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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하야 「히비키,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

댓글: 9 / 조회: 1567 / 추천: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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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25, 2017 18:06에 작성됨.

 

 

추천브금 : https://www.youtube.com/watch?v=uBDEYnctA4A

1.

근래 들어 자주 체감하는 것이 있으니, 사람이 피곤한 상황에 놓이면 진짜로 머리가 아파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퇴근 시간 직전에 이르러서야,

코토리씨가 잘못 짜놓은 스케쥴 관련 엑셀 파일을 발견하고는

처음부터 일일히 확인하고 재정렬 한다던가,

아니면 리츠코에게 아이돌 관리 관련해서 한 소리 듣는다던가,

아, 특히 이럴 경우에는 두통이 더 심해진다.

 

이제 막 신입에 불과한 담당 아이돌이 하늘같이 모셔야 될 스태프들에게 대들고는,

그것도 모잘라서 동료를 상대로 눈에 불을 키고 싸우고 있을 때. 어휴 ㅅㅂ

 

치하야 「히비키, 내 잘못이 아니라니까?」

 

히비키 「우아악! 전적으로 치하야 잘못이였다죠!」(버럭)

 

문 하나를 두고, 대기실 안쪽에서 치하야와 히비키가 서로 싸우고 있다.

들어가서 말릴까? 아냐, 그러면 오히려 역효과일지도.

히비키의 괴상한 고집병이야 그래도 수용 가능 범위 내에 들어온다손 치더라도,

치하야의 경우라면, 오히려 내가 먹혀버릴지도 모른다.

대신 상황 파악을 위해, 일단은 문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핸드폰을 켜놓고, 녹음 버튼을 눌러본다.

 

히비키 「넌 너무 감정적이고 냉정하지 못하다구! 스태프들한테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해!」

 

치하야 「아니, 난 냉정해.」

 

히비키 「냉정해서 그렇게 화낸거야?」

 

치하야 「(버럭) 히비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함부로 말하는거야!

내가 왜 그러는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봤어?

히비키가 나를 이해 못하는 거라고!

..히비키는 평생 나에 대해서 모를꺼야.」

 

히비키 「(울컥) 그러는 치하야는 단 한 번이라도 내게 뭐라도 말해준 적 있었어?

..자신, 잠깐 나갈께ㅡ」

 

문이 확 열리는 바람에 코를 부딛힐 번 했지만,

나가려는 히비키의 두 눈에 그렁그렁히 맺힌 눈물을 보자니

차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대신 조용히 대기실에 들어와, 치하야 곁에 대기실 의자를 두고 앉아본다.

 

치하야 「...(멀뚱멀뚱)」

 

프로듀서 「둘이서 또 싸웠구나..할 말 없니?」

 

치하야 「예. 있어요.」

 

치하야 「여기 여자 대기실이에요. 나가시죠?」

 

프로듀서 「..아, 그렇니?」

 

뻘쭘하네.

뭐, 어느정도 기대했던 대답이긴 하지만.

 

프로듀서 「잠깐 나가서 대화 좀 할래?」

 

 

2.

방송국 옥상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두 잔씩을 사서

발코니 마당 벤치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는 치하야에게로 다가간다.

바람에 흩날리는 치하야의 푸른 머리결이 반짝이는걸 보자니, 

예전에 방송차 방문했었던 오키나와 콘도이 비치의 푸르른 해변이 떠올랐다.

..참 입만 다물면 천사인데.

그녀에게 아메리카노를 건넨다.

 

프로듀서 「아메리카노지?」

 

치하야 「...」

 

프로듀서 「무언가 맘에 안 드니?」

 

치하야 「설탕을 탔네요. 설탕은 성장 발육에 안 좋은데 말이죠.

뭐 일단 샀으니까 먹을께요.」

 

프로듀서 「...」

 

프로듀서 「..왜 싸웠니?」

 

치하야 「그건..사실 제..아니, 사실, 프로듀서 잘못이 크죠(싸늘)」

 

북쪽 서릿바람만치 매서운 치하야의 눈길과 마주하노라니,

뼈 속에 골수까지 절대 영도 아래 얼어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다.

