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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널리티P 시리즈] 시마무라 우즈키 - Like a Fastball (下)

August 11, 2017 (금) 12:07에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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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마무라 우즈키 - Like A Fastball (上)에서 이어집니다.

 


 

너 때문이야……너만 아니었으면 나는…….
아무 것도 없는 너 같은 녀석은 차라리…….

 

“그만……그만하세요!”

 

침대에 누운 채, 두 팔을 허우적거리던 소녀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눈을 떴다. 커튼 너머로 비치는 은은한 달빛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비처럼 흐르고 있었다. 상체를 일으킨 그녀는 손을 뻗어 머리맡에 놓인 스탠드의 스위치를 조작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주광색 불빛이 어두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또……또……그 꿈이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옷의 소매로 흘러내리는 식은 땀을 닦아낸 그녀는 떨리는 손을 베개 밑으로 집어 넣었다. 베개 아래를 더듬던 그녀의 손끝에 무언가가 걸렸다. 그녀의 손에 이끌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자그마한 엽서였다. 몇 번이나 펼쳐 본 듯, 접히는 부분이 너덜너덜하게 헤져 있는 봉투의 앞면에는 짤막한 단어가 고급스런 필기체로 적혀 있었다.

 

<Dear Uzuki. S.>

 

“괜찮아……겁먹지 마……우즈키 넌 할 수 있어…….”

 

한동안 부적처럼 엽서를 꼬옥 끌어안고 몇 번이나 주문처럼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녀는 엽서를 베개 밑으로 되돌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수 분이 흐른 뒤, 마침내 다시 잠에 든 모양인지 눈을 감은 그녀에게서 부드러운 숨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3월의 무대를 한 달 앞둔 2월의 첫째 주.

 

“시마무라, 템포가 늦다! 좀 더 집중해서 따라와!”

“네, 넷!”

 

신데렐라 걸즈의 프로젝트 룸이 위치한 제1 별관 지하의 연습실에서는 기존의 프로젝트 멤버들의 레슨과 별개로 우즈키와 미오, 그리고 린 세 사람의 보충 레슨이 진행되고 있었다.

 

“표정 관리하고! 시마무라! 웃는 얼굴은 어디갔나!”
“죄, 죄송합니다!”
“혼다! 동작에 신경을 써라! 또 스텝이 늦어진다!”
“으아아아~!”

 

벽면에 설치된 커다란 스피커에 흘러나오던 음악이 멈추자 베테랑 트레이너는 세 사람을 돌아보며 크게 박수를 쳤다.

 

“여기까지! 10분간 휴식!”
“수고하셨습니다…….”

 

베테랑 트레이너의 구령이 떨어지자 세 사람 중 린을 제외한 두 사람은 너나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 앉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던 린은 어디론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으으으……주, 죽겠다…….”
“미오, 괜찮아요?”
“괜찮아……아마도?”

 

바닥에 주저앉은 두 사람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어디론가 사라졌던 린이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하얀 스포츠 타월과 함께 드링크가 든 병이 들려 있었다.

 

“자, 이거 마셔.”
“땡큐! 역시 시부린 뿐이야! 자, 시마무도!”
“아, 고마워요.”

 

린은 미오에게서 물병을 건네 받아 내용물을 정신없이 들이키는 우즈키의 옆에 앉아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때, 좀 할 만 해?”
“으아아, 난 죽겠어…….”
“저는 그럭저럭 버틸 만 하네요……여러분들은 매번 이렇게 해 오셨던 건가요……?”
“대체로 이런 편이었다고나 할까……예전보다 정도는 좀 약한 편이긴 하지만, 뭐 대부분은 이런 느낌이야.”

 

절반쯤 남은 드링크 병을 다시 린에게 건네며 우즈키는 연습실의 한 켠에 베테랑 트레이너와 함께 서 있는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베테랑 트레이너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는 이따금씩 손에 들고 있는 차트와 아이돌들의 모습을 번갈아 가리키며 그녀에게 무언가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어쩐지……린이 귀신 교관이라고 하셨던 이유를 알 것 같네요……프로듀서 씨께서 그렇게 체력에 집중하신 것도요.”
“그렇지? 우리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 지금 와선 그때 고생한 게 다 도움이 되고 있지만.”

 

마치 자신이 했던 말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프로젝트 멤버들의 사진 촬영이 끝난 직후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스케줄이었다. 체력 트레이닝의 강도는 줄어들었지만 레슨의 강도가 더욱 강하게 올라갔던 것이다. 차라리 체력 트레이닝을 더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자, 모두 주목!”

 

프로듀서와 이야기를 나누던 베테랑 트레이너가 다시 세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언제 돌아간 것인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프로듀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조금 전에 프로듀서 씨께서 이걸 주고 가셨다. 하나씩 받도록.”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세 사람에게 각자 자그마한 USB를 내밀었다.

 

“이건 뭔가요?”
“3월 라이브에서 너희들이 선보이게 될 신곡의 악곡 데이터와 안무 자료다. 다음 레슨까지 예습해서 오도록.”
“뭐시라?! 다음 레슨까지?!”

“혼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베테랑 트레이너의 찌릿, 하는 시선이 그녀에게 꽂혔다. 그러자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던 미오는 재빨리 고개를 붕붕 내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 아무것도 아니라니 다행이군. 아, 그리고 시부야.”
“네?”
“네 것에는 트라이어드의 것도 들어 있다. 지금까지와 대동소이하지만 변경점이 있으니 같이 참고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이상, 질문 있는 사람?”
“”없습니다!””

