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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판타지] 제 11장 - 주지육림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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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20, 2017 23:21에 작성됨.

 

어린아이.. 스스로를 타치바나 아리스라고 한 소녀를 안은 채 괴물사냥꾼의 피로 점철된 발걸음은 바깥으로 나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이미 크고 작은 소음의 여파로 자기가 이 안에서 벗어나려 한다는걸 시설 안에 있는 광신도들에게 들킨 이상, 더는 그들에게 들킬 염려를 해가며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은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적들이 무리지어 막아서는걸 정면돌파 하기엔 너무나도 여린 몸이 안겨있었다.

 

그럼에도, 앞에 길을 막고있는 무리가 몰려들자, 그녀는 아리스를 더 안쪽으로 품고서 정면을 노려본다.

 

 

 

" 비켜라.. ! " 루미는 짧지만 위협을 담아 그렇게 외쳤다.

 

 

 

 

 

" 붙잡은 새가 도망친다 !!! "

 

" 되찾으라 ! 되찾아라 ! "

 

" 주인님께 바칠 영험한 것이 벗어나지 못하게 하라 !! " 눈이 뒤집혀져서 무장도 없이 이와 손톱을 세우며 달려드는 신도들을 쳐내며 무리들을 비집고 벗어난다. 그러자 뒤편에 기이한 문양이 세겨진, 한눈에 봐도 고급져보이는 복장을 한 자들이 허리춤에서 칼들 빼들며 맞이한다.

 

 

 

" 오직 죽음만이 너를 해ㅂ..... "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고급진 옷을 입은 이는 턱 윗부분이 뭉게져 나자빠진다. 아마도 높은이로 추정되는 사람이 당했음에도 아랑곳 않고 정신나간 믿음의 소유자들은 악착같이 달려든다. 앞, 두, 양 옆의 복도와 출입문에서 벌레떼 마냥 신도들이 쏟아져 나왔다. 광신자들이 나오기 직전 열리는 문들의 틈 사이로 보이는것들은 한결같았다.

 

 

 

살점, 뼈, 장기, 파여있는 수로를 따라 흐르는 피.

 

그것들만 눈에 띄이니 곧이어 온 공간이 피와 살점으로 된... 누군가의 내장인 것 마냥 착시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그정도로 지천에 널린것들은 역겨움 그 자체였다.

 

 

 

 

 

그렇게 역겨운 풍경을 참고서 계속 달리고 또 달리다가 그녀는 멈춰선다. 어느센가 자신을 집요하게 쫓아오던 무리지은 비명과 고함, 발걸음소리가 깔끔하게 없어져 있었다.

 

뒤이어, 더 이상 복도가 아닌 왠 거대한 공동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루미 본인이 내는 소리를 제외하면 발걸음도 비명소리도 어느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

 

 

 

오래된 피가 말라붙고, 그 위에 얼마 되지 않은 피가 뒤덮여 절묘하게 풍기는 악취에 소녀의 코, 입을 덮고 횃불도 없이 천장에서 내려오는 광원 모를 빛이 비추는 공동의 중앙으로 나아간다.

 

미미한 빛의 건너편에는 분명 문의 실루엣이 얼핏 보였다.

 

 

 

당장에라도 걸음을 재촉하려던 그녀의 뒤편으로, 얕은 바람과 함께 큰 소리가 울린다.

 

피로 눌러붙은 금속질 바닥을 힘껏 치며 울리는 쇳소리에, 그녀는 천천히 뒤돌아본다.

 

꿀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분명 뭔가 내려왔다. 아마도 빛이 비추던 구멍으로부터.

 

 

 

" ..... "

 

 

 

그녀는 침을 소리없이 꾹 삼켰다. 뒤편에 있는 것 역시 꿀렁이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내지 않았다

 

스산한 기운, 감각. 루미는 괴물사냥꾼의 감으로 깨닫는다.

 

기괴하게 변이된 사나에의 그것과도 같다는 것을.

