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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루] 오오하라 미치루는 움직이지 않는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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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2, 2017 00:00에 작성됨.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오하라 양."
현관문이 열리며 아즈미 씨가 내게 인사말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갑작스런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준코 씨에게도 이야기 상대가 필요했으니까요. 어제를 제외하고 최근에 들어서는 아무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거든요."
"그랬나요?"
"아드님과 사토 씨를 제외하고는 친척도 연고도 없으신 분이거든요. 병때문에 제대로 대화가 성립이 안 되고 이상행동 때를 빼면 밖에도 잘 안 나오시니 대체로 혼자 지내세요."
"아아..."
이른바 고독이란 걸까? 뭔가 묘한 기분이다.
"사정은 어제 듣긴 했지만... 모쪼록 준코 씨에게 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직원 수가 적다보니까 아무래도 좀 소홀해진 감이 있었거든요. 잠깐이나마 도와주신다니 저희로선 반가웠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럴 때야말로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여야한다. 한 번 시작하기로 한 것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끝낸다. 제빵에 있어서도 목표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현재 시각 오전 10시 반. 나 오오하라 미치루의 작전을 시작한다.
어제 저녁, 나는 앞으로 내가 할 일을 사토루 오빠, 사토 씨, 아즈미 씨에게 설명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준코 씨와 같이 생활하면서 잠들어있는 기억을 꺼내는 작전이다. 당장에 쓸 수 있는 시간은 휴가를 낸 2박 3일. 그 시간 안에 안 되면 되도록 수시로 찾아와서 말동무가 되어준다. 완전히 하드한 스케줄이지만 이 길만이 도망치지 않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 빵의 레시피는 준코 씨에게 있어서도 소중한 것이었을 테니 분명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이다. 오와라 씨가 그토록 레시피를 찾으려고 했던 이유도 어머니인 준코 씨와의 유일한 연결점이여서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그걸 사토 씨가 스스로 이어받아서 지금까지 온 것이고. 그리고 그 임무는 지금 내게 맡겨진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준코 씨, 손님 오셨어요."
"아아, 들여보내 주세요."
오가사와라 준코 씨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창문 근처 의자에 앉아있었다. 어제 우리가 그 자리에 그대로 놓고 간 의자는 위치가 바뀌지 않은 채 우두커니 놓여있던 채였다. 마치 우리가 나간 뒤에 시간이 완전히 정지해버린 느낌이었다.
"수고했어요 아즈미 양. 미안한데 녹차 두 잔만 내올 수 있나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즈미 씨는 준코 씨에게 그런 말을 남기고 살며시 문을 닫았다.
"여기 앉으세요... 저... 이름이?"
"오오하라 미치루입니다."
어제 몇 번이고 그녀에게 말했던 이름을 오늘도 다시 전했다.
"아, 어제 왔던 분이로군요... 요새 기억력이 많이 안 좋아져서요"
"괜찮아요. 기억해주신다면 다행이죠."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휴가를 냈거든요. 그래서 봉사활동 식으로 해서 이곳에 왔어요."
"그렇군요. 고마워요. 이걸로 아즈미 양도 한숨 놓으시겠어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일단은 어제 일에 대해 기억해주셔서 다행이다. 적어도 완전히 잊혀지지는 않았다는 소리니까.
"그런데 오하라 양, 혹시 근처에서 화분 못 봤나요?"
준코 씨가 이름에서 한 글자 빼먹힌채로 나를 불렀다.
"오오하라입니다. 근데 화분이라뇨?"
"창문가에 화분을 하나 뒀었는데 어디로 간건지 모르겠네요. 혹시 아시나요?"
"글쎄요..."
화분 같은 건 본 적이 없다. 분재라면 밖에 있을 텐데.
"준코 씨, 오오하라 양, 차 준비해왔습니다."
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리며 아즈미 씨가 안으로 들어왔다. 왼손에는 쟁반에 흰색 찻잔과 주전자가 올려져있었다.
"저, 아즈미 씨? 준코 씨께서 화분을..."
"화분 말인가요? 그거 방 옮기기 직전에 깨뜨리셨잖아요."
아즈미 씨의 대답을 듣고서 준코 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제가 깨뜨렸다고요?"
"네, 방 옮기기 전 날에 정리하다가 떨어뜨리셨어요."
"그랬군요. 꽤 좋은 화분이었는데 아깝네요..."
아쉬운 듯이 말을 흐리며 그녀는 찻잔 하나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아즈미 씨가 곧바로 그 안에 갓 우려온 녹차를 따라주었다. 맑은 녹색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 비주얼은 누가봐도 정말 제대로 우려낸 물건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오오하라 양도 한잔해요."
"아, 감사합니다."
나는 채워진 녹차 잔을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다. 맛은 평소에 맛봤던 것과는 달리 떫은맛이 많이 중화되어있었다.
"아즈미 씨, 물 한 컵 가져다 줄 수 있나요?"
준코 씨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물이요? 어디에 쓰시게요?"
"키우던 화분에 물을 줘야지... 화분은 어디 갔지?"

