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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 사쿠마 마유F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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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21, 2017 00:02에 작성됨.

사쿠마 마유 F (Fan)

하편





사인회 이후로 나는 사쿠마 마유에 대한 의구심을 풀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은 한 동영상이었다. 마유의 솔로곡인 에브리데이 드림의 뮤직 비디오. 귀여웠다. 정말 평범하게 귀여운 아이돌이다... 그런데도 순간순간 그녀는 돌변했다. 부드럽게, 느긋하게, 간혹 강하게, 마유는 그 곡을 완벽히 소화해냈다. 다시 한번 재생해본다. 평범한 사랑 노래의 가사다. 하지만 마유는 그 평범한 연인들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색으로 - 심홍색으로 물들인다.

 

그 뒤로 또 다른 동영상들을 봤다. 생각 없이 손가락은 계속 다음 동영상을 누른다. 어느덧 날은 어둑어둑 저물고, 나는 그제야 하루를 날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물로 세수하고 정신을 차려야 했다. 그래서 화장실의 불을 켜는데, 거울에 웃고 있는 내 모습이 비추어졌다. 잠시 ‘아’하고 다른 표정을 지으니 얼굴이 뻐근하다. 바보같이 계속 웃고있었던 것이다. 단단히 정신을 놓았었구나. 그게 어이가 없어서 또 웃음이 나왔다.

 

결국 답은 찾을수 없던 것이었다. 마유의 무대가 너무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마유가 사인회 때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하루를 날리고도 아무것도 찾지 못한것 치곤 너무 이상하다.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그 이유 하나는 간단했다. 바로 내가 사쿠마 마유의 팬이 되었다는 것. 알아갈수록 의문만 더 생기고, 대체 왜 팬이 된 건지도 아직 모르겠지만.

 

A는 이런 내 모습에 당황해 하면서도 반가워했다. 그도 그럴게, 그가 아무리 열변을 토해도 내가 자발적으로 ‘팬’이 된건 처음이었으니까. A의 장황한 강의로 나는 팬의 세계에 조금 더 깊게 들어갈 수 있었고, 결국 팬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그리고 알게되었다.

 

나에게뿐만 아니라, 오랜 팬에게도 마유는 가끔 베일에 가려져있다는 점이다. 가령 이런 일화라던가. 마유는 모델로 활동하다가 아이돌로 급작스럽게 전향했다고 한다. 인기있는 아이돌이니 당연히 모델도 자주 하지만, 본업은 어디까지나 아이돌이며 다시 모델 활동만 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어떤 토크쇼에서 이것이 주제로 나왔다. 마유는 어째서 아이돌로 전향했는가. 마유는 웃으면서 ‘운명’이라고 답했을 뿐이다. 이 점에 팬들이 답답해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도 깊이 들어가다보면 답답해질 때도 있었다. TV에서 보여지는 것은 매우 단편적인 모습인데, 그마저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당연했다. 하지만 즐거웠다. 마냥 좋은 것에는 이유가 없었다. 마유에 관련된 것에는 반응이 유난히 커져가는 것도 느꼈다. 아저씨나 좋아하는 말장난도 마유와 엮이는 것은 웃겼고, 마유가 ‘요즘 일정이 많아서요오’하며 약간 피곤한 모습을 보일 때면 스케줄이 혹사라고 미시로를 욕했다.

 

“연예인 걱정이 제일 쓸데없는 거다.” 같이 TV를 보던 아빠가 툭 던졌다.

 

입을 다물었다. 아빠의 말이, 마유의 팬이 되기 전 A를 보며 내가 생각했던 것과 같아서 조금 부끄러워졌다. 어차피 내 목소리는 마유는 커녕 스케줄을 짜는 프로덕션에게도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 아이돌이 조금 더 좋은 대우를 받았으면 하는게 팬이다. 나는 닿지 않는 브라운관 너머로 다시 한번 욕을 해주었다. 마유를 좀 쉬게 해주라고.

 

A는 나에게 꾸준히 마유의 스케줄을 보내주었다. 운이 좋을 때는 집과 가까운 곳에 이벤트가 있었다. 오늘은 그 운이 좋은 날으로, 며칠 전에 미리 알아두었다. 무료 악수회다. 마유가 새로 찍은 화보집을 홍보하는 이벤트인데, 미시로답지 않게 오늘은 무료였다. 그래서 줄서는 사람은 더 죽어나겠지만, 마유라는 이유 하나로 오랜 줄을 설 명분은 충분했다. 마유, 내가 간다. 나는 잔뜩 들뜬 기분으로 서둘러 이동했다.

