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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마차(Pumpkin carriage) - 7 시키, 이치노세 시키(*삽화데이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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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3, 2017 17:20에 작성됨.

첫 번째 발걸음—성과에 따라 이후 활동을 결정짓는 데뷔 라이브의 막은 성공적으로 내렸다. 즉, 카에데와 미카의 데뷔는 물론이고 프로젝트의 재개도 결정됐다.

당시의 현장에는 이마니시 부장을 포함해 상층부의 사람도 자리해있었다. 여타 팬들처럼 응원을 즐겼으면 좋겠지만, 앞으로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사정 탓에 차트에 기록하는 데만 해도 바빴다.

다음날 내부 회의에서 현장의 평가, 녹화 영상—그리고 관객과 넷의 반응을 참조해 최종적으로 성공적이라는 판단을 내려 연기의 예정이었던 데뷔를 확정했다.

이후 미시로 그룹—아이돌 부문은 본격적인 활동의 준비에 나선다. 선발주자가 프로젝트처럼 괜찮은 성과를 거두자, 나비 효과처럼 번지며 그동안 미적지근했던 계획도 이를 추진력 삼아 진행됐다.

“여기 뭐 있나요?”

“아, 네! 방송의 촬영이 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따스한 날씨. 선선한 바람이 간간이 불어 울적한 기분을 감싸 안는다.

미시로 부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장소. 번화가 내에서 방송 장비가 여럿 배치되어있었다. 이 근방으로는 방송 관련 차량이라거나, 스태프의 분주한 움직임이 보였다. 행인들이 이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힐끗거렸고, 그중에는 호기심이 동해 구경하는 이들도 있었다.

“오늘은 잘 부탁하겠습니다.”

“오, 소문의 민완 프로듀서 씨가 아닙니까.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디렉터의 시선은 호의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프로듀서는 미시로의 아이돌 부문이 신설되자마자 프로젝트의 주요인원으로 참여하고, 누구보다 먼저 성과를 보인 인재였다. 방송 관계자로서 이런 사람과는 일찍 친해지는 게 좋았다.

디렉터는 프로듀서와 명함을 교환한 다음,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누군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왔다.

“여, 축하한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입사 동기이자, 사쿠마 마유를 담당하고 있는 프로듀서였다.

“...?”

축하 인사는 고맙지만,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이 안 갔다. 목덜미를 매만지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동기가 바람 소리를 내며 웃곤 어깨를 두드려줬다.

“이번의 성과를 말하는 거야. 그거 외에 있을 리 없잖아. 얼마 전에 그렇게 고생한 보람이 있었네.”

산처럼 쌓인 서류 더미, 몇 시간이나 이어지는 회의—그리고 조건을 건 라이브라는 말이 스쳐 지나갔다.

“아, 공적인 일로 온 건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근처를 지나가던 차에 궁금해서 들린 거니까. 로케라며?”

프로젝트가 활성화된 만큼, 화제의 선발주자에도 변화가 있었다. 멈춰있던 지원과 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돌 선전용 사진의 재촬영부터 시작해 예능이나 그 외의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아이돌이란 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만이 다가 아니니까.

“얼마 전 라이브 덕에 사무소의 분위기도 밝아. 그 탓에 일정도 쏟아져서 매일매일 야근이지만 말이야.”

프로듀서가 목 뒤로 손을 옮긴다.

“그런 표정 짓지 마. 노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리고 나도 하루라도 빨리 사쿠마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아이돌을 바라보는 그 시선 속에는 약간의 부러움이 묻어났다.

“그리고...”

동기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역시 남자가 봐도 크다. 머리를 들어 위를 올려다봐야 했다.

“...”

“...?”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저쪽도 슬슬 촬영 준비가 끝난 것 같으니 이만 가볼게. 나중에 보자고.”

시원스런 웃음을 남기곤 손을 흔드는 동기.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동기의 마지막 말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디렉터가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업무에 집중하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촬영이 시작됐다.

