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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루] 오오하라 미치루는 움직이지 않는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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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1, 2017 23:55에 작성됨.

                                               -4-

 도시를 벗어난 전철은 점점 바깥의 풍경을 바꿔갔다. 크게 쌓아올린 건물이 점점 없어지고 그 자리를 조그만 건물과 산들이 대신 채워갔다. 방향이 주위에 있는 위성도시와도 멀어져있어서 조금만 더 가면 근교 시골의 풍경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타고있는 칸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남은 사람은 나와 사토 씨 둘 뿐이었다. 침묵이 채워져 가는 공간을 레일과 바퀴가 만들어내는 덜컹 거리는 소리와 전철 특유의 엔진 소리가 대신 몰아내고 있고 차체는 조금씩 흔들리면서 균형을 맞춰갔다. 바깥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빛은 아직 한낮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지만 해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걸 알려주듯 그림자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고, 아마 도착하고 나서 진위를 확인할 때면 그 색은 점점 붉게 물들어갈 것이다. 봄이라고는 해도 낮은 아직 생각보다 짧다.

 사토 씨는 요양원을 알아채자 그곳이 오가사와라 씨의 어머니가 계신 곳이라는 걸 얘기해줬지만 그 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질문을 해도 잘 모르겠다고 하거나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눈치를 봐선 뭔가를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상 아무 얘기도 안하는 걸 보면 대답하기 곤란한 게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부러 대답을 회피하는 거라면 지금은 직접 보고 확인하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다. 살짝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사토 씨?"
하지만 당장은 이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고 싶다. 이런 무거운 공기는 견디기가 힘들다.
"아, 미안... 잠시 딴 생각을 좀 하느라... 근데 무슨 얘기 했어?"
그녀가 갑자기 놀란 듯이 몸을 들썩이며 눈이 휘동그래졌다. 갑작스런 반응에 나도 조금 당황했지만 그만큼 생각할게 사토 씨에게도 많다는 것일지도.
"아뇨, 별 다른 얘기는 안했어요. 그냥 멍하니 있길래..."
"멍하니 인가... 그랬구나..."
왠지 모를 자조적인 미소를 그녀는 내게 지어보였다.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그 숫자와... 오와라 군의 말들을..."
"무슨 말이죠?"
"...우리는 어쩌면 헛걸음 할지도 몰라."
"설마요. 그런 건 일단 가봐야 알지 않을까요?"
"그래... 직접 봐야지만 아는 것도 있을 테니까..."
계속되는 의미심장한 발언은 나의 궁금증을 증폭시킴과 동시에 뭔가 깊은 사실에 잠겨가는 것 같았다. 그걸 알게 되면 더 이상 일을 진행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도 같이... 마치 예전의 그때처럼 말이다.
전철은 어느새 우리가 목적으로 한 역에 도착했다. 조그만 마을의 한편에 자리 잡은 그 역은 하나하나가 큰 도시의 그것과는 달리 정말 역으로서의 역할에 필요한 필수요소를 제외한 건 전부 배제한 형태였다. 플랫폼에는 우리 외에 손으로 가리키며 셀 수 있을 정도의 사람만 있는 한산한 풍경이었고 주위에 높은 건물은 눈에 띄지 않았다. 기껏해야 3층 정도? 도시를 피했다고 할 정도로 경로가 짜여 있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소박할 줄은 몰랐다.
"가볼까?"
사토 씨가 살짝 앞장서며 말했다. 마치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네."
나는 곧장 그 뒤를 따라갔다. 그 뒤에 개찰구를 빠져나와 택시를 하나 잡고 주소를 보여주며 목적지로 향했다. 왕복 4차선의 도로에는 자동차가 그리 많지 않았고 거리는 꽤 한산했다. 그래도 왠지 모를 생기는 느껴졌다. 이리 채이고 저리 차이는 복잡한 도심과 번화가와는 다른 여유를 가진 것 같았다. 소박하다고 해야 할지 작음의 미학이라 해야 할지 어찌되었건 이쪽이 훨씬 행복해 보인다.
