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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가키 카에데 「오늘 취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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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16, 2017 00:10에 작성됨.

야심한 시각.

그녀는 오늘도 나를 비밀스럽게 부른다. 

나는, 그녀의 부름에 지체없이 달려간다.

나는 마부이니까, 그녀를 궁전으로 태우고 가지 않으면.

신데렐라를 맞이하는 마부는 열두 시만을 기다린다.

왜냐하면 그 때야말로 어른의 시간이기 때문에.

왜냐햐면 그 때야말로 신데렐라의 시간이기 때문에.

 

익숙한 발걸음으로, 익숙한 골목길을 돌아, 익숙한 술집의 문을 열고 익숙한 얼굴을 맞이한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는지 그녀가 후후훗, 하고 미소를 지으며 귀엽게 손을 흔든다.

 

「프로듀서 씨, 여기예요.」

 

알고 있어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그녀의 옆에 착석한다.

이 작은 곳은 그녀의 베이스캠프이자 안식처, 그리고 은신처.

그리고, 항상 초대되는 손님은 단 한 명.

오늘은 뭘 드실 건가요, 내가 묻자 카에데 씨가 어딘지 모르게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바텐더를 곁눈질한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착석하자마자 바텐더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묘기를 부리더니 멋진 색의 칵테일을 한 잔 내놓는다.

오늘은 가벼운 건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카에데 씨를 흘깃 쳐다본다.

그녀는 그저 잠자코 마시라는 듯한 눈빛을 보낸다.

한 모금 마셔보니 조금 세다, 이건 큰일이다.

내가 취해버리면, 카에데 씨를 데리고 돌아갈 수가 없다.

하지만 내 걱정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지, 카에데 씨는 빨리 잔을 비우라고 독촉하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녀의 눈빛에 천천히 붉은 칵테일을 한 입에 털어넣는다.

알코올의 기운이 혈관 속을 타고 고속열차처럼 돈다. 

내가 머리를 조금 흔들며 카에데 씨를 쳐다보자 바텐더가 미리 짰다는 듯이 나에게 다른 칵테일을 내놓는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이려니 그녀가 어서 마시고 취해버리라는 듯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미소를 짓는다.

어쩔 수 없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빠르게 취할 것만 같다.

 

사무소 내에서 주당으로 알려진 카에데 씨지만, 의외로 주량은 그리 많지 않다.

한두 잔 경쾌하게 들이킨다 싶으면 이내 눈이 게슴츠레해지고, 거기서 서너 잔 더 추가하면 혀가 꼬이기 시작하고, 마지막으로 한두 잔 추가하면 정신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오늘은 꽤나 센 술을 여러 잔 마셔서인지, 맥주를 홀짝이고 있는 카에데 씨보다 내가 먼저 취해버린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주사는 없는 편이지만, 취하게 되면 말이 없게 된다는 모양이다.

뭐, 취한 뒤의 일이라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약간은 흔들거리는 시야로 카에데 씨가 내 얼굴을 기웃거리며 쳐다보는 듯한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다.

무슨 중요한 말이라도, 이 시점에서 말하고 싶은걸까.

 

「프로듀서 씨, 취하셨나요?」

 

그 말에 취한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대답할 수가 없다.

술기운 때문일까, 카에데 씨의 얼굴이 너무나도 흐릿하게 보인다.

아니, 이건 더욱 또렷하게인가, 나는 인식하지 못한다.

무언가 내가 잘못한 거라도 있는 것인지 카에데 씨의 얼굴이 조금 붉은 빛으로 물드는 것 같다.

무언가 부끄러운 일이라도, 아니면 무언가 화가 나는 일이라도, 아니면 무언가... 아니다, 더 이상은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자꾸만 무거워지는 머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 카에데 씨를 쳐다본다. 

잠시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듯한 카에데 씨는, 나의 움직임을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언가를 말한다.

낮게 지나가는 소리라, 정확히 들리지 않는다.

낮게 지나가는 중얼거림이라, 정확히 들리지 않는다.

낮게 지나가는 아름다운 목소리라, 나는....

 

「프로듀서 씨, 저는 당신을-」

 

그 이상은 안 돼, 나는 불가항력으로 너무나 또렷하게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세찬 머리 회전으로 거절한다.

나의 움직임에 카에데 씨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본다.

마부는 마부로서 남아야 해, 호박 마차는 누군가는 몰아야 해, 그걸 뺏어가 버리면 안 돼...

목 안에 말하지 못한 소리들이 돌고 돌아 다시 삼켜진다.

대신 내 입에서 정체모를 소리가 나오는 것 같다. 

나의 몸인가, 나 자신도 잘 알 수가 없다.

나의 중얼거림에 카에데 씨가 슬픈 표정을 짓는 것 같다.

조금씩 술 기운에 젖어들어간다, 나는 천천히 침몰해간다.

그녀의 미소에, 눈물에, 손길에, 바텐더가 다시 내오는 오렌지색의 칵테일의 향에 취해버린다.

저건 거부해야만 한다. 하지 않으면-

 

「더 안 드실 건가요?」

 

카에데 씨의 침전해 가는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듯이 들려온다.

그녀는 날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 걸까, 이 오렌지 속에서 피어나는 건 도대체 무엇일까.

그녀의 독촉에 나는 하는 수 없이 오렌지색 칵테일을 들이킨다.

최대한 느리게, 최대한 느리게, 최대한 느리게, 최대한 느리게.

하지만 아무리 시계를 돌려도 열두 시는 오게 마련이다.

 

「제가 신데렐라라고 하셨죠?」

 

그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뇌리에 직접 말하는 듯이 들린다. 

무슨 마법이라도 쓴 걸까, 왜 지금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명확히 들리는 걸까.

술이 아니라 칵테일에 취한 것일까, 나는 알 수가 없다.

 

「전 신데렐라가 아니예요.」

 

아니라고, 그건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신데렐라는 그 누구의 힘이 아닌, 그녀 자신의 힘으로 만든 건.

난 그저 그녀를 조금 도와줬을 뿐, 그러니까 그 이상은-

 

「전, 프로듀서 씨 없인 신데렐라가 아니예요.」

 

안 돼요, 카에데 씨. 

당신은 아이돌, 나는 프로듀서.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텐데.

그 말만은,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텐데.

그럼 내 안의 본능이, 허물어지지 않을텐데...

 

「이대로 잠드실 건가요? 눈 앞에 당신만의 신데렐라가 있는데?」

 

당신만의.

그 말은 하면 안 돼요, 카에데 씨.

당신은 신데렐라, 하찮은 마부에게 사랑을 줘선 안 돼...

당신은 신데렐라, 왕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아야만 해....

하지만 취해버린 나는 한 마디도 할 수가 없다.

 

「오늘 취했으니, 제 마음을 말씀드릴게요.」

 

안 돼.

제발, 카에데 씨.

당신은...

 

「저는, 타카가키 카에데는-」

 

오늘은 아무래도 취해버린 것 같다.

오늘은 아무래도, 너무나 취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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