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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미 하루카의 키사라기 치하야 무작정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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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4, 2017 22:37에 작성됨.

 

"안녕, 치하야 쨩! 좋은 아침이야!"

".....그러니."

 

키사라기 치하야는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쪼르르 달려오는, 빨간색 운동복 차림의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고는 그다지 내키지 않은 대답을 했다. 같은 사무소에 소속하고 있는, 비슷한 연배의 소녀. 아마미 하루카. 치하야는 하루카라는 소녀를 싫어하거나 하지 않았다. 치하야 본인의 의사와는 별개로, 그녀가 하루카에게 품은 마음을 조금 솔직하게 드러내보자면, 좋아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었다. 그게 어느 정도의, 어떤 의미의 '좋아함'인지는 차차해두고 말이다.

 

"어라? 치하야 쨩? 왜 그래? 뭔가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는 느낌인데."

"아....그게, 이런 시간에 이런 식으로 만나는 건 상당히 드문 일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따지자면, 드문 것도 아니고.....아예 처음이 아닐까. 치하야는 끝 부분은 속으로 삼키며 하루카의 어깨 저 편으로 보이는, 아직 어슴푸레함이 남아있는 풍경을 살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한 새벽 5-6시쯤. 상당한 아침형 인간이 아닌 이상은 일어나기에는 조금 버거운 그런 때. 그리고, 그런 사람들조차.....정확히는 사람 자체를 구경하기 상당히 힘든 이 시골 산구석의 허름한 합숙소의 주변은 상당히 고요한 편에 속했다.

 

"에헤헤, 그렇지? 내가 생각해도 조금은 놀랍다니까. 학교 다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나 일찍 일어나다니!"

 

저기 한 쌍의 리본을 트레이드 마크로 하고 있는 소녀가 불쑥 들어오기 전까지는. 치하야는 하루카가 감격에 차서 내뱉은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긴 했다. 이 깡촌에 합숙하기 전, 사무소에 통근하고 있을 때만 하더라도 왔다갔다하는 시간 때문에 하루카는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러나 합숙을 하고나서부터는 기상 시간이 점점 갈 수록 늦춰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합숙의 목적에는, 분명 생활 개선도 일정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텐데. 그런데도 일어나는 시간이 전보다도 훨씬 늦어졌다는 건, 오히려 목적과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게.....? 이 합숙, 과연 우리들 765 사무소에게 있어서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효과적인 해결책이기는 하는 걸까.

 

치하야는 머리 한구석으로는 의문을 표하면서도, 근처에서 후하후하하고 새벽 공기를 만끽하고 있는 하루카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은 그것보다 하루카가 왜 갑자기 이런 시간에 운동복까지 갖춰입고 나왔는지, 그 이유가 더욱 신경쓰였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야."

"후후,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겁니다!"

"어제 아침만 하더라도 5분만 더를 몇 번이나 들었던 것 같았는데."

"윽, 어제는 어제고, 오늘은 오늘!"

 

이젠 고개 숙인 어제 따윈 필요 없어! 새벽 공기에 무슨 마력이라도 깃들었다는 건 결코 아닐텐데, 하루카의 텐션은 이상하게도 높았다. 눈 앞에서 시키지도 않은 솔로 라이브를 펼치고 있는 동료의 모습에, 치하야는 언제나의 일과로 자리잡고 있는 새벽 런닝을 빼먹고 싶어졌다.

 

"뭐 때문인건지는 모르겠지만, 수고해. 그럼 이만."

"앗, 치하야 쨩! 기다려!"

 

다행히 그 충동을 이겨낼 수 있었던 치하야가, 무정히 등을 돌리고는 하루카와는 정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상황을 파악한 하루카가 양 팔을 파닥이며 황급히 그 뒤를 쫒았다. 치하야는 조금 고민하다가, 걸음 속도를 살짝 늦췄다.

 

"혹시 하루카도 트레이닝?"

"어, 어어! 우와, 어떻게 맞췄지? 역시 치하야 쨩이라는 걸까나."

"그렇게 감탄할 것까지는 아니지 않을까. 옷만 봐도 뭘 하겠다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걸."

"앗, 그, 그럴지도......응."

"좋은 일이네. 앞으로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랄게."