역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우리는 주택가에 도달했다. 자동차 두 대 정도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을 가진 좁은 도로와 단층과 2층집이 가득한 이 곳은,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와 집에서부터 새어나오는 생활소음들이 어우러져 단조로운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어주었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목조건물의 비율이 조금씩 많아졌고 긁힌 자국이나 희미하게 남아있는 낙서, 색이 바래고 갈라진 담장 같은 세월의 흔적도 엿보였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이 실존한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도착했습니다."
바깥을 계속 감상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잊고 있었다. 택시요금은 사토 씨가 대신 지불해주면서 우리는 차문을 열고 빠져나와 땅 위에 발을 디뎠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 펼쳐진 건물 한 채를 눈에 담았다. 다른 집들보다 두 배 정도 큰 그 목조건물은 예전엔 돈이 좀 있는 사람이 만들었는지 뭔가 고풍 있는 느낌이었다. 2층 구조에 약간 어두운 색의 나무 벽, 현관에는 요양원이라는 글자의 명패와 함께 잘 관리해놓은 미닫이문이 자리 잡고 있었다. 초인종은 현관 오른쪽에 있는 커다란 빨간 단추였다. 단추를 누르는 느낌은 약간 묵직했고 끝까지 밀어 넣자 뭔가 걸리면서 달칵 소리와 함께 커다랗게 띵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를 때 한 번 손에서 놓을 때 약간 낮게 한 번 더 울리는 그 소리는 전자식이라고는 보기 힘든 소리였다.
"네에~!"
먼 곳에서 부터 어떤 여자의 소리가 찾아왔다. 그리고 점점 급히 걸어오는 듯한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이내 문이 열렸다. 나온 여성은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외모에 갈색 단발머리고 유카타 위에 앞치마를 메고 있는 차림이었다.
"안녕하세요, 이곳엔 무슨 볼일로 오셨... 사토 씨인가요? 오랜만이네요."
사토 씨를 보자 그녀는 반가운 목소리로 우리를 반겼다.
"안녕하세요, 2년 만이네요..."
"안 본 사이에 더욱 예뻐지신 것 같네요. 근데 옆에 분은 일행이신가요?"
"아, 네. 오오하라입니다."
"반가워요 오오하라 양. 전 아즈미라고 합니다. 여기에 계속 서있는 건 뭐하니 일단 안으로 들어가서 얘기할까요?"
아즈미 씨는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내부는 바깥의 크기에 맞게 꽤 널찍했다. 현관에는 신발장에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는데 각각 이름표가 있어서 누구의 것인지 쉽게 구분 할 수 있게 해놓았고, 위에는 마지막 매무새를 확인하기 위한 거울이 달려있었다. 현관 왼쪽에는 2층까지 이어진 완만한 경사로가 있었고 그 옆엔 복도와 여러 방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입구에는 방의 용도를 설명하는 이름표가 붙여있었다. 우리는 손님용 슬리퍼로 갈아신고 응접실이라고 붙여진 방에 안내받았다. 안내받은 방은 탁자와 소파, 여러 서류가 꽂혀있는 등 응접실이라고 불릴만한 구조와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잠시 앉아계세요. 커피를 타올게요."
아즈미 씨는 우리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우리는 그녀의 말대로 소파 한편에 앉았다.
"역시 와본 적이 있었군요."
운을 먼저 뗀 건 나였다.
"오와라 군이랑 같이 갈 일이 있었거든... 그 때 한번 뵈었었어. 그 숫자가 설마 이곳의 주소였을 줄은 몰랐어..."
"그건 오가사와라 씨가 쓴 걸까요?"
"모르겠어...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할 일이니까 써놓은 거라고 생각해..."
반드시 기억해야할 일인가... 뭔가 아련한 울림이 있는 말이다.
"죄송해요, 좀 늦었죠?"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아즈미 씨는 다시 이쪽으로 찾아왔다. 손에는 쟁반과 그 위에 종이컵 3개가 들려있었다.
"아니에요. 그럼 잘 마실게요."