 

광신자들이 '기적을 받은 자' 라고 칭송하던 기괴한 것의 일종이란 것을.

 

 

 

섣불리 다리를 떼고 거리를 벌리려고 하다가는 아이는 고사하고 자신도 다치는것을 피할 수 없을 터.

 

 

 

" 아.....우.... "

 

 

 

뒤편의 것이 신음을 흘린다. 그와 동시에, 루미는 눈길의 끝이 가까스로 뒤편에 있는 것에 닿을 정도로만 고개를 돌린 뒤 멈췄다.

 

그리고 응시한것에, 루미는 눈을 크게 뜰 수 밖에 없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얼굴, 키타기리 사나에보다도 오래 알고있던 얼굴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뼛조각조차 찾을 수 없는 것이 그렇게 있을리가 없었다.

 

뭔가의 술수인가. 루미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 왕국의.....적.... 적.... "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흘린다. 왕국의 적? 그것은 자신을 뜻하는건지.. 아니면...

 

 

 

" 적은... 벤..... "

 

 

 

" .... !! "

 

 

 

 

 

 

 

공기를 가르는 소리. 그리고 멀어진 거리.

 

 

 

 

 

루미가 발을 떼는 것 보다, 뒤편의 정체불명이 휘두른 무언가가 더욱 빨랐다.

 

 

 

" ....다. " 말의 끝을 휘두르고나서 마무리짓는 것은, 선명한 붉은 눈동자를 끊임없이 떨며 와쿠이 루미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응시한다.

 

쳐다보는 시선에, 루미는 드물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것에 대해 자신이 아는 가장 정확한 명사로 부른다.

 

 

 

다시는 못 봤을... 아니, 차라리 이렇게 볼 것이라면, 다시는 못보는게 나았을....

 

 

 

 

 

 

 

 

 

" 아, 아이....리...? 그럴리가... "

 

 

 

그녀의 그리움과 절망감이 뒤섞인 목소리를 들은건지 아닌건지 초점없이 떨리는 붉은 눈동자는 핏자국으로부터 떠나 부들부들 떨린다.

 

입에서 나오는 말 역시, 그녀의 말에 반응하는 것은 아니게 들렸다.

 

 

 

 

 

" 와.. 와와왕...국...을... 지키...지....킨..... "

 

 

 

 

 

기괴한 것이 섞여 변조된것으로 들렸으나, 그 안에는 분명 루미가 들었던 아이리 본연의 목소리가 들어있었다.

 

기기괴괴한 뿌리가, 그녀의 자랑인 거검을 휘두르던 오른 팔에 엮여들어와 팔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고, 그 뿌리의 끝에 이어져 바닥에 닿은 커다랗고 힘줄돋은 날카로운 것은 거검의 칼날 역할을 대신하고있다는 듯 피를 듬뿍 머금은 채.

 

피부 색 역시 창백하게 변질되어,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또 그렇다고 하기에는 죽어있지도 않은 형용하기 어려운 괴물이 된 모습이다.

 

 

 

와쿠이 루미가 입술을 굳게 깨문다. 여지껏 깨어나서 오면서 봐온것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절친한 친구이자, 나라의 영웅으로서 역사책에 기록된 위인이 된 이를 이렇게 괴물로 만들어 눈뜨게 하다니.

 

이런일이 일어나선 안됬는데, 이런일이 벌어져서는 안됐다. 결코.

 

 

 

이러한 상황을 이끌어낸 광신자들의 위에 있을 누군가를 향한 분노.

 

그리고, 이런 괴물이 되어 대치하고 있는 자신과 아이리에 대한 상황에 대한 절망.

 

와쿠이 루미의 마음속에서 차가운 분노와 싸늘한 절망이 공존한다.

 

 

 

 

 

" 란...코... 란코... 어딨...어 ? "

 

 

 

란코, 분명 그녀가 아끼던 소녀의 이름이었다. 초점없는 눈이 흔들리며 부르짖는 모습이 애처롭기 짝이 없다. 그리고 곧이어서...