머리는 지난번 게이머용 피시를 위해 월급 쪼개서 사려다가 포기한 인텔코어 I3 CPU 마냥,

초고속으로 회전하며 사건의 발단이 무엇인가를 논리귀납적으로 분석한다.

 

프로듀서 「설마 일 때문이니? 

문제는 없을 것 같았는데..공익 광고잖니?

게다가 신입 아이돌에게는 정말 과분할 정도의 기회라고?」

 

치하야 「..프로듀서는 그게 무슨 광고인지 알기는 하나요?」

 

프로듀서 「학교 폭력에 대한 공익 광고지?」

 

치하야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아시긴 하네요.

그런데 저 한심한 스태프들은 자기들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가 보네요.

그래서 따끔하게 한 소리 좀 해줬어요.

어떻게 그런 사람들 밑에서 일하라고 절 여기로 보낸거죠?」

 

참 미안하다.

스태프 분들 죄송합니다.

이따가 따로 전화 만나서 빌면서 사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치하야에게 덧붙여 물어본다.

 

프로듀서 「어느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니?」

 

치하야 「스태프 중 한 명이 제 표정이 안 좋다고 지절질 하더라고요. 어처구니 없었죠.

학교 폭력에 대한 주제니까, 당연히 엄격한 표정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누가 봐도 완벽했는데 제 말을 이해 못하더라고요.

게다가,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서 기분 나쁜 표정을 짓는다고 먼저 시비를 걸었어요.

저는 아무 표정도 안 짓고 있었는데..」

 

프로듀서 「..지금 기분 안 좋지?」

 

치하야「아뇨. 아주 좋습니다.」

 

기분 좋다는 사람의 표정을 잠시 동안 응시한다.

그녀의 표정은, 비유하자면 도미니크 앵귀르의 그림 속 제우스와도 같았는데,

한 손에 창을, 한 손에 구름을 쥔 채

당장이라도 천둥 번개를 지상의 인간들에게 던져버릴 것만 같은 표정이다.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한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을껄?

 

프로듀서 「안 좋은 것 같은데?」

 

치하야 「좋은데요? 아주 차분하지 않나요?」

 

프로듀서 「아니.」

 

치하야 「그렇다면 세수라도 하시고 오시는게 어떨까요?」

 

프로듀서 「..됬다.」

 

프로듀서 「그렇다면, 치하야는 결과적으로 잘못한게 없다는 말이네?」

 

치하야 「..예. 그런 셈이죠.

저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충분히 차분하게, 잘 설명해주려고 노력했단 말이에요.」

 

이 부분에선, 다소 과격하게 나가야된다.

허나 근거 없는 돌격이란, 치하야를 상대함에 있어

마치 가로등 불빛 아래 돌진하는 나방보다도 무모한 짓이다.

고로, 과격하더라도 합당한 근거가 필요하다.

주머니 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치하야에게 솔직한 심정을 밝혀본다.

 

프로듀서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도 치하야 잘못이야.

일단 치하야는 대화 자세부터가 글러먹었어.」

 

치하야 「그게 무슨!」

 

흥분해서 자리를 박차려는 그녀를 제지하고,

대기실 탁자 위에 핸드폰을 조용히 내려놓는다.

지금까지의 대화가 모두 녹음된.

재생 버튼을 누르자, 지금까지의 대화가 핸드폰을 타고 그대로 재생된다.

 

「..뭘 알아? ㅡ주제에..ㅡ한심한..세수라도 하시는게..」

 

프로듀서 「아니라고 그러지만, 치하야는 흥분하면 과하게 자기 방어부터 하려는 모습이 보여.

..그게 꼭 치하야 잘못이라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런 반응을 쉽게 납득하기 힘들어.

히비키도 그런 대다수 사람들에 속할 뿐이고.」

 

치하야 「..예, 조금 흥분했나봐요. 그나저나, 치밀하시네요.