"아하하하.....고, 고마워. 그럴 수 있도록 노력.....아니, 반드시 해보이고 말테니까."

 

묘하게 긴장하고 있는 하루카와는 반대로, 치하야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신발끈을 점검했다. 그러고는 걸치고 있는 파란색 후드 집업 주머니에서 작은 mp3와 이어폰을 꺼내 서로 연결했다.

 

"열심히 해. 이쪽은 이쪽의 트레이닝이 있는 관계로. 그럼 좀 있다 식사 시간에 다시 보자."

 

그러고는 이어폰의 두 헤드를 빠짐없이 양쪽 귀에 꽂은 뒤, 일방적인 작별 인사만을 남기고 곧장 앞으로 달려나가버렸다.

 

"에, 에에.....?"

 

하루카에게 있어서는 너무나도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어라.....난 뭐하러 이 새벽에 이러고 있었던 걸까......? 한참을 멍하니 서서 불어오는 새벽 바람만을 마주하고 있던 하루카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는 어느새 저 멀리 보이는 푸른 머리카락을 쫒아 있는 힘껏 달렸다.

 

다다다다

 

"~~~!"

 

다다다다

 

"~~려!"

".....응?"

 

움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외에 다른 것을 감지한 치하야가 달리는 속도를 늦췄다. 그러자 더욱 선명해지는, 음악이 아닌 쪽의 소리.

 

"치하야 쨩, 기다리라니까!"

 

타박타박하고, 거칠게 흙을 밟고 차며 뛰어오는 소리. 그리고 조금 숨이 찬 것 같은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 치하야는 물음표를 띄우며 뒤를 슬쩍 돌아보았다. 방금 헤어졌던 사람이 다시 보였다.

 

".....하루카?"

"치, 치하야 쨩, 너무해! 어떻게 그렇게 매몰차게 가버릴 수 있는 건데!"

"매몰차게라니.....?"

 

치하야는 하루카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루카는 여전히 다리를 멈추지 않는 치하야의 뒤를 계속해서 쫒아가며, 헝클어진 숨과 한데 뒤섞인 말소리를 뚝뚝 내뱉었다.

 

"아, 아직, 내 말은, 안, 끝났다, 구....."

"굳이 쫒아와서 할 정도라면.....중요한 거야?"

"그, 그렇다고 할 수....헥, 자, 잠깐! 타, 타임! 그만! 죽겠어!"

 

털레털레.....뚝. 한계에 도달한 하루카가 겨우 한 마디를 쥐어짜고는 그 자리에서 멈춰 허리를 푹 숙이고는 연신 헉헉거렸다. 상당한 거리 차가 있는 상대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전력질주만이 답. 그리고 전력질주는, 오래 지속할 수는 없었으니까.

 

타다다......툭.

 

치하야도 뒤늦게 발걸음을 멈추고는, 완전히 등을 틀었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달렸던 방향하고는 반대로 몇 발자국 더 걸어가더니, 다시 멈췄다. 하루카 머리 위로 사람 모양 그늘이 드리워지는 순간. 하루카는 아직도 고르지 못한 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치하야와 서로 눈이 마주한 그 때. 하루카는 입을 열었다.

 

"그, 그러니까......이건, 중대 발표야."

 

꿀꺽. 하루카는 자기 스스로 침을 꼴딱 삼키고는 도로 치하야를 올려다보았다. 치하야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 눈만을 몇 번 깜빡이고 있을 뿐. 하루카는 후우, 하고 땅을 향해 숨을 크게 내뱉고는 머리를 들었다. 아예 허리까지 똑바로 펴서, 당당하게 섰다. 그러고는 몇 번 더 목을 가다듬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나, 치하야 쨩하고 함께 있고 싶어!"

".....뭐?"

 

하루카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기 전부터 뭐가 어떻게 된건지 몰랐지만, 대답을 들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만 같았다. 치하야는 벙찐 얼굴로 방금 폭탄 발언을 투하한 장본인을 바라보았다.

 

"음, 그러니까.....함께 트레이닝을 하고 싶어요."

 

하루카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대신 맞닿은 손가락만이 활발하게 꼼지락거렸다. 치하야는 질렸다는 듯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서도, 옆눈으로 슬쩍 하루카를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역시 그만두는 게?"

