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안즈 담당 프로듀서는 죽을 만큼 후회했다 -2-

댓글: 8 / 조회: 1112 / 추천: 2


관련링크


본문 - 02-25, 2016 01:52에 작성됨.

원작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 반다이 남코 엔터테인먼트/ A-1 Pictures

"뭐, 너무 낙심하진 마. 기회가 있겠지. 346 프로덕션에서 상시 오디션도 하고 있고 다른 프로덕션도 내가 아는 한도에서 좋은 곳만 추려줄 수도 있어. 네가 원한다면. 아니면 아직 인맥은 살아있으니까 바로 소개해줄까?"
"너무해……."
"어……."
안즈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상체를 벤치에 걸친 채로, 그대로 얼굴을 벤치에 묻고 있었으므로 목소리가 짓뭉개져 비통하게 변했다.

"실컷 꿈을 꾸게 해놓곤 추락시키다니……. 정말 나빴어!"
"너라면 내가 아니더라도……."
"당신이 날 발굴했잖아! 안즈한테 의욕을 불어넣었잖아! 무책임해……. 정말……. 너무해……."
프로듀서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안즈를 이대로 둘 순 없는데…….
아까 욕하라고 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들으니 가슴이 아프다.

"꼭 나여야만 해?"
안즈가 고개만 끄덕였다.

"흠, 알았어. 어떻게든 해볼게."
"정말?"
"응, 일단 해볼게."
"좋았어!"
안즈는 환호하며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그러다 프로듀서의 시선을 깨달았는지 조심스럽게 프로듀서와 시선을 맞추었다.

"네가 기쁜 것 같으니 다행이다."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장소가 한번 바뀌어……. 밤 11시 7분.

346 프로덕션 정문. 밤이지만 대기업 입구답게 경비가 삼엄한 그곳을 프로듀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다. 경비원들은 프로듀서의 얼굴을 보고도 별말 안 하며 그저 문 앞에서 그저 묵묵히 인상만 쓰고 있었다.

프로듀서의 사표 소식은 아직 경비팀에 보고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프로듀서는 정문의 감식 센서에 ID카드를 긁었다. 센서에 초록 불이 들어오며 시원스럽게 문이 열렸다.

프로듀서가 안으로 들어가자 안즈가 프로듀서의 뒤를 졸래졸래 뒤따랐다.

"카드가 아직 살아있네. 역시 아직 사표 수리가 안 되었군. 뭐 그건 그렇고……. 안 따라와도 됐는데."
"내가 원인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성급하게 사표를 넣은 내 잘못이야."
프로듀서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길을 찾았다. 신관 건물로 넘어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심야라서 그런지 엘리베이터가 금방 내려왔다.

둘은 그대로 30층까지 올라갔다. 30층 복도로 나와 어둠 속을 걷는다. 안즈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프로듀서의 발소리를 의지 삼아 계속 걸었다. 조금 걷다 보니 한구석에 조명이 켜진 커다란 방이 보였다.

프로듀서의 목적지는 바로 그 커다란 방이었다.
정확히는 조명이 켜진 자리.

방 천장에는 많은 조명이 달려있었지만 지금 켜진 곳은 딱 한 군데.
절전을 위해 사람이 없는 자리는 불을 꺼둘 테니, 지금 불이 켜진 자리는 야근하는 사람의 자리다.

"어디 보자아~"
프로듀서는 슬금슬금 고양이처럼 걷다가 자리에 아무도 없는 걸 알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치히로 씨 안 계시네? 오늘 당직이셨을 텐데……."
"그 사람이 프로듀서의 사표를 가지고 있어?"
"응, 그분께 넘기고 나왔어. 그러니 일단 치히로 씨를 거쳐서 사표가 어떻게 됐는지를 보고……. 아직 내 ID 카드가 살아있는 걸 보니 수리 안 됐겠지만. 그래도 설마 아직도 치히로 씨가 가지고 계시진 않을 거야. 그분께서 일을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하셨을 리가 없지. 사표 경로를 파악하고 앞으로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든 빌고 빌어서 취소를……."
"허술하게 처리해서 죄송하네요."
"아이고, 아닙니다. 저야말로 죄송하지요."
뒤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프로듀서는 자연스럽게 그대로 빙글 돌아 고개를 꾸벅 숙였다.

목소리의 주인은 프로듀서가 찾는 사람인 모양이었다. 이름은 센카와 치히로. 아이돌 부서의 사무를 담당하는 직원이다. 물론 인사과에 서류를 전달하는 역할도 그녀가 맡고 있다.

