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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나무 주택이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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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9-25, 2015 01:49에 작성됨.

처음에는 타카네 에피소드 였습니다만,

쓰다보니 분위기가 조금 안맞는다 싶어서 내용을 바꾸었습니다.

타카네가 가볍게 산책을 하면서 생각한 가벼운 의문의 답을 찾던 내용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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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갑작스레 일이 취소된 걸까? 애매한 시간. 조금 더 빨리 일이 취소되었다면, 혹은 조금만 더 늦게 취소되었다면 적어도 '오늘 하루의 일과를 잘 끝냈다'라는 달성감 속에서 귀가할수 있었겠으나 너무나도 애매한 시간이다. 그야말로 주부들이 저녁거리를 사러나올 시간. 지금 시간에 밖을 걸어다닌다는 사실조차 그녀를 울쩍하게 만든다. 등과 척추를 적셔주는 시원감각은 더욱 그녀를 비참하게 할 뿐이다. 가을임에도 허벅지 까지 올라오는 두꺼운 겨울용 양말을 신고 다닌다. 양말 위로 보이는 관절보정 밴드가 보이는 건 참을 수 없는 굴욕. 그러면서도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슬쩍 보이는 무릎이 너무나도 원망스럽다. 단 한번도 '죽고싶다' 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을 것 이다. 그리고 단 한번도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왜 그런 생각을 할까?' 하는 고찰도 해 본적이 없다. 최근들어 그녀는 '죽고싶다'라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자살충동을 느낀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닌, 그저 일종의 자괴감 때문에. 우사밍성에서 직장까지 출근하는 길이 괴롭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도. 오랜시간 서 있는 일도. 오래 걸어 다니는 일도. 그때마다 무릎이 아프다. 너무나 아프다. 죽고 싶을 정도로. 분명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왜 그런 생각을 할까?' 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지만 지금은 '만약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철학이나 사상적인 문제로 죽고 싶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한다. '무릎이 아파서 죽고 싶어'는 얼마나 비참하단 말인가. 특히 딜레마다. 무릎에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체중을 줄이는 것이 첫째. 이미 그녀는 '우사밍성에서 온 노래하고 춤추는 성우 아이돌'이기에 더 이상의 체중 감량은 불가능 하다. 이미 더 뺄 무게가 없다. 둘째는 무릎 주위와 다리의 근육을 발달시키는 것 이다. 셋째는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되도록 다리를 쉬게 해주는 것. 서로 모순되는 두번째와 세번째의 요법을 어떻게 병행하면 좋단말인가 하는 딜레마 속에서 여전히 해답을 갈구한다. 온 몸으로.

           "아아..."

           저도 모르게 새어나온 한탄.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헤헷."

           저도 모르게 새어나온 웃음. 그녀는 알고 있다.

           지금까지 자신을 17세라는 컨셉을 용케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컨셉이랄까, 캐릭터랄까. 자신조차 제대로 설명하기 힘든 그것을 계속하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17세라는건 이미 '자신의 나이'가 되버린지 오래다. 하지만 자신의 육체는 언제까지 자신을 따라줄까 하는 그런 걱정도 있다. 자신이 늙어 보인다는, 그런 외모에 대한 걱정이 아닌 더욱 단순하고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걱정. '무릎'.

           "아아아..."

           저도 모르게 새어나온 두번째 한탄.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오늘도 늦은 시간에 일이 끝날거라 생각했는데 어째선가 허탈하다. 지금 들어가서 냉장고를 열어봐야 자신을 맞이해주는 것은 무엇이 있겠는가.

           "결혼하고 싶다아아..."

           저도 모르게 새어나온 세번째 한탄. 그녀는 알고 있었으나 그 내용은 눈치채지 못했다. 단순히 일을 쉬고 싶다거나, 집에 돌아가면 자신을 반겨줄 아이를 원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집에가면 자신의 다리를 주물러주고 대신 청소를 해주고 설겆이와 저녁준비를 해줄 사람을 원한다는 지극히 남성적인 발상의 결혼욕구. 그리고 그녀의 눈을 사로잡는건 훼미리마트.

