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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하라 미치루] 오물오물 어텀 페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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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1, 2017 23:47에 작성됨.

<9월 7일 도쿄, 미시로 프로덕션 1층 로비>

“오오하라 양은 빵을 좋아하나요?”

 소녀의 눈 앞에 나타난 사내는 경박하기로 소문난 프로듀서였다. 미시로에는 다양각색의 아이돌만큼이나 특이한 프로듀서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 남자의 소문은 나쁜 쪽으로 유명했다. 월급을 보석으로 탕진한다는 등 소문에도 심의 등급을 매긴다면 단연 청소년 이용불가로 [사행성], [약물] 딱지가 붙을 수준이었다.

 들리는 소문과는 달리 겉모습만 봐서는 메론빵같이 평범한 남자였다. 이 세상 어떤 빵도 간파할 수 있는 자수정 빛 눈에 비친 남자의 모습에 숨김맛이 있다면 천연 메론향 0.1% 함유일까. 그러고 보니 메론빵이 먹고 싶어진 미치루였다.

“빵은 언제나 옳습니다. 프로듀서는 메론빵을 좋아하나요?”

“메론빵보다는 메론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자기소개를 해야겠군요. 저는 이번 가을 축제에서 오오하라 양을 담당할 프로듀서, 하쿠입니다.”

“얇은(薄) 빵인가요?”

“아뇨, 그냥 하얀(白) 밀가루입니다.”

“빵으로 만들면 맛있을까요?”

“빵으로 굽고 나면 더 이상 하얗지 않게 되어버렸.”

 두 사람의 빵문답이 이어지면서 서로를 겉보기보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미치루에게 수확의 계절을 기념하는 가을 축제는 최고의 행사였고, 방금 전까지 감사실에서 취조받던 프로듀서에게 회사를 벗어나 출장이라면 어디든지 좋았으니까.

“...일단 제 맛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일정이 촉박하니 가면서 설명하죠. 이번 행사 중에서 가장 큰 도시인 삿포로 쪽 홍보에 우리 프로덕션이 참여하기로 결정된 것은 알고 있을 겁니다. 부서 방침 상 한 곳에만 집중하기로 했는데 추가로 섭외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오오하라 양 단독으로 직접 지목해서요.”

“후고후고, 저를요? 어디인가요? 아, 빵 먹으면서 가도 될까요. 이미 먹고 있지만요, 아하하.”

“오비히로 가을 축제위원회. 바로 비행기를 타야 할테니 멀미하지만 않게 드세요.”

“빵은 아무리 먹어도 멀미하지 않으니까요. 후고후고, 오비히로면 작년에 아마…”

“저번 축제에는 미무라 양과 히노 양이 출연했었습니다. 미무라 양은 홋카이도에서도 손꼽히는 스위츠 홍보였고, 아카네 양은 마찬가지로 오비히로의 명물인 돼지고기 덮밥 홍보였죠.”

“후고후고, 그런데 왜…?”

 빵을 먹으면서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치루도 아이돌이었다. 미시로 프로덕션 내 유명한 유닛들도 아이돌들도 아니고, 오직 미치루 본인만을 지목했다는데 관심이 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쉽사리 올 리 만무했다.

“첫째로는 두 분 모두 대활약한 결과, 위원회에서 책정한 예산을 3배 초과하였습니다. 첫 번째 이유로 미시로 프로덕션은 향후 3년간 참여가 금지되었습니다. 아니, 될 뻔 한 거죠. 하하하.”

‘...그런 이유라면 나도 3배쯤은 가볍게 초과해줄 수 있다고요, 후고후고.’

 미치루가 속으로 빵을 씹는 동안 프로듀서는 뭐가 재밌는지 혼자서 웃으며 뜸을 들이다가 다음 이유를 말해주었다.

“두번째로는 오오하라 양 본인의 매력입니다. 다른 프로덕션에서 섭외에 응한 아이돌이 몇 분 있었습니다만. 프로필 촬영 때 찍은 오오하라 양의 사진이 결정타였습니다. 바게트 빵을 베어물고 우걱우걱하는 사진이었죠, 아마?”

“앗, 그 사진이라면 조금 창피하잖아요! 빵가루도 막 떨어지고...평소에는 오물오물한다고요.”

“그 사진 한 장으로 위원회에서 섭외 요청이 왔어요. 이번 행사의 취지에 가장 걸맞는 아이돌로서 오오하라 양보다 귀여운 소녀는 없다는 것이 최종 결정이었네요.”

“...빵을 좋아하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으니까요! 맡겨주세요, 오물오물.”

 

<9월 8일 오비히로, 역 앞 축제 거리>

  축제 첫 날의 거리는 아직 본격적으로 떠들썩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길 양옆 으로 들어선 먹거리 노점들이 단장을 마치고 있었다. 도카치 평야의 각 지역 농협에서 엄선한 재료들로 만든 먹거리들이 가득한 이 곳은 과연 카나코와 아카네에게 천국이었을 것이다.

 “프로듀서~축제에요, 축제!”

“뛰다가 넘어지지 않게 조심해요, 당신은 홍보 모델이라고요!”

“하지만 여긴 빵이 가득한 걸요! 프로듀서도 하나 드세요, 후고후고.”

