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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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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7, 2016 01:59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안즈 쨩, 심호흡 할 수 있어냐? 미쿠를 따라해 봐."
미쿠가 시범을 보인다. 안즈가 그걸 따라 한다.
"진정했어?"
"아, 아니……."
"그럼 한 번 더 냐!"
시범을 보이고, 또 따라 하고.

하지만 그래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호흡이 안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손은 떨리고 이는 딱딱 부딪치고 혀는 바싹 말라오고 눈은 건조해진다.

"사람이 너무 많아. 너무, 많아."
"안즈 쨩! 아이참, 긴장하지 마라니까!"
"이,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긴장 안 돼?"
안즈는 새파란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안즈의 얼굴은 미쿠를 향했지만 떨리는 눈동자는 좀처럼 미쿠의 상을 잡지 못했다.

"해. 무대에 설 때는 언제나 긴장해. 하지만 긴장보다 자신감이 더 넘칠 뿐이지냥. 그러다 보면 긴장마저 즐기게 돼. 냥."
"자신감……. 안즈는 아직 모르겠어. 미쿠는 대단하구나……."
미쿠는 안즈의 손을 잡았다.
"미쿠보다 대단한 아이돌은 지천으로 널려있어냐."
미쿠는 안즈를 살짝 포옹했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 미쿠보다 더 대단해질지 모르는 아이돌도 지금 여기 있어. 냥."
미쿠는 안즈의 귓가에 속삭였다.
안즈의 떨림이 조금 잦아들었다. 미쿠는 포옹을 풀고 안즈의 어깨를 살며시 주물렀다.

"힘이 없어도 문제지만, 힘이 너무 들어가도 문제야. 냐."
"하지만 실패하면……."
"실패해도 돼."
실패해도 된다? 안즈는 미쿠의 말이 의아했다. 그리고 그 의아함 덕분인지 순간적으로 떨림이 완전히 멈췄다. 몸에 정적이 찾아왔다. 하지만 안즈는 그걸 자각하지 못한 채로 미쿠의 말을 경청했다.

"처음이니까. 실패해도 돼. 지금의 안즈 쨩은 그런 마음으로 무대에 서는 게 중요할 거야냐."
"데뷔 무대는 중요하잖아."
"앞으로 안즈 쨩이 설 무대가 더 중요해냐."
안즈는 잠시 침묵했다. 말을 꺼내고 싶었으나 머뭇거리고 주저했다. 미쿠의 말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안즈는 그걸 어떤 형태로 만들지, 어떤 말로 만들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거랑 비슷한 조언을 P쨩이 했었어냐. 미쿠의 데뷔 무대 때."
프로듀서가?
안즈의 목구멍에 맴돌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미쿠의 데뷔 무대는 엉망진창이었어. 하지만 P쨩은 칭찬해줬어냐. 끝까지 해냈다고. 진심으로 축하해줬어냐.“
순식간에 허들이 낮아졌다.

"뭐야, 괜히 긴장했잖아."
안즈는 허탈하게 웃었다. 힘이 빠진다. 하지만 적당히 딱 좋을 정도로 빠졌다.
"긴장 풀렸어?"
"그럭저럭.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같은 사무소 동료니까 당연한 거지냐."
미쿠는 에헴, 헛기침했다.

"둘이 많이 친해졌나 보네."
프로듀서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긴장되니?"
"많이 풀렸어. 미쿠 쨩 덕분에."
"그냥 사무소 동료로서 조언해준 것뿐이야냥."
프로듀서는 멋쩍게 얼굴을 긁적였다. 미쿠는 프로듀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아까부터 미쿠는 프로듀서와 눈을 안 맞추고 있다.

"아, 응, 고마워. 미쿠."
안즈가 보기엔 프로듀서와 미쿠 사이가 굉장히 어색해 보였다.
"안즈, 지금 기분이 어때?"
프로듀서가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노골적으로 던진 화제.
안즈는 의연하게 그 화제를 받았다.

