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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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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5, 2015 09:30에 작성됨.

"저기 치하야쨩, 그거 알아?"

 

"응?"

 

촬영이 이제 막 끝났다. 우리 두 사람은 순백의 의상 그대로, 화장도 아직 지우지 않은 체 이제는 뒷정리로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 근처의 휴식용 의자에 앉았다.

 

"결혼하기도 전에 웨딩드레스를 입으면 혼기가 늦어진다는 이야기."

 

"아, 그거. 아즈사씨에게 들어서 알고 있어."

 

우리가 입고 있는 건, 원래 복장만큼 풍성하지도, 길이가 길지도 않은 무릎 위 정도의 약식 드레스. 그렇지만 하얀 장갑도, 머리 뒤를 덮는 면사포도 갖추고 있는 거야.

 

"으으, 우리도 혼기가 늦어져버리는 걸까~"

 

"설마, 이런 건 웨딩드레스라고 볼 수는 없는 걸."

 

그런 건 그저 미신일 뿐이야, 라고 대답하지 않는다는 건.....혹시 치하야쨩도 조금은 그 말을 믿고 있는 걸까?

 

"치하야쨩도 그 말이 신경쓰이긴 하구나."

 

".....그렇네."

 

에, 치하야쨩? 조금 의외인 대답이 나왔는데요.

 

"그렇게 눈을 동그랗게 뜬 체 바라보지 말아줘. 그, 아무래도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으니까."

 

치하야쨩은 부끄러운 듯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진한 화장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볼에 아주 조금은 붉은 기가 도는 것 같았다.

 

"아, 미안. 내가 생각한 거랑은 좀 달라서."

 

"그러니?"

 

대답은 해주지만, 아직 완전히 여기를 돌아보지는 않은 체.

 

"저기, 하루카."

 

"응."

 

"너도 역시, 신경쓰이겠지?"

 

"아하하.....그렇지 뭐."

 

그렇게 대답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막연하다는 느낌. 아주 어렸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렸다고 한다지만, 지금은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 결혼.

 

"애초에 난, 아니 우리들은 결혼의 전 단계라고 할만한 것도 아직 클리어 못했으니."

 

"......그렇네."

 

그래, 아직 연애도 못 해봤는걸. 더군다나 아이돌은 연애금지. 설령 하고 싶다고 해도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다.

 

"치하야쨩, 혹시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라도?"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로 전환되는 걸까나."

 

그거야, 치하야쨩이 혼기에 관심을 두고 있었으니까. 결혼이라고 한다면 당사자 외에도 자연스럽게 곁의 사람 또한 생각하게 되고, 그게 과연 누구일지 궁금해지는 거지.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음, 적어도 하루카씨는 그렇게 생각해.

 

"자, 치하야쨩? 숨겨도 소용 없어요?"

 

"......"

 

입을 꾹 다문 치하야쨩에게, 첫번째 회유 시도.

 

"......"

 

대상은 완전히 이 쪽을 무시하고 있음. 화려하게, 실패.

 

"저기, 치하야쨩~? 들리신가요?"

 

"응. 그래서 용무는?"

 

오오, 완전한 무시는 아니라는 거군요. 아까와 달리 여기를 곁눈질하고 있네. 대답도 해주고. 그렇다면 아직 활로는 열려있어! 이 기회 놓치지 않고.......아마미 하루카! 갑니다!

 

"네 마음 속 사랑의 행방을 묻고 싶은데 말이지....."

 

"신문 안 봐요."

 

두번째 시도, 실패. 오히려 잡상인 취급을 받아버렸다.

 

"우우, 너무해...."

 

"별로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라고 보는데......."

 

치하야쨩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곤란한 웃음을 짓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어.

 

"그럼 하루카에겐 있는 거니? 그런 사람."

 

"에.....?"

 

설마했던 치하야쨩 쪽에서의 반격! 어떻게 대답해줘야할지 몰라서, 일단은 노코멘트로. 묵비권을 행사하는 나를 쭉 지켜보던 치하야쨩은 다시 웃었어.

