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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 스윗치즈 베이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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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20, 2017 23:59에 작성됨.

Pi, Pi, Pi~♪♬

이곳에서의 잠을 깨우는 것은, 아침의 따스한 햇살도, 자명종의 알람소리도 아닌, 갓 구워진 빵의 달콤한 향기에요. 핫초코에 녹아드는 마시멜로우처럼, 침대와 하나되고픈 마음은 굴뚝같지만, 허기진 배가 몸을 일으켜 세워요.


‘우웅… 벌써 일어날 시간이 된건가요…’


눈처럼 하얀, 하지만 햇살처럼 따스한 이불 너머, 주위에 보이는 풍경은,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요. 세월이 느껴지는 고동색의 나무 벽. 작지만 존재감을 발하는 석조 벽난로. 손때 묻은 갈색인 작은 나무 선반과 그 위의, 피혁으로 장정된, 양장본 동화책 몇 권. 작고 간소하지만 아름다운 이 방은, 전에는 꿈으로만, 그림책 속 세상으로만 보았던 동화나라의 방 그 자체에요.


‘오늘의 빵은 무엇이려나요… 페이스트리 종류는 아닌 것 같은데요…’


점점 빵의 향기에 익숙해지는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끼며, 황동 문고리가 달린 육중한 나무 문을 열고 밖으로 걸음을 옮겨요. 유럽 시골의 100여년은 된 호텔에서나 볼 법한 이 복도는, 걸을 때마다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에요.


짧은 시간 여행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서자 보이는 것은, 방금 구워진 스콘을 오븐에서 꺼내는 애플파이의 마녀, 아이리 씨에요.


“노노! 일어났구나! 막 깨울까 하던 참이었어. 노리코는 아직이야?”


“안녕하세요... 노리코는 아직 자고 있는 것 같은데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등 뒤 계단의 위에서 밝고 높은 목소리가 들려와요.


“도너츠?! 오늘은 도너츠 맞지?”


“우후후♪, 지금 메뉴는 스콘이야. 도넛은 나중에♪”


“으으~ 도너츠는 일어나자 마자 먹는게 맛있단 말이야! 나중에 먹어도 물론 맛있지만…”


“노리코가 도넛을 맛있어 하지 않을 때가 있나…? 우후후♪, 어쨌든 스콘은 따듯할 때 먹어야 맛있으니, 어서 와서 앉아♪”


아르누보 양식의 커다란 테이블에 둘러앉아, 오늘의 첫 식사를 시작해요. 테이블이 크니만큼, 비어있는 반쪽이 더욱 넓게 느껴지네요.


“아이리씨… 카나코씨랑 오이카와 씨는요..?”


“오이카와는 아침 일찍 목장에! 카나코는 시내에 나갔어. 오늘은 우리 셋뿐일 거야♪”


“이렇게 셋만인 건… 처음인 것 같은데요…”


“그치? 이참에 노노가 원하는 빵, 잔뜩 만들어줄게! ♪”


“그렇게 말씀하셔도… 모리쿠보는 아직 빵은 잘 모르는데요…”


“괜찮아, 괜찮아! ♪ 뭐라도 좋으니 말만 하면 만들어 줄게♪”


“그럼 먼치킨! 먼치킨이 먹고 싶어! 아 먼치킨말고도 크림 도너츠도!”


“그럼 노리코는 오늘 직접 구워보는게 좋겠네♪ 이제 한사람 몫을 하니까!”


“응♪, 잔뜩 만들어야지~!”


즐겁게 대화하는 두사람을 지켜보다가, 앞의 스콘을 집어들어, 아무것도 바르지 않고 한 입 먹어봐요. 약간의 달콤함과 짭짤함, 그러면서도 수수하고 질리지 않는 맛이 입 안에 퍼져요. 하지만, 스콘은 역시 잼과 클로튀드 크림과 함께 먹어야겠죠. 버터나이프로 스콘을 반으로 자른 후, 그 위에 클로티드 크림을 듬뿍 바른 다음 딸기잼을 올려요. 여기에 홍차를 곁들이면, 잼의 달콤함과 크림의 고소함, 스콘의 수수함과 홍차의 쌉쌀함이 조화를 이루는, 크림 티가 완성이에요.


