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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마차(Pumpkin carriage) -10 오해와 진실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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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8, 2017 21:54에 작성됨.

띠링

문이 움직이면서 방울 소리가 청아하게 울린다. 가게 안에 들어서니 깔끔하게 차려입은 노신사가 눈인사로 인사한다. 단골이 되어버린 가게 바텐더의 인사에 받아주곤, 지정석이 되어버린 빈자리에 앉았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클래식이 흐르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조명. 고개를 드니 바 뒤편에 진열된 선반 위에는 이름 모를 술이 진열되어있다.

“오셨나요?”

한 자리 건너, 두 자리 옆. 미묘하게 서로 다른 색깔의 눈동자를 지닌 여신이 턱을 괸 채로 살며시 웃는다.

타카가키 카에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소위 ‘잘 나가고 있는 모델’이자—지금은 담당하고 있는 아이돌.

프로듀서는 가끔 이렇게 칵테일 바에 와서 카에데와 술을 몇 잔 걸치곤 했다. 바로 옆자리 앉지 않는 건, 혹시라도 괜한 기사를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마스터, 늘 마시던 거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바텐더가 글라스를 닦던 손을 멈추고, 바 클로스(Bar Cloth:닦는 데 쓰이는 천 조각)를 내려놓았다.

뒤편에 마련된 선반에서 다크 럼을 꺼내고, 선반 아래의 벌꿀이 담긴 병도 함께 집는다. 베이스가 되는 다크 럼 4/5, 벌꿀 1/5의 비율을 맞춰 셰이커에 집어넣고, 충분히 흔든다. 벌꿀은 낮은 온도에서 잘 섞이지 않다 보니, 흔드는 소리가 제법 오랫동안 울렸다.

“여기 있습니다.”

벌꿀을 섞어 색이 조금은 밝아졌지만, 그래도 베이스가 다크 럼이다 보니 여전히 어둡다.

“아직, 이름 짓지 않으셨나요?”

카에데가 프로듀서의 술잔을 바라보곤 묻는다.

NO NAME. 말 그대로 이름 없는 술. 다만 언젠가부터는 마시는 손님이 직접 이름을 붙이라는 의미로 전달되어, 바를 단골들은 자신만의 이름을 붙이곤 했다.

“프로듀서라는 이름은 어떨까요?”

카에데가 옅은 웃음소리를 흘리며 짓궂게 묻는다.

프로듀서는 말없이 목을 오른손으로 매만지다, 손을 내려 이름 없는 술의 글라스를 들어 한 모금을 넘겼다.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가 되신 것, 축하드려요.”

얼마 전에 있었던 실적. 그 일을 기점으로 346 프로덕션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선발주자였던 세 아이돌은 세간에서 노출되며 인기를 끌었고, 투자자를 비롯한 상층부의 마음을 끌어 아이돌 부문 사업을 확장했다.

데뷔가 예정되어있었던 사쿠마 마유나 카와시마 미즈키의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신인도 적극적으로 기용했다. 그 둘을 제외하고 정식으로 받아들인 아이돌만 해도 다섯 명. 마유와 미즈키까지 합하면 일곱이다.

선발주자였던 셋과 다르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덕인지 데뷔의 준비나 선전 등이 특히나 빨랐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에 일곱 명의 데뷔가 성황리에 끝내면서 미시로의 아이돌 부문은 완벽히 자리 잡았다.

언제나 기반을 쌓고, 성공하는 건 어려운 법. 이 실적을 높이 사 프로듀서는 신뢰를 얻어 책임자에 올랐다.

“미카와 시키도 프로듀서 덕에 잘 지내는 것 같아요. 전에는 괜한 짓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답니다.”

시키가 미카를 놀리면서 당황하는 광경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아닙니다. 전에 죠가사키 양도 말씀하셨듯이, 카에데 씨의 메일은 분명 큰 도움이 됐을 겁니다.”

미카는 사무소에 복귀하자마자 걱정을 끼친 사람들을 찾아가 사과 감사 인사를 했다. 시키를 찾아가기도 전에 먼저 만나러 간 사람은 다름 아닌 카에데였다.

그 뒤로는 사무원과 이마니시 부장, 그리고 베테랑 트레이너였다. 미카는 베테랑 트레이너가 ‘죠가사키—!’ 라고 불같이 화를 낼 줄 알았지만, 의외로 ‘오랜만이라고 무리하지 마라.’ 라면서 따스한 말을 건넨 모양.