 

"이런 건 서로 묻지 않는게 좋다고 봐."

 

그렇게 말하는 치하야쨩의 얼굴에 어째서일까, 쓸쓸한 빛이 비치고 있었어.

 

"치하야쨩."

 

"왜?"

 

이대로 대화를 끝낼 수는 없어서, 눈 앞에 있는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고, 크게 심호흡을 한 번. 그리고는......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 알려줄게."

 

"하루카?"

 

"대신에, 치하야쨩도 알려줘야해?"

 

잠깐, 이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하며, 치하야쨩이 승낙인지 거절인지 마음을 굳히기 전에 먼저 선제공격을 날렸어.

 

"그 사람은 언뜻 보면 차가워보이지만, 사실은 무척이나 따듯한 사람이야."

 

우, 이 쪽에게도 반동이 돌아와. 부끄러워서 얼굴에 열이 팍팍 도는구나. 열 때문에 기껏 한 화장이 망가질 것 같지만, 어차피 지울 거니까 괜찮겠지.

 

"자, 치하야쨩 차례야."

 

"난 아직 하겠다고 결정도 안했는데......"

 

"그치만 이미 들어버린 건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치사하네....."

 

저기, 치하야쨩. 작게 중얼거려도 다 들리거든?

 

"정말 치사하네, 하루카는."

 

그렇다고 아예 들으랍시고 목소리의 크기를 키우는 건 좀 참아주었으면 좋겠다.

 

"자, 자 치사해도 이미 들어버린 이상 무를 수 없는 거니까, 알려줘."

 

"못 들었습니다만."

 

"치하야쨩!"

 

"정말, 어쩔 수 없네. 좋아, 말해줄게. 나는....."

 

그 누구보다도 웃는 얼굴이 빛나는 사람이야. 아주 주의깊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그런 목소리로, 치하야쨩이 고했어. 이젠 완전히 뒤를 돌아보고 앉아 볼 수 없지만, 분명 나처럼 얼굴에 열이 잔뜩 올라와 있을거야.

 

"야요이?"

 

"아니야."

 

"히비키쨩?"

 

"아니야."

 

"그러면 혹시.....마코토?"

 

"그것도 아냐."

 

계속 물어보려고 했지만 스무고개는 그만둬, 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우선 중지. 어 그런데....뭔가 이상하다. 나 왜 우리 사무소 사람, 그것도 여성진 이름만 대고 있던 걸까. 으음, 여자끼리가 이상하다는 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그 역시, 남자여자가 보통이니.....잠깐, 그렇다는 건.....?

 

"프로듀서씨.....?"

 

"그러니까 그만두라고......프로듀서도 아니야."

 

"그러면 치하야쨩, 설마 내가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치하야쨩은 아예 질렸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누구?"

 

"......더 이상은 노코멘트."

 

치하야쨩의 가드는 참 단단하네. 틈을 파고 들었다고 생각하면 눈 앞에 이렇게 거대한 벽이 있다니까. 아아, 그야말로 철벽......

 

"하루카."

 

"응!?"

 

"마음에 두고 있다는 상대, 혹시 시죠씨?"

 

"스무고개는 그만두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그 전에 벌써 3번, 아니 아까까지 해서 4번이나 물어봤으니 나에게도 그 정도 기회는 주어져야한다고 생각해."

 

어느덧 다시 뒤돌아 나를 바라보는 치하야쨩. 그 눈은 진심이었기에, 나도 모르게 그만 고개를 끄덕였어.

 

"자, 그래서 대답은?"

 

".....아니요."

 

대답을 듣자마자 뭔가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는 건 왜일까.

 

"다음 질문. 혹시 리츠코?"

 

"아니랍니다~"

 

"음....그럼 누구일까.....마코토?"

 

"부부- 틀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남은 기회. 갈피를 못 잡겠다는 듯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던 치하야쨩은 결국 고개를 푹 숙인 체, 최후의 질문을 던졌다.

 

"....프로....듀.....서?"

 

자기가 말하고도 아니라는 걸 직감한 치하야쨩은 겨우 고개를 들어 씁쓸하게 웃고 있을 뿐.