“노노도 이제 크림 티에 익숙해졌네~ 아가씨 같은걸♪”


“아우우… 모리쿠보가 아가씨라니… 당치도 않은데요… 하지만 동화나라에서의 티 파티라면… 모리쿠보, 좋아하니까요…”


“있지있지, 그럼 오늘의 홍차는 어떤 홍차인지 알겠어?”


“에…? 홍차요…? 잘은 모르겠는 건데요…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는 아닌 것 같은 건데요…”


“우후후♪ 반은 맞춘 셈이네! 이건 얼 그레이야. 상큼하고도 새큼하고도 쌉싸름한 맛이 특징이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만큼, 아니, 그보다도 유명한 차니까 맛을 기억해두는게 좋아♪”


갑자기 시작되는 다과 수업. 저는, 참 좋아해요. 알고 먹으면, 그만큼 더 맛있어지는 기분이에요. 언젠가는 저도, 어떤 과자든, 차든, 저렇게 자신감 넘치게 설명할 수 있게 되고 싶네요…


“아차,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첫 손님이 오기 전에 준비해야지♪ 슬슬 마저 먹고 정리하자?”


“네…”


“응!”


식사를 끝내면, 스윗치즈 베이커리의 하루가 시작되요.

 


-----

 


“컷! 좋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죠!”


한쪽은 형형색색의 조형물들로 가득차고, 다른 한 쪽은 무미건조한 검정 벽에 사람들로 가득한 스튜디오. 감독의 외침으로 울려퍼짐과 동시에, 촬영 스튜디오 전체의 긴장이 일순간 풀린다. 이미 예능 프로그램의 뻔한 레파토리가 되어버린 아이돌의 실내 암벽 등반을 위한 인조 암벽 앞에서, 누군가가 주저앉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다.


“하아 하아… 점점 빨리 지치는 것 같네요…”


“수고하셨어요 나나 씨~ 여기 물이라도 좀 드세요!”


등 뒤에서 건네진 물을 말없이 턱 하고 받아 몇 모금을 마신 뒤, 불현듯 항상 자신을 챙겨주던 프로듀서의 목소리와는 달랐다는 것을 깨달은 아베 나나는, 자신에게 물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본다.


“아… 우즈키… 씨였지요? 감사합니다!”


“기억해주고 계시네요! 영광이에요!”


“그래도 같은 프로덕션 연습생인데, 기억하는게 당연하지요~ 오늘은 스태프로 오신 건가요?”


“네! 역시 현장 분위기의 체험은 중요하니까요! 스태프는 몇번 해봤지만서도, 항상 할 때마다 촬영장을 보면 두근거리네요!”


“그 기분, 나나도 알아요~ 아아, 옛날 생각이 나네요… 나나도 연습생이었을 때, 여러 번 스태프로 뛰었었죠…”


회상에 잠긴 채, 나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우즈키는 선배의 이야기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조금이라도 놓치기 싫다는 듯 열심히 경청한다. 하지만, 선후배 간의 작은 담화도 잠시, 감독의 외침이 다시 한번 울려퍼지고, 사람들은 각자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아, 슬슬 돌아가봐야겠네요~”


“그렇네요~ 우즈키 씨, 앞으로도 힘내주세요!”


“네! 시마무라 우즈키, 노력할게요!”

 


---

 


“오늘의 ‘머슬 캐슬’은 여기까지! 모두들, 다음 시간에 봐요!”


사회자의 엔딩 멘트와 함께 허리 숙여 인사하던 아베 나나는 벌써 많이 겪은, 하지만 절대로 익숙해질 수는 없는 등골을 타고 흐르는 짜릿함에, 식은땀을 흘린다.


‘아아… 또인가요… 조심해서, 천천히… 아앗!”


작지만 확실하게 난 뚜둑 소리. 온 힘을 다해 버티다가, 감독의 컷 소리와 함께 털썩 쓰러진다.


