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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타 요시노 생일 축전 - 어떤 인간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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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3, 2017 22:39에 작성됨.

 “읏차. 촬영은 이제 스태프한테 맡기면 되겠지. 남는 시간에는 스카우트를……. 음?”

 “…….”

 “무슨 일이니?”

 “호-.”

 “호?”

 “그대였습니까-. 저를 찾고 있던 사람은-.”

 “뭐?”

 “누군가를 찾고 있던 게 아니었는지요-?”

 “찾고 있었지.”

 “역시-. 그대와 저-. 이곳에서 인연이 당도했사오니-. 이제부터는 저, 요리타의…….”

 “너, 아이돌 해보지 않을래?”

 “흐-음?”

 “아, 나는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 아이돌 소속사 프로듀서야. 여기 명함.”

 “프로듀서-? 소속사-?”

 “너를 보니까 뭔가 감이 팍, 하고 꽂혔어. 대단한 아이돌의 재능이 보였다고 할까. 내가 이래보여도 TV에 나오는 유명 아이돌들을 엄청 길러낸 민완 프로듀서거든.”

 “…….”

 “이런. 또 내 자랑이나 해버렸네. 방금 건 무시해도 돼. 본론은 이거야. 아이돌 해보지 않을래?”

 “……그대는 독특한 사람이구려-.”

 “그런 말 자주 듣지. 일은 잘 하는데 자뻑이 심하다고. 근데 이것도 다 이유가 있어서 이러는 거야.”

 “그대가 말하는 아이돌이란-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아이돌이 무슨 일이냐고? 흠.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애매한데.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TV에 출연하거나, 팬들을 만나서……. 아! 그거다. 팬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야.”

 “팬-?”

 “아이돌이 되어서 유명해지면 너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생겨.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해서 꿈을 펼치는 것. 그게 아이돌이야.”

 “응원하는 사람…….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 즉, 그것은- 숭배 받는 일이로군요-.”

 “숭배라. 그렇게도 말할 수 있으려나.”

 “그렇다면- 그대는 저를 돕는 신관-. 역시 저와 어울리는구려-. 저는 요리타의 요시노라고 하오니-. 그대-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사옵나이다-.”

 

 *

 

 눈을 뜬 소녀는 한동안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았다. 맑고 신비한 기운 가득한 눈을 깜빡이며 지난 꿈을 회상했다. 프로듀서와 처음 만난 날의 꿈.

 그 날은 참으로 신비한 날이었다. 그의 인간적인 독특함도 그렇고, 그가 소개해준 아이돌이라는 직업도 그렇고, 전부 요시노로서는 신기한 일들뿐이었다. 또한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어떤 감각이 그의 부름에 반응해 활동을 개시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름에 답한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느끼는 것인지. 그 날, 갑자기 할머님이 부를 때만 하더라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할머님은 과연- 어디까지 보고 계셨을는지-.”

 도시로 올라왔을 때부터 요시노는 주위에서 ‘신비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외견이나 복장, 고풍스러운 말투와 행동거지까지. 하나 같이 신비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그들이 신비하다 부르는 것들이 요시노에게는 당연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분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요시노도 자신의 할머님을 보면서 ‘신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할머님이 따라가라고 한 이 길을 잠자코 걷고 있는 것이다. 할머님이 만나게 해준 그 사람과 함께.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기 때문에.

 요시노는 침대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었다. 아직 이른데도 따스한 아침 햇살이 방 안을 비췄다.

 “그럼- 아침을 열도록 하지요-.”

 

 *

 

 어질러진 물건을 정리하고 환기를 시킨다. 요시노가 사무실로 출근할 때마다 하는 첫 일과였다. 아이돌이 할 일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하는 김에 먼지까지 쓸려고 빗자루를 들자 사무원 센카와 치히로가 말렸다. 괜찮아요, 요시노.

 “이런 것까지는 안 해도 돼요.”

 “하오나- 제가 시작한 일인데-.”

 “프로듀서님은 요시노가 하고 싶은 대로 두라고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이돌한테 사무실 청소를 시킬 수는 없죠. 제가 할게요.”

 ‘그대의 역할이었는지요-.’ 하고 요시노는 순순히 빗자루를 놓았다. 대신 차를 따르고 소파에 앉아 카레전병을 먹었다. 카레는 도시로 올라와 발견한 굉장한 것들 중 하나였다. 매콤해서 자꾸 차를 마시게 하면서도 손을 끌어당기는 오묘한 맛. 이것이 원래 좋아하던 전병과 합쳐지니 그 중독성에 하루 한 번은 꼭 먹게 되었다.