"이쪽은 누구죠?"
"아,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이쪽은 아까 스카우트한 아이예요. 이름은 후타바 안즈."
프로듀서의 소개를 듣자마자 치히로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프로듀서에게 질타의 눈빛을 보냈다.

"사표 낸 당일에 스카우트요?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아뇨, 그…….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프로듀서, 아까랑은 태도가 완전히 다르네."
안즈는 프로듀서가 위축한 모습이 흥미로웠는지 격투기나 프로레슬링을 관전하듯 프로듀서와 치히로를 지켜봤다. 팝콘이라도 있으면 잔뜩 우적거리고 싶다.

팝콘, 팝콘이라……. 소금 맛도 좋고, 캐러멜 맛도 좋지.

"아, 배고파."
안즈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제대로 된 저녁 식사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배가 더 심하게 울었다.

"배고파요? 이걸 어쩐다……."
치히로는 잠시 고민하다
"스카우트했으니까 상관없겠죠. 우선 탕비실로 갑시다."
"아, 저기 치히로 씨. 제 사표는……."
"이거요?"
치히로는 서랍에서 편지봉투를 하나 꺼냈다. 그리곤 그걸 망설임 없이 찢어버렸다.

"이제 됐죠?"
"인사과로 바로 안 넘기셨네요."
"이걸 어떻게 바로 넘겨요? 프로듀서 씨를 그렇게 간단히 보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치히로는 편지봉투와 내용물을 쭉쭉 찢어 쓰레기통에 뿌렸다. 종잇조각이 쓸데없이 팔랑거리며 천천히 쓰레기통의 바닥을 메웠다.

안즈는 탕비실 식탁에 앉아 냉장고를 뒤지는 프로듀서를 멀뚱히 쳐다봤다.
치히로 씨 왈.
"프로듀서 씨께서 야식을 만들어 주실 거에요."
프로듀서는 냉장고를 쓱 훑어보더니 대파와 당근, 계란을 꺼냈다. 그 후 찬장에서 후추, 소금, 간장을 꺼냈다.

"간단하게 볶음밥 만들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 금방 만들게."
프로듀서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대파를 썰기 시작했다.

"요리도 할 줄 아네?"
"혼자 살고 있으니까."
"혼자 살면 역시 요리가 필수 스킬인가……."
"필수는 아니지만, 익히면 좋지. 너는 요리 못 해?"
"아니, 대강 할 줄 알지만……. 안즈는 만드는 것보단 먹는 쪽이니까."
"너답구나. 오늘 하루 만에, 아니 몇 시간 만에 네 성격이 이해됐어. 재미있네."
"안즈 쨩 부모님은요? 여기 온 거 아시나요?"
치히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그게……."
안즈는 말을 더듬었다. 아까 프로듀서에게 부모님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아마 모르실 걸요?"
하지만 프로듀서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대답했다.

"어, 프로듀서 어떻게 알았어? 난 아까 거짓말했는데……."
"으응, 왠지 모르게 알 것 같더라. 목소리 들어보니까. 그런 게 있어."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을 끊었다. 요리에 열중하려는 모양이다.

"저, 부모님은……. 지금 저랑 따로 살고 있어요. 저는 맨션에서 혼자 살고 있고요."
"그랬군요……."
"실은……. 쫓겨났습니다."
안즈는 쭈뼛거리며 프로듀서의 등을 바라봤다. 프로듀서는 조용히 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부모님과 사이는 별로 안 좋아요? 안즈 쨩 정도의 나이라면 부모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든 받을 테니까."
프로듀서가 여전히 재료를 다듬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귀는 열려 있었으니 대화를 계속 듣는 게 당연하겠지.

"저기, 프로듀서……. 내가 말하는 것도 그렇지만 성가시지 않아?"
“전-혀. 요즘 세상에 부모랑 사이 나쁜 자식이야 얼마든지 있어. 뭐 살기 팍팍하니까 말이지. 그러니까 주눅 들지 마. 너 당근 먹을 수 있지? 당근 넣는다?"
"글쎄, 애 아니라니까 그러네……."
치히로는 프로듀서와 안즈가 주고받는 게 제법 재밌었는지 피식 웃었다.

"미안해요. 둘이 오늘 만난 것치곤 친근하게 대화를 주고받아서요."
"프로듀서가 저런 성격이니 누구하고나 친하게 지내지 않나요?"
"프로듀서 씨는 저런 성격이지만 안즈 쨩하곤 특히나 파장이 잘 맞는 것 같아요."
"저는 잘 모르겠지만 듣고 보니 어쩌면 그 파장이란 걸로 저랑 부모님 사정을 간파했을지도……."
"으음, 그건 파장 문제가 아니라 프로듀서 씨가……."
순간, 프로듀서의 칼질이 멈췄다.

