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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슈퍼 아이돌과 나란히 걷는 1000번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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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6-28, 2015 15:02에 작성됨.


와아아아아아!

어찌나 크게 소리가 울리는지 귀가 먹먹해서 머리가 울린다. 그렇지만 기분 좋은 울림이다. 나는 지금 폭풍같은 함성, 그 가운데 서있다. 아니 나 역시 그 폭풍이다. 목이 찢어질 것만큼 아프지만 그와 반대로 머릿 속은 하얀 백지같다. 오로지 한 사람만이 무대에 올라와주길 기다리고 있다.

 

"자,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류구코마치의 무대입니다!"

 

사회자의 격양된 어조가 가뜩이나 불이 붙을대로 붙은 관중들이 더욱 뜨겁게 타오른다. 나 역시 뜨거운 분위기에 휩쓸린건지 감정이 북받쳐 올라온다. 그리고 깜깜해진 무대 위로 비치는 3개의 인영. 조명이 환하게 켜진 순간,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 라는 사람은 완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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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프로...일어...고! 바보 프...서! 키이이잇! 이래도 안 일어나?!"

 

쿵 소리와 함께 잠은 순식간에 달아나버리고 머리 깊은 곳이 에밀레 종마냥 울린다. 아아 또 이 생각이 없는 아가씨께서 자신의 이마가 얼마나 위험한 둔기(?)인줄 모르고 내 이마에 그대로 들이박은 것 같다. 아이고... 막 임무가 끝난 인간 둔기는 내가 이마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니 꼴 좋다는 식으로 쳐다본다.

 

"니히힛~ 그러니까 진작에 일어났으면 좀 좋아? 바보P(馬鹿P)"

"내가 자고 있으면 그냥 흔들어 깨우면 되잖아..."

 

아무래도 고상한 아가씨들은 상식이란게 부족한걸까 하는 남이 들으면 위험한 일반론을 떠올리며 사무소의 바닥에서 기상을 한다. 나는 이제 765 프로덕션 3년차에 접어드는 신인 프로듀서다. 그리고 이 인간 둔기 아니 미나세 그룹의 아가씨이자 아이돌로서 재부상하고 있는 미나세 이오리의 전담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벌써 이 철없는 아가씨와 얼굴을 마주한지가 3년이지만 도저히 그 배시시한 표정 속 속내를 알기란 쉽지가 않다. 여자들이란 이런건지 아니면 이 아가씨가 성격이 나쁜건지 도저히 알수가 없다.

 

"뭐, 아무래도 좋잖아? 그래서 오늘의 스케줄은 뭐야? 바보P?"

 

"이오리 너 말야. 아무래도 사람에게 무언가를 물어볼때는 기본적으로 그 사람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그런 호칭은 빼도록 해. 그리고 오늘은 왠지 텐션이 업된거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거야?"

 

이오리는 내 말이 정곡이라도 찌른 것마냥 화들짝 놀란다.

 

"뭐..뭐 뭐....! 글쎄...? 난 평상시랑 똑같은데? 하하하"

 

"그래? 그건 그렇다고 하고. 음..... 오늘 일정은 라디오 퍼스널리티 참석해야 되는게 하나 있고, 잡지 인터뷰 한 건, 그리고 저녁에 TV 토크쇼가 잡혀있어."

 

"음..음.... 그게 다야? 뭐 잊어버린건 없어? 일정이라던가. 기념일이라던가. 확실히 기억해 보라고!"

 

이오리의 기막혀 하는 표정에 다시 다이어리를 쭉 훑는다. 라디오 한 건, 인터뷰 한 건, 토크쇼 한 건..... 맞는데? 뭐가 문제가 있는건지 이오리의 표정이 썩 신통치 않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는데 내가 아이돌 프로듀스 3년 하는 동안 이 정도 문제도 눈치 못 챌 수는 없지. 다시 기억 속을 찬찬이 훑는다. 그래 잊어버린게 있었다.

 

"아하 그러니까 네가 말하는게 그거 맞지?"

 

"그거?! 그래 그게 뭔데?"

 

이오리의 눈이 반짝반짝 해지는 것을 보며 난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이 네가 전에 말했던 고져스 셀레브 푸딩이 재판하는... 악!"

 

씩씩대면서 나가는 이오리의 뒤를 보면서 나는 또다시 사무소의 바닥에서 이마를 부여잡고 구를 수 밖에 없었다.

