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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루] 오오하라 미치루는 움직이지 않는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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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31, 2017 02:02에 작성됨.

                                                      -2-

 

 아주 어릴 적에 주방에서 일하던 부모님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빵을 가장 맛있게 만드는 방법이 뭐에요?"

 그리고 부모님은 온화하게 웃으시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이 빵을 먹고 웃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만드는 거란다."

 간단한 대답이었지만 당시에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좋은 밀가루나 버터도 아니고, 특별한 재료도 아니고, 굽는 방식이 특이한 것도 아니다. 단지 정성을 들여서, 먹는 사람이 행복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다. 이런 마인드를 우리 부모님은 갖고 있었다. 그걸 이해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어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대답은 대답이니까 대수롭지 않게 넘긴 걸지도.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신했다. 부모님이 만든 빵들은 항상 맛있었고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 순간은 행복감에 물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도 언젠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빵을 만들고 싶다고.

 

 "미치루는 어떤 아이돌이 되고 싶니?"

 라이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프로듀서는 내게 그렇게 물었다. 대답하기 위해 돌아본 그 옆모습은 도로의 가로등의 빛을 받아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빵 같은 아이돌이요! 보면서 흐뭇해하고 달콤한 향기에 먹으면 행복감에 젖어 드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하하, 마치 카나코같네."

 그는 껄껄 웃으며 대답에 만족한 듯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그런 대답을 한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빵을 먹으면 그 맛과 향에 행복감을 느낀다. 그럼 이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기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단지 그것뿐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내게 했던 말의 의미를 조금씩 알게 되었다.

 "너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거야. 내가 키우고 있는 아이돌인걸? 그러니 내가 보증하지."

 그 자신 있는 목소리에는 기대와 확신에 들어차 있었다. 프로듀서는 진심으로 나라면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당시의 내가 너무 순진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 순간만큼은 왠지 모르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을 먹을 때와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그 뒤에 빵 하나를 나눠줬더니 마치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 같은 표정을 짓는 프로듀서는 덤이고.

 그런데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금 늦으셨네요."

 문에 걸린 종이 요란하게 울리며 오오하라 사토루가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아침이 약한 그는 오늘도 조금씩 비틀거리며 나를 향해 인사를 받아주며 주방으로 들어섰다. 짧게 자른 갈색 곱슬머리에(길면 더욱 이쁠 거라 생각하지만 본인이 위생에 문제된다고 안하고 있다), 키라리 언니에 버금가는 큰 키의 호리호리한 체격의 소유자인 그는 생각보다 창백한 인상을 지니고 있지만 제빵에 있어서는 그 누구 못지않게 열정적이다. 머리색이 나와 비슷하고 성이 같아서 곧잘 남매로 착각당하기 쉽지만 나는 그것이 기분 나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오빠가 있으면 좋겠다고 은연중에 생각 중이다.

 "자격증 공부는 잘 되어가냐?"

 "당연하죠! 절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음... 연비 나쁜 직원."

 "저 연비 안 나빠요."

 "...너 아침 먹었지."

 "네."

 "그럼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야?"

 "간식이요."

 "간식으로 그렇게 큰 치즈바게트를 들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냐? 그것도 아침부터."

 "식사시간의 배와 간식 배는 다르거든요~"

 "..."

 기가 막힌 표정을 지은 채 오빠는 말을 끊고 조리복으로 갈아입은 뒤 내가 어젯밤에 만들어놓은 반죽을 냉장고에서 꺼내 일을 재개하였다. 빵은 진짜로 잘 만드는데... 라는 말을 작게 흘리면서.

 가게에서의 일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아침에는 갓 만들어진 빵의 향을 음미하며 진열을 시작한다. 이 시간대에는 오빠도 주방에서 바쁘므로 계산대도 같이 맡아야 하지만 보상으로 내 몫의 빵이 몇 개나 날아오기 때문에 힘들거나 하진 않다. 문제라면 그게 나오기 전까지는 갓 구워진 빵을 그냥 지켜봐야만 하는 고통이랄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점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동네에서는 꽤 유명하기도 하고 진열되지 않는 품목들도 카탈로그 안에만 들어있으면 바로 만들어주기에 특별히 찾는 게 있으면 이곳으로 오기도 한다.

 "주문한 손님이 언제 오기로 했지?"

 오빠가 주방 쪽에서 물어왔다.

 "정오에서 한 시쯤 온다고 했었어요."