 오도독, 소리를 씹으면서 요시노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제 곧 당도할 터인데-. 찻잔을 향하던 손이 우뚝 멈췄다. 마침 빗자루를 내려놓던 치히로가 그것을 보고 시선을 문으로 옮겼다. 혹시? 하는 표정을 짓는 순간 문이 열리고 프로듀서가 들어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역시나네요, 프로듀서님.”

 치히로가 묘한 미소로 반겨주자 프로듀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말입니까? 치히로는 동공으로 요시노를 가리켰다.

 “요시노가 프로듀서님의 기운을 느끼는 것 같아요.”

 “뭐예요, 그게. 요시노가 무슨 레이더 입니까.”

 프로듀서는 웃으며 넘겼다.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차를 마시는 요시노에게 갔다. 아침부터 과자야? 이제 알아챘다는 것처럼 요시노는 능청스럽게 인사했다. 그대- 지금 오셨는지요-.

 “아무래도 저는 카레전병 오타쿠가 것 같사오니-.”

 “왠지 너 답지 않은 세속적인 말인데.”

 “동료 분들에게 배웠사온데- 마음에 안 드는 것인지-?”

 “그런 건 아냐. 그것보다…….”

 프로듀서는 눈짓을 알아채고 요시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프로듀서가 치히로에게 말했다. 요시노의 레슨 좀 보고 올게요. 회사 복도에서 두 사람은 은밀한 대화를 나눴다.

 “어제 코우메의 친구를 도와줬다면서?”

 “네-. 길을 잃고 떠돌고 있다 하여 잠시-.”

 “내가 전에도 말했잖아. 사람들을 도와주는 건 좋은데 너무 눈에 띄면 안 돼. 코우메 앞에서 직접한 건 아니었지만, 치히로가 뭔가 눈치 챈 것 같았다고.”

 “하오나-.”

 “안 돼. 어쨌든 안 돼. 요시노는 아이돌로서 집중해야 할 때야. 이제 막 데뷔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빠지는 건 용납할 수 없어.”

 프로듀서가 딱 잘라 말했다. 요시노는 받아치려고 했으나 말이 목구멍에 걸렸다. 첫 만남 후 그와 했던 약속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요리타는 대대로 땅을 지키는 신의 운명을 타고난 집안이었다. 간단히 말해 인신공양. 재해를 막기 위해 영력이 높은 무녀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육신을 떠난 어린 무녀의 혼은 신에게 거둬져 또 다른 신으로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그 힘이 다할 때까지 땅을 수호한다.

 당시 16살이었다던 요시노는 그녀의 할머니와 같은 방식으로 신이 되었다. 그녀는 굉장히 뛰어난 신으로서 가뭄과 홍수는 물론이고, 온갖 잡스러운 것들로부터 마을을 지켰다. 하지만 그녀도 만능은 아니었다. 능력이 부족하다기 보다는 권한의 문제였다. 신은 사람들이 원한다 해서 무엇이든 들어줘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전쟁 같은 것.

 요시노의 마을이 먼 지방에서 온 침략자들에게 공격당했을 때 요시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해서는 안 됐다. 모든 것을 신이 해결해 준다면 인간에게 발전이란 없으니까. 그녀가 할 수 있던 것은 오직 기도였다. 한 마을의 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기도를 한다니. 그 시점에서 자신은 신으로서 자격을 상실했을 지도 모른다고 요시노는 생각했다. 마을은 멸망했고 침략자들도 얼마 후 다른 침략자들에 의해 멸망한 것이다.

 그것은 곧 요리타를 믿는 사람, ‘신자’가 없다는 뜻. 믿는 이가 없는 신은 쇠퇴한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선대 요리타들이 만든 마을에서 영혼의 힘이 다 할 때까지 여생을 보낸다. 할머님에게 지금껏 몰랐던 것을 배우고, 가끔씩 바깥으로 나가 인간들을 구경하며 요시노는 잊혀진 신의 삶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님이 바깥세상의 한 인간, 프로듀서를 보여주었다.

 “요시노. 저기, 너를 찾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저 사람을 따라가거라.”

 “할머님-? 저 분이 누구시기에-?”

