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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10일과 100일과, 1000일과 - 3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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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4, 2015 22:23에 작성됨.

#8.

  그런 치하야의 고민과 상관없이, 사무소는 계속 돌아간다. 사장은 이번에도 새로운 아이돌 후보생을 사무소에 데려왔다.

 

“아키즈키 리츠코입니다. 사무원으로 오늘부터 사무소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아, 리츠코군도 아이돌 후보생으로 들어온 거니, 오토나시군 서포트 부탁하네”

“에에에에? 아아아이돌이라뇨!?”

 

  똑 부러지게 생긴 안경녀는, 그런 이미지가 무색할 만큼 당황한다. 하지만 사장은 그런 그녀에게 계약서를 보여주면서 말한다. 여길 보게 리츠코군, 정확히 아이돌이라고 쓰여 있지 않은가. 그 말에 서둘러 계약서를 뺏어 살펴보던 안경녀는, 잠시 계약서를 읽더니 곧 믿지 못하겠다는 듯 사장에게 항변한다. 하지만 사장은 뺀질거리면서 그녀의 말을 넘겼고, 이내 곧 그녀는 항의를 그만둔다. 그렇게 새롭게 한 명의 아이돌 후보생이 추가되었고, 한 시간 뒤 사장은 또 다른 아이를 데려온다. 사무소는 빠르게 돌아간다.

 

“저(僕), 키쿠치 마코토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러분과 같이 반짝이는 여자아이가 되기 위해서 같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씩씩한 소개다. 사무실에서 하루카의 노래 연습을 조금 봐주고 있던 치하야는 솔직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남자 아이가 어째서 여자아이가 되고 싶은 것일까? 성적 정체성 같은 것일까?

 

“저, 저기 사장님”

“응? 왜 그러는가 오토나시군”

“그, 키쿠치군은… 남자아이, 죠?”

“아아-! 너무해!”

 

  남자아이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 곧 이상한 자학과 기나긴 변명(?)이 이어진다. 결론은, 여자아이라는 것이구나. 하긴, 잘 살펴보면 체격이나 성대구조 등이 확실히 여자이긴 하다. 치하야는 다시 솔직하게 생각했다.

  그런 마코토에게, 하루카는 서스럼 없이 다가가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다. 와아, 같은 학년이구나! 마코토라고 불러도 될까? 옆을 보면, 아즈사가 아키즈키에게 사무실의 이것저것을 설명하는 모습도 보인다. 역시 붙임성 좋은 두 사람이다. 그리고 새로 온 두 사람도, 적어도 자신보다는 좀 더 부드럽게 하루카나 아즈사를 대하고 있다. 근본적인 차이라고 할까, 사람에게는 각자의 모습이 있는 것이겠지.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은 아마…….

  치하야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다시 아즈사의 제안이 반복된다. 들어온 걸 축하할 겸 같이 식사해요! 그렇게 오토나시까지 포함한 다섯은 사무소를 나가려고 한다. 치하야는 그 일행에 끼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런 치하야를 아즈사나 하루카가 가만히 내버려둘 리 없다. 결국 여섯은 같이 사무소를 나간다.

  묘한 데자뷰를 느끼면서, 치하야는 키쿠치를 마코토, 아키즈키를 리츠코라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동갑인 셋, 하루카와 치하야와 마코토는 같이 보컬 레슨에 나가게 되었다. 마코토는 하루카보다 나았지만, 어쨌든 하루카 덕분에 다시 치하야는 보컬 트레이닝을 거의 하지 못하게 된 것이 레슨의 문제였지만. 이대로 계속 같이 어울리는 레슨을 하면 안 되지 않을까 하고 치하야가 고민하는 사이에 보컬 레슨이 끝난다.

 

“하아아… 지치네”

“와- 보컬 레슨이라는 거 힘들구나”

 

  하루카와 마코토가 그대로 휴게실 의자에 앉으면서 얘기를 하기 시작한다. 치하야는 그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물을 홀짝이고 있을 뿐이다.

