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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데코쨩과 오늘부터 1일!」 이오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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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1-24, 2016 00:10에 작성됨.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이 바보는.

미키와 함께 있다 보면 시도 때도 없이 생각하게 되는 한 마디를 어김없이 떠올리며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한심함을 담아 바라보았지만,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키는 생글생글 웃을 뿐이었다. 뻔뻔함만은 가상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뜬금없다. 미키의 돌발적인데다 일방적이기까지 한 선언은 한적한 사무소에서 입에 문 빨대로 오렌지 주스를 빨아올리며 영업의 피로를 풀고 있던 나를 가볍게나마 당혹시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1일이라니 의미를 모르겠는데. 무슨 뜻인지 설명이라도 하지 그래」

「그러니까 1일은 1일이야. 데코쨩과 미키는 오늘부터 시작인 거야」

「… 시작이라니 뭐가? 친구?」

 

친구. 스스로 입에 올리고도 약간 낯간지러워지는 단어였다. 뭐어, 미키 저 녀석과 나는, 친구인 걸까. 다소 미묘하게 느껴졌다. 친구라고 부르기에 부족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좀 투닥거리는 횟수가 많지 않을까. 하지만 우정이란 서로 다투며 더욱 깊어지는 것이라고 하기도 하는 모양이니, 이 슈퍼 아이돌 이오리님의 넓은 아량으로 본다면 저 염치를 모르는 녀석이라도 특별히 친구라고 인정해주지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선심을 베푸는 심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오렌지 주스를 한 모금 더 머금고 있자니 미키 녀석이 여전히 웃는 얼굴인 채로 즉답해 왔다.

 

「으-응, 친구가 아닌걸. 애인이야!」

「푸허큽!」

 

기도에 시큼달콤한 액체가 들어차는 기분나쁜 감각과 함께 성대한 기침이 터져나왔다. 그렇게까지 날 당황시킨 범인이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는 것인지, 미키는 태연작약한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푸훗, 하고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데코쨩, 아이돌이라면 음료는 깔끔하게 마셔야 하는 거야」

「콜록, 콜록… 그런, 말 할… 입장이 아니잖아!」

 

괘씸하다 못해 어이가 없다. 모처럼의 스위트 앤 쥬시한 휴식 시간이었는데 어째서 이런 방해를 받아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는 마당에 저 태도라니. 티슈로 입가를 닦아내고 나서야 미키에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떠올릴 만한 여유가 생겨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었지만.
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내가 잘못 들었는지도 모르겠는데… 방금 그러니까, 애인… 이라구?」

「응. 데코쨩이랑 미키는 오늘부터 애인!」

 

그러니까, 오늘부터 시작이야.
그렇게 말하며 미키는 천연덕스레 웃어 보였다. 평소에는 졸린 표정이 대부분인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시종일관 방실방실 웃고만 있는 모습이 묘한 위화감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잠깐! 내 동의는? 내가 너랑 왜 애인 같은 걸…」

「데코쨔~앙♪」

 

미키는 들은 체도 않고 콧소리를 내며 내 팔에 달라붙었다. 아니, 조금쯤은 이 쪽이 하는 말을 들으라니까. 게다가 말랑하고 부드러운 볼륨감이 팔에 닿는 감각이 또렷하게 느껴진다는 부분에서 아주 약간이지만 부아까지 치밀었다. 얘는 조금쯤은 자기 몸에 대해서 이해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뭐, 뭐 하는 거야! 떨어, 지라구… 진짜!」

「싫다 뭐. 애인끼리는 이렇게 하는 거야!」

「그니깐 누가 동의했냐구!」

 

한술 더 떠서 아예 얼굴을 부비기 시작한 미키를 몸을 비틀어 가까스로 떼어냈다. 마치 맹수를 경계하는 듯한 자세로 몸을 웅크리고 적개심 어린 시선을 보내자 되려 미키가 상처입은 토끼 같은 눈망울을 하더니 시무룩해져선 고개를 떨구었다.

 

「너무한 거야, 데코쨩… 사랑스러운 연인을 이렇게 대하는 사람은 없는 거야」

「애초에 애인도 아닌데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우우, 그럼 어떻게 해야 미키를 애인으로 인정해주는 거야?」

 

미키가 불만과 항의가 뒤섞인 눈빛을 향해 왔다. 나로서는 도무지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저런 태도를 보여야 할 사람은 나인 것 같은데, 왜 입장이 이토록 역전되어버린 것일까. 그것보다도 갑작스레 이렇게 영문도 모를 소리를 해 오는 미키의 의도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평소에도 내게 필요 이상으로 들러붙으려고 드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역시 이렇게까지 노골적이었던 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뭘 잘못 먹기라도 한 걸까. 좀 실례되는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바꿔 말하자면 그렇게까지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미키의 행동은 명백히 상식을 벗어나 있었다.

