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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타카] 이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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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4-20, 2015 11:47에 작성됨.

   치하야의 이어폰 한쪽 줄이 끊어졌다.

 

   "아."

 

   "왜 그러시나요?"

 

   "이어폰이 망가졌어요."

 

   치하야는 손바닥 위에서 나뒹구는 이어폰 머리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아쉬운 얼굴로 내려다봤다.

 

   "좋은 이어폰이었는데..."

 

   "아깝습니다."

 

   "허무할 정도로 쉽게 끊어지네요. 의자 팔걸이에 걸린 걸 살짝 당겼을 뿐인데. 오래 쓰긴 했나 봐요."

 

   "얼마나 오래 쓰셨나요?"

 

   "사 년, 아니 오 년쯤 썼어요."

 

   "세상에나, 꽤 오래 쓰셨군요."

 

   치하야가 손가락으로 굴리던 도토리처럼 작고 둥근 머리는 타카네의 손으로 옮겨졌다. 금속질 표면 여기저기에는 긁히고 찍히고 쓸린 자잘한 자국이 남아 있었고, 짧은 꼬리처럼 삐죽 튀어나온 케이블에는 번들번들할 정도로 손때가 묻어 있었다.

 

   "치하야의 흔적이 가득합니다."

 

   치하야는 손에 든 케이블을 둘둘 감아 가방에 넣었다.

 

   "버리지 않으시나요?"

 

   "버리다뇨?"

 

   "끊어진 줄을 말씀드린 것입니다."

 

   "아."

 

   치하야는 타카네를 보며 작게 놀란 듯 소리를 냈다. 그러곤 혼자서 재밌다는 듯 웃었다.

 

   "시죠 씨."

 

   "네."

 

   "이 이어폰 줄, 이제 쓸 일은 없겠죠?"

 

   "수리받지 않는 이상 그러겠지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기를 흘려보내면서 소리를 들려주던 것들은 이제 고물이 되어버렸죠. 이제 이건 이어폰이 아니라 그저 전선과 고무로 된 물건일 뿐이고요."

 

   치하야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그렇지요."

 

   타카네는 얼떨떨한 얼굴로 끄덕였다.

 

   "저, 지금 새로운 기분이 들어요.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요."

 

   "치하야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것은 제게도 새로운 기분을 안겨주는군요."

 

   타카네는 완전히 몸을 돌려 곁에 앉은 치하야를 바로 마주 봤다.

 

   "치하야의 기분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치하야는 끄덕였다.

 

   "저는 이 고물이 된 이어폰에 애착을 느꼈어요."

 

   "애착..."

 

   "그게 신기했어요."

 

   "애착이라는 감정이 말인가요?"

 

   "아뇨, 애착을 이어폰에서 느낀 게요."

 

   타카네는 눈을 깜빡이곤 미소 지었다.

 

   "그것의 어떤 점이 이토록 치하야를 들뜨게 했는지 궁금합니다."

 

   "드, 들뜬 건 아니지만요... 그냥 전 새롭고 신기해서..."

 

   치하야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얘기해주세요, 치하야."

 

   "아, 네."

 

   치하야는 이어폰을 넣어둔 가방에 시선을 던졌다.

 

   "이어폰이라는 건 그저 도구잖아요. 음악을 듣기 위해 성능이나 디자인 같은 걸 가격에 맞춰서 사서, 필요에 따라 사용하면 되는 도구요. 저는 물건에 싫증을 내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물건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도 않았어요. 악기 같은 것도, 아무리 비싸고 좋은 거라 해도 그저 사람이 쓰기 위한 도구잖아요. 그래서 저는 가끔 사람들이 비싼 악기 앞에서 쩔쩔매는 게 의아하기도 했고요."

 

   타카네는 잠자코 치하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 치하야가 이어폰에 애착을 느꼈다는 것은 뜻깊군요."

 

   "네. 스스로 이런 걸 깨달을 줄도 생각 못 했고요."

 

   "치하야는 망가진 이어폰을 무척이나 가엾게 여기시나 보군요."

 

   "가엾다고 해야 할까요? 이어폰이 이제 고장 났으니, 이제 제가 가지고 다녀도 의미가 없을 거라는 게 조금 쓸쓸하게 느껴졌어요."

 

   "이어폰과 이별하는 것이군요."

 

   "그렇네요. 헤어지는 거네요."

 

   타카네는 자꾸만 손으로 매만지던 이어폰 머리를 보며 웃었다.

 

   "치하야는 무척 신비로운 분입니다."

 

   "제가요?"