나와 사토 씨는 커피를 받아들고 한 모금 마셨다. 믹스커피 특유의 단맛이 입안에서 감돌았다. 식빵 같은 걸 찍어먹으면 좀 더 좋을지도.
"사토 씨, 소식은 들었어요. 같이 있어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저도 이쪽 일이 바빠져서..."
"괜찮아요. 저도 연락을 드릴 겨를이 없었는걸요... 마음이라도 감사히 받을게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때가 온 것 같다. 말하는 건 일단 사토 씨에게 맡기기로 하고.
"저... 오가사와라 군의 어머니를 뵈러 왔어요. 잘 지내고 계시는 거죠...?"
"그러시군요. 예, 잘 지내세요. 전보다는 활동량이 좀 많아지셨죠. 어디로 튈지 몰라서 계속 직원을 붙여두는 건 여전하지만요."
"힘드시거나 하진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저희가 원래 하는 일이니까요. 걱정 마세요."
이젠 익숙하다는 듯이 말하며 아즈미 씨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안내해드릴게요. 아마 지금쯤이면 방에 계실거에요."
"네,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아즈미 씨의 뒤를 따라갔다. 방에서 나와 2층으로 올라가는 경사로를 향해 가는 길에는 이 시설의 소개 글과 세운 사람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원래 고향이었던 이곳에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지은 건물이지만 좋은 일에 활용해달라는 유언에 따라 요양원으로 개조한 것이었다. 현 주인은 그 분의 손녀로 현직 의사라고 한다. 2층에는 아래층과 비슷한 긴 복도에 은은한 조명이 밝히고 있었고 일정한 간격으로 문이 놓여져 있었다. 경사로를 올라와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안내도로, ㄱ자로 되어있는 복도에 각 방의 위치와 누가 생활하고 있는지 사진이 붙어있었다. 사진 아래는 이름과 보호자,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세어보니 약 스무명 정도가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 같다. 오가사와라 씨의 어머니가 생활하는 곳은 끝자락에 있는 방이었다.
"위치를 옮겼네요?"
사토 씨가 안내판을 흘겨보며 말했다.
"네, 갑자기 거기가 좋다고 하셔서요. 원래부터 빈 방이었으니까 옮길 수는 있었어요."
"그런 게 가능하군요."
"여기서 생활하시는 분들의 부탁은 어지간해서는 들어주려 노력하고 있거든요."
그 분의 방으로 가는 길에 있는 다른 방들은 대체로 닫힌 채였지만 몇몇 곳은 열려있어서 안의 모습이 조금은 보였다. 아무도 없는 곳도 있었고 모여서 얘기하거나 혼자 뜨개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꺾여 들어가는 복도는 한쪽에만 방이 있고 다른 면은 창문이 길게 배치되어 있었다. 바깥에 보이는 풍경은 마당을 활용해서 만든 정원으로 짧은 잔디밭의 한편에 나무들과 연못이 놓여있었고 할머니 한 분이 그 풍경을 보며 앉아있었다. 물결은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일렁이고 있어서 운치가 한층 돋보였다.
"여기입니다."
복도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다. 굳게 닫힌 문에는 오가사와라 준코라는 이름이 적힌 명패가 있었고 보호자 란에는 사토 유리코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아마 사토 씨의 풀네임일 것이다.
"준코 씨, 손님 오셨어요."
아즈미 씨가 노크를 하며 안에서도 들리게끔 목소리를 낸 뒤에 천천히 문을 열었다. 하얀 침대와 잘 정리된 책상과 서랍, 시원하게 난 사각 창문이 있는 방 안에 할머니 한 분이 바깥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꽤 주름이 진 얼굴에 반백발을 하고 있는 그 분은 딱 봐도 나이가 꽤 들어보였다. 저 분이 오가사와라 씨의 어머니인 것인가?
"아, 그렇군요... 어서 와요, 자리는 여기 있으니 앉으세요."
준코 씨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가락으로 반대편에 있는 의자 두 개를 가리켰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놓인 것 같은 그 의자를 나와 사토 씨는 감사를 표한 뒤에 가져다 준코 씨 가까이에 앉았다.