 

" 우...아아.....아아아 !! " 괴성이 울린다. 다른곳이 아닌 토토키 아이리의 모습을 한 그것이 내지르는 괴성이었다. 소리가 굵고 커질수록 본연의 여인으로서의 목소리는 옅어지고 괴물의 낮고 굵은 울음소리가 짙어져갔다.

 

동시에, 옛 전장에서 그녀의 등으로부터 느꼈던 가공할만한 살기가 솟구쳤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눈앞에 있는 괴물이 그녀의 친구 토토키 아이리 라는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 젠장... 대체 누가... ! 누가 이런짓을.. ! "

 

 

 

 

 

 

 

 

 

[ 알고싶어 ? 누가 이런 만행을 어떤 이유로 저지른건지. ]

 

 

 

 

 

분에 못이기는 루미의 화제가, 일순간 들려온 목소리로 돌아간다.

 

하지만 암만 주변을 둘러봐도, 아이리를 닮은 것과 자신, 그리고 끙끙거리며 의식을 못차리는 소녀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또 다시 소리가 들려온다.

 

 

 

[ 괴롭더라도, 우선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떨쳐내. 그리고 원래 가려고 했던 방향으로 가. ]

 

 

 

" 뭐 ? 무슨... "

 

 

 

[ 어서 ! 우선은 그곳에서 벗어나는게 급선무야. ]

 

 

 

 

 

" 루.....미..... "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가 한 말을 싹 다 잊어버릴 정도로 강렬한 한마디가, 아이리의 모습을 한 그것의 입으로부터 나온다.

 

괴물로서의 신음은 거의 들어있지 않은, 약간의 변조만 뒤섞인 목소리로.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초점없이 떨고있던 붉은 눈동자가.. 그 떨림을 일관하면서도 자기에게로 시선을 맞추려고 애쓰고 있는게 보인다.

 

피가 눌러붙은 날붙이 덩어리를 뒤로 물리며 그것은 그녀의 이름을 계속해서 번복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와쿠이 루미의 주의를 목소리로부터 돌리기에는 그만한 충격이 없었다.

 

머릿속에 울리는 들어본 적 없는 소리가 한 말을 모두 날려버린 한마디, 자기를 부르는 그 말에 루미가 입술을 떨었다.

 

 

 

걸음은 저도 모르게 점차, 가까워진다.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대로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

 

 

 

 

 

[ 안돼 ! 물러서 ! ]

 

 

 

강렬하게 경고하는 목소리와 거의 동시에, 묵직한 날이 서슴없이 허공을 갈랐다.

 

찰나의 순간에 뒤로 물러선 그녀의 배 언저리로부터 피가 가늘게 흘러나온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눈치챘다면 분명 안고있던 소녀와 함께 동강났으리라. 루미가 걸음을 더 벌리자, 육중한 뿌리덩어리 팔을 꿈틀거리며 그것이 걸음을 좁혀온다.

 

 

 

 

 

" 루우....미.... ? "

 

 

 

 

 

또다시 흔들린다.

 

괴물 사냥꾼으로서 가진 날카롭고 냉정한 이성의 자리에 싹트다가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의 씨앗이 꿈틀거린다.

 

방금 벌여졌던 일들은 눈앞에 있는 그것이 적이라고... 괴물이라고 인식하고있는데, 마음속 언저리에 그녀의 정은 그것이 친구라고.

 

함께했던 동료이자 절친이라고 여기며 떠나려는 발을 붙잡는다.

 

 

 

[ 친구를 잃은 비극, 나도 알 수 있어.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은 이 끔찍한 곳에서 나가야만 해. ]

 

 

 

" ....동정하는 척 하지 마. 네가 누군진 몰라도, 날 이해할 수는 없어. "

 

 

 

머리에 울리는 목소리에게 매몰하게 굴며 그녀는 입술을 꽉 문다. 목소리의 말이 듣기엔 좋지 않아도 분명 맞는 말이다.

 

혼자서 해낼 수 있는 것은 이곳에서 벗어나는 것 밖에 없다.