라이브 기념 인터뷰 겸 아이돌 유닛의 선전용 촬영. 딱히 이렇다 할 문제는 없었다. 전 모델인 만큼 인터뷰에는 익숙했고, 생방송도 아니니 전혀 무섭지 않았다.

프로듀서는 혹시라도 방해될까 싶어 동떨어진 곳에 혼자 서서 촬영을 지켜봤다. 도와줄 건 딱히 없었다.

“...흐응—.”

그러나 이변은 전혀 예상외의 곳에서 일어난다.

“...!”

장난감을 발견한 눈은 고양이의 것을 닮았다.

오른손으로 턱 끝을 살며시 잡고, 눈매를 포물선으로 그리면서 기쁜 듯이 웃는다.

“흥흥....”

고양이가 고목나무에게 슬그머니 다가간다. 다만 고양이치곤 컸다.

“습—하...습—하...”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뱉는 게 아니다. 주변을 서성이면서 자기 영역을 확인하듯 냄새를 맡는다.

불규칙적으로 자라난 머리카락은 레드 브라운. 호기심과 장난으로 가득한 눈망울은 군청색으로 반짝인다. 팔을 좀만 내려도 흘러내릴 듯한 카디건에, 잘빠진 배를 슬쩍 보이는 하얀 와이셔츠와 주름진 치마를 보건데 여고생이 틀림없었다.

물끄러미.

고양이, 아니 여고생의 눈에 고목나무처럼 서있는 프로듀서를 담았다. 힐끗힐끗 살펴보는 게 아니라, 대놓고 시선을 집중해서 쳐다봤다.

“...무슨 일이시죠?”

프로듀서가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그냥, 구경~.”

주변을 서성이던 여고생이 멈추곤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당황했다거나 섣불리 변명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뭐라 따질 수는 없는 노릇. 시선을 돌리려고 했으나 여고생이 콧노래를 부르며 또다시 말을 걸었다.

“저기, 뭐 하고 있어?”

여고생의 갑작스러운 질문—어차피 로케야 자신이 없어도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으니 잠시 어울리기로 했다.

“아이돌 방송 촬영입니다.”

여고생이니, 아이돌에게 관심이 많을지도 모르는 일. 혹여나 학교로 되돌아가 소문이라도 내주면 좋다.

“아이돌 방송...흐—응.”

여고생은 조금 전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진중한 표정으로 한 곳을 쳐다봤다.

시선의 끝자락을 따라가 보니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관심이라도 생긴 걸까. 아니면 흥미가 떨어진 것일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할 찰나—여고생은 마이크를 쥐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안녕—♪ 오늘은 시키가, 모두의 시각에 자극적인 아이로 새겨서, 밤에도 잠들지 못하게 해‧줄‧게~♪ 살짝 쿵★”

프로듀서의 눈이 살짝 커졌다. 과연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사내조차 방금의 일에는 놀란 모양이었다.

그러나 여고생—아니, 시키라고 자칭한 소녀는 프로듀서 앞에 서서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 마이크 들고 있던 애, 이런 느낌이었던가.”

놀란 건 갑작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방금 촬영지에서의 미카의 흉내가 소름 끼칠 정도로 똑 닮았다.

시키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턱 끝을 살포시 잡은 뒤, 마치 학생을 가르치듯 설명했다.

“남자의 시각에 일과성 자극을 줘서, 충족시켜주는 아이네. 해보고 나니 의외로 그래 보일지도—!”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한다. 갑자기 나타나 서성이더니, 아이돌의 행동을 따라 하곤 멋대로 설명했다.

프로듀서가 곤혹스러워 버릇을 보이려고 할 때쯤, 시키가 척하고 팔을 들어 검지로 그를 가리켰다.

“근데, 당신! 뭔가 좋은 향기가 나네!”

역시 아까 습하 거린 건 냄새를 맡은 걸까. 그나저나 칭찬인 걸까. 의도도, 생각도 전혀 알 수 없다.

“당신, 누구야?”

프로듀서입니다.

“흐—응. 프로듀서 하고 있어?”