“괜찮으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어디선가 달려온 우즈키. 나나는 후배에게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조금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아아, 괜찮아요… 그냥… 허리가 좀… 등반할 때 조금 무리했나 보네요…!”


최선을 다해 웃음짓는 나나였지만, 우즈키의 선배를 아끼는 마음은, 불행이도, 그런 같잖은 위장 따위는 쉽게 꿰뚫어보았다.


“그렇지 않아요! 지금 바로 의무실로 가보죠! 부축해 드릴게요!”


“아, 아니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아도 아, 아---“


우득

 


-----

 


‘하아… 왜 하는 일마다 이렇는 것일까요… 저는’


터덜 터덜, 힘빠진 걸음으로 도심을 걷는다. 아베 나나 선배는 몇번이고 괜찮다고, 미안해 할 필요 없다고 말 해 주었지만, 그런 위로도 이 우울함을 덜어 줄 수는 없었다.


‘아아… 차라리 쓸데없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점점 자라나기 시작한 이런 암울한 생각들은, 여느 때나 그랬듯이, 부족한 자신에 대한 자기 혐오로 자라난다. 내가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조금 만 더 신중했더라면, 조금만 더 그랬더라면 이러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항상 레파토리는 같다. 나의 부족함으로 문제가 일어나고, 문제를 일으킨 그 부족함이 미워지고, 그렇다보면 점점 더 모든게 미워져서, 결국엔 나 자신이 미워지게 된다. 바보 같은 나 자신이, 재능없는 나 자신이, 스스로 자기혐오에 빠진지 알면서도 극복해 낼 수 없는 나 자신이. 하지만 그래서였을까. 마음은 어느때보다도 씁쓸했기에, 코에 느껴지는 달콤한 향기는 어느때보다도 달게 느껴졌다. 무의식중에 향기를 따라 걸었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작은 나무집. 근처 도시의 건물과는 너무나 다른 그 모습은 현실감조차 없었다.


‘이런 곳에 이런 건물이 있던가…? 스윗치즈 베이커리…? 새로 생긴건가…?’


호기심에 문 앞으로 가 보니, 작은 현판이 보인다.


“당신에게 필요한 빵을 구워 드립니다. Open: NOW Close: NOT NOW”


기묘한 안내판에 이끌리듯,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눈에 보이는 것은, 빵집이라기 보다는 바와 같았다. 짙은 고동색의 나무로 된 카운터와, 그 앞의 테이블 역할을 하는 판넬. 이 가게가 빵집이라고 알려주는 것은 케이크가 담긴 쇼케이스와, 카운터 너머로 보이는 오븐, 그리고 가게를 가득 채운 갓 구운 빵의 향기 뿐이었다. 가게의 분위기 때문인지, 기술의 혜택임이 분명한 냉장 쇼케이스지만, 그마저도 마법으로 작동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서오세요!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부디 여기에 앉아주세요!”


방금 기다리고 있다고 했던가…? 너무나도 이색적이고도 아름답고도 기이한 풍경을 본 나의 뇌는 아직도 멍한 상태였고, 귀엽고 씩씩해보이는 분홍 머리의 점원에게 이끌려, 의자에 앉았다.


“에… 안녕하세요… 그러니까 여기는… 빵집인건가요…?”


“네! 원하시는 빵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없는 빵이라도 구워 드립니다!”


빵이라… 확실히 요즘, 바쁘고 돈도 없을 때, 편의점에서 자주 사먹긴 한다. 하지만, 그 맛은 오히려 퍽퍽하고 지나치게 기름졌기에, 좋아하냐 물어본다면 좋아한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당연히 좋아하는 빵도 있을 리가 없다.


