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카테고리.

  1. 전체목록

  2. 그림

  3. 미디어



[시라이시 츠무기] 나와 닮은 그 아이 - 3

댓글: 2 / 조회: 715 / 추천: 4


관련링크


본문 - 08-06, 2017 01:10에 작성됨.

신입 시절이었던 어느 날.

언젠가 한 번, 과로로 인해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었다.

아마 그 때 당시 새로운 아이돌 유닛을 홍보한다고 해서 작은 사무소에 있는 모든 사람이 분주하던 시기였을 것이다.

사장님부터 시작해서 아이돌까지 모두가 긴장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던 그 때.

한창 내 능력의 한계를 절절히 느끼며 아등바등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던 나 역시 어떻게든 성과를 내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나의 의욕을, 나의 간절함을 쫓아가기엔 내 몸은 강하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자진해서 쉬지 않고 격무를 하던 나는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쓰러지고 말았다.

스테이지에서 나의 담당 아이돌들이 여태껏 준비해왔던 것들을 모두 뽐내는 것을 보고 있어야 했던 나는, 딱딱하고 차갑고 쓸쓸함이 느껴지는 병동에 누워 회색 천장을 쳐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일을 못 하면 차라리 몸이라도 튼튼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답답한 마음에 울부짖던 나는 그렇게 홀로 병실에서 미친 듯이 울었다.

 

그리고 마치 그 일로 인해 방아쇠가 당겨진 듯, 내가 맡았던 아이돌 유닛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아까운 시간만 날리다가 결국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다.

프로듀서로서 처음 만난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 일도

프로듀서로서 처음 맛보는 실패도

좌절감도

죄책감도

모두 그 때 나에게 밀려들어왔다.

 

겨우 몸을 추스를 시간도 없었던 나는 그렇게 한꺼번에 밀려든 격랑에 휘말려 좌절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 할 것만 같은 절망의 구렁텅이로 홀로 던져진 나는, 사표를 쓰고 사무실 밖을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생각했다.

무능했던 나를 받아준 사무소.

나에게 프로듀서라는 직함의 의미를 알게 해준, 나를 믿고 따라주었던 아이들.

그들 덕분에 능력이 부족한 나는, 잠시나마 달콤한 꿈을 꾸었노라고.

그리고 나 혼자만의 달콤하면서도 허황된 꿈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 미안하다고.

 

현실을 받아들인 나는, 격한 감정 탓에 제대로 쓰지 못한 사표를 남겨두며 나의 첫 직장에 작별을 고했다.

 

 

 

"……여긴……?"

"츠무기."

 

좁은 병실 안.

팔에 수액 주사를 꽂은 츠무기는 조용히 눈을 뜨며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의 얼굴을 확인하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저는 어째서 여기에……."

"연습을 하던 도중 쓰러졌어. 그래서 급하게 병원으로 널 데려온 거야. 어때, 몸은 좀 괜찮아?"

"…제가… 쓰러졌다니……."

"많이 놀랐다고. 오늘은 일이 좀 잘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몸 상태도 괜찮아서 기분이 좋았는데 갑자기 네가 쓰러졌다는 말을 들어서 얼마나 놀랐는데."

"……."

 

내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말없이 팔에 꽂힌 수액 주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제야 자신이 무리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녀는 기운이 빠진 눈빛으로 나를 보며 천천히 이야기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

 

나에게 전혀 미안함을 가지지 않아도 될 그녀.

다른 사람도 아니라 바로 그녀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나였건만, 그녀는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츠무기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힘이 없고 유약한 목소리로 힘겹게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제가 고집을 부려서… 다른 분들께 민폐를 끼치고 말았어요. 제가 많이 부족해서… 그만……."

"……."

"사실 프로듀서의 말씀이 맞았어요. 제가 너무 무리를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마치 고해성사를 보듯, 츠무기는 우울함과 죄책감이 잔뜩 낀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무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그녀의 힘겨운 고백의 서두를 들은 순간, 나는 또 한번 생각했다.

그녀는 과거의 나처럼, 스스로를 자책하며 무리를 하고 있구나 하고.

 

하지만 나는 일단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지금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힘든 것은 바로 츠무기 본인일 테니.