 

장소는 서점이었다. 벌써부터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일부러 한시간 전에 온 건데, 이미 두시간 전에 온 사람도 있고 아예 서점 오픈시간부터 도착해 1등으로 줄을 선 사람도 있는가보다. 괜히 한시간 전에 왔다.

 

좋아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 간다. 설렘에 그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는 사람이라도 두, 세시간을 버티진 못할 것이다.

 

“하아.”

 

나는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을 켰다. ‘마유영업사원’의 계정을 체크하기 위해서다. 이 사람은 일도 없는지 매번 마유의 이벤트에 따라간다. 그게 어디든 마유가 있는 곳이라면 참가해서 꼭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올린다. 이미 그는 팬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목격담에 의하면 그는 평범한 20대 남성이며, 번듯한 직업도 있다고 한다. 사실은 그런건 상관 없다. 늘 고맙게 생각하고는 있지만, 팔로우하고 좋아요하는 것에 그친다. 그의 사적인 것 등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

 

오늘은 악수회의 마유를 찍었을까? 나는 로딩도 채 되지 않은 그의 페이지에서 무심코 첫번째 사진을 눌렀다. 로딩이 아직 안 됐는지 사진이 제대로 뜨지 않았다. 조금 짜증스럽게 화면을 마구 밀어올렸다. 가뜩이나 지루한데 사진조차 내 마음대로 볼 수가 없다. 몇번 다시 시도를 하고서 난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포기하면 편하다.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10초를 센 다음 다시 화면을 보자.

 

10, 9, 8, 7, 6, 5, 4, 3, 2, 1. 이제는 로딩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눈을 떴다.

 

처음과 마지막. #사쿠마마유 #생각

 

두 개의 사진이다. 하나는 몇년 전의 마유다. 화장법이 바뀐걸로 알 수 있다. 그리고 두번째 사진은 최근이다. 본 적 없는 의상에, 잡지책 같은게 옆에 가득 쌓여있는걸 보아 이번 악수회의 마유 같다. 짐작이지만, 그런 것 같았다.

 

사진 속 마유의 표정이 어두운게 마음에 걸렸으나, 더 이상한 건 첨부된 글이다. 몇년 전의 마유를 ‘처음’, 오늘의 마유를 ‘마지막’이라고 한다면... 혹시, 이 사진이 이 계정의 ‘마지막’ 사진이 되는 건가? 덜컥 그 생각이 들어 그가 첫번째로 올린 사진을 찾아봤다. 내리는 스크롤이 끝이 없다. 아주 오랫동안 써온 계정이다. 그런 계정의 ‘마지막’이라고? 왜?

 

계속 내렸다. 쭉 내렸다. 슬슬 손이 아파올 때쯤 끝이 보였다. 나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사진을 눌렀다. 그가 첫번째로 올린 사진을.

 

마마유 팬입니다

트위터도 합니다 놀러오세요^O^)/ @mamayu10ve

#사쿠마마유 #마마유 #귀여워 #아이돌 #346프로 #미시로

 

“아….” 예상이 맞았다.

 

나는 인스타그램을 끄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생각을 그만두었다. 오늘은 그 사인회 이후로 마유의 얼굴을 정말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니까, 꺼림칙한 일에 대해 마음을 쓰지 않는게 좋다.

 

시간은 그 후로도 결코 빠르게 가지 않았다. 나는 숫자세기도 하고, 친구들이랑 문자나 하며 그럭저럭 시간을 때웠다. 용량 때문에 결국엔 삭제하게 될 지루한 게임들도 잔뜩 받고, 열심히 플레이를 했다. 줄을 점차 줄어들고, 절대 오지 않을것 같던 내 차례도 결국엔 오게 되었다. 이번에는 저번 사인회처럼 바보같은 말은 하지 않아야지.

