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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츠무기] 유리색 금붕어와 꽃창포 - 下(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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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16, 2017 16:00에 작성됨.

※ '[시라이시 츠무기] 나와 닮은 그 아이' 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1차 녹음 당일.

 

녹음실 안에 있던 츠무기는 녹음을 앞두고 목을 풀고 있었다.

긴장감 때문에 잠을 설친 모양이었는지, 목 상태를 점검하던 츠무기의 표정이 그리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후……."

 

컨디션이 안 좋다는 걸 깨달은 그녀는 목을 풀다 말고 한숨을 쉬고는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시선은 작곡가와 이야기를 나누던 프로듀서의 뒷모습에 고정이 되었다.

녹음에 앞서 작곡가와 상의를 하던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츠무기는 어제 프로듀서가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미… 미안! 내가 괜한 걸 물어봤네! 아, 아니 그런데 그… 너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헤어진 적이 없다면 그 노래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지 않을까 해서!"

"……."

 

좋아하는 사람이랑 헤어지는 것.

여태까지 그런 적이 없었거니와,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던 그녀였기에 프로듀서에게 이야기를 들은 뒤로 계속해서 '좋아하는 사람', '헤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던 츠무기는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계속해서 떠올리고 있었다.

아니, 사실 둘 중에 하나는 가슴으로는 이해하고 있었으나 머리로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

 

그것 때문에 프로듀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츠무기는 난데없이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고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갑자기 그녀의 가슴 안에서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제 밤부터 지금까지 그녀의 머리, 가슴 속에 계속해서 맴돌고 있던 것.

그녀의 잠을 설치게 만든 것.

그리고, 지금 그녀를 그 어느 때보다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

그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분명 츠무기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츠무기!"

"!"

 

그런 그녀의 모습을 멀리서 본 프로듀서는 작곡가와의 상담이 다 끝났는지, 평소처럼 활짝 웃으며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츠무기는 화들짝 놀라며 평소와는 달리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ㄴ… 네?!"

"잠깐 일이 생겨서 녹음을 몇 시간 뒤로 미뤄야 할 것 같다는데?"

"그… 그런가요?!"

"응. 그런데 좀 떨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어?"

"서… 설마요! 오늘이 녹음인데 제가 아플 리가… 있겠나요?!!"

"흠 그럼 다행인데……."

 

사뭇 달라진 그녀의 반응에 프로듀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 상태를 물어봤지만, 츠무기 본인이 괜찮다고 하자 일단 안심을 하고는 다시 그녀에게 물어봤다.

 

"어떻게 할래. 오늘 오후에 녹음을 할래, 아니면 이왕 미룬 김에 내일로 녹음을 미룰까?"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연습이 더 필요할 것 같다면 녹음을 미루는 김에 내일로 일정을 다시 잡아도 상관이 없다고 하거든. 물론 이번 녹음 말고도 추가적인 녹음이 더 필요하다면 일정을 더 잡을 수야 있겠는데, 츠무기 너는 첫 스타트를 잘 끊고 싶은 거 아닌가 해서."

"……."

 

조언을 해준 작곡가도 내심 츠무기에게 무리한 부탁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프로듀서를 통해 부담을 갖지 말라는 메시지를 돌려서 말한 듯 했다.

그리고 프로듀서도 츠무기가 연습을 거듭하면서 많이 지쳤으리라고 판단해 츠무기에게 완곡하게 일정의 재고를 건의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츠무기는 속으로는 일정을 뒤로 미뤄 한숨을 좀 돌릴까 하고 생각을 했지만, 이내 왠지 오늘이 아니면 녹음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일단 오늘 녹음을 하고 싶습니다."

"그래?"

"네. 빠르게 문제점을 파악해서 고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녹음하는 걸로 이야기를 할게."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는 츠무기의 대답을 듣자마자 곧바로 작곡가에게 달려가 이야기를 했다.

항상 열심인 그의 뒷모습을 다시 한 번 물끄러미 지켜보던 츠무기는 홍보 라이브 직전, 그에게 들었던 격려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출발을 잘못하는 걸, 실수로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럴 때마다 내가 너의 곁에 있어줄 테니까. 알겠지?"