자청해서 본인의 홍보 라이브를 무리하게 앞당긴 것도

지쳐서 쓰러질 정도로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며 연습에 몰두한 것도

그녀가 그렇게까지 무리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츠무기에 대한 이야기를 더 듣기 위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런 나의 반응을 조심스레 살펴본 츠무기는 한숨을 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 아이돌이 되기 위해 이 곳에 온 순간부터 느끼고 있었어요. 제가 아이돌이 되기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

"하지만 어찌되었던 간에 저는 후발 주자로서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몸… 다른 분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어요. 가장 늦게 들어온 저 때문에 다른 분들의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서… 차라리 저 혼자 더 열심히 노력해서... 다른 분들의 수준까지 올라가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리하게 라이브 일정을 앞당긴 거였구나."

"……네."

 

예상대로, 츠무기는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경험했음에도 어떻게든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혹사시키고 있었다.

일부러 무리한 목표를 세워서 그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자기 자신에게 모진 채찍질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과한 채찍질은, 도리어 몸에 많은 상처를 내며 고통을 주기만 할 뿐.

오히려 성취감보다는 좌절감이 더욱 더 격렬하게 밀려와, 벌어진 몸의 상처 사이사이를 파고들어 더한 고통과 절망감을 안겨줄 뿐이었다.

그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7년 전에 겪었던 시행착오, 그로 인해 뼈저리게 교훈을 체험했었으니.

 

"라이브 일정을 앞당기면, 제가 힘들어도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연습을 해서 실력을 올릴 수 있을 것만 같았어요. 내 발뒤꿈치 바로 뒤엔 절벽이 있다, 그 심정으로 계속해서 연습을 했어요. 효과도… 있었구요. 하지만……."

"그 효과는 일시적이었지?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빠르게 지치는데 실력은 잘 늘지 않는 것 같고."

"……!"

 

마치 정곡을 찔렸다는 듯, 츠무기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뜬 채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어떻게 그걸 알고 있냐고 생각하는 것이 그녀의 표정에서 잘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평소에 본 적이 없었던 그녀의 새로운 표정을 봤음에도 무덤덤하게 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도 그런 적이 있었어. 예전 일이긴 한데 말이야. 뭐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고 싶다면 따로 해주겠지만… 나도 너와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거든."

"저랑… 비슷한 일… 말씀이십니까……."

"응. 뭐… 내가 꼰대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겠는데, 너의 심정이 지금 어떨지 나는 좀 알 수 있을 것 같아. 네가 왜 무리를 하고 있는지 혼자서 생각했었는데 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예상이 얼추 맞아들었고.

"저의 심정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 같다고요……?"

"응. 뭐, 틀릴 수도 있겠지만."

 

나의 이야기를 들은 츠무기는 갑자기 혼란스러웠는지 고개를 홱 돌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고는 하얀 손으로 입을 가리곤, 나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급하게 몸을 덮은 이불 쪽으로 내리깔았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고 말았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반응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을 하고, 더 이상 그녀에게 질문을 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혼란스러워하는 그녀를 건드렸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었으니.

다만, 해야 할 말은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지금 상황에서 가장 듣기 힘들어 할 이야기이겠지만, 그녀를 위해서라도 나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의 말이 끝난 순간, 그녀가 보일 반응을 예상하니 목 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온 씁쓸함이 입 안을 가득 채워 나의 속을 울렁거리게 했지만, 그래도 그것을 꾹 참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츠무기."

"……네?"

"오늘 일도 있고 해서 말인데. 역시… 너의 홍보 라이브는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아."

"……!"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일정은 너무나도 빡빡해. 냉정하게… 아니, 현실적으로 생각해도 이번 일정을 소화하는 건 무리야. 실력이 있는 프로들도 소화하기 힘들 정도라고."

"……."

"너의 마음가짐은 알겠어. 네 절박함도 알겠고. 나는 너의 프로듀서야. 누구보다도 널 이해하고 싶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하지만… 이번 일정은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아. 이건 너뿐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이기도 해. 모두가 널 걱정하고 있어. 응?"

"……."

 

어떻게든 부드럽고 완곡하게 이야기를 해서 그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나는 그녀의 의지를 꺾는 행동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노력을 하려고 했던 그녀의 의지를, 그녀의 마음을 억누르려고 하는 것이었으니.

