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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드백] 화이트 나이트 외전 - 고해告解 : 아나스타샤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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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9, 2017 23:02에 작성됨.

 “여보세요? 시키냥?”

 “여기는 시키냥. 마침 전화하려고 했는데 미오가 먼저 걸었네.”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 어떻게 됐어? 겨울P는?”

 “좌표입력 완료. 다만 우주선 수리가 끝나지 않아서 잘 날아갈지는 모르겠네. 남은 건 운에 맡길 수밖에.”

 “무슨 소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닌 가보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성과는 있었으니까.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겐 작은 발걸음이지만, 아이돌 업계에는 커다란 도약이 될 거야.”

 “아니, 아니. 시키냥이 그렇게 말하니까 오히려 더 걱정되는데. 진짜 잘한 거 맞아?”

 “물론이지. 백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줬는걸.”

 “시키냥이 선물을 줘서 어쩌자는 거야.”

 “미오는 아무것도 안 줬어? 그럼 안 되지. 아무리 프로듀서가 미워도 우리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으윽. 정론으로 말하니까 왠지 찔리네. 그렇지만 미워하는 건 아니야. 오히려 고마우니까 이렇게까지 하는…….”

 “아, 잠깐만. 백야가 자기 없어도 일 잘 하라고 전해달래.”

 “뭐? 지금 겨울P랑 있어?”

 “당연하지. 같이 이동했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당당히 말하면 어떡해!”

 “괜찮아. 말 안 해도 우리가 뭘 꾸미는지 전부 알 텐데, 뭐.”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

 

 프로듀서로서 존경해 마지않는 선배가 말하기를 ‘아이돌들은 현대판으로 각색된 신데렐라와 같다.’ 그 전까지 평범하게 살아오던 소녀들을 무대라는 성으로 데려가 반짝이는 별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절대 우리가 모든 것을 쥐어줘서는 안 된다는 것. 마법은 계기일 뿐, 스스로 이루지 못 하면 아무 의미 없으니까.

 그 이야기대로라면 내 역할은 마법사보다는 마부나 시종이 아닐까 싶었지만, 누군가는 거창하게 ‘기사’라는 호칭을 붙여주었다. 폭설을 뚫고 신데렐라들을 성으로 안내하는 사람. 지나온 길에 시체들을, 어두운 밤을 재앙 같은 눈으로 덮어버리는 하얀 기사.

 크리스마스로 들뜬 거리를 걸으며 나는 의문에 잠겼다. 신데렐라들을 바래다준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을 내기 위해 레스토랑의 문을 열었다.

 ‘아냐가 여기서 기다려’라며 미오가 알려준 곳이었다. 장식용 벽난로가 시기와 맞물려 괜찮은 분위기를 이루었다. 안에는 가족과 연인들이 가득했고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중에 한 커플이 수군거리는 것이 거슬려 곧장 멈춰 세웠다. 오프 중입니다, 참아주십시오. 순간 조용해졌던 남자가 불쾌함을 드러냈다. 뭐야, 뭔 상관인데? 도전적으로 소리치자 여자가 말리려 했지만, 그 전에 내가 먼저 이를 드러냈다. 체면 차려줄 때.

 “그쪽도 팬으로서 예의를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굳어버린 남자를 뒤로하고 자리에 앉았다.

 아나스타샤가 미소로 반겨주었다.

 “오래 기다렸어?”

 “방금 막 왔어요.”

 “내가 안 왔으면 어쩌려고.”

 “올 줄 알았어요.”

 프로듀서라면, 분명. 고개를 숙여 모자챙으로 앞을 가렸다. 정면으로 쳐다보기엔 너무나도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태였다. 바라보는 것만으로 새로운 죄악감이 생겨날 만큼.

 그 전에 이미 있는 죄악부터 내려놓아야 했다.

 “아나스타샤. 정말로…….”

 “미안해 할 필요 없어요.”‘

 부드럽게 말을 끊었다. 자신이 나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졌음을 아는 것처럼 여유로운 태도였다.