 대답을 듣고 오케이를 외치며 그는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주문을 받은 건 케이크로 상세한 형태와 장식까지 주문된 상황이다. 주문전화 자체는 흔한 일이지만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주문을 받은 건 꽤 오랜만이다. 가격은 좀 세게 부르지만 감당할 수 있거나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 저 오빠의 원래 주 분야는 제빵이지만 제과에도 꽤 일가견이 있다. 분야는 다를지 몰라도 밀가루 쓰는 건 똑같다는 논리를 대며 능숙하게 해내는 그 모습은 마치 마술이라도 부리는 것 같다. 제빵 정도야 나도 한 실력 한다고 자랑할 수도 있겠지만, 제과는 아직 능숙하지 못해서 여러모로 부럽기도 하다. 좀 배워둘 걸 그랬나?

 "아, 그리고 네 몫의 빵 계산대에 있으니까 가져가.”

 “고마워요!”

 입이 너무나 허전할 타이밍에 맞춰서 빵이 내게로 다가왔다. 향긋한 향이 나의 몸을 감싸 안으며 어서 먹어주시라고 소리치는 것 같다.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 따위 없다.

 “후후후... 안녕 얘들아~ 오늘은 어떻게 나를 즐겁게 해줄 거니?”

 오늘은 다를 때보다 한두 종류 더 많다. 나름의 서비스인 걸까? 이따가 고맙다고 한 마디 해두면 좋을 것 같다.

 “그럼... 너부터 맛을 봐줄까?”

 가장 먼저 먹을 빵은 이번엔 크루아상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제대로 만들기 힘든 이 빵은 가게에서 잘 나가는 단골 메뉴 중 하나다. 다른 곳과는 달리 큼지막하고 위에 시럽 같은 걸 뿌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맛있어서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후고후고...”

 역시 이 맛의 황홀경에는 중독될 것 같다. 가볍고 제대로 층이 살려진 느낌에 이 바삭하고 담백한 맛은 크루아상의 정석이자 최고라고 불릴만하다. 안에 잼을 넣거나 위에 시럽을 발라서 먹으면 얼마나 또 날아가 버릴 것 같을지 감히 상상이 안 된다.

 “한번 부탁해볼까? 좋을 것 같기도...”

 언젠가 신메뉴를 무엇으로 할지 고민했던 것이 기억났다. 약간의 바리에이션을 넣어주면 전혀 색다른 맛이 탄생할 텐데 왜 이걸 진작 몰랐을까? 당장 얘기를...

 “안녕하세요!”

 그러나 가기도 전에 문에서 종이 울리며 누군가가 소리쳤다. 손님이 왔다는 신호다.

 "어서오..."

 인사를 하기 위해 출입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얼굴과 목소리는 내게 매우 익숙한 모습이자 그립고도 반가운 소리니까.

 “아, 카나코 씨! 오랜만에요!”

 “오랜만이야 미치루짱! 그동안 잘 지냈어?”

 “보시다시피 건강하다고요.”

 “그건 정말로 다행이네. 요새 바빠져서 연락도 제대로 못 해서 미안해.”

 그녀의 이름은 미무라 카나코. 포근한 인상에 먹방의 달인이라는 칭호가 붙은 이 사람은 연예계에서 발을 뺀 나와는 달리 그녀는 지금도 아이돌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그녀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 딱히 후회되거나 하는 건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부러운 마음이 든다. 동시에 다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고.

 “아니에요, 저야말로 먼저 얘기를 해야 했는데.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세요?”

 “여기에서 케이크를 하나 주문했거든.”

 “네? 그럼 주문했던 사람이 카나코 씨였군요!”

 주문 전화를 오빠가 받아서 나는 몰랐다. 근데 전화한 사람이 누군지 몰랐던 걸까? 주문이 끝나고서 표정은 딱히 변하지 않았었는데...

 “오늘이 생일인 동료들이 있거든. 란코짱이랑 모모카짱, 그리고 아야짱.

 “아아 그러고 보니. 그런데 그렇다면 3명분의 케이크를 주문하신 건가요?”

 “아니, 동료들이 다른 곳에서 구해올 거야. 나는 여기로 온 거고.”

 “그렇군요. 찾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원래 한 시쯤에 온다고 해서 아직 다 완성이...”

 “괜찮아. 로케가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당장은 스케줄이 비었거든. 다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그렇다면 이야기할 여유는 충분하다.

 “계속 서 있으면 힘들 테니 자리에 앉아요.”

