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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죽지 않은 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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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9, 2017 04:13에 작성됨.

사실은 지로 캐해석을 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1인칭 쓰기엔 정보가 부족하고 대사도 너무 짧아.. 서 그냥 멋대로 캐해석 해버렸습니다. 개인적으로 1인칭을 좋아하그등요 ㅎㅎㅎ 캐붕이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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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모든 게 물거품이다. 거리는 비에 젖어 있다. 아스팔트에 가로막힌 비들이 검붉은 도로를 타고 하수구에 빠진다. 갈 곳을 잃은 듯 내리는 비는 너무 적다. 피를 씻기기엔 역부족이다.

 

앞으로 수천 년 동안 비가 내려도 피는 씻겨지지 않을 것이었다.

 

*

 

내가 너무 무관심했나? 텔레비전을 봐. 사람들이 소리치는 모습을 본다. 아주 멀고 아득하다. 요즈음 들어 피를 토하는 사람이 많기는 했다. 하지만 결핵일 줄 알았지. 무시무시한 바이러스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뉴스를 안 본 건 내 잘못이 아니야. 요즘 세상 돌아가는 얘길 누가 알고 싶어 한단 말이야? 적어도 나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아니니까.

 

이럴 거면 발버둥치질 말 걸 그랬다. 누군가 인생의 목표가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는 돈을 쫓았다. 그리고 지금 세상은 돈을 연료로 쓴다. 쇳덩어리는 그냥 길바닥에 집어던지지. 내 알 바 아니니까. 너무 추워서 가지고 있던 돈을 다 태워 버렸을 땐…… 내 인생이 곧 끝날 것임을 직감했다. 화학이라는 학문에선 시체와 싸우는 데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혼자 살아가는 것은 익숙하지만,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 젠장. 너무 감성적이잖아. 나 왜 이래?

 


아무래도 배고파서, 배고파서 그런가 보다. 어젯밤엔 슈퍼를 털었다. 이젠 익숙하다. 유리 부수고, 마구잡이로 쓸어담고, 시체가 오기 전에 나가기. 상한 것-버리기. 아직 그 정도의 존엄성은 남았으니까. 이틀 동안 못 잔 것 빼고는 다 괜찮아. 아무데나 누워서 자고 싶지만 그랬다간 뜯어먹힐 게 분명했다. 봐둔 건물이 있었는데, 망할 생존자 그룹 어쩌고의 기지가 되고 말았다.

 

당신은 못 들어와.

누가 들여보내 달라고 했나?

 

그 사람들은 나를 구타하거나 가진 것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아마 혼자서 돌아다니다간 곧 죽을 거라는 동정심이 있었겠지. 인간으로서의존엄성 뭐 그런 거? 나한테도 아주 조금 남은, 그런 거? 사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돌아다니면 언젠간 죽지 않겠어? 하지만 처음으로, 시체를 또 다시 시체로 만들었을 때 생각했다. 나는 편히 죽고싶다는 바람 때문에 질긴 삶을 살고 말겠구나.

 

하지만 이젠 정말로 자야겠어. 이러다간 미칠걸. 큰 길로 나가면 안 된다. 거긴 힘 빠진 자세로 걷는 시체보다 사람이 더 위험한 곳이다.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들어가면, 지하로 내려가면 체육관 창고로 쓰던 곳이 있다. 매트리스가 쌓여 있고 문도 잠글 수 있지. 전번에 버너도 하나 가져다 놨다. 그런데 지금 뭘 데워먹거나 할 기분은 아니라서, 그래놀라 바를 하나 먹는다. 퉷. 생존정신 따위가 입맛을 바꾸지는 않는군. 뱉은 것은 시늉일 뿐 전부 다 씹어 먹는다. 존엄성. 그거 진짜로 나한테 남은 것 맞나?


마트에서 통조림들을 잔뜩 가져왔는데, 아. 윗부분이 밋밋하다. 아래도. 따개가 안 붙어 있는 종류의 통조림? 그게 지금도 있단 말이야? 젠장. 지금이 몇 년인지 맞춰봐. 이 통조림 녀석아.