"어머나, 이런. 실언할 뻔 했네요. 죄송해요."
프로듀서는 칼질을 멈추고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어라? 치히로 씨? 저 부르셨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안즈 쨩, 어떤 아이돌이 될지 정했나요? 아, 말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프로듀서 씨 대하듯 하세요. 개성은 중요하니까요."
"딱히 없어요, 아니, 없……지. 하지만,"
안즈는 프로듀서를 힐끔 쳐다봤다. 프로듀서는 마침 프라이팬을 들고 재료를 섞고 있었다.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앞으로. 저 사람이랑 함께 있으면 어떻게든 활로를 찾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귀찮은 건……. 질색이지만."
"그렇군요. 좋은 느낌이네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서로?"
"네, 프로듀서 씨는 오늘 일을 그만두려고 하셨을 정도로 요즘 의욕이 바닥을 보이셨거든요. 프로듀서 씨께도 이러저러한 사정이 있어요. 이러저러한 사정이."
치히로는 프로듀서 들으라는 식으로 그 부분은 일부러 크게 말했다.

"맞아요, 사람마다 이러 저러한 사정이 있는 법이죠. 그런 겁니다. 완성."
프로듀서는 그릇 두 개에 볶음밥을 덜어 식탁에 올렸다.

"치히로 씨 몫까지 만들었습니다. 드세요."
"어머, 잘 먹겠습니다!"
"고마워, 프로듀서."
"아니, 나야말로 고마워. 안즈."
"뭐가?"
"내 앞에 나타나 줘서. 고맙다."
프로듀서는 그렇게 말하며 수줍게 뺨을 긁적였다.

"아……. 뭐, 뭐야 대체……. 안즈는 배고프니까 볶음밥이나 먹을래!"
3월 12일,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의 발매일이자, 프로듀서와 안즈가 처음으로 만난 날은 그렇게 자정을 넘겼다.

3월 16일

안즈 부모님의 허가는 쉽게 떨어졌다. 프로듀서가 14일(토)에 안즈의 친가를 방문하여 약 두 시간 만에 허가를 받아왔으니까.

안즈는 그 자리에 동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프로듀서가 어떤 식으로 안즈의 부모님에게 설명하고, 설득했는지 모른다.
프로듀서도 허가를 받았다는 이야기와 서류만 보여주고 어떻게 했는지 이야기를 안 해줬고 안즈도 굳이 묻지 않았기에.

안즈는 15일부터 정식으로 346 프로덕션 소속 아이돌 후보생이 되었다.
안즈는 아직 정식 아이돌이 아니므로 레슨에 매진해야 한다. 후보생 경험은커녕 제대로 춤추고 노래한 경험조차 없다.

당연하다.
그래서 어제부터 안즈는 출근하자마자 레슨실에서 기초 레슨을 받고 있다.
어제부터 받기 시작한 레슨은 리듬감 레슨. 트레이너가 치는 캐스터네츠 박자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기초 중의 기초 레슨이다.

안즈는 캐스터네츠 소리에 맞춰 제법 열심히 팔, 다리를 흔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트레이너의 호령 소리가 점점 더 매서워져만 갔다.

"후타바! 거기선 팔을 흔들면 안 되지! 다리를 딱 멈춰 서고! 아니야! 그게 아니야! 좀 더 부드럽게!"
"무, 무리야……. 안즈……. 춤에 재능 없을지도 몰라……."
"하루나 이틀 연습한 걸로 결과가 나올 거라 생각하지 마! 넌 초보자잖아!"
정론이라 반박할 수 없다. 하지만 체력을 전무 소모해서 더는 움직일 수도 없다.
안즈는 헥헥거리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넌 기초체력부터 길러야겠네."
"저기, 안즈 못 하는 편이지?"
"아니, 이틀 만에 이 정도면 오히려 잘하는 편인데? 솔직히 놀랐다. 아직 이걸 '결과'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 그럼 좀 더 상냥하게……."
"레슨에 그런 게 어디 있어! 할 땐 하고! 쉴 땐 쉰다! 그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지금은 쉬어라!"
마침 레슨 시간이 끝났다. 나머지는 자율레슨 시간. 하지만 트레이너가 대놓고 쉬라고 하니, 쉬어도 될 테지.

트레이너는 내일부턴 기초체력부터 붙이겠다는 말을 남기고 레슨실에서 나갔다.
안즈는 그대로 엎어져 뒹굴뒹굴 굴렀다.

