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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마음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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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21, 2016 08:27에 작성됨.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는건가.."
"...응."

 
하루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에 치하야는 그녀가 지독히도 전쟁터로 가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태까지 마왕이 표면에 나서지 않았던 것은, 그 위치가 아니라 전쟁터를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치하야는 그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해내고, 그 이상의 추리는 보류한 채 말했다.


"그런데 이런 곳에 와 있어도 돼?"

 
엄연히 이 곳은 감옥이다.
그 말을 깨달은 하루카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전장에 가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왔었다. 그것 뿐이다. 그 외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고, 하루카는 그 외의 다른 걸로 자신의 행동이 갖는 의미를 설명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카는 천족이나 인간을 능가하는 듯 보이는 솔직함을 가진 마족이었다. 별달리 숨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하루카는 여전히 난처한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


"가기 전에 보고 싶어서 왔는데, 오면 안되는 걸까?"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리고 지나치게 솔직한 말에 치하야가 할 말을 잃었다. 보통 전쟁 포로를 보고 싶다고 하는 적장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이 녀석이 보통이란 상식의 범주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완전히 깨달은 치하야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내가 해 줄 말은 이것밖에 없어서."
"무슨?"
"조심해."


그것은 그녀의 힘이나, 그 능력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단순히, 하루카의 지나칠 정도로 여린 심성을 걱정하는 것 뿐인, 그런 말이었다. 그리고 치하야가 해 줄 수 있는 단 한가지 말에, 잠깐 웃은 그녀는 말했다.

 
"뭐, 괜찮을 거야!. 그리고 나는 전장에 그렇게 오래 있지 못하니까."
"그거, 다른 사람들한테 폐 아냐?"
"윽... 아픈 곳을 찌르는군요..."


하루카의 말에 웃으며 치하야는 동시에 고민했다. 이 착하기만 한 녀석이 어떻게 마계의 왕이 되었을까. 만약 인간이라면 이해가 갈 것이다. 인간이라면 이용하기 위해 대신들이 마음이 약한 자를 왕으로 추대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마계는 엄연히 달랐다. 왕이 되기 위해선, 수많은 이들을 싸우고, 최후엔 현재의 왕을 죽여야한다. 그래야만이 새로운 마계의 왕으로 추대될 수 있었다.
그리고 치하야는 지금 눈 앞에 있는 마계의 왕이, 그 전의 왕을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오른, '힘으로' 마계의 보좌를 차지한 여자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치하야쨩?"
"아, 아? 응?"

 
그리고 그 사실에 조금 깊게 빠져들었던 치하야는 하루카가 부르는 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녹색 눈동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조용히 고개를 내저어보인 그녀는 다음에 그 사실에 대해 물어보기로 결심한 뒤에 말했다.

 
"왜?"
"가기 전에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는데. 그...난 정말로 치하야쨩을 좋아해."

 
태도는 조심스러웠지만, 말은 별로 조심스럽지 않았다. 직설적인 그 말에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올려다보며 치하야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래, 나도 하루카 만큼은 도저히 미워할 수 없을 것 같아."
"...치하야쨩이 이해한 '좋아한다'와 내가 말한 '좋아한다'는 의미가 다른 것 같은데요?..."
"뭐?"
"그러니까 내가 말한 건─"

 
한숨을 내쉰 하루카는 그렇게 말하며 상체를 숙였다. 그런 하루카의 행동에 치하야는 어떤 경계심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 안일함이 치하야의 실수라면 실수였다.
하루카의 입술이 치하야의 입술에 짧게 와닿았다. 방심하고 있던 치하야는 그 것에 어떤 대처도 하지 못했고, 그리고 대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긴 시간도 아니었다. 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그 행동에, 멍하니 하루카를 올려다보던 치하야는 잠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곤 후다닥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본 하루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래도 이상하지 않다는 거야."


간단한 말이었지만, 치하야는 순식간에 하루카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치하야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말했다.