 

사인회…

 

나는, 의문을 풀기 위해 마유에게 줄을 섰다. 그 의문이란 두 가지였다. 그중 한가지는 ‘왜 마유는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는가’였다. 마유의 팬을 시작하고, 다른 의문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그 의문은 점점 마음 속에서 잊혀져갔다. 간혹 ‘사쿠마 마유는 다른 곳을 본다’라는 이야기들이 팬 커뮤니티에 올라왔지만, 나는 ‘그래, 그랬었지’하며 넘겼었다. 마유는 왜 ‘운명’을 강조할까, 왜 다른 유닛과는 달리 마스커레이드의 멤버들에 라이벌 의식을 느낄까 따위의 의문들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의문이 생각나지 않았으니까.

 

“안녕하세요오….”

 

힘없는 마유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오랜만에 그 의문을 떠올렸다. 이번에 마유는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마유는 사진에서처럼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테이블을 바라보았다가, 나를 보았다.

 

“아, 안녕…. 하세요?”

 

마유는 미소같지 않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에 어색하게 내 손을 겹쳤다. 마유의 손이 가까이 다가오자 향수 냄새가 났다.

 

“마유의 화보집, 많이 사랑해주세요.”

 

“.....저기….”

 

“네에?”

 

인사는 형식적이고 딱딱하다. 만진 손은 차갑고,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늘, 기분이 별로...인가요?”

 

“.....아-”

 

마유의 표정이 한순간 일그러졌다가 금방 미소로 돌아왔다. 예의 그 부자연스러운 미소로 말이다.

 

“그렇지 않아요.” 마유는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다른 곳을 보고 있지는 않으시네요.”

 

“.....네?” 실수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말에 가시가 있는걸 모르고 그대로 입밖으로 내뱉어버렸다. 나는 말을 조금 더듬다가 바로 정정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저를 제대로 봐주고 계시...다는 뜻으로…”

 

“어머, 그런가요오?” 마유는 오묘한 미소를 짓고는, 다른 한쪽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부드럽게 흔들었다.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계속, 마유를 지켜봐주세요.”

 

앞으로도…. 계속….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영상 하나를 봤다. 동영상 속 마유는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다.

 

“저를 바라보는 팬분들이 많아질수록, 더 톱을 노릴 수 있게 되니까...”

 

그 뒤는 볼 수 없었다. 비 때문에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야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 정도였지만, 점점 물줄기가 거세지는 바람에 그냥 맞고만 있을수도 없게 되었다. 나는 잽싸게 지하철역으로 달려갔다. 지하철은 한가한 사람들만을 태운채 덜컹거리며 네 정거장을 지났고, 나는 그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원래대로라면 그 전 정거장에서 내렸어야했다. 그게 집으로 가는 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오늘은 환승을 해야한다. 그리고 다시 몇 정거장 건너 내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미시로 프로덕션으로 가는 길이니까.

 

지하철은 자주 멈췄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아주 조금씩 나아갔다. 나는 원래 예정시간보다 한시간 늦게 도착했다. 이젠 도보로 조금 걸어야한다.

 

여전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값싼 우산을 하나 사서 거리를 걸었다. 내가 왜 여기에 왔을까…. 건물에 아이돌 부서의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닐텐데, 왜…. ….아니, 아이돌 부서의 사람을 만나서 뭐? 마유라도 만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건가? 나는 복잡해지는 머리 속을 달래려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에서 뮤직 앱을 켰다. ‘최근 재생된 노래’에는 전부 마유의 노래만 있다. 마유의 유닛인 마스커레이드, 마유의 프로젝트가 다같이 부른 부탁해 신데렐라 등….

 

나는 그 곡들을 건너뛰고, 예전에 듣던 노래를 찾았다. 그리고 계속 들었다. 갖고 있는 노래를 전부 들을 때까지 나는 이어폰을 빼지 않았다. 달팽이처럼 느릿한 걸음으로 한참을 걷는다. 그리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온다.

 

미시로 프로덕션에 도착했다. 도착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시간을 확인한 후 -오후 10시였다- 핸드폰을 완전히 꺼버렸다.

 

“크다.”

 

별달리 할 말이 없었다. 미시로 프로덕션은, 정말 크구나. 이 안에 그 많은 아이돌들이 있는거구나.

 

감탄하고 있는 동안, 프로덕션에서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쏟아져나왔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떠들썩하다. 잘 들어보니, 그들은 괜찮은 이자카야에 갈 모양이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술을 마시고 싶어졌다.

