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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루] 오오하라 미치루는 움직이지 않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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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31, 2017 01:46에 작성됨.

 이슬을 머금은 아침 공기의 향은 정말로 오묘하다. 습기가 있는데도 무겁지 않고, 정갈하면서도 뭔가 생기가 있는 느낌이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이 공간을 둘러싸고 있던 암흑은 그 기세를 물려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잠에서 먼저 깬 새들이 어디선가 지저귀고 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먼저 잡는다지만 늦게 일어나는 새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같은 인간과는 달리 새는 매우 부지런하니까. 그 작은 몸에서 그럴 체력이 어디서 나오나 싶을 정도로.

 잠에서 아직 덜 깨 약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나는 주택가를 통과하고 있다. 시간은 오전 6시 반. 이제야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할 시간에 나는 이미 출근을 위해 발을 터벅터벅 소리를 내며 걷고 있다.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니 내가 참견하거나 부러워할 일은 없다. 다만 잠이 많은 내게 일찍 시작하는 아침은 아직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일을 시작한 지 꽤 되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역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후우...”

 아직은 차가운 4월 초의 공기를 폐 속에서 섞어 데워내며 추위에 약한 내 몸을 녹여내었다. 4월에 추운 게 말이 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내 몸이니 어쩔 수 없다. 더위에 약한 사람도 있으면 추위에 약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나는 추운 게 싫다. 밖이나 안이나 계속 오한에 떨어야 하고, 계속 옷을 무겁게 껴입어야 하고, 손이 얼어버려서 녹이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그녀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어버리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추운날 보다는 덥고 땀이 나도 여름이 더 좋다.

 얼마간 더 걷자 고소한 냄새가 공기 중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침밥을 먹었든 먹지 않았든 맡으면 다시금 식욕이 돋워질 것 같은 향기다. 밀가루와 버터가 한데 어우러져 특유의 하모니를 일으키고 있고 뜨거운 오븐 속에서 갈색빛을 내며 익어가는 그 모습을 상상하고 있자니 없었던 힘도 새로 태어나는 것 같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정해졌다. 이 향기를 따라가 이번엔 뭘 만들고 있는지를 파악하면 되는 것이다. 그 가녀린 손끝에서 피어나는 맛의 향연은 오늘은 어떤 감성을 가져다줄까? 그리고 누가 그것을 경험하러 찾아올까? 이 상념은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향기가 더욱 진해질수록 강해져만 갔다. 그래 이건 일종의 페로몬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그런 것 말이다.

 나는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갓 만들어진 노릇노릇한 빵들이 진열되기 시작하고 있고 블라인드가 걷히며 영업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딱 이시간대쯤이면 시작되는 이 곳의 하루다. 지금까지는 다른 시간대에서 흘러갔지만 이제부터는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상을 유지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시작점이다.

 “어서 와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한 소녀가 한 손에 빵을 들고서 나를 맞이했다. 갈색 빛에 한데 묶은 머리를 말아놓은, 마치 크루아상을 떠올리게 하는 헤어스타일에 마카롱같이 달콤해 보이면서도 동글동글한 눈. 나의 방식대로 표현하자면 빵 같은 느낌의 아이다. 그것도 장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걸작.

 “뭐야, 벌써 먹고 있는 거야? 그러다 살찐다.”

 나는 인사말 대신 이 말로 받아쳐 줬다.

 “괜찮아요, 전 먹어도 살이 안 찌는 체질이니까요!”

 “그거 정말로 괜찮은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특이체질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다른 여자가 들으면 기만자라고 눈총을 보낼 정도로 말이다. 뭐, 이제 익숙한 일이니까.

 “그럼 시작해볼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안쪽의 주방으로 향했다. 일단 이 아이가 시작한 반죽을 마치고 다 구워진 빵을 정렬하여 진열한다. 제빵에 일가견이 있으니 맛은 보장한다.

 “미치루, 가게 문 열어라!”

 밖을 향해 소리치자 멀리서 네 하는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영업종료 팻말을 영업 중으로 바꾸며 정문의 잠금을 해제할 것이다. 이걸로 오늘 하루의 본격적인 시작이 다가왔다.

