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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lipse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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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3-20, 2016 22:15에 작성됨.

 
 
 
 역신. 
 사람들은 저를 그렇게 부르곤 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불행했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제 나이가 많은 건 아니지만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은 다들 나지 않는 법이니까요. 요컨대, 기억이 날 정도의 어릴 적부터 제 주위에는 언제나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그 전부터 그랬을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단순히 운이 없다고 하기엔 악의적일 정도의 불운입니다. 물론 1년 365일 모든 행동의 결과가 나쁜 건 아닙니다. 그랬다가는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발목을 접질리고 넘어지고 하늘에서 화분이 떨어지곤 해서 이미 살아 있을 수가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때다 싶을 때는 반드시 불운이 뒤따릅니다. 보드게임을 예로 든다면, 주사위가 1만 나오는 건 아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나와서는 안 될 숫자가 나와버립니다. 도둑 잡기를 한다고 뽑는 족족 조커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조커를 뽑고 꼴찌가 되어버립니다. 
 
 이런 불행들이 게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면 웃어넘길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새 옷을 사서 처음 입은 날에는 꼭 길을 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서 옷이 찢어졌습니다. 아이스크림을 사면 어딘가에 부딪혀 떨어트리고 맙니다. 우산을 깜빡하고 가지고 오지 않은 날은 항상 비가 쏟아집니다. 그런 불행들이 항상 제 주변에는 가득했습니다. 
 
 불운과 불행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보통 불운한 사 람은 불행하게 됩니다. 그 주변 사람까지도요. 너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불운을 당사자인 저는 어느정도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몰랐지만 다른 사람들은 저 때문에 불행해진 것이니까요. 
 
 
 학교에서는 다들 저를 멀리했습니다. 클래스메이트는 물론 선생님들까지도요.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수시로 사고를 일으키며 피해를 주는 저를 가까이할 사람은 없었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저를 도와주는 아이도, 위로해주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점점 저 때문에 다치거나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자 그 아이들의 호의는 점점 소극적으로 변해갔습니다. 그 이후는 저를 싫어하는 다른 여자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남자아이들은 어째서인지 저를 도와주고는 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여자아이들의 괴롭힘은 심해져 갔습니다. 저는 이상하게도 위로나 호의를 보이는 것보다 그 아이들이 괴롭히는 게 마음이 편했습니다. 제가 불행하게 만들어버린 사람들에게 속죄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어떠한 보상도 해줄 수 없는 제가 유일하게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운명은, 아니면 불행을 가져오는 어떤 존재는 그런 방식의 행복조차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를 괴롭히던 아이들 중 한 명이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학교 학생들과 부모님들, 그리고 선생님들이 모인 장례식에서 그 아이의 어머니는 제 뺨을 때리며 내 아이를 돌려내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있던 그곳에서 그 아이의 부모님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탓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제가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도 학급 내에서 저에 대한 괴롭힘이 있었던 건 사실로 밝혀졌으니까요. 모두가 침묵하고 한 아이의 어머니만이 절규하는 그곳에서 제 부모님은 연신 죄송하다며 허리를 굽힐 뿐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리 죄송한 일이었을까요. 오히려 왕따 가해자에게 정의로운 천벌이 내렸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저 자신도 그저 죄송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이 모든 건 저 때문이었으니까요. 
 
 
 그때부터 저는 역신이 되었습니다. 저를 괴롭히던 아이도, 위로해주던 아이도, 어물쩍거리며 말을 걸던 남자아이도 모두 제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출석을 부를 때 저주의 주문을 읊는 것처럼 힘들게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교과서의 몇 페이지를 읽어보라거나 수학 문제를 풀어보라는 것 같은 지명은 일절 없었습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무시를 당하는 괴로움보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좋았습니다. 그만큼이나 어린 시절의 제게 클래스메이트의 죽음은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숱한 불행을 겪었지만 사람이 죽을 정도로 큰 사고는 그때까지 일어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시간이 흐른 후에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 사고가 꼭 저 때문이라는 법은 없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있을 테고, 우연히 그 아이가 사고를 당한 것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주위의 모든 사람이, 심지어 저마저도 그 사고가 제 불행 때문이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진실이야 어찌 되었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냐 하는 문제니까요. 
 