"……."

 

자신의 곁에 있어주겠다는 그의 말.

그리고 그 말을, 그 다짐에 대한 책임을 지듯 항상 성실하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던 프로듀서.

무수한 감정들, 그리고 많은 것들을 짊어진 듯한 그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그와 같은 길을 걸어오던 츠무기는 오늘따라 더욱 듬직해 보이던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과 계속해서 함께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아이돌이 된 이후로 처음 해보는 프로듀서에 대한 생각.

프로듀서에 대한 감정.

그것들에 대한 단상을 그녀가 조심스레 마음 속에 써 내려가려 할 무렵.

작곡가와의 이야기를 마친 프로듀서가 빠르게 그녀의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녹음까지 시간이 좀 남는데, 같이 스위츠 샵에라도 갈래?"

"…네… 네?!"

 

마치 몰래 낙서를 하다 걸린 아이처럼 화들짝 놀란 츠무기는 금새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했던 프로듀서는 천연덕스레 웃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츠무기, 스위츠 샵에 안미츠가 없다면서 실망을 했었잖아. 근데 오늘 에밀리가 안미츠를 파는 스위츠 샵을 알아냈다면서 츠무기를 데려가라고 했거든. 어때, 같이 갈래?"

"에… 에밀리 씨가요?"

 

프로듀서로부터 에밀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츠무기는 살짝 멈칫했다.

다름 아니라, 어제 스위츠 샵을 가게 된 것도 에밀리가 안미츠를 파는 스위츠 샵을 알아내서 같이 가자고 한 것 때문이었기에.

츠무기와 함께 어제 스위츠 샵에 들린 에밀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치미를 떼며 프로듀서에게 스위츠 샵과 안미츠, 그리고 츠무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 셈이었다.

하지만 에밀리의 의도를 생각할 틈이 없었던 츠무기는 일단 프로듀서의 제안을 승낙했다.

 

"그… 그럼 가도록 하죠. 저도 안미츠가 먹고 싶었으니까요."

"알았어! 얼른 가자. 여기서 별로 안 머니까 금방 도착할 거야."

"……네."

 

신이 난 프로듀서의 얼굴을 본 그녀는 에밀러처럼 자신 역시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래도 내심 기쁜 눈치였다.

프로듀서가 자신이 안미츠를 먹고 싶어하던 걸 까먹지 않고 있었던 것에 대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와 함께 스위츠 샵에 가게 되어서, 그러나 그걸 티를 내지 않고 애써 부정하던 그녀는 과하게 도도한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어때? 맛있어?!"

 

안미츠를 조심스럽게 떠먹는 그녀의 얼굴을, 프로듀서는 기대감으로 두 눈을 빛내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츠무기는 조심스럽게 입에 물고 있던 안미츠를 삼킨 뒤, 살짝 볼멘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프로듀서, 그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보시면 곤란합니다. 사람이 뭔가를 먹고 있는데 그렇게 바라보는 건 실례입니다. 그것도 모르시나요…?"

"아, 미안! 그래도 궁금해서 말이야. 어때? 맛은 괜찮아?"

"…왠지 전에 먹었을 때보다 더 달달한 것 같은…"

"…음? 전에 여기 온 적이 있어?"

"……!"

 

무심코 어제 먹었던 안미츠와 맛을 비교하려고 했던 츠무기는 아차 싶었는지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아, 아니요! 그… 저번에 프로듀서랑 같이 카나자와에 갔을 때 먹었던 거 있잖아요. 그것보다 달달한 것 같다고 이야기 한 겁니다…!"

"아, 맞다. 그 때도 안미츠를 먹었었지. 전에 먹은 것보다 더 달달하다라… 츠무기는 과하게 단 걸 싫어하는 거야?"

"그… 그건 아닙니다. 단지……."

 

사실 안미츠의 맛에는 차이가 없었지만, 분위기 때문에 유난히 달달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츠무기.

하지만 그녀는 애써 자신의 속내를 감추며 이야기의 화제를 돌렸다.