 “그럼 실례할게.”

 카나코 씨는 그렇게 말하며 내 권유에 따라 근처 테이블에 앉았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몇 년 지나고 나서 보니 뭔가 더 성숙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머리를 약간 기르고 키가 좀 커져서 그런가? 그래도 나긋나긋한 목소리와 껴안으면 포근할 것 같은 느낌은 여전해서, 내가 알던 예전의 그 카나코 씨와 별로 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미치루... 아, 어서 오십시오. 케이크를 주문하신 분이죠?”

 오빠가 주방에서 나와 말을 걸어왔다. 안쪽에서 집중하고 있어서 우리가 말한 걸 듣지 못한 모양이다.

 “네, 한 시에 오기로 했는데 촬영이 일찍 끝나서요.”

 “아아...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은데 괜찮으신지요?”

 “괜찮아요. 일찍 온 건 저니까요. 그리고 오랜만에 미치루랑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천천히 즐기세요.”

 오빠는 그 말을 끝으로 주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내게는 그 전에 하나 확인해둘 게 있다.

 “잠깐, 왜 카나코 씨가 온다고 얘기 안 해준 거야?”

 “아, 그거? 서프라이즈라는 놈이지.”

 저 의기양양하게 웃으면서 말하는 얼굴을 보니 뭔가 얄미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이 아니리라.

 “서프라이즈라니! 정말...”

 은근히 장난을 좋아한다, 저 오빠는. 덕분에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하하...”

 그걸 지켜보며 억지웃음을 짓고 있는 카나코 씨가 눈에 들어온다. 즐기는 눈치가 아니니 저쪽에서 시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난 일하러 가야 하니까~”

 그렇게 말을 길게 늘이며 오빠는 주방으로 돌아갔다. 카나코 씨가 주문한 케이크를 만들어야하니까 아쉽게도 붙잡을 수는 없다. 정말로 도망갈 구멍도 잘 만든다.

 “정말 사이가 좋네. 혹시 친오빠?”

 “아니, 예전부터 여기서 일했던 직원 오빠예요. 빵을 진짜로 잘 만드는데 저런 식으로 날 놀릴 때가 자주 있어서요.”

 “그렇구나. 사이가 좋아서 좋겠네.”

 “그래 보이나요?”

 “응! 보고 있으면 서로가 친하다는 게 느껴져. 마치 남매 같다는 느낌이랄까?”

 카나코 씨는 묘하게 솔직하게 말을 하는 끼가 있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하는 말들은 왠지 이해가 갈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지금 말한 남매 같다는 느낌은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성도 같고, 빵을 좋아하고, 티격태격하는 모습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남매라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카나코 씨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최근에 자주 출연하셔서 바빠진 것 같은데.”

 “새로운 코너를 시작했거든. 전국의 과자점이나 빵집을 돌면서 취재하는 거야.”

 “진짜요? 좋겠다~ 나도 한번 다녀보고 싶었는데.”

 “예전에 비슷한 거 하지 않았었어?”

 “그래도요. 맛있는 빵은 몇 번을 먹든 부족하다고요.”

 “아, 그거 알 것 같아! 맛있으면 멈출 수가 없지.”

 “그렇죠! 역시 카나코 씨는 뭔가 저랑 비슷한 것 같아요.”

 그녀는 내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우리 둘은 뭔가 비슷한 점이 많다. 처음에는 팬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걸 들으면서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었지만 점점 같이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서로의 비슷한 점을 알게 되었다.

 “카나코 씨, 혹시 이번의 로케도 그 코너의 촬영인가요?”

 “응, 여기서 좀 떨어진 베이커리에서 촬영했어.”

 “헤에... 내가 생각하는 그곳인가?”

 “아는 곳인가 봐?”

 “네. 거기에 있는 슈크림 빵이랑 샌드위치가 진짜로 맛있거든요. 어디 놀러 나갈 때면 자주 찾아가는 편이에요.”

 “그렇구나. 마침 취재 내용이 슈크림이었는데.”

 “우와! 그래서요? 어땠는데요?”

 “그렇게 들이밀지 않아도... 아, 여기 뭔가 묻었다.”

 카나코 씨는 그렇게 말하며 손수건을 꺼내 내 입가를 닦아주었다. 손에 들고 있는 프레첼에서 떨어져 나온 걸지도.