"시, 싫은 걸까나......? 내가 같이 붙어있는 건."

"우선 이유가 궁금해지는데. 단순한 흥미본위로 그러는 거라면 진지하게 그만두는 것을 권하고 싶어."

"음.....그게, 그....."

 

하루카는 말을 잇지 못했다. 치하야는 시선을 하루카에게 완전히 고정하고는,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솔직히, 이쪽에게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하루카가 어떻게 하든 상관 없어."

"앗, 그, 그래.....? 그럼 나, 치하야 쨩 옆에서 달리고 그래도 되는 거지? 그렇지!?"

 

하루카는 우물쭈물했던 게 거짓말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로 태도를 바꿨다. 치하야는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하루카를 피하기라도 하듯 원래 달리고 있어야할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말했듯이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뭘 하든 하루카 마음대로. 그렇지만....."

"그렇지만.....?"

"아니, 아무 것도. 그럼, 가볼까."

 

신체 조건이나 체력 같은 데 있어서 차이가 날 텐데, 과연 하루카는 따라올 수 있을까. 하루카에게는 하루카에게 맞는 트레이닝 방법이 있을 텐데, 굳이 나를 따라서 하는 의미가 있을까.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이쪽에서 하루카에게 페이스를 맞춰줘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솔직히, 걱정도 조금 되긴 했다.

 

그러나 치하야는 그걸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언제나처럼, 아니 언제나보다도 조금 더 빠르게 달렸다.

 

하루카에게 있어서 쓸데없는 참견일수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치하야 자신에게 있어서도 남에게 맞춰줄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앗, 치하야 쨩.....아니, 이게 아니라.....일단 힘내자!"

 

또 혼자 뒤쳐진 하루카는 손을 번쩍 들었다가, 도로 내렸다. 그러고는 숨을 잔뜩 들이쉬고는, 기합을 내며 치하야의 뒤를 쫒아 뛰었다.

 

.....

 

"아, 안녀엉....."

"....."

 

점심 시간이 다 되어서야, 치하야는 다시 하루카와 재회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하루카가 다시 치하야를 찾아온 것이지만.

 

그도 그럴게 치하야가 자기가 달릴 분량을 모두 채우고 다시 스타트 지점으로 돌아왔을 때는 하루카는 보이지 않았고, 하루카를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던 치하야는 곧장 합숙소로 돌아가버렸기 때문이었다.

 

약속했던 아침 식사 시간이 되어서는, 하루카도 합숙소로 돌아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 때는 또 어떻게 하다보니 자리가 정반대로 떨어지거나 하고, 또 이런 저런 일들이 겹쳐서 따로 서로 얼굴을 마주볼 시간은 없었다.

 

"치하야 쨩, 정말 빠르네.....앗 하는 사이에 사라지고 없고. 아무리 쫒아가도 거리는 줄어들 생각 안하고."

 

하루카는 입꼬리만을 억지로 올려서 웃었다. 목소리에도 힘이 하나도 없었다. 새벽때만 하더라도 충만하다못해 넘쳐흘렀던 기운은 그 한 번의 달리기로 인해 대부분 소진된 모양이었다.

 

"저기, 하루카. 괜찮니?"

 

그 처참한 몰골을 지켜보고 있던 치하야가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에게 신경 쓸 여유는 없다고는 하지만, 눈 앞에 다 죽어가는 동료가 보이고 있는 만큼 뭐라도 걱정하는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응.....? 아, 괜찮냐고? 그거야 당연하.....컥."

"하, 하루카!?"

 

우당탕. 하루카는 걱정하지 말라는 어필을 하려다 그만 철푸덕 엎어졌다. 치하야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아야야.....당연, 하지 않은 것 같아....."

 

비틀비틀. 겨우 다시 일어난 하루카가 무릎을 어루만지며 끙끙거렸다. 그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치하야. 하루카는 치하야를 보고는 마른 웃음을 흘렸다.

 

"하, 하하.....그래서 치하야 쨩, 부탁이 있는데....."

"다른 트레이닝에도 전부 따라올 생각이라는 거구나."

"응, 응!"

