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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일상 - 카렌.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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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6, 2017 21:17에 작성됨.

 

미래를 장담할 수 없던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살고 있는 지금 당장이 미래였다. 하루를 원했고, 반나절이 귀했고, 1분 1초가 아까웠던 그 시절, 누웠던 침상에서 바라 본 마지막 잎새는 떨어지지 않았다. 잎새는 생명을 싹틔웠고 카렌은 삶을 불태웠다. 부족했던 건강을 몇 배로 되돌려받은 듯, 지금은 넘치는 힘을 가끔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은 카렌 자신의 기분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남들과 엇비슷한 체력일 뿐이지만 느끼기에 그랬다. 기력 없던 과거가 준 상대적 만족이었다.

 

"카아- 레엔!"

 

등을 툭 치며 다가오는 목소리에 카렌은 장난기 어린 미소로 화답했다.

 

"뭐, 뭐야. 그 낌새 이상한 웃음은."

 

"낌새 이상한 웃음이라니. 실망이야 나오. 나는 진심으로 환영의 미소를 선보인건데."

 

"그, 그런거라면... 의심해서 미안."

 

"아니야, 낌새 이상했던 웃음이 맞아."

 

"뭐야! 그런 장난!"

 

성을 내며 흔드는 몸대로 풍성한 머리칼이 흔들린다. 카렌은 소리내 웃으며 푹신하다 못해 흘러 넘치는게 아닐까 싶은 나오의 머리칼 끝부분을 몇번 잡아당겼다. 매번 당하는 장난에 반응하는 것과 다르게 손길은 익숙한 듯, 나오는 별 반응하지 않고 카렌의 옆에 착석했다. 나오의 몸에선 기름기 가득한 향이 났다. 카렌은 나오가 어디를 들렸다 왔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하여튼 파악이 너무 쉽게 된다니까. 생각하며 카렌은 말했다.

 

"줘."

 

"뭘?"

 

이럴 줄 알았지. 카렌은 무신경하게 나오의 눈을 바라봤다. 동그랗게 뜬 눈이 몇 초도 못 버티고 흔들린다. 카렌은 더 집요하게 나오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 저기. 그렇게까지 쳐다봐도 뭐 안 나온다고?"

 

"응? 뭐가 있긴 있나보네? 쳐다보지 않으면 뭐가 나오는 거였어?"

 

"그, 그게 아니라!"

 

오른쪽 위를 향한 동공. 분명 얼버무릴 말들을 찾고 있는 거겠지. 카렌은 자비롭게 그 시간을 기다려주기로 했다. 시선을 거두자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나오의 숨소리가 들렸다. 풋.

 

"뭐, 뭐야? 그 실없는 웃음은?"

 

"내가 웃었던가?"

 

"잘못 들었나?"

 

분명 들었는데.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카렌은 인내심을 가지며 부스러거리는 나오의 행동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아아-. 배고프다아-. 카렌은 괜히 기지개를 켜며 말을 툭 던졌다. 더 격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카렌?"

 

"응? 왜?"

 

"이거."

 

볼록 튀어 나온 황색 종이 봉투. 손으로 어찌나 꽉 잡았던 것인지 봉투 윗부분은 심하게 구겨져있었다. 봉투의 윗부분을 구겨 잡고 달랑거리며 이것을 들고 왔을 나오를 상상하니 카렌은 절로 웃음이 나왔다.

 

"너 말야. 왜 아까부터 웃어대는 거야. 대체."

 

"그냥. 나오가 좋아서."

 

"뭐, 뭐라는거야? 오늘 따라 이상하네?"

 

작은 칭찬에도 나오는 항상 어쩔 줄 몰라했다. 살짝만 찔러도 펑 하고 터지다 못해 폭죽까지 터트려주는 나오의 반응은 카렌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아주 가끔, 알면서 당해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연상이니까. 하지만 꽤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보면서 그것은 절대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그냥 천성인 것 같다.

 

"음. 그냥 좀 오늘은 깊은 생각을 했달까..."

 

"전혀 그렇게 안 보였는데 말이지."

 

"에잇, 옆구리 어택!"

 

"가, 간지러! 아, 진짜! 뭔 말을 못하겠다니까아"

 

"감자튀김. 고마워. 먹지말라고 할 땐 언제고."

 

"그... 며칠 뒤에 있는 라이브 때문에 계속 연습하고 있으니. 뭐랄까. 가끔 사람 몸엔 좀 과도한 염분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을까. 기름기도 뭐 가끔은 몸이 환영해주지 않을까. 뭐. 그런. 네가 좋아해서 사준 게 아니라니까?"

 

"누가 뭐랬을까나~"

 

봉투를 개봉했다. 기름기 쩐 내가 삽시간에 연습실을 가득 메웠다. 카렌은 봉투의 가운데를 찢어 넓게 펼쳤다. 그리고 감자튀김 곽을 뒤짚어 엎었다. 수북하게 감자튀김이 쏟아졌다. 익숙하게 기름기 묻은 손을 입으로 쪽쪽 빨고 곽을 납작하게 접었다. 그 위로, 케찹을 찢어 짜냈다. 감자튀김을 먹는 공식이 저런 게 아닐까 싶은 움직임이라고 생각하며 나오는 그 행동들을 지켜보았다. 약간 눅눅한, 하지만 기다란 감자튀김 하나를 집은 카렌은 그를 케찹이 푹 담갔다. 나오는 카렌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시선이 무척 가까이에 있음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케찹의 아슬아슬함에 눈동자가 모아졌다.