 그 무렵 저에 대한 태도가 급변한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부모님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걱정스러움이었다면 그 사건 이후로는 외면과 좌절로 바뀌었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의 딸이 살인자가 되었다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나무라면서도 저와는 말 한마디도 나누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째서인지 두 분에게 저는 살인자가 되어있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다시 생각해보면 두 분은 너무 착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자신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한 아이의 죽음에 당신들께서는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그 사고회로에 더 이상 저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저는 역신이었으니까요. 
 
 이싱한 점은 그렇게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너무 괴로워서 죽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나라는 사람이 사라진다면 다른 사람들이 불행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마다 제게 손을 내밀어 줬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극단적인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서는 몇몇 상냥한 친구들이 그랬습니다. 그리고 사건 이후에 학교에서 고립된 후에는 마치 타이밍을 기다렸다는 듯이 저를 필요로 해주는 사람을 한 명 만났습니다. 
 
 
 - 
 
 
 어느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그 날도 언제나처럼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는데 쏟아지는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새파랗게 푸르던 하늘은 갑자기 지독한 먹구름으로 들어찼고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더니 곧이어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리기 시작한 비를 피하려고 저는 어느 건물 아래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가 언제 그칠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우산을 살 돈도 없었고 가방을 제외하고는 비를 막아줄 만한 물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비가 그치지 않아서 언제까지 기다릴 수도 없다는 생각에 감기에 걸릴 각오를 하고 비를 맞으며 돌아가려는 때였습니다.  
 
 “혹시 우산이 없어서 그런 거니?” 
 
 검은색의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3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약간은 붉은빛을 띄는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맨 것과는 대조적으로 헤어스타일은 지나치게 자유로운 것이 특이했습니다. 신발도 검은 구두가 아닌 유명 브랜드의 스니커즈였습니다. 마치 정말로 입기 싫은 양복을 억지로 입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누구세요...?" 
 
 저는 그 남자의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누구인지를 물었습니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사람이 먼저 말을 걸어오면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별건 아니고. 그냥 곤란해 보여서 말이야."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반대쪽 손의 검지로 톡톡 두들기며 말했습니다.  
 
 "별로 할 일도 없어서 말이지. 나도 우산이 필요하긴 해서 너한테 줄 수는 없지만 네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정도는 괜찮으니까." 
 
 저는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수상한 남자라서가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그 남자에게까지 제 불행이 옮을까 두려웠습니다. 
 
 "아, 아뇨. 괜찮아요." 
 "그, 그래?" 
 
 제가 단호하게 거절할 줄은 몰랐는지 남자는 당황한 표정이었습니다. 머쓱한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애써 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냥 돌아가려고 했지만, 호의를 거절한 직후에 그렇게 행동하는 건 너무 남자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남자가 여기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고 그저 뒤에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때때로 이쪽을 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대놓고 쳐다본다기보다는 남자를 신경 쓰는 저와 비슷한 마음으로 저를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여기서 혼자 서 있는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요. 
 
 가만히 기다린 지도 30분이 넘었지만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그냥 비를 맞고 집에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눈을 꼬옥 감고 앞으로 한 발짝 내딛자 그 남자는 다시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안 되겠다. 방금 보니 그냥 비 맞으면서 가자고 생각했던 것 같고." 
 
 남자는 검은 우산을 펴더니 제 옆에 붙어서 섰습니다.  
 
 "...감사합니다." 
 
 불행이니 뭐니 말을 꺼내면 더 이상한 아이로 보일까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다른 사람을 말려들게 했으면서 또다시 남에게 기대고 말았습니다. 
 
 거리로 다시 나서자 우산 위에 빗방울들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두 사람의 발이 길 위에 조금씩 고여있는 빗물을 밟고 찰박찰박 엇박자로 소리를 내는 것과 잘 어울려서 제법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산이 커다란 이유도 있었고 제 체구가 작기도 해서 두 사람 다 비를 맞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대신 키 차이만큼 보폭의 차이도 크게 나서 저는 평소보다 제법 빠르게 걸어야 했습니다. 
 
 "거기엔 왜 서 있던 거야?" 
  