 

아무래도 그냥 자야겠다. 퀴퀴한 냄새가 확 풍겨오고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어떤 꿈을 꾸게 될까. 시체보다 더 무서운 기억을 보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렵다.


두렵다.


*

 

 

생존자 캠프에서의 삼일째. 심란하다. 얼마나 더 오래 버틸지 모르겠다. 어제만 해도 다섯명이 죽었다. 세 명은 시체에게, 두 명은 다른 캠프의 적에게서…… 보초를 설 때마다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어디서 시체가 나타날지 모르고, 사람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 전자보다 싫은 것은 후자다.

 

당신은 못 들어와요. 따위의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남은 사람 중 8할은 캠프에 가입한다. 나머지 1할은 혼자 돌아다니다가, 혹은 가족들끼리 살아보려 하다가 죽는다. 마지막 1할은 전번에 왔던 그 사람이다.

 

당신은 못 들어와.

누가 들여보내 달라고 했나?

 

처음 생긴 돌발상황에 총을 치켜들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최대한 엄하게 느껴지게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누가 들여보내 달라고 했나? 그 조롱의 목소리. 하지만 모욕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를 조롱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조롱하는 것 같은 어투다.
후즐근한 차림새의 남자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돌아선다.

 

너 표정이 왜 그래?

이상한 사람을 만났어요.

 

그러더니 교대하는 사람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아, 그 사람. 하고 튀어나왔다. 맘에 안 든다는 어투였고, 그걸로 끝이였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지만 그 문장이 가슴에 남았다. 아, 그 사람. 죽기를 바라지만 끈질기게 살아가는 사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 종이컵에 반쯤 찬 물을 들이켰다. 그 날 저녁 나가기로 결정했다. 이의를 제기하거나 나를 잡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무작정 걸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 그러니까 시체마저도 오지 않는 골목을 걷는다. 산 사람이 살았을 때에도 여긴 인적이 드물었다. 두 블럭 너머에 집이 있지만 가보지는 않았다. 밤이 내렸을 때, 이 이상 어두워지기 전에 쉼터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기나 갈까? 체육관 창고, 거기 매트리스가 있는데. 좀 퀴퀴한 냄새가 나기는 하겠다. 자물쇠로 잠겨 있으니까 안전하겠지. 공구를 가져와서 다행이다. 그리고… 제작년에 청소년 농구활동 어쩌고 해서 다행이다.

 

 

*

 

 

매트리스가 낡았으므로 편안한 잠은 아니었지만 시간을 보내는 데는 충분했다. 시간이 무한하게 느껴진다. 더 이상은 출근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먹고 자는 데에만 열중해야 한다. 먹으면 사는 거고 굶으면 죽는 거다. 재화는 의미를 잃었고 생존만이 중요하다.

 

나는 도태되고 있다. 하고 초코바를 우적. 조금 상한 것 같지만 다시 한번 쩝쩝. 이런 삶으로도 정말 괜찮은 건가? 이 곳은 작고 조용하지만 물자가 적다. 왠만한 음식점이나 건물은 다 털렸다. 좋은 점은 평화롭다는 거? 하, 시체한테도 멸시당하는 건가. 시골은.

 

위기감이 없는 게 곧 닥쳐올 위기의 전조증상이라는 사실을 느끼면서 과자 껍데기를 집어던졌다. 따개를 구해오거나 다른 통조림을 구해와야 한다. 그래서 한 발을 내딛는데, 툭. 하고 문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어? 왜 열려 있지?

 

…… 순간 얼음. 내가 통조림을 내려놓기도 전에 문이 스윽, 열린다.

 

당신은, 너는. 하고 상투적인 인삿말이 오간다. 캠프의 녀석? 왜 침대 놔두고 누추한 체육관에. 거기에 침대 없거든요, 그리고 저 캠프 나왔어요. 왜 나와? 당신을 보려고요. 나를 왜 봐? 궁금한 것도 많으시네요, 그야 이런 시골 캠프엔 미래가 없으니 그렇죠.