 

그들을 따라갔다. 그렇다고 너무 따라가는 티는 나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그래도 너무 의심될까봐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도 그 이자카야는 굉장히 가까운 곳이었다. 나는 우산에서 물기를 탈탈 털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 남자들은 가게 안에서도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중이었다. 그들을 멍하게 쳐다보는데, 점원이 말을 걸었다. 나는 ‘천천히 보세요~’라는 인사를 듣고 메뉴판을 집어들었다. 무난하게 사케랑 안주가 좋을 것 같다. 인기 메뉴인 새우튀김으로 시키자. 그렇게 빠르게 주문을 마쳤다.

 

이제는 회피할 수 없다. 이제, 나는 내가 여기 온 이유에 대해 생각해야만 했다. 그리고 왜 이런 형용할수 없는 감정이 드는가도 생각해야했다. 그것도, ‘마유의 팬’으로서…

 

* * *

 

가벼운 식사를 끝냈다. 아직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다. 나는 계산까지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벤치가 있었기에, 그저 비를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내기엔 최적이었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시작되나 했다.

 

“라이터 있으신가요.” 프리한 복장의 사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 나는 라이터를 건네고, 후드를 푹 뒤집어쓴 채 눈을 감았다. 우리는 그 후 대화하지 않았다. 그 남자는 그 남자 나름대로 마음이 복잡할만 한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 마음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웠으므로, 그에게 말을 걸거나 그를 관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침묵은 오히려 좋았다. 빗소리는 끊이지 않고 일정하게 들려온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혼자만의 세계에 있었다. 오직 담배연기만이 그 세계를 침범했을 뿐이다.

 

그 때였다.

 

그 때, 여성의 향수 냄새가 났다. 옆을 보니, 우비같은 바람막이를 입은 여자가 우리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여자는 선글라스를 끼고, 마스크를 썼다. 키는 아담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핸드폰을 두드렸다. 문자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날씨에, 선글라스?

 

….이 기시감은 뭐지?




향수 냄새….




“사쿠마 마유죠? 팬입니다.”

 

“네?”

 

심장이 두근두근 빠르게 뛰었다. 질문을 한건 내가 아니라, 옆의 남자였다. 그는 손을 흔들어 그녀를 불러세운 뒤, 저런 엉뚱한 질문을 한 것이다. 엉뚱하다. 저렇게 꽁꽁 싸매고 있는 여자를... 무슨 근거로 마유라고 하는 것인지...

 

두근두근. 나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사실 나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네?’하고 묻는 여자의 목소리는 여리고 부드러웠다. 마유의 목소리와 비슷한지도 모른다….

 

“아, 아닌...데요….”

 

“어?”

 

여자는 쌩 지나가버렸다. 탁탁탁, 빗물을 튀기며 급하게. ‘도망쳤다’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

 

“........”

 

우리는 둘 다 당황해서 아까 그 자세 그대로 멈추었다.

 

“저 여자….”

 

그의 말 한마디로 얼음이 풀렸다. 그는 매우 허탈한 표정으로, 담배를 한모금 빨았다. 후우, 하고 다음 말이 이어졌다.

 

“사쿠마 마유에요.”

 

“네?”

 

"저 여자한테서 진한 향수 냄새가 났죠. 흠, 이상한 말이지만, 제 손목의 냄새를 맡아보시지 않겠습니까."

 

담배 냄새일게 뻔하잖아. 나는 그를 흘겨봤다. 딱히 '이상한' 의미는 아닌 것 같아서, 살짝 코를 갖다대었다.

 

"아." 같은 냄새다.

 

"화장품 로드샵 'Amor''."

 

"아?"

 

"제품명은 운명의 붉은 투왈렛."

 

들어봤다. 광고에 자주 나오던 제품이다. 미시로 프로덕션의 아이돌들과 콜라보로 각 아이돌의 테마에 맞춰 제작한 향수였다. 기간 한정에 여성용이라 구할 엄두가 안 났는데, 이 남자는 재빨리 구입을 해둔 것이다.

 

"옷도 말이죠, 운동복 전문 브랜드인 코이코이에서 새로 나온 바람막이잖아요?"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그것도 마유쨩이 광고하던 브랜드."

 

"아...."