“그렇게 자상하게 말씀해주시면 두근거리게 된답니다.”

긁적

“최근에는 바빠 이런 자리를 갖는 것도 오랜만이죠? 이러고 있으니까 예전 일이 생각나네요.”

정말로 예전의 일. 유닛이 제대로 결성하기도 전, 그러니까 카에데가 막 아이돌 부문으로 옮겼을 때다.

이제 와서 이야기하면 다들 놀라겠지만, 그녀는 본래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처음의 만남은 어찌어찌 넘겼지만, 그 이후로는 어째서인지 의식하게 되면서 어색한 때가 있었다.

프로듀서는 딱히 낯을 가리지는 않지만, 말재주가 부족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하다가—“술이라도 한잔하러 가 볼까요.” 라고 넌지시 권유해봤다.

그때 온 것이 바로 이곳.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아, 카에데는 술의 힘을 빌려 편하게 대화했다.

물론, 그 날 술을 너무 마셔 자신은 쓰러져버렸지만.

“프로듀서 씨에게는 언제나 놀라기만 하네요.”

프로듀서에게로 향하는 카에데의 시선.

“아이돌로 되게 해준 것도 그렇고, CD 데뷔도 그렇고, 저번의 스테이지도 그렇고...”

술기운에 힘을 빌리지는 않았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전했다.

“그게, 당신 나름의 마법을 거는 방법인가요.”

그녀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신이 나 보였다.

“언제까지고, 두근거리게 해주시네요. 후후훗.”

그리고 카에데는 이 기분이 계속되기를 바랐다.

언제까지고.

 

*

 

와아아아!

아직도 성난 소처럼 뛰는 심장, 귓가에 아른거리는 팬들의 함성,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성취감.

환희의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나쁜 기분만은 아니다.

“후흥—!”

연보라색 단발, 옆으로 삐쳐 나온 머리카락, 살짝 처진 눈매에 신장이 작은 아이돌이 자랑스럽게 웃었다.

“오늘의 라이브가 성공한 것도 전부 귀여운 제가 있기 때문이죠!”

아이돌, 코시미즈 사치코가 허리 위에 손을 올리곤 턱을 세워 오연한 표정을 지었다.

“오오!! 대단합니다!!!”

아직까지도 반짝이는 땀, 포니테일을 한 소녀—히노 아카네가 사치코를 보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낸다.

“라이브에서 붐버, 하셨는데도 아직 힘이 넘쳐나시는군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전력 대쉬를 하지 않았죠!!!”

“네, 네?”

“그러니, 함께 달려보도록 하죠!!! 으쌰아아아!!!!”

“잠, 잠깐만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꺄아악!?”

“붐버어어어어—!”

아카네가 사치코를 휘어잡더니만, 문을 박차듯이 열곤 뛰쳐나갔다. 문 너머로 사치코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하하...아카네는 여전하구나...”

미카가 아카네의 뒷모습을 보곤 쓴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여기 덥지 않나요? 라이브를 막 끝내서 그런지 후끈하네요. 벗어야...”

“자, 잠깐! 아이리? 그만둬!”

라이브가 끝난 직후라 소란스럽다.

“후훗, 다들 힘이 넘치네요.”

왼손에 감은 리본에 눈이 가는 여자아이—사쿠마 마유가 주변의 광경을 보곤 상냥한 목소리로 웃었다.

후발주자로 합류한 일곱 명의 아이돌이 데뷔한 지도 시간이 제법 흘렀다. 라이브도 성황리에 치러졌다.

미카의 경우, 히노 아카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척 놀랐다. 나중에 만날 거라는 예감은 했지만, 설마하니 이런 방식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면서 기뻐했다.

“미카 쨩, 미카 쨩. 나 힘~들~어~♪”

“전혀 힘든 목소리가 아니잖아!”

미카가 뒤에서 안겨 온 시키에게 당황하자, 주변 아이돌이 그 모습을 보곤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선발주자와 후발주자가 만나, 대화하고 연습하고—무대 위에 올라와 함께 어울린 지도 시간이 흘렀다.

“...다들...즐거워 보여서 다행이야...그 아이도...기뻐하고 있어...헤헤...”

“그...그 아이...!? 코, 코우메...그 아이라니?”