 

「……」

「……?」

 

째려보듯 미키를 한참이나 응시했지만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고서 갸우뚱거릴 뿐인 미키에게선 아무런 생각도 읽을 수 없었다. 하기사, 내가 아이돌이긴 하지만 초능력자는 아니니까 노려보는 것만으로 머릿속이 훤히 보일 리는 없겠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안 되겠다. 아무래도 의중이 보이질 않는다. 결국 한 발 물러서서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 하아. 저기, 미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 갑자기라니, 미키는 데코쨩을 예전부터 좋아했는데?」

「… 뭐어, 부정은 안 하겠는데. 그렇다고 쳐도 너무 갑작스럽잖아… 그, 애인… 이라고 해도」

 

직접 말하기조차 꺼려질 정도로 거북한 울림이다. 애인이라니. 아이돌이라는 신분 탓도 있을 테고, 아직은 나 스스로도 어리다고 생각하는 나이 탓도 있을 테고, 그런 단어를 지극히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기엔 아무래도 부끄럽─ 아니, 꺼림칙하다는 단순한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나도 미키도 여자다. 백 번 양보해서 어느 한 쪽이 남자이기라도 했다면 그나마 이것보다는 덜 괴상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맹하다고 해도 그런 것도 모를 정도로 바보는 아닐 텐데, 연이어 본인에게는 들려주기 힘든 생각을 하며 미키를 주시하고 있자 미키는 생각을 짜내는 중인 듯 팔짱을 끼고 고뇌에 찬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으으음… 므으으음……」

「뭘 그렇게까지 고민하는 거야…」

「… 아무래도 그건 말하기 힘든 거야」

「하아?」

 

아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뭐야, 대체. 그렇게까지 질러 놓고선 이제 와서 말하기 어렵다니, 대체 무슨 사정이 숨겨져 있길래 저러는 걸까.

 

「말하기 힘들다니… 뭔데 그래. 애초에 이 시점에서 말하기 힘든 일 같은 게 존재해?」

「미, 미키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야!」

「부끄러워…?」

「그런 거야」

 

미키는 볼을 부풀리고서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삐졌다고 광고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지만 곤란할 뿐이다. 이거, 다른 사람이 본다면 내가 잘못한 걸로 보일 수도 있으려나. 정말로 곤란하네. 미키 녀석도, 이 상황 자체도, 그저 난처할 따름이었다. 약간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아 이마에 손을 짚자, 내 쪽을 흘끔흘끔 곁눈질하고 있던 미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데코쨩! 아픈 거야!?」

「꺄!? 가, 갑자기 놀래키지 말라굿! 정말!」

「그, 그치만 데코쨩이 아픈 것 같으니까…」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두 손을 쭈뼛대는 미키에게서는 이미 토라진 모습 같은 것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과장이 심하다. 그냥, 어디까지나 가볍게 제스쳐 비슷한 느낌으로 손을 짚었을 뿐인데. 이래서야 마치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어머니 같다. 아니, 비슷한 건 하나 더 있으려나. 썩 내키지 않는 발상을 지워내려고 하기가 무섭게 미키가 염려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연인이 아프다는 건 슬픈 걸…」

「…… 언제까지 그 소리를 할 생각일까」

 

이번엔 정말로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다. 두통약이라도 먹는 감각으로 조금 남아 있는 오렌지 주스를 입 안에 털어넣었다. 혼란스러운 기분이었다. 처음엔 그냥 미키 녀석의 변덕스러운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단순한 장난이라고 여기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왜 이런 일에 신경을 쓰고 있어야 되는 걸까, 가뜩이나 요즘 일이 많아서 지쳐 있는 참인데. 미키 얘도 조금쯤은 가려 가면서 행동하면 안 되나. 아주 약간이지만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이 분명한 자신의 모습에 기분이 더욱 불쾌해졌다. 이런 거, 정말로 별 일도 아닌데.

 

「있지, 미키… 다른 때라면 모르겠는데, 지금은 좀 적당히 해 달라구. 안 그래도 피곤하니까…」

「… 그, 그래서 미키는 더더욱 물러설 수 없는 거야!」

「물러설 수 없다니, 그건 또 무슨…」

「데코쨩,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이는 거야. 뭐 재밌는 거라도 할래? 아님 맛있는 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미키가 사 올─」

 

 

「좀…! 진짜 그만하라니까!」

 

 

