보고, 저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짤랑이는 가게문을 열고 시호가 나갔지만, 저는 한동안 그 문에서 눈을 떼놓지 못했습니다.
저만의 행복을 찾는다는 어찌보면 한없이 이기적인 선택을 한 저는 정말로 나쁜 여자인 것 같습니다. 동료들 모두의 도움을 받았으면서, 저를 지지해 준 팬 분들의 사랑을 받았으면서, 저는 결과적으로 저를 사랑한 모두의 기대를 뒤로 하고 단 한명의 곁에 서 있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 놓았습니다. 후회하진 않습니다. 만약 제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해도, 분명 같은 선택을 할 겁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지금이 너무나도 행복하니까요.

미안해, 시호. 미안, 얘들아. 그리고 미안해요, 모두들. 이런 제멋대로인 저라서.


9.
3시가 넘으니 카페에도 사람이 많아져, 저는 바쁘게 돌아다녔습니다. 하교시간이 되자마자, 제 카페를 찾아주는 여학생들로 인해 카페는 그럭저럭 테이블을 채울 수 있을 정도였고, 케이크는 하나 둘 씩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여자아이들한테는 단 것이 필수 영양소인 것 같습니다.

「?」

그렇게 정신없게 주문을 받고 케이크를 포장하던 저는 문득 카페 창문 너머로 보이는 수상한 인형을 눈치챘습니다. 봄인데도 불구하고 더워보일 만큼 몸을 가리는 가디건에 기다란 갈색 치마. 이마 아래까지 푹 쓴 모자에 짙은 선글라스까지 낀 사람.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이는 사람이 자꾸만 흘끗흘끗 카페 안쪽을 보고 있었습니다. 누굴까요? 처음에는 저를 찍으러 온 파파라치나 열성팬인가 했지만, 그것도 꽤나 전에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잠잠해진 후로는 요즘엔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 잡혔다.」

설령 악덕기자나 파파라치라고 해도 이미 익숙해진 터라 그냥 무시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니나 다를까 그 수상한 사람한테 갑자기 나타난 경찰 아저씨 두분이 다가갔습니다. 매섭게 수상한 사람을 보고 추궁을 하는 경찰아저씨를 보며, 언제나 고생하시는구나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을 하면서 영업으로 돌아가던 중, 가게 문이 살짝 열렸습니다.

-딸랑~-

-...왔는데.-

-....에요! 전 절대 수상한 사람이...!-

「응?」

잠깐 열린 가게문 너머로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돌려 다시 창 밖을 바라보자, 경찰 아저씨들 앞에서 팔을 바둥바둥 거리며 어떻게든 해명을 하려고 하는 듯한 20대 여성. 당황한 나머지 얼굴에 낀 선글라스가 살짝 흐트러졌고, 그 덕에 저는 그 너머로 제가 아는 아이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즈키?」




「우우우. 심한 꼴을 당했어요...」

「하하하... 고생했어, 우즈키.」

저는 346 프로덕션의 간판 배우가 수상한 사람으로 몰려 경찰서로 체포되었다는, 가십기사 1면으로 손색이 없는 그런 위기에서 벗어나 안도의 한숨을 쉬는 우즈키에게 핫밀크를 내었습니다.
 5시 30분이 넘은 카페에는 어느세 사람이 모두 빠져나갔고, 진열대에 남은 건 몇 조각의 케이크와 파이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한적한 곳에 저희는 오늘 아침 린과 앉았던 자리에 자리잡았습니다.

「저희 프로듀서씨는 이런 기분을 항상 느끼고 계신거네요...」

「그러고 보니 전에도 이 근처에서 잡힐 뻔 하셨었지, 우즈키네 프로듀서씨... 응?」

우즈키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자 그 안에 숨겨져 있던 우즈키의 폭신폭신한 머리카락이 사르르 내려왔습니다. 그 머리결을 속으로 감탄하면서 보던 저는 문득 머리 한쪽에 장식된 어떤 것을 눈치챘습니다.