"무, 무슨 소릴 하는거야! 너나 나나, 똑같은..."
"여자인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구?"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
"그런 건 별로 상관 없어요~"
 

그렇게 말하며 하루카는 싱긋 웃었다. 그 말에 치하야는 할 말을 잃었다. 유일하게 트집을 잡을 만한 것이 상관없다고 하면,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다. 좋아하는 건 자유다. 그 사실을 깨닫든 안 깨달았든, 할 말을 잃은 치하야가 멍하니 하루카를 올려다보기만 하자, 하루카는 쓴웃음을 짓고선 말했다.
 

"내 멋대로라고 해도 좋고, 거절해도 좋아. 마음대로 결정해줘."


그 말에 치하야는 주춤거렸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싫어'라고 해야 옳은건데.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치하야를 하루카는 참을성있게 기다렸다. 그 녹색 눈동자를 마주하던 갈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저히 그 눈동자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에, 치하야는 고개를 떨궜다. 그 모습을 보고서도 하루카는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저 치하야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치하야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좀 더 생각하게 해줘."


그 말에 하루카는 실망하거나 아쉬워하지 않았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하루카는 망설임없이 몸을 돌려 감옥을 나가며 말했다.


"일주일 뒤... 그 쯤엔 돌아올거야. 그 땐 대답을 들었으면 좋겠네. 그럼, 그 때 보자!."
"아... 응..."


멍하니 그 말에 대답한 치하야는 하루카가 나가는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하루카가 나가고 나서, 치하야는 바로 딱딱한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누워 버렸다.
어째서 얼굴이 뜨거운 건지 알 수 없었다. 머릿속이 마구 복잡해졌다. 누군가가 손을 집어넣고 머릿속을 마구 휘저어 수많은 생각들을 섞어 버린 것처럼. 그리고 치하야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 복잡한 감정들은 일주일 만에 정리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마코토는 지루함 비슷한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을 상대하다보면 언제나 느끼는 것이기에 마코토는 그 감정에 당혹하지도, 의아해하지도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 지루함과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었다.
그들에 의해 엉망이 된 보급대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치곤 지독하게 무감각했다.

 
"1군은 어떻게 되어가는거야, 마코토군?"


마찬가지로 그녀의 뒤에서 보급대를 바라보던 이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는지, 마코토를 보고 미키가 그렇게 물었다. 마코토는 그녀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하루카가 본대에 합류했다고 들었어. 아마 슬슬 인간군 본대의 추격을 개시하겠지."
"그럼 우린?"


설마하니 1군과 합류할까하는 망상을 품고 있는건가.
잠깐 그렇게 생각한 마코토은 그녀의 망상을 아주 쉽게, 단 한마디로 깨 버렸다.

 
"그린 브리즈 호로 갈거야."
"여기서 더 진군하는거야? 잠깐, 기다려봐! 아-이젠 좀 자고싶은거야!"


하지만 마코토는 미키의 말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비룡을 이끌고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던 미키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을 지나치고 리츠코 또한 비룡을 몰아 마코토을 따라갔다. 그리고 그들을 쫓아가면서도 그에 대해 미키가 화를 내자, 아즈사와 이오리는 조용히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마코토 본인은 별달리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살인의 무한 반복.
전쟁이라는 것은 그런 것에 불과했다. 살인이 정당화되는 유일한 무대. 그리고─


그건, 마계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실에 대해 어떤 감상도 갖고 있지 않았다. 단지 죽이면 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명쾌했고, 이기면 된다는 사실은 그에 어떠한 감상도 포함하지 않게 했다.
그러나 마코토가 그린 브리즈 호 근처에서 본 모습은 잠시 그녀의 메마른 눈동자를 멈추게 만들었다.

 
"뭐야, 저건? 어떻게 된 거야?"

