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시라이시 츠무기] 유리색 금붕어와 꽃창포 - 上

댓글: 4 / 조회: 719 / 추천: 3


관련링크


본문 - 08-15, 2017 15:27에 작성됨.

※ '[시라이시 츠무기] 나와 닮은 그 아이' 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유리색 금붕어가 올려다 보는 건 당당히 머무르는 화창포…"

 

연습실 안에 조용히 들려오는 가녀린 소녀의 목소리.

젖은 수건과 빈 물병이 어째서인지 가지런히 놓여진 방 안 구석엔 츠무기가 손에 든 종이를 바라보며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 당신처럼 될 수 있다면…"

 

손에 힘을 잔뜩 준 채 종이를 얼마나 뚫어지게 봤을는지,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종이는 이미 꾸깃꾸깃해져 있었지만 츠무기는 이에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노래에 열중하고 있었다.

 

"더욱 자연스레 웃을 수 있을까…요……."

 

하지만 노래를 부르던 그녀는 한계에 부딪혔는지, 목소리와 함께 종이를 들고 있던 손을 늘어뜨리더니 곧바로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평소와 달리 머리를 말총머리로 묶은 그녀는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그러고는 주위를 한 번 훑어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진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 미치것네… 나보고 워쩌란겨……."

 

살짝 벌어진 그녀의 입에서 나온 구수한 사투리.

정말 당황하거나, 난처한 상황일 때에 그녀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던 방언은, 츠무기의 심정을 잘 대변해주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자신도 모르게 사투리를 쓴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다급하게 입을 가리며 얼굴을 붉혔을 그녀였지만, 그럴 힘도 없었는지 츠무기는 멍하니 입을 벌리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 때 어루만져주었던 따스함, 빛을 잃어서야 말라가 버려 ← 이 부분을 부를 때, 어떤 느낌으로 불러? ← ※ 과거를 회상하는 애틋한 마음으로!'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꾸깃꾸깃해진 종이에는 악보와 함께 그녀가 덧붙인 자문자답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유리색 금붕어와 꽃창포> 라는 이름이 붙은 노래를 연습하던 그녀는 나름대로의 해석까지 적어가며 열심히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듭된 노력에도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자 이내 지친 츠무기는 한 번 자리에 주저앉고는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한숨만 푹푹 쉬다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좀 더 감정을 실으라니… 대체……."

 

똑똑.

 

그 때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츠무기가 앉아있는 구석에서 멀리 떨어진 연습실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노크 소리를 들은 츠무기는 화들짝 놀라 곧바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드… 들어오세요?!"

 

마치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자신이 쉬고 있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다시 악보를 들어올린 츠무기는 천천히 열리는 문 너머에 있는 사람을 조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이윽고, 연습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얼굴이 확인된 순간.

츠무기의 눈매가 갑자기 날카로워지고, 그와 동시에 많이 들어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츠무기, 여기 있었네! 오, 머리 묶으니까 되게 어울려!"

"…무… 무슨 용건이시죠?"

 

연습실 안에 들어온 프로듀서를 보고, 츠무기는 얼굴을 붉히며 짜증과 반가움이 섞인 특이한 톤의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리고 프로듀서는 이제 익숙하다는 듯,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악보를 보고 씨익 웃으며 천천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용건이 있으면 전화나 메시지로 미리 알려달라고 했는데 말이죠?"

"노래 연습 중이라고 해서 일부러 전화를 안 했지. 연습 도중에 연락을 하는 거 싫어하잖아."

"……."

 

프로듀서의 말에 할 말이 없어진 츠무기는 괜히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심술을 부렸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최근에 받은 노래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이야기나 좀 나누려고 왔지. 그래서, 노래 연습은 어때? 전보다 좀 잘 부르는 것 같아?"

"전혀요. 오히려 그 작곡가 분의 조언을 신경 써서 부르려고 하니까 노래 자체가 어색해지는 것 같아서 부르기가 힘듭니다."

"노래의 감정을 살려서 불러달라고 했었지… 사실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닌데 말이야."

 

홍보 라이브 이후 지명도가 높아진 츠무기는 최근에 첫 싱글 앨범에 필요한 노래를 전달받았다.

