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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생일팬픽 - 0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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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5, 2016 23:22에 작성됨.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환했다. 자동차들이 줄지어 달려가는 대로, 끝없이 치솟은 고층빌딩들, 인도 위를 움직이는 우산들.. 창밖을 바라보며 치하야는 상념에 잠겼다. 오늘은 간만의 휴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생일이기도 하였다. 원래대로라면 사무소에서 모두와 파티가 있었겠지만, 그것은 다음날로 미루어달라고 하였다. 단 둘이 있고 싶었다. 오늘은.. 치하야는 식탁 위의 파스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과연, 맛집이라고 알려질만하다, 라고 아무래도 좋은 생각을 했다. 잠깐 시계를 바라보았지만 어차피 언제 온다는 말도 없었으니 그다지 의미는 없었다. 단지, 단지 기다릴 뿐이었다.

 이틀 전의 초대형 라이브가 끝나고 치하야는 거의 20시간 넘게 푹 잠에 빠져있었다. 휴가는 미리 내었으니 큰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대형 라이브 후에는 하루 쉬는 것이 관례였기도 하고.. 그렇게 어제 저녁 늦게 일어난 치하야가 적당히 몸단장을 하고 처음으로 간 곳은 사무소 근처의 카페였다. 미리 연락해뒀던 대로 하루카와 프로듀서가 마중나와 있었다.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다. 그 때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 후 둘과 이야기를 하고나서 프로듀서한테 받은 술을 들고 헤어진 후 치하야가 향했던 곳은 납골당이었다. 납골당이라고 해도 보통 늦은 저녁이나 새벽에는 문을 잠그고 열지 않는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치하야의 동생은 건물 안의 서랍장이 아닌 건물 밖의 작은 흙무덤 안에 있었으니까. 검은 코트를 입고 잠겨있는 납골당 옆 건물에서 치하야는 무릎을 꿇었다. 가만히 무덤을 바라보았다. 당연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까악, 까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보니 앙상한 감나무 위에 까마귀들이 몇 마리 앉아있었다. 두어 마리는 컴컴한 하늘을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치하야는 지갑에서 고이 간직해둔 사진을 꺼내보았다. 죽기 며칠 전 찍었던 사진이다. 유우는 사진 속에서 미소짓고 있었다. 뒷면에는 무언가 적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미 지워졌다. 치하야는 술병을 따고 무덤 위에 조금 부었다. 그리고 하루카한테 받았던 쿠키를 조각내서 무덤 위에다가 뿌렸다. 다시 가만히 앉아있다가 시계를 보았다. 어느새 자정이 지났다. 버스는 이미 끊겼을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집까지 한시간 반, 치하야는 조용히 걸어갈 생각이었다. 코트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고 일어섰다. 이제 갈 시간이다.

 그리고 그 때, 치하야는 깨달았다. 검은 하늘은 어느새 붉게 물들어있었다. 하늘의 절반을 가릴듯한 거대한 붉은 달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이 까마귀들이 전부 날아올라서 누은 8자모양을 그리며 날기 시작했다. 당황한 치하야가 반대쪽 호주머니에 집어넣으려던 지갑을 떨어뜨렸다. 유우의 사진이 삐져나왔다. 바람이 불어 사진이 날아갔다. 당황한 치하야가 잡으려고 했지만 사진은 저 위로 치솟기 시작했다. 스산했던 묘지의 분위기가 일순 변했다. 치하야를 중심으로 거대한 회오리가 소용돌이치며 주변의 부러진 나뭇가지나 쓰레기들을 휘감아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푸른 번개가 내리쳤다. 유우의 비석에.

 치하야는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유우의 무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치하야의 몸에 한기가 흘렀다. 얼마전에 본 좀비영화가 생각났다.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좀비같은 게 실제로 있을 리가 없다! 게다가 유우는 화장당했기 때문에 무덤안에 있는 건 한줌의 타버린 뼈가 전부일터였다. 그런 치하야의 생각과 별개로 무덤이 마구 흔들리더니 흙이 무너지고 푸른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도깨비불같았다. 겁에 질린 치하야가 그것을 바라보자 그 도깨비불은 점점 다가왔고.. 치하야는 기절했다.


 치하야가 깨어난 것은 오전이었다. 납골당의 경비원이 출근하면서 쓰러져있던 치하야를 발견한 것이다. 무덤 앞에서 깨어난 치하야가 무덤을 살펴보았지만 흙이 솟아오르거나 무덤이 파헤쳐진 기색은 없었다. 얼어죽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경비원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떨떨해진 치하야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치하야는 사진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황한 치하야가 코트 여기저기를 뒤져보았지만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자기자신이 원망스러워졌다. 원망스러운 감정을 다스릴 수 없어서 치하야는 그저 앉았다. 바닥에 앉아서 멍하니 벽을 응시했다. 한참이나 벽을 보다가 치하야는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서 본 것은 스케치북이었다. 유우는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 스케치북을 펼치자 노래하고 있던 어린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한참이나 그 그림을 응시하던 치하야는 스케치북을 조용히 덮고 일어섰다. 문득, 폰이 진동했다. 약간 나빠진 기분을 추스르며 치하야는 폰을 확인했다.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조만간에 만나러 갈게'

 의미불명의 문장이었다. 게다가 발신자 불명이다. 스토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더 나빠진 치하야는 폰을 집어넣으려 했다. 그 때 폰이 다시 울렸다. 그저 원망만을 담은 채로, 저주를 붙잡은 채로 다시 본 폰의 메시지를 읽은 치하야는 얼어붙고 말았다. 별로 다를 것은 없었다. 저녁에 다시 연락이 오면 노래를 불러달라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그 노래가 문제였다. 메시지의 발신자가 지정한 노래는 치하야와 죽은 그녀의 동생 이외에는 알지 못하는 노래였다. 그야, 치하야가 유우를 위해 만들어낸 노래였고, 유우 이외에는 가르쳐주지도 부르지도 않았던 노래였으며, 지금까지 단 한 번 밖에 부르지 못했던 노래였으니까..