 

                                                  -1-

 

 계산대와 진열대를 오가며 열심히 일을 하는 저 소녀의 이름은 오오하라 미치루. 아까도 말했지만 빵 같은 애다. 생김새부터 ‘저 빵이에요!’ 하는 듯하고 행동이나 분위기도 담백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하다. 예전에는 뭔가 연예계에 몸을 담고 있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보시다시피 우리 빵집의 마스코트다. 나이는 19세로 한창 청춘의 활기가 넘칠 때이고 전직이 그쪽 계열이라 그런지 그녀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은근히 많은 편이다. 원래라면 빵의 맛을 보러 와줬으면 좋겠지만, 유명세가 그런 걸 내가 별수 있나. 그저 나와 그녀가 만든 빵을 먹고 나서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만 들게 만든다면 지금으로선 더할 나위 없다. 실제로도 미치루의 실력은 확실하니까. 다만 단점이 있다면...

 “오빠, 빵 더 없어요?”

 “뭐? 아까 몇 개 줬잖아.”

 “이미 다 먹어버렸다고요. 그리고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났잖아요.”

 “하아... 조금만 기다려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주방으로 돌아가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그녀가 먹을 빵을 만들기 위해서다. 오오하라 미치루, 그녀는 빵 중독자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빵을 좋아한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매일매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 손에는 빵을 들고서 먹고 있고 그 양은 식사가 들어갈 배가 따로 있나 라고 생각할 정도로 많다. 게다가 손에 빵이 없거나 줄 만한 게 없다면 마치 배터리가 다 떨어진 장난감처럼 정지하거나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어버린다. 참고로 빵 없이 버틸 수 있는 최대한도는 1시간. 저러고서도 살이 안 찌다니 얼마나 연비가 나쁜 체질인 걸까? 아마 자동차였다면 당장 리콜 처리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그런 단점을 덮어버리고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저 미소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력이야 물론 좋지만, 더 중요한 건 손님 앞이나 빵을 먹으면서 짓는 저 순수한 미소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그녀가 방송계에서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요소에 있었을 것이다. 보는 나도 흐뭇해하는 걸 보면.

 “어서 오세요!”

 문 쪽에서 종이 요란하게 울리며 손님이 들어왔다는 걸 알려주었다. 모습을 보니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얇은 갈색 코트를 걸친 수수한 차림에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제과 진열대 쪽으로 향했다. 아마 보는 건 케이크라고 생각된다.

 “저기...”

 그녀가 작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미치루를 불렀다.

 “혹시 그거 없나요?”

 “그거요?”

 “그 뭐였지... 케이크인데... 초코에...”

 아무래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보통 모양이라든가 맛으로 기억하고 이름은 모르기에 생기는 흔한 일이다.

 “음...”

 이번엔 미치루도 고민하는 모양이다. 하긴 힌트가 적어서 한 번에 때려 맞히기는 힘들 것이다. 게다가 미치루의 전문분야는 제과가 아닌 제빵계열이니.

 “그거라면 제가 도와드리죠.”

 이번엔 내가 나설 차례인 것 같다. 미치루 혼자서는 원하는 걸 찾아주는데 버거울 것 같으니.

 “네...?”

 “여기 있는 상품들은 거의 제가 만든 겁니다. 혹시 지금 진열된 것 중에는 없습니까?”

 “음... 없는 것 같아요.”

 천천히 진열대를 둘러보고 온 대답은 그거였다. 그렇다면 이 방법이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번 골라보세요. 어지간한 건 다 있을 겁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태블릿PC를 하나 꺼내 보였다. 안에 있는 건 가게에서 진열하거나 만들 수 있는 제품들의 카탈로그다. 물량이 없거나 만들지 않아서 진열되지 않은 품목을 찾을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가끔 이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주문제작 식으로 의뢰를 해오는 경우가 많다.

 “음...”

 그녀는 천천히 손가락을 놀리며 제품들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다. 원래 찾는 것만이 아닌 다른 것도 보는 거로 봐서 꽤 신기해보였던 것 같다. 이걸 처음 보여주면 거의 이런 반응이지만.

 “아, 이거에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게 보여준 것은 초콜릿 케이크의 한 종류였다. 그거라면 오늘은 만들지 않았으니 진열되지 않을 만도 하다

 “블랙 포레스트군요. 지금 바로 만들어드릴까요?”

 “가능하시면 부디.”

 “알겠습니다.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으니 기다려 주실 수 있나요?”

 “네.”

 “미치루, 자리로 안내해드려. 커피나 차가 필요하시면 주문받고.”