 오랜만에 들어보는 타인의 부드러운 목소리였습니다. 항상 짜증이 섞인 화난 목소리만 들어왔던 저에게 남자의 목소리는 감미로울 정도였습니다. 
 
 "그게... 그냥 비를 피하려고..." 
 "그런다고 거기서 한참을 서 있는단 말이야?" 
 
 놀란 듯한 목소리가 되돌아왔습니다. 어디까지나 걱정이 섞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기다리던 다른 이유가 있던 것도 아니었고 저는 아무 말도 더 할 수 없었습니다. 
 
 "저.... 그...." 
 "응? 왜?"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요?" 
 
 저는 상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습니다. 아저씨라는 호칭은 남자가 젊은 나이로 보여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고, 그렇다고 초면에 오빠 같은 호칭은 너무 무례할 것 같았습니다. 
 
 "아, 그랬지. 이거, 내가 실례를 했네." 
 
 그렇게 말하면서 품 안에서 명함을 한 장 건네줬습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평범한 명함에는 남자의 이름과 직책, 전화번호 같은 것이 쓰여 있었습니다. 
 
 "예능... 프로듀서...?" 
 "정확히 말하면 예능 사무소의 프로듀서지. 가수나 모델이나 아이돌 같은 거 있잖아. 요즘은 차이점도 그렇게 확실하지 않고 애매하긴 하다만." 
 
 저는 예능 프로듀서라는 직업을 듣고 나서야 그 사람의 어울리지 않는 양복의 의미를 깨달은 동시에 굉장히 놀랐습니다. 아이돌이나 모델 같은 건 TV 속의 다른 세상에나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직접 관계자와 만날 일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프로듀서 씨라고 불러도 되나요?" 
 "그렇게 부르는 게 좋다면 그렇게 해." 
 
 왠지 제가 프로듀서 씨의 이름을 입에 담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초면이기도 하고 친분도 없었기에 조금 조심스러운 아이로 보였을 뿐인지 프로듀서 씨는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프로듀서 씨...는 왜 거기에 서 계셨나요?" 
 "회사의 일이 있어서 좀. 기다려야 할 사람이 있었거든. 뭐, 그동안에는 할 일도 없어서 너를 데려다줄 수 있는 거지만." 
 
 프로듀서 씨는 무덤덤하게 말하더니 핑거 스냅으로 딱 하는 소리를 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못 들었네. 아가씨는 이름이 어떻게 되려나?" 
 
 갑자기 아가씨라고 부르니 왠지 부끄러워졌습니다. 
 
 "시라기쿠 호타루...라고 해요." 
 "시라기쿠? 국화의 그 시라기쿠?" 
 
 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다지 좋은 이름은 아니었으니까요. 
 
 "국화에 반딧불이라. 좋네. 예쁘고." 
 
 프로듀서는 이번에도 웃으며 말해주었습니다. 의외였습니다. 흰 국화를 뜻하는 시라기쿠라는 성은 조의를 표하는 국화가 떠올라서 재수가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기 때문입니다.  
 
 "시라기쿠 쨩...이라고 부르면 되려나?" 
 "...그냥 호타루라고 불러 주세요." 
 
 저도 자신의 것이지만 시라기쿠라는 성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사람을 말해준다는 것처럼 제 불행을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였습니다. 
 
 "그래서 말이지, 호타루 쨩." 
 
 프로듀서의 말은 처음 보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데도 어색한 느낌도 없이 친근했습니다.  
 
 "혹시 이쪽에서 일해볼 생각은 없어?" 
 "…...네?" 
 
 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쪽? 무슨 일을 한다는 걸까요? 
 
 "우리 사무소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이야기야."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듣고 나서도 저는 멍하니 프로듀서 씨를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사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습니다. 
 
 “아, 아뇨… 저 같은 게 무슨…” 
 
 그렇다고 이거 사기 아니냐는 말을 대놓고 할 수도 없었으니 저는 난처한 듯 완곡하게 거절했습니다. 게다가 저 자신도 제가 아이돌 같은 게 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 그런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해도 오히려 의심스러울 뿐이겠지. 사기가 아닐까 라던가.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해. 오히려 곧바로 대답하는 쪽이 이상한 거겠지?” 
 