그 노래의 이름이 바로 그녀가 든 악보에 적혀있던 <유리색 금붕어와 꽃창포>.

그녀의 단아함과 강직한 기품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는 그녀의 첫 앨범에 수록되기에 안성맞춤인 노래였다.

첫 홍보 라이브에서 불렀던 것보다 완성도가 훨씬 더 높은 노래를 받은 츠무기는 첫 싱글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가슴에 품고 노래를 연습했다.

 

그러나, 연습 이후 작곡가의 앞에서 처음으로 노래를 부른 날.

그녀의 노래를 들은 작곡가는 만족과 실망이 섞인 오묘한 미소와 함께, 다음과 같은 감상 평을 남겼다.

 

"다 좋은데, 노래에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 애절한 느낌이 없다고 해야 하나."

 

소중한 사람과 이별한 사람의 그리움과 애달픈 마음이 잘 드러나야 한다는 첨언과 함께, 작곡가는 노래에서만큼은 여태껏 지적을 받아본 적이 없던 츠무기에게 노련하게 지적했다.

그리고 그 지적을 받은 츠무기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는지 그 날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연습실에서 노래 연습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쉬운 일이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계속 연습할 수 밖에 없어요."

 

프로듀서의 말을 들은 츠무기는 바닥에 놓여 있던 물통을 집어 들어 물을 천천히 들이킨 후, 꾸깃꾸깃해진 악보를 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첫 싱글 앨범에 쓰일 노래인데…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어요?"

"뭐… 그야 그렇긴 한데."

 

곡을 전달받은 지 1주일 째.

곧 다가올 녹음 작업을 앞두고 연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그녀가 대견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었던 프로듀서는 뺨을 긁적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의 노력을 무시하는 건 아닌데 말이야, 노래의 감정을 살리는 거… 연습만 한다고 해서 과연 잘 될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순간 날카로워진 그녀의 목소리에 프로듀서가 살짝 움찔했지만, 그래도 그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노래 고유의 감정을 '연기해내는' 거랑, '나의 경험을 되돌아보듯 풀어내는' 거랑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 작곡가는 전자보단 후자 쪽을 주문한 것 같거든."

"……."

"하… 하지만 좀 무리한 주문이기도 한 게… 일단 이번 노래는 소중한 사람과 이별한 사람의 노래잖아."

"…그렇죠."

"가사를 보면 알겠지만 이 소중한 사람이란 게 결국엔 가족, 친구라기보단 사랑하는 사람, 연인같거든. 그럼 결국에 이 노래는 연인과 이별한 사람의 노래라는 건데……."

"죄송한데, 결론만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 그러니까, 어… 이런 질문을 해서 미안한데 츠무기… 혹시 연애 경험이……."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이야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츠무기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프로듀서는 새빨개진 그녀의 얼굴을 보고 곧바로 사과하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미… 미안! 내가 괜한 걸 물어봤네! 아, 아니 그런데 그… 너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헤어진 적이 없다면 그 노래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지 않을까 해서!"

"……!"

 

질문이 다소 오해의 소지를 불러올 만 했지만, 프로듀서의 말도 분명 일리가 있었다.

좋아하는 누군가와 헤어진 경험이 없는 사람이 이별의 슬픔, 그 감정을 제대로 노래할 수 있을까.

감정을 노래하는 것과 감정을 연기하는 것의 차이.

그 차이를 정확히 짚은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의견에 츠무기는 빠르게 냉정을 되찾으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이 노래의 감정을 제대로 노래해낼 수 있을지.

 

그렇게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던 츠무기가 걱정이 되었는지, 프로듀서는 미소를 지으며 일단 그녀를 격려했다.

 

"그래도, 츠무기라면 분명 잘 할 수 있을 거야. 꼭 노래와 관련된 경험이 있어야만 그 노래의 감정을 다 살릴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일단은 무리하지 말고……."

"…죄송합니다만, 잠시 집중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혼자 있게 해주세요."

"……!"

 

그러나 그의 따뜻한 격려에 돌아오는 건 츠무기의 차가운 목소리.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고개를 돌려 프로듀서와 시선을 마주친 뒤, 툭 던지듯 짧게 이야기했다.