 "음... 먼저 시식을 했었는데 엄청나게 달고 맛있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어. 샌드위치도 풍부한 맛이어서 한 끼 식사 대용으로 할 만 했지만 하나만으로는 뭔가 아쉬웠고."

 "그렇죠? 점심시간만 되면 깡그리 품절되는 게 거기 샌드위치거든요."

 카나코씨가 간 빵집은 주위에 회사나 사무소가 많아서 점심때가 되면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굶주린 배를 채우려고 거리를 활보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가 바로 그 빵집이다. 그곳의 유명세는 이 지역에서 베이커리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다. 방송에 나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혹시 만드는 것 보셨어요?"

 "응! 옆에서 만드는 걸 봤는데 손놀림이나 분위기가 아주 예술적이였어. 부럽다고 생각해버렸다니까."

 "헤에... 그거 좋은 경험이었겠네요."

 일반인에게 빵집 주방을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카나코 씨는 직접 과자를 만들기는 하지만, 전문가의 손길은 또 다르다고 느낄 수도 있다. 노래를 가수 뺨치게 잘 부르지만, 라이브 회장에 가면 자신 보다 잘한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 근데 다른 빵집 얘기하는 건 좀 그런가? 너한테는 라이벌이나 마찬가지인데."

 "전 괜찮아요. 저희 베이커리에서 만드는 빵도 맛있지만 다른 집의 빵도 맛있잖아요? 경쟁상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보다는 맛있는 빵을 만드는 동료로 보고 있어요. 누구랑 경쟁하고 싸우는 건 이제 좀 지쳤고요."

 "그렇구나... 그래! 나 여기에 있는 빵 몇 개만 맛보고 싶은데 괜찮아?"

 조금 어색해진 분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화제를 돌리듯이 카나코 씨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좋아요! 추천해드릴까요? 아니면 직접 고르시겠나요?"

 "음... 추천해줘!"

 "명받았습니다!"

 나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카나코 씨가 좋아할 만한 빵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방을 살짝 엿봐 진행도를 확인했다. 정확한 정도는 가려져서 잘 안 보이지만 아마 30분~1시간이면 완성할 것 같다.

 "얘기 끝났어?"

 내 시선을 느꼈는지 오빠가 이쪽을 바라봤다.

 "아니, 빵 좀 몇 가지 추천해달라고 해서.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장식이 좀 많긴 하지만 순조롭게 하면 한 시간 이내로 끝날 거야."

 "예상대로네."

 "호오...? 드디어 제과 쪽에서도 눈을 뜨기 시작한 건가?"

 "그럴지도. 계속 보고 있으면 어떻게 되든 보이기 마련이잖아."

 내 말에 그는 재미있듯이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건 그래. 근데 무슨 이야기 하는 중이었어?"

 "카나코 씨가 이번에 촬영한 빵집. 왜 있잖아, 슈크림이랑 샌드위치 엄청 잘하는 곳. 아마 우리에게 오기 전에 오빠의 스승이 있는 곳이었지?"

 "아, 아아... 거기구나."

 어쩐지 얼굴에 조금 그늘이 드리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 그래? 갑자기 말을 흐리고."

 "아무것도 아냐. 일해야지 일."

 그 말을 끝으로 오빠는 다시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뭔가 할 말이 있었지만 억지로 끊은 듯한 감각에 궁금증이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하는 건 어쩔 수 없다. 혹시 다른 빵집에 대해 칭찬 일색이여서 조금 기분이 나빴나? 아니면 아직 그 스승이란 사람이 부담스러워서 그런가... 어찌 됐든 저런 표정을 짓는 오빠는 굉장히 오랜만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하는 중이니 방해하면 안 된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일을. 그러니 이 궁금증에 대한 호기심은 잠시 덮어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추궁은 다 끝난 뒤에 한 번 해보자.

 "그리고..."

 뒤를 돌아보면 기대감에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카나코 씨의 모습이 들어온다. 본인은 아마 스스로 깨닫지 못할 것이다. 예전부터 그랬던 사람이니까. 그러니 더는 지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음~ 이것도 좋아!"

 "당연하죠. 이게 여기서 가장 잘 나가는 빵 중에 하나니까요."

 "이 크루아상 시럽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이렇게나 맛있다니 굉장해! 멜론 빵도 겉이 고소하고 안에 들어간 커스터드도 부드럽고 달아서 좋아! 그래도 달달함의 최고는 이 스위트 롤이지! 근데 이건 뭐야? 가운데 구멍이 뚫려서 마치 도넛 같아."