 

“마코토군도 노래 잘 부르는 구나”

“아니 나는 그저 보통 수준인데 뭘”

“아아, 나도 아즈사씨나 치하야쨩처럼 노래 잘 부르고 싶다”

“어? 둘 다 잘해? 어느 정도야?”

“엄~청!”

 

  팔을 크게 펼치면서 크게 원을 그리던 하루카는, 그대로 의자 등받이에 기대버린다. 그 말을 들은 마코토는 기대를 담은 눈빛으로 치하야를 바라본다. 그리고 치하야는 그 리액션과 말에 조금 당황한다. 아니, 아직 자신은 멀었다, 가 솔직한 치하야의 심정이지만, 그렇다고 이럴 때 겸손을 하는 성격도 아니기에 당황하게 된다. 그냥 담담히 대답하자, 하고 생각한 그 때 휴게실에 아즈사가 들어온다.

 

“아, 아즈사씨! 수고하셨습니다!”

“어머 마코토군들도 쉬고 있었구나, 수고했어~”

 

  웃으며 대답하는 아즈사. 바로 옆에 앉는 아즈사에게, 마코토가 질문한다.

 

“하루카가 그러던데, 아즈사씨 노래 엄~청 잘 하신다면서요!?”

“으, 으응?”

 

  초롱초롱한 눈빛. 순수한 호기심에 가득찬 반응.

 

“에, 에이 그 정도는 아니야~”

“아니긴요, 매번 같이 연습하는데 얼마나 부러운데요!”

 

  부풀린 뺨. 약간 뾰로통하지만 그냥 가벼운 투정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알 수 있는 반응.

 

“하루카쨩도 계속 연습하면 좋아질 거란다~”

 

  그렇기에, 아즈사의 대답도 진심어린 조언으로 넘어갈 수 있다.

 

“계속요? 아즈사씨는 얼마나 연습하셨어요?”

“음, 한 4개월 가까이인 것 같기는 한데…”

“아하하, 아마 저는 잘 안 될 거 같은데…”

 

  하루카의 자조적인 대답. 아마 스스로도 스스로의 실력을 알기에 하는 말이겠지만, 아쉬움이 묻어있는 것으로 봐서는 노래 실력에 대해 콤플렉스가 있었던 듯하다. 그런 하루카에게 치하야는, 스스로의 목소리를 파악할 수 있으면 음치는 아니라는 말을 해줄까 하던 차에, 아즈사가 말한다.

 

“음~ 하지만 하루카쨩도 하루카쨩의 페이스로 나아가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제 페이스요…?”

“응, 각자에게 있는 페이스에 맞춰서, 성실하게 하면 뭐든지 괜찮을 거란다? 무리하지 말고, 자신답게”

“아, 확실히 듣고 보니 그렇네요! 운동이랑 마찬가지겠네요”

“응? 마코토쨩, 운동?”

“응, 운동도 각자에게 맞는 페이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좋은 트레이닝이거든!”

 

  그렇게 셋은 잡담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옆에서, 치하야만이 말을 되내이고 있을 뿐이었다. 각자의 페이스대로, 자신답게. 각자의 페이스대로, 자신답게. 얼마 안 있어 모두는 각자의 레슨을 위해 이동했다. 그리고 치하야는, 이번에는 혼자 개인 연습실로 들어갔다.

 

 

 

#9.

  다음 날 저녁이었다. 하루카와 마코토는 개인 사정으로 오전에만 사무실에 나왔다가 돌아갔고, 리츠코는 사장이랑 할 얘기가 있다며 나가고는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코토리는 잔업으로 인해(그녀의 말에 따르면 첫 회계 정리 어쩌고라고 했다) 사무실에 혼자 남은 그런 저녁, 묘하게 실망하는 아즈사와 묘하게 딱딱해진 치하야가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우선 집에 들어와 각자의 짐을 내려놓고, 둘은 동시에 입을 뗀다.

 

“저기, 아즈사씨”

“저기 치하야쨩?”

