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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마차(Pumpkin carriage) - 8 재능의 차이(*삽화데이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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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5, 2017 23:00에 작성됨.

 

“어머, 얘. 카에데.”

어깨를 살짝 뒤덮는 머리칼을 묶어 목 옆으로 가지런히 정리했고, 바다색으로 물든 자그마한 보석의 목걸이가 보인다. 벚꽃을 연상시키는 색채의 블라우스와 옅은 체크무늬가 들어간 재킷은 여성용이란 걸 말하듯 허리에 선이 들어가 잘록함을 자랑했다.

“미즈키.”

등을 뒤로 돈 카에데가 아는 체를 했다. 손을 들어 손가락 마디 끝만 살짝 맞대면서 미소 짓는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후훗, 그럼요.”

“아, 나랑은 초면이지? 만나서 반가워. 얼마 전까지 아나운서였던 카와시마 미즈키야.”

미즈키가 카에데 옆에 서 있는 미카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카리스마 갸루 아이돌, 죠가사키 미카에요★”

인사성은 밝으면서도 공손한 태도를 잊지 않는다. 미카의 성격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저, 혹시 얼마 전까지 아나운서였다는 건...”

“맞아. 젊음의 혈기로 넘치는 신인 아이돌, 미즈키에~요♪”

손을 턱밑으로 모아 눈을 반짝이는 미즈키. 윙크까지 보여주고, 목소리는 과할 정도로 귀여운 느낌을 냈다.

별난 사람이네.

‘그렇지만, 대단한 사람.’

실례가 될지도 모르는 말이지만, 카에데나 미즈키나 연령을 생각해보면 상당한 경력을 쌓았는데도 전직을 그만두고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미카 본인 역시 경력을 쌓고 그만두긴 했지만, 두 사람에 비해선 적은 데다 아직 나이도 어려 ‘현실’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아무래도 가벼운 점이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프로젝트의 멤버 중에서 전직 아나운서가 있다고 했는데...혹시...?”

“딩.동.댕~맞아, 미즈키 입니다!”

검지를 들곤 눈을 찡긋 감는 전직 아나운서.

“카에데와도 그때 처음으로 만났단다. 이후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잘 만나지 못했지만, 이따금 만나 함께 술을 마시기도 했는걸. 아, 이야기하니까 마시고 싶네.”

“술?”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뛰려는 아이돌. 머리 위에 귀가 달려있다면 쫑긋쫑긋 세우지 않았을까.

“그러면 전 먼저 가볼게요.”

미카가 눈인사하곤 자리에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이런, 내 정신 좀 봐.”

미즈키가 미카의 말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두 사람에게 물어볼 게 있다는 걸 깜박하고 있었네.”

“저희 말인가요?”

“응, 그 무서운 얼굴의 프로듀서 군에 대해서야.”

“프로듀서...?”

카에데가 입술에 검지를 올려두곤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서로 다른 색깔의 눈동자에선 의문이 묻어났다.

“응응. 며칠 전부터 빈 레슨실을 서성이던데,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있을까? 지나갈 때마다 신경 쓰였거든.”

“...?”

미즈키의 물음에 카에데도 미카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 올랐다. 얼굴들을 보아하니 처음 듣는 모양이었다.

“어머, 몰랐어?”

미즈키는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도 서 있나요?”

“응.”

“도대체 뭘 하는 거람...저, 잠깐 다녀올게요.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미카는 미즈키에게 눈인사한 뒤, 조금 걱정 어린 표정으로 뛰쳐나갔다.

“그럼 나도 가볼게. 알려줘서 고마워.”

카에데도 마음에 걸리는 듯, 그 좋아하는 술 약속도 마다하고 미카의 뒤를 따라 레슨실로 향했다.

레슨실이란 것이 한두 개도 아니기에, 사무소 층 곳곳을 뒤져야 했다. 다행히 수소문하니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무섭게 생긴 사람’ 이라는 특징이 도움 됐다.

“프로듀서!”

불은 들어와 있지만 아무도 없는 레슨실—마치 목석처럼 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프로듀서가 보였다.

“죠가사키 양...타카가키 씨?”

프로듀서가 아이돌의 방문에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여전히 표정은 변화가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면서 눈빛에 담긴 감정 정도는 대충 읽을 수 있게 됐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그건...저희가, 할 말이에요. 프로듀서 씨.”

체력이 비교적 약한 카에데가 지쳤는지 숨을 거칠게 내뱉으면서 잘도 답했다.