 이후 좀 더 대화를 나누다가 일주일에 세 번 있는 치료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준코 씨를 1층에 교육실이라 이름 붙은 방에 들여보내고, 나와 아즈미 씨는 점심 준비를 위해 주방으로 향했다. 거기에선 이미 세 명 정도가 음식준비를 하고 있었고 몇몇 개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대체로 통일된 메뉴였지만 세 분 정도가 음식을 씹으실 수 없어서 그 분들을 위한 특식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아직 안되어 있던 쌀을 씻는 쪽에 가세했다. 여자라면 음식 몇가지는 할 줄 알아야한다면서 반강제로 배워둔 게 여기서 써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준코 씨의 기억은 꽤 오락가락하는 상태였다. 몇몇 개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거나 키워드를 주면 회상할 수 있었지만, 어쩔 때는 완전히 잊어버릴 때도 있었다. 주로 아주 오래전 일이라면 어느 정도 기억하고 있었지만 최근으로 오면 올수록 기억하는 게 한정되어 있었다. 사토 씨에 대해선 거의 잊어버린 상태였고 아들인 오가사와라 씨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기억하고 계시지 않았다. 단지 말의 울림에서 낯설지 않다고 하시는 걸 보니 아직 가능성은 있어보였다. 하지만 어떻게 그 가능성을 끌어올려야 할지는 아직 궁리를 해봐야할 것 같다.