"집에 가고 싶어."
"그 마음을 노래에 담는 거야."
"어차피 그런 말을 할 거로 생각했어."
안즈는 한숨을 쉬었다. 어깨도 들썩이면서. 이제 긴장은 거의 풀린 모양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오프닝 무대 시작이야. 관객들도 다 입장했고. 무대 조율은 이미 끝났어."
"제대로 쉬고 싶었는데 말이야."
"그런 말 하지 말고……. 그건 그렇고 너 혹시 오큘러스 리프트에 관심 있어?"
"HMD 기기 말이야? 관심 있지. 버추얼 리얼리티는 게이머의 꿈이니까."
"실은 개발자 버전을 소유한 지인이 이걸 양도하고 싶다고 그래서……."
"그래서?"
"아, 다른 이야기지만 오늘 데뷔 무대가 끝나면 안즈에게 줄 선물이 있습니다. 열심히 해주세요."
"뭣?!"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지만 잘 됐네냐, 안즈 쨩."
"귀찮지만 적당히 열심히 해볼까."
슬슬 시간이 됐다. 안즈는 프로듀서, 그리고 미쿠와 함께 대기실을 나섰다. 이번엔 대기실에서 무대 앞까지 어떤 길을 통해 어떻게 걸었는지 똑똑히 인식하며 걸었다.

무대 앞과 무대 뒤가 합판과 암막으로 나누어진 공간. 무대의 경계. 안즈와 미쿠, 프로듀서는 그곳에 섰다.

"프로듀서, 뭐 할 말 없어?"
막상 무대 근처로 오니 긴장감이 다시 피어오른다. 아까처럼 긴장감에 압도당하진 않았지만 떨림이 되살아나 안즈를 조금 흔들었다.

"오늘은 너의 자기소개야.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기억나?"
"응,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지금은?"
"지금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하하, 그렇게 말하면 내가 준비한 말을 할 수 없잖아. 초기 인상은 뒤집을 수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말란 말을 하려고 했는데 말이야."
"비슷한 말은 이미 들었어. 이번엔 다른 말을 해줘."
프로듀서는 잠시 고민하더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와!"
그렇게 말했다.
"안즈 쨩, 기죽지 말고 잘 다녀와!"

안즈는 프로듀서와 미쿠의 격려를 뒤로하고 무대에 올랐다.
관객의 시선이 일제히 안즈에게 향했다. 수많은 눈알이 안즈를 주시한다.
안즈는 가슴 속에 품은 감상을 그대로 내뱉었다.

"시, 싫어! 난 일하지 않을 거야!"
관객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순식간이다. 안즈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반주에 맞춰 입을 열었다.

"일하지 않는 모든 이에게 전한다! 이건 놀이도 라이브도 아니야! 우리의 정의를 위해!"
순식간이다! 관객의 시선이 누그러졌다. 처음엔 웅성거리던 관객도 안즈의 말이 노래 가사이며 컨셉이라는 걸 이해하곤 날카로운 시선을 거두었다.

하지만 아직 긍정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당연하다. 듣도 보도 못한 아이돌이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노래를 피로한다. 무덤덤한 반응은 이미 예상했던 바다!

안즈는 노래했다. 춤췄다. 관객은 그걸 조용히 지켜봤다. 중간중간 리듬을 타고 손뼉을 치는 관객도 있지만 소수. 관객 대부분은 그저 보고만 있거나 아니면 옆 사람과 수다를 떨기만 했다.

호응은 거의 없다.
그 사실이 안즈의 가슴을 후벼 판다.

사탕 먹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이걸 계속 해야 하나?
"아, 사탕 먹고 싶어, 집에 가고 싶어, 이거 계속 해야 해?"
가사가 정확하게 안즈의 심경을 대변했다.

몇몇 관객이 킥킥거리며 비웃었다. 안즈가 감지할 정도니 그 수는 수십 명 정도였으리라.

하지만 안즈는 계속 노래했다.

사탕을 먹고 싶고, 집에도 가고 싶지만……. 노래는 계속 해야 한다.
그렇게 정했으니까.

몸을 움직이는 게 평소보다 더 힘들다. 팔다리에 무게추를 단 것처럼, 온몸이 젖은 스펀지가 된 것처럼 몸이 무겁고 체력이 평소보다 더 빠르게 고갈되어 간다. 하지만 안즈는 춤을 계속 췄다.