캠프의 미래랑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묻고 싶지만 녀석은 쓸대 없는 소리만 늘어놓을 것 같다.

 

캔따개 있어?

설마 없으세요?

 

하더니 배낭에서 캔따개를 내놓는다. 그걸 집으려고 하자 쏙 빼간다. 쳇.

 

왜 그래에.

같이 도시로 가겠다고 약속해요.

내가 왜…… 아, 너 미성년자.

맞아요. 혼자선 위험하잖아요.

안 가.

왜요?

그렇게까지 오래 살 예정이 없어.

 

하고 손에 쥐고 있던 캔 따개를 잽싸게 낚아챘다. 흠. 복숭아 향기가 좋다.

 

왜 복숭아 캔이에요? 스파게티도 있던데.

몰라, 영화에서 자주 그러지 않나… 포크 찾기도 귀찮고… 아무튼 이제 가 봐. 여기 아저씨 자리야.

나 도시 안 가요.

허. 맘대로 하세요.

이름이 뭐에요?

야마시타 지로.

 

이름을 들어도 말이 없다. 자기 이름은 안 알려 주겠다 이건가? 뭐 어때. 곧 헤어질 사이에. 이름을 듣고 스윽 나가버린다. 흠. 캔따개 있으니까 사흘 간은 먹을 걱정이 없다. 그런데 그 다음은? 도시로 가거나 여기에 남기. 그리고 나는 이미 후자를 택했다고 했다. 여기에 남기. 그런데 벌써부터 죽음이 두려워진다니 이게 웬일이야.

 

책을 한 권 꺼내 본다. 복잡한 말들이 담긴 복잡한 책. 무겁지만 유일하게 배낭에 남아 있는, 내 생전의 물건. 왜 가끔씩은 독이 독을 치료한다고 하잖는가. 나는 금방 문장 속으로 빠져든다. 온갖 혼란스러운 생각들은 검은 잉크에 눌려 흔적을 잃는다.

 

뭔가 끄는 소리가 들린다. 또 그 녀석이겠거니 하는데. 확실히 그 녀석이 맞긴 하다. 그런데 왼쪽 다리를 질질 끌고 있다. 슬쩍 보기에도 피가 흥건하다.

 

너 뭐야!

 

내가 윽박지르자 그 녀석이 눈을 감는다.

 

무서웠어요. 한번도 그걸 죽여본 적이 없어서…… 젠장, 너무 사람 같잖아요. 이게 어떻게 시체에요. 그냥 사람이랑 똑같은데…… 옷도 그대로고 눈도 깜빡이고 목소리도 내는데요. 힘 없이 다가와서 그냥 다친 사람인 줄 알았어요. 나한테 도와달라고 했다고요.

캠프로 돌아가.

안 받아줄 걸요. 나는 감염됐어요.

그런 건 같잖은 루머야. 확실치 않아.

사실이 아닌지도 확실치 않잖아요. 50퍼센트의 확률은 너무 커요. 안 받아줄 거에요.

난 의사가 아니야!

도시로 가요.

 

도시만 외쳐대는 녀석에 이번에는 내가 눈을 감는다. 도시로 가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믿는 거야? 지끈거리는 이마를 문지른다. 꼭 학생들 같잖아. 아니, 한창 학생일 나이다. 화학이 재미없다고 아우성치고 제일 싫은 게 갑자기 치는 쪽지시험일 나이. 젠장.

 

도시에 아는 친척이 있어요. 의사라구요…

그래, 가, 가자고. 일단 누워. 뭐로 좀 감싸야 할 것 아냐!


나는 편히 죽고싶다는 바람 때문에 질긴 삶을 살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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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지로라고 쓰면.. 아무도 안 볼 것 같았어요... 저 애는 걍 아무도 아니에요ㅎㅎㅎ 지로의 심경변화를 보여주기 위한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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