레슨실에 붙어있는 탈의실까지 걸어가기 귀찮았다. 그렇게 데굴데굴 구르며 벽에 부딪치고 의자를 쓰러트리고, 벽 모서리에 발을 찧는 시행착오를 거쳐 탈의실 쪽으로 방향을 제대로 잡았을 무렵, 누가 레슨실로 들어왔다.

"우왓! 이상한 게 굴러다닌다냐!"
"아아, 미안. 걷기 귀찮아서……."
안즈는 그대로 멈춰서 드러누웠다. 들어온 사람이 안즈를 내려다 보고, 안즈는 그 사람을 올려다 본다.

"저기, 미안한데 30초 동안만 이렇게 있을게. 속이 안 좋아."
"그, 그래 냐…….“
안즈는 숨을 고르며 상체만 일으켰다.

"너도 아이돌 후보생이야?"
"아니, 난 데뷔한 지 꽤 됐어냐."
"그럼 선배구나. 말버릇 특이하네. 컨셉이야?"
"그렇지냐. 나는 마에카와 미쿠. 네 이름은?"
"후타바 안즈."
"아, 그럼 네가……."
안즈는 미쿠가 뻗은 손을 잡고 겨우겨우 일어났다.

안즈의 이름을 들은 미쿠가 안즈를 담당한 프로듀서의 이름을 말했다. 담당 프로듀서가 맞느냐고.

"응, 맞아. 그 사람이 담당 프로듀서야."
"그렇구나냐."
미쿠가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신경 쓰인다. 이런 씁쓸한 표정으로 대놓고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그걸 눈치 못 챌 안즈가 아니다. 안즈는 그렇게 둔하지 않다. 이상한 느낌을 감지한 안즈가 묻자,
"전에 미쿠 담당 프로듀서가 그 사람이었거든냐."
미쿠는 표정을 갈무리하며 대답했다.

"지금은 아니야?"
"응, 여러 사정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미쿠의 담당을 맡게 됐어냐."
사정이 있다. 그러고 보니 전에 치히로도 프로듀서한테 이러 저러한 사정이 있다고 그랬다. 어쩌면…….

"혹시 그거 프로듀서가 그만두려고 한 거랑 관련이 있어?"
미쿠는 조금 생각하더니,
"그 사람, 많이 다쳤어. 그러니까, 그 사람을 잘 부탁해. 미쿠는 실패했으니까."
"저기, 실패라니? 무슨 소리야? 프로듀서가 다쳤다고?"
"그건……. 본인한테 직접 들을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해냐. 안즈 쨩이 아이돌을 계속하게 된다면 그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올 거야냐."
그렇게 말하곤 탈의실로 들어갔다.

안즈는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미쿠는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었고, 안즈는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갈아입는 중에 둘은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으며, 헤어질 때 그저 짧은 눈인사로 작별 인사를 대신했다.

레슨실의 문을 나선 안즈는 곰곰이 생각했다.
치히로가 말했던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좋겠다는 말.
프로듀서가 그만두려고 했던 이유.

미쿠의 실패.
미쿠의 실패…….

미쿠는 이미 데뷔한 지 오래된 아이돌이고 미쿠의 이전 담당은 안즈의 프로듀서였다는 점.

안즈는 시간이 나면 미쿠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 여태까지 아이돌에 관해 관심이 없던 사람도 정보를 얻기 쉬운 시대니까.
안즈는 안즈가 소속된 아이돌과 제3 사무실로 향했다.

제3 사무실.

사무실이라고 표현했지만, 쓸데없이 넓은 잡다한 창고 같은 곳이다. 아니 창고 같은 곳……이 아니고 실제로 창고였던 곳이다. 이곳은 프로듀서와 안즈, 그리고 가끔 얼굴을 비치는 치히로와 프로듀서의 상사 몇 명을 빼면 방문자가 거의 없다. 아직 햇병아리 아이돌조차 되지 못한 안즈의 아지트로 딱 어울리는 장소다.

프로듀서가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즈는 소파에 눕듯이 풀썩 앉아 가방에서 PS비타를 꺼냈다.

안즈는 소파에서 뒹굴 거리며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를 기동했다. 화면에 타이틀 로고가 떠오르며 웅장하고 강렬한 BGM이 흘러나온다.

프로듀서한테 돌려줬던 게임이지만, 어제 다시 받았다. 아이돌 후보생이 된 기념으로 주는 축하 선물이라며.