 “Большое Спасибо. 저는 프로듀서에게 정말로 고마워요. 말이 안 통해도, 아무 말도 안 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도 저를 알아줘서. 저를 별의 세계로 데려다줘서. 하지만 저는 프로듀서에 대해 알지 못 했어요. 그래서 곤란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우리의 관계, 이렇게 단 둘이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되겠죠. 제가 어떤 생각, 어떤 감정으로 만나고 싶어 했는지 알고 있으니까, 프로듀서는 저를 멀리했어요.”

 부서진 자괴가 파편처럼 심장을 찔렀다.

 아니야. 그건 너 때문이 아니야.

 “뒤늦게 알았지만 그래도 프로듀서를 만나고 싶었어요. 프로듀서를 더 알고 싶어요. 그 때처럼.”

 아나스타샤의 음색이 데뷔 날 밤과 같았다. 방송관계자를 때려눕히고 스스로를 비난하며 돌아온 나를 아나스타샤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함께 축하하고 싶었다면서.

 나는 정말로 변한 게 없어. 그 때나 지금이나 너를 상처 입히고, 너에게서 나를 숨기고 있어. 그런데도 너는 나에게 다가와. 여전히 너의 우주 안으로 나를 끌어들여.

 아나스타샤가 모자를 벗겼다. 그늘 아래에서 증폭하던 절망이 별빛을 받아 사그라졌다.

 “우리 서로 미안해하지 말아요. 크리스마스니까. 오늘만은 프로듀서랑 같이, Счастье. 행복하고 싶어요. 프로듀서도 그래줄 거죠?”

 크리스마스 선물을 드리려고요. 클라리스가 환청으로 속삭였다. 가장 고마운 사람에게 보답하고 오세요.

 전부 알고 있던 것일까.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놀아나고 있는 걸까.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미오도 시키도 치히로와 클라리스, 선배, 심지어 신까지도 모두 아나스타샤를 위해 움직이는 기분.

 흥을 깨서는 안 되겠지.

 나는 고개를 들었다. 모두에게 감사해야만 돼. 그 전에 지금은 나의 별에게 충실하자. 나는 옅은 웃음으로 답했다.

 “고마워. 이런 자리를 마련해줘서.”

 “저도요. 프로듀서.”

 

 메뉴는 아나스타샤가 주문했다. 사전에 가게를 알아뒀는지 익숙하게 메뉴를 추천해줬다. 지은 죄가 있어 순순히 따르려 했는데 살짝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술 주문해도 돼.”

 “하지만, 프로듀서는 마시지 않잖아요.”

 “와인 정도는 괜찮아.”

 나는 평소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몸을 망치다 자멸하는 놈들을 많이 봤고, 체질에도 안 맞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어울리기로 한 이상 철저히 어울리기로 했다.

 그보다, 나는 새삼스럽게 이 애가 이젠 성인이라는 사실이 와 닿았다. 몸만 큰 것이 아니라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것도.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남을 배려하는 것에도 능숙했다.

 나 같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해. 속으로 감탄하며 나이프를 움직였다.

 와인 잔을 들었더니 아나스타샤의 긴장된 시선이 따라왔다. 아직 앳된 티가 남아있군. 은근히 안심하며 보란 듯이 붉은 액체를 넘겼다. 익숙하지 않은 맛이 혀를 적셨지만 도수가 낮은 덕에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안심하고 잔을 드는 아나스타샤를 보니 마음이 편했다.

 “지금 나오는 노래, 미오가 부른 거예요.”

 “뉴제너랑 유이, 하루나하고 불렀지. 겨울에 어울리는 좋은 곡이야.”

 “특히 크리스마스에요. 무대의상도 산타 같고.”

 그러고 보니 프로듀서는 산타 믿었죠? 웃음기 머금은 어조에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산타는 있어, 내가 봤어.

 “어땠나요? 산타는.”

 “어릴 때 만났지. 나보다 어린 여자애였어. 그 날 눈이 많이 와서인지 새하얗고 긴 머리가 아름다웠어.”

 “저도 머리 기르고 있어요.”

 “알고 있어. 너는 어떤 모습을 해도 아름다워.”

 “프로듀서는 정말로 치사한 사람이네요.”