 

 

 

그녀는 발걸음을 뒤로 슬슬 물러서며,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으로부터 멀어진다.

 

본디 향하고자 했던 문을 등지고 뒷걸음치며 엉거주춤하게 선 그것에게 시선을 쏟아낸다.

 

 

 

" 미안하다... 아이리. "

 

 

 

 

 

 

 

" 루우...미....이... " 하염없이 웅얼이는 비통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 미안하다... ! "

 

 

 

차마 떼지못하던 입으로 작별을 고하고 그녀는 등돌려 문 쪽으로 박차고 나아간다. 순식간에 아이리를 닮은 것이 닫히는 문 너머로 흐려져간다.

 

닫히는 문과, 다시금 말라붙은 피의 누린내와 적막만이 감도는 공동 한가운데서 아이리의 모습을 한 그것은 허망한 어투로 속삭인다.

 

 

 

 

 

 

 

 

 

 

 

" 가지.....마..... "

 

 

 

 

 

 

 

 

 

.

 

.

 

.

 

다시금 길게 뻗어지는 길을 따라 루미는 달린다.

 

아까처럼 큰고 넓은 공동같은 곳은 아녔지만, 처음 눈 뜬 살점과 피가 덕지덕지 쌓여있던 방과 이어진 좁디좁았던 길에 비해서는 훨씬 넓었다.

품안에 안겨있는 소녀를 놓치지 않기위해 꾹 끌어안은 채 그녀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나아간다.

 

 

 

[ 어이 ! 멈춰 ! ]

 

 

 

" .... "

 

 

 

[ 잠깐,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가면 안돼 ! ]

 

 

 

" ..... "

 

 

 

[ 내 말을 들어줘 ! 진짜야 !! 그곳으로 가면 돌이킬 수 없어... ! ]

 

 

 

루미가 목소리의 다급함에 뭔가 느낀건지 우뚝 선다. 바람과 함께, 찌는듯한 땀 냄새가 풍겨온다.

 

이내에 머리에 자꾸 말하는이가 말하는 위험이 뭔지 인지한다.

 

무리지은 인간들이 밀착하며 나오는 짠내음.

 

 

 

하기사 보통의 경우도 출구로 나가려는 걸 막을테니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다만, 루미는 아이리를 닮은 그것과 조우한 이후로 머리 한켠이 멍 한채로 판단력이 흐려져있었기에 머릿속에 걸어오는 목소리와 짠내음을 통해 그제서야 다시금 깨달은 것이다.

 

 

 

" ..... "

 

 

 

루미가 멈춰선것을 안건지,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 후우, 그쪽에서 물소리가 강한 쪽... 정확히는 왼... ]

 

 

 

" 왼쪽하고 약간 뒤편에서 물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가는게 확실한가 ? 

 

 

 

[ 그러니까 ! 함정에 빠트리려면 진작 그랬다구... ! 제발 내 말을 믿어줘 ! ]

 

 

 

의심의 눈초리를 버리지 않는 루미를 열심히 설득하며 쩔쩔매는 목소리.

 

 

 

 

 

" .... 어느정도는 믿으니까 의심하는거다. 처음부터 믿음이 안갔다면 네 말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어. "

 

 

 

[ 그거 참 위로가 되네. ]

 

 

 

의심하고 있긴 하지만, 목소리가 전해준 대로 움직이는 것은 꽤 유용했다. 실제로, 목소리의 말에 따라 간 경로에선 절묘하게 광인들이 몰려있는 구간을 피해서 움직이고 있었고 이성을 잃은 광신도들은 꽁무니를 쫓을 뿐 앞을 가로막은 적은 거의 없다.

 

 

 

 

 

어느정도 이야기를 끝맺고 난 뒤, 그녀의 발걸음은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과 멀어져간다.

 

그녀는 발을 돌리면서도 순간적으로 땀의 비린내가 가까워짐을 느낀다. 저쪽에서 이곳으로 좁혀오고 있다.