 "구겔호프라는거에요. 가운데가 뚫린 베이킹틀에 반죽을 채워서 구운 뒤에 위에 초콜릿이나 슈가 파우더 같은 걸 얹은 거죠."

 "그렇구나. 규모는 거기보다는 작은데 종류가 많네?"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음? 태블릿?"

 "여기에 카탈로그가 있는데 주문하면 바로 만들어주거나 예약을 할 수 있어요."

 "정말? 대단하다!"

 "그것보다 이거 한번 먹어보세요. 제가 직접 만든 거라고요."

 "고마워. 아, 근데 너 그거 아직도 그냥 먹을 수 있어?"

 "이 바게트요? 그냥 베어 물면 되잖아요."

 내 대답에 그녀는 살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딱딱해서 나는 안 되겠던데."

 "그래요? 하지만 겉의 바삭함과 속의 부드러움은 이게 최고라고요."

 "그렇긴 한데... 혹시 내게 조금만 잘라줄 수 있을까? 위에 잼이나 크림치즈 같은 걸 바르면 최고일 것 같아."

 여러모로 계속해서 감탄이 끊이질 않으며 말수가 많아지는 카나코 씨였다. 마치 방송 같은 엄청난 리액션이여서 어디서 몰래카메라라도 찍는 거 아닌가 하고 잠시 생각했을 정도다. 말하는 것이 솔직한 사람이지만 먹을 것에 관해서는 더욱더 그렇다는 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렇게 둘이 같이 있으니까 옛날 생각난다. 본격적으로 같이 활동을 시작했을 때 혹시 기억나?"

 "기억나죠. 제가 그걸 잊고 있을지 없잖아요?"

 지금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시절의 추억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바로 카나코 씨와의 유닛 활동이다. 서로 비슷한 느낌을 지니고 있어서 언젠가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염원을 들어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조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주 활동은 라이브보다는 로케 촬영이나 디저트 관련 방송 촬영이었지만, 많은 걸 보고, 다양한 빵들을 잔뜩 맛보고, 새로운 레시피도 배울 수 있었던 꽤 의미 있었던 시간이었다. 게다가 카나코 씨와도 은근 죽이 잘 맞아서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었고.

 "역시 그렇구나. 넌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는 것 같아, 다른 애들은 뭐랄까... 변한 점이 눈에 띄거든."

 "그런가요?"

 "다들 어른이 되어버린 거겠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으니까. 몇몇 애들은 따라가기엔 너무 멀어져 버린 느낌도 들기도 하고, 가끔씩 불안하기도 해."

 "너무 의기소침할 필요 없어요. 제가 보기엔 착실히 잘 가고 있어요."

 변하지 않은 건 좋지만 금방 자신을 부정하는 저 성격은 아직 완벽하게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그런 건 좀 변해도 괜찮을 텐데...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워. 하지만 뒤처져버린 건 나도 어렴풋이 알고 있어. 점점 스케줄도 뜸해지기 시작했고 뭔가 비슷한 포맷의 방송만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몇 배로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좋은 일만 있지 않을 거란 걸 진작 알고 있었지만, 아직 각오가 부족했던 걸까?"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이 카나코 씨는 나직이 말을 허공에 내뱉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땐 걱정거리가 없어 보였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젠 얼굴이나 표정에 나타나지 않는 뭔가를 터득해버린 걸까? 아니면 단순히 내가 눈치를 채고 있지 않았던 걸까... 어느 쪽이든 나는 지금 상황에서 뭐라 말하면 좋을지 모르게 되어버렸다.

 "각오인가요... 저는 그런 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냥 아이돌로서의 생활이 좋아서, 맛있는 걸 잔뜩 구할 수 있어서 좋다고만 생각했거든요."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내가 그때 가졌던 생각을 말할 수밖에 없다.

 "카나코 씨가 그런 걸 고민하는 거라면 지금도 이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뜻이라고 봐요. 전 그냥... 카나코 씨가 계속 아이돌로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그런가...? 그렇게 말해준다면 고맙지만 역시 한번 고민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지금 일이라던가 앞으로의 일 같은걸."

 우리 모두 어리광을 부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미 성인이고 나는 며칠 뒤면 10대 생활의 종지부를 찍어야 하니까. 비록 어른이 될 준비 따윈 되지 않았지만, 시간은 우리의 예상과 달리 훨씬 공평하고 매정하다.

 "너도 계속 하고 있었으면 같이 활동할 수 있었을 텐데. 꽤 갑작스런 활동 중단 선언이었잖아."