 

  우연이었다. 그렇기에 아즈사는 가볍게 웃었고, 치하야는 가볍게 멈칫했다. 그런 치하야를 보면서 아즈사가 말한다.

 

“응, 왜 그러니 치하야쨩?”

“아니, 저기, 그게…”

 

  머뭇거리는 치하야. 하지만 이내 마음을 굳히고, 치하야는 말을 잇는다.

 

“저… 나갈게요, 아즈사씨”

“응? 나간다고?”

“네, 지금까지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갑자기 꾸벅하고 인사하는 치하야. 그런 치하야의 인사에 아즈사는 당황한다. 갑자기 나간다니, 어째서? 왜?

 

“갑자기 나간다니, 치하야쨩…”

 

  그 말에 치하야도 말을 잇지 못한다. 오히려 아즈사의 걱정스런 시선이 견디기 힘든 듯, 고개를 돌리고 있다. 알고 있다,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의 손을 갑자기 끊어버리는 것이, 썩 좋지 않은 것 정도는 그녀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아즈사의 저 걱정이, 아프다.

 

“…무슨 일 있었니 치하야쨩?”

 

  하지만 아즈사는 그런 치하야가, 나름 큰 결심을 하고 말한 것임을 눈치채고는 표정을 부드럽게 바꾼다. 그렇기에 그녀는 일단 차분히 의자에 앉는다. 그런 그녀의 행동은, 치하야에게 조용히 의자를 권하는 행동이기도 했지만, 아직 치하야는 서 있다.

 

“…사실 어제 연습장에서 했던 말을 듣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연습장에서 했던 말? 음… 마코토쨩이나 하루카쨩이랑 수다를 떨었던 것 같긴 한데…”

“그 때 아즈사씨가 그랬죠, 각자의 페이스로, 자신답게, 라고”

“응? 그랬…지?”

 

  아즈사는 이제 기억한 눈치다. 즉, 아즈사는 어떤 의미로 진심으로, 꾸며낸 말이 아니라 평소에 항상 하던 생각을 그 때 했다는 뜻도 된다. 그런 걸 보고 치하야는 자신의 생각이 더욱 확실해지는 걸 느낀다.

 

“저는, 노래를 하고자 이 사무실에 왔습니다”

“응”

“저 나름대로 노래 실력엔 자부심이 있습니다만, 동시에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

 

  아즈사는 치하야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정말 노래를 잘 하는 아이고, 지금도 충분하다 못해 넘칠만큼 실력이 있고, 앞으로 더욱 더 훨씬 잘할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책망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그녀에게 그런 말을 할 타이밍이 아니라는 점도 알기에,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 며칠간 아즈사씨에게도 물어보고 그랬지만, 저는 여기 들어오고 계속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대로 있어도 좋을까, 나는 내가 원하는 목적을, 여기서 달성할 수 있을까?”

“치하야쨩…”

“그러던 와중에 아즈사씨의 저 말을 듣고 생각했어요, 각자의 페이스로 자신답게”

“그 말이 왜…?”

“아즈사씨는, 아즈사씨의 페이스는 아마 이런 것이겠죠, 천천히 느긋하게, 그리고 즐겁게… 하지만 저는 아닙니다. 저는 아즈사씨나 하루카나 같은 측의 사람이 아니에요”

“아니야 치하야쨩 그건”

“당신은 너무 상냥해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도 같은 측면이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배려해주고 그러는 거죠… 하지만 저는, 당신과는 다른 측면의 사람입니다”

 

  치하야의 말에 아즈사는 당황하지만, 그런 아즈사의 반응을 애써 무시하고 치하야가 말을 잇는다.

 

“제 페이스는, 저 다운 것은… 아즈사씨 같은 생활을 하고, 천천히 연습하고 그런 것은 아니에요…”

 

  힘들게 이어지는 말. 괴로운 듯한 표정. 그런 치하야를 보면서, 아즈사는 뭐라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이어서 치하야가 단언한다.