 위원회에서 미치루를 특별히 섭외한 이유는 올해 축제부터 쓰레기 배출 감소를 위해 도입된 아이디어와 연관이 있었다. 기존 축제 노점에서는 1회용 컵, 이쑤시개, 젓가락, 접시 등을 쓰다보니 편리하긴 하지만 매번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거리가 지저분해지고 민원도 잦은 게 흠이었다. 그리하여 일부 코너지만 포장 외에는 일체의 1회용품이 필요없도록 빵으로 만들어냈다. 특제 버섯과 양파에 치즈가 듬뿍 들어간 파니니, 빵 사이로 갓 볶아낸 면이 가득한 야키소바빵에 명물인 돼지고기로 만든 소세지나 햄을 돌돌 말아넣은 빵까지 미치루에게는 천국같은 곳이었다.

 빵이 아닐지라도 미치루에게 축제의 거리는 흥겨운 곳이었다. 어제부터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홍보용 대사를 외우고 동선을 되짚으면서 연습을 반복해야 했지만 그 자체로 즐거웠다. 축제는 신나는 일이고, 신나는 일 한가운데에서 빵을 먹을 수 있다니. 연습하는 내내 프로듀서는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에 해군 건빵 씹는 얼굴로 통화하고 있었지만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옅은 웃음기 띈 얼굴로 미치루를 맞이했다.

“연습이 끝났으니 포상입니다. 빵을 먹으러 가죠.”

“...프로듀서는 선한 사람이군요.”

“선입견이 없는 건 좋지만 오오하라 양은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이 빵인가요.”

“빵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구요!”

“히틀러가 빵도 잘 안 먹는 채식주의자라서 다행이네…”

시내 유명 디저트 가게에서 프로듀서가 사준 허니 토스트 3종 세트는 크고 아름다웠다. 사실 3종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 것 같은데 다 골라버렸다. 프로듀서는 금도끼와 은도끼도 상으로 주는 선한 산신령이었다.

“빵을 먹는 연습을 했더니 포상으로 빵을 먹을 수 있는 일이라니 행복해요! 프로듀서도 함께 하는 게 어떠신가요?”

“하하하, 내 일은 빵을 먹는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같이 고생했으니 포상도 같이 누려볼까요.”

“일을 열심히 하면, 다음에는 무슨 빵을 상으로 주실건가요? ….츄르릅! 이런 맛있는 가게를 알고 계시다니, 대단해요!”

“내일은 또 내일의 빵이 있는 법. 여기는 꿀도 우유도 정말 맛있는 곳이라서 훌륭하죠. 출장 때마다 들리게 된다니까.”

“둘이서 같이 먹으면, 평소보다 맛있어요! 역시 빵을 먹는 일은 행복해요~”

‘다만, 한 가지만 더 할 수 있었다면 더 행복할 텐데.’

 

<9월 9일 오비히로, 역 앞 축제 공연 무대>

  축제 둘째 날은 더욱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한참 사람들이 몰린 점심 때를 지나 홍보가 끝날 무렵, 거리에 설치된 무대 위에서 농협 직원들로 구성된 밴드가 공연을 시작했다. 일정을 마친 프로듀서와 미치루는 출발 전 늦은 점심을 먹기로 하고, 자리에 앉은 터였다. 프로듀서가 애써 언급을 피하고 빵을 고르는 척 하는 동안에도 미치루의 시선은 무대에 고정되어 있었다.

 양송이 버섯 모자를 쓰고 마쉬룸 송을 부르는 밴드의 무대는 거창한 게 없을지 모르지만 누구보다 흥겨워 보였다. 사실 밴드는 더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버섯 버섯 버섯 좋아 노래는 농협이라서 부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들은 노래를 부를 수 있다.

“프로듀서 씨.”

“음, 이 빵 맛있어 보이네. 하나 더 먹을래요?”

“할 말이 있어요.”

“......”

 프로듀서는 축제 기간 내내 미치루를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헛수고였다. 미치루는 신데렐라니까. 미치루는 아이돌이니까.

“프로듀서, 이렇게 행복한 일에 함께 해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이제 다 끝났어요.”

“하지만....”

 프로듀서는 단호하다. 미치루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마지막 기대를 걸어보지만 이미 끝났다고 한다. 프로듀서는 여전히 엷은 웃음기를 띈 얼굴로 말한다.

 

“준비 다 끝났다고.”

“준비…?”

“아, 정말이지 힘들었다고요. 전무님 새로 오신 뒤로 데뷔 전에는 단독 공연 허가가 어지간히 안나서 말이지.”

“...그러면 저 노래 부를 수 있는 건가요?”

“물론이죠. 가요, 노래하러.”

“... 프로듀서.”

“응? 아, 우리 밴드 없어서 내가 기타쳐야 하니까.”

“빵만큼 고마워요.”

 

 그 날, 미치루의 오물오물 가을 축제 공연은 약간의 손님을 끌어모았다. 아직 이름을 떨치지 못한 아이돌의 노래는 아직 부풀어오르지 못한 반죽 같았다. 하지만 하얀 밀가루가 끝내 노릇노릇한 빵이 되기를 믿으며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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