 대화를 나누는 동안 무궁무진한 반응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기분 좋은 미소와 추궁하는 눈빛, 정말 단순함에도 이상하게 육감적으로 보이는 몸짓.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한 검은 니트웨어와 흔들리는 귀걸이, 반짝이는 머릿결.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놓치기 싫어 감각을 동원해 순간을 기록했다. 지금 이 시간이 우리 둘만을 위해 기능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고 싶어 나는 망상에 몸을 맡겼다. 거슬리는 난방에서 벗어나 아나스타샤의 겨울 속으로 들어갔다. 눈보라 치는 밤의 정경. 그곳에선 신데렐라를 바래다 준 기사가 홀로 충동을 견디고 있었다.

 이젠 그럴 필요 없어. 기사가 걸음을 옮겼다. 조금 더 솔직하게 굴어도 돼. 긴 계단을 올라 성 안으로 들어갔다. 기사의 발소리에 맞춰 나는 입술을 벌렸다. 목이 소리를 자아내고 혀가 다듬어 형태를 부여했다.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본심을 드러냈다.

 어떤 더러운 것들이라도 받아낼 거야. 붉은 핏방울, 잿더미 같은 어둠까지도. 그곳이 어디더라도 네가 가고 싶어 한다면 데려다줄게. 무대든 성이든 우주든. 하지만 왕자 행세를 하면서 너에게 접근하는 놈들은 전부 박살내버릴 거야.

 거기까지. 빚어낸 말들이 나오지 못 하게 입을 틀어막았다. 음식을 우겨넣고 와인과 함께 삼켰다. 하여간에 정도껏 할 줄을 모르는군. 자책하는 나의 손 위로 아나스타샤의 손이 겹쳤다.

 사고가 정지했다. 이성의 스위치가 내려가고 본능만이 상황을 파악하는 상태. 간신히 손가락을 꿈틀거리자 명령이 떨어졌다. 이대로 있어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움직인 게 맞는지도 모른 채 손 안에 녹아드는 온기를 느꼈다.

 

 *

 

 직감이 경고를 울렸다.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시야에 수많은 불빛이 겹치고 다리가 비틀거렸다. 상승한 체온이 빠져나가지 못한 채 혈관을 순환했다. 걸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아나스타샤 덕분이었다. 부축을 위해 가까이 붙어준 덕에 한기가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거친 숨을 쉴 때마다 서로의 입김이 하얗게 마주했다.

 괜찮아요, 프로듀서? 아나스타샤가 상태를 물어왔다. 괜히 저 때문에……. 침울한 자책을 제지했다.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잖아.

 잠시 멈춰서 중심을 바로잡았다. 맙소사, 겨우 세 잔이었는데. 치명적인 취기가 심장을 찔렀다.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후회했다. 하루 종일 꼴사나운 모습만 보이고 있다니. 한 가지 위안이라면 기록을 갱신했다는 것 정도. 전에는 한 잔이 한계였는데.

 위안은 개뿔. 구두 굽이 보도를 긁었다. 차가운 공기를 폐 속 가득 담자 조금은 나아졌다. 장갑을 벗고 코트 단추를 풀었다. 필사적으로 체온을 진정시켰다.

 “옛날부터 크리스마스가 좋았어. 선물을 받은 적은 별로 없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들떴거든. 아마 로망이 있던 게 아닐까 싶어.”

 “저도요. 크리스마스는 성탄절聖誕節이니까, 별이 연상됐어요.”

 “지금은 별이 없지만.”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달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짙고 무시무시했다. 설령 구름이 없다 해도 도시에서는 별을 보기 힘들지만. 그런 무드 없는 생각을 하는데 아나스타샤가 무언가를 가리켰다.

 아. 나는 짧게 소리 냈다.

 빌딩 숲 사이에서 광채를 발하는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 트리 꼭대기에도 트리를 감싼 장식에도 별이 반짝거렸다. 원래 하늘에 있어야 할 것들을 잠시 빌려온 모양새였다.

 아나스타샤가 로맨틱한 음색을 냈다. 우리 소원 빌어요.

 소원. 소원이라. 눈을 감고 미약한 두통을 억눌렀다. 어떤 소원을 빌까. 고민하다 적당한 것을 떠올렸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입 밖으로 내려는 순간 아나스타샤가 손을 잡았다.