 

“그래서 저는 제 페이스로 저답게 나아가고자, 나가고자 합니다. 제멋대로인 것도 알고 있고, 아즈사씨에게는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단언과 함께 바뀌는 어투와 표정은, 치하야가 이 순간을 기준으로 확실히 결정했음을 아즈사에게 알린다. 모든 걸 자신의 결심 뒤로 밀어버린 표정. 단호하고, 차갑고, 또 강한 눈동자. 아즈사에게 하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치하야는 확실히 결심을 세웠다. 그리고 치하야를 말리려고 하고 있던 아즈사는, 치하야의 표정을 보고는 난처하고 안타깝다가, 그런 치하야를 동정하다가, 반쯤은 억지로 하지만 반쯤은 진심으로 표정을 축하로 바꾼다.

 

“그래, 그게 치하야쨩의 결정이라면, 나는 응원하니깐”

“…감사합니다”

 

  짧게 끝낸 말. 그리고 둘의 대화는 끝났다. 너무나 짧은 대화였지만, 둘은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었다. 그리고 끝끝내 치하야는 아즈사처럼 자리에 앉지 않았다.

 

 

 

  둘은 곧 가볍게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둘 다 잠들지 못했다. 캄캄한 밤, 그리고 조용히 누워있을 뿐인 두 사람. 둘은 아무 얘기 없었지만, 서로가 서로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러 창 밖에서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는 시간이 되었을 때, 치하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즈사씨, 주무시나요?”

“으응”

 

  그리고 다시 침묵. 인기척 하나 없는 침묵을 깨는 것이, 둘 다 부담되는 듯이 조용해졌다. 침묵을 깬 것은 다시 치하야였다.

 

“그… 오늘 방에 돌아와서, 하시려고 했던 얘기는 어떤 것이었나요?”

 

  치하야는 계속 신경 쓰인 모양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참 상냥한 아이다. 본질은 분명히 착한 아이야. 아즈사는 생각한다. 사실은 말이지, 오늘 너가 사무실에 온 지 100일이라, 이를 축하하는 작은 파티라도 할까 했단다. 하루카쨩이나 마코토쨩, 리츠코씨나 코토리씨도 불러서 다 같이 집에서 가볍게 말이지. 항상 너를 보면서 이상하게 걱정이 되어서, 언제나 자신을 책망하고 앞날을 불안해하던 모습에서 옛날의 나를 보기도 했고, 또 그런 모습에 힘이 되어 주고 싶어서 다 같이 다시 100일을 축하해주고 싶었어. 그렇게 하면, 그렇게 100일을 축하하고 다시 또 다른 축하할 일이 있으면 축하하고 그러면, 너에게 힘이 되고 너가 정말로 너답게 즐겁게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단다. 언제나 스스로를 억지로 밀고 있는 그 모습이 조금 불안해서, 아버지와 다투던 그 모습을 보니 누구라도 어른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책임감에, 계속해서 너가 신경쓰였던 거지.

 

“응… 그냥, 치하야쨩이 사무실에 온 지 100일째라…”

 

  그러나 아즈사는 모든 말을 삼키고, 최소한의 대답만 한다. 지금의 이 아이에게 동정은 또 다른 상처가 될까, 걱정될 뿐이다.

 

“…100일, 째였나요”

“응”

“…죄송합니다, 저는”

“아니야, 사과할 필요는 없어 치하야쨩, 후훗”

 

  역시, 이렇게 저렇게 말해도 상냥한 아이같아 치하야쨩은. 아즈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쨌든 이 사람은 너무 상냥해. 치하야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나중에”

“응?”

 

  오늘은 제가 이미 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런 축하, 받을 수 있을 리 없습니다. 저는 제 목적이 제일 시급합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면, 언젠가는 이런 축하도 그냥 받을 수 있는 그런 처지가 된다면, 그 때 가서 축하하도록 해요, 그리고 그 때는 잘 전달하지 못한 감사의 마음도, 전달할게요.