 

베테랑 트레이너는 힘차게 대답하는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좋아, 그러면 오늘 레슨은 이만 여기서 마치도록 한다. 개인 트레이닝을 하고 싶다면 우리 사무실에 와서 이야기하고 하도록.”
“”네!””
“그래, 세 사람 모두 수고 많았다. 몸 관리 조심해서 하고, 다음 레슨 때 다시 보자.”
“”수고하셨습니다!!””

 

 

***

 

 

“여, 이제 다 끝났냐?”

 

레슨을 마친 세 사람이 본관의 로비로 나왔을 때는 이미 먼저 일정을 마친 나오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걸어서 귀가하는 우즈키나 린과 달리, 나오와 미오는 전철을 타고 귀가하기 때문에 오늘처럼 스케줄이 같이 끝나는 날이 되면 두 사람은 종종 함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본관을 나선 네 사람은 나란히 전철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날 카렌 녀석이 몇 번이나 앵콜을 받아서 말이야.”
“아, 그거 나도 기억 나. 결국엔 한 3일 드러누웠지? 근육통으로.”
“아하하, 맞아! 맞아! 대기실에서 그렇게 죽는 소릴 내더니, 무대 위에서는 사람이 어찌 그렇게 바뀌는지.”

 

때마침 카렌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기에, 우즈키는 린과 나오의 이야기가 잠시 멈춘 틈을 타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을 꺼냈다.

 

“그러고 보면, 카렌은 여러분들이랑 같이 안 돌아가나요? 레슨은 이미 다 마친 것 같은데.”
“맞아. 트라이어드 프리무스라고 하면 맨날 셋이서 같이 다니는 거 아니었어?”

 

우즈키의 질문에 미오가 맞장구를 치자 린과 나오는 서로를 마주보았다. ‘네가 해’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나오를 바라보던 린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평소엔 그러는데, 지금처럼 본격적인 스케줄로 넘어가면 보통 카렌은 보충 레슨을 받거든. 후미카 씨랑 같이.”
“네? 보충 레슨이요?”
“뭐? 카렌이 보충도 받아?”

 

나오의 대답에 우즈키와 미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사람이 기억하는 ‘호죠 카렌’은 보충 레슨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표정을 읽은 것인지 이번에는 린이 나오의 말을 보충했다.

 

“보충이라지만 별 건 아니야. 단순히 우리에 비하면 레슨 스케줄이 조금씩 밀려서 그런 거니까. 카렌이나 후미카나 둘 다 체력이 썩 좋은 편은 아니니까, 쉬는 시간 같은 게 조금씩 어긋나기 마련이거든.”
“뭐, 그것도 프로듀서 덕분에 엄청 좋아진 거긴 하지만 말이지.”

“맞아……아. 다 왔네.”

 

어느 새 도착한 것인지, 네 사람의 앞에는 전철역의 입구가 우뚝 서 있었다.
나오는 아쉬운 듯 혀를 찼다.

 

“쳇, 벌써 다 왔네. 이럴 때만 엄청 가깝다니까. 자, 그럼 우린 여기서 이만.”
“미오, 오늘 숙제 까먹지 말고 제대로 봐야 한다? 프로듀서는 이런 거에 엄격하니까.”
“치잇, 시부린은 만날 나한테만 그래.”
“우즈키는 알아서 잘 하는 아이니까. 아무튼, 프로듀서한테 혼나기 싫으면 제대로 해. 알겠지?”
“알겠습니다요~! 그럼 시마무랑 시부린, 내일 다시 만나자!”
“네! 내일 만나요.”

 

잠시 후, 두 사람의 모습이 멀어져 갈 무렵.

 

“자, 그럼 우리도 갈까?”
“네.”

 

역의 입구에 서서 두 사람의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린과 우즈키는 각자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이상, 전달사항은 이 정도입니다.”

 

제1 별관의 회의실에는 트레이너들과 프로듀서가 모여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회의실의 벽면에 걸려 있는 붉은색 액정으로 반짝이는 디지털 시계는 오후 여덟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퇴근 시간을 한참이나 넘긴 시간이었지만, 후미카와 카렌의 보충 레슨이 늦게 끝났기에 이제서야 회의를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후네 씨나 이치노세의 데뷔 일정에 관해서는 결정사항이 나오는 대로 전해 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말을 하려다 말고 프로듀서는 말꼬리를 흐렸다. 고민이라도 하는 듯, 한동안 아랫입술을 깨물고 가만히 네 사람과 책상 위의 자료를 번갈아 바라보던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고래를 들어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막 생각난 게 있어서요. 회의를 마치기에 앞서 여러분께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아니, 개인적으로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날 준비를 하던 트레이너들은 다시 자리에 앉아 프로듀서를 바라보았다.

 

 

 

 

한 시간쯤 뒤. 연습실의 정리를 마치고 프로듀서의 배웅을 받으며 사무소를 나온 네 사람은 곧바로 귀가길에 올랐다. 본관 건물을 나온 네 사람이 회사의 부지를 벗어날 무렵 ‘루키 트레이너’ 아오키 케이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프로듀서 씨, 우즈키를 무척 신경 쓰시네요. 피드백이라면 늘 해오셨던 거라지만 영상자료까지 부탁하실 줄은 몰랐어요.”