보기와는 다르게.」

 

프로듀서 「윽..왠지 가슴 아픈 말이구나.」

 

프로듀서 「..치하야.」

 

치하야 「예?」

 

프로듀서 「히비키에게 먼저 사과해줄 수는 없니?」

 

치하야 「..역시, 제 잘못이니까 그런건가요?」

 

응 그래. 니 잘못이야. ㅆㅂㄴㅇ.

라고 말해주고는 싶지만, 그랬다가는 앞서 소개한 제우스의 표정을 다시 한번 보게 되면서,

이번에는 진짜로 번개를 맞을 것만 같았기에

다시 I3 CPU의 속도로 머리를 회전하면서 최대한 그럴싸한 말을 만들어본다.

 

프로듀서 「아냐. 누구 잘못은 아니지.

단지, 사람의 개성이니까.」

 

프로듀서 「치하야는, 솔직히 말해서 사람을 쉽게 못 믿고, 

너무 민감하고 뾰족한 부분이 있어.

물론 그 속은 너무나도 맑고 곱지만,」

 

..은 치하야한테 그런 부분이 있었나?

거짓말치려니 나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올 뻔해서, 

초인적 본성으로 간신히 참아내고는 말을 잇는다.

 

프로듀서 「어쨌거나 히비키 같은 단순한 아이들에게는 그게 받아들여지기 힘들 수도 있어.」

 

히비키 미안하다.

불식간에, 어느새 단순한 아이가 되어버렸구나.

..물론 진짜로 단순하기는 하지만.

 

프로듀서 「히비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

 

치하야 「..동료요.」

 

프로듀서 「그게 다니?」

 

치하야 「..아뇨.」

 

치하야 「..치, 친구..(홍조)」

 

얼굴을 붉히며 아메리카노 컵을 쥔 손을 꼼지락거리는 치하야를 보노라니,

무슨 데이트하는 두 청춘마냥 느껴지지만

놀랍게도 그녀는 단지 친구 한 마디를 내뱉기 위해 이토록이나 얼굴을 붉히고 있다.

뭐, 치하야 다운건지도.

 

프로듀서 「..치하야에게 있어 자존심이 무엇보다도 중요한거 잘 알아.

하지만, 그래도 한 번만 굽혀줄 수는 없을까?

직장 동료나, 비즈니스를 떠나서,

친구잖아.」

 

치하야 「...잠깐, 자리 좀 비킬께요.」

 

 

3.

친구라..참 오래간만에 써보는 단어다.

..생각해보면, 난 지금까지 쭉 혼자였었다.

부모님조차도 내 발로 떠나버렸고,

교우 관계에 있어서도, 별다른 필요 당위성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냥, 혼자 사는게 당연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민감하게 역린처럼 반응했는지도 모른다.

학우간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고, 왕따시키지 말자는 공익 광고였으니까.

단 한번도 우정을 느껴본 적 없었던 입장이였기에, 

이미 시작부터 이번 일에 나 스스로 거부감과 배척심이 발동되었는지도.

 

솔직히, 친구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나마 있다면 765 프로 아이들이겠지만,

765 프로 아이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걔들은 나를 친구라고 생각할까?

나는 그렇게 믿고 싶은데..

그렇다고, 물어보기에는 너무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솔직히, 765 프로의 아이들만은 달랐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함께 땀흘리고 웃고 울면서, 

어느새 나는 아이들을 친구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히비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

즉 내 편이 아니였다고 생각했을 때

설령 내 잘못인걸 이미 알면서도, 반응이 더 격하게 나간건지도.

 

히비키는 이미 대기실에 돌아와 있었다.

살짝 열린 대기실 문으로, 히비키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것이 들려온다.

 

히비키 「..응 괜찮아. 나 톱 아이돌이 될 사람이니까!

응 괜찮아 어망! 안 힘들어! 응? 자신은 안 울었다죠! 나 괜찮으니까..(끅끅)..」

 

..가족인가 보네?

