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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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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8, 2016 01:59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5월 11일

일이 있어서 안즈가 오전 수업만 받기로 한 날이다. 앞으로 이런 날이 점점 늘어날 테지. 학교를 쉬는 건 환영이지만 그 대신 일을 해야 한다. 학교를 하루 통째로 쉬어도 어딘가에서 하루 통째로 일을 해야 한다. 딜레마.

"안즈 쨩! 데뷔하셨다고요?!"
그리고 쉬는 시간에 쉴 수 없는 딜레마. 이 아이, 히노 아카네를 무시하면 다른 아이들의 태도가 신경 쓰여 쉴 수 없고, 상대하면 아카네의 텐션에 영향을 받아 쉴 수 없다.

"별거 아니야. 그냥 무대에 서서 잠깐 춤추고 노래했어."
"무대! 우오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삼바!"
"시, 시끄러워……."
아카네의 커다란 성량이 안즈를 습격했다. 안즈는 두 귀를 막고 노골적으로 질색했지만 아카네는 그걸 본 척도 안 한 채로, 아마 안즈가 질색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로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관객 반응은 어땠나요? 매스컴에서 취재하러 왔어요? 혹시 드라마에 출연할 예정인가요? 럭비 경기 축하 공연 예정이 잡혔나요?"
"관객 반응은 썰렁했고, 취재 가능 공연이 아니었고, 아직 드라마와 럭비 경기 축하 공연을 할 예정 같은 건 없어. 신인이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머지않아 그렇게 되겠죠?"
"글쎄?"
안즈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 나서 아카네에게 질문의 화살을 돌렸다.

"전에도 물어본 것 같지만 그렇게나 아이돌에 관해 흥미가 있어?"
"톱을 노리는 건 무엇이든 좋아요! 존경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저, 노력하는 걸 좋아하니까요!"
"아아, 뜨겁다. 뜨거워. 안즈한테는 너무 뜨거운 열기야."
"그거 큰일이네요! 제가 공책으로 바람을 부쳐드릴게요!"
안즈가 만류할 틈도 없이 아카네가 안즈에게 바람을 부쳤다.
생각보다 시원하고 편했다.

"여기에 바나나 우유랑 빵이 있으면 최고겠는걸."
"그건 직접 사와야죠."
"아니, 시키려던 건 아니었어. 그냥 그렇다고."
본심이 튀어나올 뻔했다. 안즈는 본심을 갈무리해 가슴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저기, 안즈한테 이런 식으로 매번 말 거는 거 질리지 않아?"
"질리다뇨, 전 노력하는 사람이 좋아요! 질릴 리가 없죠!"
노력하는 사람?
혹시 안즈를 말하는 건가?

안즈는 그렇게 이해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안즈가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에이 설마……."
"제가 보기엔 안즈 쨩은 충분히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쉬는 시간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렸다.

안즈도 이제 노력하는 사람…….인가?
어째 정체성을 부정당한 기분이다.

다음 과목 교사가 교실에 들어왔고 학생들이 반장 지시에 맞춰 교사에게 인사했다.

오늘 예정은 CD 판촉 사인회.

타워레코드 시부야 점에서 이벤트를 열었다. 입구 근처에 책걸상 부스를 설치하고 고객이 CD를 가져오면 사인을 해주는 이벤트였다. 안즈는 의자에 가만히 앉아 사람들이 입구를 지나가는 걸 구경하듯이 보기만 했다.

타워레코드를 들락거리는 손님은 많았지만 이벤트 부스로 온 손님은 여태까지 한 명도 없었다.

"프로듀서, 이거 망한 거 아니야?"
"아직은 무명이니까."
프로듀서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래도 시부야 타워레코드 정도면 지리적으론 좋은 편이지. 좋은 장소를 잡을 수 있던 건 행운이었어."
"기재를 못 쓰는 것만 빼면……. 말이지."
오늘 타워레코드의 업체용 스피커는 점검 중. 사무소에도 음향기기가 있지만 반출 허가가 나질 않았다. 대신 프로듀서의 태블릿 PC가 책상 위에서 조촐한 음량으로 곡을 연주한다.