연습했던 것과 같은 페이스로. 팔다리가 느려지면 힘을 더 줘서 속도를 맞췄다.
관객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어. 노래 부를 거야! 안즈는 그렇게 주장하듯이 노래했다.

안즈는 반응이 없는 만큼 더욱 열과 성을 다해 노래했다. 평소라면 이렇게까지 힘을 내지 않을 텐데 오기가 생겼다. 오기로 끝까지 노래한다.

"이런 꿈을 꿨어."
안무가 끝나고 노래가 끝났다.
그러자 침묵이 찾아왔다.

이번엔 안즈의 몸이 쥐어 짜인 것처럼 지쳤다. 탈수증상이 올 것 같다. 지친 안즈는 멀뚱히 관객을 바라봤다. 구석에서 몇 사람이 손뼉을 쳤다. 그러자 박수가 주변으로 조금 번져나갔다. 무대에 모인 사람들의 수에 비하면 개미 눈물만큼의 반응이다.

안즈는 가만히 박수 소리를 귀에 담았다. 손뼉을 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안즈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광경에 홀렸다.

"여러분 안녕냐! 미쿠냥이냥! 안즈 쨩의 무대 어땠어?"
어느새 미쿠가 무대에 올라와 안즈 옆에 섰다.
그러자 관객들이 열광했다.

조금 전까지의 침묵이 증발하듯 물러가고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환상이 깨지듯 안즈의 정신이 들었다.
미쿠가 안즈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려갈 타이밍을 놓쳤어냐. 흐름을 만들 테니 적당히 호응하다 내려가냐.“
안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즈 쨩, 데뷔 무대라면서? 기분은 어때냐?"
"집에 가고 싶어."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겨!"
미쿠가 만담 스타일로 태클을 걸었다. 안즈도 대강 감을 잡았는지 미쿠의 태클에 답했다.

"그렇지만 귀찮은걸~ 빨리 집에 가서 게임 하고 싶어!"
"또 그런다. 또 또!"
"일하면 지는 거로 생각합니다! 안즈는 니트걸랑!"
관객석에서 웃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이번엔 비웃음이 아니다. 순수하게 재밌어서 웃는 웃음이다.

"네네, 지금까지 후타바 안즈였습니다냥!"
"앞으로 적당히 잘 부탁해!"
지금이다. 안즈는 무대에서 내려왔다. 미쿠가 관객의 호응을 받으며 분위기를 북돋았지만 안즈는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피곤하다. 실제 공연 시간은 겨우 2분이었지만 2시간은 계속 노래하고 춤춘 것 같다. 지금 당장 쓰러지고 싶을 정도로.

"프로듀서, 나 피곤해."
안즈는 흐느적거리며 프로듀서를 찾았지만 프로듀서가 보이지 않았다.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안즈는 투덜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프로듀서는 보이지 않는다.

"아, 이제 한계야. 피곤해."
안즈는 남은 힘을 짜서 겨우겨우 구석까지 몸을 움직였다. 무대에서 거둔 암막이 남은 건지 뭔지 천 더미가 안즈 눈에 띄었다. 안즈는 천 더미에 몸을 파고들었다. 천은 뻣뻣하고 거칠었지만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다. 순식간에 눈꺼풀이 무거워졌고 안즈는 그대로 곧바로 잠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떤 대화가 안즈의 귀에 잡혔다.

"이런 무대에서 데뷔라니, 정말 드문 사례예요."
"어떤 의미로는 건방지단 소리를 들을 만해."
20대 초반 남성과 30대 초반 남성. 목소리로 알 수 있는 정보는 이 정도. 이 두 목소리가 알람 소리처럼 안즈의 신경을 거슬렀다.

"하지만 어떻게든 무대를 준비한 점에선 대단하네요. 게다가 이렇게 대규모 무대로……."
"결국 활로를 뚫었지. 대단한 녀석이야. 그렇게 적을 많이 만들어놓고도."
"사내정치……였죠? 저라면 그런 분위기를 버티지 못할 거예요. 바로 그만뒀을 겁니다."
"신인 아이돌의 데뷔 무대마저 방해할 정도였으니까. 보통 눈엣가시가 아니란 거겠지. 하지만 한번 활로를 뚫은 이상 이젠 막진 못할 거다."
두 남자의 목소리가 점점 더 멀어졌다.

