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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 하루카 더 리틀 레드 데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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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17, 2017 21:47에 작성됨.

 

"치하야 쨩. 잠깐, 여길 보지 않겠어?"

 

모두와 제각기 흩어진 일정 탓에, 혼자 사무소에 남아 적당히 빈 시간을 때우고 있는 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조용한 공간에, 한 사람의 침입자가 발생한 모양이었다. 바로 근처에서 들려오는, 일부러 톤을 낮춘 듯한 익숙한 여자아이의 목소리. 나는 그 목소리가 원하는 대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보인 것은, 예상한 대로의 인물.

 

나보다 조금 작은 키에, 그 나잇대 소녀다운 파스텔 톤의 밝은 의상을 갖추고 있는, 명랑한 성격이 제일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갈색 단발머리 소녀. 같은 아이돌 동료인 아마미 하루카.

 

"후후후, 내가 온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라니. 대체 얼만큼 여기에 집중하고 있었던 걸까나?"

 

하루카가 좀 더 이 쪽으로 다가와 내 손에 들려있던 악보를 손 끝으로 톡톡 쳤다. 일명 팜므파탈, 이라는 것을 일부러 어필하는 듯한 그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수상해, 나는 도발적인 미소를 머금고 있는 하루카를 유심히 살폈다. 앗.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더라도, 그와 연관은 있음직한 아이템이, 하루카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리본 한 쌍을 대신하고 있었다. 조금 짙은 붉은 색의, 양 옆에 작은 뿔이 나 있는 머리띠.

 

".....하루카, 그건 뭐야?"

"그거라니? 어떤....아아, 이거? 후후, 글쎄에.....과연 뭘까나."

 

던진 질문에 하루카는 쿡쿡 웃고는 반쯤 내리깐 눈으로 이 쪽을 바라보며, 끝까지 치명적인 무언가인 척 했다. 저기 있지 하루카. 열심히 하는 건 알겠지만, 정말 어설퍼. 응. 정말이야. 나는 그 솔직한 감상을 입밖에 내는 대신에, 하루카가 원할 것 같은 말을 입에 담았다.

 

"그, 뭐라고 해야할까.....변화가 상당히 신경 쓰이는데. 무슨 일 있었니?"

"뭐어.....그렇게나 알고 싶다면야, 어쩔 수 없네에....."

 

하루카는 말이 끝나자마자, 대담하게도 이 쪽의 귀에 바짝 입을 가져다대었다. 동작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어색함과는 별개로, 닿자마자 바스러지는 숨결의 묘한 감각은 나를 움찔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킥킥. 하루카는 그런 내 반응이 정말 재밌다는 듯이 몇 번 더 간지러운 웃음소리를 내더니, 작게 속삭였다.

 

"치하야 쨩하고 다른 모두가 알고 있는 하루카 씨의 정체는 놀랍게도, 악마였답니다♪ 이름하야, 하루카 더 리틀 데빌. 이 머리띠는, 그 증거라는 걸로....."

"응, 거짓말이네."

"으흑.....너무해."

 

시원스럽게 발해버린 확답에, 하루카는 토라져서는 이쪽과 약간 거리를 두었다. 나는 시달렸던 귀를 매만지며, 뭐라뭐라 투덜거리고 있는 자칭 악마 씨를 바라보았다.

 

"이왕 증거로 할 거라면, 날개나 꼬리 같은 쪽을 보여주는 쪽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 그게.....촬영장 스탭 분에게 받은 건 이것뿐이고.....만약 날개 같은 걸 받았다고 해도 달고 오는 건 솔직히 거추장스러워서.....그, 사람들의 시선도 있고 그러니까....."

 

방금 진실을 들어버린 것 같았지만, 무시해주기로 했다. 대신, 하루카가 내게 다가와서 이것저것 말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래서, 그 작고 붉은 악마 씨는 무슨 일로 나한테?"

"음, 그건.....그렇지. 조금 재밌는 제안을 하고 싶어졌는데, 어떨까나."

"제안?"

"응. "

 

이것도 단순한 악마 흉내의 일환인 건지, 아님 다른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던 나는 하루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루카는 금방 원래의 텐션을 되찾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나는 우선 그녀가 어떤 제안을 할 건지부터 알아두기로 했다.

 

"치하야 쨩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줄게."

 

대신, 그 대가는 치하야 쨩의 영혼이라는 걸로. 하루카는 여전히 웃는 얼굴인 채 그렇게 고했다. 아무래도 전자 쪽인 게 확실하네. 농담이나 장난에 어울려주는 것은 서툰 편에 속하지만,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특히, 어울려줘야하는 상대가 하루카라면 더더욱.....실은 좋아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몰랐다.

 

"뭐든? 과연 하루카 같은 어설픈 악마 씨가, 그럴 수 있는 걸까."

 

그래서 조금, 심술궂은 쪽의 말을 던져본다. 그러자 하루카의 웃는 얼굴이 조금 딱딱해졌다.

 

"후, 후후후. 의심이 정말 많으시군요~ 이번 의뢰인은."