“카와시마 씨에게 여러 가지를 들었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미카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설명이라도 해줬다면 모를까, 누군가에게 말하지도 않고 며칠 동안 이렇게 서 있기만 있다고 한다. 아는 사람, 아니 신뢰하는 프로듀서가 이러고 있으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

프로듀서가 습관적으로 목으로 손을 옮겼다.

“우리에게 말하기에는 곤란한 거야?”

“그건 아닙니다만...그게, 괜한 걱정을 끼친 것 같아서...”

프로듀서가 그녀들의 눈총에 이기지 못하고 설명했다.

얼마 전에 만나 연구생으로 받아들인 소녀, 이치노세 시키에 대해서였다.

“하아~?”

미카가 눈썹을 치켜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그러니까...금방 돌아온다고 해서 기다렸다고? 그것도 며칠 동안 내내?”

“...예.”

결국, 고민한 끝에 믿고 기다리는 걸 택했다.

그러나 시키는 돌아오지 않았다. 모두가 퇴근한 시간에도, 야심한 시각에도, 다음 날에도 오지 않았다.

찾아볼까 고민이 들었다. 그렇지만 준비하는 시간이 남들보다 긴 것인가 싶어 그냥 기다리기를 택했다. 무작정 기다린 것만은 아니다. 업무를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과는 빈틈없이 끝내고 시간이 날 때마다 헤어졌던 장소 앞으로 와서 기다리기로 했다.

“잠은요?”

“...수면실을...”

“부—우—!”

카에데가 볼에 바람을 집어넣으면서 툴툴거렸다.

“프로듀서 씨, 하루 이틀이라면 모를까 며칠 동안 수면실에서 자는 건 좋지 않아요. 잠은 제대로 집에 가서 주무시도록 하세요. 알았죠?”

카에데의 공세에 어찌할 줄 모르는 프로듀서.

“아니, 그것보다 기다리는 것 자체가 이상하잖아. 애초에 그 아이에게 전화하면 끝날 일 아니야?”

미카가 어이없는 어투로 공세에 참가했다.

“...그래도, 금방 돌아온다고 했으니...”

정말로 답답할 정도로 우직하달까. 아무리 자신들의 프로듀서지만 어디 가서 사기당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카는 어떻게 타일러야 할지 고민했다. 아무리 업계에서 철인이라 칭해져도, 이렇게 있다간 몸을 해친다. 어쩌면 이치노세 시키라는 그 아이돌이 사실은 하는 일을 버티지 못할 것 같아 도망쳤을 경우도 다분하다는 것을 자각시켜줘야 할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아! 프로듀서!”

남의 이야기를 하면 그 사람의 그림자가 비친다고 했나.

복도 끝에서 흘러내리는 백의 차림을 하고 축 늘어진 소매를 흔드는 소녀가 반갑게 인사했다.

“...!”

프로듀서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뜬다.

“이치노세 양...!”

이치노세라는 이름에 카에데와 미카가 반응했다.

“당신~오랜만이네—”

그동안의 고생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키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여주면서 다가와 플라스크 병을 자랑했다.

“이거 만들었어! 자, 피로회복 효과가 있는 아로마~♪ 이걸로 레슨도 으쌰 으쌰지~♪”

병의 입구를 여니 확실히 기분 좋은 향이 흘러나왔다.

그런 태연한 시키를 보고 미카는 어이없어했다.

‘도대체 뭐 하는 애야?’

기다려달라고 해놓곤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그걸 아는 주제에 이렇게 태연하게 행동하다니. 어떤 것부터 걸고 넘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래도 그 의문을 프로듀서가 대신 물어본 게 다행이었다. 만약 묻지 않았다면 참지 못하고 그녀 자신이 나섰을 테니까.

“이치노세 양, 혹시...요 며칠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프로듀서가 저번의 일을 꺼내며 이유를 묻자, 시키는 손에 쥔 플라스크 병을 살짝 흔들면서 웃었다.

“이—야, 잠깐 실종 돼버려서 말이야—나, 실종벽이 있거든—.”

말 안 했던가? 라면서 머리를 갸웃거리는 소녀.

“그게 무슨...!”

미카가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나설 뻔했다.

너 말이야, 프로듀서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그러니까, 너무 믿지 않는 게 좋아~나도 믿지 못할 정도니까! 아, 그래도 이런 우발성도 매력이지?”

재미있다는 듯이 “냐하하하하” 하고 웃는다.

프로듀서는 그저 곤란하듯, 커다란 손바닥으로 목을 매만졌다.

“...프로듀서.”

미카가 가라앉은 목소리를 냈다.