"오오하라 양, 손놀림이 꽤 유연하네? 집이 빵집이여서 그런가?"
아즈미 씨가 옆에서 내가 쌀을 씻는 걸 보며 물었다.
"빵에는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고 배웠거든요. 처음엔 치대니까 힘도 좀 붙어있지만요."
"하긴 그렇겠네요. 반죽하는 건 참 힘든 일이니까."
"하지만 즐거워요. 근력이 필요한 건 이미 익숙해졌고, 제대로 반죽한 밀가루가 예쁜 모양으로 발효되는 걸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거든요."
"호오... 나중에 한 번 보고 싶은데요?"
"재료만 있으면 여기서도 만들 수 있어요."
"재료 말이군요..."
갑자기 아즈미 씨가 말을 흐렸다.
"사실, 우리는 반죽 같은 걸 할 수 없어요."
"왜요?"
"준코 씨 때문이죠. 반죽을 치대는 소리만 들어도 갑자기 오셔서는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시거든요. 그런데 나오는 건 다 이상한 거라서. 옆에서 도와준다고 해도 위협하면서 말리고... 거기에 밀가루를 좀 사다놓으면 그걸 찾아내서 뭔가를 만들려고 하세요. 마구잡이로 어질러지고 망가지는 게 결과지만. 그래서 준코 씨가 이곳에 온 뒤로는 밀가루를 쓸 수가 없게 되었죠."
"그럼 어제 말씀하신 게..."
"어제 말한 것의 자세한 사항이 바로 그거에요. 뭔가를 하시고 싶어 하는 건 알겠는데,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도 모르고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함부로 어떻게 못하는 실상이에요."
"흐음..."
어제도 간략하게 듣기는 했지만 역시 어렵다. 온갖 분들을 모시는 전문 요양사라고 해도 힘들어하시는데 내가 시도해보려 한다. 큰소리치면서 계획을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나도 특별한 대책이나 방법이란 게 없다. 옆에서 이야기하면서 가까워지며 기억을 회상하고 잃어가는 과정에서 남아있는 파편을 모으려 하는게 전부다. 그래도 하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우리가 비록 모든 걸 만족시켜주지는 못해도 적어도 여기서 떠나기 전 까지는 끝까지 성심성의껏 뒤를 봐드릴 거예요. 한 번 일을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하지 않나요?"
"그거는 저와 의견을 같이 하네요."
"그래요? 우리 은근히 잘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살며시 미소를 보이며 아즈미 씨가 말했다.
밥솥에 쌀을 안치고 반찬도 거의 끝났을 때쯤엔 어느덧 시간이 정오가 되어있었다. 점심 시작은 앞으로 30분 뒤이니 딱 맞춰서 끝낸 셈이다. 다른 분들은 살짝 지쳤는지 쉬기 위해 의자를 갖다가 앉았고 나는 좀 더 건물을 둘러보기 위해 주방을 나왔다. 2층은 봤지만 아직 1층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도의 구조 자체는 2층과 같은 ㄱ자 모양에 벽 한편에 각 방의 입구가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당 전체를 개조해서 만든 정원 쪽으로는 강화유리로 된 미닫이문이 있다는 것이다. 정원으로 꾸며진 마당에는 오늘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준코 씨를 포함해서 전원이 교육실에서 배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교육실은 복도로 뚫린 창문이 없어서 안에서 뭘 하는지 보이지 않지만 소리는 들려서 대충 뭘 하고 있는지 예상은 할 수 있었다. 들어가 봤자 민폐일 테니 나중에 한번 이야기를 들어봐야지.
"오? 시원하네."
가져온 빵 하나를 들고서 정원 쪽으로 나와 보니 시원한 바람이 이 공간을 채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방향에 따라 잔디와 나무가 흔들려서 특유의 쓸어내리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연못에는 비단잉어 세 마리 정도가 살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덩치가 커서 이곳에서 꽤 오래 살아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정원이라면 이곳에서 조용히 요양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그래, 이건 마치 다른 곳과는 이상한 힘으로 막혀있는 듯한 독립적인 세계 같다. 물론 과장이겠지만 여기에 있다 보면 그런 느낌이 들을 수밖에 없다. 본래는 이 건물을 지은 사람이 조용히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었다는 건물이니 그런 걸 수도.
"하지만..."
준코 씨는 이곳으로 오지 않는다. 그렇게 들었다. 오직 자신의 방에서 바깥 마을의 풍경만 바라본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말이다. 왜 그런 걸 물어보지 않았는지 질문을 던져도 돌아오는 대답은 '준코 씨가 말해주지 않고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였다. 정말로 그런지 의심스러운 대답이긴 했지만 당장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따가 방에 들어가서 물어보는 수밖에. 왠지 질문할 거리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 건 기분탓일라나?
"오오하라 양?"
뒤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코 씨. 치료는 끝났나요?"
"덕분에요."
"이제 점심 드시러 가셔야죠."
"그래야죠. 오오하라 양도 같이 어떠신지요?"
"네, 곧 갈게요."
당장은 조금은 정리할게 있다.
"알겠어요. 아, 오오하라 양...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며 준코 씨는 복도를 걸어 시야 속에서 사라졌다. 그 감사의 말은 대체 뭔지 모르겠지만 아마 찾아온 것에 대한 감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점점 방에서 다른 분들이 나와 식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삼삼오오 모여서 가는 풍경을 보면 왠지 학교 점심시간이 생각난다. 나이를 먹든 안 먹은 사람이란 건 다 똑같나보다. 나는 다들 들어갈 때쯤 뒤따르면 될 것 같다. 손에 들고 있는 빵을 다 먹으려면 좀 더 걸릴 것 같으니까.

 "오오하라 양, 죄송한데 잠시 심부름 좀 부탁할 수 있을까요?"