 또 다시 사고가 정지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겨울이 닿았는데 어째서 따뜻한 거지. 취기 때문인가. 감각과 실제가 따로 노는 와중에 직감이 말했다. 어이, 괜찮아? 살갗으로 스며든 온기가 마그마처럼 몸 안을 흘렀다. 녹아내리고 있다고.

 대체 무엇이?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혼란스러웠다. 마비된 이성이 직감과 언쟁을 벌였다.

 도망쳐야 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도망쳐야 해, 뭔가, 뭔가 위험하다고. 뭐가 위험한 줄이나 알아? 네가 말했잖아, 녹아내리고 있다고, 너는 틀린 적이 없어, 그러니까 지금 난 위험해. 도망치면 안 돼, 저 애를 또 실망시킬 셈이야? 너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으냐고. 더워, 아나스타샤에게서 온기가 느껴져, 이러면 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어. 진정해, 진정하고 네 상태를 파악해, 너 지금…….

 “프로듀서, 울고 있어요?”

 얼음이 녹아내렸다.

 내 마음속에서 눈 내리는 혹한이 녹고 있었다. 빙하가 무너지고 크레바스가 벌어지자 감춰져 있던 것들이 드러났다. 시체, 묻어버렸지만 잊지 않은 과거.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서 얼어있던 감정이 되살아났다.

 수습해야 돼. 이대로 드러내서는 안 돼. 내가 감정을 나타내면 위협하게 되니까. 나는 쓰레기야. 너의, 너희들의 옆에 있어서는 안 되는 놈이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게 되면 나를 싫어하게 될 거야.

 벗어나려는 순간, 손 안의 온기가 뚜렷해졌다. 아나스타샤가 나를 놓지 않으려고 꼭 잡고 있었다. 의지할 수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모든 감각이 제자리를 되찾았다. 떠나는 게 두려워서, 그래도 곁에 있고 싶어서 어중간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이젠 전부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을 죽였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고 있었다. 5년 전부터 지금까지, 쭉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신기하게도 나는 나의 죄를 고백할 수 있었다. ‘너를 위해’라는 핑계로 내가 무슨 짓을 해왔는지. 어째서 너를 피했는지. 나의 과거, 성장 배경까지 전부.

 격앙되어가는 스스로의 목소리엔 일말의 거짓도 담겨있지 않았다. 정말 편안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듣는 아나스타샤의 눈이 유난히 깊었다. 청명하고 아름다워서 혹시 내가 현혹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마법에 걸린 것처럼.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마법 따위가 아니라 구원이었다.

 “프로듀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았어요.”

 “속여서 미안해. 이런 사실을 알게 만든 것도. 전부 다.”

 “오늘은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으면서.”

 “하지만…….”

 충격적인 발언이 뒤따랐다. 프로듀서의 과거, 알고 있었어요.

 “일주일 전에, 시키에게 들었어요. 미오도 같이. 정말 놀랐어요. 프로듀서와 떨어져 있는 동안 많이 고뇌했어요. 시키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고 했지만 우리 모두 같은 생각이었고요. 저는 프로듀서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만약 우리가 위험하지 않았다면, 상대가 약한 사람이었다면 프로듀서는 폭력을 쓰지 않았을 거예요. 프로듀서에게 직접 들은 덕분에 확신했어요.”

 프로듀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어요. 손 안의 온기가 더욱 강해졌다. 이젠 저도 프로듀서를 알아요.

 하나씩 거부할 수 없는 확인이 이어졌다.

 “울고 있지만 슬프지 않은 거죠?”

 “맞아.”

 “이젠 더 이상 괴롭지 않은 거죠?”

 “맞아.”

 “무서웠던 거죠?”

 “내가 너를 망칠까봐.”

 “저를…….”

 “너를 좋아해.”

 입을 여는 순간 시야에 하얀 눈이 스쳤다. 망상이나 직감이 만든 환상이 아닌 정말로 차갑고 포근한 눈이었다.

 거세진 눈발이 트리의 빛을 받아 반짝였다. 세상이 점차 하얗게 물들어가고 계절은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겨울이었다. 이대로 서늘함이 영원하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더 이상 봄과 여름이 두렵지 않았다.

 오늘 밤은 백야야.

 직감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주 긴긴 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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