 

하루카가 붕붕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치하야는 검지를 턱 끝에 세운 채, 잠깐 고민에 빠졌다. 달리기만 해도 버거워하는 사람이 다른 것들까지 억지로 따라한다는 건, 무리 그 자체. 혹여나 무리한 끝에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큰일. 모두가 걱정할 것이다. 트레이닝에 지장이 가는 건 물론이고.

 

조금만 생각해도 득보다 실이 많은 상황. 애초에, 득이라고 해도 그건 하루카 쪽에만 해당하는 것 같았다.

 

".....있지, 하루카. 무슨 생각으로 내 트레이닝에 따라오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그만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

 

치하야가 마침내 결론을 입밖으로 내뱉은 순간.

 

".....그런......그치만 나는....."

 

추우욱. 하루카의 어깨가 눈에 띄게 처졌다. 거기에 치하야가 주춤하자, 하루카는 피곤한 몸을 이끌면서도 강하게 자기 주장을 펼쳤다.

 

"솔직히 무리라는 건 알고 있어. 좀 전만 하더라도, 정말 실감나게 체험하기까지 했고."

"그러면 왜.....미리 말해두겠지만, 다른 사람을 무조건 따라한다고 해서 성과가 난다는 건......"

"응, 그렇겠지. 치하야 쨩 말이 맞아."

 

말과는 다르게, 하루카는 전혀 물러서는 기색이 없었다. 치하야는 잠자코 하루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래도 말야, 어쩐지 나.....치하야 쨩과 같이 트레이닝, 빠짐없이 전~부 해보고 싶어졌어."

 

그러니까, 부탁합니다! 하루카는 90도 각도로 허리를 숙였다. 너무나도 진지한 그 태도에 당황한 치하야는, 저도 모르게 으, 응하고 수락하고 말았다. 조금 늦었긴 해도, 뒤에 자기 트레이닝의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이라는 단서를 붙였건만. 그래도 하루카는 싱글벙글이었다.

 

"와핫, 정말 고마.....우갸각."

 

그 뿐만이 아니라, 하루카는 아예 온 몸으로 기쁨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조금 움직임을 과격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혹사당한 두 다리가 욱신욱신 쑤셔, 결국 기쁨의 몸짓은 제자리에서 움찔거리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치하야는 그런 하루카를 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흥미본위에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그래도, 이렇게나 필사적일 이유가 있을까."

"에헤헤, 어떨까나? 어디보자.....그렇지! 한동안은 비.밀.이라는 걸로♪"

 

하루카는 낼름 혀를 내밀고는 쾌활하게 웃었다. 정말로 즐거워서 저러는 걸까, 아니면 괴롭고 힘든 걸 감추려고 저러는 걸까. 하루카, 그렇게까지 해서 네가 얻어갈 수 있는 게 대체 뭐길래. 치하야의 머릿 속이 의문으로 가득차고 있었을 그 때.

 

"자, 그래서 치하야 쨩! 이제 다음에는 뭘 할지, 알려줬으면 하는데요!"

 

부스럭부스럭. 돌연 하루카가 걸치고 있던 후드 집업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작은 수첩과 펜을 꺼냈다. 그러고는 언젠가 이 합숙소에 취재하러 왔었던 기자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렇지, 괜찮다면 런닝 이후에 추가로 했던 운동 같은 것에 대해서도 솔직한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저 열의에 타오르는 반짝반짝한 시선이, 치하야에게는 몹시나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치하야는 아예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저기.....치하야 쨩? 그러지 말고......응?"

"슬슬 점심이니까, 식사는 해둬야겠지. 밥 먹고 바로 움직이면 몸에 좋지 않으니까, 잠깐 휴식. 그 다음으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보컬 트레이닝이 예정되어있네."

 

하루카가 몇 번 답변을 조르자, 그제야 치하야가 겨우 입을 열었다. 시선은 여전히 다른 곳을 향해있었지만.

 

"응, 응. 그렇구나."

"그리고 아침에는 런닝 외에도 복근 운동을 하고 있어."

"오오오.....복근 운동! 얼마나 하는데?"

"100번."

"엑."

 

움찔. 바쁘게 움직이던 하루카의 손이 멈췄다. 하루카는 믿겨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하루카를 마주볼 생각 없는 치하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하루 200번을 아침 저녁으로 나눠서 하고 있어."