"그럼 전 일단 가보겠습니다. 필요하면 문 앞에 있는 인터폰으로 불러주세요."
아즈미 씨는 그 말을 뒤로하고 문을 천천히 닫으며 빠져나갔다.
"바깥이 참 아름답죠?"
얼마간의 침묵 끝에 먼저 운을 뗀 건 준코 씨였다. 그리고 느긋하게, 마치 손주의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듯이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여기에서 계속 생활하다 보면 이렇게 바깥을 볼 때가 많아지거든요. 지나가는 자동차나 사람,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새, 구름의 흐름, 해의 움직임 같은 거를요. 예전에 있었던 방은 1층이어서 그런 것들이 안보였거든요. 요새 사람들은 너무 앞만 보고 가서 주위에 있는 것들은 전혀 보지 못해요. 당장 앞에 지나가는 게 뭔지는 알아도 하늘에 뭐가 날아다니는지, 내 뒤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심지어는 옆에 누가 있는지조차 모르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잠시 동안만 주위를 보면 자신이 뭘 잊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죠. 그건 매우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당신들의 이름을 말해줄 수 있나요?"
"사토 유리코입니다."
"아, 오오하라 미치루입니다."
할머니는 우리의 이름을 듣고 한참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시작했다. 뭔가 어려운 말투와 거침없는 이어짐에 나는 이 분에게 호감이 생기는 한편 왜 사토 씨가 저런 슬픈 얼굴을 하는지 모르겠다... 잠깐.
"사토 유리코... 오오하라 미치루... 좋은 이름이군요. 자신의 이름은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당신들의 당신들로서 있을 수 있는 건 그 이름을 사람들이 불러주기 때문이죠. 세상에 단 한 사람 밖에 없다면 이름이란 게 필요할까요? 그만큼 이름은 소중한 겁니다."
거기서 말을 끊고 준코 씨는 다시 창문을 바라보았다. 뭐가 있나 싶어서 나도 같이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건 없었다. 그냥 아까와 같은 마을 풍경만이 창문을 채우고 있었다.
"바깥이 참 아름답죠?"
"네?"
갑작스런 물음에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여기에서 계속 생활하다 보면 이렇게 바깥을 볼 때가 많아지거든요. 지나가는 자동차나 사람,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새, 구름의 흐름, 해의 움직임 같은 거를요. 예전에 있었던 방은 1층이어서 그런 것들이 안보였거든요..."
"에, 잠시..."
뭔가 이상해서 말을 막기 위해 끼어들었지만 사토 씨가 제지했다. 일단은 아무 말 하지 말라는 듯이.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잠시 동안만 주위를 보면 자신이 뭘 잊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죠. 그건 매우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당신들의 이름을 말해줄 수 있나요?"
"사토 유리코입니다."
"당신은?"
"아, 오오하라 미치루입니다..."
왜 다시 물어보는 거지?
"사토 유리코... 오오하라 미치루... 좋은 이름이군요. 자신의 이름은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당신들이 당신들로서 있을 수 있는 건 그 이름을 사람들이 불러주기 때문이죠. 세상에 단 한 사람 밖에 없다면 이름이란 게 필요할까요? 그만큼 이름은 소중한 겁니다."
거기서 다시 한 번 말을 끊고 그녀는 다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바깥이 참 아름답죠? 여기에서 계속 생활하다 보면 이렇게 바깥을 볼 때가 많아지거든요. 지나가는 자동차나 사람, 무리지어 날아다니는 새, 구름의 흐름, 해의 움직인 같은 거를요. 예전에 있었던 방은 1층이어서 그런 것들이 안보였거든요. 요새 사람들은 너무 앞만 보고 가서 주위에 있는 것들은 전혀 보지 못해요. 당장 앞에 지나가는 게 뭔지는 알아도 하늘에 뭐가 날아다니는지, 내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심지어는 옆에 누가 있는지조차 모르죠.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잠시 동안만 주위를 보면 자신이 뭘 잊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죠. 그건 매우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당신들의 이름을 말해줄 수 있나요?"
