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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ually(사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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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8-01, 2017 00:08에 작성됨.

"아니 그러니까 긴장때문에 머리가 제대로 안 돌아갔...."
"너가 시험을 본 게 몇 번인데 무슨 그런 정신 나간 소릴하고 있어?!"
"뭐?"
"너한테 맡기라며? 그런데, 너한테 공부 맡겼더니 어떻게 됐어? 이렇게 됐잖아!! 내가 간섭하지 않으면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답답해서 미치겠다."
'정신 나간 소리', '되는 일이 없다'. 아버지의 너무도 무관심하며 무책임한 그 말에 듣자마자 난 두 눈을 부릅뜨고 주먹을 꽉 쥐고 말았다. 그리고 이내, 아버지에게 등을 돌리며 내 방문을 큰 소리나게 휘두르며 닫아버렸다.
"야, 야! 아빠 얘기 아직 안 끝났어!"
아버지의 호통에도 나는 망설임없이 내 방문을 잠가버리고 쓰러지듯 침대위에 몸을 맡겼다. 온 몸이 편안해지는 감각과 대조되게도 내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였다. 나도 안다고, 오늘 본 1차 시험이 어떤 시험인지. 그 대학에 들어가기위해 넘어야할 첫번째 관문이란 건 나도 조사해서 안다. 하지만 그 1차 시험의 난이도가 어떤지 뻔히 아는 아버지가, 내 노력을 한사코 부정하는 말을 하다니. 다른 사람들은 그 시험을 위해 1년 가량을 준비한 반면 나는 2주밖에 준비를 하지않았다. 떨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노력을 다했다.
'그러면 뭐해, 노력해도 결국 날아오는 건 오늘 같은 질타뿐인데.'
이렇게 체념해버리니 머리 안쪽으로부터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아니, '무언가'는 맞지않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게 나는 그 '무언가'의 정체를 이미 알고있으니까.

타인에 대한 분노
다른 일에 대한 무력감
자기의심
비참함
노력에 대한 박탈감
자괴감

관심을 어디론가로 돌리지 않으면 이 어두운 감정들이 차근차근 내 머릿속을 갉아 먹어나갈까봐 나는 핸드폰을 켜서 인터넷에 들어간다. '켜본다해도 할 것이 없겠지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틀렸다. 한 글귀를 보자마자 감겨가는 내 눈이 휘둥그레 커질 정도로 나는 놀라버렸다.
'타치바나 아리스, XX에서 라이브 확정!'

 


타치바나 아리스. 346프로덕션 소속에 출신지는 효고, 생일 7월 31일의 쿨한 12세 아이돌. 연예계에 조금의 관심도 가지지않는 내가 유일하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응원하는 아이돌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12세 아이돌을 좋아한다니, 조금 이상할지도 모른다. 당장 내 친구들만 봐도 로리콘이라면서 날 놀리거든. 나는 단순히 나이가 어려서 좋아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다 귀에 꽃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in fact'의 반주를 궤뚫고 들린 전동차 내의 안내방송을 듣고 지금이 내려야할 곳이란 걸 막 깨달은 나는 전동차 문이 닫히기 직전, 겨우 내리는데 성공했다. 내린 뒤 나는 혹시라도 잃어버린 것이 없는지 바지 주머니를 체크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잃어버린 건 없구나. 내리느라 구겨진 후드점퍼를 다시 펴고 나는 역의 출구로 향했다. 역을 나오니 가을 날씨 특유의 높은 파아란 하늘과 하이얀 뭉게구름, 쨍쨍하게 내리쬐지만 여름과 달리 살갗을 기분좋은 정도로 따뜻하게 해주는 햇살이 날 먼저 반겨주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날이네. 기말고사 이후 3일 동안만 쉬고 다시 1차 시험 준비했었으니까. 그리고 그 시험은....아니,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 그런건 생각치 말도록 하자. 아무튼 날씨도 기분이 좋아 보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려는 찰나 후드점퍼와 티셔츠 사이의 빈공간으로 불청객, 찬바람이 파고들어왔다. 역시 이 날씨엔 이렇게 입고 온 건 제대로 판단미스였어. 추워서 그러는데 제발 지금이 라이브 시작이라고 말해줘. 자칫하면 감기 걸린다고. 하지만 항상 기대는 빗나가는 법이라고, 손목시계로 시간을 체크하니 라이브 2시간 전인 오후 2시였다.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이런 추위에서 2시간동안 서있으라고? 어딘가로 몸을 녹일데가 필요해. 거리를 한번 휘 둘러보니 다행히 눈에 띈 카페 하나. 카페가 그리 반가울 때가 있었을까. 아니, 아마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듯 하다. 그렇게 카페를 향해 한발짝 내딛는 순간, 내 가슴팍에 충격이 전해지는 게 느껴졌고 나는 그 충격으로 살짝 뒷걸음치고 말았다. 무슨 일인가 해서 발밑으로 시선을 옮기니 키 140cm 전후에 베이지색 코트를 입고 모자와 안경을 쓴 여자아이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있었다. 난 그제서야 얘가 나하고 부딪쳐서 넘어진 걸 알고 그 아이에게 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미안, 다친데는 없니?"
그러자 그 여자아이는 내민 손을 거부하고 차갑게 말했다.
"혼자서 일어날 수 있어요."
여자아이는 그 말대로 자기 힘으로 일어난 뒤,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어라, 저 금갈색 눈동자에 어딘가 쿨해 보이는 면모, 어린애에게 맞지않는 어른스러운 말투 그리고 저 목소리. 어딘가 낯이 익은데...
"다음부턴 제대로 앞을 보고 다녀주세요. 사람이 피해받으니까요."
그제서야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떠올랐다. 이 여자아이는....설마?
"혹시 너, 아이돌 타치바...."
그 다음으로 말을 잇지못했다. 여자아이가 급하게 자기 손으로 내 입을 막았으니까. 긴가민가했는데 이 행동으로 확실해졌다. 나하고 부딪친 이 애는 아이돌, 타치바나 아리스다.