 

"격려 감사합니다."

"…! 그, 그래. 츠무기도 항상 고생이 많아. 연습 도중에 들어와서 미안…"

"……."

"바쁠 텐데 그럼 이만 가 볼게.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고. 그럼 나중에 보자."

"고생하셨습니다."

 

츠무기의 눈치를 본 프로듀서는 떠밀리듯 연습실 밖으로 빠르게 빠져 나왔다.

그런 그의 뒷모습에 신경도 안 쓰는 척 하던 츠무기.

하지만 문이 닫히고 그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츠무기는 묶고 있던 머리를 풀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좋아하는 사람……."

 

그렇게 닫힌 연습실 문을 한참을 보던 츠무기.

이내 마음을 가다듬은 그녀는 악보를 보며 다시 노래 연습을 시작했다.

아까 전보다 한껏 진지해진 목소리가 연습실 안을 다시 가득 채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연습실 창문으로 보이던 주황색 하늘이 어느덧 까맣게 물든 저녁이 되었을 무렵.

시내에 있는 제법 큰 스위츠 샵에 있던 츠무기는 그렇게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안미츠를 앞에 두고도 여전히 악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결코 당신의 마음에 닿지 않는 거야… 이 부분은……."

"츠무기 씨……?"

"도저히 감을 못 잡겠는데……."

"츠무기 씨?"

"……아!"

 

같이 온 에밀리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츠무기는 정중하게 사과를 하며, 그러나 여전히 손에서 악보를 떼지 못하며 이야기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열중해 있었네요."

"요즘 많이 바쁘신 것 같아 보여요. 괜찮으세요?"

"네. 뭐… 그럭저럭 버틸 만은 해요. 노래 연습 때문에 좀 바쁘긴 하지만요."

"그러셨구나……."

 

츠무기의 이야기에 에밀리는 자연스럽게 츠무기의 손에 들린 악보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는 흥미가 생겼는지, 천천히 츠무기에게 물었다.

 

"혹시 악보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아, 네. 여기 드릴게요."

 

최근 가깝게 지내는 에밀리에게 싱글 앨범 곡을 내심 보여주고 싶었던 그녀는 꾸깃꾸깃해진 악보를 건넸다.

츠무기에게서 받은 악보를 꼼꼼히 살펴보던 에밀리는 가사의 내용, 그리고 정갈한 글씨로 적힌 필기에 감탄하며 이야기했다.

 

"이 노래, 가사가 정말로 좋은 것 같아요! 뭔가… 애달픈 사람의 심정을 잘 담았어요! 그리고 츠무기 씨의 손 글씨도 정갈하고 예뻐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멋진 곡을 부르게 되셨구나… 부러워요 츠무기 씨."

 

악보를 보며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던 에밀리.

그런 그녀와 시선을 마주친 츠무기의 표정은 그러나 썩 밝아 보이진 않았다.

애써 괜찮은 척을 하려고 미소를 지었지만, 오히려 평소와 다르게 과하게 올라간 입 꼬리는, 그녀가 진짜 감정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놓치지 않은 에밀리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츠무기에게 물었다.

 

"...? 츠무기 씨, 혹시 어디 아프신가요? 표정이 안 좋으신데……."

"……아픈 건 아니고 사실 노래 때문에 고민이 많아서요."

"무슨 고민이 있으시죠?"

"……."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에밀리가 물어보자, 츠무기는 잠시 대답을 망설이다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노래를 부르는 데 감정이 느껴지질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별한 사람의 애달픈 마음이 담겨있지 않는 것 같다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그 감정을 담아내려고 연습을 하고 있는데 잘 안 되네요. 애초에 이별한 사람의 감정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구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사람의 노래… 확실히 감정을 담아내기가 힘드네요."

"……네."

 

고민 때문에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안미츠를 앞에 두고도 한 숟갈도 먹지 않던 츠무기는 한숨을 쉬며 창문 너머의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도화지가 그녀의 눈 앞에 들어왔다.

도저히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던 그녀의 심정을 대변하듯, 밤하늘은 오늘따라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그와 동시에 츠무기의 얼굴에도 서서히 짙은 어둠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걱정이 되었던 에밀리는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방금 머리 속에서 떠오른 걸 이야기했다.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신 가요?"