"운반도 직접 하겠다는데 쩨쩨하게 말이야."
프로듀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이것도 그 사내정치의 여파인가? 안즈는 그렇게 생각하며 따분한 시선을 허공으로 향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랬다.

화창한 날씨다.

하늘을 보고 있자니 안즈의 의식이 조금씩 시간을 역행하기 시작했다. 프로듀서와 함께 점장과 인사를 나눈 것, 프로듀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타워레코드까지 온 것, 사무소를 나선 것, 사무실에서 프로듀서와 합류, 출근, 외출, 옷을 갈아입고, 귀가, 조퇴…….

-제가 보기엔 안즈 쨩은 충분히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학교에서 아카네가 이런 소리를 했었지…….

"프로듀서, 안즈 지금 노력하고 있어?"
아무것도 안 하면서 늘어진 목소리로 안즈는 그렇게 물었다.
"응, 충분히 노력하고 있어."
"왠지 말이야."
안즈는 그렇게 말한 다음 뜸을 들였다. 나무늘보처럼 늘어지면서.
프로듀서는 안즈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정체성을 부정당한 느낌이 든단 말이지……."
"에이, 전에 말했잖아. 노력을 아예 안 할 순 없다고."
"아니이,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말하긴 어려운데, 노력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간지럽단 말이야."
"어디가?"
"가슴 한구석이."
프로듀서는 턱을 긁적이다가
"쑥스러워서 그런 건가?"
태연하게 말했다.

"쑥스러워서 그런다고?"
"응, 내가 보기엔 그래."
"잘 모르겠는데……."
"나야 네가 하는 말을 듣고 추론하는 거니까 틀릴 수도 있어. 어쩌면 정확한 원인은 너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게 아닐까?"
"그걸 모르겠다니까."
"하하, 잘 생각해봐. 조언 정도는 해줄 테니까.“
이미 알고 있지만 인식을 못 하는 상태?

"역시 잘 모르겠어."
상실감이 찾아왔다. 상실감, 상실감이라…….
상실감을 끌어온 건 무엇일까…….

그리고 그와 상반되는 감정이 안즈의 가슴 속에서 존재를 주장한다.

미쿠의 라이브를 봤을 때 생겨났던 작은 불씨. 이건 안즈가 느끼고 있는 상실감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태어나 안즈의 가슴에 자리 잡았다.

상실감과 불씨를 새삼스럽게 인식하니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못하게 됐다. 뭐라도 하고 싶어졌다.

"프, 프로듀서!"
"왜?"
안즈는 프로듀서를 다급히 불러봤지만, 할 말이 없었으므로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프로듀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프로듀서를 부른 게 효과가 있었는지 가슴이 안정되었다. 안즈는 이야기를 계속하기로 했다.

"프로듀서!"
"응, 듣고 있어."
이야기를 잇고 싶다. 화제가 필요했다. 안즈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주변엔 화젯거리가 될 만한 별난 물건이나 사건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타워레코드 시부야 점밖에…….

"아, 맞다! 프로듀서, 타워레코드야! 타워레코드!"
"그 대사 형식은 돔에 갔을 때를 대비해서 남겨두는 게 좋지 않을까?"
"아니, 그러니까 타워레코드라고."
"타워레코드가 왜?"
"나 참, 사이버 슬루스!"
그때야 프로듀서도 안즈가 뭘 말하는지를 깨달았는지 손뼉을 쳤다.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는 타워 레코드와 콜라보네이션을 한 게임이다. 게임 내에 타워레코드 맵이 등장하고 타워레코드 관련 이벤트와 타워 레코드의 마스코트 캐릭터까지 등장한다. 게임 정보가 풀렸을 때부터 알려진 정보였다.