 

"그것보다 프로듀서는… 좋아하던 사람과 헤어진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 나?"

 

대화의 주도권을 다시 가져옴과 동시에 내심 궁금하던 것을 질문한 츠무기는 평소에 들어본 적이 없던 프로듀서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자신보다 딱 10살이 많은 그.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신보다 10년을 더 산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한 경험은 한 번 쯤은 있었을 터.

그에 대한 프로듀서의 단상을 듣고 싶었던 그녀는 질문을 던져놓고 살짝 긴장을 했다.

 

그러자 프로듀서는 잠시 골똘히 생각을 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애초에… 누구랑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좋아하던 사람도 없었고 말이야."

"......네?"

"그도 그럴 게… 너무 바빴거든. 누굴 사랑하고, 누군가와 연애를 할 틈이 없었던 것 같아."

 

예상 밖의 대답.

아니, 사실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으리라 염두하고 있었던, 지극히 프로듀서다운 대답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 실망을 한 츠무기는 살짝 연민이 어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을 느낀 프로듀서는 재빨리 이야기를 덧붙였다.

 

"뭐, 뭐야. 그 불쌍한 사람을 쳐다보는 듯한 눈빛은!"

"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의외네요… 프로듀서 같은 분이 한 번도 연애경험이 없으시다니… 근데 뭔가 납득이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커흠흠…… 그나저나 혹시 노래 연습에 도움이 될까 하고 물어본 거야?"

"네. 아무래도 경험이 없다 보니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도 듣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렇구나……."

 

물론 그런 의도도 있었지만, 개인적인 궁금증, 사심을 살짝 섞어 질문을 던진 그녀였기에 츠무기는 일단 시치미를 뚝 떼고 프로듀서가 또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프로듀서는 그런 츠무기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는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비슷한 경험은… 아주 많았지."

"……?"

 

그 때였다.

 

비슷한 경험.

진지한 표정, 목소리로 그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단어.

그 단어에 담긴 무수한 감정의 무게감을 본능적으로 느낀 츠무기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야기를 막 시작하려던 그의 표정엔 차갑고, 쓸쓸하고, 그리고 애달픈 감정이 서서히 드리워지고 있었다.

여태까지 본 적이 없었던 그의 표정에, 츠무기는 침을 꿀꺽 삼켰다.

 

"신입 시절에도, 경험이 어느 정도 쌓여 있었던 시절에도… 그리고 지금도 담당하던 아이들과의 이별… 이건 적응이 안 되는 것 같아. 안 좋은 이유던, 좋은 이유던… 나와 함께 있었던 아이들을 떠나 보내는 건 정말 힘든 일이었어."

"...!"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이별이 있으면 만남이 있다고 하잖아? 그렇기에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을 하지. 그런데 사실… 만남은 언제든지 생겨도 좋지만 이별은 정말 뼈아픈 것 같아. 이별의 상처를 새로운 만남이 감싼다고 하지만, 그 상처를 입을 때의 느낌, 기억은 잊혀지지가 않아."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의 두 눈은 그러나 어느 새 먹먹한 감정 때문이었는지 촉촉해져있었다.

아련한 감정이 이슬처럼 그의 두 눈동자에 맺히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를, 감정을 말없이 지켜보던 츠무기는 순간 가슴 한 구석이 저려왔다.

그의 심정을, 그가 줄곧 느꼈던 감정의 정체를 이해한 것 마냥.

 

분명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사심이 담긴 질문을 한 그녀였건만, 어느 새 마음이 무거워진 츠무기는 조심스럽게 프로듀서에게 물었다.

 

"혹시… 그렇게 이별을 하실 때마다,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느낌? 뭐… 여러 가지 감정이나 생각들이 조금씩, 그러나 오랫동안 내 몸과 마음을 감싸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어떤 날에는 그냥 일도 안 하고 술만 잔뜩 먹고 싶어지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갑자기 신이 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고……."