 "글쎄요. 이미 지난 일이니 어쩔 수 없어요. 그리고 돌아갈 생각은 아직 없고요."

 "그건 좀.., 아쉽네. 나도 자세히 듣진 못했지만 꽤 큰일이었다고..."

 "큰일까진 아니에요. 그냥 별거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도 악감정은 없어요."

 내가 그 세계에서 떠난 지 1년이 조금 지났지만 지금도 가끔 이야기가 들려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처음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고 여러 추측성 기사가 오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갑작스러운 발표였으니 그럴만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 추측 중 몇몇은 나나 다른 이들이 눈살을 찌푸릴만한 물건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때도 밝혔지만 딱히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지라도. 어쨌든 소동 자체는 1~2주 만에 잦아들고 점점 잊히면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지만 내부에서는 당분간 회자하였겠지.

 "그래도 힘들거나 뭔가 일이 있다면 내게 털어놓았으면 해. 조금이나마 나아질 수도 있을 테니까."

 "명심해둘게요."

 전에도 비슷한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상투적으로 느껴졌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아, 혹시 시간 되면 생일파티 오지 않을래? 다들 좋아할 거야."

 "생일파티요...?"

 사무소의 생일파티는 꽤 시끌벅적하다. 케이크와 선물들이 오가고 서로 왁자지껄 떠들며 시간을 보낸다. 거기에 만약 스케줄을 맞춰서 모이는 경우라면 그 기세는 더하다. 내가 있었던 부서에서는 적어도 그렇게 즐겨서 꽤 재미있었고 맛있는 걸 잔뜩 먹을 수 있어서 텐션이 마구 올라갔었다.

 "응.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비쳤으면 하는데. 프로듀서 씨도 가끔씩 네 얘기를 하시면서 웃으시던걸, 사실 여기를 추천한 분도 프로듀서 씨이고"

 "그랬어요?"

 "너한테 폐를 끼칠까봐 고민했었는데 너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을 거고, 오면 반가워할 거라면서 오케이 사인을 보냈었거든. 지금 보니 그게 정답이었구나."

 "흐응... 이번엔 프로듀서 씨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겠는걸요?"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다니... 그 사람이라면 가능할지도.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오늘은 시간이 괜찮을지."

 하지만 아직 돌아가기에는 이르다. 서로가 너무나도 많이 상처를 입는 바람에 회복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적어도 아직은 때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걸 그녀에게 말할 수는 없다. 알면 분명 신경 쓰여서 불안해할 테니까.

 "그렇구나. 만약 되면 사무소로 와줬으면 해. 장소는 너도 아는 곳이니까."

 "그럴게요."

 지켜지지 못할 약속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는 게 서로 배려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예 안 간다고 하는 건 아니고 꼭 간다는 보장도 없는 애매하지만 중도의 길.

 "후우... 케이크 다 되었습니다."

 계산대 쪽에서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에는 포장까지 끝마친 케이크가 놓여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1시를 향해 거의 도착하고 있었으니 시간을 딱 맞춘 셈이다. 얼마 이야기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지나버렸다.

 "고마워요. 와...! 상상했던 그 모습대로 나왔네요!"

 전체적인 베이스는 초콜릿 케이크지만 옆과 위에 얹어진 장식은 딱 봐도 커스텀 오더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이 케이크의 주인은 바로 란코짱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여기 카드로 계산할게요."

 카나코 씨가 오빠에게 건넨 카드는 프로듀서가 썼던 법인카드와 비슷하게 생겼다. 어쩌면 같은 것일 수도.

 "감사합니다. 여기 영수증도 같이 드릴게요."

 "네. 무리한 부탁을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꽤 힘든 작업이었을 텐데."

 "아닙니다. 덕분에 연습도 되었고요. 미무라 씨가 했었던 과자 만드는 프로그램은 잘 감상했었습니다. 거기서 몇몇 장식에 대한 영감도 얻었고요."

 "그랬었군요. 잘 봐주셨다니 기쁘네요."

 오빠는 사실 티비같은 건 잘 보지 않는다. 다만 제빵이나 제과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가끔 보는데 아마 거기서 카나코 씨를 봤을 것이다. 그런 쪽의 게스트 자리에는 일상적으로 들어가고 실력도 수준급이라 어지간한 파티시에 못지않으니 아마 관심 있게 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미치루랑 꽤 친하게 지내셨었나 보군요."