 할머님은 그저 평소처럼 자애로운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불안감은 없었다. 약간의 의문은 있었지만 항상 자신을 위해주는 할머님의 뜻이기에 따르기로 했다. 조금 대화를 나눈 뒤 요시노는 금방 할머님의 뜻을 유추할 수 있었다. 아이돌이란 숭배 받는 일. 노래하고 춤을 추고 TV에라는 것에 나오는 직업이 현 시대에서는 하나의 신으로서 기능하는 듯 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이다.

 요리타 요시노가 다시 한 번 더 신으로서 일하는 것이다.

 

 여기까지의 설명을 들은 프로듀서의 표정은 그야말로 황당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요시노를 무시하거나 불신하지는 않았다. 홀로 생각을 정리한 뒤 오히려 “이건 믿을 수밖에 없겠네.”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로 오는 동안 요시노가 보여준 기행에 대한 적절한 해답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30분 전에 보여준 ‘풍수지리 – 수맥 틀기’라는 기술이 그랬다.

 사무소에 덮쳐오는 액운의 방향을 조정해 잠깐 동안 위협을 회피한다는, 듣기에는 거창해도 실은 별거 아닌 힘. 계속 요시노를 관찰해 오던 프로듀서는 단박에 알아챘다. 이 아이는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사실 등 뒤에서 후광이 나온다면 누구라도 의심했겠으나 그것만은 프로듀서가 필사적으로 막아냈다. 어쨌든 정체를 들킨 요시노는 모든 사정을 말해주었고, 프로듀서는 그것을 이해한 뒤 평범하게 아이돌로서 계약을 진행했다. 신비한 힘은 절대 함부로 쓰지 말라는 계약서 외의 조건을 걸어서.

 레슨실 앞에서 프로듀서는 말했다. 나는 요시노를 믿어, 분명 톱 아이돌이 될 거라고.

 “그러니까 오늘도 열심히! 물론 무리하지는 말고. 아참, 저녁은 기대해.”

 

 *

 

 오전에는 보컬 레슨을 받았다. 처음에는 제법 잘 부른다고 칭찬받았으나 갈수록 박자가 늘어져서 아이돌 곡이 아니라 마치 민요 같다는 평을 들었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시도해 봐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다행히 느리고 부드러운 노래는 잘 어울린다고 했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댄스 레슨을 할 차례였다. 무녀로서 춤을 춰본 적 있는 만큼 그 느낌을 살리려 했으나 역시나 아이돌 곡과는 맞지 않았다. 더군다나 함께 레슨을 받은 오토쿠라 유우키라는 소녀는 요시노보다 키가 훨씬 크고 활발했다. 그녀를 의식하다 스텝이 꼬여 넘어지는 바람에 레슨이 중단되었다. 발목이 시큰거렸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요시노는 자신을 바라보는 유우키의 시선을 느꼈다. 무슨 일이신지-? 물어보니 요시노 씨의 요시노 씨의 볼이 굉장히 말랑말랑해 보이는데 한 번 만져봐도 되냐고 부탁했다. 알아듣지 못하고 눈을 깜빡이다 요시노는 유우키가 자신보다 어리다는 것을 떠올렸다. 13살이면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지요-. 그런 생각으로 요시노는 ‘괜찮다’고 답했다. 살짝 어두워지려던 유우키의 표정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닷! 자신의 볼을 찰흙처럼 갖고 노는 유우키를 보며 요시노는 ‘언니란 힘든 것이구려-’라고 생각했다. 머리까지 쓰다듬으려고 할 때쯤 뭔가 잘못됐음을 깨닫고 그만두게 했다.

 “요시노 씨는 고향이 가고시마가 고향이었죠?”

 “그렇사오니-.”

 “어떤 곳이에요? 우리 비슷한 시기에 아이돌을 시작했는데 서로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서요. 요시노 씨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요.”

 “저에 대해? 흐-음.”

 적당히 각색한다면 말해줘도 괜찮겠지. 이 정도라면 프로듀서도 이해해 줄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이 활기찬 소녀와 친해지고 싶었다. 요시노는 운을 떼듯 입을 열었다. 유우키는 괜히 긴장해서 침을 삼켰다.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취미인 돌멩이 모으기에 대해서,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에 대해서. 특히 할머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길을 잃었을 때 할머님이 찾아주신 추억, 콩주머니로 노는 법을 배웠을 때, 종이접기로 꽃을 만들어 주셨을 때. 최근에 있었던 즐거운 이야기도 했지만 거기에도 할머님에 대해서 말했다.

 “아마 할머님도 편의점을 보시면 깜짝 놀라시겠지요-. 정말로 편리해서 신비한 힘이 없어도…….”