 

“나중에…”

“…응, 그래”

 

  치하야 또한 자신의 말을 삼키고, 조용해진다. 그리고 그런 치하야를 아즈사는 역시나 받아들이고, 상냥하게 대답한다. 아즈사의 대답을 끝으로 둘은 더 이상 대화를 잇지 않고, 그렇게 시간은 다시 흘러갔다.

 

 

 

#10.

  그 다음에는, 다시 여러 일이 일어난다. 계속되어서 추가되는 아이돌 후보생은 총 11명이 되고, 그 중 한 명인 리츠코가 프로듀서로 포지션을 바꾸고, 다시 2명이 들어오고, 약소 사무소는 엉망진창으로 유지되고, 그러다가 신인 프로듀서가 들어오고, 다시 여러 가지 일이 생기고, 모두가 성장하고, 같이 웃고 울고, 큰 일도 생기지만 모두의 힘으로 뛰어넘고, 그렇게 모두가 모두의 꿈에 근접해가고. 그렇게 치하야도 자신의 상처를 낫게 하고. 그런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11.

  한참 시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몇 번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한 다음, 다시 뜨거운 태양이 사그라들고 나뭇잎들이 지다가 상당히 추워진 어느 날이었다.

정말 오랜만의 휴일이란 말이지. 아즈사는 편한 복장으로 집에서 쉬면서 생각했다. 잘 생각해보면 아이돌 일이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르고 나서는 신정에 쉰 적이 없었다. 올 해는 다들 오히려 지나치게 바빠진 관계로 신년 특별 프로그램을 진행시킬 수 없었고, 그 덕분에 자신은 오히려 시간이 붕 뜬 덕분에 생긴 여유라니. 아즈사는 천천히 스스로 끓인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집 문 앞까지 온 발자국 소리가 너무나 잘 들렸다. 이런 시간에, 집 앞에 누구일까? 이 주소를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고, 이 시간에 올 사람은 더욱이 없을텐데. 어쩌면 내 집을 방문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지, 뭐. 그렇게 가볍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자니, 초인종이 울린다. 어머, 정말로 내 집에 손님?

 

“누구세요~?”

“아, 아즈사씨, 저 치하야에요”

“어머? 치하야쨩?”

 

  의외다. 가희가 자신의 집을 방문했다. 아즈사는 서둘러 나가 문을 여니, 찬 공기와 치하야가 같이 집으로 들어온다.

 

“실례합니다”

“어머, 어쩐 일이니?”

“그게…”

 

  손에 뭔가 들고 들어오는 치하야는 아즈사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가, 아즈사를 쳐다본다. 그러다가 조금 쑥스러운 듯이, 말을 잇는다.

 

“혹시 쉬시는데 방해한 걸까요?”

“으응, 아니야 아니야, 치하야쨩이라면 대환영인걸!”

 

  그리고 아즈사의 솔직한 미소와 크게 벌린 두 팔은, 치하야를 조금 더 쑥스럽게 만들지만, 아즈사는 그걸 눈치채지 못한다. 어떤 의미로는 타고났다니깐, 치하야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아즈사에게 손에 들고 있던 것을 건낸다.

 

“응? 이건… 케이크?”

“네, 열려 있는 빵집 없을 줄 알았는데, 신정이라도 가게들이 많이 하네요”

“뭐어, 도쿄니깐 그렇겠지? 후훗”

 

  케이크를 받아든 아즈사는 일단 케이크를 식탁에 올리고, 의자를 치하야에게 권한다. 코트를 벗은 치하야는 예의 바르게 코트를 주위에 걸어놓고, 아즈사의 권유에 따라 의자에 앉는다. 그렇게 두 여자가 마주 앉는다.

 

“치하야쨩 오늘 오프였어?”

“네, 레코딩이 어제로 끝나서, 내일까지는 예상치 못하게 휴일이에요”

“레코딩은 엄청 빠르구나, 역시”

“감사합니다”

 

  다시 쑥스러운 듯이 웃는 치하야. 그런 치하야에게 아즈사가 묻는다.