 

"마유쨩, 의외로 고지식해요. 자기가 광고한 브랜드의 제품을 꼭 쓰더라고요."

 

마치 그녀를 사적으로도 잘 안다는 듯한 말투다. 지극히 캐쥬얼한 복장으로 이 근처를 돌아다니는 걸 보아 미시로의 관계자는 아닐텐데. 그렇다고 마유와 아는 관계라면, "사쿠마 마유죠?" 따위의 질문은 안 했을거다.

 

"마유를 굉장히 좋아하시나봐요." 팬입니까. 나는 그 말을 조금 비틀어서 그를 떠본다.

 

"마성이니까, 좋아할수밖에요. 그녀는 아이돌 중에서도 톱입니다."

 

대답이 빨랐다. 그러나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다시 담배를 한모금 빨아들였다. 자신의 발언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다.

 

"그러네요."

 

마성이라는 단어로 설명할수 있을까. 나는 마유와의 첫만남을 떠올렸다. 그 무대에서 본 마유의 눈빛은 확실히, 마성이었다.

 

"방금 지나간 그 여자가 마유쨩인건 확실합니다. 저 브랜드들 뿐만이 아니에요. 저 체구. 예전에 악수회에서 잠깐 일어난 적이 있는데, 기억해요. 딱 키가 제 여기까지였습니다."

 

그는 기관총처럼 타다다다, 빠르지만 정확하게 말한다. 귀가 따가울 지경이다. 듣기 싫다. 목소리 때문이 아니라…. 불안했기 때문이다. 무엇을 말할지 불안했다. 그걸 듣게 되는 것이 불안하다. 정말 가끔 찾아오는 ‘촉.’ 그 촉은 경고의 빨간불을 켰다.

 

"게다가 저 목소리를 마유쨩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마스크를 쓰고 선글라스를 꼈다지만, 저게 마유쨩인건 팬이라면 알아볼수 있습니다. 저, 마유쨩 팬클럽의 스탭입니다. 마유쨩의 이벤트라면 제 스케줄을 파토내서라도 참여했고, 마유쨩에게 제 이름으로 팬레터와 선물을 보낸게 한두번이 아닙니다. 저, 머리 스타일 한번도 바꾼적 없습니다. 옷 색도 항상 검정입니다. 그런데 마유쨩, 저를 기억이나 하는걸까요?"

 

"그건... 팬미팅 장소도 아니고, 어쩔 수….”

 

당황스러웠다.

 

"방금의 마유쨩은 왜 서둘러 갔을까요. 중요한 약속? 아, 비즈니스라면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런 늦은 시간에 비즈니스라, 별로 설득력있는 이야기는 아니군요. 그럼 뭘까. 친한 친구일까? 친구를 만나더라도, ‘팬’을 자청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부정할 정도로 급한 일일까?”

 

“...그럴 수도 있죠. 마유도 사생활이 있습니다.”

 

“.....’들키기 싫은 일’이 아닐까요?” 그는 내 말을 무시한채 말을 이어갔다. “당신, 마유쨩의 사인회 간적이 있지 않나요? 마유쨩, 당신이 아닌 다른 곳을 쳐다보지 않았었나요?"

 

“....분명 그랬...지만… 오늘의 악수회에서 마유는…”

 

“악수회!”

 

그가 손뼉을 쳤다.

 

“악수회군요. 저도 갔었죠. 마유쨩의 표정, 어두웠었죠... 그런데 평소와 달리 팬의 얼굴은 꼭 보고 있었다 이겁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궁금하지 않습니까? 아아, 마지막 선물일수도 있겠네요. 당신이랑은 상관 없는 얘기지만.”

 

….마지막?

 

“마유쨩은 평소의 사인회에서 팬들을 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마유쨩은 웃었다. 그리고 오늘의 악수회에서 마유쨩은 팬들을 봤다. 하지만, 마유쨩은 웃고있지 않았다.”

 

“웃었습니다. 웃어주었습니다.”

 

“당신이 사쿠마 마유의 대리인입니까?”

 

그는 매섭게 나를 노려보며 담배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발로 밟아 꺼버렸다.

 

“.......미안합니다. 흥분을 했군요. 불쾌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아뇨….”