"사토 유리코입니다."
"...오오하라 미치루입니다."
"사토 유리코... 오오하라 미치루... 좋은 이름이군요. 자신의 이름은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당신들이 당신들로서 있을 수 있는 건 그 이름을 사람들이 불러주기 때문이죠. 세상에 단 한 사람 밖에 없다면 이름이란 게 필요할까요? 그만큼 이름은 소중한 겁니다."
준코 씨는 거기서 또 다시 입을 닫고 창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같은 말만 반복하는 모습과 지금 창문을 보며 사색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큰 괴리감이 느껴졌다.
"바깥이 참 아름답죠... 어머나, 지금 이게 몇 번째죠?"
"4번째입니다."
사토 씨가 담담히 말했다.
"4번째... 미안해요. 요새 자주 까먹어서 문제라니까. 그런데... 당신들의 이름을 말해줄 수 있나요?"
"사토 유리코입니다.
"오오하라... 미치루입니다."
"사토 유리코... 오오하라 미치루... 좋은 이름이군요. 아, 이것도 말했었나요?"
전혀 몰랐다는 듯 놀라며 우리에게 그걸 물어왔다.
"네,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계속해서 당황하는 바람에 아무 말도 못꺼내는 나를 대신해 사토 씨가 대신 대화를 이어갔다.
"그랬군요... 미안해요. 요새 머리가 좀 이상해지네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이해해줄 수 있나요... 어..."
"사토 유리코 입니다."
"그래, 유리코 양. 이해해주길 바래요."
"네."
"...저기!"
너무나 이상한 분위기에 나는 손을 들어 준코 씨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마치 시간이 계속 되감아지듯이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는 공간 속에서 나는 절대적인 위화감 속에 갇혀있다. 이런 느낌은 난생 처음이다.
"궁금한 게 있나요... 저..."
그 속에서 그녀만큼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태연히 말을 해왔다.
"오오하라 미치루입니다."
"아아, 미치루 양. 제게 무슨 볼일이라도?"
"저... 혹시 오가사와라 라는 이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깊게 생각에 잠긴 듯 손가락에 턱을 올려놓았다.
"오가사와라... 오가사와라... 미안해요, 잘 모르겠네요. 그게 뭔가 중요한건가요?"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그러네요. 꽤 익숙한 울림이에요."
"정말요!?"
"그렇긴 한데 그 이상은 잘 모르겠네요. 미안해요."
"괜찮아요.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사실 엄청 중요하다. 반드시 들어야하는 대답인데도... 나는 그 이상 그녀를 추궁할 수 없었다. 사토 씨가 제제했기 때문은 아니다. 헛수고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다. 이건... 좀 더 무거운 뭔가다. 그걸 말로 표현하기 위해선 아직 복잡해진 마음을 정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걸 입 밖으로 꺼내면 뭔가 무서워질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뭔가 생각난 듯 준코 씨는 다시 창문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바로 그 지점으로 돌아가 입을 열었다.
"바깥이 참 아름답죠?"

 역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해는 이미 떨어져서 하늘은 도시의 빛으로 인해 별이 가려진 암흑으로 뒤덮인 후였고 기온은 떨어져 점점 쌀쌀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로 가득 차 북적이는 거리는 너무나도 복잡해서 머리가 빙글빙글 돌 것 같다. 언제나 보던 풍경이었는데도 오늘따라 기분이 이상하게 되어버린다. 조용하던 곳에서 얼마간 있는 바람에 이곳이 익숙해지지 못하게 되어 버린건지,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차서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들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둘 다일수도 있고. 솔직히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인데 이렇게까지 무거워질 줄은 몰랐다. 뭐랄까... 이제 좀 지친다.