입을 가리면서 눈물을 억지로 참는 히비키를 보니,

마음이 왠지 모르게 쑤셔온다.

..역시, 꼭 사과해야겠어.

..히비키의 전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애써 모른 척, 문을 두어번 두들기고는 들어가본다.

 

히비키 「우, 우갹!」

 

치하야 「아무것도 못 봤어.(딴청)」

 

히비키 「..봤네. 우는거 다 봤지?」

 

치하야 「..응.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엄청나게 울던데? 그나저나, 나 그렇게 티났어?」

 

히비키 「..엄청 티난다죠?」

 

말을 꺼내야 하는데,

내 입은 입술에 납으로 만든 추를 달아놓은 마냥 굳게 다물려서 움직이질 않는다.

히비키 옆에 앉아서, 메이크업 분장 도구를 찾으면서 

어떻게든 말해보려고 노력했지만

우리 둘 사이에 놓인, 깊은 그랜드 캐니언 협곡과도 같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다물려진 입은 끝까지 열리질 않았다.

..만약에, 히비키는 날 친구로 생각조차 안하고,

그냥 비즈니스 관계로 생각하는데 내가 먼저 친구로써 미안하다고 나서버리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

 

그런데, 히비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히비키 「..미안해 치하야.

자신이 잘못했어.

치하야는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같이 나와줬는데..

그걸 이해해주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치하야도 화난 거겠지?

친구인데 이해도 못해주ㅡ」

 

친구라고 했다.

히비키가 나보고, 친구라고 말했다!

 

친구. 그 단어 하나의 힘은,

마치 겨울의 얼어붙은 동토를 녹이는 봄의 햇볕과도 같이,

나의 무겁게 잠겨 있던 입을 마침내 풀어주었다.

 

치하야 「아니야!」

 

치하야 「내가 잘못했어. 히비키 미안해.」(꾸벅)

 

치하야 「내가..냉정하지 못했어.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던 것 같아.

항상 내가 인정 안하고 까칠하게 반응하고..

정말 미안해.

하지만 고의는 아니였어.

히비키는, 내 '친구'니까.

히비키 미안해.

나 같은 것 때문에 괜시리 고생하고 서로 안 맞는데도 기분만 상하ㅡ」

 

히비키 「그, 그렇지 않다죠!

자신은 자신이 치하야랑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죠!」

 

치하야 「지, 진짜?」

 

히비키 「응! 자신은 항상 가볍고 덤벙대는 이미지라..

차분한 치하야랑 같이 가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구!

그러니까..너무 신경쓰지 마!

아까 전엔 내가 미안했어.

그러니까..설령 이대로 안 되더라도 신경쓰지 말구,

앞으로도 우리 계속 친구로 같이 하자!」

 

치하야 「..잠깐 먼저 나갈께.」

 

 

엔딩.1

문 안쪽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일단은 잘 풀린 것 같다.

문이 열리고, 치하야가 등장한다.

 

치하야 「..거기서 뭐 하시나요? 스토커세요?」

 

프로듀서 「또 그렇게 말하네. 치하야는 역시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는 버릇이 있다니까?」

 

치하야 「아뇨. 이건 일부러 이렇게 말한 거에요.」

 

프로듀서 「...」

 

치하야 「휴우..휴..휴..휴..」

 

그때, 무슨 바람 쐐러 나온 심해 고래마냥,

치하야가 괴상하게 한숨을 쉬기 시작했다.

 

프로듀서 「뭐해 치하야?」

 

치하야 「사과, 전에 심호흡이요.」

 

내가 잘못 들은건가?

어쩌면, 저 멀리 심연 우주에 도사리는 공포의 존재가 수광년을 건너 내 정신 뇌파에 왜곡을 불러일으켜서

청각적 인지 능력에 큰 간섭이 일어나서 잘못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치하야의 입에서 '사과',라고?

후훗. 잘못 들었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시 한번 확인차 물어본다.