 

"따라오라고! 바보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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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 찰칵 하는 카메라 셔터음과 함께 변화무쌍하게 포즈를 잡는 이오리를 보고 있으면 매번 보던 이오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정말 많이 변했어. 좋은 의미라서 다행이지만'

 

내가 처음 만났을때 그녀는 아이돌로서의 의지를 잃고 그저 하루하루 동료들을 지켜보기만 하던 동화 속의 차가운 얼음 공주같은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신인인 나를 그녀에게 배속시켜준 것이었겠지마는 말이다. 그렇게 보면 내가 이오리의 프로듀스를 맡게 된 것은 하늘이 맺어준 운명 같은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얼굴에 번진다.

 

"뭘 배시시 웃고 있어 바보P. 나 다 끝났어"

 

"어..? 응.. 어..."

 

딴 생각에 정신팔려있던 내가 바라보자 이오리는 얼굴을 홱 돌리고 탈의실로 가버렸다. 정말 매정하다니깐 이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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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늦게 스케줄이 다 끝난 이오리를 차에 태우고 천천히 방송국을 나왔다. 이오리는 4시간의 토크쇼 진행에 지친듯 오래 삶은 콩나물 처럼 푹 쳐져있다. 이 쪽 일을 시작하면서 허구한 날 보는 광경이지만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영 적응이 안된다. 돈 버는 사람치고 쉽게 돈 버는 사람 있냐마는 그래도 내 옆의 사람이기에 더욱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오리?"

 

"응? 왜애."

 

"고져스 셀레브 푸딩 사뒀어. 가방 안에 들어있을거야."

 

"............ 어."

 

백미러로 보인 이오리는 뭔가 태클을 걸고 싶어하는 눈치였으나 힘이 없어서인지 얌전히 가방에서 푸딩을 꺼내 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서로 말없이 10분 정도 달린 것 같다. 평상시에는 차에서 잠들었을 터인데 오늘은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하는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침묵을 먼저 깬건 이오리였다.

 

"잠깐. 저어기 공원에서 서줄래?"

 

"응? 알겠어."

 

화장실에라도 가고 싶었던 걸까. 일단 그녀의 말대로 공원에 섰다. 원체 도시의 구석에 있는 공원이고 화장실도 주차장에서 보이는데 있어 나갔다 오는 그녀를 차 안에서 기다릴 셈이었는데 갑자기 내리다 말고 나를 보며 말한다.

 

"너도 내리라고 바보P."

 

이오리를 쫓아내리고 그녀의 뒤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공원의 한 벤치에 이르렀다. 이오리가 걷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나와 마주봤다. 가로등이 고장난건지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해서 이오리의 모습이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 50분이다. 평상시 이오리나 나나 잠이 많아 1시 이전에는 집에 데려다 줘야하는데 같은 생각에 잠겨있는데 이오리가 적막을 깼다.

 

"저기 바보P."

 

"응?"

 

"진짜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겠어?"

"

어? 어......어....."

 

있는 뇌 없는 뇌 끌어다가 생각나는 기념일들을 머릿 속 달력에 끼워맞추며 고민하는 나의 모습에 이오리가 피식 웃음을 지어보였다.

 

"됐어. 바보P 한테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지. 자!"

 

언제 갑자기 생겼는지 나를 향해 뻗은 이오리의 손 위에는 넥타이가 하나 들려있었다. 평상시 갑갑하단 생각에 사장님으로 부터 허락을 맡고 넥타이를 매지 않고 출근하지 않았는데 그게 신경이 쓰였던 걸까.

 

"그거 알아? 오늘 당신이 내 전담 프로듀서를 맡은지 딱 1000일 되는 날이야."

 

벌써 그렇게 되었나? 날짜를 세가며 한 것은 아니기에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이오리가 그렇다니 그런거겠지 하면서 황송하게 넥타이를 받으려 했다. 그 순간 다시 이오리가 홱 몸을 돌렸다.

 

"바보P!"

 

"어... 옙!"

 

"약속해!"

 

"뭐....뭘...?"

 

"앞으로도 1000일 뿐만이 아닌, 2000일, 3000일이 지나도 내 프로듀서로 함께 해주겠다고 약속해줘."