 
뒤에서 따라온 이오리가 그렇게 물었다. 그리고 마코토는 그에 대답해 줄 수 없었다. 그녀들은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간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린 브리즈 호에 있었을 보급소에 어째서 인간군 본대가 합류해 있는건지.
그리고 그 근처에 주둔해 있는 제 1군을 발견한 그들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1군에 합류하자."

 


 

 

 

마계의 그토록 더운 날씨에 마족들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겐 인간들에게 필요한 막사라는 것이 필요 없었지만, 때때로 필요할 때가 있다. 마족에게 있어서 '상류층', 혹은 '귀족' 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모여서 전쟁에 대한 회의를 할 때이다.


"하아, 군을 두 개로 나눠서 한 쪽으로 유인한 뒤 본대를 보급소와 합류시킨다라... 완전히 당해버렸어."
"도중에 이상하다는 것 눈치 못 한거야?"
"내 실수야...."


축 늘어지는 하루카를 보며 마코토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에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마코토는 옅은 한숨을 섞어 말했다.


"규모는 어느 정도 되지?"
"본대에서 그린 브리즈 호에 있던 보급 물자와 보급 인원이 합류한 정도니, 우리의 1.5배 정도 되는 숫자일 것이옵니다."
"그런가..여태까지 막혔던 보급로 때문에 그린 브리즈 호에 많은 인원이 모였던 모양이야. 신관도 5명 쯤 합류한 듯 하고. 그렇게 따지자면 현재 인간군에 있는 신관은 열명 남짓할텐데.. 다른 건 몰라도, 신관은 조금 골치아프겠네."

 
그 말에 마코토도 수긍했다. 인간은 별 것 아니지만, 신관은 좀 골치아프다. 신관을 우습게 상대할 수 있는 건 '귀족'에 속하는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 뿐이고, 실제 일반 마족들은 신관에게 형편없이 당한다. 그리고 대규모 전투에서 개인 전투를 중시할 필요는 없다. 그 것을 잘 알고 있는 하루카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거기다가 중요한 것은 이 실수로 인해 인간들에게 싸울 마음이 다시 생겨났다는 거야. 정전을 억지로 하려는 우리들에게 있어선..."

 
'심각하게 곤란하다'라는 말을 생략했지만, 그 말은 그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가 들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전멸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왕은 최소한의 피를 흘리면서 정전이라는 최대의 효과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것은 마족들에게 서툰 것이었고, 그리고 서투르니 만큼 그들은 좋은 방법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그냥 없애면 안되는 거야?"


그리고 가장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 것은 미키였다. 그런 그녀를 돌아본 하루카는 고개를 내저었다. 미키는 그 반응에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에 돌아올 대답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잠시 막사 안에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전쟁이라는 대규모 전투에 익숙하지 않았고, 언제나 대규모로 행동하는 인간에 비하면 그들은 그런 것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개개인의 능력은 지독할 정도로 뛰어나지만, 10년이나 행해져왔지만 인간에 비하면 한참 미숙한 경험의 대규모 전투라는 것과, 강제적으로라도 정전을 바라는 왕의 바람이 합쳐져서 복잡한 상황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정적을 깬 것은 마코토였다.

 
"하루카. 마왕성에 갔다와라. 그 인간에게 이 상황을 통제할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그 말에 막사 중의 인물 모두가 마코토를 돌아보았다. 개중 대부분은 드디어 마코토가 미친 것은 아닐까 찾아내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인간을 가장 싫어하는 마코토가 인간에게 도움을 요청하라 하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괴벽 그 이상으로도, 그 이하로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마코토는 진심이었다.


"그 인간하고 대화를 해 본 건 너뿐이야. 왕이 자리를 비우는건 꺼림칙하지만,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린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백날 생각해봤자 몰라. 오히려 인간에 대해선 인간이 잘 대처할 수 있겠지?"