 

 

 

뒤에 따라붙는 그 숫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었기에 마냥 일관된 순탄로는 아니었음이라.

 

 

 

" 결국에 이렇게 되는건가.. "

 

 

 

[ 거기서 바로 옆 ! 좌측 ! ]

 

 

 

물 흐르는 소리가 무엇보다도 확연하게 들렸다.

 

정확히는 무언가 흐르는 소리긴 했지만, 물과는 다른 무언가가.

 

 

 

들어가는 방에는 [방류장] 이라고 떡하니 표지가 붙어 있었다.

 

 

 

' 방류장이라니... 설마... ' 혹여하는 마음을 품고 문을 열어젖히는 와쿠이 루미의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은, 어느정도는 예상했지만 보고도 믿기지 않는다.

 

보고도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깊고 넓게 파인 수로를 따라 시뻘건 액체가 콸콸 흘러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흐르는 액체서 코를 찌르는 강렬한 쇳내음이 끊이질 않으니 후각이 마비될 지경에 이를 수준.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수로 주변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뼈와 살이 뒤섞여 썩어들어가고 있는 더미들에는 파리들이 실시간으로 수를 불리며 들끓는 중이었다.

 

 

 

그 누가 이러한 광경이 존재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누가 이런 끔찍한 지옥도를 만들었단 말인가.

 

 

 

끔찍하고 역겹기 짝이없는 광경에 굳어버린 루미를 재촉하며, 목소리는 그녀의 심리상태에 한술 더 떠 기름을 붓는다.

 

 

 

[ 수로로 뛰어내려 ! ]

 

 

 

" 뭐 ? "

 

 

 

당연하게 의문문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어느 누가 미쳤다고 피가 강처럼 급류가 되어 흐르는 수로로 뛰어내리고 싶어하겠는가. 심지어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데다가 그녀는 소녀마저 안고있다.

 

이 때 만큼은 소녀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것이 다행이라고 루미는 생각했다.

 

 

 

[ 아까 녀석들이 진치고 있던 출구쪽을 제외하면 그곳이 유일하게 바깥으로 향하는 곳이야. ]

 

 

 

" 큭.... "

 

 

 

[ 어서 ! 곧 놈들이 들이닥칠거야 ! ]

 

 

 

루미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짧게 고개를 끄덕인다. 이윽고, 허리춤에서 약병 하나를 꺼내더니 소녀의 입을 반쯤 벌리고 그 안으로 내용물을 털어넣었다.

 

 

 

" 부디, 효과가 떨어지기 전에 탈출 할 수 있길. "

 

 

 

루미가 입을 꾹 다물고 숨을 가득 들이신 뒤 꾹 참는다.

 

벌써부터 물소리에 비견될 만큼 무리지은 발걸음이 크게 들리기 시작하니, 그녀는 소녀를 꽉 끌어안은 채 수로를 따라 흐르는 피의 강에 몸을 던진다.

 

철펑 철펑

 

 

 

물소리도 아니고 진흙소리도 아닌 끈적이는 빠지는 소리가 곧이어 피의 급 물살 속에 잠겨 빠르게 사라져갔다.

 

 

 

 

 

 

 

 

 

 

 

 

 

 

 

 

 

.

 

.

 

.

 

.

 

 

 

" .... ! "

 

 

 

저도 모르게 몸을 소스라치게 떨며 눈을 뜬다. 코끝에 찡한 쇳내음이 가시질 않는다. 분명 수로를 따라 휩쓸려가 한치 앞도 안보이는 피의 물살 속에서 흘러가던것이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안고있던 소녀는 온데간데 없이, 주변은 한없이 어둡고 조용하다. 만일 광신도나... 혹은 기타 불온한 무리에게 붙잡힌 상황이라면 절체절명이다.

 

 

 

상태 파악을 위해 몸을 일으키는 찰나 뭔가에 부딪힌다.

 

 

 

그리고 뭐에 부딪힌게 무엇인지 확인하려는 찰나, 맞은 편에 이마를 메만지는 사람의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 ? "

 

" 아야야야야... "

 

 

 

엄살내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있던 루미.