 

프로듀서 「사, 사과라고 한거야?」

 

치하야「예. 스태프들에게 정식으로 정중히 사과하고, 다시 시작해보려고요.」

 

프로듀서 「..그 단어를 듣게 되다니, 정말 의외네.」

 

치하야 「..시비거나요? 당신에게도 사과할만한 짓을 해 드릴까요?」

 

프로듀서 「아, 아니! 그냥 좀 놀랐을 뿐이라고?」

 

치하야 「휴우..휴우..그런데 프로듀서, 진정이 안 되요!

어, 어떻게 하죠?

저 이러다가 또 실수해버리면 그때는 정말로ㅡ」

 

막 허둥지둥대는 치하야를 보노라니, 평소와는 다른 갭이 느껴져서 퍽 귀여웠지만,

겨우 사과 한 번 하는데 이러는 거라는걸 상기하니 참..씁쓸했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사무소에 들어온지 처음으로 본인이 사과하겠다는데.

 

프로듀서 「잠깐! 진정해라.

정, 진정이 안 되면 날 때려서라도 진정해 봐.」

 

그리고, 뼈가 울리는 듯한 왼팔의 통증.

 

프로듀서 「으악! 왜 때리는 거야!」

 

치하야 「때리면서라도 진정하라면서요.

그런데 진정이 안 되네요. 때릴 가치가 없었어요.

혹시, 몇 대 더 때리면 진정될까요?」

 

프로듀서 「...아니 그러지 말아라」

 

그때 대기실에서 히비키가 녹차 캔을 들고 나와서는,

조심스레 치하야에게 건넨다.

 

히비키 「민트차 캔이야. 덥지?」

 

치하야 「고맙지만 나는 민트는ㅡ」

 

..분위기 못 타는 치하야의 옆구리를 툭 건든다.

 

치하야 「윽!..사, 사실 민트를 좋아하는데, 고마워 히비키.」

 

딸깍, 치이익..

 

치하야 「(홀짝)..이제 좀 진정이 되네.

민트차 따위 주제에..아니 민트차 정말 맛있네.

프로듀서, 진정이 됬으니까요. 이제 스태프들에게 사과하고 올께요.」

 

히비키 「같이 가자! 도와줄께 치하야!」

 

치하야 「고, 고마워(감동)」

 

봄 개나리마냥 풀린 치하야의 표정을 본 후에야,

비로소 안도감이 든다.

 

이후, 그날 광고 촬영은 잘 마무리되었고,

신생 765 프로의 인지도도 조금 올라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치하야에게 한 명의 진정한 친구가 생기게 되었다.

 

 

 

엔딩.2

광고 촬영 이후, 요즘 히비키의 표정이 어둡다.

타카네나, 다른 아이들이 이따금씩 걱정스레 표정을 지으며 물어봐도

히비키는 그저 아무 일도 아니라는, 제법 평범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때때로 히비키의 얼굴에 드리워지는 그늘은 짙고 어두웠다.

그녀들 중에서도 타카네는, 지난번 치하야와의 광고 촬영에서 무언가 문제가 있었나 하고 지레짐작하였지만,

히비키가 말해주질 않으니, 아직까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였다.

그래서 히비키를 위해, 오래간만에 시간을 내보기로 결정했다.

 

타카네 「저, 히비키?」

 

히비키 「아, 응?」

 

타카네 「이번 주말에, 시간 좀 내어주실 수 있으실런지요? 

오래간만에 오붓하게 함께 식사라도 하고 싶군요.」

 

히비키 「응! 그거 진짜루 좋은 생각이다ㅈㅡ」

 

그 순간, 마치 황혼녘에 몰락하는 태양과 함께 스믈스물 찾아오는 밤의 그림자마냥,

사무소의 그늘 속에서 조용히 뻗어나온 가녀린 손이 히비키의 어깨를 감싼다.

치하야의 손이다.