그 말에 하루카는 머뭇거렸다. 마코토의 동생인 그에게도 마코토의 행동은 괴벽 이상, 이하, 그 무엇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하루카는 마코토를 머뭇거리며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동안은 마코토에게 맡길게. 비룡을 타고 갔다온다면 이틀이면 충분할테니, 그 동안 인간군의 상대를 부탁해!"
"알았어."
"..후우...인간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을 싫어할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침묵. 그 것을 긍정으로 생각해야 할지, 부정으로 생각해야 할 지 잘 모른 채로 하루카는 말을 이었다.


"만약 이 그린 브리즈 호에서 내 실수로 인해 큰 손실을 입는다면 난 내 실수를 인정하고, 그 때는 원하는 대로 섬멸전을 벌여도 좋아."


섬멸전을 말할 때 하루카의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그녀는 이 근처에서 섬멸전을 지휘했던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애스터리스크 협곡에서, 제 1군의 존재를 감추기 위한 섬멸전이었다. 그리고 그 잔혹함은 그 머릿속에 똑똑히 기억되어 있었다.
하지만 하루카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반대나 이견은 일절 허락하지 않을테니까!!"

 
막사가 얕게 흔들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말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왕은 그 이전에도 말한 바가 있었다. 이 전투는 '명령' 이라고. 그리고 그들은 왕의 명령을 거부할 생각도, 권한도 없었다. 왕의 계획은 아직 실패하지 않았었으니까. 인간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왕은 믿고 있었다.


그리고 마계의 짙푸른 하늘을 왕의 비룡이 가로질러 가고 나서, 인간군들은 자신이 마왕군에 의해서 포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왕군은 마코토의 지휘에 따라 그린 브리즈 호의 인간군을 둥글게 포위하는 방식을 택했다. 둥글게 포위했다고 해도, 점을 이어보면 원이 되는 그런 포위 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원이었다. 그것을 인간군도 깨달았다. 마왕군의 기동력이라면 원과 다를 바 없었다. 군이 주둔한 곳이 아닌 다른 곳을 돌파하려 그러면 반드시 마왕군은 움직일 것이다. 그에 자신들이 그린 브리즈 호 안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은 인간군은 돌파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리고 첫째 왕자는 그 '점'들 중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내서 돌파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점과 점 사이를 돌파하려 한다면, 양 쪽에서 협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차라리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내서 기습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낼까 하는 질문에 있어선, 극히 단순한 방법이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각각의 '점'이 되는 군을 공격해 본다는 것. 소대라고 할 수 있는 단위였지만, 분명 그 중에는 공포스러운 이들이 있다. 그래도 그 이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었다. 일단 첫째왕자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정찰병을 보내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그는 마코토와 타카네가 지휘하는 소대를 가장 먼저 제외했고, 보급대를 격파하는 일로 인해 인간군에 잘 알려진 미키와 아즈사, 이오리, 리츠코의 소대 또한 제외되었다. 그러나 그 이외의 소대장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해선 인간들은 잘 몰랐다. 어째서인지 마왕인 하루카도 보이지 않았다. 그 점은 이상했지만 인간군은 일단 그 정도로 해두기로 했다. 물론 그 정도로 해두기로 한 결정을 내린 것은 첫째왕자였다. 그와 동시에 그는 위에 거론했던 인물들을 옆에 두고 있는 소대들을 지웠다. 그런 과정을 거치자 시험해 볼 만한 소대는 확실히 적어졌다.
그들을 상대로 시험을 해본다는 것은 모험에 가깝지만 그들의 포위망을 돌파할 그 이외의 좋은 방법을 첫째 왕자는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인간군의 주요 장군들은 첫째 왕자가 낸 방법에 찬성했다. 그리고 신관이 있는 한 죽는 것이 아닌 부상은 크게 괘념치 않고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린 브리즈 호의 물이 식수로 쓸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랬다.

 
"마미! 전방에 인간군 발견!"