 


카페 안, 당연하지만 바깥보단 따뜻하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여기서 주문한 커피와 가져온 책으로 시간을 때운 뒤, 라이브 회장으로 이동할 셈이였는데....내 앞에 앉은, 변장한 아이돌, 타치바나 아리스 덕에 예정이 훨씬 꼬여버렸다. 이거 귀찮게 됐는데...뭐? 좋은 거 아니냐고? 그런 건 악수회나 사인회때나 그런거지. 타치바나가 변장한 지금, 얘는 아이돌이 아닌 평범한 여자아이. 그리고 나는 모르는 사람하고 말을 잘 못한다고. 심지어 상대는 어린 여자애. 여기 앉은 것 자체가 나에겐 좌불안석이야. 타치바나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발밑을 쳐다보다가 주문을 끝마친 내가 자리에 앉자 입을 열었다.
"어떻게 절 알아보신거죠?"
진정해라, 나. 침착히...가장 좋은 답변을 고르는 거야..머릿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 답변을 고른 뒤, 나는 입을 열었다.
"그야...가까이서 보니까 알아보겠더라고."
"그런가요.."
잘 넘겼으니 이젠 대화주제를 돌릴 차례.
"그나저나 너는 어쩐 일로 여기 온 거야? 변장까지 하고 말이지"
맨 마지막 말은 행여 누가 들을까봐 나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리허설이 끝나고 시간이 남아서 주변을 돌아다닌 것 뿐이예요. 게다가 마침 까페가 보여서 블랙 커피를 마실 수 있게...."
거기까지 말하고 타치바나는 '아차'한 듯 입을 다물었다. 방금 그 말로 대충 눈치챘지만...확실하게 해놓을까.
"근데 정말 괜찮겠어?"
"뭐가 말이죠?"
"커피, 블랙으로 시켰잖아. 마실 수 있겠어?"
"야...얕보지 말아주세요. 블랙커피를 마시는 것쯤 저에게 있어 간단한 일이예요. 여유예요."
....진짜 괜찮으려나 약간 불안해하는 듯 한데.
"음...그러니까...이름이.."
"나? 무라카미라 불러. 그게 성이니까."
"무라카미씨는 어쩐 일로 여기 오신거죠?"
"네 라이브가 여기서 한다길래 보러왔어."
그 말에 타치바나는 볼이 살짝 붉어지고 진정이 안되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팬을 만났다는 기쁨과 당황스러움에 저러는 건가? 귀엽잖아....
"그....그런..가요? 감사합니다..."
방송에서 본 것과는 전혀 달라. 진짜 귀엽네. 가만히 타치바나의 반응을 지켜보다보니 어느새 점원이 우리 테이블 위에 블랙 커피가 담긴 머그컵 두 잔을 올려놓고 있었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감사인사를 한 뒤, 난 머그컵을 들어 블랙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괜찮은 것 같네. 너무 쓰지도 않고 향도 좋아. 타치바나는 어떨.....굳은 표정만 봐도 어떤지 알겠네.
"마시기 힘들면 너무 무리하지 말지."
"아...아니예요."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어서 그런거야?"
"그...그걸 어떻게..."
이때까지 단서만 잔뜩 흘렸으면서. 알기 쉽다니까.
"감이야, 감."
"....맞아요,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어서 그러는 게 맞아요."
"어른스럽게 보이고 싶다라...그렇게 보일때쯤이면 아이였을때가 더 좋았다고 생각할걸."
"카나데씨하고 비슷한 말을 하시네요."
같은 크로네 프로젝트의 하야미 카나데 말하는 건가....
"왜 모두들 어렸을 때가 좋다고 하는 걸까요?"
"커가면 커갈수록 주위의 기대가 쌓이니까."
"기대요?"
"애가 막 태어났을땐 건강하게 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건강히 자라주는 것만으론 부족한지 가족, 친구들등. 주위에서 받는 기대는 서서히 커져."
언제부터, 어째서 내가 힘들어야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상적인 어른, 다시말하면 어떤 기대든지 충족시켜주는 사람이 될수록 주위의 기대는 서서히 커지고 마침내는 커진 기대가 그 사람의 목을 조르게 돼."
어렸을 때 나는 뭣도 모르고 그런 사람이 되려고 했었다.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으면 되지 않냐고? 그것도 아냐.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각종 비난이 날아들거든."
그 비난은 노력을 무시하는 건 예사고 심지어 없는 정신병도 만들어낸다.
"무라카미씨...."
타치바나가 날 부르는 소리에 그제서야 나는 내가 이때까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완전히 미스다. 애한테 무슨 소릴하고 자빠진 거야, 나란 놈은.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미안해, 타치바나. 초면에 이런 실례되는 말이나 하고...너무 내 얘기만 했어."
"..아뇨, 그것보다 무라카미씨. 최근 누군가의 기대를 무너뜨린 적이 있으셨죠?"
나는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어떻게 얘가 그걸?
"어떻게 안거야?"
"감이예요, 감."
타치바나는 그렇게 말하며 조금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면 그렇지. 내가 한 방 먹었군.