 프로듀서는 자신의 행동을 천천히 되짚어보는 것처럼 뺨을 어루만졌습니다.  
 
 “그럼 이런 건 어때? 내 명함에 회사 주소가 적혀있거든. 생각이 있으면 와서 한번 견학을 해보는 걸로.” 
 “그럼 그렇게 할게요.” 
 
 저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적당히 넘긴 것이었지만 프로듀서 씨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 주제가 조금은 불편해서 더는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프로듀서 씨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호타루 쨩 정도라면 분명 통한다니까. 인기도 많을 거고. 매력이 있어. 다른 판에 박힌 아이돌들이랑은 다르니까.” 
 
 저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습니다. 어릴 적에 부모님이 이쁘다 하며 칭찬해주시던 걸 제외하고는 누군가에게 외모로 칭찬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쪽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자신을 꾸미지도 않았고 제가 매력이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거, 거짓말이죠?” 
 
 순간 자신을 속이려 하지 말라는 말까지 튀어나올 뻔 해서 황급히 입을 다물었습니다.  
 
 “아냐. 정말이라니까. 호타루 쨩은 아직 어리지?” 
 
 저는 정확한 나이를 말하지는 않고 그저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호타루 쨩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표정을 짓는다고 해야 하나. 기분 나쁘게 듣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슬픈 체념이 느껴져. 호타루 쨩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르는 내가 함부로 말할 만한 일은 아니지만. 여튼, 사람은 밝고 활기찬 모습에서도 매력을 느끼지만, 어둡고 슬픈 모습에서도 나름대로 매력을 느낀다는 거야. 그런 슬픔을 간직하면서도 귀여운 호타루 쨩이라면 분명 다른 비슷한 나잇대의 아이돌들보다 훨씬 가치 있다고 생각해.” 
 
 프로듀서 씨는 기세를 탄 듯 열정적으로 설명했지만 저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나이 어린 아이들도 많이 있나요?” 
 
 프로듀서 씨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게 변했습니다. 제 질문이 프로듀서 씨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여서였을까요. 호기심이라는 이름의 관심이 생긴 것에 대해선 부정할 수 없었지만요. 
 
 “그럼. 요즘은 아이돌이라고 해도 노래하고 춤추는 일만 하는게 아니니까. 모델처럼 촬영을 하기도 하고, 배우처럼 연기를 하기도 하고, 게닌처럼 버라이어티에 나가기도 하는걸. 어린 나이에 아이돌이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레슨에 매진하는 아이들도 있고. 호타루 쨩보다 어린 아이들도 많이 있어.” 
 
 웃으며 이야기하는 프로듀서 씨에게 저는 일단은 선을 그어놨습니다. 
 
 “아직 하겠다고 말한 건 아니니까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익숙한 건물이 보였습니다. 붉은 벽돌로 된 담장이 인상적인 2층짜리 집이었습니다. 여기서 모퉁이를 돌아 옆으로 난 골목길로 조금만 더 가면 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비, 별로 맞지 않았어요.” 
 “오, 호타루 쨩네 집이 여기야?” 
 
 프로듀서 씨는 예의 붉은 벽돌집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아니요. 그래도 거의 다 왔어요.” 
 
 친절하다지만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집의 위치까지 알려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직접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프로듀서 씨는 다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생각 있으면 명함에 쓰여 있는 번호로 전화하고.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저는 고개를 크게 숙여 인사를 하고 우산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중간에 뒤를 한 번 돌아보니 프로듀서 씨는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다시 모퉁이를 하나 돌고 나서 집에 도착했습니다. 잠깐 비를 맞았지만, 다행히 옷은 크게 젖지 않았습니다. 가방을 반쯤 벗어 앞으로 돌려매고 앞쪽의 작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냈습니다. 익숙한 동작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무도 없는 빈집의 싸늘한 공기가 저를 맞이했습니다. 
 