그리고 마족 한 소대를 이끌고 있던 마미는 보고를 받고 씩 웃었다. 인간군이 그들을 시험해보기로 했든 어쨌든, 그에겐 그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한 판 붙어볼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일 뿐.
마미는 외쳤다.

 
"인간군과 격돌이닷! 모두들 준비해!"


마미의 목소리에 소대가 시끄러워졌다. 흥분의 열기. 마족들은 모두 싸움을 좋아했다. 오히려 싸우지 않는 상황을 지루해한다. 그리고 인간군과의 싸움 또한 시시하다고 해도, 마코토나 미키같은 이들이 아닌 보통 마족들을 전율시키기엔 충분했다.
먼지구름이 보였다. 기마병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그들에겐 아무 상관이 없었다. 어쨌든 싸우면 되는 것이다. 그 뿐. 그리고 마미의 소대는 대부분 접근전을 즐기는 이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고, 그들에게 비룡은 단지 '이동용'일 뿐이었다.

 
"자아, 가자!!"

 

 

 

 

마왕성으로 돌아온 하루카는 머뭇거리며 지하 감옥으로 향하는 길을 내려갔다. 치하야에게 조언을 요청하는 것이 어색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온 것은 겨우 닷새만. 일주일 뒤에 돌아오겠다고 해 놓고선, 이렇게 일찍 돌아온 것은 고백을 한 하루카의 입장에서도 어색한 일이었다.
하지만 기껏해야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끌 순 없다. 그렇게 애써 자신을 다잡은 하루카는 한숨을 크게 내쉬곤 지하 감옥으로 가는 걸음을 빨리했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을 열자, 안 쪽에서 뭔가 움직였다. 치하야인 듯 했다. 그리고 치하야 외에 이 안에 있는 사람은 없다. 자꾸만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하루카는 계단을 내려갔다.
창살 너머로, 치하야의 모습이 보였다.

 
"...하루카?"

 
치하야는 놀란 표정으로 하루카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어색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하루카는 애써 고개를 휘저어 자신의 고백에 대한 생각을 지우곤 말했다.

 
"급한 일이 있어서 찾아왔어. 치하야쨩, 우리를 도와줄래?"
"뭐?"


그리고 치하야에게 드리웠던 어색한 표정은 지워졌다. 그 사실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불행으로 여겨야 할 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카는 말을 이었다.
하루카의 사태 설명을 듣는 치하야의 표정은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점점 굳어갔다. 그 표정에 불안감을 느끼며 하루카는 결국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자신이 급히 여기까지 왔다는 것까지 말을 끝냈다. 그리고 곧장 치하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보야!!"
"...우, 우우..."
"내가 그렇게 그린 브리즈 호와 애스터리스크 협곡의 연결을 끊으라고 했는데도, 그거 하나 못하고 결국엔 합류시켰단 말야?"
"우, 우아아, 잘못했어! 그, 그, 내 실수야, 잘못했다구!"


그리고 그 순간 지하 감옥의 풍경은 다른 사람이 보았다면 누가 포로이고 누가 그 포로를 사로잡은 사람인지 의심을 품었을 것이다.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하아, 하고 깊게 한숨을 내쉰 치하야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이 안으로 와봐. 지도 좀 그리면서 이야기하자."
"아, 응."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열렸다. 그리고 자연스레 하루카는 안으로 들어섰다. 보통의 포로라면 그 순간 빠져나갈 생각을 했겠지만, 치하야는 자신이 포로라고 느끼지 않았고 그렇게 느낄 수도 없었기 때문에 그다지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치하야는 돌바닥을 가리켰다. 감옥의 바닥에는 새로운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 또한 치하야가 예상한 전쟁의 예상도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카는 주저앉아 치하야가 가리킨 그림을 바라보았다.

 
"이 쪽이 애스터리스크 협곡이고, 이 쪽이 그린 브리즈 호야. 꽤나 가깝긴 한데... 음, 하여간. 그럼 현재 인간군은 그린 브리즈 호에 주둔해 있다는거지?"
"으응.."