"2, 200번....."

 

하루카는 무심결에 자기 배에 손을 댔다. 아이돌을 하기 위한 기초적인 체력 훈련은 하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말랑말랑한 배. 그와 달리 치하야는, 분명.....하루카는 사뭇 진지해진 목소리로 치하야를 불렀다.

 

"치하야 쨩."

"응."

"배, 엄청 단단하겠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럴지도."

"응....."

 

이 뒤로 잠시, 침묵. 어떻게 된 일일까. 치하야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하루카는 뭔가 결심한 듯이 양 주먹을 불끈 쥐고는, 눈에 힘을 빡 주며 치하야를 바라보았다.

 

"치하야 쨩."

"응."

"만져봐도 될까?"

 

목적어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얼토당토않은 요구, 들어줄 리도 없었다. 치하야는 거절하는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등을 돌렸다. 그러고는 어디론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에, 자, 잠깐! 같이 가!"

 

후다닥. 하루카가 삐걱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가며 치하야의 옆에 따라 붙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점심이라고 했잖아. 그럼 밥 먹으러 가는 거네?"

"응. 그렇지."

 

수첩에 적힌 내용과 치하야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질문하는 하루카. 치하야는 가볍게 수긍했다.

 

"이야~ 마침 나도 정말 배가 고파서~ 그래서 그런데, 식사, 같이 해도 괜찮을까나."

".....마음대로."

 

하루카가 같이 하려는 건, 아무래도 트레이닝 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대체 어디까지 같이 하려는 작정일까. 치하야는 귀찮아졌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적당히 대답해주었다.

 

.....

 

""잘 먹었습니다.""

 

탁.

 

하루카와 치하야는 거의 동시에 젓가락을 놓았다. 치하야는 하루카 쪽에 놓여진 플레이트, 그리그 그 안에 들어있는 그릇과 접시 몇 개를 주시했다. 밥, 된장국, 반찬 몇 가지로 구성된 평범한 정식.....이었던 것들.

 

그런데.

 

의문을 더한 치하야의 눈길이 조금 더 위로 이동했다. 남이 식사하는 모습을 일부러 관찰하고 다닌다는 건 아니었지만, 숙식을 같이 하고 있는 만큼 싫어도 알게 되는 게 있었다.

 

그래, 예를 들어 식사량이라던가.

 

치하야는 하루카가 처음 가져왔던 정식의 차림새를 기억해보았다.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의 양은, 평소보다 3분의 2밖에 되지 않았다.

 

어쩐지, 이상한데.

 

찌릿. 하루카를 바라보는 치하야의 시선이, 조금은 따끔해졌다.

 

"하루카."

"어, 응."

"아까 배고프다고 하지 않았어?"

"뭐어....그, 그렇긴 했었는데.....이젠 괜찮아....."

 

자기를 추궁하는 목소리에 하루카는 최대한 평정을 가정하려고는 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본심을 감출 수 없었다. 새벽부터 열심히 뛰어다녔는데 정작 먹는 건 평소보다도 조금 적게, 정확히 따지자면 치하야만큼 먹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 너무나도 알기 쉬운 포커페이스에 치하야는 속으로,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제 또 자주연습을 할 거잖아. 과식하는 건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배고픈 걸 참아가면서 해야할 필요는, 적어도 하루카에게 있어서는 없을 것 같아."

"치, 치하야 쨩. 괜찮아. 괜찮대두."

"연습 중에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나와버리거나 하면......"

"그, 그렇지 않을 거다~ 흥이다~!"

 

하루카는 끝까지 우기고는, 어린애처럼 치하야와는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팍 돌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새벽 트레이닝에 따라붙는 것도 모자라, 일부러 식사량까지 똑같이 제한하겠다니. 이거 어째, 갈 수록 수상한데. 하루카의 옆 얼굴을 담아내는 치하야의 눈에는 점점 날카로움마저 더해졌다. 하루카는 거기에 뜨끔, 하면서도 끝까지 모르는 체 했다.

 

".....저기 있지."

"......"