 

회의의 막바지에 프로듀서가 네 사람에게 따로 부탁한 것. 그것은 다름아닌 뉴 제너레이션즈가 참여한 모든 레슨의 영상자료와 시마무라 우즈키 중심의 피드백 자료였던 것이다.

 

“그럴 만도 하지. 타카가키가 가장 먼저 사무소에 들어왔고, 시부야가 그에게 가장 먼저 스카우트를 받았다면 시마무라는 그가 가장 먼저 점찍어둔 연습생이었으니까.”

“네? 그랬었어요?”

“뭐……내 눈에 시마무라는 그냥 헤실거리기만 하는 평범한 여자애로만 보였어. 그건 아마도 다른 스카우터들도 마찬가지였겠지. 그래서 오디션 당일까지 그 아이를 지명하는 사무소는 없었어. 단 한 군데만 빼고.”

“그게 프로듀서 씨였군요.”

“그래. 그 남자는 오히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제쳐 두고 그 아이에게만 눈길을 주었지. 오디션 당일까지도 제발 다른 사람들이 저 아이에게 눈을 돌리지 말아달라고 기도를 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우즈키는 K프로덕션으로 갔잖아요? 언니 말씀대로라면 우즈키는 왜 우리 프로덕션으로 오지 않은거죠?”

 

‘트레이너’ 아오키 메이의 말에 ‘마스터 트레이너’ 아오키 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래를……해 버렸거든.”
“거래……요?”

 

레이의 말에 ‘베테랑 트레이너’ 아오키 세이를 포함한 세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P라는 남자가 자신이 정한 목표에 대해서는 얼마나 욕심쟁이가 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신의 뜻을 굽히는 것도 모자라 거래를 받아들이다니?
그들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레이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시마무라의 지명권을 K프로덕션에 넘기는 대신 9월의 드림 페스티벌에 K프로덕션 대신 우리가 출전하도록 한다는 거래였어.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았던 당시의 우리에겐 거절하기 힘든 제안이었지.”
“카에데 씨의 싱글 데뷔가 8월이었으니까……그런 거라면…….”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겠군.”

세 사람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그런 말도 안 되는 거래를 받아들인 이유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무척 고민을 많이 했지. 어느 쪽이든 놓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겠죠……카에데 씨도 나이가 있고, 시간을 끌어서 손해를 보는 건 카에데 씨 뿐이니까…….”
”대놓고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이었기도 했고. 협상 테이블에 직접 올라온 것이 K프로덕션의 사장이었으니 말이다. 외통수였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게 악수(惡手)가 될 걸 뻔히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어. 타카가키를 위해서.”
“그래서 그토록 우즈키에게 신경을 쓰는 거였군요…….”
“맞아. 결과적으로 지금 그녀가 처한 상황의 원인은 자신의 욕심이었으니……그의 성격이라면 충분히 책임감을 느끼고도 남겠지.”

 

“하지만.” 레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퇴근시간을 한참 넘긴 시각이었기에 본관이든 별관이든 대부분의 사무실에는 불이 꺼져 있었지만, 멀찍이 보이는 제1 별관에는 불이 켜 져 있는 창문이 하나 있었다.

 

“……그가 시마무라를 선택한 건 건 싸구려 동정심이나 책임감 때문만은 아닐 거다. 아무리 순해 빠졌다지만 그도 일단은 프로니까. 분명……생각해 둔 게 있을 거야.”

 

제자리에 멈춰 서서 잠시 동안 별관의 건물을 바라보던 그녀는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자, 얼른 가자. 마트 문 닫겠다.”

 

 

 


 

 

 

 

“휴우…….”

 

회의에서 사용한 자료를 책상 위에 내팽개치듯 내려놓은 프로듀서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의자에 몸을 맡겼다. 등받이에 체중을 실으며 손을 뻗어 고정장치를 풀자 스프링이 튀는 소리가 나면서 등받이가 뒤로 스르륵 기울어졌다.
그는 그 자세로 의자를 몸을 돌려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불야성의 밤하늘을 보여주던 유리창에는 등받이에 드러누운 자신의 모습이 마치 거울처럼 비쳐 보이고 있었다.

 

“나 참, 네가 서둘러서 어쩌자는 거냐.”

 

그는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향해 한숨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회의를 마치기 직전 그가 트레이너들에게 부탁했던 것은 시마무라 우즈키에 대한 피드백 자료와 뉴 제너레이션즈의 레슨을 촬영한 동영상 자료였다. 어디까지나 피드백 명목으로 부탁한 것이었지만, 사실 원래 부탁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원래 그가 트레이너들에게 부탁하고자 했던 것은 시마무라 우즈키에 대한 ‘특별한 관리’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시마무라 우즈키에게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언사를 사용하지 말 것’이라는 내용의 관리.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 정도나 되는 사람이 부탁한다면 트레이너들은 받아들여 주었을 것이다. 그것이 안 된다면, ‘지시사항’이라는 것으로 강제로 밀어붙일 수도 있었다. 어찌되었든 그는 ‘신데렐라 걸즈’를 총괄하는 책임자의 자리에 서 있었으니까.
물론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는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주위에서 순해 빠졌다는 소리를 듣는다지만 그는 10년이 넘는 세월을 프로의 무대에서 보낸 사람이었다. 해도 되는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어떤 것이 있는지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욕심을 꺾을 수 있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남지? 그렇게까지 해서 그녀를 지킨다면, 그 다음에 그녀에겐 무엇이 남아 있지?’