이마를 문지르는 팔 사이로 보이는 눈동자는.. 분명 피처럼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기에.

이내에, 그녀는 확신을 가지고 산양과 같은 뿔이 달려있는 그 여자의 어깨를 붙들고 한번 강하게 흔든다.

 

 

 

" 우와악?! 뭐, 뭐야? "

 

" 너로군. 내게 말을 걸었던게. "

 

 

믿기지 않는다는 태도는 커녕 날카롭고 차가워서 베일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방금 전까지 의식이 까마득했던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정도로 빠르고 묵직한 행동력에, 붙잡힌 상대는 얼떨떨하여 어쩔 줄 모른다.

뿔달린 쪽에서 뭔가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시도하기도 전에, 루미는 어깨에서 목덜미로 손을 옮겨잡은 뒤 바짝 끌어당겼다.

 

" 나랑 같이있던 아이는 어디갔지? 목적은 뭐야. 뭘 노리는거지? "

" 아..아이는 따로 쉬고 있어! 그니깐 이 멱좀 놓고.... "

" 날 속일 생각은 하지마라. "

 

한 마디. 한 문장이 끝날 때 마다 괴물 사냥꾼의 단련된 손아귀는 멱을 더 세게 쥐어온다.

' 대답해. ' 짧고 강렬한 압박서린 한마디에.. 잡혀있는 여자 대신 발걸음이 들린다. 뒤쪽이었다.

 

 

" 불쌍한 기사님, 기껏 구해준 사람한테 멱살잡히고 겁박당하는 신세라니. "

" 웃지말고 설명좀 해달라고..! " 

 

" ....! 이 목소리는. "

 

그 목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있다. 아니, 잊을 수 없는 빨려들어가는 목소리... 잊어버릴 리 없다.

루미는 허리띠에 날붙이가 없다는 걸 알고 조금 더 아래로 내려 가죽 연결부 안쪽에서 작은 칼날을 꺼내들며 뒤로 겨누었다.

하지만 칼날을 겨누던 들이밀던 별 다른 효과 없이, 들은 적 있는 목소리의 주인은 웃음을 흘릴 따름이었다.

이윽고, 루미는 그 목소리의 주인인 이름을 부른다.

 

" 타카가키 카에데.. "

" 오랜만이군요. 괴물 사냥꾼씨. "

 

" 지금 인사할때야?! " 멱살잡혀있던 소녀가 서러움이 부르짖었다.

 

잠시 후.

일련의 설명을 전해들은 와쿠이 루미는 소지품을 부스럭거리며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러니까, 당신네 둘이서 '별' 이라고 알려진 존재를 숭상하는 광신자들의 음모에 맞서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건가? 불법적으로. "

 

루미의 말은 한마디가 길었다.

 

" 불법?! 아니거든?! "

" 기사자리도 박탈당하고 탈옥까지 한 신분이면서 법에 의거한다는게 더 이상하지 않나. "

" 일리가 있네요. 후후후.. "

" 당신이 그런데 맞장구 치지 마! "

 

여인의 말대로, 타카가키 카에데는 왕국을 전복하려고 한 대역죄인이었기에, 딱히 틀린말은 아녔다.

" 이제 인정하도록 해요 나오 양. 우리는 범죄자랍니다? "

" 아 - 아 - ! 안들려어 ! "

 

' ... 어린애 같군. '

루미는 위와같이 중얼이며 한숨을 내쉰다. 기사 출신이라는 것도 의심이 갈 지경이다.

그녀가 만나왔던 사람들 중에 기사도이 출중한 사람들은 무척이나 많았기에, 그녀와 같은 계열의 사람들은 기사로서는 뭔가 부족해 보이는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것들 보다도 루미에게 있어서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 아까부터 물어보려 했던 거다만, 여기는 도대체 어디지? "

 

조금 뜸을 들이다가, 질문자의 진중한 눈빛을 마주보고서 나오가 떨리는 목소리로 꺼넨다.