순간 짜증이 치밀어 거의 소리를 지르다시피 대꾸하고 말았다. 미키는 몸을 한 차례 움찔하더니 한눈에 상처를 받았음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말 한 순간의, 지극히 우발적이었던 한 마디를 내뱉고서 무슨 일을 저질러 버린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사무소는 순식간에 숨이 막힐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 어떤 표정을 지으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어정쩡하게 눈을 내리깔며 시선을 피할 수밖에는 없었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쌓인 피로 탓에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고는 해도 너무 지나쳤다. 미키의 의도가 순수 그 자체임은 이미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 애한테, 단지 휴식을 방해하면서 귀찮게 군다는 이유만으로 매몰차게 대하다니. 몇 분 전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 그, 미안… 해. 소리를 지를 생각은 없었는데…」

 

이건 내 쪽에서 먼저 사과해야만 한다. 그렇게 판단하고힘겹게 입을 떼었지만, 미키는 그저 고개를 좌우로 저을 뿐이었다. 어떤 의미일까. 이미 내게 실망해 버렸다는 뜻일까. 치밀어 오르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다고 느꼈다.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조차 이젠 들지 않았다. 옷자락을 꾸욱 움켜쥐고서 머리를 떨구고 있자 얼굴이 보이지 않는 미키가 나직하게 말해 왔다.

 

「… 사과할 건 미키인 거야. 귀찮게 굴어서 미안해, 데코쨩」

「귀, 귀찮게 굴었다는 건…」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해서 화를 낸 건 다름아닌 나 자신이 아닌가. 이제 와서 둘러대 봐야 변명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저 미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는 것 정도가 사과할 수 있는 방법이겠지.
미키는 풀이 죽은 듯도, 미안함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 수 없는 듯도 들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요즘 데코쨩, 많이 힘들어 보였던 거야」

「……?」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고개를 들자 미키 역시도 두 손을 모아잡고 괜한 테이블만 뚫어져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명백히 죄책감이 드러나는 그 모습에 조금 가슴이 아파졌다.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니 저럴 필요까지는 없을 텐데, 어떤 의미로든 정도라는 걸 잘 모르는 아이다.

 

「… 뭔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을까, 그렇게 생각해서. 미키, 고민해 봤어. 그래서… 이렇게 해 보기로 한 건데, 아무래도 미키는 틀렸던 것 같아」

「이렇게, 라는 건…?」

「애인 얘기인 거야」

 

미키가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야기에 머릿속이 온통 어지러워졌다.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도 판단이 서지 않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인 내 모습이 미키에게 어떻게 보였을지는 알 수 없었다.

 

「데코쨩이 힘이 나게 해 주고 싶어서, 그랬던 거야. … 그치만 사실은 변명일지도. 그냥 데코쨩을 위해서, 라는 생각으로만 했던 건 아닌 거야」

「미키…」

「그게, 미키는 데코쨩을 정말 좋아하니까. 그러니까 변명인 거야. 데코쨩과 더 사이 좋게─ 같이 하고 싶은 일들을 더 잔뜩 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던 거야」

「… 그런 욕심이 어디 있어」

「어쨌든 미안, 데코쨩. 미키, 이제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까… 이제 제대로 쉬어 줬음 하는 거야」

 

데코쨩이 힘들어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분명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미키는, 그러나 뭔가 말하려던 입을 부자연스럽게 꾹 닫고서 재차 얼버무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마저도 내게 더 이상의 부담감을 지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미키를, 이해해 주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미키 녀석의 제멋대로인 점을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고 있었지만, 결국 멋대로였던 것은 언제나 나 혼자였던 셈이다.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리고 있다고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분명 나 자신조차도, 필요 이상으로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줏대 없이 굴어도, 괜찮은 거곘지.

 


「… 바보네, 진짜」

「데코쨩? … 앗」

 

테이블 너머로 상체를 굽혀, 미키의 목 뒤에 양팔을 두르고 가볍게 안았다. 약간 당황하는 기색이던 미키는 금새 얌전해졌다. 목덜미에 미키가 내쉬는 숨결이 따뜻하게 와 닿는 것을 느끼며,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심을 전했다.

 

「네가 미안할 게 없잖아. 어쩔 수도 없는 바보라니까. 그리고, 미키 넌 내 친구니까… 그런 것쯤은 이렇게 알게 어렵게 할 게 아니라 직접 말로 하라구. 나라고 해서 조언이라는 걸 들을 줄 모르는 것도 아니고」

「… 아핫」

「왜, 왜 웃는 거야…」

「그게, 처음인걸. 데코쨩이 미키를 친구라고 해 주는 거」

「… 그랬던가?」

「응. 그런 거야. …… 으음, 그치만 약간은 아쉬울지도 모르겠는 거야」

「이유는, 안 물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네…」

「피, 실망이야」

「… 그치만, 제대로 말해 둬야 할 건 있는 것 같으니까」

 

머리를 끌어안은 상태이기에 미키의 얼굴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평소에는 낼 생각도 하지 않았던─ 애초에 낼 수도 없었던 용기가 생긴 것일지도 몰랐다. 입에 담아 본 적이 그다지 없었던, 조금은 어색한 울림의 단어를 조심스레 입에 담았다.