오랜 친구마냥 퍽 자연스럽게 히비키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치하야는 히비키의 나머지 어깨에 머리를 기울이고는, 타카네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치하야 「어쩌지? 히비키짱은 나랑 선약이 있는데..

꽤나 중요한 약속이라서 말이야.」

 

퍽 아쉽다는 표정에, 타카네는 어쩔 수 없이 단념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지금은 물러나야 될 때였다.

그것보다 치하야씨, 방금 히비키보고 히비키짱이라 불렀던가?

 

불쾌하다. 

감히 이 몸조차 그리 부르기를 허락받지 못했건만,

72년 따위가 앞서 히비키를 그리 부르다니?

 

활화산마냥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심정을 겉으로는 조금의 내색조차 보이지 아니하며,

타카네는 예의 그 고운 미소로 치하야를 응수한다.

 

타카네 「후훗..그러면 어쩔 수 없겠군요.

히비키, 다음에 뵙죠.」

 

....

아무래도, 조만간 조금 적극적으로 나서야 될 것 같다.

 

타카네 「개 같은 년 (중얼)」

 

...

타카네가 사라지자,

치하야의 팔이 더욱 더 깊게 히비키를 감싸오른다.

마치 팔뚝을 오르는 정글 구렁이 같이,

소름끼치도록 부드럽게 파고드는 그녀의 손은 히비키의 어깨에 밀착해서는,

유연하며 끈적한 움직임으로 어깨를 쓰다듬고 짓누른다.

 

치하야 「많이 뭉쳤네.(속닥)」

 

그 소름끼치는 기분에, 히비키의 몸은 공포로 잠시 경직되었다.

어느새 그녀의 어깨 속에 얼굴을 파묻은 치하야가, 

고개를 푹 기댄 채로 히비키의 뒤에서 속삭인다.

 

치하야 「아참, 히비키짱. 문자 확인했어?

내가 방금 전에 보냈는데.」

 

히비키 「우 우응..아직 못 확인했는데 지금 볼게.」

 

치하야 「에에? 우리 절친 사이인데, 아직도 확인 못했었어? 나 자꾸 그러면 화가 나는ㅡ」(싸늘)

 

히비키 「화 확인할테니까!ㅡ」

 

핸드폰에 수신된 수많은 문자와 전화 기록들.

한 수백여개는 될 것이다.

놀랍게도, 그 문자의 수신자는 치하야다.

아침 인사부터, 식사와 심지어 화장실 갔느냐, 화장실에서 내린 종류는 무엇이였냐 같은 내용의 문자까지,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듯한 숨 막히는 문자 내용들로 빼곡한 히비키의 스마트폰.

 

히비키 「그 그런데..너무 많이 보내는거 아닐까?」

 

치하야 「..왜? 다 내가 내주잖아? 히비키짱은 뭐가 문제일까요?..

설마, 내가 싫어졌다던가 그런건 아니겠지? 

설마 나는 친구가 아니였다던가..

그러면, 나 정말로 슬퍼질꺼야(싸늘)」

 

히비키 「(기겁) 아, 아냐! 그 그런게 아니야!」

 

치하야 「그러면 그렇지, 그럴리가 없잖아?(히죽)

..그나저나 히비키, 오늘 아침 샤워 안 했었지?

히비키만의 시큼한, 땀 냄새가 나네. 

안까지 젖은걸까?(킁킁)」

 

히비키 「(소름)으..응. 지각할 것 같아서..」

 

치하야 「괜찮아. 히비키는 땀냄새도 마음에 드니까.

우린 친구잖아. ㅡ친구 친구 친구 친구..(히죽)」

 

치하야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친구니까.(미소)」

 

 

 

 

 

ps. 최근 너무 귀신이나 괴물, 우주적인 글을 쓰다 보니까

오래간만에 평화로운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엔딩은 마찬가지로 정해진건 없습니다.

1이 좋다면 1이 진엔딩, 2가 좋다면 2가 진엔딩.

다음글은 행복1개 배드 2개 중에서 뭘 쓸까 고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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