 아즈미 씨에게 그런 부탁을 받아버려서 나는 지금 시내에 있는 마트에 나와있다. 목록을 보니 당장 필요한 화장지나 기저귀, 욕실용품 등의 생필품들과 식재료였는데 직원 한 명만 가기에는 양이 너무 많았다. 다른 사람들은 일 때문에 움직일 수 없어서 내가 용병으로 등장한 것이다. 마트는 거기서부터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고 내부는 대도시의 그것과 별 다를 바 없이 물건과 사람 둘 다 많았다.
"저는 이 목록에 있는 걸 구할테니까 그쪽 좀 부탁할게요. 특이사항이 생기면 적어준 연락처로 전화해주시고요."
"네."
"그리고 고마워요. 덕분에 살았어요."
그 말을 남기고 그 직원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하긴 이런 식으로 역할분담을 하면 더 빨리 끝나겠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나는 손깍지를 펴 몸을 푼 뒤에 카트를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마트에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똑같은 게 너무나도 많아 뭘 고를지 계속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세일파티라 계획에 없는 충동구매를 하기 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목록을 만드는 것이고. 물론 안 지키는 게 태반이지만.
"으..."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확실히 살게 엄청 많다. 적혀있는 수량대로 샀을 뿐인데 벌써 카트가 꽉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여기서 더 쌓으면 앞이 보이지 않으리라. 하지만 문제는 이게 절반 온거다.
"이건... 너무 쉽게 봤네."
솔직해지자. 나는 얕보고 말았다. 많아봤자 설마 꽉꽉 챙겨서 가겠어? 라는 마인드였다. 역시 어디를 가든 방심은 금물이다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 것 같다.
"어디보자 다음은..."
다음 목표는 다행히 부피가 작은 놈이다. 빈공간을 보니 그나마 들어갈 자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돌아가면 아즈미 씨ㅅ에게 마트 배달서비스를 한번 이용해보라고 권유해볼까?
"앗."
갑자기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 카트를 멈추고 번호를 확인해보니 같이 마트에 온 직원이었다.
"여보세요?"
"오오하라 씨?"
뭐지? 목소리가 뭔가 급해 보인다.
"네, 오오하라입니다만 무슨 일이에요?"
"지금 산 것만 갖고 모이기로 했던 계산대로 와주세요. 급히 돌아가 봐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네?"
이렇게 갑작스레? 무슨 트러블이라도 생긴 모양이다.
"무슨 일인데요?"
다음으로 들은 말은 문제도 그냥 문제가 아닌 제대로 큰일에 걸리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가사와라 준코 씨가 사라졌습니다."

 급히 요양원으로 돌아와 보니 6명의 직원이 한데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엿보였고 공기는 심해에 가라앉은 것처럼 무거워져있었다. 한 명은 어깨를 떨며 조금씩 들썩이는 걸 보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 같았다. 아까 전만해도 평화로웠던 공간은 완전히 초토화 되어 버렸다.

"경찰에는 연락했어요?"