"이 쪽에서 의뢰한 적은 없었다고 생각하지만....."

"아, 맞아. 그랬지 참."

 

에헷, 콩.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덜렁이 어필이 한순간에 지나갔다. 절로 쓴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솔직히 기대는 안되지만, 한 번쯤 부탁해보기는 해볼까."

"치하야 쨩에게 있어서 나는, 대체 어떤 존재인 거지....."

"일단, 믿음직스럽지는 않다는 건 확실해."

"우와아, 그러언......"

 

하루카 더 리틀 데빌이 푹 고개를 숙였다. 별로 의도한 건 아니지만, 퇴마 직전까지 가버린 모양이었다. 완전한 퇴마까지 바라지 않았던 나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렇지만 만약 하루카가 정말로 부탁한 일을 해낼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거야."

"그런 걸까나.....좋아, 그럼 뭐든 팍팍 말해보라고. 그렇지만 각오하는 게 좋을 걸? 대가는.....착실히 받아갈테니까."

 

덧붙여서 이 쪽이 자신있는 건, 노래 불러주는 거 하고 응원해주는 거하고, 과자 만들어주기, 심심하지 않게 이야기 들어주기, 어, 음 그리고.....손에다 하는 마사지도 할 수 있어! 그리고, 그리고 또.....하루카가 손가락을 몇 번 꼽으면서 말을 이었다. 자신 있는 거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할 수 있는 일들을 늘어놓는 것에 가까웠다. 어디보자, 괜히 이상한 것을 말하는 것보다는, 나열한 것들 중 하나를 고르는 편이 여러모로 낫겠지.

 

그래서 적당히 하나를 골라보려고 했지만, 다른 곳에 생각이 미쳤다.

 

만약 이게 장난 같은 게 아닌, 다른 무엇 하나 섞인 것 없는 순도 100%의 진짜라고 한다면, 분명 영혼을 걸어야하는 것일텐데.....과연 그것까지 걸어서까지 뭔가를 부탁할 필요성이 있냐는 건 둘째치고, 우선은 그 영혼이라는 것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릴 필요성이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버린 것이었다.

 

"있지, 하루카."

"응?"

"하루카가 받아간다는 영혼이란,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 거야?"

"아, 그, 그건....."

 

그 생각 그대로가 질문이 되어 하루카에게 날아갔다. 그러자 하루카는, 보는 사람이 재밌어질 정도로 눈에 띄게 당황해했다. 그렇네.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을 테지. 악마-라고 한다면 흔히 생각하곤 하는 상투적인 문구를, 그냥 흉내내본 것에 불과한 거니까.

 

"서로 뭘 주고 받겠다는 제안을 할 거라면, 먼저 그 주고 받는 것이 무엇인지 미리 정해놓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하, 하하하. 그, 그래. 맞아. 그렇지."

"그래서, 하루카가 말하는 영혼이란?"

"음, 으으음.....그게, 그러니까.....어....."

 

하루카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필사적으로 딴청을 부리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음, 이걸로 뭔가를 놀린다는 것의 즐거움을 알아버린 것 같다.

 

"애초에 영혼이라는 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원래 순수한 궁금증이었던 것은, 그런 하루카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고 싶다는 일종의 가학심으로 바뀌고 말았다. 나는 일부러 따지듯이 계속해서 하루카에게 말을 걸었다.

 

"핫."

"만약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하루카에게 있어서 이 제안은 하루카에게 있어서 상당한 손해 같은 걸. 아무런 대가도 받지 못하고 내가 시키는 일을 해야하니까."

"우우....."

 

악마라는 건, 어쩌면 자원봉사자의 또 다른 말인 걸까나? 내가 떠보듯이 던진 말에, 하루카는 얼굴을 붉히며 붕붕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반론을 시작했다.

 

"아, 악마도 있으니까 영혼 같은 것도 당연 존재하겠지!"

"글쎄.....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은데. 둘 중 하나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 그래......좋아. 그럼 내가 말하는 치하야 쨩의 영혼이라는 게 뭔지, 똑똑히 알려주겠어."

 

그건 바로, 치하야 쨩의 전부를 가리키는 거야! 하루카는 과장스러운 태도로 번쩍 손을 들더니, 이 쪽을 가리키고는 큰 소리로 외쳤다.

 

"흐음.....그래. 대가는 전부, 라....."

"어때, 무시무시하지? 작은 악마라고 해서 얕보면 곤란하다구?"

 

하루카는 빨간 혀를 빼꼼 내밀고는 씩 웃었다. 본래의 페이스를 되찾아버렸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론할 거리가 없어졌다는 건 결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결국은 제안이니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소리구나."

"치하야 쨩은 내 노래, 듣고 싶지 않은 거야?"

"전부를 걸 필요성까지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면 과자는!? 이번에는 상당한 자신작을 준비해두고 있다고?"

"앞에서 말한 것과 똑같아."

"마사지! 나 마사지 하는 거 자신 있어! 엄마한테 직접 전수 받은 가문의 비기!"