"아 그랬지! 딱 떠올리지 못했네."
"게임에서도 나오잖아. 여긴 성지라고."
"아직 게임 내에서 못 봐서 바로 떠올리지 못 했나봐."
"어? 꽤 초반부터 갈 수 있는 맵인데? 프로듀서 지금 챕터 몇이야?"
"아직 챕터 1……."
"완전 초반이잖아! 안즈는 지금 용제 엑자몬과 싸우기 직전이야!"
엑자몬은 챕터 16에 맞붙는 디지몬이다.

"안즈가 여기까지 틈틈이 플레이하는 동안 뭘 했어?"
안즈는 하도 어이가 없어 화를 냈다. 게임 발매일은 3월 12일. 안즈와 프로듀서가 처음 만났던 날. 그리고  오늘은 5월 11일. 벌써 2개월 가까이 지났다.

"미안, 안즈를 위해 일을 하느라……."
프로듀서는 지극히 유감스럽단 투로 고개를 푹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이건 안즈가 잘못했다. 안즈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여 사과했다.
사람들이 묘한 눈초리로 안즈와 프로듀서를 흘겨보며 지나간다.
안즈는 의자에 털썩 앉은 채로 책상에 엎드렸다.

"이게 아닌데……."
"뭘 하려고 했는데?"
"가슴이 답답하다고. 마치……. 그……. 아, 그래 그거야. 초조해! 안즈는 지금 초조해.“
"초조함인가, 하긴 지금 시점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게 더 이상한가."
그렇게 큰 무대를 체험했으니까. 후유증이 찾아온 거겠지.

"머리로는 알고 있어. 안즈는 지금이 시작이다.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했지……. 안즈도 이해했어. 근데 가슴이 답답한 게 사라지질 않아. 안즈가 지금 노력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안 서."
"지금 시점에선 결과가 안 나오니까. 당연한 이야기야.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그렇지. 그래서 더 괴리감을 느끼는 것 같아. 알고는 있는데 이렇게 느끼니까."
"안즈는 게임을 할 때 말이야, 처음부터, lv1 때부터 목표를 정해두고 하는 타입이야?"
"아니, 그냥 하는데? 어느 정도 하고 나서 정하거나……. 끝까지 그냥 하거나 그러지."
"게임할 때 초조감을 느껴?"
안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해?"
"게임은 재밌으니까."
안즈는 즉답했다. 고민할 필요 없이 즉시 나오는 답이다. 프로듀서가 입을 열었다.

"여유는 즐거움에서, 즐거움은 곧 여유에서. 나는 안즈에게 즐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여유와 즐거움이라, 하지만 게임과 일은 다르다.
안즈가 그렇게 말하자 프로듀서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다고 누가 정했어? 일과 게임은 다르다? 물론 공과 사는 구분해야겠지. 일은 장난이 아니야. 돈이 오가니까. 책임이 오가니까. 하지만 일을 즐기는 자세로 하지 말라는 법은 없어."
그런가? 프로듀서의 말은 그럴싸하게 들렸지만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프로듀서의 말은 안즈의 마음 바로 직전에, 1mm를 남겨둔 시점에서 멈추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 1mm의 거리가 단숨에 줄어들었다.

프로듀서의 말이 안즈의 마음을 푹 찔렀다.

"너는, 아이돌이야! 다른 무엇도 아닌 아이돌! 아이돌은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직업이야. 그 특권을 살리지 않는 건 아깝지 않을까?"
안즈는 아이돌. 아직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아이돌이다.

안즈가 아이돌이라는 실감은 이미 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중압감, 압박감, 그리고 정체불명의 의욕에 의한 실감이었다.

아이돌이란 직무에서 배어 나온 쓴맛만이 안즈의 혀에 감돌고 있었다.
당연하다. 달콤한 과실이 맺히기엔 아직 이르니까. 안즈는 이제 막 묘목을 심은 수준이다. 결실을 보려면 아직 멀었다.