 

그러나 치하야는. 거기에 넘어가지 않고, 기어코 입을 열고 만다.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하루카. 대놓고 따라하는 것이 그만 들켜버리진 않았을까, 그것 때문에 치하야 쨩이 기분 나빠하는 걸까. 그래서, 막. 얼굴을 굳히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 혼자만 내버려두고 가버린다던가.....나도 알 수 없는 그 어딘가로......그녀는 속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렇게 무리해서라도 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런데 다행이게도, 치하야는 조금 다른 쪽으로 추론을 진행시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치하야의 입에서 어두컴컴한 예상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오자, 그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찾지 못하는 하루카. 입을 반쯤 벌리고, 원래도 동글동글한 눈을 한층 더 동그랗게 뜬 채, 치하야만을 멍하니 바라봤다. 치하야는 잠깐 주변을 살피더니, 입가에 한 손을 가져다대고는 조금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루카는 지금 이대로도 귀여우니까."

 

.....뭐라고? 하루카는 처음에는 치하야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다음으로는, 의미는 파악했지만 자기가 뭔가를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생각했다. 세 번째에 가서야 겨우 그 말이 정말 치하야가 한 게 맞다는 걸 깨닫고는, 몇 번 입을 벙긋거리다가.....

 

"치, 치하야 쨩!"

"으, 응."

 

식당이 떠나갈 정도로 크게 마주보고 있는 이의 이름을 외쳤다. 그 기세에 그만, 주춤하고 마는 치하야. 하루카는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치하야 쨩이.....나.....나한테......"

 

그 와중에 눈가에 맺히는 물방울. 그것을 눈치챈 치하야가 급히 주춤한다. 혹시, 자신이 하루카에게 못할 말을 하진 않았는가, 같은 생각이 치하야의 머릿 속에 와르르 쏟아져내린다. 치하야는 식은 땀을 흘리며 지금까지의 언동을 황급히 돌이켜보았다.

 

의심. 추궁. 제안을 가장한 요구.

 

별로 기분 좋은 것들은 아니었다. 하루카가 저렇게 된 건, 자기 탓이다- 그렇게 생각한 치하야는, 이 자리에서 당장 일어나서 나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어떻게든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런 면에서는 참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나마.

 

"하, 하루카.....진정해. 미안. 나, 정말 너한테......"

 

뭐라도 좋으니까, 말을 걸어본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그저 단순한 책임감의 발동인지, 아니면 그것 외에 다른 이유가 더 있는 건지는 치하야 자신도 몰랐다. 하루카가 울음을 그치기만 하면 되었다.

 

"귀엽다고 했어! 만세!"

 

그런데 정작 하루카는, 그런 치하야의 심정도 모르고 너무나도 격하게 기쁨을 표하고 있었다. 그렇다. 찔끔 흘러나왔던 눈물은, 기쁨의 표시였던 것이었다.

 

".....큿....."

 

치하야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하루카가 상처받아서 운 게 아니라는 건 다행이었지만, 어딘가 속았다는 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다.

 

"정말? 정말이야 치하야 쨩? 나, 귀엽다고 생각해? 얼마나?"

 

좀 전과는 정말 딴판인 태도로, 하루카가 재잘거린다. 치하야는 더 이상 응답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루카가 급히 따라 일어나는 것보다도 훨씬 빠르게 식기를 정리하러 가는 걸로 표출했다.

 

.....

 

".....후."

 

치하야는 마지막으로 길게 숨을 내쉬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기초적인 호흡법, 발성 체크부터 시작해 쭉 진행해왔던 자주 연습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끝을 맺고 있었다.

 

"저, 저기.....치하야 쨩, 이걸로 끝?"

"그렇네."

"아, 그렇구나......살았다....."

 

우당탕!

 

기나긴 연습 이후에도 큰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는 치하야와 달리,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마는 하루카. 하루카에게 있어서는, 지금까지의 자주 연습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거의 지쳐 죽을 지경이었다.

 

"아야야, 또 넘어졌다......그치만 이건, 덜렁거리다가 넘어진 게 아니니까, 세이프일까?"

"....마음대로."