그런 그의 생각이, 오랜 프로 생활을 거치면서 그가 체득한 스스로의 경험이 그를 멈춰 세운 것이었다.
보고서를 펼치려던 그는 고개를 돌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불야성의 불빛 너머로도 어렴풋이 반짝이는 별빛들이 보였다.

 

“이겨내야 한다, 시마무라. 힘들겠지만……이겨내야 해. 네가 견뎌 온 시간들을 무용지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으응…….”

 

팔과 어깨에서 느껴지는 저릿한 느낌에 우즈키는 신음을 흘리면서 눈을 떴다. 흐릿한 눈 앞에는 동영상을 재생중인 노트북의 화면이 형형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깜박 졸았네……몇 시지……?”

 

몇 번째나 반복하고 있는 것일까. 배터리가 반 정도 남아있는 노트북의 화면에는 안무가 녹화된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몸을 일으킨 그녀는 눈을 비비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불이 꺼져 있는 방 안은 시계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컴컴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모니터의 하단에 떠오른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계는 새벽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후아아암…….”

 

멍하니 노트북의 화면을 바라보며 늘어져라 하품을 하던 우즈키의 몸이 멈칫했다. 영상 속에서 춤추는 댄서의 모습에 한순간이지만 자신과 함께 레슨을 받던 미오의 모습이 비친 것만 같았다.

‘미오……굉장히 적응이 빨랐지요.’

세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늦게 출발한 미오였지만,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착실하게 성장하여 두 사람을 따라오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그녀의 모습은 우즈키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또한 무척이나……위협적이었다.

 

“나도 참……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프로듀서 씨에게 혼날 거야.”

고개를 붕붕 내젓고, 두 뺨을 찰싹 두드려 몰려오는 잠 기운을 쫓아낸 우즈키는 불빛이 반짝이는 노트북의 화면을 바라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프로듀서 씨께서 주신 두 번째 기회야. 이번엔 반드시 잘 해내야만 해……!”

 

 

 


 

 

 

 

또다시 1주일이 흘러, 2월의 두 번째 주가 되었다.

이 날은 트라이어드 프리무스가 참가하는 발렌타인 특별 프로그램의 촬영이 있던 날이었기에 미오와 우즈키는 레슨을 대신하여 방송국으로 견학을 와 있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TV에서나 보던 ‘시부야 린’이 내 옆에 있다니……지금도 못 믿겠어.”
“으읏, 저도 작년까진 가끔 TV에 나왔었다구요!”
“뭐야, 시마무 지금 삐진 거야? 요요 귀여운 녀석~!”
“너무 호들갑 떨지 마. 앞으로는 미오도 그렇게 될 거니까.”

 

트라이어드 프리무스가 참가하는 분량의 촬영을 마치고, 촬영 의상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린은 우즈키, 미오와 함께 스튜디오의 대기실과 방송국의 정문을 연결하는 복도를 걷고 있었다. 스튜디오를 막 빠져나오려던 찰나, 미오가 자신의 이마를 찰싹 두드렸다.

 

“아, 내 정신 좀 봐. 뭐 놓고 왔다 싶더라니 대기실에 가방 두고 왔나 봐. 금방 갔다올게.”
“얼른 갔다 와. 스태프 분이 치웠을지도 모르니까 없으면 스태프들한테 물어보고. 우리 먼저 나가 있을게.”
“오케~!”

 

미오가 대기실로 돌아가고, 우즈키와 린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막 모퉁이를 돌려던 바로 그 때, 모퉁이 건너편에서 걸어 나오던 한 남성이 린의 옆에서 걷고 있던 우즈키와 정면으로 부딪혔다.

 

“꺄악!”
“어엇!”

 

남자는 두어 걸음 뒷걸음질을 치는 것으로 끝났지만, 우즈키는 자신보다 적어도 반 곱절은 더 큰 남자의 덩치에 부딪혀 성대하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뭐야! 계집애가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눈을 부라리며 언성을 높이려던 남자는 눈 앞에서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는 우즈키를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오야, 이게 누구인가. 시마무라 우즈키 양 아니신가?”
“네……?”

 

별안간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우즈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뱀처럼 두 눈이 길게 찢어진 그의 얼굴을 본 순간, 표정이 사라진 우즈키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프, 프로듀서 님……?”
“야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누가 당신 프로듀서야? 이젠 남남이잖아. 시마무라 우즈키 양.”

 

남자는 가뜩이나 가늘게 찢어진 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그녀를 향해 자세를 낮추었다.