 

 

           지금까지 잘 오지 않았던 공원. 어린아이들이 놀만한 놀이터나 모래사장은 없이 석재로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와 얇게 깔린 모래 그리고 화단, 약간의 가로등과 벤치. 벤치를 손으로 가볍게 쓸어내리며 먼지를 털어내고 그 위에 앉는다. 그리고 자신의 옆자리에 친구를 앉히듯, 훼밀리마트 봉투를 내려놓고 잠시 아무것도 없는 앞을 본다.

           "음."

           짧은 소리. 그 소리가 신호인듯 왼손을 봉투에 넣어 내용물을 촉감으로 찾는다. 차갑고 매끈한 것. 붉은 코카콜라캔을 꺼내 가져와 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린다. 캔의 위쪽을 오른손 엄지로 잘 닦은뒤 고리에 손가락을 넣어 마개를 뜯어 가득찬 탄산을 내보낸다. 소리는 비슷하다. 한모금. 탄산이 혀와 목을 때리며 넘어간다. 하지만 근본적인 맛과 향이 다르다. '아쉽지만 밖이니까...' 자신을 가볍게 위로하며 캔을 벤치의 오른쪽에 놓고는 다시 손은 봉투 속으로 향한다.이번에는 따듯한 종이팩, 이름은 카라아게군. 여자가 혼자서 이것을 사서 밖에서 음료캔과 함께 먹는다는 건 그녀로써는 다소의 각오가 필요한 일 이었으나, 지금 그녀는 각오 이전에 그런 곳 까지 생각이 미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든 자괴감은 무엇이 원인일까. 그녀는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않으니 그건 우리의 몪이다. 종이팩을 열고 하나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는다. 적은 기름과 향신료의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 육즙을 뿌리며 기분좋게 씹힌다. 콜라로 목을 축이고, 역시 아쉽다.

           편의점을 지나며 본 건물이 다시 떠오른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4층 규모의 작은 건물. 빛바래지 않은 외장을 보면 그리 오래된 건물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도 십년에서 십오년 사이. 오래 지나지 않았을 그 건물이 자꾸만 떠오른다. 목조건물 이었다. 지금의 집은 우사밍성으로 상경하고부터 줄곧 살고 있는 허름한 아파트이다. 젊은 시절, 분명 그 건물이 있던 자리에는 목조건물이 있었다. 목조 공동주택. 2층 높이의 공동주택으로 기억하고 있다. 허름하고 색이 바래고, 지금의 아파트나 맨션처럼 각 세대별로 출입문이 있는 것이 아닌 마치 여관처럼 하나의 현관을 쓰던 특이한 공동주택. 어째선가 그녀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분명 쇼와시절의 건물이었을 것 이다. 전후에 지어진 목조건물은 해안가 근처에서 자주 볼 수 있었음을 기억한다. 분명 외삼촌이었으리라 그녀는 생각하고 있다. 외가쪽은 외조모의 치매가 시작된 뒤로는 가지 않게 되었으니, 아마 그 건물과 마찬가지로 쇼와시기가 아니었을까. 그녀의 기억 속 외삼촌은 언제나 긴 팔 옷을 입고 있었다. 여름에도 두꺼운 긴 팔 옷을 입고 어머니와 자신을 맞아주었다. 맞아주었다는 건 조금 틀릴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몇번이고 찾아갔으나 그때마다 외삼촌은 아베와 그녀의 모친에게 빨리 나가주었으면 하는 눈치를 주었다. 어떤 말이 오고 갔는지 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어머니는 "꼭 붙어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며 아베 나나의 손을 붙잡으며 걸어다녔다. 언젠가 근처의 슈퍼에서 커다란 유리병과 안에 든 사탕을 어머니가 산적이 있었다. 그 사탕은 어째선가 아베의 것이 아님을 그녀는 짐작하며 다시 함께 그 목조건물로 향한다. 현관문에는 어머니보다 늙어보이던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두 사람을 보고서도 별다른 기색을 하지 않고 곁눈질로만 확인한뒤 다시 테레비로 시선을 고정한다. 어머니도 그리 신경쓰지 않았고 아베역시 마찬가지 였다. 신발을 벗어서 손에 들자 그것을 따라 아베도 신발을 두손에 한짝씩 들고, 현관문 옆에 있던 낡은 계단을 오른다. 열 다섯개의 나무계단에서는 어느날은 재밌고, 어느날은 무서운 소리가 났다. 지금 기억속 아베 나나는 그 소리가 재밌었다. 계단 옆에는 냄새나는 화장실이 있다. 그리고 복도의 끝에는 수염난 중년의 남성이 두 사람과 마주치자 급히 지나쳐 복도 중간의 어느 방으로 들어간다.