"……네?!!"

 

갑작스런 질문에 츠무기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프로듀서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진 그녀는 말을 얼버무리며 에밀리에게 따졌다.

 

"가… 갑자기 그런 질문을… 왜 하시는 거죠?!"

"노… 놀라셨다며 죄송해요.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시다면, 그 사람과 헤어질 때를 상상해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대뜸 이런 질문을 해서 죄송해요."

"……미안해하실 건 없는데 좀 놀랐네요……."

 

격한 츠무기의 반응에 에밀리가 바로 사과를 하자, 츠무기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신을 위해 조언을 해준 그녀에게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조언 감사해요.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좋아하는 사람과 이별한 적이 없더라도, 일단 그렇게 될 걸 상상을 한다면……."

"그럼 다행이네요! 츠무기 씨가 좋아하시는 분을 생각해서 노래를 부르면 될 것 같아요."

"…조...좋아하는 사람 없는데요?!!"

"네?!"

 

마음을 진정시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츠무기는 다시 얼굴을 붉히며 큰 소리로 에밀리에게 이야기했다.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건물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후……."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소리로 가득 찬 샤워실 안.

희뿌연 김 속에서 몸을 적시고 있던 츠무기는 연신 한숨을 쉬었다.

노래를 받고 연습을 거듭한 지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도저히 진척이 되지 않는 상황.

그로 인해 생겨나 몸과 마음에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던 답답함을 어떻게든 씻어내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던 그녀는 턱밑까지 숨이 차오른 사람처럼,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

 

1차 녹음 작업은 내일.

추가적인 녹음 작업 일정이 계속 있다고는 하지만,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했던 그녀는 코너에 몰린 상황이었다.

홍보 라이브를 앞두던 몇 개월 전 이후로 오랜만에 한계에 몰린 그녀는 자신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 궁금했는지, 김이 뿌옇게 서린 거울을 쓱 닦았다.

 

이윽고 거울에 촉촉히 젖은 그녀의 얼굴이 맺힌 순간.

생기가 많이 사라진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던 자신의 표정을 확인한 츠무기는 다시 김이 서리면서 서서히 희미해져가던 자신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고민하는 자신.

답답해하는 자신.

그런 자신의 얼굴과 마주한 그녀는 스스로에게 지금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지 소리없는 질문을 던졌지만, 거울 속의 그녀는 말없이 천천히 사라져갔다.

 

"……."

 

예상했던 결과에 츠무기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체념을 한 것인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눈을 감으며 말없이 세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물줄기가 그녀의 몸의 매끄러운 곡선을 타고 흘렀다.

 

그녀가 그렇게 말없이 서 있는지 수 십 초가 지났을 무렵.

그녀의 머릿속을 에밀리가 했던 이야기가 스치듯 지나갔다.

 

"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시다면, 그 사람과 헤어질 때를 상상해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

 

좋아하는 사람.

아직까지 연애 경험이 없었던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한 경험은 전혀 없었던 상황.

그렇기에 에밀리가 이야기했던 조언이 차선책이었기에, 츠무기는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생각을 되돌아보았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사람.

아니, 과거라도 좋으니 좋아했던 사람이 있는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항상 부끄러웠던 그녀가 애써 부정하고 있던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하던 그녀는 문득 한 사람의 목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츠무기라면 분명 잘 할 수 있을 거야."

"……!!!"

 

한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이 거울에 서서히 그려지던 그 순간.

츠무기는 화들짝 놀라 두 손으로 거울을 문지르며 그 사람의 얼굴을 필사적으로 지웠다.

그러면서 말도 안 된다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무신 말도 안 되는 소리여?! 말도 안 된다…… 내가 그 사람을? …그게 무신……."

 

가슴 속에 한 무더기 쌓여 있던 답답함이 사라지고, 왠지 모를 두근거림이 울렁거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애써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괜히 샤워기의 물을 더 세게 틀어 다급하게 몸을 씻었다.

샤워실에서 나오던 희뿌연 김이 작은 창문을 타고 나와 은은한 달빛을 휘감은 채 새까만 밤하늘 위로 둥실둥실 날아가고 있었다.

 

 

3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