 그 이후로도 준코 씨는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마치 자신은 단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다는 듯 산뜻하게 말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중에 들은 설명에 따르자면 오가사와라 준코 씨는 치매에 걸렸다. 그것도 상당히 진행되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말도 잘하고 대화도 어느정도 통하나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며, 어쩔 때는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이상현상도 발생한다고 한다. 주로 발견되는 장소는 부엌이나 근처에 있는 슈퍼로 온갖 재료를 꺼내다놓아 뭔가를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늘어놓기만 할 뿐 뭘 만드는지조차 모르고 있고 곧바로 설명을 부탁해도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덕분에 큰 사고가 날 뻔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들었다. 우리가 왔을 땐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만약 일어났더라면 난 당황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겠지. 아주 약간만 맛을 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병에 대한 두려움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자기 자신의 안에서 잊혀진다는 것, 떠올리려고 해도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것, 그리고 자신의 의지인지 아닌지조차 모를 행동들... 모든 것에 나는 무서워졌다.

"이제 어떡하지?"
알고 있다. 그 병 자체는 내가 어떻고 자시고를 따질만한게 아니란 건. 어찌 보면 목표는 달성되었다. 사토 씨가 말했던 부탁은 사람을 찾아달라는 것이었다. 그 당사자를 이런 형태로나마 찾았으니 더 이상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 이대로 묻어버려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일반적이라면 이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왠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결말은 내 안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더 이상 어쩌지 못하는 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기서 더욱 나아가고 싶다. 이유는 단 하나. 오가사와라 씨는 아마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만들었다는 환상의 빵을 다시 한 번 맛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 삐뚤빼뚤하게 쓰인 숫자는 아마 글자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간신히 써내려간 숫자일 것이다. 그리고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났다. 이토록 먹고 싶었던 거라면 그리고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던 거라면 그걸 이뤄줘야 해야하지 않을까? 그 결과가 이리 될 줄은 몰랐지만 그럼에도 여기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어떻게..."
그걸 이뤄주기 위해선 당연히 뭔가 방법을 찾아야한다. 그걸 생각하느라 이렇게 지쳐버린 것이고. 하지만 도저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마치 출구는 알고 있으나 거기까지 어떻게 가야할지 모르는 것처럼...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지만 그때는 도망쳐버렸다. 그래, 활동 중지라는 형태로서. 솔직히 그 결정은 지금도 후회하고 있지만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니, 찾는 걸 포기했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끝까지 이뤄내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 이 두려움부터 어떻게든 해야겠지..."
아마 이건 일시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서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격이니까. 하지만 이 기억은 아마 평생 남아있겠지. 그리고 무서워할지도.
"다녀왔어요."
어느새 나는 우리 집 앞에 도착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다. 원래는 버스로 몇 정거장 건너야하는 거리를 걸어왔으니까.
"늦었네? 어서 와."
"...에?"
그런 나를 맞이한 사람은 뜻밖의 인물이었다.
"사토루... 오빠?"
"뭔 귀신이라도 본 얼굴을 하고있어?"
"아, 아냐... 좀 놀라서."
"흐응... 뭐,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에 선생... 너네 부모님이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셔서.
"그렇구나. 나 간단하게 샤워하고 올게."
"응, 시간은 아직 남아있으니까."
오빠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거실로 돌아가 나의 도착을 알렸다. 나는 너머에서 어서 와라고 말하는 소리에 대답한 뒤에 위로 올라갔다.

 "후아..."

 바깥에서 차가워진 몸을 데우기에는 따뜻한 물을 전신에 끼얹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몸의 라인을 따라 흐르는 물줄기는 나의 구석구석까지 보듬어 따뜻하게 데워준다. 고데기로 웨이브 친 머리카락도 물의 무게때문에 풀어헤쳐져 어깨 아래로 달라붙었다. 아래로 갈수록 고데기의 영향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곱슬이 만들어지고 근 몇 년 동안 커트를 한 적이 없어 꽤 길어졌다. 한번 다듬을까도 생각해봤지만 역시 귀찮다. 한번 길게 길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조금은 커졌을라나..."