 아차, 하고 말을 삼켰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카레전병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다행히 유우키는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말을 들어주었다. 살짝 변명에 가까운 말을 하며 요시노는 속으로 할머님은 신의 힘을 자주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위급한 순간이 아닌 이상 힘을 아끼셨다.

 어째서 그러시냐고 묻자 이젠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셨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었다. 요리타를 믿는 사람이 없어지자 자연히 힘도 사그라지는 것이었다. 그것이 수명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렇지만…….

 “요시노 씨? 왜 그러세요?”

 유우키가 자신의 앞에 대고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입이 멈춰 있음을 깨달았다. 아, 어, 하는 소리가 혀 위에서 토막 났다. 무슨 일 있으세요? 유우키가 걱정스레 묻는 순간 트레이너가 들어왔다. 요시노는 벌떡 일어섰다.

 “아무 일도 아니오니-.”

 “하지만…….”

 “자-. 함께 춤추지요-. 유우키.”

 중단한 부분부터 댄스 레슨을 이어서 시작했다. 요시노는 평소보다 팔을 크게 벌리면서도 미소를 유지했다. 휴식을 취한 덕인지 아까보다 움직임이 나아졌다. 흘끔흘끔 그녀를 보던 유우키도 안심하고 자신의 춤에 집중했다. 그 때, 트레이너가 경악했다.

 “요리타!”

 쿵, 하는 소리에 찢어지는 목소리가 겹쳤다. 발목을 잡은 채 쓰러진 요시노가 유우키의 동공에 비쳤다.

 

 *

 

 할머님-. 마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렇구나.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 하고…….

 네 탓이 아니란다, 요시노.

 그렇지만.

 신이 모든 것을 이루어줄 수는 없는 법이야. 그게 규칙이지. 괜찮단다. 나는 오히려 홀가분하구나.

 무엇이-?

 이제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 보살펴야 할 사람이 없지.

 그것이- 홀가분한 것이군요-.

 자, 가자꾸나. 우리 마을로.

 

 *

 

 잠깐 외근을 간 사이 생긴 일이었다. 문자를 받자마자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음 기획에 대해서 협력회사에 설명하던 중 동료에게 자리를 맡기고 급히 나왔다. 과속하다시피 차를 몰아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로비에서 트레이너가 기다리고 있었다. 간신히 숨을 몰아쉬며 글자를 토했다. 요시…… 노는…….

 “괜찮아요. 심각한 건 아니고 발목을 접질린 거예요. 치료 받는 중이고, 잠깐만 쉬면 괜찮아 진다고 의사가 말했어요.”

 “하아…… 하아……. 정말 다행이네요.”

 말은 그리 했지만 안심이 되지 않았다. 트레이너가 몇 번이나 괜찮다고 반복해 말한 뒤에야 프로듀서는 의자에 몸을 기댔다. 등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프로듀서 씨는 정말 팔불출이네요. 트레이너가 놀리듯이 말하자 프로듀서는 무안할 정도로 진지하게 답했다.

 “제 아이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이 정도도 못 하면 프로실격이죠.”

 “프로듀서 씨. 요리타가 다친 건 무리하게 큰 움직임을 따라하려고 해서 그런 거예요. 체력적으로 아직 단련이 안 된 몸으로 오토쿠라에 맞추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죠.”

 “저는 그런 주문을 한 적이 없는데요.”

 “알아요. 대체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네요. 자기 페이스에 맞춰서 움직여도 될 텐데.”

 “……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1분도 안 되어 프로듀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흡을 가라앉히며 진료실로 갔더니 유우키가 요시노와 함께 있었다. 한쪽 발목에 감은 붕대를 보고 그는 또 입술을 깨물었다.

 “프로듀서 씨.”

 “고마워, 유우키. 나 잠깐 요시노랑 얘기 좀 하려고 그러는데 트레이너랑 먼저 가 있을래?”

 “아, 네. 요시노 씨, 저 가볼게요.”

 유우키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복도는 조용해졌다. 프로듀서가 요시노의 옆에 앉았다. 반짝이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응시했지만 요시노는 프로듀서를 피했다.

 “요시노.”

 “…… 그대.”

 “다행이네. 대답은 해주니까.”

 요시노는 더욱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트레이너한테 들었어. 무리했다면서? 그러지 않아도 돼. 조급해 할 필요 없어. 유우키는 육상부라 어지간한 어른보다 체력이 좋아.”