시라사카 코우메의 옆에 있던 코히나타 미호는 그녀의 중얼거림을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오들오들 떨었다.

가끔 이야기하는 ‘그 아이’ 는 마치 정말로 있는 것 같아,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느끼고는 했다.

“...걱정, 마...‘지금은’ 곁에 없으니까...”

미호의 얼굴빛이 코우메의 말에 노랗게 질렸다.

“어이—! 사쿠마, 데리러 왔어—!”

“어머나♡ 프로듀서 씨도 참.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유로 불러주셔도 되는데.”

마유가 대기실 문 바깥에서 들려온 소리에 눈에 띄게 기뻐했다. 그 웃음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여서, 보는 사람의 기분이 다 좋아질 정도다.

“그럼 마유는 가보도록 할게요.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마유는 아직 대기실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곤 자리에서 떠났다.

“그러면, 우리도 슬슬 가볼게.”

미즈키는 한눈팔면 곧장 옷을 벗으려는 아이리를 붙잡곤,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흔들었다.

아무래도 빨리 집에 보내지 않는다면 안 그래도 부족한 체력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 나도...얼른 집에 가서...녹화 영상...봐야하니까...이만...가봐야 해...”

“저, 저도 이만! 어두워지기 전에...!”

“좋아요. 그럼 다 함께 갈까요?”

맏언니인 카에데가 남은 인원들과 돌아가기로 했다.

‘사치코, 부디 무사해야 해.’

미카는 아카네에게 끌려간 사치코에게 돌아갈 테니 힘내라는 말을 메일로 보내두었다. 참고로, 원래라면 프로듀서가 끝날 시간에 맞춰 수고의 인사와 함께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겠지만, 오늘은 중요한 회의가 잡혀 아쉽게도 오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의 일정이라거나 그 밖의 일은 프로젝트에 속한 또 다른 프로듀서가 대신 도맡아주었다.

“...안, 안녕...!”

“그...그럼, 다음에 뵙도록 할게요.”

코우메와 미호와는 도중에 헤어졌다. 기숙사를 사용하는지라 방향이 달랐다.

기숙사 앞까지 데려다준다고 했지만, 멀지 않고 아직 날도 저물지 않으니 괜찮다면서 정중하게 거절당했다.

몸을 돌리자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세상을 붉은빛으로 물들인다. 약간의 감탄을 흘리게 되는 노을빛이다.

“예뻐...어떻게 저리 예쁠까...”

미카의 시선이 머리 위로 향한다.

시키가 그 시선 끝을 따라 바라보더니, 설명했다.

“응~? 그거야 태양이 지평선 부근에 있을 때는 햇빛이 대기권을 통과하는 경로가 긴 탓에 푸른빛은 산란되어 관측자에게 도달하지 못하지만, 파장이 긴 붉은빛은 산란되지 않고 관측자가 있는 곳까지 도달하기 때문이잖아.”

차마 뭐라 받아칠 자신이 없는 미카는 어이없다는 듯이 시키를 쳐다봤고, 그녀는 평소처럼 짓궂게 웃었다.

카에데는 미카가 한숨을 내쉬면서 투덜거릴 것을 상상하며—동료 아이돌과의 시간을 즐기려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정문 앞에 세워진 방송 차량을 보곤 잠시 멈췄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오늘 라이브 굉장했지?”

“응, 나 완전히 팬이 되어버렸다니까.”

처음에는 팬들이 아직 남아 있나 싶어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할까 싶었지만, 예상과는 달랐다.

아니—예상을 넘어, 가슴을 철렁이게 했다.

“그나저나, 그 총책임자 말이야...”

“아, 무서운 형님. 민완의 프로듀서 말이지?”

“그래. 나도 최근에 들은 거지만, 아무래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서 담당하는 게 바뀌는 모양이야.”

“담당이라면...아이돌도?”

“응.”

똑. 딱.

시간이 멈춘 줄만 알았다.

이야기하는 건 팬들이 아니었다. 방송 차량을 두고, 아직 뒷정리를 하든 중이던 관계자들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가슴이 떨려온다. 거짓말이라고, 착각일 것이라고 자기 최면을 건다.

“이런, 그건 좀 귀찮게 됐네. 그 형 씨, 무섭기는 해도 업무만큼은 굉장히 잘했으니까 말이야.”