아즈미 씨가 직원 중 한명에게 물었다. 보아하니 그녀가 이 상황을 정리하고 지휘하는 역할인 것 같다.
"일단 전화는 돌렸습니다만 언제 연락이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CCTV는요?"
"현관을 나가는 것 까지는 확인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화면에 잡히지 않고요."
"특이사항은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택시가 한 대 지나갔습니다... 역시 그건가요?"
"...그런 것 같군요. 아, 오오하라 양."
이제야 눈치 챈 듯 아즈미 씨가 이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소리에요? 준코 씨가 사라졌다고요?"
"네, 최근에는 조용하셔서 이제 다행이다 싶었는데... 방심하고 말았어요."
"어디로 갔는지는 아나요?"
"모르겠어요. 지금 보니 택시를 타고 간 것 같아요. 만일에 대비해 역에 직원을 보내기는 했지만 너무 늦지만은 않길 바랄 뿐이에요."
이 무슨 일인가...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대로 가면 지금까지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거니와 준코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일단 여기 있는 직원 분들은 모두 준코 씨를 찾으러 나가주세요. 그동안 이곳은 제가 관리하고 있겠습니다.
아즈미 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든 직원이 밖으로 나가 추적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택시를 타고 간 이상 어디로 가든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치매라는 병에 걸리시긴 했지만 지금까지의 그녀를 생각해보니 정상인처럼 보일 가능성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찌되었건 빨리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오오하라 양은 일단 여기에 계셔주세요. 이번 일로 당신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저도 찾아 나서고 싶어요."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섣불리 움직이면 오히려 헤매게 될 거에요."
"하지만..."
이대로 나 혼자 가만히 있는 건 이제 사양이다. 겨우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되었는데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다. 별거 아닌 이유 때문에 멈춰서버린 내게 다시 한 번 스스로의 힘으로 이건 하고 싶다고 말한 일이다. 여기서 빠져도 될 부외자가 아니란 말이다.
"그럼 일단..."
일단 준코 씨의 방으로 가보자. 혹시 뭐라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방으로 들어가 보니 방은 상당히 어질러져 있었다. 그녀가 뒤진 건지 직원이 뒤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급하게 뭔가를 찾으려했던 흔적이 보인 건 확실했다. 나는 곧바로 열려진 서랍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들어있는 것이라고는 옷가지와 속옷 같은 것뿐이었다. 여기서 뭔가를 보관할만한 건 서랍과 장롱뿐인데 장롱도 별다른 건 없었다. 옷을 가져간 흔적은 없고 애초에 완전히 열려진 여행 가방이 있고 미처 정리 못한 내 짐도 지퍼가 열린 채 그대로 있으니 보니 뭔가를 가져갔다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아까 아침에 입었던 옷 그대로 나갔다는 건데...
"응?"
그러고 보니 나 가방의 지퍼를 아직 연 적이 없는데...?
"설마..."
나는 재빨리 내 짐을 확인했다. 옷가지고 수건이고 샴푸고 모든 건 제자리에 있었다... 한 가지를 빼고."
"레시피 노트!"
가방 한켠에 넣어놨던 사토 씨가 준 오가사와라 씨의 레시피 노트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한 권만 남았다. 혹시 몰라서 노트를 펼쳤지만 역시 별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근데 왜 가져간 거지?"
직원이 그런 걸 가져갔을 리 만무하므로 범인은 준코 씨 밖에 없다. 하지만 뭣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노트들에 쓰여 있는 건 레시피와 이곳의 주소뿐인데...
“으으...”
나는 다시 한 번 노트를 뒤져보았다. 혹시 내가 발견 못한 힌트라도 있는지 찾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적힌 곳을 제외하면 깨끗한 빈 노트...
“찾았다!”
전에 보지 못했던 삐뚤빼뚤한 글자가 노트의 마지막 페이지에 쓰여 있었다. 그것도 단 한 글자.
“집...”
한자로 쓰인 집을 뜻하는 한자. 이거 단 한 개만 쓰여 있었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해석할 시간은 없다. 솔직히 이건 때려 맞히는 수밖에 없다. 자, 생각해보자... 준코 씨가 집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쓴 이유를... 대체 어디를 집이라고 하는지... 그녀에게 있어서 집의 의미는...
“사토 씨!”
나는 재빨리 사토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라면 이걸 알지도 모른다. 정답일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
“여보세요...?”
폰 너머로 사토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토 씨! 저 급한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요?”
“네!? 아, 네...”
적잖이 놀란 듯 목소리의 톤이 올라갔다.
“오가사와라 씨의 집이 어디죠?”
“...집이요? 오와라 군의 집이요?”
“네.”
“없어요... 집 같은 건.”
“그게 무슨 소리에요?”
“오와라 군의 집은... 철거되었거든요.”
집이 철거되었다... 그럼 가봤자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물론 준코 씨는 그런 거 모르겠지만.
“그곳 주소를 알려주세요.”
“갑자기 무슨 일인데요...?
“준코 씨가 실종되었어요. 아마 거기로 갔을 거예요.”
“네!?”
그렇다. 지금은 요양원에 있는 오가사와라 준코 씨가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 그런 장소는 한 곳 밖에 없다.
“...알겠어요. 아니, 제가 그냥 거기로 갈게요.”
“괜찮겠어요?”
“회사는 반차내면 되요. 지금 요양원에 있는 거죠?”
“네.”
“알겠어요. 바로 갈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전화가 끊겼다. 아마 일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이쪽으로 달려오는 거라 생각한다. 문제는 얼마나 빨리 도착하느냐에 달려있을 뿐.
“후우,,,”
아직 방심을 이르지만 왠지 긴장감이 쫙 풀려버렸다. 아직 이러면 안 되는데 한번 긴장이 풀린 몸은 쉽사리 다시 들려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사토 씨가 올 때까지 이러고 있자.
“...배고파.”
시간대를 보니 슬슬 빵이 부족할 때가 왔다. 설마 그것 때문에 이렇게 못 움직이는 거라면 웃긴 일이겠지만 아예 신빙성이 없는 건 아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는 거지만 오빠 말대로 정말 연비 나쁜 몸이다.