 “다녀왔습니다.”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습관적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려는데 그만 미끄러져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매끈한 재질의 바닥에 빗물이 흘러들어와 미끄러져 버렸던 겁니다. 그대로 앞으로 넘어져 쾅 소리를 내며 머리를 부딪쳤지만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언제나 아픔만큼은 익숙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옷이 조금 젖어서 앉아서 신발을 벗었다가는 현관이 더 더러워질 테니 다시 일어서서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나서 집에 들어온 저는 걸레를 찾은 후에 다시 현관으로 돌아와 물기를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더는 미끄럽지 않은 걸 확인하고 나서야 저는 제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젖은 옷을 하나씩 벗어 세탁물 바구니에 모아두고 저는 몸을 씻었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기운이 가시기 전에 파자마로 갈아입고서 침대에 누웠습니다. 그리고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왠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저 말고도 다른 모두도 혼자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눈을 뜨니 어느새 바깥이 어두웠습니다. 저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시계를 살펴보니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미 부모님도 돌아와 계실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조용히 주방으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이미 부모님은 저녁을 드신 모양이었습니다. 음식 냄새가 났지만 이미 다 먹고 치워버린 듯싶었습니다. 그제야 배가 꼬르륵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부턴가 부모님은 저를 있는 듯 없는 듯 미묘한 태도로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식사 시간에 제가 같이 밥을 먹어도 아무런 시선도 보내지 않습니다. 제가 없다면 두 분이서 식사를 하십니다. 만약 제가 밥을 먹는 도중에 실수로 그릇을 깨도 두 분은 잠시 그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다시 돌립니다. 두 분에게 그건 ‘모르는 일’이니까요. 
 
 냉장고를 열어보니 다행히 샌드위치 하나가 남아있었습니다. 저는 그걸 들고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로서도 부모님을 마주치는 일은 달갑지 않았습니다. 저는 두 분을 미워하지 않았지만 그분들이 저를 바라보는 시선은, 저를 뚫고 지나서 그 너머를 보는 듯한 공허한 시선은 마주하기 싫었습니다. 
 
 언젠가,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서 살 수 있다면 그런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될 테니까요.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을 테니까요. 혹시나 제가 사는 곳에 불이 난다거나 하는 불행한 일이 생길 수도 있었지만 그만한 규모의 불행은 이전의 그 사고를 제외하고는 그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문득 생각이 나서 세탁물 바구니에 있던 옷을 뒤져 명함을 찾아냈습니다. 잠들었던 탓인지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이이돌이 된다면 혼자서 독립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아이돌은 집에 들어갈 시간도 없을 테고 여기저기 이동해야 하는 일이 많아서 본가에 좀처럼 돌아가기 힘들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습니다. 저는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왕 도전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전화를 하기보다 직접 사무소로 찾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명함을 보니 그리 먼 곳은 아니었습니다. 
 
 학교를 하루 조퇴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제 '불행'으로 인해 하루 조퇴를 하는 일이 생기는 일이 있어도 그다지 이상할 건 없을 겁니다. 오히려 다들 좋아하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샌드위치 하나를 다 먹은 저는 다시 침대에 누웠습니다. 방금까지 자다 일어나서인지 아니면 설렘 때문인지 그날은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ㅡ 
 
 예상한 것처럼 학교를 조퇴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HR 시간에 그 날 아침 등교하다가 넘어져서 생긴 무릎의 상처를 보여드리며 다리가 너무 아파 조퇴하겠다고 말하자 선생님은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선생님의 밝은 미소였습니다. 무릎에 생긴 상처 같은 건 수업을 받는 데에 큰 지장이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 웃으며 저를 보내주신 건 조금이러도 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서 불행해질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안도의 미소였겠지요. 
 
 그래도 다리가 전혀 아픈 것은 아니라 프로듀서 씨의 사무소를 찾아가는 동안 걷는 데에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버스를 탄다면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거리였지만 걸어서 가려니 한 시간 가까이나 걸렸습니다. 그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는 했습니다. 제게는 너무 익숙한 일이어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넘어진 것 때문에 찢어지고 피가 조금 묻은 스커트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던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저도 그런 시선을 눈치챘지만, 길에서 옷을 갈아입을 수도, 갈아입을 옷도 없었기에 그냥 고개를 숙이고 걸었습니다. 저를 바라보며 수군거리는 소리도 모르는 체했습니다. 무시를 당하기만 하던 제가 다른 누군가를 무시하다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익숙해지고 무릎의 상처가 조금씩 쑤셔올 때쯤 저는 프로듀서 씨의 사무소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7층짜리 빌딩이었습니다. 혹시나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야쿠자들의 사무실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지만, 빌딩 앞쪽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4층에 프로듀서 씨의 명함에 적혀있던 사무소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한참이나 늦은 생각이었지만 사기는 아니었나 보다 싶었습니다. 
 