 나는 그 말을 뒤로하고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과정은 조금 번거롭지만,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으니 바로 만들면 된다. 재료를 다 준비하고 테이블 쪽을 보니 미치루가 커피 한 잔을 그녀에게 주었다. 거리는 꽤 가까워서 말소리는 다 들리는 편이다.

 “그 케이크 누구에게 주는 거에요?”

 “제 남자친구요. 올해로 4주년이네요.”

 “그래요? 좋은 분인가 봐요?”

 미치루의 눈이 사랑 이야기로 빛나고 있다는 건 안 봐도 훤하다.

 “네, 그랬었죠. 처음 만난 때가 아직도 떠오를 정도로요.”

 그렇게 그녀는 마치 추억의 페이지를 살며시 펼치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이름은 사토, 남자친구의 이름은 오가사와라. 만난 곳은 대학의 교양 강의였다. 당시의 그녀는 소문난 미인이었지만 그 칭호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의도적으로 사람을 피해왔다. 원래부터 사람들하고 섞이기가 힘든 성격이라 더욱 그랬었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건 처음에 오가사와라 씨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만난 계기는 조별과제 때 조원들이 도망가 버려 혼자 어찌 못하는 상황에서 그가 옆에서 계속 도와주었다고 한다.

 “솔직히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생각보다 인상이 험해 보이거든요. 안 그래도 사람 만나기 힘들었는데 덜컥 겁이 나버린 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계속 만났잖아요?”

 “미치루 양, 당신은 사람의 첫인상을 어떻게 판단하나요?”

 “음... 빵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어요.”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대답이다. 사토 씨는 그 대답에 쿡쿡 웃음을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재미있네요... 확실히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전 어쩔 수 없이 겉모습으로만 판단했거든요... 하지만 그는 조금 달랐어요. 오와라 군... 아, 이건 그이의 별명이에요... 그는 처음에 봤을 땐 무서워 보였지만 제 생각과 달리 자상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어요... 그땐 억지로 제가 조장을 맡을 수밖에 없었는데... 오와라 군이 없었다면 아마 제대로 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요.”

 그렇게 둘이 만나고 대화를 하는 시간이 많아져 점점 오가사와라 씨의 장점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도 사토 씨의 성격과 단점을 이해해주었고 어떨 때는 조언도 해주면서 그녀의 문제점을 고쳐주기도 했다. 조별과제가 끝난 뒤에도 그 둘은 계속 만났고 이윽고 오가사와라 씨가 먼저 고백을 하여 사귀기 시작했다고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동기 내에서 발칵 뒤집혔었죠... 오와라 군 쪽은 ‘그 노비타급 왕바보 오가사와라가?!’였고 제 쪽은 ‘그 엘사 여왕 사토가?!’라는 반응이었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어떻게 저를 함락시켰는지 남자 쪽에서 계속 물어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뭐라고 했대요?”

 “으... 음...”

 부끄러운 듯 잠시 말을 주춤하는 사토 씨였다.

 “거기서 멈추는 거예요?”

 살짝 보채는 말투로 미치루는 다음 내용을 촉구했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빵 하나가 들려있었다. 아마 내가 오븐에 반죽을 넣을 때 몰래 가져온 것이겠지.

 “그... 이렇게 말했어요. 끝나지 않는 겨울은 없다고...”

 “우와...”

 미치루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왜 그런지는 알 것 같다. 나도 지금 그 상투적인 말 때문에 닭살이 돋아서 미치겠으니까.

 "똑같네요. 다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닭살 돋는다고 막 몸을 배배 꼬았거든요.“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소리를 내며 웃는 사토 씨였다. 말을 좀 더듬고 아직 소심한 것 같지만 저런 웃음을 내비칠 수 있는 건 아마 오가사와라 씨 덕분이리라.

 그 이후로는 사귀는 동안에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그녀는 차근차근 얘기해주었다. 오븐에서 구워진 케이크를 꺼내 식히고 들어갈 것들을 만들고 있는 시간 동안에 듣는 그 이야기는, 마치 라디오에서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사연을 감상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두 과거의 일이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같이 있었던 그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라는 걸 나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사랑이란 걸 태어나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왠지 알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왜냐하면, 추억을 꺼내어 늘어놓으며 얘기를 하는 사토 씨의 모습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일까? 그 행복함 속에서 아주 약간이지만 슬픔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케이크 얼마나 남았어요?”