 “하지만…….”

 “하지만?”

 “그대의 기대에 보답하고 싶어서…….”

 자신 없는 대답이었다. 프로듀서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짧은 정적을 걷어내고 부드럽게 말했다. 요시노.

 “잠깐 나갈까?”

 

 *

 

 슬슬 해가 기우는 시간. 풀잎도 강물도 붉은빛으로 가득한 강가를 두 사람만이 걸었다. 프로듀서는 걷기 불편한 요시노의 보폭에 맞춰 손을 잡아주었다. 원래는 업어주려고 했으나 못 걷는 수준은 아니라며 그녀가 거절했다. 작지만 어른스럽고, 또한 강한 아이구나. 평소보다 더 진하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기가 습했지만 바람이 선선한 덕에 덥지는 않았다. 한 바가지 흘린 땀을 말리기 위해 그는 바람을 만끽했다. 그런 프로듀서를 보다 요시노가 물었다. 그대- 어째서 이곳에-? 프로듀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긴 아무도 없거든.

 “우리 말고는 말이야. 그러니까 말 못할 사정이 있으면 전부 속 시원히 털어놔도 돼.”

 “저에게 그런 사정은 없습니다-. 이럴게 아니라 얼른 돌아가서 휴식을 취해야-.

 “휴식 좋지. 근데 요시노는 제대로 쉬는 게 아닌 것 같단 말이지. 그러니까 여기서 편하게 쉬어. 생일이잖아.”

 “생일-?”

 “뭐야. 잊고 있었어? 오늘 네 생일이잖아.”

 “그대는 어찌 그것을-?”

 “저번에 쓴 프로필에 적혀 있었잖아. 하여간. 어쨌든 이걸로 얘기하기는 편해졌네. 내 생각이 맞았어. 요시노의 문제점.”

 조급해 하고 있잖아? 툭, 던진 말이 요시노의 가슴에 꽂혔다. 마음속에 품고 있던 무언가를 잘라냈다. 꽁꽁 묶여있던 줄이 풀리더니 묵직하게 떨어졌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으나 매우 중요한 것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때문에 이대로 눈을 돌리면 안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털어놓았다. 그대- 거기까지 알고 있었는지요-.

 “전부는 아니지만 예상은 가. 미리 알아채지 못 해서 미안해.”

 “아니요-. 저 또한 모르고 있었으므로-.”

 “…… 있잖아, 그렇게 빨리 톱 아이돌이 될 필요는 없어. 어차피 그런 건 불가능하고. 천천히 단계를 밟으면서 나아가야지.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최고를 노린다. 그게 내 프로듀스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자신이 있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돼.”

 마음속에 떨어진 것이 꿈틀, 움직였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아니, 모른다고 부정하던 감정과 마주했다. 동시에 과거의 기억들이 귓가에 속삭였다. 나는 오히려 홀가분하구나. 이어서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래도 되는 것인가요? 할머님.

 어째서.

 “그대는, 하지 말라고만 하시는군요.”

 신의 힘을 쓰지 말라.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저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건가요.”

 “내일로 미뤄두면 되지.”

 “저에게는 그럴 시간이 없사옵니다.”

 누군가 말했다. 너는 요리타의 무녀, 마을을 지킬 신이 될 여자다.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을 위해 힘을 쓰라고. 뜻에 따라 그녀는 신이 되었다. 마을을 지켰다. 재해로부터 악한 것들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믿었다.

 하지만 이제 그 사람들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미 뼈저리게 경험해봤기에 똑똑히 알고 있다. 할머님이 말했다. 이제 우리는 신이 아니다. 보살펴야 할 사람이 없으니까. 그것은 곧.

 “잊혀 집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 이미.

 “저는 이미 잊혀 졌단 말입니다!”

 자신의 목소리에 요시노는 스스로 놀라고 말랐다. 당혹했지만 말을, 의문을 멈추지 않았다. 어째서 그대가 그리 말하는 건가요?

 “두렵단 말입니다! 힘이 사라지는 건, 믿는 사람이 없다는 거니까! 저는 신이 되기 위해, 지키기 위해 태어났는데……. 이미 수백 년 전에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전부 사라졌습니다! 저만이 아니라 요리타를 아는 사람이 더 이상 세상에 없어서!”

 대체 저는 무엇인가요? 세상에 있으면 안 되는 건가요? 할머님마저 사라지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더 이상 신이 아니게 된 저는……. 왜…….