 

"지금 완전 바보같은 거 알아?"

 

"어?"

 

"얼른 먹으라고. 먹여주는 거 흔치 않아."

 

앙. 케찹이 금방 떨어질 것 같아 나오는 반사적으로 감자 튀김을 받아 먹었다. 몇 번 오물오물. 그러다 확 달아올랐다. 먹여주는 걸 받아먹다니. 생각만해도 오글거려.

 

"뭐하는거야. 너나 먹으라니까?"

 

"잘 받아 먹을 땐 언제고 그래."

 

킥킥. 제 몫의 감자튀김을 야곰야곰 먹으며 웃는 카렌의 면상이 괜히 얄미워 나오는 그 볼을 쿡 찔렀다.

 

"장난 치는 거 보니 연습하는 게 살만 했나봐?"

 

"응. 혼자 연습하는 것도 가끔 괜찮다니까?"

 

"요새는 매일 하잖아."

 

"어차피 기간 한정이잖아. 라이브 끝나면 며칠 동안은 연습 내팽겨쳐야지."

 

"하긴, 카렌은 쉬어주는 타임이 필요하긴 하지."

 

"응. 그 때 미친듯이 쉬려고 지금 이러는거야."

 

남들보다 약한 체력을 인정하는 건 의외로 쉽지 않았다. 남들이 온전한 체력으로 100을 수행하면, 카렌은 쥐어 짜내도 90 이상을 수행하기 어려웠다. 그걸 100으로 올리기 위해 악착같이 버둥거렸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체력 방전, 컨디션 난조, 아주 잠깐의 혼절. 그런 카렌의 곁에 나오가 있었다. 나오는 그런 카렌의 곁을 언제나 동반해주기만 했다. 오버했다고 질책하지도, 모자랐다고 나무라지도 않았다. 턱끝까지 다다른 숨에 헐떡일 때, 언제나 수고했다며 한 잔씩 가져오던 물에 길들여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수고했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쌓여갈수록 체력에 대한 강박증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인정할 수 있었다. 지금 나오가 가져온 감자튀김은, 그 물과 같은 의미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상념에 빠져 하나씩 먹는 감자튀김이 몇 개 남지 않았다.

 

"잘 먹네."

 

"맛있거든."

 

"그래. 다 먹어."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어."

 

"한 마디를 안 진다니까. 정말."

 

흥흥거리며 삐친 티를 내지만, 사실은 안 그렇다는 걸 알지. 카렌은 남아 있는 감자튀김 중에 온전한 녀석으로 집어 얼마 남지 않은 케찹을 벅벅 긁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오의 시선 앞으로 쭉 뻗었다.

 

"안 먹어."

 

"아아. 그러지 말고. 내 일용한 양식을 주는거라고?"

 

"일용한 양식이라면 충분히 먹으라니까?"

 

"아..... 나오에게는 내 일용한 양식 따위, 무정하게 내치면 그만이구나아----"

 

야, 먹어. 먹는다고. 성을 내며 받아 먹는 나오를 보며 키득거리던 카렌은 남은 몽당 튀김들을 삽시간에 집어 먹었다. 치우기 위해 봉지를 구기는 카렌의 손을 내친 나오는 제 손으로 남은 쓰레기들을 돌돌 접었다.

 

"난 이제 가야지. 이것들은 내가 버릴게."

 

"그냥 가는거야?"

 

"어차피 연습 더 할 생각 아니었어?"

 

"맞아."

 

"거 봐. 나는 내일 스케줄이 있거든."

 

"아니지. 사실 그 스케줄은 이따 저녁에 있는거잖아."

 

"에-? 어, 어떻게 알았어?"

 

"우리 이래봬도 같은 유닛이거든?"

 

어버버거리며 당황하는 나오의 꼴은 꼭 잘못한 걸 들켜버린 새끼강아지와 같았다. 정말 웃을 수 밖에 없이 만든다니까. 카렌은 장난기 가득 담아 나오의 등을 세게 두 번 토닥이며 말했다.

 

"현장 로케 집합인데도 불구하고. 굳이 사무소로 찾아와서. 감자튀김까지 사다가 주고 격려해준 것. 고마워. 나오."

 

"그, 그런 거 아니거든!"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는 나오를 따라 카렌은 시선을 위로 올렸다. 따라 올라온 시선을 나오는 애써 피했다.

 

"그니까. 아무튼 아니야. 어.... 아니야."

 

"응. 아니야. 그래. 알았어."

 

응차. 힘을 주고 일어난 카렌은 몸을 몇 번 꺾으며 스트레칭했다. 괜히 두어발 피한 나오는 스트레칭하는 카렌의 모습을 직시하다가, 한 번 훅. 숨을 내뱉었다.

 

"무리하지 말라고. 항상 혼자면, 무리했으니까."

 

진즉에 속내를 밝히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게. 고마워."

 

나름 제 딴에 큰 용기내서 해 준 말에는, 가끔은 진심을 담아 답해줘야지. 카렌의 답을 예상하지 못한건지 나오는 기계적으로 펼친 손을 몇 번 흔들어제끼고 도망치듯 연습실을 벗어났다. 그 와중에도 문은 배려를 담아 조심스럽게 닫힌다. 나오가 거쳐가는 배경 하나하나도 참 나오답단 말이지. 카렌은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몸을 풀었다. 딱 한 곡만 더 연습하고 가야지. 그것은 카렌 자신의 컨디션과 나오가 자신에게 준 배려의 절충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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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이런 일상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중간 중간 끄적여봤던건데 글맺음이 되어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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