"미안, 그 쪽은 전혀 관심 없어서."

"토호호호....."

 

푹. 하루카는 통한이 담긴 웃음소리와 함께 상반신 전체를 힘없이 떨구었다. 완전히 그로기 상태다, 이건. 어쩌면 나, 엑소시스트의 소질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엉뚱한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에, 하루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다 죽어가는 목소리를 흘렸다.

 

"그럼.....그러엄......트, 특별히 기회를 줄테니 다른 걸 골라보지 그러니.....너, 너무 힘든 건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처음만 하더라도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들어준다고 했지 않았어? 나는 목구멍까지 치고 올라오려는 그 말을 꾹 참았다. 지금 저 앞에 있는 작고 가련한 악마에게 그런 말을 했다간, 그대로 K.O 당할 게 틀림없을 것 같았다.

 

이럴 때는 그냥.....뭐라도 시켜보는 게 좋을까.

 

별로, 사람을 부리는 건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적당한 거.....예를 들어, 저기까지 갔다오라고 한다던가. 아니면, 손? 앉아? 기다려?

 

.....잠깐. 사람에게 뭘 시키려는 거야, 나는.

 

하루카가 들으면 기분 나빠할 게 틀림없겠지. 그리고, 아무리 장난이라고 해도 그런 사소한 것에 내 전부를 걸기에는 너무나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치하야~쨩? 설마 이대로 교섭 결렬, 이라는 건 아니겠지요? 네?"

 

뭘 시켜볼까 고민하는 사이, 하루카가 슬금슬금, 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나서는 이 쪽을 여기저기 뜯어보듯이 살폈다. 잠깐의 침묵조차 견디기 어려웠던 걸까. 나는 무표정을 끝까지 고수하며, 내 전부를 걸기에 아깝지 않은 일이 과연 무엇일지 쭉 생각해보았다.

 

".....좋아, 정했어."

"우와핫, 저, 정말!?"

 

그리고, 마침내. 하나를 떠올리고는, 조금 확신이 부족한 상태에서 작게 말로 꺼내보았다.

 

"앞으로도 하루카가 계속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아무리 장난이라도- 장난에 불과한 것이라도. 내 전부를 걸어서 하루카를 바로 옆에 둘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라고 표현해도 좋지 않을까. 노래나 응원해주기 같은 건, 그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주 약간, 웃음을 머금은 채 자칭 리틀 레드 데빌을 바라보았다.

 

"어....."

 

얼빠진 모습의 작은 악마는, 그 자리에서 딱 굳어버린 상태로 제대로 된 말을 잇지 못한다. 과연 이 쪽이 내건 소원은, 저 악마에게 있어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 걸까. 들어주기에는 너무나도 버거운 소원? 그것도 아니라면, 들어주기 싫은 쪽일까? 쭉 곁에 있어주기에는, 내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작은 것에 불과하거나 해서.

 

"정말, 치하야 쨩은....."

 

시간이 지나자 작은 악마는 이 쪽을 향해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그런 걸까. 그저 단순한 장난이었을 뿐인데도 내게는 무척이나 무겁게 느껴져, 하루카에게서 시선을 거두려고 했다. 그런데, 하루카가 그걸로 끝이 아니라는 듯 무척이나 연극적인 자세로 두 손을 들고 고개를 흔들흔들거렸다. 마치 이런이런- 어쩔 수 없군- 이라는 상투적인 문구가 따라붙을 것만 같은 포즈.

 

그리고 그 뒤로 이어서-

 

"고작 그런 걸로 되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손해보고 있는 게 아닐까나. "

 

이런 말이 나왔다. 후훗, 정말.....이래서야 어디가 악마라는 건지. 나는 아까부터 설득력 없는 주장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서 눈을 떨어트리지 않은 채, 가벼운 조롱을 입에 담았다.

 

"악마 주제에 잘도 사람을 걱정해주네."

"나는 착한 악마니까, 걱정해주기로 했어."

"착하다는 말과 악마라는 것은 서로 안 어울리는 것 같지 않니?"

"뭐 어때. 하나쯤은 있어도."

 

.....그렇게까지 말하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나는 완전히 패배를 시인하는 의미로 살짝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하루카는 승자의 여유로움이 가득한 웃음을 만면에 지어보이고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러니까 치하야 쨩이 손해보지 않도록, 한가득 덤을 얹어줄 거야."

 

승부는 몰라도, 거래에서는 충분히 이득을 봤으니까 괜찮은데. 그렇게 항변했으나 하루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쭉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지, 예를 들어 여기 피곤함이 가시는 혈자리에 마사지를....."

"그건 정말 관심없어."

 

엑, 잠깐. 치하야 쨩~ 하루카는 거의 울기 직전인 눈으로 이 쪽을 바라보았다. 미안, 하루카. 그렇지만 관심이 없는 건 없는 거니까. 나는 조금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고개를 돌려, 그런 쪽에는 전혀 흥미 없음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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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치하 왓호이! 공식 커플.....아니 듀엣곡 크림슨 러버즈를 손꼽아 기다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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