 

"어.....어? 풋.... 푸하하하하"

 

순간 어안이 벙벙하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내 평생 이렇게 눈물을 흘릴 정도로 웃었던 일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웃었다. 바보같았다. 이오리가 평상시와는 다른 자세로 나와서 혹시나 '아이돌 생활이 힘들어서 그만두겠습니다' 라고 말하진 않을까 걱정했던 내 자신이 바보같았다. 그러자 이오리가 얼굴이 새빨개진채 나를 향해 돌아섰다.

 

"뭐야! 뭐가 그렇게 웃긴데! 싫은거야?"

 

"아니 아니, 그런게 아니라 너무 좋아서 그랬어."

 

그 말에 이오리의 표정이 알듯 모를듯한 표정으로 변해버렸다.

 

"음... 음! 음! 그럼 자 목 이리 대."

 

얌전히 이오리 앞에 목을 내밀자 이오리는 여전히 새빨간 얼굴로 내 목에 넥타이를 매주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손이 달달 떨리는게 몸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도대체 얼마나 긴장한거야...

 

"자 됐어! 이제 가자 나 피곤해."

 

어지저찌 서투르게 넥타이를 다 맨 이오리가 다시 몸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꺼졌다 켜졌다 하는 가로등 밑 희끗희끗 보이는 뒷 모습이 마치 이오리가 서있던 콘서트장 같다. 일단 이오리를 불러세웠다.

 

"이오리!"

 

"왜?"

 

"2000일, 3000일 이런건 중요하지 않아. 네가 은퇴할때 까지 영원히 네 옆에서 널 프로듀스 해줄게. 이제 됐지?"

 

이오리는 한 10초간 멈춰서 멍하니 있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본 이오리의 얼굴이 때마침 켜진 가로등 빛에 환하게 비춰지고 내가 그녀를 처음 봤을 적 무대 위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팬들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던 그 표정. 그 표정을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그녀의 팬을 자청하며 콘서트가 있을때마다 쫓아다녔고 옆에서 그녀를 보기 위해 프로듀서가 되고자 했으며 나락에 빠진 그녀를 향해 구원의 손을 뻗었다. 그 표정을 나 혼자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복잡미묘하다. 아니 그 때 관객으로 봤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이 끓는것 같다.

 

"나 말야.... 늙어죽을때까지는 모두의 슈퍼 아이돌이라고? 괜찮겠어?"

 

그렇게 말하는 이오리의 말에는 약간 울먹거림이 느껴진다. 이오리가 울어버린다면 귀찮아질것 같아 나는 잽싸게 이오리의 옆에 찰싹 붙는다.

 

"물론이지! 슈퍼 아이돌을 프로듀스할 수 있는건 나같은 슈퍼 프로듀서니까 말이야. 꼬부랑 할머니가 되도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서 옆에서 프로듀스 해준다니깐."

 

"하! 너같은 바보가 그때까지 사무소에 붙어 있을 수는 있을까. 꼬부랑 할아버지는 사양이니까 젊은 프로듀서로 새로 구할거라고! 빨리 앞장
서. 어두운건 싫으니까."

 

오늘 같은 날이지만 이오리와는 역시 투닥투닥 하는게 재미있다. 지금 이 길을 걷는게, 네 옆을 걷는게 좋은 걸 보면 난 천상 프로듀서인가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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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시 필력은 모자라지만 이번 이벤트를 위해 머릿 속을 끙끙 싸매가며 1주일 동안 써봤습니다. 사실 예전에 아이돌 마스터를 보고 생각했던 후일담 같은 스토리가 있었는데 쓰다가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포기했던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그 이야기의 에필로그라고 생각해보고 쓴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도 잠깐 언급이 되었지만 잘 지내던 이오리가 모종의 사건을 통해 아이돌로서의 꿈을 포기하고 살아가다가 신입 프로듀서에 의해서 구원받고 다시 모두의 아이돌로서 재부상 한다는 진부한 스토리가 제가 구상했던 스토리 였거든요.

 

아무쪼록 제가 읽어봐도 심히 오글거립니다마는 아이커뮤에 올리는 첫번째 창작글로써 부족한 부분을 따끔하게 지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위에 구상했던 스토리를 오랜만에 다시 떠올리니 본 이야기도 글로 쓰고 싶어졌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일정상 언제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쓰게 된다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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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지금 올려놓고 다시 읽어보니까 축하 보다는 고백에 가까운 분위기 같네요  감정이입이 과하게 된거 같은데 ㅋㅋㅋ 이거 기준미달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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