 

아하하하, 그럼 역시 세이프로. 피곤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힘없는 웃음소리가 치하야 바로 뒤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치하야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하루카가 멋대로 따라붙은 거니까,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뭘 해도 상관 없다. 처음부터 내걸었던 조건에 걸맞는 행동. 다른 사람이 본다면, 어쩌면 조금 냉정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그런 모습이었지만......하루카는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후아, 치하야쨩은 잘도 이런 트레이닝, 매일 같이 하는 구나."

 

하루카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기진맥진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긴 시간 노래를 부른 탓에, 조금 어지러운 머리. 하루카는 한 손으로 이마를 받치면서도, 똑바로 섰다. 다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대단하다 대단하다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해보니까, 정말 그 대단함을 실감할 수 있는 것 같아."

"별로, 대단한 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힐끔. 치하야가 그런 하루카를 향해, 최소한의 시선만을 보낸다.

 

"트레이닝,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거야?"

"또 트레이닝이 시작될 거야."

"뭐, 뭐라.....고......"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 트레이닝이 완전히 끝났다고는 할 수 없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트레이닝이 끝났다고 해도, 저녁 운동이 또 남아있어."

 

절망한 하루카를 뒤에 남겨두고 치하야는, 레슨실 바닥에 웅크려 앉았다. 하, 하하. 그, 그렇구나. 하루카도 눈치를 보면서 따라 앉았다. 그 뒤로 이어진 미묘-한 침묵. 오랜 레슨 끝에 미지근해진 공기가 이제는 조금 무겁게 느껴지기까지 해, 하루카는 몇 번을 망설이다가도 마음을 굳히고는 치하야를 부르려고 했다.

 

"저기.....치하야....."

"하루카."

"으, 응!"

 

그런데. 그보다도 빠르게, 치하야가 하루카를 불렀다. 하루카는 조금 긴장한 모습으로, 다시 뒤를 돌아봐 준 치하야와 두 눈을 마주했다. 치하야는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즉시 질문에 나섰다.

 

"아직, 모든 게 끝났다고는 할 수 없지만.....그, 다시 물어봐도 괜찮을까."

 

네가 그렇게, 내 트레이닝에- 아니, 내가 하는 모든 일과에 기를 쓰고 같이 하려는 이유를. 치하야의 입에서 뒤따라나오는 말에, 하루카의 두 눈이 흔들렸다.

 

설마 점심 때의 상상이, 지금 실현되려는 건가.

 

하루카는 급히 치하야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 안에 깃든 감정을 어떻게든 읽어내려고 애썼다. 일단, 하루카가 보았을 때는......그리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실제로도 치하야는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치하야가 하루카의 행동을 보고 품고 있는 감정이란 호기심, 궁금증 이 정도였다.

 

좋아, 그럼 걱정은 한 시름 덜은 셈이네. 하루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마음을 푹 놓을 수는 없었다. 치하야가 궁금해하는 바로 그 이유를 답해주기에는, 자꾸 브레이크가 걸리고 있었으니까.

 

엄청 대단한 것도 아니다. 이상한 마음에서 시작한 것도 아니다.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다. 이유를 말한다고 해서 큰일이 난다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뭔가. 자기 입으로 직접, 솔직하게 밝혀내기에는 뭔가 좀 부끄럽다는 생각이 하루카에게 자리잡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비밀로 하겠다는 생각은, 접어주었으면 해."

 

치하야는 어지간히도 궁금했다는 듯, 살짝밖에 주지 않았던 시선을 완전히 하루카에게로 향한다. 그 곧고, 올바른 눈빛에 하루카는 그만 속에 있는 마음을 실토해버릴 뻔 했다.

 

"글쎄.....어떨까. 치하야 쨩이 나한테, 정말 좋아해! 라고 말해준다면 이야기 해줄까나♪"

 

그래도 하루카는, 필사적으로 참아낸다. 그러고는 적당히 말도 안되는 조건을 하나 걸어, 슬쩍 치하야의 추궁에서 벗어나려고 들었다.

 

"음....."

"에헤헤, 못 말하겠지."

"하려고 한다면, 못 할 건 아니지만......"

"어?"

 

아니, 잠깐만. 기다려 치하야 쨩. 너, 이런 애 아니었잖아!? 예상치못한 반응에 하루카가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치하야가 입을 열었다.

 

"하루카, 정말 좋아해."