 

“오야, 그나저나 신세 좋아 보인다? 난 누구씨 덕분에 다시 밑바닥에 꼬라박혔는데 말이야. 자, 이거 좀 봐. 사원증에 적힌 직책 말이야. ‘영업부’ 보이지? 그래. 당신 업적이야. 당신 덕분에 난 팔자에도 없는 영업부 말단 신세로 처박혔다고.”
“아, 아아…….”
“아직도 이 동네에 계속 붙어 있는 거 보면 너도 참 징하다. P라고 했던가? 너를 데려간 그 얼간이. 크하하, 이것 참. 너처럼 아무 것도 없는 쭉정이를 기를 쓰고 데려간 걸 보면 그 녀석의 안목도 참 형편없군. 아니지, 싸구려 동정심 때문인가?”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우즈키랑 아는 사이야?”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남자의 말에 덜덜 떨기만 할 뿐, 좀처럼 대꾸하지 못하는 우즈키의 앞을 린이 가로막았다. 린의 얼굴을 알고 있던 것인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 남자의 눈이 아주 조금이지만 휘둥그래졌다.

 

“이야, 이게 누구야. ‘트라이어드 프리무스’의 시부야 린 아니신가?”

 

남자는 린의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우즈키를 힐끔 바라보고는 다시 린을 바라보았다.

 

“이것 참, 너 정도나 되는 ‘천재’가 이런 쭉정이랑 어울리다니, 재능이 울겠군. 잘 나가고 싶다면 얼른 그 녀석 옆에서 떨어지는 게 좋을거야. 너무 가까이 붙어 지내다간 평범이 옮을지도 모른다고?”
“우즈키한테 자꾸 쭉정이, 쭉정이 거리지 마! 당신이 뭘 안다고!”

 

금방이라도 한 대 칠 듯, 잔뜩 가시가 돋힌 린의 말을 한 귀로 받아 흘리면서 남자는 예의 그 비웃음을 지었다.

 

“크크, 조금 전에 저게 한 말을 못 들은 모양이군. 나는 저 평범녀의 전 담당 프로듀서였다.”
“뭐라고……?”
“정말 고역이었단 말이야. 얼굴은 조금 봐 줄만 했지. 하지만 그게 끝이었어. 춤도 못 춰, 노래도 못 해, 그렇다고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야말로 평범 그 자체란 말이지. 할 줄 아는 거라곤 헤실거리면서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뿐이고.”

 

자신의 말투를 우스꽝스럽게 흉내내어 말하는 남자의 모습에 우즈키는 자신의 가슴을 무언가 커다란 것이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가슴을 움켜잡는 우즈키의 모습을 곁눈질로 바라본 린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눈 앞의 남자를 쏘아보았다.

 

“웃기지 마! 노력하겠다는 게 뭐가 나빠서? 무엇이든 노력한다는 건 좋은 일이야! 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니까!”

“오오, 정론이군. 정론이야. 그럼, 그렇게 ‘노력’을 높게 평가하는 우리 천재님께 여쭤보지. 결실이 없는 노력은 무슨 가치가 있지?”
“뭐……?”

 

불똥이 튀는 린의 눈빛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기며 능글맞게 말하는 남자의 말을 들은 우즈키는 자신의 가슴을 짓누르던 것이 그 중량을 더해가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씩 뒷걸음질을 치는 그녀의 모습을 본 남자의 표정이 한층 더 비열한 빛을 띠었다.
남자의 말에 일순간 말문이 막혔던 린은 언젠가 프로듀서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노력하는 건 좋아. 무언가 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노력을 동력 삼아서 내가 어디로 갈 것인지 방향을 정하는 거다. ‘목표’를 잊지 마. 내가 어디로 갈 것인지, 목적지를 눈에서 떼어 놓지 마. 너희들의 노력을 공회전으로 만들어서는 안 돼. 알겠지?”

그것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나간 오디션에서 떨어졌을 때, 분한 마음에 눈물을 삼키던 세 사람을 앞에 두고 프로듀서가 했던 이야기였다.

 

“저 녀석의 노력은 그런 거다. 아무런 방향성이 없어. 노력을 해서 자가발전을 하면 뭘 하지? 거기서 나오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니까 저 녀석은 쭉정이라는 거다. 노력하는 흉내밖에 내지 못하는!”

뭐, 너희들이 그걸 스스로 할 수 없으니까 내가 월급을 받으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거지만 말이야. 너희들이 그걸 할 수 있었다면, 아마도 난 필요 없었을 거야.”


남자의 말에 겹치듯 프로듀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린은 고개를 뿌리치듯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틀렸어. 당신은 자신의 무능력을 우즈키에게 덮어 씌웠을 뿐이야.”
“뭐라고?”
“우리 프로듀서는 말했어. ‘프로듀서는 우리들에게 목적을 잡아 주는 사람’이라고. 우리가 헤매지 않도록 가야 하는 길을 잡아 주는 사람이라고.”
“아, 그러셔? 그래, 잘 해봐라. 다만 주의하는 게 좋을 거야. 저런 평범녀랑 붙어 다니다간, 언젠간 너에게도 평범이 옮을지도 모르니까.”
“걱정 마, 당신 생각처럼은 안 될 테니까.”

 

린의 기세에 꼬리를 내린 것인지, 콧방귀를 뀌며 재미없다는 말투로 한 마디를 남긴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한동안 그의 뒷모습을 잡아 먹을 듯 쏘아보던 린은 자신의 등 뒤에서 느껴지던 인기척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눈치챘다.

 

“우즈키……?”

 

뒤를 돌아본 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등 뒤에 서 있어야 할 우즈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격정으로 들끓었던 머리가 삽시간에 차갑게 식었다.

 

“아뿔싸……그 남자, 그래서 그냥 간 거였어……!”