두 사람이 자리를 떴다고 판단한 안즈는 천에서 나와 몸을 일으켰다.
안즈는 대기실까지 터벅터벅 걸었다.
프로듀서는 대기실에 있었다.

"안즈! 어디 갔었어? 안 보여서 찾아다니다가 여기서 기다리면 올 줄 알고 기다렸어."
안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프로듀서한테 말없이 다가가 주먹을 쥐곤 프로듀서의 가슴을 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렇게 말없이 프로듀서의 가슴을 투닥거렸다.

"왜 그래?"
"안즈의 무대 봤어?"
"미안해, 중간까진 봤는데 잠깐 카메라 스태프가 불러서……."
"힘들었단 말이야."
"녹화 분량을 받을 예정이니까 그때 제대로 볼게. 정말 미안해."
안즈는 대기실의 시계를 봤다. 안즈가 무대에서 내려온 다음부터 10분쯤 지난 모양이었다.

"무대 뒤에서 그대로 잤어. 천 덮고……."
"아아, 그래서 못 찾았군. 지금도 피곤해?"
"엄청 피곤해."
"피곤한 안즈에게 스테미너 회복 선물! 짜잔~"
프로듀서는 양복 윗주머니를 뒤적여 사탕 하나를 꺼냈다. 사탕이 쓸데없이 반짝인다. 금색 종이로 포장된 사탕이었다.

"오, 사탕! 사탕 먹고 싶었어!"
안즈는 재빨리 포장을 뜯어 사탕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곤 입안에서 사탕을 정신없이 굴렸다. 사탕이 이에 부딪혀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맛있다~"
"안즈, 포장지를 봐봐."
"응?"
포장지 안쪽에 어떤 글귀가 쓰여있었다. 필체를 보니 사람이 직접 쓴 것 같았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별이 되어라

"뭐야 이거. 의미를 모르겠어."
"전에 치히로 씨가 가져왔던 포춘 쿠키 생각나지?"
기억난다. 안즈는 큰돈이 들어온다는 점괘가 나왔고, 프로듀서는 단명한다는 점괘만 나온 이상한 포춘 쿠키.

"그게 묘하게 마음에 남아서 말이지. 좋은 결과만 나오게 할 순 없을까 하고 계속 생각했단 말이야?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어."
"포춘 캔디?"
"그런 셈이지. 참고로 사탕은 스위스제 시판품이야. 포장만 새로 했어. 이름은 골든캔디! 이제부터 안즈가 중요한 일을 마칠 때마다 골든캔디를 줄게!"
"근데 이거 점괘가 이상한데?"
"그냥 점괘보단 격언 같은 게 더 좋을 것 같잖아? 그래서 격언을 쓰기로 했어. 근데 거기까진 다 좋은데 이미 있는 유명한 격언은 다른 사람들이 선점해서 흔한 느낌이 들잖아? 그래서 직접 생각해서 썼지. 떠올리느라 힘들었어."
안즈는 일단 포장지를 곱게 접어 가방에 넣었다.

"아, 프로듀서 선물 하나 더 있지 않았어?"
"응? 없는데? 그게 끝인데?"
"오큘러스 리프트는?"
"게이머의 꿈인 버추얼 리얼리티를 실현한 HMD 기기가 왜?"
프로듀서는 능청스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개발자 버전을 소유한 지인이 양도한다고 그랬잖아."
"그랬지."
안즈는 고개를 푹 숙였다. 푹 숙인 채로 다시 프로듀서에게 다가가 프로듀서의 가슴을 투닥거렸다.

"안즈를 속였구나!"
"하하하, 미안 미안. 그래도 일반판 나오면 사줄게."
"진짜다! 약속한 거야? 잊지 마!"
"알았어 알았어."
그런 대화를 끝으로 안즈가 의상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지우기까지 20분이 걸렸다.

"안즈, 일은 끝났지만 공연 보러 갈래? 마침 본 공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거야."
"오늘 끝날 때까지 있어야 하지?"
"아니 딱히 그렇진 않아. 일이 끝나면 다음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게 기본적인 룰이니까."
이후 스케줄은 없다. 안즈는 오늘 데뷔한 신인 아이돌이니까.
끝까지 보고 가도 된다.

