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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시 츠무기] 나와 닮은 그 아이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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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8, 2017 23:06에 작성됨.

7년 전, 사표를 제출하고 집에 도망치듯 돌아온 그 날도 비가 잔뜩 내렸다.

우산을 쓰지 않아 비에 홀딱 젖은 몸을 수습하지 않은 채, 나는 말없이 바닥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았다.

좁은 단칸방, 조명이 켜지지 않아 어두컴컴했던 방 안 그 위에 펼쳐진 회색 천장.

내 시야에 들어온 회색 캔버스 위에 지난 과거를 투영시켰던 나는 뒤이어 밀려오는 무수한 감정들을 두 눈에서 끄집어냈다.

 

끅끅거리는 소리와 함께 하염없이 쏟아지던 눈물.

살면서 그렇게 처절하게 울어본 적이 없었던 나는 젖은 몸을 감싸고 도는 한기를 느낄 새도 없이 정말 숨이 넘어갈 듯이 그 동안 억누르고 있던 감정들을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꾹꾹 눌러 담고 있던 감정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절망감과 좌절감이 빠르게 들어차고 있었다.

그리고 어둡고, 차갑고, 날이 서 있던 그것들은 빠르게 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 침식했다.

좌절감과 무력감에 완전히 사로잡힌 나는 그렇게 울다 지칠 때까지 몇 시간을 울고, 또 울었다.

 

"……."

 

몇 시간 뒤, 짜낼 감정도, 슬픔도 남지 않았던 나는 고요와 공허함 속에 파묻힌 듯 조용히, 멍하니 창문 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검은 하늘에선 전보다도 더 거세게 비가 쏟아져 내리며 창문의 유리를 열심히 긁어대고 있었다.

썰렁한 방 안에 울려 퍼지던 타닥타닥하고 튀는 빗방울 소리.

묵묵히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내게, 문득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런 준비도 안 했으면서 무슨 배짱으로 도시에 가겠다는 거야?"

 

지금 느끼는 자격지심을 제대로 후벼 파는 어머니의 이야기.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도시로 상경하겠다는 나에게 했던 어머니의 잔소리.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꼰대의 잔소리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자식을 향한 진지한 충고였고, 나의 훗날의 모습을 예견한 한 마디였다는 걸 이제서야 안 나는 움찔했다.

그래. 나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어.

하지만 나는 단지 꿈을 이루고 싶고, 그걸 위해 무작정 노력하다 보면 그 꿈을 언젠가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 하나만 믿고 무작정 도시로 올라왔던 거였어.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타향살이, 능력부족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은 채.

 

그걸 깨달은 나의 머릿속엔 뒤이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찔한 문장 하나가 조용히 떠올랐다.

 

고통스럽지 않게 죽는 방법.

그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종용하는 소름 끼치는 문장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 그 순간.

내 손 옆에 던져 두었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헉… 헉……."

 

7년 전 그날처럼 순식간에 어두워진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리던 오후.

우산을 구할 틈도 없이 급하게 병원 밖으로 뛰어나온 나는 갑자기 사라진 츠무기의 행방을 쫓으며 미친 듯이 사방을 돌아다녔다.

병원 관계자들도 그녀의 행방을 모르던 상황.

피로가 많이 쌓인 상황인데 우산도 없이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을 그녀.

그녀가 걱정된 나는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거리를 배회했다.

 

"츠무기…!"

 

팔에 꽂고 있던 수액 주사를 침대 위에 올려둔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녀는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다급한 심정에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빠르게 돌리고, 눈알을 분주히 굴렸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나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들 뿐.

거리 어디에도,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이미 그녀에게 전화를 수 차례 걸어보았지만 핸드폰의 전원이 꺼져 있어 연락도 닿지 않았다.

그녀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

더욱이 걱정되는 것은, 급하게 병원에 오느라 지갑도 들고 오지 않았을 그녀가 이곳의 지리에도 해박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설령 목적지가 있다고 해도 어떻게 가야 하는 지 모르고 있을 그녀.

츠무기의 행적을 쫓기 위해, 나는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골똘히 생각했다.

그녀라면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그러던 그 때, 그녀가 했던 말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저에겐 시간이 없어요 프로듀서. 저는 부족한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차라리 저 혼자 더 열심히 노력해서... 다른 분들의 수준까지 올라가보자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없다는 말, 그리고 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했던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가 떠오른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그녀가 향했을 곳이 떠올랐다.

 

바로 시어터 건물.

 

그와 동시에, 나는 내가 가야 할 곳을 파악하고는 곧바로 시어터로 가는 길 쪽으로 몸을 틀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헉… 헉……!"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도로 위에 있는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표지판에는 큰 글씨로 시어터 근처에 있는 커다란 공원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걸 보며 나는 생각했다.

병원에서 나온 츠무기는 도로 위의 표지판을 보며 시어터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사실 명확한 근거는 없었다.

그녀 본인이 아닌 이상,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무모했지만, 확신하고 있었다.

너가 예전의 나와 비슷하다면.

예전의 나였다면.

주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어떻게든 실수를 만회하려고 발버둥쳤었을 테니.