 얘기하던 도중에 미치루가 나를 향해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슬슬 약속한 시각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몇 분만 더 기다려, 거의 다 됐어.”

 블랙 포레스트는 반죽을 구운 뒤에 어느 정도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안 그러면 겉에 뿌리는 초콜릿이 지나치게 녹아버리니 말이다. 원래 하루 정도 냉장고에서 숙성시키는 게 제일이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흐응...”

 미치루는 그런 식으로 콧소리를 내며 향을 맡더니 이내 사토 씨가 있는 자리로 돌아갔다. 다른 손님은 없으니까 내버려 둬도 되겠지. 그 이야기의 다음을 듣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그래서? 그다음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아, 이거 한번 드셔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사토 씨에게 건네준 것은 아까 미치루 전용으로 만든 소보로였다. 그녀가 남에게 자기 몫의 빵을 건네준다니... 처음 있는 일이다.

 “아, 그럼...”

 그녀는 소보로를 감사히 두 손으로 받아들고 작게 한입 물었다.

 “어?!”

 그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입가에는 미소가 만연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빵을 맛있게 먹는 손님을 보고 있으면 절로 의욕이 나기 마련이다.

 “아, 죄송해요... 너무 이상했죠?”

 “아니에요! 맛있는 빵을 먹고서 미소를 안 지을 수가 없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미치루의 표정은 단호했다. 반박 따윈 받지 않을 기세다.

 “후후, 그렇군요. 근데 이건 무슨 빵이죠? 멜론 빵 같은 느낌인데...”

 “소보로에요. 빵 반죽 위에 땅콩버터와 설탕 등을 합친 반죽을 위에 올려서 구운 빵이죠.”

 “아아... 꽤 특이하네요.”

 “여기선 찾아보기 힘든 빵이니까요.”

 그녀의 말대로 그 빵은 다른 나라에서 배워온 레시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 뭔가 싶었지만 그 고소한 맛이 좋아서 바로 배워서 써먹고 있다. 왠지 모르게 가장 많이 소비하는 건 미치루지만.

 “그러고 보니 오와라 군도 빵을 굉장히 좋아했었죠.”

 “그래요?”

 저 눈빛은 분명 동료가 생겼음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빛이다.

 “근처에 좋은 빵집이 있으면 꼭 찾아가기도 했고, 직접 제빵에 관해서도 배우기도 했으니까요... 다만 자기는 손재주가 그리 좋지 못하다고 계속 자책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지만요... 그래도 전 그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언젠가 자기 이름을 건 베이커리를 열겠다고 제게 틈만 나면 말했을 땐...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었어요.”

 응원인가... 누군가가 옆에서 응원해주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오가사와라 씨는 알고 있을까?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는 정말로 축복받은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다.

 “미치루, 일로 와서 포장 좀 부탁해.”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도 여기까지다. 주문했던 케이크가 다 되었기에 포장을 하고 건네줘야 한다. 미치루는 내 말을 듣자마자 종종걸음으로 계산대에 와 능숙하게 포장 용기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빵을 마구 먹는 버릇만 없다면 정말로 좋은 직원인데 말이다.

 “정말 흐뭇한 이야기이지 않나요?”

 용기 조립이 끝나고 케이크를 건네받으며 그녀는 내게 물었다.

 “응. 저렇게 헌신적인 사람은 정말로 드물 거야. 부러움을 넘어서서 존경스럽기까지 하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게 말하는 미치루의 눈에서는 옛일을 생각하는 듯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에게도 분명 자신에게 헌신적이었고 나아갈 길을 이끌어줬던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평범한 빵집 아가씨이지만 예전에는 시대를 풍미했던 아이돌이었고 그 뒤에는 담당 프로듀서와 수많은 동료와 팬들이 그녀를 이끌었을 것이 분명하다. 미치루가 왜 갑자기 활동중지를 선언했는지는 아직 모른다. 매스컴에서는 한심한 추측들이 나돌고 있고, 넌지시 물어봐도 능숙하게 회피하고 있으니 전혀 알 길이 없다. 다만 어떠한 계기로 큰 상처를 입었고 그것이 그녀의 아이돌 생활을 끝장냈다는 것만 어렴풋이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의 호기심은 미치루 자신을 위해서라도,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모르는 척을 해주는 게 어쩌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때가 되면 말해줄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다 됐어요!”