"그럼 피곤하니까 조금만 살펴보고 갈래."
하지만 안즈는 조금만 보고 가기로 했다. 타협한 것이다. 남아서 보고 싶은 마음과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의 중간 지점을 골라서.

둘은 대기실에서 나와 관계자 전용 통로를 통해 음향 제어실로 들어갔다. 무대보다 높은 층에서, 무대의 정면에 자리한 곳이었다.

유리창 아래로 미쿠가 노래하며 춤추는 게 또렷이 보인다. 그리고 관객들이 팬라이트를 흔들며 뜨겁게 호응하는 것까지. 프로듀서와 안즈는 스태프들에게 가볍게 인사한 후 미쿠의 무대를 지켜봤다.

스태프들도 하나같이 집중해서 미쿠만을 바라본다.
자기 때와 너무 다르다. 안즈는 그렇게 느끼며 묵묵히 미쿠의 공연을 지켜봤다.

"너는, 오늘 시작이니까. 너도 알고 있잖아?"
프로듀서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바로 옆에 있는 안즈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소리로.

안즈는 미쿠에게서 잠시 눈을 떼 프로듀서를 올려다봤다. 프로듀서와 눈이 마주쳤다. 프로듀서가 가볍게 씨익 웃었다.
지금 이곳, 스타라이트 스테이지에서 오직 유일하게 프로듀서만이 안즈를 보고 있다.

이 사람은 안즈를 똑바로 보고 있구나.

안즈는 슬쩍 시선을 돌려 다시 미쿠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마침 프리토크 타임. 미쿠가 쉬어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오늘 진짜 덥네! 아직 봄 아니야냐? 다들 열기가 엄청나다냐! 이러다 수염까지 다 빠지겠다냐!"
"미쿠냥 원래부터 수염 없었잖아!"
관객석에서 몇 명이 그렇게 외치자 관객석 전체가 들썩이며 웃음소리가 크게 흘러나왔다.

"미쿠의 마음에는 어엿한 수염이 있다냐! 고양이한테 수염은 중요하다냥! 수염이 없으면 방향감각과 균형감각이 사라진다냐!
미쿠는 마음속에 난 고양이 수염으로 균형을 잡아 재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거다냐!"
"미쿠냥 마음에 털 났다!"
"누구냥! 미쿠 심보가 나쁘다고 한 건 누구냐냥!"
또 웃음소리가 널리 퍼진다.

미쿠는 능숙하게 관객과 소통하여 분위기를 이끌어나갔다.

안즈는 그 광경을 보고 순수하게 감탄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 미쿠의 토크는 한점 막힘 없이 관객들과 미쿠 자신의 긴장을 풀면서 분위기를 더더욱 달아오르게 했다.

"미쿠의 노래를 들으면 미쿠가 얼마나 마음씨 착한지 깨달을 거다냐!"
슬슬 다음 노래를 부를 타임.

관객들이 다시 팬라이트를 흔들 준비를 한다. 미쿠가 손을 올려 제어실에 신호를 보냈다. 관객들의 함성과 함께 제어실의 스태프들이 손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반주가 흘러나온다. 미쿠는 올렸던 손을 힘차게 내렸다. 마치 반주를, 음색을, 음악을 손에 감아 내리치듯이, 음악을 손에 쥐고 자기 소유로 만들어 지배하듯이!

미쿠가 손을 내린 그 동작 하나로 안즈는 압도당했다.
마에카와 미쿠는 엄청나다.

"안즈, 이제 갈까?"
"조금만……. 조금만 더 보고."
안즈는 그렇게 1시간 동안 미쿠의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을 더 보고 싶었지만 안즈의 체력이 먼저 바닥났다. 고작 2분 공연한 걸로 이렇게 지치다니……. 안즈는 그렇게 자조하며 업무용 승용차 뒷좌석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차가 건물 주차장에서 나와 도로를 달린다. 프로듀서가 운전하면서 말했다.