 "같이 일했던 동료였기도 하고 서로 잘 맞았거든요."

 "아..."

 이해간다는 듯이 목소리를 길게 끄는 오빠였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시간이 되어서요."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부디 여기에도 취재를 한번 왔으면 좋겠군요."

 "아, 한번 건의해볼게요."

 역시 신경 쓰고 있었구나.

 "그럼 다음 방문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오빠는 가게를 나서는 카나코 씨를 향해 인사했다. 나는 손을 흔들어주었고 그녀는 웃으면서 받아주었다.

 "꽤 재미있는 사람이었어."

 "얘기하는 거 들었어요?"

 "다는 아니지만. 근데 너한테도 저런 친구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당연하죠. 절 뭐로 보시나요?"

 "...장발장."

 "뭐에요 그게."

 빵을 훔친 적도 없고 거지도 아니 구만.

 "그건 됐고. 빵 몇 개 더 구울 테니까 잠깐 도와줘."

 "네에 네에, 분부대로 합죠."

 이제 평소대로의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떨어진 물방울에 의해 생긴 파란은 언젠가 잠잠해지기 마련이다. 아직도 나에 대해 기억해주는 건 기쁘지만 역시 조금은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보는 게 나으려나... 다음에 만날 땐 좀 더 자세가 된 모습을 보이고 싶다. 될 지 안 될지는 둘째 치더라도.

 

 어느덧 바깥은 암흑에 휩싸여 색을 집어삼켰고 가로등은 작게나마 어둠을 물리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4월 초의 날씨는 아직 쌀쌀하지만, 점점 피어나기 시작했던 길가의 벚꽃이 만개에 가까워져 어둡고 밋밋한 저녁의 거리를 미처 어둠이 삼키지 못한 수려한 색으로 물들고 있다. 이제 곧 만개한다고 생각하니 조만간 꽃놀이라도 다녀오고 싶은 심정이다. 여기서 갓 구운 빵을 가져다가 미리 맡아놓은 장소에 돗자리를 깔고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의 향연을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이 나올 것이다. 예전에 사무소의 동료들과 같이 로케 겸 꽃놀이를 갔을 때 풍경이 딱 그 느낌이어서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거기에 내게 특별한 날 중 하나였던지라 비록 즐겼던 시간은 짧았지만 절대 잊지 못할 나날 중 하나다. 추억이란 건 하나의 키워드나 장면만 보더라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법이다. 잠시 모든 걸 내려놓았지만 완전히 버릴 수는 없는 것 같다.

 "후우... 드디어 끝났네."

 주방에 있던 사토루 오빠가 이마의 땀을 쓸어내리며 밖으로 나왔다. 한 달 하고도 2주 뒤에 있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짬이 나면 저렇게까지 연습하는 중이다. 잘 나온 것은 오늘의 메뉴 형식으로 진열하기도 한다.

 "수고했어요, 오늘은 뭘 만들었어요?"

 "롤케이크 몇 종류하고 네 몫의 빵. 도라야키 괜찮지?"

 "네, 물론이죠."

 마지막 몫을 먹은 지 한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는지라 마침 부족했던 참이다.

 "따로 전화 온 건 없었지?"

 "오늘은 없었어요."

 "그거 다행이네.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려고 했거든."

 "그래요? 피곤한가 봐요?"

 "크게 그러거나 하진 않은데 푹 쉬려고."

 하긴 새로운 걸 개발한답시고 계속 집중하고 있었으니 몸이 무거워질 수도 있겠다. 그 정도는 이해한다.

 "그럼 먼저 들어가세요. 나머지는 이쪽에서 정리할 테니까."

 "아아, 미안하네. 오늘은 그럼 먼저 들어갈게."

 그는 그렇게 말하며 탈의실로 들어갔다. 이걸로 오늘 하루도 무사히 종결했다. 카나코 씨가 떠난 뒤에 평소보다 좀 많은 손님이 찾아오긴 했지만 덕분에 잡생각을 접을 수 있었다. 몇몇은 나를 보러 온 것 같지만.

 "흐으으으응..."

 나는 크게 기지개를 한번 켜고 주방으로 가 갓 만들어진 도라야키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러자 안에 들어간 단팥의 달달한 맛이 입안에 감돌며 하루치 피로를 녹여주기 시작했다. 역시 우리 부모님의 기술을 제대로 전수받았다. 어쩔 땐 조금 부럽기까지 한 실력이다. 물론 내가 딱히 꿇린다는 건 아니지만 역시 난 만드는 쪽 보다는 먹는 쪽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식빵을 좀 많이 구비해야겠네."