 

그가 사과했다. 그는 ‘실례하겠습니다’를 마지막으로 어딘가로 가버렸다. 그 여자가 간 방향과 같은 곳으로. ...아니, 마유가 간 방향과 같은 곳으로…

 

나는 한동안 더 벤치에 앉아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몇분쯤 지났을까. 그때쯤 나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그는 무언가 알고 있을까….

 

계속 걸었다. 그냥 발 닿는 곳으로.

 

“프로듀서 씨…”

 

“....!”

 

그 소리를 듣고 나는 멈추어 몸을 숨겼다. 마유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어느 골목으로, 인도에서 약간 파인 쪽에 있었다.

 

“왜 불러낸거야?”

 

“오늘 마유, 열심히 팬들을 바라봤어요오. 마유, 프로듀서 씨의 곁에 계속 있고 싶고…. 프로듀서 씨가 원하는 마유가 되고 싶은 걸요.”

 

“.....잘 했어. 그렇다고 해도, 상부의 지시 때문에 당분간은 좀 떨어져 있어야할거야. 일하는 동안은.”

 

“보고 싶었어요, 프로듀서 씨….”





그 광경을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에게선, 담배 연기가 나고...

 

목에는 ‘사회부 기자 0000 000’라는 이름이 적힌 명찰을 걸었다.

 

그는 화나있다.

 

사쿠마 마유와 그녀의 프로듀서는 많이 놀랐다.

 

“......마유영업사원 님?” 프로듀서가 말한다.

 

“당신이 알아줘봐야 소용 없어.” 남자가 말한다.

 

“나, 기억해?” 남자가 다시한번 말한다.

 

“........” 마유는 침묵한다.

 

“그럴 줄 알았어. 어이, 프로듀서 씨. 당신이 아이돌 하는건 어때?” 비아냥조로 남자가 말한다.

 

프로듀서는 어쩔줄 모른다.

 

“연예부에 아는 친구 많아. ….협박 아냐. 어떻게든 예정되어 있는 일을 알려주는건, 협박이 아니라 경고지.” 남자는 말한다.

 

“.....나, 마유쨩의 팬이었어.”

 

그의 가방에서 대포 카메라가 등장한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때다. 몸을 숨기고 있던 다른 남자가 튀어나왔다. 기자 남자는 놀라서 넘어진다. 다른 남자는 소리를 질러서 그의 정신을 분산시켰다. 안 그래도 흥분한 상태였던 기자 남자는 제대로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뭐, 뭐야, 이 X끼…!”

 

남자는 도망간다. 마유와 프로듀서는 거친 숨을 헉헉 내쉰다.







“하, 하아... 하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하아…. ….어? 저기, 마유의 이벤트에 온 적 있으시죠…?”

 

그녀이길 간절히 바랬다.

 

그러나 내게 들린 목소리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 와중에, 그걸 알아보냐. 아주 팬 사랑이 지극하시군.

 

“마, 마유의 팬... 저기….” 그녀다.

 

그녀는 다리를 후들거리다가, 그녀 옆의 ‘프로듀서’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일어섰다.

 

“....고마... 워요오…..”



고마워요.

고마워요

고마워?

 

내 이성을 간신히 붙들고 있던 무언가가 끊어졌다. 아, 알 것 같다. 악수회가 끝나고 어떤 감정이 날 덮쳤는지. 나는 이해할수가 없던 거야. 이젠 수많은 의문 속에서, 그녀 하나만을 바라보고 이해해줄 자신이 없어졌던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유는 여전히 귀엽고 예쁘다. 정말 사랑스럽다. 이런 소녀가, 무대 위에서는 또 돌변해서 무시 못할 매력을 뽐낸다. 인기있을 아이돌이다. 천상 아이돌이다.

 

그런데 그녀를 아이돌로 이끌어주는건, ‘우리’가 아니었구나. 닿을 수 없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절실히 깨닫게 될줄은 몰랐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할까.

 

“마유쨩, 정말로 좋아해요.”

 

“.......”

 

“저, 다음 이벤트에도 꼭 갈테니까요. 힘내요. 마유쨩은 정말 좋은 아이돌이에요. 그럼.. 안녕.”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갑자기 나타나 소리를 지르고, 뜬금없이 팬임을 고백했다.





나는 마유의 팬을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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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는 아침에 올리겠습니다아아

봐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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