「아직 해주고 있구나, 그 리본.」

「아, 네. 제 보물이니까요. 스테이지에 설 때는 항상 하고 다녀요.」

우즈키의 한쪽 머리를 묶고 있는 붉은 리본. 저건 저희 765프로덕션과 346프로덕션이 함께한 돔 라이브가 끝난 후, 우즈키와 미라이의 부탁으로 제 머리에 있던 걸 하나씩 준 것입니다. 그 뒤로 시간이 흐르고, 저는 은퇴를 했지만 아직까지도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우즈키와 미라이는 제 리본과 함께 열심히 연예계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즈키와 미라이... 수많은 동료들과 후배들이 있지만, 어쩐지 이 두 사람에게는 더 마음이 가는 것 같습니다. 잘은 표현할 수 없지만... 함께 했던 시간동안,  별다른 특징이 없는 평범한 저를 항상 따라주고 언제나 저와 같은 사람이 되겠다며 저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애정을 표현해주는 고마운 아이들입니다.

「아, 맞다. 그리고 정말로 생일 축하드려요, 하루카씨! 그리고,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응, 고마워, 우즈키.」

「그게... 사실 선물을 사오려고 했었는데 뭐가 좋을지 알 수가 없었어요... 꽃은 벌써 린이 선물했다고 했고,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 볼까 했더니 생각해 보니 하루카씨가 더 잘만드셔서...」

「아니, 괜찮아. 이렇게 우즈키 얼굴 보는 것만으로 큰 선물이야.」

「그래도, 이대로라면 제가 너무 죄송한데... 뭔가 하나 해드릴 수 있는게 없을까요...?」

「으음... 그러면 여기서 우즈키가 가장 마음에 드는 케이크 몇 조각만 사줄래? 사실 오늘은 평소 이상으로 다 잘 만들어져서, 전부 내 자신작이거든.」

「그렇군요... 그럼, 한 두 조각 살 바에야 여기 남은 디저트 전부...!」

「아니아니아니! 그건 내가 너무 미안하게 되버려 우즈키! 애초에 다 먹을 수 없잖아!」

「아... 그렇네요!」

「정말이지...」

제 앞에서 유독 폭주하는 일이 많은 우즈키를 제지하며 저는 제 자신작들을 우즈키에게 보여줬습니다. 우즈키가 찬찬히 케이크를 관찰하는 것을 보며, 저는 아침에 린 때와 같은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역시, 친한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건 저도 모르게 더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으응...으음...」

어쩐지 평소 이상으로 고민하는 우즈키. 왜 저렇게 고민하는 걸까, 의아해진 저는 그저 멍하게 케이크 선택을 하고 있는 우즈키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걸로 할래?」

「으음... 응! 정했어요. 하루카씨, 여기 이 초콜릿 케이크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초콜릿 케이크로?」

우즈키의 선택에 저는 제가 만든 초콜릿 케이크를 보고 잠시 생각에 빠졌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우즈키가 고른 건 오늘 아침, 린이 사간 것과 거의 똑같은 모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다지 특별한 건 아닐테고, 우연일 가능성도 배재할 수는 없지만...
 분명, 우즈키는 초콜릿도 좋아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그 옆에 있는 생크림 딸기 케이크였을텐데...
......이건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기, 우즈키. 혹시 이따가 우즈키네 프로듀서씨랑 만나?」

「에?! 어떻게 아신 거에요, 하루카씨?」

「그리고 2조각 사갈거지?」

「하루카씨, 혹시 독심술 쓰실 줄 아시는 건가요?!」

「흐흠~. 다른 사람은 아니더라도 우즈키의 마음 정도는 읽을 수 있을까나~.」

제 말에 눈이 휘둥그래지며 놀라는 우즈키. 정말... 이 아이는 어쩌면 이렇게 알기 쉬운 걸까. 순진한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심정으로 우즈키를 보면서 저는 조금 고민했습니다. 저는 딱히 어느 누구를 편드려고 하진 않습니다. 두 아이 모두 정말 저에게 소중한 친구들이니까요. 하지만 이번엔... 린이 먼저 선수를 친 만큼 이럴 땐 후발주자인 우즈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어야 공평할 것 같습니다. 미안해, 린...

