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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Nuit Blan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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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2-15, 2015 17:35에 작성됨.

"…죄… 죄송해요…."

 

 후미카의 목소리는 평소에도 작은 편이었지만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 소리에 그 마저도 잘 들리지 않았다. 밖에는 눈보라가 치고 있고 좁은 창고 같은 곳에 있다 보니 몸도 으슬으슬 떨리고 있었다.

 

 "괜찮아. 당장은 급한 일도 없고. 후미카가 잘못한 게 아니니까."

 

 오늘은 오프여서 스케줄이 펑크난다거나 하는 일은 없겠지만 사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몸은 괜찮아? 춥지는 않고?"

 

 이런 곳에서 계속 있다가는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감기 정도면 다행일 지도 모른다. 설산에서 조난당해 저체온증으로 죽는다거나 하는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리 간단한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네. 추위에는 강한 편이라…"

 

 그리고 다시 정적. 원래 말 수가 적은 후미카인데 단 둘이 좁은 장소에 함께 있는 어색한 상황이어서 그런지 더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

 

 

 이 모든 일의 발단은 고향 이야기였다.

 

 "…프로듀서 씨는 고향이 어디신가요?"

 

 후미카가 갑자기 고향을 물어 왔다. 다른 아이돌이었으면 모를까 후미카가 이런 질문을 건네니 의외였다.

 

 "도쿄인데, 왜?"

 "도쿄…인가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아뇨. 출신이 도쿄라는 사람은 드무니까요."

 

 생각해보니 그렇다. 주변만 봐도 도쿄 출신인 사람은 별로 없었지. 어릴 적에는 당연하게도 다들 같은 출신지였지만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다 보니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오히려 도쿄 사람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프로듀서 씨는 의외로… 부자?"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건데."

 

 뭐, 유복한 편이긴 했다. 적어도 부족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후미카는 나가노였던가?"

 "…기억하고 계셨나요?"

 

 나가노라… 마침 겨울이고 딱 좋은 곳이다.

 

 "한번 가볼까?"

 "…네?"

 "나가노 말이야. 오늘은 한가하기도 하고. 후미카의 고향이라, 한 번 가보고 싶은걸."

 

 그러고보니 여행을 간 지도 오래였다. 일에 치여 살았던 것도 있고 이번 기회에 재충전을 하는 것도 좋겠지. 리프레시라는 거다.

 

 "…갑자기 그런…"

 "후미카도 가보고 싶지 않아? 금의환향이라던가."

 "…그렇게 말하셔도 지금 사는 곳은 나가노도 아니니까요."

 

 이상하게 피하는 느낌이 드는데.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걸까. 고향이라는 건 그 사람의 원점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걸 들춰버리는 느낌이어서 싫어하는 걸까.

 

 "뭐, 후미카가 싫다면 굳이 가지 않아도 돼. 휴일에는 느긋하게 그 자리에서 계속 쉬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후미카는 나의 말에 고개를 숙이더니 잠시 후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갈게요. 때로는 이런 소중한 시간도 소중한 거니까요."

 

 

 …라는 이유였는데 이렇게 되어버렸다. 어쩌다 이런 설산에 왔는가 하면 기세를 탔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운동신경이 좋지 않은 후미카가 굳이 올라가자고 했기에 순순히 따라 나선 것인데 이렇게 될 줄이야…

 

 "눈이 많이 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원래 이렇지는 않아요. 산 속이니까요."

 

 가볍게 눈이 내리기 시작하자 몸을 피하려고 근처에 있던 빈 건물로 들어간 거였는데 갑자기 눈발이 거세져 나가지도 못하고 갇혀버린 모양이 되어버렸다.

 

 "정말 괜찮은 거 맞지?"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오후 3시를 지나고 있었다. 핸드폰이 된다는 건 구조를 바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지만 구조요청이라는 거창한 일을 해야하는 건 조금 더 나중이다. 눈이 그치는 걸 기다리면 되기도 하고. 후미카가 말하는 걸 보면 어딘가 가야할 곳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괜찮아요. 별로 추운 것도 아니니까요."

 

 눈이 온다는 건 별로 춥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말로 얼어붙을 듯이 날씨가 추우면 눈도 오지 않는다. 꽤나 포근한 날씨에만 내리는 게 눈이니까.

 

 "그래도 불편하지 않아?"

 "…조금 그렇지만… 프로듀서 씨랑 같이 있으니까… 괜찮아요."

 

 후미카의 말에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고개를 홱 돌렸다가 슬쩍 옆을 바라보니 후미카의 표정은 별다른 기색이 없는 것이 노리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사람 헷갈리게 하고 말이야.

 

 "………."

 "………."

 

 그리고 다시 정적. 날씨도 날씨고 걱정도 걱정이었지만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어색한 침묵이었다. 서로 벽에 기대 앉아 있으면 무심코 움직이면서 몸이 닿아버리는 거리. 입고 있던 코트를 후미카에게 건네고 후미카가 두르고 있던 숄을 모포처럼 다리에 덮고 있는 상황. 불편한 자세에 몸을 뒤척이다 손이 닿기라도 하면 황급히 거리를 벌리게 된다. 좁은 공간에서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건만 서로 몸을 웅크리며 멀리하려 한다.

 

 "이 코트…"

 "응?"

 "…프로듀서 씨의 냄새가 나네요."

 

 그야 내가 입던 거니까…는…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

 

 한 박자 늦게 후미카의 얼굴이 펑 하고 터졌다. 고개를 푹 숙여버려도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보일 정도였다.

 

 "…이, 잊어주세요 방금 건!"

 "그, 그래…라고 말한다고 잊을 수 있겠어?!"

 

 후미카의 말을 들어버리니까 나도 두르고 있던 숄에서 후미카의 향기가 난다는 걸 의식해버렸다. 위험해. 이거 위험하다고.

 

 "……."

 "……."

 

 또 다시 정적. 하지만 이번에는 싸늘한 느낌도 없이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 잠깐 나가서 상황좀 보고 올게. 언제까지고 여기 있을 순 없으니까."

 

 머리를 식힐겸 건물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그래도 아까보단 나아져서 길을 걷는 정도는 큰 문제가 없어보였다.

 

 "후미카, 움직이자."

 "…눈은 그쳤나요?"

 "아직 그치지는 않았는데 많이 약해졌어. 언제 또 강해질 지 모르니까 빨리 움직여야지."

 "…여기 위로 더 올라가면 되는거지?"

 "…네."

 

 아직은 돌아갈 수 없다. 평소 소극적인 후미카가 이렇게까지 움직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고향의 설산까지 올라와서 하고 싶었던 일을 알고 싶었다. 이제와서 돌아가자는 말을 하지는 않는다.

 

 

 얼마간 더 걸으니 정상이 나타났다. 눈은 그치지도 않고 더 심해지지도 않고 그대로 흩날리는 채였다.

 

 "……이거였구나."

 "…프로듀서 씨한테도 이걸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겨울이 되어 낮이 짧아진 탓인지 벌써부터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지만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세상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하얗게 흩날리는 밝은 밤을 보는 듯한 광경은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것 같았다.

 

 "…예전에 아이돌 일을 시작할 때 여기에 와본 적이 있어요. 그 때도 겨울이었고… 언젠가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요."

 

 여기인 걸까. 후미카의 '원점'은.

 

 "……이제 내려가죠. 날이 어두워지니까요."

 

 후미카는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 모습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미래도, 변하기 시작한 자신도 이 새하얀 하늘 아래서 시작된 고동에 발을 맞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

 

눈이라고 하면 무슨 글을 써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훈련 중에 무전실에 갇혀 있던 걸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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