 

자, 이걸로 된 걸까? 치하야는 그런 느낌이 역력한 표정으로, 하루카를 보았다. 이렇게 되어버린 이상 어물쩡 넘어가거나 하는 건, 할 수 없게 되었다......그래서 결국, 실토하고 만다.

 

"나, 나도 치하야 쨩을 좋아해! 좋아해서, 한 번 따라해봤어! 그렇게 하면, 어쩌면 나에게도 좋아하는 사람이 볼 수 있는 풍경이 보이지 않을까- 해서. 응, 그랬습니다. "

 

오늘 새벽부터 쭉 치하야를 따라다니던 이유를. 하루카는 얼굴을 잔뜩 새빨갛게 하면서도, 계속해서 주절거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랬는데, 솔직히 아직 모르겠어. 일단 아주 힘들고, 그런 힘든 걸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하고 있는 치하야 쨩이, 정말 대단하게 보여서.....뭐라고 해야할까, 이거 어쩌면, 전보다 좀 더 멀어져버린 걸지도 모르겠다는 느낌도, 조금은.....미안, 치하야 쨩. 기분, 나빴으려나. 이유가 뭐든 간에, 멋대로 따라하고 그랬으니까."

 

긁적긁적. 하루카는 여전히 붉은 얼굴로 멋쩍어 죽겠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었다. 그러고는 방금 한 말은 어서 잊어달라는 듯, 어설픈 웃음을 선보였다. 가만히 하루카가 하는 말을 쭉 듣고 있던 치하야는 고민에 잠겼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루카가 했던 행동들은 자신과 같은 풍경을 보기 위해서 했던 것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과 같은 곳에 서려는 것이며, 자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밀고 들어오려는 것.

 

치하야는 누군가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는 걸 반기는 편은 아니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보자면, 싫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다른 누구도 아닌 하루카라면.....적어도 싫지는 않은, 그런 기분이었다.

 

자신은 하루카에게 얼마만큼의 감정을 품고 있는 걸까. 그 감정이란, 대체 뭘까.

 

"일단, 그런 쪽의 취미는 없다는 걸 전할 게."

 

치하야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는 마음에 적당히 선을 그어두었다.

 

"치하야 쨩......? 그, 그럼 방금 그건......?"

".....어흠. 비밀을 알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로."

"너무해! 사람의 감정을 멋대로 가지고 놀다니!"

"애초에 그런 조건을 건 하루카가 나쁜 거야. 사람을 정말 궁금하게 해놓고는."

"우와아앗, 책임 전가까지!"

 

전에 귀엽다고 했던 것도 거짓말이지, 그렇지!? 하루카가 와글와글 뭐라뭐라 떠드는 걸, 치하야는 적당히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러고는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면서, 작게 말소리를 흘렸다.

 

"기다려주는 건, 할 수 없어. 나와 같은 곳에 있다고 해서, 보는 것도 꼭 같은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어. 보게 되는 풍경들은, 꼭 기분 좋은 것들만 있는 건 아닐 거야. 으응, 아니지. 기분 좋다고 할 만한 것들은, 그다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치하야 쨩?"

"하루카,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야. 적어도 말리거나 하지는, 않을 게."

 

그 말을 들은 하루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쩍 굳어있는 사이, 치하야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고는, 아주 살짝, 웃어보였다.

 

"어디 따라올 수 있는 만큼.....따라와보렴."

 

하루카가 부딪쳐온 마음에 대한, 조금 솔직하지는 못한 대답. 치하야는 휴식 시간이 끝났음을 눈짓으로 전했다. 하루카는 완전히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고개를 힘껏 끄덕였다. 얼마든지 따라가주겠다는, 하루카 나름대로의 각오. 그걸 전한 것은 좋았는데.....

 

꼬르륵.

 

평소보다 적은 양을 투입한 탓일까, 하루카의 배는 아무래도 그 주인을 배려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푸훗."

 

최대한 참아보려고 했던 치하야였지만, 결국 참을 수 없다는 듯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하루카도 주린 배를 부여잡고는 마구 웃었다. 이래서야 뒤에 있는 연습, 제대로 되지 않는다. 치하야는 그걸 자각하면서도, 조금만, 아주 조금만은 이대로 있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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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조금 길게 뻐얼글. 하루치하 왓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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