「으음... 우즈키. 사실은 말이야. 내 개인적으로는 초콜릿 보다는 이 쪽 생크림 케이크가 더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해.」

「에? 그런가요?」

「응. 사실 이번에 새롭게 시도를 해 봤는데 말이야. 이쪽 생크림, 설탕을 조금 더 넣어봤거든. 여자의 직감이지만, 이 쪽이 우즈키네 프로듀서씨가 더 좋아하지 않을까 생각해.」

「그렇군요... 네. 하루카씨가 그렇게 말하신다면 이쪽으로 할게요.」

케이크를 사는데 프로듀서씨 쪽을 더 신경쓰는 건 부정하지 않는구나... 이 천연스러운 점이 우즈키와 린의 큰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상반된 성격을 가진 두 사람,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누구보다도 닮은 린과 우즈키의 사이에서 저는 조금은 복잡한 기분을 가진채로 포장용 상자를 꺼내 케이크를 포장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제 모습을 빤히 쳐다보며 케이크가 준비되는 것을 바라보는 우즈키.



「후훗...」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사실 알고 있기는 하지만, 우즈키는 여자인 제가 봐도 빠져들 것 같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정말이지...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것 만으로 저렇게 밝은 미소를 짓는데, 대체 어느 누가 눈치를 채지 못하겠어요?


-딸랑~-

「아, 어서오세...」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저는 반갑게 인사를 했지만, 문 앞에 서있는 사람을 보고 저도 모르게 포장하던 손을 멈추고 말았습니다.

「어, 시마무라씨?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두 사람. 그리고 차례대로 두 사람의 시선은 저에게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우즈키한테는 미안하지만 저의 시선은 우즈키가 아닌 단 한사람에게 고정되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알고 있었을텐데. 이 시간에 돌아온다는 건 어제 전화로 연락 받았을텐데. 출장가기 전에는 언제나 저를 마중하러 나왔었는데. 단 며칠을 보지 못한 것 만으로, 그리고 이렇게 다시 만난 것 만으로 이렇게나 행복한 기분이 올라오는 전 괜찮은 걸까요?
할 말을 잃고 잠시 멍하게 있던 저를 살짝 바라보고 우즈키는 아까와는 다른 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마 그렇겠죠. 지금의 저는 방금 전의 우즈키처럼 '너무나도 알기 쉬운 미소'를 하고 있을테니까요. 우즈키는 살짝 카운터로 가, 아직 포장이 덜 된 상자를 대충 갈무리 하고는 도망치듯이 가게문으로 도도도 걸어갔습니다.

「죄송해요, 왠지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아, 하루카씨. 이건 잘 먹을게요.」

「어라? 벌써 가시나요?」

「네. 사실 약속이 있어서요. 전 이만!」

「아, 시마무라씨! 다음 합동 라이브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도 잘 부탁드려요! 그리고 하루카씨, 파이팅!」

요란하게 가게문을 닫으며 나간 우즈키. 그리고 텅 빈 카페에는 저와 그 이만이 있었습니다. 뭐랄까, 왠지 어색한 기분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며칠이나마 보지 못한 그이를 두고 '보고싶었다.' 라고 해야 할 까요? "외로웠다." 하고 당장 품에 안겨야 할까요? 왜 이렇게 늦었냐며 잔소리를 해야 할까요?
...아니, 생각해 보면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말은, 이미 할 필요도 없이 그 이도 저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부부인 저희 사이에서, 그런 마음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평범한 대화를 하면 됩니다. 그 이와 제가 지금까지 나눈, 그리고 앞으로도 나눌 그런 평범한 인사를.

 


「다녀왔어, 하루카.」

「네. 어서 오세요.」


10.