"거기 잘 보면 모포 있으니까 덮을 거면 덮어."
"덮을 기력조차 없어."
완전히 지쳤다.
몸이 문제가 아니다. 기초 체력 레슨으로 체력이 많이 늘었으니까. 이건 심적 문제다.

노래를 부른 2분 동안 관객에게 끌려다녔다. 관객의 시선에 필사적으로 저항했으나, 저항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미쿠의 공연을 보고 미쿠에게 압도된 것도 컸다. 안즈의 데뷔 무대가 치명타였다면 미쿠의 공연은 결정타였다.

"아, 힘 빠져. 죽을 것 같아."
창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안즈의 뺨과 눈을 건드렸다. 시간은 아직 저녁이다.

"감상은 어땠어?"
"굉장했어. 미쿠 쨩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
"그거 말고 오늘 데뷔 무대 말이야."
안즈는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그걸 굳이 말해야 해?"
"미안해. 데뷔 무대를 이렇게 잡아서."
안즈는 입을 다물었다. 아까 몰래 들었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내정치. 눈엣가시.

"미안해하지 마. 안즈가……. 제대로 할 테니까. 귀찮아도."
프로듀서의 과거가 신경 쓰인다. 하지만 지금 물어보고 싶진 않다. 내키지 않았다. 프로듀서가 곤란할 것 같으니까. 안즈는 물어보길 나중으로 미루었다.

"의욕이 들었나 보네.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실마리를 잡았어?"
"아니, 전혀."
무대의 압박감을 느꼈다. 관객의 시선에 엉망진창으로 휘둘려 다녔다. 미쿠가 굉장하단 걸 깨달았다. 가슴 한구석에 작은 불씨가 타오른 걸 느꼈다. 하지만 그뿐이다.

아직 구체적인 구상이 생긴 건 아니다.

"그렇구나, 앞으로 찾으면 돼. 초조해 하지 말고."
"알고 있어. 안즈는 그것보단 굶주린 배를 채우고 싶어."
"그래, 저녁은 내가 쏠게. 어디로 갈까?"
"사람이 너무 붐비지 않으면서 맛있는 곳. 숨겨진 맛집!"
"주문이 너무한데? 하지만! 난 그런 곳을 한 곳 알고 있지!"
"오오! 어딘데?"
"사무소 탕비실이다!"
"그런 개그는 됐어……."
"아아, 재미없나……. 오코노미야키 어때? 아는 집이 있거든."
"거기로 부탁해."
프로듀서는 차를 돌렸다.
안즈는 핸드폰을 꺼내 인터넷 창을 켰다.

미쿠는 대단했다.
그리고 예전에 미쿠의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게 바로 안즈의 프로듀서.

프로듀서와 미쿠 사이에 대체 어떤 일이 있었을까?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인터넷으론 알 수 없을 것이다. 밖으로 새어 나갈 이야기가 아닐 테니까. 안즈는 하다못해 미쿠가 프로듀서와 함께 활동했던 시절이 알고 싶었다.

그래서 미쿠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리고 그 결과 안즈는 수백만 건의 검색 결과를 보곤 질겁을 하면서 화면을 내렸다. 결과가 너무 많다.

검색란을 뉴스로 맞췄다. 수가 상당히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많다.
안즈는 결과를 내리고 또 내렸다. 그러다 눈에 띄는 내용을 발견하여 기사를 터치했다.

-……회 아이돌 얼티밋 결승전 우승은 765 프로덕션의 프로젝트 페어리. (호시이 미키, 가나하 히비키, 시죠 타카네)

-……346 프로덕션의 C.M.Y.K.는 간발의 차이로 준우승. (마에카와 미쿠, 오오츠키 유이, 도묘지 카린)

안즈는 화면을 더 내렸다. 사진 두 장이 떴다. 수상식에서 기뻐 우는 유닛의 사진과 분에 못 이겨 우는 유닛의 사진이 순서대로 기사에 걸려있었다.
미쿠의 사진은 아래에 있었다.

사진 속의 미쿠는 통곡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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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Y.K. 멤버는 제가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한국판에서 굴렸던 덱에서 따왔습니다.


원본처럼 유닛 이름을 팀 바론으로 할까 했지만, 팬픽 세계관에서도 가면라이더 시리즈가 방영 중이므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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