신인 아이돌, 햇병아리 아이돌, 새파란 아이돌, 새싹 아이돌. 성장하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그 시간 동안 즐기지 말란 법은 없다.
프로듀서의 말이 안즈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아이돌의 특권을 살린다고 해도 말이지. 프로듀서, 이런 상태에선 즐길 수나 있을지 의문이야."
입으론 그렇게 말하면서 초조감이 해소된 걸 가슴으로 느끼며 안즈는 제법 편하게 웃었다.

"하긴 그도 그렇군. 좋아, 그럼 말 나온 김에 게임을 할까?"
"일하는 중이잖아? 그래도 돼?"
"물론 진짜 게임은 하면 안 되지. 리듬게임 좋아해?"
"어느 정도는……."
프로듀서는 태블릿 PC의 음악 플레이어를 종료시켰다.

"안즈의 노래 멜로디 흥얼거려봐. 다 외웠지?"
"외우긴 했지만……. 알았어. 잠시만.“
안즈는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그리고 프로듀서가 멜로디에 맞춰 맨손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책상을 손바닥으로 치고 손가락으로 두드리다 손날로 친다. 그 소리가 안즈가 흥얼거리는 소리와 합쳐져 난폭한 음악을 만들었다.
안즈는 흥얼거리던 걸 멈췄다.

"프로듀서, 뭘 하는지는 대충 알겠는데 박자가 자꾸 어긋나."
"어라? 그래? 으음, 역시 학생 때처럼 잘 안 되나?"
"학교에서 이런 걸 했어?"
"요즘 애들은 안 해? 나 때는 쉬는 시간에 심심하면 자주 했어. 호응도 꽤 있었다고. 스톰프의 일종 같은 느낌으로 말이야."
"뭐 나는 학교 잘 안 갔으니까. 어쩌면 안즈가 못 봤을 뿐일지도 모르겠네. 그건 그렇고 프로듀서. 하고 싶지 않아 부분에서 좀 더 자도 괜찮잖아잖아잖아 부분까지 자꾸 어긋나."
안즈는 그렇게 말하고 책상을 두드렸다.

"이렇게."
"이렇게?"
프로듀서가 안즈를 따라 두드렸지만.

"아니, 좀 다른 느낌인데……. 이렇게 말이야."
안즈는 다시 혼자서 책상을 두드렸다.
"이런, 잘 모르겠다. 시범을 보여줘 봐."
"알았어. 잘 들어봐. 시, 싫어! 난 일하지 않을 거야!"
안즈는 가사를 흥얼거리며, 손으로 책상을 두들겨 때렸다. 책상을 두드리는 난폭한 소리에 맞춰 흥얼거리던 노래의 성량이 점점 커졌다.

"놀고 싶어~ 자고 싶어싶어~ 24시간 연중 유휴~"
지나가던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췄다. 조금 멀리 있던 사람들도 멈춘 사람들을 보고 호기심에 한둘씩 이쪽으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안즈는 노래와 손장난에 한창 빠져들었으므로 그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즐겁게, 좋은 표정으로 집중했다.

"뭐 재밌는 거라도 있어?"
"야 여기 봐봐. 어떤 애가 스톰프 하면서 노래 부른다."
"아이돌인가?"
"귀엽게 생겼다."
"특이한 노래네."
"누구야? 후타바 안즈? 들어본 적 없는데……."
핸드폰을 꺼내 이 광경을 촬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안즈의 손동작에 맞춰 발을 구르는 사람들도 있다.

안즈가 손으로 내는 비트가 절정에 달했다. 비트가 끊기며,
"이런 꿈을 꿨어."
마무리 가사.

그리고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우왓, 뭐야? 뭐?!"
안즈는 깜짝 놀라 그만 자리에서 넘어질 뻔했다.
부스를 둘러싸고 수십 명의 사람이 손뼉을 친다.