 
치하야가 그린 브리즈 호 쪽에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묻자 하루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잠깐 지도를 보던 치하야는 흐응, 하고 짧게 내뱉곤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현재 인간군을 포위했고?"
"응."
"이렇게 점의 형태로 포위했다면... 보나마나 가장 약한 '점'을 노리겠네. 그린 브리즈 호의 물자는 오래가지 못할테니까, 그 쪽을 쭉 파고 나가서 보급대와 합류할 길을 찾겠지. 공성전도 아니고 이게 뭐람. 식수는 저 쪽에 있지만 너희는 물이 없어도 살 수 있으니 그건 상관 없을까?"
"그건 상관없어. 인간같지 않으니까."

 
하루카의 말에 치하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지도를 바라보던 치하야는 신음을 내뱉었다. 그 것이 혹시 타개책이 없다는 소리는 아닐까 하는 불안에 하루카는 치하야를 바라보았지만, 치하야는 잠시 그림을 바라보다 말했다.

 
"인간군을 보급대와 합류하지 못하게 하면서, 동시에 그린 브리즈 호에서 한발자국도 못 나가게 하면 되겠지만... 그건 너무 오래걸려."
"응?"
"물이 있으면 꽤 오래 저항할 수 있을거야. 아아, 어떻게 내가 너희들에 대해서 안다면 너희들의 능력으로 뭔가 할 수 있는 일도 있을텐데... 물을 사용하지 못하게하면 당장 그린 브리즈 호에서 나오려고 할거야. 하지만 그 나오는 과정에서 보급대와 합류하게 해선 안돼. 그렇다면, 북쪽으로... 인간계로 도망치게 하는 건 관두는 편이 좋으려나."

 
치하야가 혼잣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하루카는 치하야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치하야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하루카. 인간군을, 남쪽으로 도망치게 하는 편이 좋겠어."
"남쪽? 남쪽은 인간계와 더 멀어지지 않아? 거기다가 도망치게 한다니, 무슨 수로..."
"그게 어려워... 식량이 떨어지면 보급대가 있으니 반드시 북쪽으로 빠지려고 할테니까. 하지만 북쪽으로 가면 보급대랑 합류할 확률이 너무 높아... 그럼 분명히 저항할거야. 음, 인간군의 병력이 너희들의 1.5배쯤 된다고?"
"응."

 
하아, 하고 짙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치하야는 잠시 고민하며 지도를 바라보았다. 북쪽. 인간계. 남쪽으로 가면 갈수록 마계고, 그 곳은 광활한 사막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며 고민하던 치하야는 내뱉었다.


"...식수를 쓰지 못하게 해야 해. 그래야만 그린 브리즈 호를 쓸모없게 만들 수 있어. 그럴 방법이 있을까."

 
그 말에 하루카는 눈을 깜빡였다. 그런 하루카를 바라보던 치하야는 한숨을 푹 내쉬곤 말했다.


"하루카. 나도 함께 가야겠어. 데려가."
 

그리고 치하야가 내뱉은 말은 하루카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하루카는 크게 당황했다. 아무리 그가 포로같지 않다지만 그는 분명 포로다. 그 사실을 자각시키기 위해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던 하루카는 한숨을 섞어 내뱉는 치하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든 숨겨서 데려갈 만한 방법 없을까? 이런 식으로 상상만으로 대처하기엔, 실제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오빠하곤 상대가 안돼. 직접 가서 대처해야해. 그, 겉모습 같은 건 커다란 로브같은 걸 둘러 쓰면 되지 않을까?"
"으음... 그렇지만 마력의 냄새는......"
"그건 또 뭐야?"
"그런 게 있어. 인간과 마족의 마력의 냄새는 다르니까... 아!"