“그렇지? 새로운 사람이 오면 업무의 방식이라거나 여러 가지 바뀌니 귀찮단 말이야.”

그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휴식이 끝난 지, 목소리는 멀어져갔다. 그러나 그 전의 말은 귓가에 감돌았다.

“...거짓말이지?”

미카도 석상처럼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충격에 빠진 듯,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언제까지고, 두근거리게 해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 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현실에서 도피하듯, 발걸음을 돌려 사무소를 향해서 무작정 뛰었다.

‘프로듀서.’

등 뒤로 누군가가 불렀지만, 들리지 않았다. 노을빛으로 물드는 아스팔트 위를 구두로 잘만 달렸다.

앞서 보냈던 코우메와 미호가 구두 굽 소리에 몸을 돌렸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프로듀서.’

얼굴은 무섭고, 감정 표현에 서툰 사람.

시간이 지나도 별로 변하지 않는 사람.

무슨 말만 하면 곤란하듯 목을 매만지는 사람.

그리고 아이돌에게 자상하고 따스했던 사람—.

그런 사람이 일언반구도 없이 담당을 그만둘 리 없다. 분명, 무언가의 오해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프로듀서!’

정말로 정신없이 달렸다. 얼마나 뛰어오는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렸을 땐, 개인집무실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숨을 거칠게 내뱉고 있다는 자신을 알 수 있었다.

“...!”

거칠게 열린 문소리에 프로듀서가 화들짝 놀랐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온 아이돌을 보고 걱정부터 했다.

“카에데 씨, 무슨 일이십니까?”

타카가키 카에데는—어떤 일에도 잘 흥분하지 않는다. 어른의 여유를 보이며,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그래서 프로젝트의 맏언니로서, 카와시마 미즈키와 함께 저 연령 조를 이끌면서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었다.

그런 그녀가 숨을 거칠게 내쉬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려온 것은 처음인지라 덜컥 겁부터 났다.

“...프로듀서...새로운...프로젝트를...맡는다는 게...정말인가요?”

숨을 고르고, 겨우 하고 싶은 말을 꺼낸다. 아직 숨이 찬지 말이 중간중간 끊겼지만, 의미는 전달되니 괜찮았다. 그러니 ‘아니’라는 답이 되돌아오기를 바랐다.

거짓말—혹은 헛소문. 프로듀서를 시기한 악소문에 불과할 것이기를 기원한다. 그가 평소처럼 어찌할 줄 모르고, 목을 매만지며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답하기를 몇 번이나 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조금 놀란 얼굴로,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무정한 목소리로 너무나도 가볍게 답한다.

“...아, 벌써 여러분께도 알려진 모양이군요.”

철렁. 가슴이, 내려앉는다. 심장이 아파져 오기 시작한다.

“원래는 정리가 된 이후 알려드릴 참이었습니다만...”

“...그럼...담당이...바뀌는...것도...?”

프로듀서가 다시 한번 놀란다. ‘그것까지 알고 계셨나요?’ 라고 얼굴에 적혀있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놀라움도 잠시. 더는 이야기를 미룰 것도 의미가 없는 것을 안 그가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프로젝트를 새롭게 맡게 되면서 지금 하는 일까지 병행하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

가슴에 손을 올리고 주먹을 꽉 쥔다. 그 손의 떨림은 보는 사람이 다 애처로울 정도로 떨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프로듀서는 그 떨림을 눈치채지 못한 채, 상사에게 업무를 보고하듯 말을 이었다.

“이제 일이 좀 익숙해지셨을 텐데 심려를 끼쳐...”

“—프로듀서 씨는.”

카에데가 프로듀서의 말을 처음으로 끊는다.

“...괜찮...으신가요...정말로...그래도 괜찮나요...?”

무엇이 괜찮다는 걸까. 말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프로듀서는 카에데에게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목에 손을 올리기 전에 생각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나름대로 답을 내놓고, 그녀들을 위해서 어찌할지—‘프로듀서’로서 답한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목소리가,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찌른다.

프로듀서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현행의 유지도 좋지만, 나아가기 위해서 다른 길을 찾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

“처음처럼 데뷔가 연기된 경우와는 다릅니다. 도리어 상층부에선 여러분을 신뢰하여 좀 더 많은 일을...?”

뚝. 뚜둑.

프로듀서가 얼음처럼 굳었다.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의 담당 아이돌이—타카가키 카에데가, 울고 있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턱밑으로 쉴 틈 없이 떨어진다.