 사토 씨의 운전 실력이 이렇게나 좋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제한속도를 꽤 초과하면서 빠르게 달려 나가는 차를 그녀는 거침없이 능숙하게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성격 상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괜찮아요?”

사토 씨가 나를 향해 물었다. 안색이 그리도 안 좋은가?
“괜찮아요. 살짝 놀랐을 뿐.”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니까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아니 그 쪽이 아닌데. 그리고 어느새 사토 씨의 말에서 늘어짐이 사라져있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오가사와라 씨의 집으로 간 걸까요? 그것도 레시피 북을 갖고.”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이 그거다. 이제 더는 집의 위치 같은 건 기억할 수 없을 텐데... 나는 그런 계기를 만들지도 않았고. 그럼에도 거침없이 요양원을 나갔다는 건 뭔가 있다는 걸까?
“아마 기억이 난걸 거예요.”
“네?”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매우 강렬한 키워드는 사람의 심층에 있는 기억을 꺼낸다고 해요. 아무리 기억을 잃었어도 말이죠. 아마 그 분의 키워드는 레시피 북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아들인 오와라 군이 직접 만든 노트에요. 환상의 빵이라는 건 분명 어머님이 오와라 군에게 만들어준 빵의 이름일거예요. 아마 노트를 보고 그 시절이 떠올려진 거겠죠. 아들에게 빵을 만들어준 그 때가요.”
“그렇다면... 결국 제가 계기를 만든 셈이 되겠네요.”
“의도치 않았겠지만요. 하지만 차라리 잘 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네?”
사토 씨는 거기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뭔지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고 그 생각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울먹이는 표정을 지어버리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오가사와라 가족은 모든 걸 버리고 이렇게 행동할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걸...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서 우리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주위는 마침 자라기 시작하는 작물들이 가득했고 벼들도 심어지기 시작했다. 길은 흙길에 집들은 군데군데 몇 집씩 뭉쳐있고 산들이 병풍처럼 그 뒤를 감싸고 있는 것 같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마을... 이곳이 오가사와라 씨의 집이 있는 장소였던 것인가...

“놀랐죠? 오와라 군의 집이 있던 장소.”