「그랬구나... 시호가 말이지...」

「네.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아직은 아닌 것 같아서요.」

그 이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길을 걸어가며, 짧지만 긴 것처럼 느껴졌던 며칠간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출장을 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라이브는 어땠는지, 미키는 이제 괜찮은지. 여러가지를 이야기하다보니, 저희도 모르게 집으로 향하는 길 중 가장 빙 돌아서 가는 곳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아이들 곁에 옛날처럼 서기에는 힘들지 않나라는 생각도 해요. 유부녀 아이돌이라니. 어딘가 이상하잖아요?」

「아니, 모르는 거잖아? 옛날 히다카 마이 처럼 다시 데뷔할 수도 있는 거고.」

「아이참. 그 사람은 별개잖아요. 제가 무슨.」

농담조로 말하는 그의 말에 저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확실히 그런 생각도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아이돌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어떤 형태로든 765프로덕션의 모두와 함께, 다시 한 번 모두와 함께 보는 멋진 광경. 그런 미래가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아니, 정말로 모르는 거잖아. 예를 들어 10년 전에는 설마 했지만, 지금의 하루카는 근사한 파티시에르가 되었고, 그리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잖아.」

「......에?」

「미래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니까... 물론 불안하기도 하겠지만.」

어째서일까... 방금 그 이가 한 말에 뭔가 중요한 것을 떠올린 기분이 듭니다. 뭐지?  어쩐지 잊고 있었던 무엇인가를 방금 들은 것 같은데...

「저, 혹시 방금 그 말. 전에도 하지 않았어요?」

「...... 기억하고 있니, 하루카? 우리 765 프로덕션, 첫 아레나 라이브 합숙때 말이야.」

「아... 아....!」

어딘가 어려운 듯이 꺼낸 그의 말에, 저는 오늘 마음 한켠에 담아 두고 있었던 무엇이 사르르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맞다, 그랬습니다. 오늘 꿈에서 보았던 그 광경. 소중했지만, 잠깐 잊고 있었던 기억. 그 이가 할리우드로 간다고 갑자기 고백한 그 날 밤, 그 이와 함께 했던 기억이었던 겁니다.

「......그때는 농담으로 꺼낸 말이지만, 최근에 문득 떠올랐어. 정말로, 그 때 내가 한 말이 실제로 되었구나, 라고. 하루카는 스스로의 가게에서 파티시에르로 모두에게 달콤한 꿈을 주고 있고, 지금은 내 옆에 이렇게 있어주는 훌륭한 아내잖아.」

「하하. 왠지 부끄럽네요.」

「사실이잖아. 그런데, 그와 동시에 문득 생각이 났어.」

말을 잠깐 끊은 그 이는, 하늘을 잠시 바라보았습니다. 저도 따라서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곳에 있는 건 아레나 라이브 합숙때 봤던 수많은 별들이 아닌, 조금은 흐린 밤하늘.


「단 하나 만큼은, 잘 모르겠어. '10년뒤의 하루카는 지금만큼, 아니 지금보다 더 빛나고 있겠지.' 라고 한 말.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하루카만큼, 스테이지에 서서 모두의 환호를 받던 아이돌이었던 '아마미 하루카' 만큼, 지금의 하루카를 반짝반짝하게 빛내고 있는가... 하는 건.」


「......」

다시 고개를 푹 숙이는 그를 보며, 저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렇구나. 여태까진 잘 몰랐지만 부담을 가진 건 저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돌 아마미 하루카'

그 존재에 대해. 저만이 아니라 제 남편도 고심을 많이 한 것입니다. 이럴 때는, 저랑 이 사람은 정말로 닮았구나,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갑자기 찾아온 침묵. 이제는 많이 어두워진 길거리에는 가게의 간판의 불빛이 저희의 길을 비춰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옆을 지나가고, 차가 지나가는 동안, 저희 둘은 그저 조용히 발을 맞추어 걸어갔습니다.




「프로듀서씨.」

「......」

오랜만에 부르는 호칭에, 프로듀서씨는 조금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 뭔가 그립네, 그런 호칭.」

「후후. 왠지 저도 그렇네요.」

어쩐지 낯간지러워지는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야, 무려 1년만에 이렇게 불러보는 걸요. 하지만, 지금은 이걸로 괜찮습니다. 지금 제 진심을 전하는 데는 '하루카' 보다는 '아마미 하루카'로 있는 쪽이 더 나으니까요.