 

 

「고마워, 미키」

 

 

「… 응. 오히려 미키가 고마운 거야」

「… 뭐가 말이야?」

「데코쨩이 고맙다고 해 줘서, 고마운 거야!」

「무슨 말이 그래…?」

 

뒤늦게 몰려오는 어색함과 낯뜨거운 감각에 몸을 떼자, 미키는 아까 보았던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뭐가 좋다고 저렇게 생글거리는 건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눈치채고 있었다. 내 입가에도 어쩔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다는 것쯤은.

 

「아, 맞다. 데코쨩, 그럼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어?」

「부탁…? 아니, 애초에 '그럼'이라니 의미를 모르겠는데」

「아핫,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닌 거야. 잠깐 이리로 와 보는 거야」

「엣, 뭐 하는… 미, 미키?」

 

내 손을 잡아끈 미키가 향한 곳은 널찍한 소파였다. 설마, 그런 생각은 아니겠지. 조금 불길한 예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무릎베개 해 줘!」

「… 싫어」

「에에~! 왜인거야 왜인거야!」

「왜인거야라니, 문장으로서 성립이 안 되고 있지 않을까」

「데~코쨩~. 미키의 소원인 거야! 데코쨩도 피곤하니까 같이 낮잠 자자, 응?」

「… 낮잠이라고 해도, 난 그런 습관은 없는데?」

「한숨 자고 나면 분명히 기분 좋을 거야. 응, 데코쨩?」

 

올려다보는 시선으로 부탁해 오는 미키. 그것을 귀찮다는 듯 털어내려던 손을, 마지못해 내렸다. 여기서 이렇게 행동해서야 방금 전까지 사과했던 게 도루묵이다. 어쩌면 미키 녀석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영악한 타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약간의 후회가 섞인 한숨을 내쉬며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 그래, 그래. 누우려면 지금 눕던가 해」

「데코쨩! 고마운 거야~!」

 

마치 강아지처럼 좋아하며 미키가 냉큼 소파 위에 눕자 무릎 위에 풍성한 금발이 흐드러졌다. 무심결에 그것을 손가락으로 빗어내리자 미키가 간지럽다는 듯 쿡쿡대며 몸을 뒤척였다. 그 별 것 아닌 동작에 어쩐지 나까지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분하다. 어째서인지는 제대로 설명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분했다.
그렇지만, 어쩌면 세상엔 '기분 좋은 분함' 이라는 것도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느끼는 것이 분명 그와 흡사한 것이겠지.

 

「아후우…. 누우니까 조금 졸려지기 시작한 거야」

「그렇게까지 전환이 빠르구나, 너… 」

 

미키는 소파에 눕자마자 졸린 얼굴이 되어 작게 하품을 했다. 솔직히 조금 질려 버릴 정도였지만 묘하게도 납득은 갔다. 역시, 미키에겐 이 모습이 어울린다. 마음이 안정되어서인지, 피로가 쏟아지기 시작해서인지 나까지도 조금 졸려지기 시작했다. 잠깐, 이대로 잠들어 버려선 완전히 미키가 노리는 대로잖아. 슬금슬금 고개를 드는 미묘한 저항감마저도 노곤하게 녹여 버릴 정도로, 한낮에 사무소의 창유리 너머로 비쳐드는 햇살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따스했다. 미키의 머리칼이 주는 포근한 느낌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오래 지나지 않아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졸음에 고개를 꾸벅이게 되고 말았다.

 

「…… 미키…」

 

이름을 불러 보았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졸린 눈을 비비고 내려다보자, 미키는 이미 세상 모르고 곯아떨어져 있었다. 진짜로 빠르네, 너. 미키의 몸 위에 편안히 손을 올리고서 소파에 몸을 묻고 눈을 감았다. 기분 좋은 노곤함과 함께 의식이 서서히 흐릿해졌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구나. 어쩐지 앞으로도 종종 소파에 신세를 지게 될 것 같다고, 몰려드는 수면에 몸을 내맡기며 생각했다.

아마 자고 일어나서도, 내일 출근해서도, 그리고 모레에도 또다시 시덥잖은 일로 틱틱대게 되겠지. 나와 미키 사이인 만큼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 나날이, 이 사무소에서 앞으로도 계속되는 것도 나름의 행복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감사해야 할 것은 분명 나다.
지금 말한다고 해도 미키 녀석은 듣지 못하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러면, 미키도 나도 좋은 꿈을 꿀 수 있기를.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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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주제가 뭐냐고 한다면 좀 곤란하군요. 처음 생각한 거랑은 다르지만

그냥…  미키이오입니다. 네. 그렇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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