 

“음, 이 케이크는…”

“아, 네, 사실”

“일단 먹을까?”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눈이 반짝이는 아즈사. 그런 아즈사에게, 치하야는 웃으면서 그러죠,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금새 케이크는 잘려져서 각자의 접시에 놓인다. 음미하는 아즈사와 같이 맛을 보는 치하야. 맛있다고 좋아하면서 치하야의 안목을 칭찬하는 아즈사에게, 치하야는 하루카가 추천하는 가게의 제품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즈사는 치하야에게 그 가게를 묻고, 치하야는 그 가게의 위치를 말한다. 위치를 들은 아즈사는 자주 가는 상점가인데 보지 못하다니 믿을 수 없다고 대답하고, 치하야는 의외로 구석에 있다고 대답하고, 그리고 그렇게 상점가에 대해 둘은 떠들고, 다른 상점가로 얘기는 이어지고, 서로 바쁜 생활에 대해 잠시 투정도 부리고 보람도 얘기하고, 다시 먹을 것 얘기로 이어지다가, 파스타 얘기로 이어지다가, 둘이 처음 같이 식사한 가게에 대한 얘기로 이어진다. 덕분에, 치하야는 여기에 온 본 이유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었다.

 

“그래서 온 거에요”

“응?”

“아즈사씨, 저가 온 지 10일 축하해 주셨잖아요? 그리고 100일째에는, 그, 제가 거절해서 못했지만, 어쨌든 축하해 주려고 하셨고요”

“어, 그랬나~?”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잠시 옛날을 되돌아보는 아즈사와, 그런 그녀의 모습을 웃으면서 지켜보는 치하야. 아즈사의 입장에서야, 그 때의 치하야는, 지금의 치하야랑 너무 다르니 잘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을 법 하다. 지금처럼 웃는 치하야를, 여유가 생긴 치하야를 그 때 상상할 수 있었을 리 없다. 치하야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1000일은 제가 축하하고 싶어서”

“어머~ 오늘이 1000일 째였니?”

“네. …아마도요”

 

  약간 무책임한 대답에, 둘은 킥킥대며 웃는다. 아마도라니, 무책임하잖아. 둘 다 같은 생각이다.

 

“그렇구나, 1000일째구나…”

“네… 그, 저랑 아즈사씨가 만난지 1000일인, 거죠”

“어머~ 낭만적! …그런 얘기는 나중에 남자친구가 생기면 하는 게 좋을텐데”

“나, 남자친구라뇨”

“치하야쨩도 이제 좋은 나이고, 남자 몇 명은 그냥 후릴텐데 말이지 후훗”

“아즈사씨야말로 몇 십 몇 백 명은 그냥 후릴걸요”

“안 돼 치하야쨩, 그런 얘기 내 나이에게 함부로 하면 위험하단다…?”

“…죄송합니다”

“…….”

“…….”

“…풉”

“풉, 하하, 하하핫”

“하하하하핫”

 

  두 여자가 유쾌하게 웃는다.

 

“치하야쨩, 많이 변했구나”

“덕분이에요”

“후훗, 나야 뭘…”

“아니, 아즈사씨에게는 감사하고 있어요, 정말로요…”

“에이 쑥스럽게”

“그 때 구석까지 몰린 저를 계속 걱정해주신 것, 알고 있었는데 그 관심을 뿌리친 것도 조금 후회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 때부터 계속 감사하고 있었어요… 서툴러서 말을 잘 못해서 그렇지”

“치하야쨩…”

 

  그런 말도 이제 잘 하게 되었네. 그 말을 아즈사는 미소로 대체한다. 그런 아즈사에게 치하야가 하고 싶은 말은 상당히 많았다. 그 때 처음부터 봐준 것에 대한 감사, 동거에 대한 감사, 친절함에 대한 감사, 그리고 그 친절함을 애써 뿌리친 것에 대한 미안함. 같이 계속 생활하면서 달라진 자신에 대한 감사,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는 그 당시의 마음, 그러니깐 스스로를 책망하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동정에 대한 이해 등등, 하고 싶은 말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1000일에 대한 감사. 10일을 축하하고 100일을 축하해준 당신에게, 당신이란 사람과 1000일동안 같이 있을 수 있던 일에 대한 감사, 그리고 축하. 그렇다, 이번에는 스스로가 아즈사에게 이 날을 축하한다고 제의했고, 이 축하의 마음을 잔뜩 전달하고 싶다. 이렇게 치하야가 대답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하지만 말이 길 필요는 없다. 그렇기에 아즈사의 미소에 치하야도 미소로 대답한다. 두 여자가 따뜻하게 웃는다.