“좋아하는 빵은 딱히… 적당히 추천하는 빵으로 부탁드릴게요… 아, 저, 그렇게 비싸고 그런 빵은 좀 피해주셨으면…”


“네~ 적당히 추천하는, 가격도 적당한 빵! 주문 받았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에, 정말 그런 주문으로 괜찮은 건가.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기조차 전에, 귀여운 분홍머리 여자애는 카운터 너머로 사라졌고, 수줍어보이는 다른 금발의 여자아이 하나가 커다란 빵 바구니를 들고 나온다. 바구니에 있는 것은 커다란 공 모양의 빵. 무슨 빵인지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익숙한듯 금발머리 여자아이로부터 빵 바구니를 건네받은 갈색 머리의 내 또래처럼 보이는 제빵사는 눈 앞에서 커다란 빵칼로 동그란 빵을 썰어낸다.


“자 빵 나왔습니다~ 버터나 잼은 앞에 몇 종류가 준비되어 있으니, 원하시는 데로 사용해 주세요~”


“가, 감사합니다”


커다란 빵이라 솔직히 놀랐다. 이거, 막 비싸고 그런 빵은 아니겠지…? 돈이 부족하다면 몸으로 갚으라고 일을 시키는 그런 속셈인가…?


“이 빵은 깡빠뉴라고, 프랑스의 대표적인 빵이에요! 이전에는 바게트 대신으로 주식으로 많이 쓰이던, 평범한 빵이랍니다~ 비싸지 않아요!”


생각이라도 읽은 듯이, 설명을 하는 갈색머리 제빵사. ‘아, 그렇군요’라고 나직히 말하고는, 빵을 그냥 한 입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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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가 항상 제일 긴장되는 때에요. 아무리 그 사람에게 딱 맞는 빵을 내 준다고는 해도,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잖아요? 하지만 그런 걱정도 무색하게, 굉장히 맛있게 먹고 있는 것 같네요. 생각보다 많은 양의 빵이지만, 다 먹을 것 같네요. 슬슬 아이리씨가 시작할 때가 됐는데..

“있지요, 그 깡빠뉴라고 하는 빵은 어떻게 만드는지 아시나요?”


“네?”


“깡빠뉴는, 상업용 이스트가 나오기 전, 심지어는 제분조차도 대량으로 할 수 없을 때 처음 만들어진 빵이에요. 때문에, 거친 밀가루와 호밀가루, 효모와 소금으로 반죽하고서 세 시간동안 펀칭하며 발효를 시켜야 하죠. 그게 다가 아니에요. 그 후에는 하루동안 저온에서 숙성시킨 후 다시금 2차 발효까지 시켜야 해요. 그래야 반죽이 완성되고, 오븐에 넣어 구울 수 있어요.”


“…”


“우후후♪. 아무리 재능 있는 제빵사라도, 깡빠뉴를 순식간에 만들어 낼 수는 없어요. 오로지 충분한 시간과 노력만이, 깡빠뉴를 만들어 내죠. 이 깡빠뉴가, 천년도 넘게 프랑스의 농민들을 매일 먹여살린 빵이에요. 천재 재빵사가 만들어낸 화려하고 맛있는 빵들도 물론 대단하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로부터 널리 사랑받고 꼭 필요한 빵은 노력과 시간을 들인 빵이라는 것은, 빵뿐만 아니라 사람에게까지도 해당되는 이야기 같지 않나요? 참 낭만적이지요~”


“…”


“조금은 기운이 나셨나요? 배뿐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그 빵이 채울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네, 덕분에 기운이 나네요.”


아, 웃어 주셨네요.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는 세상이 망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계시던 분이, 저희의 빵을 먹고 큰 웃음을 짓고 계시네요. 저 미소를 위해서, 우리는 일하는 거예요.

 


-----

 


“어때? 저 분은 좀 힘이 나셨으려나?”


문이 닫히자, 아이리씨도 웃으며 물어보내요.


“네, 확실히 그런 것 같은데요…”


“아이리언니, 대단해! 금방 그런 빵 이야기를 떠올리다니! 나는 아는게 도너츠밖에 없는데~”


“후후, 여기서 일하다 보면 점점 아는게 늘어날거야. 나도 처음 왔을때는 그랬는걸? 자, 다음 손님 맞을 준비해야지. 노리코, 슬슬 오븐 예열해 놔. 다음 빵을 구울 준비를 해야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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