「전에... 결혼하고 나서 저희 집에 집들이 했을 때, 미라이가 저에게 한 말이 있어요. 그게 뭔지 아세요?」


「미라이가? 뭔데?」

「'하루카씨는 지금은 어쩐지 아이돌이 천직이 아닌 것 같아요' 래요.」

「뭐야 그게, 좀 심한 말이잖아.」

「에헤헤. 그런 것 같죠? 그런데 그 뒤에 미라이가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음?」

"멋진 의상을 하고,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넓은 스테이지에서 모두의 환호를 받고 있는 하루카씨보다, 지금 여기서 프로듀서씨를 위해 요리를 하고 있는 하루카씨가 더 아름답게 웃고 있으니까" 라고.」

「......」

내 말에 프로듀서는 멍하게 있더니, 이내 쑥스러운 듯이 뺨을 긁적였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저도 쑥스러움에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정말이지, 미라이는 가끔씩 이렇게 정곡을 찌르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니까요.



「프로듀서씨.」

「...응.」

「저는, 지금 너무나도 행복해요. 물론 아이돌을 하고 있을 때도 정말로 행복했고, 스테이지 위에서 본 관경들도 너무나도 아름다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프로듀서씨의 곁에서 프로듀서씨와 함께 살아 간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해요. 물론 파티시에르 일을 하는 것도요. 지금이 너무나 소중하고,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선택을 할 자신이 있어요. 저는... 이런 제가 그 때보다 더 빛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고마워. 그렇게 생각해줘서.」

「확실히 가끔은 모두와 함께 다시 일을 하고 싶기도 해요. 지금 열정적으로 하는 파티시에르 일도, 시간이 지나면 제멋대로인 저는 다시 765 프로덕션으로 돌아가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그 때 다시 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불안하지만... 하지만 그 때는, 그 때는 저를 다시 프로듀스해 주실 거잖아요?」

「...응. 물론이지.」

 

 

「앞으로도 제 곁에서, 수많은 관경을 보여주실 거죠? 프로듀서씨.」

「그래, 맞겨둬. 하루카.」



그래, 이걸로 됐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서로 손을 맞잡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앞으로 제가 파티시에르일을 계속하던, 아니면 다시 765프로덕션으로 돌아가 모두와 함께 다시 스테이지에 서던, 아니면 그것과 다른 또 다른 일을 하던.
미래는 무한합니다. 그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이 사람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라면, 저에게는 어떤 가능성이라도 이룰 수 있습니다. 프로듀서씨와 함께 있다면, 어떤 길이든 즐거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그와 함께 하는 지금을 소중하게.

후회가 없게.




Epilogue

「아, 그러고 보니 하루카의 선물을 못 사왔네.」

「괜찮아요. 출장 갔다와서 바빴잖아요? 그리고 저도 이 나이가 되어서 선물을 기대하는 건 버린지 오래고.」

「아니, 그래도 아니지. 1년에 한 번 밖에 없는 날인데.」

「으음... 정말로 괜찮은데...」

「그래도 바라는 건 있지 않아?」

「있다고 한다면, 지금은 당신이랑 빨리 집으로 가서 저녁식사를 하고 싶다는 것 정도일까요?」

「그렇게 이야기해 주면 난 기쁜데... 그래도 생일이니만큼, 뭔가 특별한 선물같은 걸 주고 싶어지잖아. 지금까지 가지고 싶었지만, 없었던 거라던가.」

「......후훗. 그런 거라면 당신에게 이미 받았는 걸요?」

「응? 무슨 말이야?」

「그거 말이에요, 지금까지 없었지만 가지고 싶었던 가장 특별한 것. 이미 당신에게서 받았어요.」

「내가? 언제? 나는 기억이 없는데...」

「...헤헤. 그럼 지금 바로 확인하러 갈래요?」





「여기 있는 저희 가족, 이렇게 3명이서.」





집에 돌아오고 나서, 저는 프로듀서씨와 함께 린이 준 꽃의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루피너스의 꽃말. 그것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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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달렸습니다... 이 이상은 무리...(털썩)

처음에는 아이돌인 하루카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오랜만에 극장판을 재탕을 하고 나니 바네P의 대사에 왠지 꽂혀서 재구성을 해보았습니다.

10년 후. 아이돌이 아니게 된 하루카는 어떨까. 과연 그때도 프로듀서는 하루카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하루카는 행복할까.

그런 생각에 이 글을 만들었습니다.

힘들었지만 하루카를 위해 펜 하나 들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생일 축하해, 하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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