 

짧게 혀를 찬 린이 우즈키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려던 순간, 저 멀리서 한 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그녀를 향해 다가오는 미오의 모습이 보였다.

 

“미오! 혹시 이쪽으로 오면서 우즈키 봤어?”
“시마무라면 아까 화장실 간다면서 지나갔는데. 왜 그래?”

 

입술을 깨물고 가만히 미오를 바라보던 린은 그녀의 어깨에 두 손을 얹었다.

 

“……미오, 정문에 가서 프로듀서에게 일이 생겼다고 말해 줘. 난 우즈키를 찾을 테니까.”
“왜? 무슨 일이야? 둘이 싸웠어?”
“그건 아닌데, 어쨌든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얼른!”
“으, 응!”

 

잰걸음으로 방송국의 출구를 향해 달려가는 미오의 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던 린은 조금 전 미오가 왔던 길을 되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

 

 

 

린이 우즈키를 발견한 곳은 방송국 밖에 마련된 작은 공원의 쉼터였다. 프로듀서의 휴대전화로 우즈키의 위치를 전송한 뒤, 린은 우즈키를 향해 다가갔다.

 

 

“우즈키.”

 

조용한 쉼터에 린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를 듣자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처럼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벤치에 앉아있던 우즈키의 어깨가 눈에 띄게 들썩였다.

 

“……우즈키.”
“린……이죠?”
“……응, 나야.”

 

린은 그녀가 앉아 있는 벤치를 향해 다가갔다. 약간 떨어진 옆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우즈키가 입을 열었다.

 

“……저는……실은 예전부터 린이, 트라이어드 프리무스가 너무 부러웠어요. 여러분들의 프로듀서 씨를 보면서, 나도 저런 사람을 만난다면 얼마나 즐겁게 아이돌 생활을 할 수 있을까……매일매일이 얼마나 즐거울까……하고요.”
“……응.”

 

여전히 자신의 발끝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채, 옆에 앉은 린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만났던 사람……N씨는 제가 K프로덕션에 있던 시절 저를 담당하셨던 분이었어요. 그 이전에도 저를 담당하셨던 한 분이 더 계셨지만……그 분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게 되었죠……전부 다 저 때문이었어요.”
“아니야. 우즈키 너는…….”
“제가 잘못이 없다는 말인가요?!”

 

쏘아 붙이듯 말하며 우즈키는 고개를 들어 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을 마주친 린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언제나 활력으로 가득 차 있던, 내일을 그리며 반짝이던 그녀의 눈이 지금은 마치 깊은 바닷속을 보는 것처럼 어둡고 무겁게 잠겨 있었던 것이다.

 

“전전 프로듀서 씨가 담당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것도! 전 프로듀서 씨가 영업직으로 쫓겨나게 된 것도! 제가 K프로덕션에서 CG프로덕션으로 쫓겨나게 된 것도! 모두가 제가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재능도 뭐도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우즈키…….”

 

린을 바라보던 우즈키는 다시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의 눈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뚝뚝 떨어졌다.

 

“프로듀서 씨는……제 강점이 향상심과 미소라고 말씀하셨어요……하지만……그치만……그런 건 누구라도 다 갖고 있는 거잖아요……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거잖아요……저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냥 머릿속이 꽃밭으로 가득 찬 평범한 아이였어요……저는, 미오나 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 그건 아니야.”

 

점점 희미해져가는 우즈키의 말을 단호하게 잘라내듯, 두 사람의 등 뒤에서 의지에 가득 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기다리던 목소리였기에 린은 반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다시피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프로듀서!”

 

그녀의 시선 끝에는 코트를 팔에 걸고 있는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다름아닌 그들의 프로듀서인 P였다.

 

“늦어서 미안하다. 사후강평 중에 혼다랑 길이 엇갈려서 말이야.”

“프로듀서…….”

 

두 사람이 앉아 있는 벤치를 향해 다가간 그는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시부야, 오늘은 촬영하느라 정말 수고 많았다. 자, 센카와 씨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 얼른 집에 가야지. 여긴 나한테 맡기고.”
“……응, 미안해.”
“미안하긴 무슨. 스케줄은 나중에 메일로 보내주마. 신경 쓰지 말고 푹 쉬어.”

 

린의 등을 두드리며 그녀를 돌려보낸 뒤, 프로듀서는 여전히 벤치에 앉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우즈키의 앞으로 다가갔다.

 

“시마무라.”

 

그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반질반질한 정장 바지에 기다렸다는 듯 흙먼지가 달라붙기 시작했지만, 그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만히 손을 내밀어 한겨울의 바람에 새빨갛게 곱은 우즈키의 손을 덮었다. 그러자 몸을 웅크리고 있던 그녀의 어깨가 크게 움찔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나한테 말해 줄 수 있을까?”
“읏…….”

 

진정되었다 싶었던 우즈키의 어깨가 또다시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이전 사무소 사람을 만났어요……그 사람이 저더러……저는, 노력하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하면서도……그 노력조차 제대로 못 하는 반쪽짜리였다고…….”

 

가늘게 떨리는 우즈키의 목소리는 이야기를 거듭할수록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프로듀서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바라보았다.

 

'불찰이군. 그 작자들이 여기까지 올 줄이야.'

 

“어째서 프로듀서 씨는 저를 선택하셨나요……? 아무것도 없는, 아무것도 못 하는 저 같은 여자애를……정말로, 동정심에서 저를 선택하신건가요……?”
“아니, 그건 절대로 아니다. 맹세할 수 있어.”