그만큼 그녀가 자신의 한계에 답답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이대로 계속해서 무리를 하다 자칫 잘못되면…

나처럼 좌절감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으니까.

그것만은 막아야만 했다.

나와 닮은 너.

너만은 나처럼 되지 말았으면 해.

 

"……."

 

그런 나의 마음이 닿을 리 없었지만,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츠무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원래부터 하얗던 그녀의 얼굴은 피로와 당황스러움 때문인지 창백하게 변해있었다.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복잡한 심정이 꿈틀거리는 손가락을 통해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불을 바라보던 눈동자는 이미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나의 예상대로, 츠무기는 자신의 의지, 선택이 좌절된 것 때문이었는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볼 걸 각오한 나 역시 착잡한 심정 때문에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혼란에 빠진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그저 그녀가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기를 빌 수 밖에 없었다.

제발 버텨내라.

힘내라.

들리지 않을 응원을, 나는 속으로 끙끙거리며 누구보다도 힘들 그녀를 응원을 했다.

 

그러던 그 순간.

 

"…알겠습니다. 프로듀서."

"…!"

 

츠무기는 겨우 고개를 들어 나의 얼굴을 바라보곤, 조용히 이야기했다.

 

"역시… 저에겐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절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아, 아니야. 미안해 할 거 없어. 그리고 고마워. 내 조언을… 들어줘서 말이야."

 

나에게 사과를 하는 그녀의 얼굴, 그녀의 표정엔 여전히 꺼내지 못한 무수한 감정들이 실려있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그 감정들을 꾹 누르고 있었다.

그런 츠무기의 모습을 보며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대견함도 느꼈다.

7년 전의 나는, 무리하고 있는 나를 진정시키려는 사람들의 마음도 모르고 내 뜻대로 했었지만 츠무기, 너는 나와 다르구나.

혹시 나의 마음이 너에게 닿았을는지.

괜히 혼자만의 상상을 한 나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뒤, 천천히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라이브 일정도 미뤄졌으니, 이제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될 거야. 그리고 최근 1달 동안 쉬지 않고 연습을 했으니, 당분간은 푹 쉬어도 돼. 알았지?"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프로듀서."

 

츠무기는 아까보다 좀 나아진 목소리로 대답을 하곤 수액 주사를 꽂은 팔을 살짝 어루만졌다.

자칫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분위기가 그제야 진정이 되고.

나는 한숨을 돌리며 그녀의 병실에 과일이 없다는 걸 확인하곤 천천히 츠무기에게 이야기했다.

 

"급하게 오느라 먹을 걸 안 챙겨왔네. 과일 좀 사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그녀의 대답을 뒤로 하고, 나는 서둘러 병원 근처에 있는 과일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왔을 때와는 달리, 복도를 걸어가는 나의 발걸음은 한층 가벼워졌다.

 

 

 

"병원 근처라서 그런가. 과일이 엄청 비싸네……."

 

생각보다 비싼 과일들의 가격을 떠올리며, 나는 양 손 가득 과일을 담은 봉투를 들고 츠무기가 있는 병실로 걸어갔다.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론 그녀가 다른 건 몰라도 과일은 잘 챙겨먹는다던데, 몸도 지쳐있으니 좋아하는 과일을 먹고 기운을 되찾았으면 좋으련만.

혹시 과일을 받을 때, 무뚝뚝하던 그녀의 표정이 좀 풀어지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상상도 해본 나는, 빨리 그녀에게 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복도에 소리가 나지 않게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걸어가 그녀의 병실 앞에 가까워질 무렵.

 

"……엄마."

"……!"

 

살짝 열려 있는 문 틈 사이로, 촉촉히 젖은 츠무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숨을 죽이고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남의 이야기를 이렇게 몰래 엿듣는 건 양심에 찔리는 행동이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하는 내 자신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으면서도, 조용히 문 틈 사이에서 들려오는 츠무기의 이야기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응. 괜찮아요… 잘 지내고 있지……."