 포장을 끝내고 미치루가 사토 씨를 향해 소리쳤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대를 향해 걸어왔다. 나는 그 사이 포장 용기 위에 촛불 하나를 붙였다.

 “고맙습니다. 오와라 군이 기뻐해 줬으면 좋겠네요...”

 “오오하라가 말했던 맛있는 빵을 먹고서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은 저도 동의합니다.”

 “역시 그렇겠죠... 저,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는지...”

 “아, 오오하라 입니다.”

 “네? 혹시 두 분...”

 “아닙니다. 그냥 성이 같을 뿐입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가게의 이름은 오오하라 베이커리. 이름에서 따온 가게는 맞지만 그 주인은 내가 아니다. 진짜 주인은 미치루의 부모인 오오하라 집안이다. 본점은 그분들이 직접 운영하시고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은 그 기술을 전수받아 차린 2호점에 가깝지만 말이다. 그분들 밑에서 배웠던 시간을 포함해서 여기서 일한 시간은 내가 그녀보다는 길지만 서로 격식 없이 대하는 편이고 어찌 보면 친남매처럼 보일 수도 있다. 나의 이름에 붙은 성도 오오하라이기 때문에 더욱 착각을 자주 당하는 편이고. 그녀도 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아마 놀랐으리라 생각한다.

 “아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아뇨, 자주 착각하시거든요. 다들. 이름이 같아서 그런 거니 어쩔 수 없죠.”

 “그건... 좀 피곤할 지도요...”

 “예전에는 말이죠.”

 지금은 그것보다 빵은 안 사고 사인만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더 골치다.

 “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소보로라는 거 몇 개만 담아주실 수 있나요?”

 “알겠습니다. 몇 개 정도 필요하신지요?”

 “4개면 될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듣고서 곧바로 갓 구운 소보로 4개를 포장했다. 원래 미치루의 몫이지만 이런 경우라면 봐주겠지.

 “감사합니다.”

 따로 담은 소보로 봉지를 받아들고 그녀는 내게 감사를 건넸다.

 “아닙니다,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요.”

 “마음에 들어 할 거예요, 분명.”

 그 말에는 확신이 담겨있는 것 같이 느꼈다. 그렇게까지 말해준다면 나로선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 다음에 다시 올게요... 오와라 군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좋아할지도 모르겠네요.”

 결제가 끝난 뒤에 사토 씨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가게를 나섰다. 뒤에서는 나와 미치루가 고개를 숙여 배웅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들어왔을 때보다는 어느 정도 가벼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로 오와라 씨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분은.”

 “절대 잊지 못하겠지.”

 나는 나직이 말하며 주방으로 돌아갔다. 살짝 정리를 하고 재고가 떨어진 걸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미치루는 어디선가 빵을 꺼내 입에 넣기 시작했다.

 미치루는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오가사와라 씨는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확실한 물증은 없다. 다만 사토 씨가 그에 대해 말할 때의 말투가 약간 먼 옛일을 회상하는 느낌이었고 시선도 어딘가 먼 곳을 향해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꽃다발...

 “흰 카네이션과 물망초였나...”

 꽃에 대해서는 그다지 해박하지 않다. 하지만 전에 미치루랑 꽃에 관해 얘기를 나눴을 때 그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으로부터 배운 꽃말 몇 가지를 내게 알려준 적이 있다. 굳이 누군가를 만나는데 그런 꽃을 준비하는 거라면, 의미는 한 가지밖에 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울해하지 않고 추억을 회상하듯 이야기할 수 있는 단계라면 분명 잘 이겨내고 있는 것이겠지. 지금으로선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슬슬 정리해볼까.”

 바깥은 이미 어둑어둑해진 밤 10시. 특별한 일이 없으면 지금부터 정리를 시작하여 퇴근하면 된다. 블라인드를 닫고 남은 빵들을 분류하고 가져가고 싶은 건 가져간다. 보존해도 상관없는 품목을 제외하면 당일 날에 만든 빵만 판매하는 게 원칙이므로 처리할 게 많아지면 일이 조금 많아지기도 한다.

 “네에~”

 아니면 미치루가 주워 다가 먹어버리거나. 워낙에 먹는 양이 많아서 어떨 때는 재고가 쌓이지 않을 때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위장은 한번 연구해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들어가기 전에 오븐 청소 좀 해줄 수 있지? 오늘은 빨리 들어가 봐야 해서.”