"..어제,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러면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으세요?"
말이 되는 소리. 가족도 친구도 아닌 날 거의 모르는 처음 만난 여자아이한테 그런 말을 해봤자 이해를 하는지도 의문이다. 라고 머릿속으로는 생각했지만 어느새, 입은 하소연하고 있었다.
"어제, 내가 가려던 대학의 1차 시험을 봤어. 국어하고 영어는 잘 넘겼는데 수학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뇌가 굳어버리는 바람에 수학을 망쳐버렸지. 그걸로 어제 아버지하고 싸운거야."
"죄송해요. 남에게 말하기 껄끄러우셨을텐데..."
"아냐....나도 마침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었고."
나는 블랙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 뒤에 이어 말했다.
"난 말이지.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줄곧 '공부'라는 길 하나만 보고 달려왔어. 다른 아이들이 놀 때 난 공부하고 친구들이 어딜 가자해도 학원때문에 못가는 일이 부지기수였지. 그러다가 중학교때부터 내 스스로의 의지로 공부하기 시작했어. 그런데 아버지는 내가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너 스스로해서 이 꼴이라고 말씀하시더라. 내 9년간의 노력을, 깡그리 무시해버리시더라."
여태까지 내 힘으로, 내 손으로 내게 필요한 것은 모두 스스로 얻어냈다. 다른 누군가의 덕도 아니고 내 스스로. 그러나 아버지의 말을 듣는 순간, 혼란이 오고 말았다.
"난 과연 옳은 노력을 한걸까?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도? 난...여전히 내 자신에게 노력했다며 떳떳할 수 있을까?"
무섭다, 이때까지 나 자신을 믿어왔던게 모두 허상일까? 그것이 무섭다. 내 노력은 쓸모없는 것이였을까?
"무라카미씨. 그 대학 시험은 부모님이 보라고 하셔서 본거예요?"
"아니, 내가 보고싶어서 봤는데."
"그러면 중학교때 공부는요?"
"내 장래희망을 이루는데 필요하니까 내 스스로 했지."
"그것봐요. 선택한 것도, 노력한 것도 무라카미씨잖아요. 다른 사람이 이래라 저래라할 이유가 있나요?"
"그건...."
"성공도 모두 무라카미씨가 이룬 것, 실패도 모두 무라카미씨가 초래한 것. 그 누구도 뭐라할 자격 없어요."
너무도 간단한 말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나 간단한 답을 가지고, 나는 그만큼 힘들어한건가? 아니, 오히려 쉬운 답을 내기에는 내가 너무 복잡했던 이유도 있겠지.
"무라카미씨의 노력은 전혀 헛되지 않았어요. 헛되게 느껴진다면 그 노력이 아직 쓰일 때가 아닌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처음으로, 이 아이가 나보다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하하...너가 나같은 것보다 훨씬 어른 같네."
"그런가요? 당연한 걸 말했을 뿐인데."
말은 그렇게해도 약간 우쭐해진 듯한 타치바나. 그 모습도 귀엽지만.
"덕분에 고민해결됐어. 고마워, 타치바나."
"해결됐다니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지금 몇시예요?"
손목시계를 살펴보니 시침과 분침은 오후 3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공연 시작 50분전. 슬슬 움직여야겠네."
"벌써요?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네요."
"그러게나말야. 얼른 가자."

 


언제 한번 친구들이 물은 적이 있다.

'많고 많은 아이돌 중 왜 하필 타치바나 아리스야?'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나이가 어린데도 다른 사람들에게 위축되지 않고 항상 당당한 점이 좋아, 나에겐 없는 장점이니까. 무엇보다도...너희, 아리스의 라이브 영상봤어? 나는 말야. 노래를 끝내고 미소 짓는 걔의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아.'
그래. 바로 저런,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감격스러운 미소를. 나는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거다. 그런 아이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어.

 

 

늦었지만 아리스 생일글....이라기 보단 그냥 글에 가깝군요. 그도 그럴게 이 글의 주인공이 겪은 일들은 제가 저번 주 금요일에 겪은 일입니다.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거든요. 그래서 썼습니다만...개판이군요. 솔직히 하루만에 쓴 거라 퀼리티가 너절합니다. 그래도 아리스의 생일은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아리스! 하루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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