안즈는 사양하려 했지만,
"괜찮아. 실은 소장용, 플레이용, 포교용으로 각각 다른 샵에다가 예약했던 거거든. 그건 포교용이니까 괜찮아."
결국, 받았다.

레슨 때문에 피곤해서 별로 건들지 않았기에, 아직은 스토리 초반 부분이다. 주인공이 가상 전뇌공간에서 괴생명체에게 습격을 받아 그대로 정신 데이터만 현실세계로 튕긴 부분이다. PV에도 소개된 도입부 부분이다.

안즈는 집중하여 스틱과 버튼을 눌렀다. 이벤트를 넘기고 몹을 잡고, 던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얼마 정도 지났을까 세이브를 하고 잠시 쉬려니 소파 앞 테이블에 오렌지 주스 캔이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안즈가 들어왔을 땐 없었던 물건이다. 프로듀서 자리를 보니 프로듀서가 키보드를 두드리며 서류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프로듀서, 이거 마시라고 둔 거야?"
"응, 그러라고 둔 거야. 마셔. 제법 맛있어."
안즈는 주스 캔을 땄다. 캔 안에 있던 공기가 새어나와 새콤한 향이 톡 하고 퍼졌다.

안즈는 주스 캔을 한 모금 마셨다. 주스의 당분이 몸에 스며들어 피로를 날린다. 오렌지 향이 피곤함에 가라앉은 기분을 고조시킨다.
안즈는 한 모금, 두 모금, 세 모금 그렇게 쭉쭉 들이켰다.

"푸하-. 나쁘지 않네."
체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뭐, 실제로 그런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기분상.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받는 상은 각별하구나."
"겨우 주스 하나인걸. 마음에 들면 다음에도 줄까?"
"나쁘지 않지만 안즈는 콜라나 사탕을 더 좋아해. 주스도 좋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어. 체력이 80%만 회복한 느낌이야."
"아아, 사탕. 그래, 고려해볼게."
프로듀서는 안즈에게 잠시 돌렸던 시선을 다시 모니터를 향해 고정했다. 프로듀서의 손가락이 정신없이 움직인다. 열심히 일하는 프로듀서.

안즈가 3월 12일에 만났던, 게임을 사려고 땡땡이를 친 사람과 동일인물.

"저기, 프로듀서."
"응? 왜?"
프로듀서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지금 무슨 업무 하고 있어?"
"으응, 안즈를 어디에 어떤 식으로 소개할지 기획서를 작성하고 있지. 아, 말하는 김에 미리 말해둘게. 이번 주 안으로 프로필 사진이랑 자기소개 영상 같은 거 찍을 거니까 미리 알아둬. 지금 스케줄론 금요일에 찍을 것 같아.“
"그렇구나."
"그래."
이걸 물어보려는 게 아닌데…….

"저기, 프로듀서."
"응? 왜?"
"사무소에 인형 가져와도 돼? 될 수 있으면 일할 때도 가지고 다니고 싶은데."
"너무 큰 건 안 돼."
"못 들고 다닐 정도는 아니야. 베개 정도 크기야."
"그 정도면 괜찮아."
"그렇구나."
"그래."
"저기, 프로듀서."
"응? 왜?"
"사무실에 개인 소파 가져와도 돼?"
"한 칸짜리는 괜찮을걸? 어차피 넓으니까."
"그렇구나."
"그래."
물어보기 힘들다. 일단 오늘은 포기해야 하나…….

"저기, 안즈."
"응? 왜?"
이번엔 반대로 프로듀서가 안즈를 불렀다.

"지금 안즈 앞에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박스가 떠오르고 그 박스 위로 선택지가 떠오를 거야. 그중 하나를 5초 안에 골라서 퍼펙트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 봐."
"어?"
"빨강! 고민거리가 있다! 파랑! 진짜로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노랑! 아무것도 아니야! 빠바바바바밤 빠바밤! 빠바바바바 빠바밤! 뚜뚜두루루루루루루루루~"
"파랑!"
"응, 그래, 뭔데?"
"깜짝 놀랐어."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안즈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아까 레슨룸에서 마에카와 미쿠라는 애를 만났어."
"아, 걔? 내가 전에 담당했던 애야. 진짜 착하고 좋은 녀석이야."
"신경 쓰이는 말을 하더라고. 자기는 뭘 실패했다. 그리고 프로듀서를 잘 부탁한다고……."
프로듀서는 그 말을 듣고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프로듀서는 그대로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눈을 잠시 굴렸다.

"그 녀석도, 결국 마음에 남았나 보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걸까."
-----------------------------------------------------------------------------
미쿠냥도 귀엽습니다.

2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