 

그녀의 어머니와 전화를 하고 있던 츠무기는, 걱정하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타지에서 과로로 인해 쓰러진 그녀는, 처음 겪는 경험에 놀라 어머니에게 전화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누구보다도 힘든 자기 자신을 애써 숨기고, 어머니의 걱정을 덜어주고 있던 그녀.

그런 츠무기의 마음씨에 예전에 도시에 막 상경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그러나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감동의 뒤에, 왠지 모를 불안함이 느껴졌다.

갑자기 그녀가 전화를 한 이유가 뭘까.

단순히 어머니가 보고 싶어져서 전화를 한 것일 수도 있었음에도, 나는 갑자기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불안함을 느끼고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내가 느낀 불안함은 뜬금없는 것이 아니었다.

 

"아… 근데… 저… 이번에 라이브 하는 거 있잖아요… 그거…"

 

라이브에 대한 이야기가 그녀의 입에서 나온 순간, 나는 내가 느꼈던 불안함의 원인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뒤로… 미뤄졌어요. 미안해요……."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끝나고, 뒤이어 그녀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흐끅… 끅… 엄마…… 아빠…… 보고 싶어……."

"……."

 

결국 터져 나온 그녀의 눈물.

쉼 없이 달려온 1달 동안 참아왔던 많은 감정을 그제야 토해내기 시작한 츠무기는 병실이 떠나가도록 엉엉 울었다.

내가 살짝 열린 문 너머에 있는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그녀는 처절하게, 그 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슬픔을 끄집어냈다.

 

"……."

 

너무나도 애처로운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비닐 봉투를 꽉 쥐고는 천천히 복도 밖을 빠져 나왔다.

그녀의 슬픔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정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과거의 나와 똑같이 감정을 토해내던 츠무기의 모습을 계속해서 봤다간, 겨우 떨쳐낸 과거의 암울했던 기억, 감정이 다시 내 몸을 휘감을 것만 같아서.

나는 비겁하게도, 무언가에 쫓기듯 슬픔에 잠긴 그녀를 내팽개치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하……."

 

그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병원 밖으로 뛰쳐나온 나는 뒤이어 밀려오는 죄책감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나는 츠무기의 담당 프로듀서.

그녀가 힘들 때 곁에 있어줘야 하는 사람.

하지만 방금 전, 나는 무슨 행동을 했는가?

힘들었던 과거가 떠올라서

힘들어하는 그녀에게 나의 과거를 투영시켜서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는가?

그래서 슬픔에 빠진 그녀를 버리고 도망친 것이 아닌가?

 

하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려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신입 시절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먹먹해지는데 츠무기의 저런 모습을 보면 정말 극단적인 선택까지 고려하던 예전의 내가 떠올라 마치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느낌마저 들어 소름이 끼쳤다.

그녀가 우는 소리를 들었을 때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면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병원에서 미친 듯이 울던 나, 유닛 해체 통보를 받은 나, 많은 감정이 실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곤 사무실 밖으로 나간 아이들의 모습.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그 때의 일들, 그 때의 장면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으니.

 

"후우……."

 

그 때의 일이 자꾸 떠올라 속이 울렁거렸던 나는 쿵쾅거리던 가슴을 쓸어 내리며 생각했다.

일단 츠무기가 감정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리자고.

나도 일단 마음을 진정시키자고.

스스로에게 겨우 타협안을 제시한 나는 병원 건물 옆에 찰싹 달라붙어 창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애처로운 통곡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는 좀처럼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하늘은 무심한 듯, 소나기를 흩뿌리기 시작했고 나는 급하게 병원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왜 난데없이 비가 내리는 거야… 우산도 안 가져왔는데."

 

츠무기가 있는 병실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던 나는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조심스럽게 그녀와 만날 준비를 했다.

눈물과 함께 그 동안 쌓아두었던 감정들을 다 흘려 보냈을는지.

아니면, 여전히 비통함 때문에 기운을 잃었을는지.

뒤늦게 그녀가 걱정이 되었던 나는, 두려움 반 걱정 반 탓에 애매한 속도로 그녀의 병실로 향했다.

모든 감정을 털어내고, 묵묵히 창가를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점점 가까워지는 그녀의 병실을 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마침내 아까와는 달리 활짝 열린 병실 문 앞에 도착한 순간.

 

"……츠무기……?"

 

침대 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4 여길 눌러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