그래서 나는, 그녀가 자책하며 스스로를 더 단련시키기 위해 억지로 힘을 짜내 시어터로 향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생각이 빗나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매서운 비바람을 뚫고 그녀가 남겼을 발자취를 따라 도로 위를 달렸다.

 

그 때,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리고.

그와 동시에 찰나의 순간, 머릿속에서 과거의 기억이 빠르게 재생되었다.

 

"……너무 자책하지 말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중년 남성의 점잖은 목소리.

그 목소리와 함께 내달린 한 블록.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오히려 나는 자네가 대견해. 어린 나이에 그렇게 열심히 할 줄은 몰랐어."

"……사장님."

 

사장님의 격려, 그리고 그걸 들은 나의 힘이 빠진 목소리.

그리고 저 멀리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친숙한 여성의 뒷모습.

 

"자네의 마음은 잘 알았어. 무엇보다도 자네가 간절하다는 것도 말이야. 하지만… 너무 무리하면 안 된다네."

 

얼굴에 흐르는 비와 땀 때문에 시야가 흐려졌지만, 빠르게 가까워지고 선명해지던, 내가 찾는 사람의 뒷모습.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이 있잖아. 나는 자네에게 그 말을 하고 싶어."

"……!"

 

그리고, 나의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본 츠무기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츠무기!"

"……!"

 

화들짝 놀란 그녀의 앞에 멈춰선 나는,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내가 따라올 것이라 예상을 하지 못했었는지, 츠무기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나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의 시선과 더불어 창백해진 안색을 살피고는, 곧바로 이야기했다.

 

"말도 안 하고 어딜 간 거야! 얼마나 걱정했는데……!"

"……프로듀서……!"

 

비를 잔뜩 맞아 이미 옷이 다 젖은 상태였던 츠무기는 한기 때문에 덜덜 떨며 떨리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몸이 아픈 애가 비까지 맞고 다니고… 춥겠다 빨리 돌아가자! 아 근데 일단 갈아입을 옷을 사야 하나?"

"…...."

"일단 택시부터 잡자. 빨리 병원 가서 몸 좀 말리고 있어. 내가 옷 사고 금방 들어갈게. 응?"

"…저, 시어터로 가고 싶어요."

"안 돼. 넌 쉬어야 해. 아까 의사 선생님 말씀 못 들었어?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저에겐 시간이 없다구요!!"

 

그 때, 아무도 없는 거리에 울분이 담긴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처음으로 큰 목소리로 나에게 화를 낸 그녀.

하지만 나는 그녀의 반응을 예상했기 때문에, 놀란 기색 없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츠무기는 하얀 손을 덜덜 떨면서 힘겹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쉬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제가 이야기 했잖아요?! 전 아이돌이 되기에 능력이 부족하다구요. 그래서 더 연습해야 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구요!"

"……."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아이돌이 되겠다는 막연한 꿈만 가지고 여기에 왔는데…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말고, 감정이 격해진 츠무기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굵은 눈물방울은 이미 빗물로 젖은 그녀의 하얀 뺨을 타고 비와 섞여 땅에 떨어졌다.

아까 어머니와 통화를 할 때보다도 더 서럽게 울던 그녀는, 몸을 들썩이며 좀처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츠무기."

"프로듀서는 제 심정을 알아요…?! 제가… 제가 1달 동안 어떻게… 어떤 심정으로 살아왔는지… 아시냐구요…!"

"……."

"아이돌이 되겠다고… 무턱대고 도시로 올라와서 부모님 걱정만 시켜드리고 있는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내가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그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프로듀서가 아시냐구요...!"

"……."

"…근데 더 비참한 건… 그렇게 연습을 하는데도… 실력이 나아지지 않아...!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 있는디… 난 따라갈 수가 없다구…! 그럼 나는 도대체 워떻게 혀…? 나보고 워쩌란 말이냐고……!"

 

그 동안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며 감정을 토해내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사투리를 써가면서 답답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었다.

말하지 못한 채 꽁꽁 숨겨두고 있었던 속마음을 다 털어낼 정도로, 그만큼 그녀가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절절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음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나는 가야만 혀… 몸은 괜찮으니……."

"…츠무기."

"……!"

 

내가 덜덜 떨며 겨우 말을 이어나가던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츠무기는 살짝 놀랐는지 이야기를 하다 말고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감정이 격해진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방금 너의 심정이 어떤지 아냐고 말했었지?"

"…그렇습니다만……."

"사실 아까 이야기했을 땐 너의 심정을 어느 정도 알 것 같다고 했었는데… 방금 너의 이야기를 듣고 확실히 깨달았어. 너의 심정이 어떨지 아주 잘 알겠다는 걸."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내게 질문을 던진 츠무기.

나는 담담하게, 나 역시 그녀에게 숨기고 있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아까 이야기했었지? 나도 너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나도 사실 7년 전에 너처럼 프로듀서가 되겠다는 꿈 하나만 가지고 시골에서 이곳으로 왔었어."

"!"