 

" 왕국의 북동쪽으로 있는 카흐타와의 국경지대야. 여기는 물살이 급한 곳과 맞물린 자리라 사람들이 잘 안다니는 곳이고. "

 

의식하고 있지 않았지만 주의를 기울이니 과연 물소리가 났다.

카흐타라면 분명 규모가 작고 유목이 주를 이루는 소국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가 풋내기일 적에는 적어도 그랬다.

 

" 카흐타라.. 그러면, 내가 탈출한 장소도 이곳 어귀에 있는건가? "

"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당신에게 닿긴 했는데 어디 지점에서 닿았었는진 알 수가 없던지라.. "

" 그렇군... "

 

한적하고 물소리 뿐인 이런곳이 있다보니 그녀가 끌려갔었던 모든것이 한 순간의 악몽처럼 느껴졌다. 산과 들을 가득 메꿀 정도로 꾸역꾸역 들어차있던 인간의 피와 살점들. 말 그대로 시체의 산과 피와 강이라 해도 좋을 끔찍한 광경들 뿐이었다.

분명 지옥의 악마들이 존재한다면 그곳에서 주지육림을 누릴것은 틀임이 없으리라. 루미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리고 그 역겨운 풍경 중에서도 뇌리에 박혀 떠나갈 생각을 않던 것.

 

" 아이리.... "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흘리고 말자, 나오는 뭔가 알겠던건지 흠칫하더니 이내에 함께 침울해진다.

얼굴을 가리던 두 손바닥을 내리고서 루미는 느즈막하게 물었다.

 

" 읽은거냐.. 내, 기억. "

" .... 미안. "

 

카미야 나오의 눈에도 모든게 보였다. 와쿠이 루미가 살았둔 시대의 삶과 고통.. 그리고 슬픔. 모든것이 들어오는 과정에서 당연스럽게도 토토키 아이리의 죽음과 암살자로 몰려 쫓기게 된 기억도 읽었다.

 

" 위로 할 생각은 하지 마라. 그정도로 난 약하지 않으니까. "

 

끓고있는 나물 죽에서 한 숟갈을 건져 입에 쑤셔넣고선 도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 자, 이제 말해줘야겠어. 왜 날 구한거지? "

 

 

또다시 기나긴 침묵.. 그러나 이것은 아까의 것과는 다른 무거움이 있다고 그녀는 직감한다.

어벙벙하던 나오 역시 표정이 한층 진중해져 있기에 더더욱 눈치채기 쉬웠다.

그렇게 조금 더 있다가, 침을 꾹 삼킨 뒤 나오는 입을 연다. 모든것에 대해.

 

" 별의 계획을.. 앞으로 일어날 참변들을 막기 위해서야. 여태까지 일어났던 마을 하나 두개의 참사에는 비할 바도 못되는 거대한 재앙을 막기위해... "

 

" 거대한 재앙이라.. "

 

" 당신도 괴물사냥꾼인 만큼 소식발에는 밝겠지. 각지에서 광인들이 날뛰고, 서쪽으로부터 수수께끼의 역병이 퍼지고 있단 거 즈음은. 그치만 우리가 막으려 하는것은 나라와 나라를 넘어, 이 땅 전체가 위험에 빠질만한 거야. "

 

나오의 설명에 루미는 힐끗 뒤편을 바라본다. 시선의 끝에는 침낭에 감싸인 채 작은 숨응 내쉬며 잠들어있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 나는.. 왕국의 기사였을 적에 광인 중 하나의 기억을 읽은 적이 있었어. 꽤 높은 영주던 사람이었지. 뭔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손을 댄게 잘못이었지. 별은 내가 뻗은 흔적을 따라 나를 들여다보았고, 내 머릿속에는 그것이 암시해주는 끔찍한 예정과 공포에 사로잡혀버렸어. "

 

" 광인들 하나하나에 들어가 있다는건가. 별나면서도 기분나쁘군. "

" 아무튼, 그러다가 당시에 내가 기억을 들여다 보기 위해 공문서를 위조했던게 발목을 잡았던지라 그대로 감옥으로 끌려가서... "

" 저랑 이웃사촌으로 지내게 되었답니다~ 다행이군 다행이야~ "

" 아앗! 사람이 기껏 진지하게 이야기중인데 !! "

 

" 결국엔 불법이란거군. " 루미는 고기를 까딱이다 응사했다.