 

그는 단호한 어조로 잘라내듯 말했다. 우즈키는 고개를 들어 눈 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나는 말재간이 좋은 녀석이 아니야. 잘 하는 거라고 해봐야 야구뿐이고, 무언가에 빗대어 말하는 것도 야구에 빗대어 말하는 게 고작인 녀석이지. 하지만, 이런 나라고 해도 지금 네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들어줄 수 있을까?”
“……네.”

 

프로듀서는 손가락을 움직여 굳게 주먹을 쥐고 있던 우즈키의 손가락을 하나둘씩 풀어내기 시작했다. 새빨갛게 굳어 있던 그녀의 손은 프로듀서의 체온을 받아 어느새 본연의 따뜻함을 되찾고 있었다. 잠시 후, 프로듀서는 손가락을 모두 풀어낸 우즈키의 두 손을 감싸 쥐었다.

 

“투수는 많은 공을 던지지. 평범하면서도 간단한 패스트볼부터 슬라이더, 커브볼, 체인지업, 스크류볼, 너클볼……하지만, 그 중에서 투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뭘까?”
“글쎄요……변화구……일까요?”

 

“아니야.”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는 우즈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촉촉하게 젖은 다갈색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패스트볼’이야. 이 나라에서는 직구라고 하더군.”
“네? 하지만, 그건 방금 전에 평범한 거라고…….”
“그래, 직구는 분명히 평범한 공이야. 하지만, 직구가 있기 때문에 변화구도 있을 수 있는 거지. 가장 간단하면서도 존재 그 자체로 변화구를 보호해주는 방패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패스트볼’이야. 자, 그럼 여기서 질문. 어떻게 패스트볼은 그게 가능한 걸까?”
“그, 글쎄요……?”
“간단해. ‘평범’하기 때문이지.”
“평범하기 때문에……?”
“그래. 모두가 ‘특별’한 변화구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평범하고 정직하게 포수에게 들어오는 패스트볼은, 그 순간만큼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것이 되거든.”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기에 우즈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프로듀서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시부야나 혼다는 모두 특색이 강한 아이들이다. 요컨대 ‘변화구’지. 하지만, 시마무라 너는 ‘패스트볼’이다. 너만의 '평범함'을 무기로 나머지 두 사람을 지켜줄 수 있는.”
“네……? 제가 린이나 미오를 보호해줄 수 있을 리가…….”
“어째서 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거지?”
“그, 그게, 저는 개성도 없고……재능도 없고……노력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그래, 바로 그거지. 시마무라, 너는 이미 답을 알고 있어. 네가 가진 가장 강한 무기가 무엇인지.”

 

답을 알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 프로듀서의 대답에 우즈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곰곰히 곱씹었다.

 

“노력……인가요?”
“그래, 내가 알고 있는 ‘시마무라 우즈키’는 향상심이 대단한 노력가다. 그거면 충분해. 너는 앞만 보고 나아가면 그걸로 된 거야. 네가 가야 하는 방향을 정해주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내가 있는 한, 네가 하는 노력이 공회전으로 끝날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프로듀서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쥐고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눈썹에 말라붙은 눈물자국을 닦아냈다.

 

신데렐라는 노력가잖아? 그렇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우즈키는 자신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녀의 가슴을 무겁게 누르고 있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노력을 이토록 순수하게 봐 준 사람이 있었던가.
잔뜩 짓눌려 있던 가슴이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것을 느끼며 우즈키는 프로듀서의 품 속에서 가슴 속의 녹아 내린 것들을 눈물의 형태로 흘려 보냈다.

 

 

 


 

 

 

땅거미가 저물고, 별들이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우즈키의 집 앞에 프로듀서의 자동차가 멈추어 섰다.
조수석에서 우즈키가 내리고, 운전석의 프로듀서는 창문을 열고 그녀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별 말씀을. 오히려 내 입장에선 그런 일이 있을 땐 얼마든지 상담을 해 줬으면 좋겠다.”
“네, 그렇게 할게요.”

 

현관문 앞에서 프로듀서를 향해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집으로 들어가려던 우즈키는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저기, 프로듀서 씨는 야구를 할 때는 어떤 선수였나요?”
“나? 글쎄……뭐, 꾸준한 거 빼면 딱히 내세울 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지?”
“평범한 사람……에헤헤…….”
“그런데 그건 왜?”
“그,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저기,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고.”

 

마침내 우즈키의 모습이 현관문 안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프로듀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 창문을 올리고 가속페달에 발을 올려놓았다.

 

 

<끝>


 

 

(평범하다고 쪼인트나 까이던 저 아이는 장차 신데렐라가 된다고 한다.)

 

안녕하세요, 달팽이보다 느리게 글을 쓰는 단풍P입니다.

 

글도 오랜만이지만 이렇게 후기로 뵙는건 더 오랜만이네요. 저번 이야기에서는 용량 때문에 잘려서 후기를 못 썼거든요. 그냥 상중하로 나누면 편할걸 무슨 욕심이 그렇게 많아서........

각설하고, 이번 이야기의 주제는 '시마무라 우즈키'와 '트라우마'입니다.