           "저기는 뭐야?"

           복도 끝의 방을 가르키던 아베 나나.

           "부엌이야."

           "왜 부엌이 밖에 있어?"

           그 답은 듣지 못했던 걸로 그녀는 기억한다.

           조금 차가운 바람은 그녀가 아닌 가라아게를 식히고 있다. 하나를 덥썩 물고는 삼킨다. 어느새 다소 식어버린 닭고기는 그리 좋은맛은 아니다. 옆에 내려놓았던 맥주를 한 모금. 달다, 콜라잖아.

           두 사람은 중간의 방문에 멈춰선다. 방문은 미닫이 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 건물을 '공동 주택'이 아니라 개인주택 혹은 여관이라고 생각하던게 아닐까. 그 건물이 공공주택이라는걸 알게된건 그녀가 우사밍성에서 살고 조금 시간이 흐른 뒤. 그 문 앞에서 어머니는 말한다.

           "시게루."

           답은 없다. 다만 어머니는 언제나 처럼 문을 열고 들어간다. 다다미 네첩반의 작은 방 구석, 테레비와 그 앞에 앉아있는 남자. 외삼촌. 언제나 회색 두꺼운 긴 팔 옷을 입고 있는 외삼촌을 아베 나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신발을 방 한 구석에 놓은 그녀의 어머니는 방 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어질러진 신문을 가지런히 정리하기 시작한다. 아베는 그저 신발을 든 체 방 문앞에 서있는다.

           "문 닫으렴."

           그리고 기계처럼 그 방문을 닫고, 다시 신발을 든 체 서있는다. 시간이 조금 걸렸다. 신문을 치우고, 다음은 잡지를 정리하여 방 구석에 놓았다. 투정도 때도쓰지 않던 어린 아베 나나는 예의가 바른것이 아닌 그저 외삼촌이라는 인물이 불편했기 때문일까.

           "오면서 맛있어 보이더라."

           하며, 봉투에서 사탕을 꺼내 방 가운대 내려 놓는다. 외삼촌은 그것을 한번 보더니 다시 테레비로 시선을 옮긴다.

           "이번 달 분."

           그리고 그 옆에 내려놓는 하얀 봉투. 그것을 외삼촌이 보고서는 조금 몸을 움직인다. 오른팔에 몸의 무게를 지탱하며 기울이고, 방 구석에서 엉덩이를 움직이지 않은 체 방 가운대에 놓여진 봉투를 향해 왼팔을, 왼팔의 소매는 그러나, 다다미에 끌리며, 다시 오른팔을 움직여 그 봉투를 낚아챈다.

           "그만 가도 돼."

 

          

           차가운 바람에 그녀도 모르게 맥주를 들이킨다. 달다, 콜라잖아. 언제 다 먹은건지도 모르는 빈 종이 곽을 봉투의 똑같은 모양의 종이 곽 옆에 잘 놓고 일어난다. 흔적이라고는 아베 나나의 마음 깊은 곳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그녀가 신경 쓸 일도 아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생각은 오로지 무릎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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