 빌딩 안으로 들어가서 저는 계단을 찾았습니다. 바로 앞에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왠지 모를 불안함에 선뜻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했습니다. 비상계단은 뒤쪽에 화장실로 통하는 복도 사이에 있었습니다. 무릎이 아팠지만 한 계단씩 걸어 올라갔습니다.  
 
 4층에 도착해서 잘 쓰이지 않는 비상계단의 문을 열자 엘리베이터 앞쪽에 사무소의 문이 보였습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사무소의 모습은 굉장히 평범한 것이었습니다. 번쩍번쩍 호화로운 것도 아니었고 대리석으로 된 고급스러운 곳도 아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무실이었습니다. 조금 다른 점은 여자, 사무소의 아이돌로 보이는 사람의 포스터들이 붙어있거나 했습니다. 
 
 “저기, 어떻게 오신 분인가요?” 
 
 유리문에 붙어서 안을 살펴보고 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말을 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습니다. 
 
 “아, 저, 그게…” 
 
 2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여자였습니다. 머리는 엷은 갈색빛을 띠는 검은 머리를 길지 않은 보브컷으로 정리해두었고, 흰색 블라우스 위에 검은 블레이저를 차려입고 있었습니다. 제법 높은 힐을 신었지만 그래도 원래 키가 큰 것인지 170cm가 넘는 모습은 단정한 미인 모델처럼 보였습니다. 친절해 보이는 그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제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분을 만나러… 왔는데요” 
 
 저는 프로듀서 씨에게 어제 받은 명함을 건넸습니다. 여자는 제가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는지 더욱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어머, 왠지 귀엽다 했더니. 프로듀서 씨는 어디서 이런 아이를 찾았대?” 
 
 여자는 한 손으로 문을 열면서 한 손으로는 제 손을 잡고 저를 안으로 이끌었습니다. 
 
 “프로듀서 씨는 안에 있으니까 일단 들어와요.” 
 
 들어와서 살펴봐도 그다지 큰 사무소는 아니었습니다. 방이 따로 세 개 정도 있고 안쪽으로 보이는 곳에는 개인 책상이 다섯 개 정도 놓여 있었는데 다들 바쁜 것인지 책상 위에는 서류들만 가득했고 책상의 주인들은 모습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요." 
 
 여자가 가리킨 곳은 세 개 있던 방 중에서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이었습니다. 다른 두 개의 방은 사장실과 응접실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이 방만큼은 아무 팻말도 붙어 있지 않았고 진한 갈색의 나무문 대신에 차가운 느낌의 회색 철문으로 닫혀있었습니다. 
 
 "프로듀서 씨-" 
 
 저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에 여자가 갑자기 프로듀서 씨를 부르면서 문을 열자 당황했습니다. 갑자기 프로듀서 씨의 얼굴을 보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졌습니다. 사무소까지 걸어오면서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연습했지만 전부 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어라?" 
  
 고개를 숙일 틈도 없이 눈앞에 나타난 건 창고로 보이는 방 안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프로듀서 씨의 모습이었습니다. 무언가의 자료가 빼곡히 들어찬 커다란 책장 앞에 작은 사다리에 올라가 책장의 맨 윗단을 정리하고 있는 프로듀서 씨는 가벼운 셔츠 차림이었습니다. 
 
 "호타루 쨩!" 
 
 프로듀서 씨는 저를 보고 반갑게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아마도 아이돌이 되기로 결정한 건 그때 프로듀서 씨의 웃음을 본 순간이었을 겁니다. 누군가의 웃음이 다른 사람을 이렇게나 따뜻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걸 느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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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쓰려던 글을 여기저기서 소재를 조금씩 받아 쓰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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