성공다운 성공도 거두지 못하고 매번 어중간하게 중간을 맴돌다가 땡처리당하듯 버림받은 우즈키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쓰고 싶었는데..........잘 안 되네요. 역시 여름은 나쁜 겁니다. 더워서 땀 좀 식히고 오면 열정도 같이 식어버린 느낌이에요. 제가 슈퍼맨이었다면 지구의 자전축을 조금만 옆으로 밀었을겁니다.

작중 등장하는 K프로덕션 소속의 M과 N은 각각 우즈키의 전전 프로듀서, 그리고 전 프로듀서입니다. 우즈키의 실적 부진을 이유로 지금은 둘 다 모가지가 날아가서 한 사람은 스카우터, 그리고 한 사람은 영업직 사원으로 일하고 있죠. 참, 정말 흉흉한 세상이에요.

 

내용과는 별개로, 이 글을 쓰면서 ms워드의 시프트 엔터 기능을 처음으로 써 봤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좋은 기능이네요.

 

그건 그렇고......다음 이야기는 조금 유쾌한 분위기가 쓰고 싶네요. 마유 이야기도 한번쯤 써야 할텐데......

어찌되었든, 느려터진 연재주기에 매번 들쭉날쭉한 퀄리티입니다만, 그래도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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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영광을 등지고 자신의 새로운 길을 찾는 한 사람과
자신만의 길을 찾아 모여든 소녀들이 함께 자아내는 사람과 사람의 선율.
"퍼스널리티 P 시리즈"

창작판 절찬 연재 중입니다.
※이 사람은 무료로 피드백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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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바르고 고운 말을 사용 합시다.
  • 포틴P (@howo***)

    린 엄청 세다...믿음직...보호받고 싶다
    그리고 미묘하게 분량이 안 챙겨지는 미오(...)
    상중하로 갈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정리됐군요. 더위가 분량을 파괴해 버렸어...!
    트라우마가 소재인만큼 우즈키의 플래시백같은게 좀 더 다뤄졌으면 좋았을 것도 같은데.
    암튼 유쾌한 이야기 한번 나오는것도 찬성. 멤버도 이만큼이나 모였으니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August 11, 2017 (금) 15:25_85
  • 단풍p (@onell****)

    매번 감사드립니다.
    린은 강한 아이죠. 어지간해서는 우는 소리도 거의 내지 않고 시키는건 묵묵히 잘 하고....

    실은 쓰다가 폐기한 분량이 꽤 있어요...날이 좀 풀린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손을 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유쾌한 내용....말은 꺼냈는데 어떤 게 있을까요?
    2August 11, 2017 (금) 20:18_99
  • 포틴P (@howo***)

    여름이 끝나기 전에 수영복 에피소드를...
    혹은 아예 방식을 좀 바꿔서 짤막한 콩트 모음집으로 가 보는것도
    3August 12, 2017 (토) 21:03_21
  • Crescent (@kpts***)

    시리즈 정독하고 왔습니다.
    이번 글도 잘 읽었습니다...
    근데 지구의 자전축을 밀면 계절이 없어질텐데....???
    슈퍼맨이 아니라 빌런이시로군요
    여튼 유쾌한 이야기라면 저야 좋습니다
    4August 11, 2017 (금) 16:17_10
  • 단풍p (@onell****)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하나의 희생으로 여름이라는 악마를 없앨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아, 내가 없어지니까 안되는구나.
    5August 11, 2017 (금) 20:20_26
  • 티코 (@swawa****)

    (re)write부터 쭉 다시읽었습니다. 새학기가 시작하자마자 생활패턴부터 시작해서 일이 너무꼬여 한참을 못읽었는데 드디어.. 분량을 쫓아왔습니다. 죽이고싶다 과제들..
    아무튼 시마무라 좋아요.. 사실은 무너질듯 말듯한 그런 캐릭터가 좋지만 말이죠! 한참을 우중충 하달까 우울하달까.. 근데 캐릭터 설명에는 필요하달까...싶은 내용들에서 설마 우즈키까지?? 생각하던 찰나에 당해버렸습니다. 상무님이랑도 아에 부닥치질 않아버리니 앞으로는 탄탄대로 일까요..?
    이상한 소리가 많았지만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완결까지 계속 기대할게요!!
    6August 12, 2017 (토) 22:06_69
  • 단풍p (@onell****)

    들쭉날쭉한 퀄리티인데도 매번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에선 좀 더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7August 15, 2017 (화) 16:20_40
  • Hecate (@junh****)

    뷰잉 관련으로 도느라 이제서야 신작을 확인했군요!
    언제나 잘읽고있습니다 더더욱 건필하시길
    8August 14, 2017 (월) 00:08_95
  • 단풍p (@onell****)

    저도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댓글을 이제야 확인했네요....매번 감사드립니다!
    9August 15, 2017 (화) 16:21_70
  • 아리스 (@theha*****)

    잘 봤어요~ 확실히 우즈키같은 스타일은 프로듀스하기 쉽지는 않을 듯하네요. 예전 프로듀서가 우즈키한테 말을 험하게 하긴 했지만 이해가 가기는 하는군요. 어쨋든 좋은 글이였어요~
    10August 15, 2017 (화) 21:04_69
  • 단풍p (@onell****)

    결국 프로듀서가 어느 쪽에 포인트를 두고 있었느냐의 차이겠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1August 16, 2017 (수) 14:17_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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