 

   치하야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제가 그런 사람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시죠 씨 말씀이니 뜻없는 말은 아니겠네요."

 

   "보통, 사람들은 자기감정을 잘 다루지 못합니다."

 

   타카네는 손에 쥔 이어폰 머리를 치하야에게 넘겨주었다. 그 이어폰 머리는 치하야의 손에서 타카네의 온기를 희미하게 흘렸다. 타카네는 말을 이었다.

 

   "그저 물 흐르듯 감정이 흐르도록 내버려두지요. 기쁘면 그저 기쁜 대로 즐기고, 슬프면 슬픈 대로 눈물 흘릴 뿐입니다."

 

   치하야는 타카네의 말을 들으며 가방에서 이어폰 줄을 도로 꺼냈다. 그러는 동안에도 치하야의 눈은 타카네의 얼굴을 떠나지 못했다.

 

   "하지만 치하야는 다릅니다. 자신의 감정도 예리하게 관찰하며 자신을 돌보시죠. 지금 이어폰에서 애착을 느꼈다는 것을 자각하신 것처럼 말이지요."

 

   "자기객관화란 건가요?"

 

   "그런 용어가 통할 것 같군요."

 

   "그런 말을 듣다니, 기뻐요."

 

   치하야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지만 저는 그저 제 감정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에요."

 

   이어폰 머리와 케이블의 끊어진 부분을 맞춰보며 치하야가 중얼거렸다.

 

   "조금 다른 사람들이랑은 다른 것 같기도 하고요. 너무 진지하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가끔은 말이 안 통한다는 말도 듣잖아요."

 

   타카네는 고민스러운 얼굴로 턱밑에 손을 괴며 치하야를 봤다. 치하야는 차분하게 말했다.

 

   "자기객관화가 잘 되는 거라면, 아마 그게 저를 조금은 낯선 사람으로 만드는 건 아닐까 하기도 해요."

 

   "낯선 사람..."

 

   "남들보다 고집이 세고 생각이 유별나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요. 그래서 지금 저는 조금 혼란스럽기도 해요. 보통 사람들은 다들 물건이 고장 나면 자연스럽게 아쉬워하고, 그저 그런 기분을 흘려보낼 텐데, 저는 그 아쉬움을 낯설게 느끼고 놀라게 됐으니까요."

 

   치하야는 콕콕 맞대던 이어폰 머리와 케이블을 한 손으로 구겨쥐며 가볍게 웃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지만요. 오히려 좋아요."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애착을 느낀다는 건 기분 좋은 거잖아요."

 

   타카네는 활짝 웃으며 끄덕였다.

 

   "그렇지요. 맞습니다. 말씀대로입니다."

 

   "애착..."

 

   치하야는 혼자 말했다.

 

   "시죠 씨."

 

   "네."

 

   "시죠 씨는 제게 애착을 느끼시나요?"

 

   타카네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치하야는 수줍게 웃었다.

 

   "저도 시죠 씨에게..."

 

   말을 쉽게 잇지 못하는 치하야의 손가락이 꿈지럭거렸다. 그걸 바라보는 타카네는 싱글싱글 웃었다. 말을 재촉하거나 떠보지도 않고 그저 부끄러워하는 치하야를 보며 느릿느릿 저무는 노을이 사무실을 비추는 걸 느끼고 있었다.

 

   "시죠 씨."

 

   "네, 치하야."

 

   "역시 부끄러워요."

 

   치하야의 뺨이 노을만큼 붉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답니다."

 

   타카네는 손을 뻗어 치하야의 우물쭈물하는 손을 어루만지며 쥐었다.

 

   "저희가 어떤 사이인데 모르겠나요."

 

   치하야는 고개를 푹 숙이고 웃는 얼굴로 끄덕였다.

 

   "시죠 씨."

 

   "네, 치하야."

 

   "이거 받아주세요."

 

   치하야는 손에 꼭 쥐고 있던 이어폰 머리를 도로 타카네의 손에 옮겼다.

 

   "주시는 건가요?"

 

   "네. 시죠 씨께 드릴게요."

 

   타카네는 치하야에게 받은 이어폰 머리가 보석이라도 되는 것처럼 엄지와 검지로 집어 가만히 바라보았다. 치하야는 한쪽밖에 없는 이어폰을 자기 귀에 꽂으며 타카네를 봤다.

 

   "아까 하지 못한 말 대신이에요."

 

   타카네는 부끄러운 말을 열심히 말하는 치하야를 마주 보며 자기 귀에도 이어폰을 끼우고 웃었다.

 

   "치하야 말씀이 들리는 것 같네요."

 

   둘은 애착을 나눠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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