 

“그럼, 한 잔 할까?”

“에? 한 잔이라뇨… 수, 술이요?”

“응? 싫어?”

“아뇨, 싫다기 보다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마셔본 적도 거의 없고”

“그래… 아쉽네”

“아, 아뇨 안 마신다는 것은 아니에요… 뭐, 상관없죠”

“예~이! 그럼 같이 가볍게 샴페인 같은 거라도 하자고”

 

  이 사람, 이렇게 술을 좋아했나. 아직 잘 모르던 아즈사의 일면을 다시 발견한 치하야는, 사람좋게 웃는다. 1000일이 되어서, 이 날을 축하하는 자리에서나 이 사람의 일면을 다시 발견한다. 이런 날이, 앞으로도 또 생기면 좋을텐데.

 

“나중에는, 10000일도 축하하도록 할까요”

“10000일~? 으음, 그거 뭐랄까, 왠지 싫네”

“네?”

“그게, 10000일이면 한 이십 몇 년은 되는 거잖니? 그렇게 나이가 든 걸 생각하니, 갑자기…”

“아, 제가 실례를”

 

  다시 두 여자가 깔깔대며 웃는다. 깔깔거리는 소리는 눈에 조용히 묻히고, 그렇게 1000일을 축하하는 날이 지나간다. 10일 과 100일이라는 시간으로는 상처를 낫게 하기에는 부족했지만, 더 많은 시간과 사건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그녀의 상처를 충분히 낫게 하고, 이는 그렇게1000일로 이어져서, 1000일을 맞이한 두 사람의 웃음과 함께, 10일과 100일과 1000일의 축하가 끝난다. 그렇게 1000일이 지나간다.

 


 

 

아이커뮤 1000일, 축하합니다! 그리고 어쨌든 이 글을 봐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인사를! 이렇게 긴 걸 봐주시다니, 감격입니다. 혹시 안 보셨다면 다 봐 주세요, 츄라이 츄라이!

 

저도 오늘로 가입한지 754일인데, 우와 시간이 참 많이 지났네요. 그래도 저에게 글 쓰는 즐거움과 이걸 누군가 봐 주는 즐거움을 배운 장소였기에, 이벤트라면 참여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써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거 뭐랄까, 쓰다보니 길어지고 길어져서... 긴 글이 조금 부담되셨다면, 흠흠, 한 말이 없습니다.

 

어떤 의미로 축하는 이 글의 제재에 가깝게 되어버렸네요. 그래도 축하라는 내용이 들어가면 상관없다는 말을 믿고 쓰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사실 이전부터 치하야가 아즈사가 동거하던 프리퀄에 대한 ss를 써야지 구상은 했었지만 잘 진행이 안 되고 있던 참에, 1000일과 축하라는 소재를 결합하니 괜찮은 골격이 나와서 진행해 본 결과가 이 글입니다. 그 결과, 제가 써보고 싶던 프리퀄과 축하라는 이벤트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글이 나와버렸네요. ...욕심이 많은 거 같습니다만, 뭐 봐주시는 분들이 괜찮다면 괜찮...겠죠?

 

어쨌든 다시 한 번 커뮤니티의 1000일도 축하하고, 봐 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후기는 길어봤자니, 그럼 이만!

사실 축하라는 소재를 듣고 코토리씨 임신 축하드려요! 라는 맛이 간 ss도 구상했지만 대화형식으로만 성립하기에 패스했습니다. 다음 기회에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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