"그리고 머지 않아 깨달았지. 내가 많이 부족하다고. 막연한 꿈만 가지고 이 세계에 뛰어든 게 후회가 되더라고. 그리고 너처럼… 죽기 살기로 노력을 했지. 어떻게든 빨리 실력을 키우자고. 하지만…"

 

담담하게 이야기하려고 했건만, 그 때 겪었던 일들을 회상하니 씁쓸하고, 뜨겁고, 울렁거리는 무언가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걸 꾹 참고,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무리를 하다가 크게 화를 입었어. 진짜 내 몸을 깎아가면서 처절하게 노력을 했는데 그게 화근이었어. 그렇게 한 번 고꾸라지고 나니까 다시 일어서기가 무서웠어. 그래서 프로듀서를 그만두려고 까지 했었지."

"……."

"하지만 그 때 사장님이 나한테 전화를 하셔서 조언을 해주셨어."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하던 그 때, 사장님이 전화로 나에게 해주셨던 조언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무기력감, 좌절감,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에 빠진 나를 일으켜 세워 준 그 때의 조언.

그 조언이 츠무기에게도 힘이 되기를 바라며.

나는 그 때의 느낌을 살려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인생은 거친 뱃길이고, 인생을 사는 우리는 배를 만드는 사람이자, 사공이라고."

"뱃길… 사공…이요?"

"응. 사람마다 배를 만드는 속도는 달라. 기술도 다르고, 숙련도도 다르지. 빠른 시간에 큰 배를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도 작은 배 밖에 만들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하지만 중요한 건 인생이란 거친 뱃길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튼튼한 배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야."

"…!"

"남들이 빠르게 튼튼한 배를 만들어서 거친 항로를 먼저 빠져나간다고 해서, 조급한 마음으로 배를 무리하게 빠르게 만들었다간, 결국엔 격랑에 휩쓸렸을 때 힘없이 부서지고 말 거야. 내가 그랬어. 내 능력을 무리하게 끌어 올리려고 무리를 했다가… 단 한 번의 위기를 만나고 크게 상처를 입었지. 그리고 그 상처를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어."

 

사장님이 내게 했던 조언을 끝마치며, 그 때의 기억에 대한 단상, 감상들을 갈무리한 뒤 천천히 츠무기를 쳐다보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너의 심정을 잘 알 것 같다고 이야기한 건… 사실 너와 만난 날 느꼈던 게 있었거든. 너와 내가 많이 닮았다는 걸 말이야."

"…프로듀서랑… 제가요?"

"정확히 말하면 과거의 나와 너의 모습이 많이 닮았어. 꿈을 이루기 위해 홀로 무작정 상경을 한 것도, 아는 사람 한 명도 없어서 주위의 사람들을 경계했던 것도, 능력의 한계를 느끼고 무리를 한 것도."

"......."

 

어느 새 감정을 추스르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츠무기.

그녀는 나의 조언을 듣고 뭔가 느낀 것이 있었는지, 평소와는 달리 경계를 푼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나의 이야기가 그녀의 마음을 진정시킨 것일까.

전보다 편안해진 그녀의 얼굴을 본 나는 속으로만 품고 있던 그녀에 대한 나의 마음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츠무기, 그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지만 솔직하게 이야기해서 츠무기, 너가 날 닮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처럼 무리를 했다가 큰 상처를 입으면 안 돼. 비록 너의 담당 프로듀서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나는 네가 꿈을 온전히 간직하고, 너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랄 뿐이야."

"!"

"그리고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 너는 너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츠무기 네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너는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책임감도 있고, 의욕도 넘치는 아이야. 그러니 너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줬으면 해. 너의 꿈을 내가, 그리고 시어터의 모든 사람들이 응원하고 도와줄 테니까. 알겠니?"

"……."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던 그녀.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며 츠무기에게 이야기했다.

 

"부족한 게 많은 프로듀서이지만… 너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줄게. 날 믿어주겠어?"

"……."

"츠무기."

"……훌쩍."

 

그 때, 츠무기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손으로 눈 주위를 쓱 닦고는 애써 평소에 짓는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

 

하얀 손으로 내가 내민 손을 스치듯 건드리더니, 코맹맹이 소리로 천천히 이야기했다.

 

"……아… 알았으니까 어서 택시 잡아주세요. 옷이 많이 젖었어요."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라… 미안해! 바로 택시 잡을게."

"…정말 프로듀서를 신뢰해도 되는 겁니까?"

"미안미안. 가끔 덤벙대니까… 그래도 믿어도 좋아. 이래봬도 7년차 베테랑이라고?"

"알았으니 어서 택시를 잡아주세요. 그리고 옷 가게에 가시면……."

 

대견하게도 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열어준 츠무기.

여태껏 본 적 없는, 어색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을 본 나는 마음 한 구석에 박혀 있던 커다란 바위를 빼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녀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고마워 츠무기.

나를 믿어주기로 해줘서.

나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하지만 고맙다는 말을 그녀에게 바로 전하기엔 아직 부끄러우니까 나중에 하도록 하기로 하고, 나는 서둘러 택시를 찾기 위해 시선을 분주히 움직였다.

그리고 마치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서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서서히 그쳐가고 있었다.

 

- 다음화 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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