"안즈, 지금 소감이 어때?"
프로듀서가 킥킥거리며 물었다.
안즈는 가까스로 정신을 가다듬곤 대답했다.

"솔직히 당황스러운데……."
"그럼 책상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했을 때의 감상은?"
"어……. 좀 재밌었어."
"지금 안즈에게는 그걸로 충분해. 그걸 네 동력으로 삼는 게 어때?"
"한번 하고 나니까 귀찮아졌어……."
"하하, 제멋대로인걸? 하지만 그게 너야.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니트 아이돌. 그게 바로 너야. 안즈."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핸드폰을 보였다.

핸드폰에 트위터 앱이 켜져 있는데, 346 프로덕션 공식 계정으로 로그인 되어 있었다. 계정 타임라인 최상단에 동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업로드 시간은 조금 전. 내용은 안즈가 인파에 둘러싸여 스톰프 공연을 하는 동영상. 프로듀서가 안즈 옆에서 찍은 동영상이다.

"이거 봐봐. 지금 엄청 RT 되고 있어."
"프, 프로듀서……. 처음부터 설마……."
“사람들이 모여든 건 예상외였지만.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이지. 홍보용으로 잘 써먹을게. 자, 여기 사탕."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사탕 하나를 건네주었다. 골든캔디가 아니었다. 평범한 사탕.

"아아, 뭐 재밌었으니 상관없나."
안즈는 사탕을 보고 항의하려는 걸 관뒀다.
"저기요, 지금 이거 사인회인가요?"
스톰프가 끝나자 줄어든 인파에서 몇 명이 빠져나왔다. 서로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 몇 명이 프로듀서와 안즈에게 질문했다.
그들의 눈에는 호기심과 약간의 흥분이 서려 있었다.

"네, 후타바 안즈의 CD를 구매하시면 사인을 해드립니다."
프로듀서는 제법 정중하고 사근사근하게 대답했다. 영업 모드다.
"CD는 안쪽에서 팔고 있죠?"
"네,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금방 올게요!"
남자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뒤에서 머뭇거리던 사람 몇 명이 그 뒤를 따랐다.
프로듀서는 트위터를 살펴봤다.

-여기 시부야 타워레코드네?
-마침 타워레코드인데 구경이나 가볼까
-노래 재밌네
-신인 아이돌인가? 무슨 컨셉?
-사인회?
-놀러 가볼까

프로듀서는 핸드폰을 끄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자아, 그럼 안즈. 본격적으로 일할 시간이다."
"좀 쉬면 안 될까?"
"사람들 없으면."
"어쩔 수 없구만."
안즈는 결국 가게의 CD 재고가 품절될 때까지 사인했다.

5월 13일

"어제 트위터 보니까 그 트윗 3000RT 넘은 것 같던데?"
"어디 보자……. 지금 기준으론 3500RT 넘었군."
"그럼 홍보 많이 된 거 아니야? CD도 품절됐었고."
"홍보 효과는 있지만 아직 한참 부족하지. 품절된 건 시부야 점에서 파는 재고만이었고. 애초에 재고를 그렇게 많이 뽑은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이 방송은 너무 하드하지 않아?"
"자자, 신인 때는 어쩔 수 없어. 될 수 있으면 많은 곳에서 어필을 해야 하니까."
"알았어. 어쩔 수 없네."
안즈는 프로듀서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서, 스튜디오 무대에 올랐다. 간편한 운동복 차림으로.

오늘 안즈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이름은 '아이돌 필살 전력 어필 대전' 신인 아이돌들이 출연하는 방송이다. 안즈 외 다른 아이돌 몇 명도 긴장한 얼굴로 무리 지어 서 있다.

메인 MC가 무대에 나타나고 스태프들이 무대에서 빠져나온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촬영 개시의 신호가 올라갔다.