당혹감, 의문, 불안, 생각—온갖 잡념이 뒤섞였다. 그러나 답을 돌출하지 못하고 뇌에 부하가 걸렸다.

지금 이 순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카에데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당황해 말이 나오지 못했다.

“...바보...”

먼저 말을 꺼낸 건 아이돌. 소녀는 원망 어린 눈길로 프로듀서를 쳐다보곤,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당신은...프로듀서는...정말, 로...바보...!”

카에데가 눈물을 남기곤 집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프로듀서는 그 자리에서 우뚝 서서, 그녀를 뒤쫓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혼란에 빠져 움직일 수 없었다.

“카에데 씨!”

그 대신, 담당하고 있는 다른 아이돌이 뒤쫓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앞에서 울었던 미카였다.

‘...무슨...?’

프로듀서는 그제야 무엇인가 잘못됐다는 걸 자각했다.

그러나 어디서부터—어디까지가 어긋났는지 찾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바보같이 서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집무실에 혼자 남겨진 프로듀서에게 다가온 건,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시키였다.

“시키 쨩, 물어본 게 있는데 말이야.”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 하지만 화 난 얼굴은 아니다.

언제나처럼 속내를 전혀 파악할 수 없는 표정이다.

“앞으로, 우리를 담당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

“네?”

“과연, rumour였구나. 아니, illusion...착각이려나.”

그제야 뒤늦게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 수 있었다. 제대로 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미시로 그룹은 아이돌 부문 사업을 확정하면서 그에 알맞게 새로운 프로젝트도 창설했다. 그리고 그 책임자로 최근 눈부신 실적을 세운 그를 내세우기로 한다.

상층부에선 어차피 동기나 다른 프로듀서가 맡으면 되니 후임자는 문제 될 것이 없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프로듀서에도 그 의견에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해 흔쾌히 승낙하고 진행했다.

그리고 이 창설된 프로젝트에는—그가 담당하고 있는 아이돌 역시 구성원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담당이 바뀐다는 의미는 어디까지나 프로젝트 드레스의 총책임자에서 내려온다는 의미였다.

신규의 프로젝트는 선배인 데뷔 조와 신인인 루키 조로 나누고, 경력이 다분한 셋이 이끄는 구조다. 최근에 대박을 터뜨렸다곤 해도 아직은 최소한의 안전함을 원하는 상층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정말로—착각과 오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녀가 모든 걸 알고 그리 물은 줄 알았다. 그래서 지레짐작해 대화의 부재를 생각하지 못하고 대답했다.

얼른 이 오해를 풀어야 한다. 사달이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휴대전화를 꺼내 카에데에게 연락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프로듀서.”

시키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휜다.

“이치노세 양...?”

그러나 웃음도 잠시, 시키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안절부절못하는 프로듀서를 바라보며 물었다.

“있지, 있지—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만약,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할 거야?”

“그거야...”

그다음 말이, 차마 입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다. 목이 막힌 기분이다. 그녀의 물음에 곧장 답하지 못했다.

이어지지 않는 대화. 얼어붙어 버린 시간.

그리고 그 고요함을 먼저 깬 사람은 시키였다.

“네에~정답, 정답! 시키 쨩이 맞춰볼게요!”

앞머리가 만들어낸 그림자가 사파이어를 담은 눈동자를 덮는다. 프로듀서는 그 눈과 마주 보면서—벌거벗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속마음까지 꿰뚫리는 것 같다.

“그만둔다.”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 뼈가 시릴 정도로 서늘했다.

“그렇지?”

“—.”

프로듀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동공은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냐하하.”

시키가 웃는다. 그러나 유쾌한 웃음소리는 아니었다.

어딘가 모르게 무미건조한 느낌이 묻어났다.

“역시 구조를 이해하게 되면, 다음부터는 지겨워진단 말이지. 어떻게 될까, 전부 읽혀. 그러니까...”

시키가 입에서 웃음기가 싹 하고 가셨다.

“흥미도 안 생겨,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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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가키 카에데, 카와시마 미즈키, 시라사카 코우메, 코시미즈 사치코, 코히나타 미호, 사쿠마 망유, 죠가사키 미카

히노 아카네, 토도키 아이리! 전부 애니메이션 1화 오프닝에 등장한 (CP데뷔이전) 아이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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