 “맡겨만 주세요.”

 평소라면 내가 처리하겠지만 오늘은 지인과 약속이 잡혀있다. 간단히 얘기를 나눌 게 있다고는 하는데 그 내용은 알려주지 않아 가봐야 알 것 같다. 저번에 사업을 다시 시작해 재기하고 있는데 안 좋은 소식이 아니라면 좋겠다... 그 모든 걸 잃어버린 표정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고 아직 빌린 돈도 받지 못했으니까.

 “미치루.”

 “아...”

 주방으로 가는 그녀를 나는 잠시 불러 세웠다. 그러자 그 맑고 또랑또랑한 눈으로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그 지인을 생각하고 있자니 순간적으로 생각이 나 불러 세웠으나 뭘 말하려 했는지 까먹어버렸다. 저 순진하게 생긴 얼굴과 표정에서는 그 어떠한 근심도 서려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한때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억지로 끌어내려 져버린 아이돌의 눈빛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뭐랄까... 보고 있으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응집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뭔가 그것에 관해 말을 하고 싶은데 이걸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 그래요?”

 “아냐, 아무것도.”

 그러나 아까도 생각한 것이긴 하다만 이건 밝혀서는 안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먼 곳을 바라보는 표정을 보기는 했지만 그걸 캐묻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언젠가는 대답을 들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별일이네요? 불러놓고 아무 말도 안하는 건. 혹시 많이 피곤한가요?”

 “글쎄다. 그렇게 본다면 그런 걸지도.”

 “대회가 가까워지고 있기는 하지만 무리하면 안 돼요. 자, 이거 먹고 힘내요.”

 그녀가 건네준 것은 바로 단팥빵이었다.

 “이건 오늘 만든 기억이...”

 “당연하죠, 제가 만든 거니까요.”

 아, 아침에 만들어놓은 건가... 그렇다면 눈치를 채지 못할 만도 하다. 오늘은 거의 주방에서만 지냈으니까.

 “그럼 잘 먹을게.”

 나는 그 빵을 받아들고 입에 물었다. 잘 익은 밀가루와 버터의 향연과 안에 들어있는 팥의 달콤함이 내 안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발전한다면 나를 넘어설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잘된 일이지만 라이벌이 하나 더 늘어나는 건 사양이라는 생각은 내 욕심인 걸까?

 “역시 맛있네.”

 “그죠? 역시 맛있는 빵 앞에서는 근심이든 뭐든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그건 미치루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여기서는 일단 긍정의 표시는 해두자. 그러는 게 좋겠다고 내 안에서 말하고 있으니까.

 “그럼 전 부탁하신 일을 처리하러 가볼게요.”

 “그래, 내일 보자.”

 “네!”

 그 힘찬 대답을 받아들고 나는 한 손을 올리며 가게를 나섰다. 쌀쌀한 밤공기가 나의 피부와 폐를 채워내기 시작했다. 아침보다는 춥지 않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자.

 "음?”

 역에 도착하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아, 오오하라 씨.”

 내가 반응하기 전에 저쪽에서 나를 보고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사토 씨.”

 “여기가 퇴근길이신가 봐요.”

 “네.”

 사토 씨는 내 대답에 잘됐다는 듯 손을 가볍게 모았다. 들고 갔던 꽃다발은 이제 남아 있지 않았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는데 나중에 시간되시나요?”

 “그게 언제죠?”

 “그게... 확실히 정해진 게 아니라서요. 일단 말이라도 해둘까 하고 생각했거든요...”

 “음, 일단 기억해두겠습니다.”

 “그럼 근시일내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사토 씨는 그 말을 끝으로 고개를 숙이며 길을 나섰다. 종종걸음인 걸 보니 급한 일이 생긴 모양이다. 아까 말한 것에 대한 준비일까? 이건 기대된다고 해야 할지, 뭔가 귀찮은 일에 휘말려버렸다고 해야 할지 오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덤이다. 하지만 딱 잘라 거절할만한 명분도 없으니까 일단 이야기는 들어보는 것이 좋겠지.

 “후우...”

 하지만 일단은 전철 의자에 몸을 맡기고 편히 쉬자.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긴다. 이것이 나의 생활방식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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