“네... 설마 시골이었을 줄은.”
“당시엔 꽤 큰일이었어요. 어머니를 모셔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여기에 살아야 했으니까요. 저랑 만날 때도 대학에 다닐 때를 제외하면 원거리 연예였으니까요.”
“아아...”
꽤 큰일이었겠구나. 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저기에요.”
사토 씨가 가리킨 곳은 아무것도 없는 빈 터였다. 집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사라진 그저 마른 흙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쓸쓸한 빈 터... 그곳에는 눈에 익은 한 사람이 서있었다.
“준코 씨!”
우리는 차를 세운 뒤에 곧장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겉으로 본 준코 씨는 다행히도 큰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아, 오오하라 양... 유리코...”
모든 게 기억난 듯이 준코 씨는 우리의 이름을 불렀다.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사토 씨는 그녀를 보자마자 손을 부여잡고 주저앉아버렸다. 마치 모든 긴장이 풀려버린 듯이 말이다.
“기억이...”
“돌아왔단다. 하지만 이것도 아마 일시적이겠지. 난 느낄 수 있단다. 내일이면 전부 잊어버릴 지도.”
그렇게 말하는 준코 씨의 표정은 왠지 슬퍼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기억을 잃는 것만큼 괴로운 건 없을 테니까.
“왜 이런 곳에 오신 거예요...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미안하구나. 하지만 꼭 오고 싶었단다. 모든 게 떠올랐을 때, 아직 늦기 전에. 나는 단지 이곳에 그저... 예전 일들을 마지막으로 떠올리고 싶었을 뿐이란다. 오가사와라... 하지메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구나. 그렇지?”
“오와라 군은... 오와라 군은...”
사토 씨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안다. 알고 있었어. 거기 직원들이 나의 보호자 이름을 너로 바꾸면서 말하는 걸 엿들었거든. 그때는 잊어버렸지만 지금 기억나버렸어. 그래서 더욱 이곳에 오고 싶었단다. 난... 아직... 내 아들에게 작별인사도 하지 못했으니까... 그래, 난 그러려고 이곳에 온 거야. 추억을 곱씹으면서, 전부 잊어버리기 전에...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
그 말을 하고서 결국 준코 씨도 주저앉아버렸다. 둘 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허공이 소리를 질렀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억의 부활, 그 사이에 하고 싶었던 마지막 인사... 거기 사람들에게 부탁하기도 전에 그녀는 먼저 몸이 움직여버렸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한테도 이런 장면을 보이고 싶지 않을 테니까... 소중한 사람을 보내는 데는 큰 고통이 따르니까.
“...시야가 흐려지네.”
어느새 내 시야도 흐느적거리며 그 형태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경험은 정말로 오랜만이다. 아니, 그때 활동 중단 선언 이후로 처음이다. 그때 나는 도망치고 말았다. 온갖 압박감과 기대감에서... 나의 목표가 부서질 것 같은 불안감에... 절대 그럴 리 없는데도 나는 그렇게 단정 짓고 말았다. 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그때도 주위는 이런 풍경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느낌이었다. 그때는 도망친 것에 대한 창피함과 미안함이었다면... 지금은... 지금은...


-에필로그-

 

 이후로 준코 씨는 나와 사토 씨가 안전하게 요양원까지 모셔다드렸다. 아즈미 씨에게는 말도 없이 뛰쳐나온 것에 대해 사과했고 똑같은 짓을 한 나도 사과했다. 그녀는 그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기억이 돌아온 것에 대해 축하한다는 말을 드렸다. 이 사건은 경찰 사이에서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난 모양이다.

 결국 준코 씨는 다음 날, 그날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는지, 자신의 고향조차 전부 잊어버렸다. 하지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그곳을 사진으로 남겼다는 것. 그리고 이번엔 오가사와라 하지메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는다는 것... 사실 그게 좋은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까.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토 씨는 이번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시말서를 쓰는 것으로 운좋게 끝났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운전대를 잡으면 사람은 확연히 변한다는 것을.

 나는 결국 환상의 빵의 레시피를 얻었다. 그 정체는 어이없게도 단순했다. 바로 준코 씨가 직접 키웠던 딸기로 만든 생크림을 넣은 딸기바게트. 그것은 오가사와라 씨의 레시피 북에도 들어있던 것이었다. 아마 깨닫지 못한 이유는 그 딸기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하고 조심히 예상해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어릴 적에 직접 만들어준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

 뭐, 이걸로 일련의 사건은 모두 종료되었다. 우리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고 나는 오오하라 베이커리 2호점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다시 아이돌이 될지 말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젠 방황하지 않을 것이라 맹세한다. 그 맹세를 확실히 지킬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멋지게 컴백을 선언할 것이다. 그때까진 그냥 예쁜 빵집 아가씨로서의 삶을 만끽하고 싶다. 사실 아이돌이 되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거였고.

 오늘은 4월 12일, 나는 사토루 오빠에게서 갑작스런 초대장을 받고 어디론가 가는 길이다. 주체는 그때 오빠가 갔었던 제빵 모임. 아직 내가 그 자리에 올라온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초대장이 보내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거 가보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 한손에는 큼지막한 빵봉투를, 다른 한 손에는 초대장을 들고 가보도록 하자. 그곳에 뭐가 준비되어있든 나는 놀라지 않을 준비가 됐다.

 그 준비가 너무나 완벽하게 깨지게 될 줄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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