 다시 그 날의 기억이 플래시백되었다. 유우를 위해 노래를 부르고, 같이 바깥으로 나가서.. 자동차가...


 세 시간이 지나있었다. 치하야는 그 동안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비록 프로듀서나 하루카 등과 지내면서 조금은 달라졌다고 하지만 몇 년이고 좀먹던 트라우마다. 그런 게 그렇게 짧게 극복될 리 없었다, 아니, 그 일로 인한 외상 자체가 이미 치하야의 일부였다. 극복이란 있을 수 없다, 그것은 곧 치하야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니까. 폰 액정 위의 물을 닦고 치하야는 일어섰다. 그날 새벽에 있었던 일을 다시 회상했다. 아침에만 해도 그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닐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보아서 이건 미친 생각이었다. 죽은 사람이 도깨비불이 된다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낸다거나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하지만 어쩐지 예감이 들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후 자신은 미친듯이 거리를 헤매다 이 레스토랑에 들어왔다. 레스토랑에 들어와서 대충 아무 메뉴나 주문하고 계속 앉아있었다. 주문한 파스타가 식어가고 있었다. 이상하게 여긴 종업원이 다가왔다. 종업원이 말을 걸려는 찰나, 치하야는 일어섰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 ~~-~--~~-♬`♩


 레스토랑 내의 모두가 무언가에 홀린 것마냥 정지했다. 치하야는 계속 노래를 불렀다. 치하야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건 그녀답지 않은 매우 조잡한 노래였다. 어떤 기교도 솜씨도 없이, 심지어 박자마저 틀리는 노래.. 그러나 그 노래에는 무언가 마력이 있었다. 치하야는 멈추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어느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면서 뒤돌아보니 창 밖의 하늘이 붉게 변해 있었다. 자동차도 우산도 전부 멈추어있었다. 기묘하게도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전등빛을 포함한 모든 광원이 마치 종이로 붙인 그림인마냥 빛을 죽였다. 손님도 종업원도 어느새 전부 사라지고 어두운 레스토랑 건물 아래 그녀, 치하야만이 있었다. 그리고 두 접시의 식은 파스타가 식탁 위에 있었다.

 문이 열리는 기색도 없이 나타났다. 작은 남자아이, 그리고 지금의 치하야의 출발점.


 '안녕, 오랜만이야, 누나.'

 치하야는 거기에 답해 인사했다. 눈물이 나고 있었다. 다시, 다시 만났다. 끌어안았다. 소년, 유우는 말없이 안겼다.

 '여전히 차갑고 딱딱하네, 누나의 품은.. 그렇지만 그래서 좋아..'

 유우를 끌어안은 가슴에서 축축함이 느껴졌다. 둘은 한참이나 포옹하다 껴안는 것을 멈추고 식탁에 앉아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식었지만 맛있어.. 그렇지만 누나가 직접 만든 요리쪽이 더 먹고 싶었는데.. 하지만 여기도 괜찮아, 오고 싶었고..'

 이곳은 '그 날' 유우와 먹기로 한 곳이었다. '그 일'만 없었다면 유우와 여기서 식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치하야, 나도 없었겠지.. 달그락달그락, 포크와 접시가 부딫히는 소리만이 얼마간 들려왔다.

 '파스타 맛있었어, 누나. 그렇지만 나는 이제 가보아야만 해.. 오래 있을 수 없어서 미안해, 누나..'

 가야 한다고? 어디를? 가면 언제 만날 수 있어? 이제 못 만나는 거야? 치하야는 유우를 다시 끌어안으려 했다. 그러나 유우는 연기인마냥 치하야의 팔을 벗어나 저 멀리 가기 시작했다. 창문을 통과해서 유우는 하늘로 올라갔다.

 '누나의 노래,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어! 나중에, 오래 뒤에 다시 만나자, 누나..'

 그렇게 유우는 하늘로 하늘로..


 깨어났다. 치하야는 자기가 폐건물 계단에 누워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해냈다. 그 레스토랑은 몇 년 전에 사라졌다. 그곳은 이제는 폐업한 가게들과 몰락한 상권 가운데의 폐건물 어딘가일 뿐이다. 도로로 나왔다. 부서진 각목과 찌그러진 깡통, 무너진 건축자재들이 도로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도로를 봉쇄한 로드블럭과 '출입금지'라고 써진 간판과 '폭파 해체 예정'이라고 쓰인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날짜를 보고 오늘임을 깨닫고 기겁한 치하야는 건물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건물에서 멀리 벗어날 때쯤 무언가 큰 소리와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그렇게 생일이 지났다. 치하야는 모두가 기다리고 있을 사무소로 향했다. 시계를 보니 아슬아슬했다.

 사무소 입구에서 치하야는 문득 생각난듯이 지갑을 살펴보았다. 거기에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유우의 사진이 있었다. 유우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뒷면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앞으로도 계속 누나의 노래가 듣고싶어! 누나의 팬 0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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