“응?”

시키가 턱을 살짝 짚곤,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시선이 그제야 프로듀서가 아닌 둘에게로 향했다.

잠시 간의 공백. 그리고 겨우 기억해냈는지 검지로 선배 아이돌을 가리키면서 알아봤다는 듯 활짝 웃었다.

“와—오! 이제 보니 전에 본 아이들이잖아. 있지 있지, 난 시키 쨩이라고 해♪”

미카는 시키의 인사에 대답하기는커녕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즐거워 보여서 아이돌이 되겠다는 건 이해가.

그렇지만, 다른 건 이해할 수 없는걸.

아이돌이 되고 싶다면서 사무소에 찾아오더니만, 레슨을 하겠다고 하자마자 준비하겠다며 사라졌다.

프로듀서는 그 말을 믿고 몇 날 며칠을 기다렸다. 혹시 몰라 사무소의 마련된 수면실까지 이용했다.

그렇게 고생하는 와중 갑자기 나타나더니 실종벽이 있으니 너무 믿지 말라는 말을 했다.

이해가 안 가.

상식으로 이상하잖아.

그런 거, 너무 무책임한걸.

‘어째서?’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 화가 뒤섞인 마음.

그러나 미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본인을 앞에 두고 말할 정도로 마음이 독하진 않다.

있잖아, 프로듀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프로듀서 씨!”

그때였다. 묘한 정적을 깨는 외침이 복도에 울렸다.

프로듀서도, 시키도, 미카도, 카에데도 아니었다.

“치히로 씨...?”

“다들 여기에 계셨군요!”

치히로가 미카와 카에데를 보고 활짝 웃었다. 다만 웃음과 달리 얼굴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프로듀서가 무언가를 느끼고 물었다.

“네, 그게....”

미시로가 제작하고 기획한 음악 방송 중, 출연 예정이었다던 아이돌 유닛이 오지 못하게 됐다. 하필이면 오던 와중에 앞에서 교통사고가 나서 도로가 잠시 마비가 된 모양. 그 탓에 제시간에 도착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외부에서 어떻게든 아이돌 유닛을 수소문하려던 찰나, 얼마 전 데뷔한 자사의 아이돌이 떠올랐다.

혹시 몰라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보니 아니나 다를까 관련 메일이 잔뜩 와있었다.

“프로듀서.”

“프로듀서 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시선을 든다.

그곳에는 주먹을 꼬옥 쥐고, 늠름한 표정을 지은 채로 성으로 데려달라는 듯 바라보는 소녀들이 있었다.

미카는 아직도 어딘가 모르게 석연치 않았지만, 그 감정은 가슴 한구석에 잠시 치워두기로 했다.

모델로서 활동한 경력 덕일까, 사춘기 소녀 치곤 공사의 구분이 확실하고 프로로서의 의식도 확실했다.

프로듀서는 소녀들의 시선에 말없이 마주 보다가.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러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에?”

뭐야, 이거. 무슨 일일까.

“죠가사키 양!”

프로듀서의 다급한 외침. 프로듀서, 처음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머릿속으로 그동안의 기억을 플레이백 한다.

프로듀서의 운전하는 차량에 탑승하고, 사무원의 안내에 따라서 스튜디오가 있는 방송국으로 향했다.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넉넉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도착하자마자 이것저것 확인하느라 시간이 소모된다. 메이크업과 의상의 체크 등으로 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대본과 콘티를 받아 진행을 확인하는 등 이것저것 하느라 또다시 반절의 시간이 흘러갔다.

녹화도 아닌 생방송이라는 말에 어깨가 무겁다. 긴장감에 손이 떨리자 카에데가 손 등을 감싸며 웃는다.

마지막으로 안무의 확인을 하려는 순간.

—사고가 일어났다.

바닥에 어지럽게 깔린 전선. 그 선에 바보같이, 멍청하게, 부주의하게—걸려서 앞으로 넘어졌다.

안 돼. 그냥 넘어지는 거로 끝내줘. 부탁이야.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발목이 틀어졌다. 운동화였다면 모를까, 구두를 신어 반응이 느렸다.

극으로 치자면 위기. 그러나 이런 연출 따위 현실에서 경험하고 싶지 않다. 재미없어도 괜찮으니 무사하게 지나갔으면 한다.

서로 웃으면서 환한 분위기 속에서 끝내고 싶었다. 언제나 그리되기를 소원했다.

—쿵.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프로듀서의 부름이 들렸다. 살갗이 조금 쓸렸는지 따갑다. 시간이 원래대로 흘렀다.