" 으윽... " 

나오는 할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다물고 부들거리다가.. 어느정도 분위기가 가라앉자 다시한번 심기일전한다.

 

" 뭐 그렇게 나는 여기 타카가키 카에데의 도움을 받아 공포를 극복하는 법을 배우고, 별의 환상 너머에 있는 기억의 조각 비슷한 것이 있다는 걸 알게됬어. 내가 본 기억의 조각은.. 문장으로 설명하면 이런 거였어. "

 

말하던 중 나오가 손을 바삐 움직여 바닥에 흙을 따라 쐐기문자 비슷한것을 휘갈기기 시작한다.

갈겨쓴 문자를 보고.. 루미는 그녀와 글씨를 번갈아보다가 물음을 던졌다.

 

" 어떻게 네가 이 문자를 알지? 이건 엘프들이 쓰던 글자인데.. "

" 그러니깐 거짓말이 아니라구 했잖아? 자.. 뜻을 풀이하면.. "

 

[ 위로는 치솟은 나락이, 심연에서 솟구치는 빛이.. 넓은 바다를 두고 푸른 새 없이, 결국에 하늘과 땅이 감싸일 것이다. ]

 

루미의 입에서 들어본 적 없는 발음이 튀어나온다.

나오는 곧 그것이 방금 언급됬던 엘프어임을 깨닫는다.

 

" 치솟은 나락..솟구치는 빛. 뭔가 두 단어의 묘사가 본래 뜻과는 반대로 되어있군. 무엇을 암시하는건지 짐작가는게 있나? "

 

루미의 질문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여는 나오.

 

" 어둠은 '별' 그리고 빛은... 아마도 지금 있는 우즈키를 뜻하는 거야. 북쪽의 재앙은 분명히... "

 

" 카와시마령 인가. 그곳에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있긴 하지.  그리고 푸른 새...이건?"

 

 

푸른 새라는 단어를 지목하자 나오가 어조를 높인다.

" 이게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었던 거야 ! 괴물 사냥꾼씨. "

" 뭐지? "

" 함께 시부야 린을 ... 린짱을 찾아줘. 바다 건너 남쪽의 운명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어. 우리도 어서 움직이지 않으면 안돼. "

" 남쪽...? 설마 '그곳'인가."

"...맞아. 당신이 짐작한대로 대양을 넘어 남쪽에 있는 5대 사경 중 한 곳인 [묘역]. 그곳이야. "

 

 

 

 

- 다음 장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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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긋지긋한 주지육림편도 드디어 끝났습니다 야호!

그런데 떡밥이 더 늘어버렸다....

광신도들의 숨은 본거지 중 한곳인 '제물의 전당'의 단면을 보여주고, 본격적인 재앙막이가 시작되는 제 11장 이었습니다.

제물의 전당은 후일 다시한번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여러분도 어느정도 아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편으론 우즈키 일행의 고난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왔는데요.

안심하십쇼. 우즈키는 생각보다 구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른 친구들은? 글쎄요.)

이 탈도 많았던 장장 3달짜리 한 장.....정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지육림을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것은 바로 사회 톱니바퀴의 고통인 야근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9월부턴 일이 여유가 생긴다 하니, 그 때부턴 적어도 7주일에 하나씩은 쓸 수있도록 페이스를 돌려놔야겠지요.

 

자 그럼, 후기는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봐주신 분들 항상 감사드립니다 !!

 

그러면 다음 장에서 뵙도록 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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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데렐라 판타지 설정, 프로젝트 참여 관련 질문 대환영입니다 ! 쪽찌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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