 꽃놀이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여서 샌드위치를 만들기 위해 식빵을 사는 손님들이 많아졌다. 이미 내일 가져간다고 주문이 몇 건 들어온 상황이고. 그렇다면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이곳의 맛을 알려야 하니 말이다.

 "음? 그러고 보니 롤케이크가 있었지..."

 주방에 떡하니 놓여져있는 3종류의 롤케이크. 하나는 커피를 넣은 생크림과 케이크에 위에 초콜릿을 뿌려 장식한 것이고, 또 하나는 내부의 딸기 생크림과 겉면에 물결무늬로 표면을 만든 생크림과 딸기들로 장식된, 칼로리를 따지는 사람이라면 기겁해 쓰러질만한 물건이다. 남은 하나는 안에 아이스크림을 넣고 겉에 아이싱 슈가를 살짝 뿌려 얼린 것 같이 생겼다. 아마 본격적인 것은 아니고 시험 삼아 만들어본 것으로 생각된다. 본격적으로 만든 것들은 뭔가 느낌부터가 다른데 여기서는 그런 게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놓여있는데 안 먹고 배길 수가 있을까?

 "흐흐..."

 내가 생각해도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며 롤케이크를 향해 손을 뻗기 시작했다. 나이프와 포크는 옆에 구비되어 있으니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된다. 일부러 배려준건지 아닌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이렇게 된 거 써주지 않으면 안 되겠지.

 "역시 내 이럴 줄 알았지."

 서서히 뻗어가던 나의 팔을 큼지막한 손이 붙잡았다. 그쪽을 돌아보니 마치 모든 걸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조리복을 벗은 사토루 오빠가 서 있었다.

 "에헤헤... 들켰네."

 "들켰지. 이것들은 내일 팔 것들이니까 건들면 안 된다고. 게다가 미리 말을 하라고 전에 얘기했을 텐데."

 "그럼 포크와 나이프는 왜 둔 건데요?"

 "촬영하려고. 만약 인기가 생긴다면 카탈로그에 추가하게."

 "흐응... 또 늘리는 거예요?"

 저런 식으로 몇 종류 만들어서 그대로 카탈로그에 넣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마 절반 정도는 그런 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본점보다 나오는 빵 종류가 많고.

 "뭐 그렇지. 그냥 욕심이라고 봐줘."

 "예이, 예이."

 추가할 때마다 나오는 패턴이지만 딱히 상관없다. 어차피 만드는 건 저 사람이니까.

 "자, 그럼 그것들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가볼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사토루 오빠는 만들어놓은 롤케이크들을 냉장고에 넣었다. 아이스크림을 넣은 것은 냉동실에 따로 보관해놓고 나머지는 냉장실 행이다.

 "근데 너 어디 초대받은 것 같은데 아니야?"

 "응? 아냐 그런 거. 나중에 한번 시간 나면 놀러 오라는 거였어."

 "음... 그렇다면야."

 오빠는 왠지 미심쩍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거두고 퇴근할 준비를 마쳤다. 딱히 말을 하고 싶지 않으면 그다지 파고들지 않는 게 사토루 오빠의 몇 안 되는 장점이다. 그게 본심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먼저 밝히기 전까지는 굳이 꺼내려고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저기..."

 갑자기 문에 달린 벨이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누군가의 방문을 알렸다. 약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누가 있는지 확인하는 여성과 함께.

 "어? 사토 씨...?"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어제 찾아온 손님인 사토 씨였다. 이런 시간에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 찾아와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이제 영업시간이..."

 "저... 오오하라 씨에게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저요?"

 얼떨결에 그렇게 대답하긴 했지만 아마 그 이름의 주인공은 내가 아닐 것이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아, 아뇨..."

 정정하기 위해 다시금 말을 가다듬는 그녀를 향해 오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이런 시간이 무슨 일이시죠?"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능숙하게 사토 씨를 반기는 느낌이었다.

 "저번에 말씀드린 건에 대해서인데..."

 "그거군요. 일단 앉아서 얘기할까요?"

 "아니에요.. 짧게 끝낼 거라서요..."

 "그럼 좋으실 대로."

 오빠의 대답에 사토 씨는 짧게 감사의 인사를 말하고서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해왔다.

 "사람을 한 명 찾아주세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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