 “왜 존재하는 건가요? 아무도 저를 원하지 않는데, 왜!”

 울음이 터졌다. 소녀는 넘어갈 것 같은 숨으로 모든 것을 토해냈다. 그 뒤에는 흐느낌만 남았다. 처절하기까지 한 흐느낌만이. 숨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숙였다. 프로듀서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것이 위로 같기도, 묘하게 격려 같기도 했다. 그래서 요시노는.

 “아이돌이 되려했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돌은 숭배 받는 일이라 들었기에…….”

 “아니야.”

 네? 단호한 부정에 무심코 고개가 들렸다. 새빨개진 눈을 응시하며 그는 말했다. 아이돌은 말이지.

 “꿈을 펼치는 일이야! 그 꿈으로 모두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고! 그러니까 벌써부터 잊히는 두려움에 빠지지 마. 그래가지고 어떻게 무대를 즐기겠어. 물론 아이돌도 인기가 없으면 안 되겠지. 그래도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일 엄청 잘 하거든. TV에 나오는 유명 아이돌도 몇 명이나 길러냈어. 행운이지? 나도 요시노를 만난 게 행운이라 생각해. 요시노의 할머님에게 감사해. 너라면 분명 톱 아이돌이 될 테니까!”

 그것은 자신감인가, 허세인가. 전자라고 믿고 싶지만 불확실한 점이 많았다. 그래도 딱 한 가지만은 알 수 있었다. 할머님은 이 사람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가졌기에 이 사람을 따라가라고 했을까. 그것이 지금 요시노에게도 보였다.

 프로듀서가 품은 것은, 너무나도 크고 웅장하며 또한 세상을 집어삼킬 만큼 밝은 빛을 내는.

 “꿈…….”

 

 *

 

 “사실 난 무신론자야.”

 “그대-?”

 “아니, 뭐, 진짜 신을 두고 이런 말 하는 건 나도 좀 그렇긴 한데. 사실 요시노 이야기를 듣고도 난 여전히 신을 안 믿거든.”

 “그것은 어찌한 연유인지-?”

 “음. 좀 철학적인 이유인데, 특별한 힘을 가진 것에 대고 ‘신이다!’라고 해서 무조건 신이 되는 건 아니잖아. 만화 같은 데 자칭 신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신 취급하는 건 아니지. 사전적, 종교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더 그렇고.”

 “흐-음. 고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사온데-.”

 “오늘 같은 날에 그런 딱딱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대하는 건 신이 아니야. 내가 프로듀스 하는 건 톱 아이돌을 목표로 하는 ‘인간’ 요리타 요시노야,”

 “그대…….”

 “태어날 때부터 신이었던 건 아니라면서? 그러니까 인간으로서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자고. 맛있는 카레가게 알아놨어. 어때?”

 “그대는 역시- 독특한 사람이구려-.”

 “하하. 요시노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재밌네. 아. 거기까지 가려면 힘드니까 업어줄게. 어? 야, 요시노! 고집부리지 말고 업혀! 가게 어딘지는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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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노 님 생일 축전인데 요시노 님을 울리는 나란 프로듀서 귀신 악마 프로듀서......

네, 뭐. 그렇습니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작품은 '신데렐라 걸즈'인데 요시노 님이 진짜 신이면 신데렐라라고 할 수 없잖아?"

부잣집 낙하산이라던가, 니트라던가, 신데렐라가 아닌 애들은 넘쳐났지만 제가 요시노 님의 프로듀서라 그런지 더욱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 오늘이 요시노 님 생일인데 축전이라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던 중 이 소재를 떠올렸습니다.

 

요시노 님은 숭배 받는 존재이기에 자신에게 어울린다며 아이돌을 시작했습니다.

확실히 '우상'이라는 뜻을 가진 만큼 아이돌은 '신'과 닮았죠. (요시노 님이 진짜로 신이야는 둘째 치고.)

'신=아이돌' 이라면 '신앙=인기'겠죠. 인기 없는 아이돌은 잊혀집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 없는 신도 잊혀질 것입니다.

2차 창작에서 보통 절대자처럼 나오는 요시노 님도 이런 식의 설정이라면 신데렐라가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요시노 님이 신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중압감을 벗어던지고 인간으로서 편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요.

 

이렇듯 생각한 것은 많으나 전부 표현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저에게 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하지만 변명은 죄악일 뿐이겠죠.

 

이런 것이라도 요시노 님에게 공물을 바칩니다.

부디 누군가 재밌게 보고 요시노 님을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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