타올에 바디클렌저를 듬뿍 묻혀 몸을 닦고 있으면 가끔씩 드는 생각이다. 비누의 향기로운 냄새와 기분 좋은 미끄러짐은 중독될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이 이곳저곳에 손을 대야하기 때문에 굴곡 같은 것이 머릿속에서 대충 그려진다. 예전부터 옆에서 다른 동료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글래머러스하지 않다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딱히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은 살이 붙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하기도 했고. 물론 그때보다는 확실히 자랐지만 아직 확신이 들지 않는다. 거기에 성장도 거의 멈춰버린 상태고... 이럴 줄 알았다면 그쪽을 연구해볼 걸 그랬나?
샤워를 다 끝내고 나와 옷을 입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린 뒤에 아래로 내려가 보니 저녁 준비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만들어진 저녁은 매우 푸짐한 고급 레스토랑 식 메뉴 같았다. 거기에 회장에서 가져온 듯한 빵바구니까지... 매우 완벽하디 완벽하다.
"미치루, 왔으면 좀 도... 우와앗! 누구세요?!"
오빠가 나를 보자마자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그런 말을 했다. 난생 처음 보는 그런 반응에 나는 쿡쿡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섭섭하네. 저에요 저, 미치루!"
"에? 미치루? 언제나 하던 그 크로와상은?"
"샤워했으니까 풀린 건 당연하죠."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 이 사람에게 머리를 푼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던가?
"우와, 완전 다른 사람... 그냥 머리 풀고 다니는 건 어때? 아침마다 힘들 거 아냐."
"뭘 모르네. 그 크루아상 머리야말로 저의 아이덴티티에요!"
그거 하나는 물러날 수 없다.
"그런가... 뭐,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별 수 없지만..."
뭔가 우물쭈물 대는 사토루 오빠였다.
"그... 머리 푼 모습도 예쁘네..."
"뭔 칭찬을 그렇게 해요? 좀 더 당당하게 하면 좋은데."
"됐네요. 빨리 좀 도와줘."
"네에."
대답을 길게 늘어뜨리며 나는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랬었군. 치매라..."
 저녁을 다 먹고 나는 베란다로 사토루 오빠를 불러 그간의 보고를 진행했다. 전철에서 나눈 얘기부터 준코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것 까지 전부.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 일부와 같이. 오빠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몇 가지를 물어보기도 하고 가정도 세우고 했다. 반응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 같으나 나와 비슷한 의문에 봉착한 듯하다.
"사토 씨가 얘기했던 건 그 사람을 찾아서 환상의 빵의 정체를 알아내는 거였어. 하지만 그 당사자는 지금 그런 상태니까 빵의 실체를 알아내는 건 아마 불가능에 가깝겠지."
맞는 말이다. 만들었던 본인이 레시피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헛수고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이 재현한다고 해도 100% 만족할만한 결과물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바로 그 오가사와라 씨가 그 문제에 봉착하여 정체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넌 포기하고 싶지 않지? 그 빵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고 싶다 건 네 성격으로는 뻔한 일이니까."
"네. 여기서 물러서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문제는 그거지. 만약 네가 정말로 환상의 빵을 보고 싶은 거라면 아마 시간이 꽤 걸릴 거야. 그래도 방법을 찾을 거야?"
"네. 이번에는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도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말이지. 뭐,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오빠는 그렇게 말하며 어디선가 빵을 꺼내 입에 넣었다... 에?
"그거 내꺼잖아요!"
"뭘, 나눠먹으면 좋지."
"안돼요! 낮에 계속 돌아다녀서 몸에 밀가루가 부족하단 말이에요!"
"네가 무슨 빵이냐? 너랑 꽤 알고 지냈지만 아직도 그건 이해하기 힘들다."
"됐거든요. 이게 저니까 딱히 상관없잖아요. 알고지낸지도 오래되었다면 알만할 텐데요."
솔직히 저건 일부러다. 처음 봤을 때는 이런 짓을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 장난이 심한 사람이다. 역시 사람은 오래 만나봐야 알 일이다.
"아!"
갑자기 좋은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이거라면 아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왜 그래?"
"바로 그거에요. 좋은 게 떠올랐어요!"
"갑자기 그런 말은 한다고 해도... 설명이라도 해줘봐."
"준코 씨랑 오래 알고 지낸 사이가 되면 되는 거예요!"