 

"치하야쨩의 예상대로, 아니야."

 

"그렇네. 프로듀서는 차갑게 보이지 않으니까."

 

"응응, 오히려 순한 인상이지."

 

아아, 우리 둘의 스무고개는 결국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체 끝나버렸구나.

 

"치하야쨩이 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 진짜 누굴까나? 하루카씨는 궁금해죽겠는 걸."

 

어떨까하고 이 쪽에서 운을 떼어봐도,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어머, 그러니? 나도 하루카가 좋아한다는 사람이 과연 누굴지,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어졌는데."

 

곧 이렇게 반격을......후, 후후.....치하야쨩도 참.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말하고 있네. 아, 거울을 보여주면 되는 걸까.

 

"하루카."

 

"무슨 일?"

 

"만약에 말이지, 먼 나중이라도 좋으니까 그 사람과 결혼한다고 한다면.....그 때는 날 불러줘."

 

"하, 하하하.....글쎄......결혼까지는 생각 못해봤는데."

 

으음......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동성결혼이 불법이니까. 좀 더 시간이 흐르고난다면 저 멀리 미국처럼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꿈만 같은 이야기네. 거기다 나, 연애마저 금지당한 아이돌이니까. 결혼을 논하려면 적어도 아이돌을 은퇴하고나서여야겠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 앞에 있는,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좋아하는,

 

정말 좋아하는,

 

사랑하는.....사람이 어디를 보고 있는 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애요소로 작용한다고 해야할까.

 

"그러니까, 만약의 이야기로."

 

"왜, 와서 두 사람의 관계는 인정 못한다고 소리치게?"

 

그게 못마땅해서, 조금 심술궂은 대답을 해버려.

 

"서설마, 그럴 리가."

 

아하하, 살짝 뜨끔한 듯 보이는 건 착각일려나.

 

"그럼 총천연색 하이컬러로 무장해 자기보다 더 빨리 결혼에 골인하는 하루카씨를 응징하려고?"

 

"그것도 아니야. 그리고 네가 왜 먼저 결혼한다는 걸로 정해버리는 건데. 같은 의상을 입었으면서."

 

툴툴거리는 치하야쨩에게 뒤늦게 농담이었다고 말했지만, 원망이 담긴 눈빛을 볼 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다.

 

".....가장 친한 친구로서 축가도 불러주고 부케도 받아주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무리겠네."

 

미, 미묘한 걸......그, 그러니까 기쁘긴 한데, 기쁘긴 한데! 음.....내가 정말로 바라는 건 아니라서.....저기 있지, 치하야쨩. 나는 너에게 부케를 던지기보다는, 서로 손을 마주 잡은 체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버진로드를 걷고 싶어. 네가 불러주는 축가를 듣기보다는, 두 사람이서 인자한 주례사님 앞에 서서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언약을 맺고 싶어.

 

그치만, 역시 이거 이루어질리 없겠지요. 그렇지요? 그러니 치하야쨩의 제안에 만족하지 않으면, 무리라고 말하는 그 애의 마음을 서둘러 바꾸지않으면 안되겠죠?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발 그 때 와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을 듯, 다소 과장된 제스쳐를 취하자 치하야쨩이 웃었어.

 

"그렇게까지 부탁한다면야......어쩔 수 없네. 그래, 꼭 가줄게."

 

이상하네. 분명 웃고 있는데, 기쁘다는 걸로는 보이지 않아. 묘하게 그늘이 져있어. 치하야쨩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는 걸까? 하지만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그 쪽이고.....으으음, 나로서는 모르겠네. 치하야쨩이 대체 왜 저러는지.

 

"우리도 슬슬 정리를 해야겠어. 우선 화장부터 지우러 가볼까."

 

"응, 그러자."

 

대기실로 향하면서 우리 두 사람은 손을 꼭 잡았어. 확실히 느껴지는 치하야쨩의 온기. 그렇지만 속에 담겨있는 그녀의 진짜 마음은 확인하지 못한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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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이구 답답(이렇게 쓴 건 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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