 
그리고 치하야의 주장이 현실성이 있다고 고려되어 그녀를 데려갈 만한 방법을 고려하던 하루카는 탄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런 하루카를 치하야는 의아한 눈동자로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하루카는 고개를 끄덕이곤 바닥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 당장 가자! 방법이 있어. 그 방법이면 분명 치하야짱을 전장으로 무사히 데려갈 수 있을거야. 자아!"
"아, 잠, 잠깐 하루카! 나 아직,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에 급히 감옥 밖으로 발을 옮기던 하루카는 멈칫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뭔데?' 그렇게 묻는 눈동자에 잠깐 당황해서 그녀를 바라보던 치하야는 머뭇거렸다.


"어, 그게, 그러니까..."
 

그리고 치하야가 머뭇거리는 것을 처음 본 하루카는 마치 신기한 것을 보듯 그녀를 바라보다가 곧 의아한 눈동자로 시선을 고쳤다. 하지만 그 변화를 치하야는 보지 못했다. 고개를 푹 숙였기 때문이었다. 그 반응에 이상하게 여기며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지 물어볼까 고민하던 하루카는 순간 자신의 입에 닿은 온기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따스한 온기. 아주 잠깐 닿았다 떨어진 그것이, 치하야의 입술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이라고 느껴지는 잠시동안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하루카가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치하야는 고개를 홱 돌려 버린 뒤였다.


"저, 치하-"
"대답은 그것 뿐이니까!"


더 이상의 말은 기대하지 말라는 듯 그렇게 자르고 들어오는 말에, 하루카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웃어 버렸다. 그 짧은 웃음 소리에 치하야가 어째서 웃는거냐고 화를 내려는 순간, 치하야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빠르게 입술을 차지한 하루카는 치하야를 끌어안았다. 방심한 틈을 노려, 잠깐 닿았다가 떨어지는 그런 짧은 키스가 아닌, 좀 더 깊게 키스한다. 그 느낌에 치하야는 그대로 눈을 감아 버렸다. 온 몸의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이럴 때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짧게 스쳐지나갔지만 그런 생각은 금새 녹아 버렸다.
만족할 때까지, 마음껏 키스한 하루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아쉬운 마음으로 치하야를 놓아주었다.

어떻게 호흡을 할 줄 몰라 당혹했던 듯, 치하야는 간신히 숨을 다잡았다. 붉어진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던 하루카는 웃으면서 말했다.

 
"왠지 더 심한 짓까지 하고 싶어지는데~"


그 말을 들은 치하야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새빨개 진 채로 치하야는 뭐라 말하려 했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하루카는 치하야의 말을 이해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바보!' 하루카는 웃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아, 하지만..."
"에? 뭐, 뭐하는 거야, 하루카?"
 

하루카는 치하야를 끌어안은 채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당혹한 시선으로 치하야가 하루카를 바라보았지만, 하루카는 치하야를 바라보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기뻐."


짧은 말이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솔직한 말이었다. 그 순간, 하루카는 자신이 정말로 최고로 행복하고 기쁜 표정을 짓고 있다고 확언할 수 있었다. 정말로 기뻤다. 기쁘다는 말 이외엔 다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루카는 도저히 미워할 수 없으니까."
"미워하지 않으면 좋아한다일까나?"
"동성한테 원하지도 않았는데 키스당했을 때 그 이외의 다른 선택지를 찾아봐."


그리고 들려온 치하야의 말에 하루카는 웃었다.

 
"없는 것 같네."
"그렇지?"
"응!"

 
그렇게 대답한 하루카는, 치하야가 놓으라고 할 때까지 쭉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전쟁터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잊어 버린 채로.
될 수 있다면, 쭉 그렇게 있고 싶다는 욕심으로.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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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나서 다시 1편부터 훑다가 알아챈건데...

처음엔 16kb였는데 진행이 될수록 한편당 용량이 늘어나고 있..!?

뭐 물론 이번편은 2편 분량을 합친거라 많아진거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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