 

숱하게 이별을 반복해왔을 그는, 익숙하다는 듯 그 때마다 느껴왔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그는 슬픔이 섞여 있는 미소와 함께 아련한 눈빛으로 창 밖을 바라보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결국엔 항상 이렇게 이별에 대한 단상을 마무리 짓는 것 같아. 나와 같이 보냈던 기억들이, 그 아이들에게도 부디 좋은 기억으로 남기를. 그렇지 않았다면, 나에 대한 것들을 잊어주기를. 그리고 내가 그 아이들에게 느꼈던 감정을, 그 아이들도 나에게서 느꼈기를. 그리고… 부디 모두가 무사히 꿈을 향해 나아가기를 기도하면서 말이야."

"……."

 

그 동안 들어본 적이 없었던 프로듀서의 이야기.

자신의 투정, 고민을 들어주던 프로듀서가 몇 년을 묵혀놓고 있었을 그 감정과 마주한 츠무기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의 의견을 잘 따르던 그를 단순히 예스맨이라고만 생각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프로듀서에 대한 미안함과, 또 다른 감정.

물을 먹은 솜처럼 순식간에 무거워져 버린 그녀의 마음을, 츠무기는 감당할 수 없었는지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자 갑자기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무거워진 것 같다고 느낀 프로듀서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분위기를 수습했다.

 

"미… 미안! 내가 괜히 무거운 이야기를 했나. 아 나도 참… 과거만 이야기하면 자꾸 암울한 이야기만 하네 나도…"

"……."

"미안 츠무기. 괜히 옛날 이야기를 꺼내가지고…"

"…아닙니다. 덕분에 도움이 되었어요."

"……?"

 

되려 자신을 걱정하던 프로듀서의 말에, 츠무기는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많은 감정이 섞인 표정을 지은 채, 조용히 이야기했다.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녹음… 왠지 제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그래?!"

 

프로듀서의 이야기, 감정과 마주한 그녀는 무언가 깨달은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러고는 짧은 한 마디를 남기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게 밖으로 빠져나갔다.

감쪽같이 녹음 시간에 맞춰서 발걸음을 옮긴 그녀의 뒷모습을 프로듀서는 잠시 멍하니 바라봤지만, 이내 안심이 되었는지 곧바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가슴에 품고 있던 츠무기.

그 감정에 대한 느낌을 간직한 채 녹음을 하기 위해, 그녀는 걸음걸이를 더욱 빠르게 했다.

 

 

 

"준비 다 되셨으면 사인 보내주세요!"

 

음향 스태프가 녹음실 안에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츠무기에게 이야기했다.

프로듀서의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줄곧 같은 표정을 지으며 감정을 추스르던 그녀는 노래를 부르기 전, 마지막으로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생각들, 그리고 감정들을 정리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사람.

그 사람이 이 노래를 부른다면, 어떤 심정으로 이 가사를, 멜로디를 풀어나갈까.

지금껏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한 적도, 사랑을 해 본적도 없었던 17세 소녀 시라이시 츠무기로서는, 노래를 받은 뒤 줄곧 연습을 거듭했음에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경험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을 연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사랑에 빠진, 아이돌 시라이시 츠무기라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그녀라면.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된 그녀라면.

완벽한 정답은 아니더라도, 질문에 대한 그녀만의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리고 자신이 노래로서 보여줄, 그녀만의 해답을 찾은 츠무기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녹음실 밖에 서 있던 프로듀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프로듀서는 싱긋 웃으며 그녀를 응원했다.

 

"…준비됐습니다."

 

그의 따뜻한 눈빛을 본 츠무기는 천천히 고개를 돌린 뒤, 스태프에게 사인을 보냈다.

이윽고 침묵을 조심스럽게 깨는 반주가 간드러지게 흘러나오고, 츠무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프로듀서, 언젠가 당신과 헤어지게 된다면 나는……."

 

<유리색 금붕어와 꽃창포>.

이 노래를 어떤 감정으로 불러야 하는가에 대한 그녀가 내놓은 대답.

그녀가 지금 가슴 속에 품고 있던 감정이 드러난 그 순간.

츠무기는 입을 열어 그 감정들을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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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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