나의 대답에 오빠는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그런 사이가 하루 이틀에 이뤄지는 줄 아냐? 게다가 병세가..."
"억지인 건 알아요. 어쩌면 제 욕심일 수도 있죠. 하지만 시도해보지 않고선 모를 일이잖아요?"
생각해낸 방법은 간단하다. 최대한 자주 찾아뵈어서 나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때를 회상해보니 아즈미 씨의 이름은 똑바로 불렀던 것이 기억났다. 아마 자주 보는 사람이니 기억의 한편에 남아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병세가 더욱 더 진행되기 전에 나도 그 기억 속에 합류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잊어버린 기억을 되찾아주고 환상의 빵의 실마리를 찾는다. 아마 제대로 되면 그 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고. 잘 안되어도 그 과정을 통해 준코 씨의 기억이 조금이나마 돌아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아... 너도 참 이상한데서 적극적이더라. 그거 쉽지는 않을 거다. 치매가 그렇게까지 단순한 병이었으면 진작 완치법이 나왔겠지."
이 방법의 설명을 마치고 나서 그의 반응을 보니 역시 부정적이다.
"알고 있어요. 그래도 한번 해보겠어요. 단념은 그 뒤에 해도 나쁘지 않아요."
"...하아."
오빠는 긴 한숨을 내쉬며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다가 이내 깨달은 듯이 손을 뺐다. 예전에 담배를 피우던 버릇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모양이다.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뭐, 됐다. 정말로 네 말대로만 된다면 그만큼 이상적인 것도 없겠지."
"그죠? 그러니까 잘 부탁해요."
"음? 무슨 소리야?"
"당연히 오빠도 도와줘야죠."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인가?
"아니, 내가 왜?"
"그야 오빠도 이 일을 맡았잖아요? 설마 혼자 내뺄 셈인가요?"
"여기서부터는 너의 독단적인 일처리야. 거기까지 내가 관여해야 하는 건가?"
 "관여가 아니죠. 맡은 일은 끝까지 끝낸다. 그게 신조잖아요? 제가 하는 건 부탁받은 일을 완수하기 위한 그런 거라고요." 
 여기서 내빼는 건 용서치 않겠다. 여기까지 들어놓고 도와주지 않겠다는 건 직무유기다.
 "사토 씨에게는... 얘기했을 리 없겠군. 미안하지만 가게를 두고 그렇게 왔다 갔다 할 수는 없어. 너와는 달리 나는 거기에 묶여있는 몸이니까."
 "그래도..."
 항의하려는 내게 사토루 오빠는 잠시 조용하라는 듯 손가락 한 개를 올렸다. 그 뒤에 다시 말을 이어갔다.
 "다만, 어드바이스 정도는 해줄 수 있겠지. 하지만 명심해. 그걸 완수하기 위해 일어나는 일에 대한 책임은 너에게만 있어. 내 충고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너에게 달려있으니까. 알았어?"
 "알았어."
 가게가 걸려있다고 말하면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매우 치사한 수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나마 어드바이스 해준다는 걸 고맙게 여기자. 어차피 여기서 더 말해도 평행선일 테고.
 "그럼 합의는 봤군. 빨리 들어가자, 계속 나와 있었더니 춥네."
 오빠는 그렇게 말하며 양 팔을 감싸 쥐어 비비며 들어갔다. 딱히 춥지 않는데... 역시 추위를 너무 잘 탄다. 이 정도면 쌀쌀하지만 쾌적한 편인데 말이다.
 "흐응..."
 나는 크루아상 하나를 물고 밤의 공기를 좀 더 만끽해야겠다. 설렁설렁 불어오는 바람에는 약간 습한 향이 나고 있었고 살짝 냉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 정도는 심하지 않아서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이대로 바깥을 산책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봄의 묘미는 꽃내음도 있지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밤의 느낌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1년 내내 봄만 지속된다면 이런 쾌적하고 싱그러운 느낌을 평생 만끽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만약 그런 곳이 이 세상에 있다면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나중에 한 번 찾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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