응, 괜찮아. 이 정도면 무대에 올라도 문제없어.

그러니까, 나는 괜찮아.

“다행히 가벼운 염좌인 것 같네요. 하지만...”

소란을 듣고 구급상자를 들고 온 스태프의 말. 몇 번, 몇십 번이나 부정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너무나도 가혹한 선고. 최악의 가정이 벌어졌다.

“아니야. 난 괜찮—읏!”

발목에 힘을 주고 일어나려 했지만, 그 순간 신음이 절로 튀어나오며 몸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려 했다.

“죠가사키 양!”

프로듀서가 놀라 미카를 황급히 부축했다.

“미카, 무리하지 마요.”

카에데도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미카를 바라봤다.

‘싫어.’

미카가 프로듀서의 옷자락을 꼬옥 쥔다. 참으려 하지만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파져 와 눈시울이 붉어졌다.

“저, 프로듀서 씨...”

치히로가 미카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꺼낸다.

“시간이...얼마 남지 않았어요.”

“제가, 혼자 나가는 건 안 될까요?”

카에데가 손을 가슴에 모은 채로 물었다.

“...아니오. 그건 불가능합니다.”

프로듀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로곡이 준비되어있지 않습니다. 유닛곡밖에 없습니다.”

애초에 출연조차도 갑작스레 정해진 사항이다. 여러 곡을 준비했을 리 만무했다.

곡이 제대로 재생되는지 리허설도 필요하고, 애초에 지금 스튜디오는 생방송 준비에 한창이라 여유도 없다.

억지를 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스튜디오와 방송이 프로젝트 드레스를 위해 준비된 게 아니라면 불가능.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리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미안, 해...”

미카는 프로듀서의 옷자락을 쥐어 잡으며 흐느꼈다.

미안해, 프로듀서. 미안해요, 카에데 씨.

넘어지지만 않았다면. 정신을 똑바로 차렸더라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모두, 미안해요.

“있지~그 일, 누가 대신할 수는 없는 거야?”

분위기가 가라앉았을 무렵. 불현듯이 시키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이, 이치노세 양.”

좋지 않은 분위기가 시키가 터무니없는 말을 해서일까. 곁에 서 있던 치히로가 안절부절못했다.

다시 사라질 것 같아 혹시 몰라 방송국까지 일단 데려오긴 했는데, 또 무언가 사고 칠까 두려웠다.

“...가능하다면, 이러고 있을 리 없잖아.”

화를 낼 기운도 없는 걸까. 미카가 겨우 들릴 정도로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흐—응, 저기. 혹시 그 유닛 곡의 무대 영상, 촬영한 거 있으면 시키 쨩에게 보여줄래?”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상관없어.

미카는 프로듀서 품에서 벗어나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렇게 있기를 몇 분. 차오른 눈물을 겨우겨우 참아가며 조금 진정했을 때,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렸다.

마치 놀란 것처럼 들이쉬는 숨소리. 미카는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가—눈을 크게 떴다.

 

그건, 재능이었다.

 

꿈에서 나올 정도로 곡을 들으며 가사를 외웠다.

신발에 구멍이 날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가르쳐주기도 전에 미리 알아내 예습했다. 끝난 뒤에 혼자 남아서 복습한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아이돌을 향한, 선택한 길을 향한 노력과 열정.

첫 레슨 때, 도저히 처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고 트레이너에게 칭찬받았다. 하지만 재능의 결과는 아니다.

기초 레슨의 내용을 듣고, 연습해왔다. 데뷔의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연습하고, 노력하고, 힘을 내왔다.

그러나

 

죠가사키 미카는 어디까지나 뛸 뿐이다.

이치노세 시키는 날아오른다.

 

가사를 외우려고 중얼거릴 필요도 없었다. 그저 한 번 들은 것만으로, 그 가사를 완벽하게 읊는다.

신발에 구멍이 생기도록 뛸 필요도 없다. 한 번 보는 것만으로, 아무런 연습 없이 따라 했다.

몇십, 몇백 번. 트레이너의 쓴소리를 듣고, 거울을 보면서 고치고 반복했던 안무를 똑같이 재현했다.

그 노력을 비웃듯이 압살하고, 무너뜨리고, 무시하고, 아무렇지 않게, 힘 하나 들지 않고 해낸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동고동락을 함께한 아이돌 사이에서도 같은 노력에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오직 하나뿐인 물살(一ノ瀬)

범재에게 절망을 맛보게 하는 재능의 소유자

천재, 이치노세 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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