"오늘도 시작했습니다! 아이돌 필살 전력 어필 대전! 메인 MC를 맡은 나카노 유카입니다!"
메인 MC는 가라데복의 검은 띠를 꽉 졸라매며 기합을 냈다.

안즈는 MC의 기합소리를 듣고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였다. 다른 아이돌들도 마찬가지. 표정은 웃고 있지만 안색은 하나같이 새파래서 마치 스튜디오 한구석에 패랭이꽃 무리가 핀 것 같았다.

"아이돌의 길은 가혹한 수라의 길! 톱에 서기 위해선 이런 가혹한 수라도를 견디며 힘을 갈고 닦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이 자리에 모인 아이돌 분들은 여태까지 갈고 닦은 힘으로 대중에 이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입니다!"
안즈의 얼굴이 아예 새하얗게 변했다.
프로듀서는 그걸 보고 긴장했다.

아이돌 필살 전력 어필 대전……. 세간에선 이 방송을 근육으로 쿵! 머슬 캐슬의……. 하드 버전이라고 부른다. 아이돌 아이들이 각종 게임을 거쳐 포인트를 쌓는다.

포인트 하나당 어필 타임 1분. 프로그램 후반부에 포인트를 정산하여 아이돌들이 포인트 만큼 어필하는 형식이다.
이렇게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게임 내용이 어마어마하다.

"여어, 잘 지내고 있나."
중년 남성이 프로듀서의 어깨를 치며 아는 척을 한다.
"어라, 자리에서 나오셔도 돼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화상으론 얼마 전에 뵈었지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건 오랜만이네요. 디렉터 님."
프로듀서는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프로듀서 앞에 선 중년 남성은 이 방송의 프로그램 디렉터. 연출 책임자다.

"초반은 아직은 괜찮아. 지금은 젊은 녀석들한테 맡겨두고 있고. 요즘에야 겨우 쓸 만해져서 말이지."
디렉터는 낄낄거리며 턱짓으로 스태프들을 가리켰다. 제법 젊은 인원들이 방송에 집중하여 기재를 돌리고 있다.

"자네는 이제 우리 방송하곤 인연이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말이야."
'아, 그게……."
"우리 방송의 악명은 나도 잘 알고 있어. 한 번 나가면 근육통으로 3일은 고생한다는 식으로 말이지. 우리도 어느 정도 도를 지키고 있고 너무 심하게 굴릴 생각은 없지만, 어쩌다 보니 다들 그렇게 되더라고."
프로듀서는 어색하게 웃으며 디렉터의 이야기를 적당히 받아줬다.

디렉터의 말은 진정성 있게 들리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문제는 이 방송과 안즈의 상성.
스튜디오에 선 안즈의 표정부터가 점점 무너지려 하고 있다.

"흠, 저 아가씨인가? 우리 방송보단 차라리 머슬 캐슬에 나오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만……. 사정이 있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디렉터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프로듀서를 바라본다.

"대강 사정은 알고 있어. 우리 쪽에도 은근슬쩍 압력이 왔으니까. 우리는 재미만 있으면 누구든 쓰는 주의니까 씹었지만 말이야."
"덕분에 살았습니다."
프로듀서는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슬슬 어떻게든 하는 게 좋지 않으려나? 자네만 미움받는 선에서 끝날 이야기가 아니니 말일세."
"입지를 다져놓으면 끝날 이야기입니다. 안즈는 뜰 거예요. 그러면 그쪽도 아무 말도 못 하겠죠."
"그렇게 말하면서, 뒤로는 다 준비했겠지?"
주어를 생략하고 은근슬쩍 떠보듯이, 디렉터가 그렇게 물어본다.
프로듀서가 돌려줄 말은 이것뿐.
"글쎄요? 뭐, 예전에 쓰려고 준비했다가, 결국 쓰지 못한 게 남아있긴 합니다만."
어깨를 으쓱이면서 모른 척.

프로듀서는 시선을 안즈에게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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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후기로 쓸 말이 없네요. 재밌게 읽으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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