이 자리에 제삼자가 있었다면 황당해하지 않을까. 대화가 자연스레 흘러가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프로듀서는 곤란해 보이면서도 시키의 물음에 성실하게 답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러자 시키는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프로듀서를 가만히 올려다보다가—생긋, 하고 미소 지었다.

“재미있어 보이네!”

시키가 프로듀서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어본다. 손에 넣은 장난감을 구경하는 모양새다.

“그럼—당신이 손에 들고 있는 그건?”

고양이처럼 반짝이는 눈동자가 프로듀서의 손에서 멈췄다. 처음에 봤을 때처럼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방송 대본입니다.”

아이돌의 프로듀서인 만큼 오늘 방송의 일정이라거나 계획이라거나 대본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진행이 혹시라도 잘못될 것을 예방하여 대본을 들고 촬영장의 흐름을 확인하던 중이었다.

“그런가...근데, 내가 ‘핑’하고 느낀 온건, 종이 향은 아닌데—?”

이상하다는 듯이 머리를 옆으로 기울이는 시키. 먼 산을 향하던 동공이 움직여 프로듀서에게로 옮긴다.

“내가 끌린 건...당신의 땀이야!”

땀?

“당신, 좋은 애지. 향기로 알 수 있어!”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 환한 미소—그리고 확인이라도 하듯, 코앞 거리까지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답을 찾아낸 탐구자처럼 눈을 빛내고, 진리를 깨우친 학자처럼 신난 목소리로 떠든다.

“좋은 땀이 흐른다는 것은, 일도 즐겁다—라는 거지?”

어떤 논리인 걸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위풍당당함에 넘어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에게도 아이돌 가르쳐줘~가르쳐줘~♪”

어린아이가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떼를 쓴다. 보이지 않으나 머리 위에 고양이 귀가 쫑긋하고 선 것 같았다.

어떻게 할지 몰라 곤란해 하자, 시키가 거리를 좁혀 접촉해온다. 몸이 닿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닿을 정도로 아슬아슬한 거리라 숨이 턱 막혔다.

“즐거운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시키가 제자리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눈을 치켜뜨고 위를 올려다본다. 심장이 멎을 정도의 귀여움이다.

“...아! 난, 이치노세 시키야. 시키라고 불러줘♪”

이제야 무언가 떠올린 듯이 뒤늦게 소개하는 소녀.

“그럼, 아이돌이 됐으니 바로 카메라 촬영하자~♪”

시키는 프로듀서에게서 답변을 듣기도 전에, 뒷짐을 쥔 채로 몸을 빙글 돌아 종종걸음 이동했다.

장난인가 싶었지만, 정말로 카에데와 미카가 있는 장소로 향하자 뒤쫓아서 온 힘을 다해 말려야만 했다.

이치노세 시키—자유분방한 걸 넘어, 그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혼돈 그 자체의 아이돌과의 첫 만남이었다.

 

*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현관문을 열고 나와 주차장에 자리한 승용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는다. 안전벨트를 찬 다음, 시동을 걸고 주차 브레이크를 내렸다. 기어를 드라이브에 맞추고 발끝으로 액셀을 살짝 눌러주며 집에서 나왔다.

회사원이라면 일본의 통근 지옥에 앓는 소리를 내겠지만, 그는 아니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움직인다.

해가 이제 막 떠오르며 밤의 장막을 거두고 있다. 아직 여명이 다 가시지도 않아 도로는 한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무소에 도착했다. 첫 출근 때 수상하다면서 눈을 독수리처럼 뜬 경비와 인사를 했다.

항상 내려놓던 곳에 주차를 완료하고, 차에서 내려 언제나 보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익숙한 복도를 거닐고 개인 집무실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

익숙해질 때도 됐지만, 아직도 낯선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래는 여럿이 쓰는 사무실 중 책상 하나만이 자리일 터인데, 프로듀서가 된 이후로는 개인 집무실을 얻었다. 부담스러워 거절하려 했으나, 이마니시 부장은 ‘나도 있을 거니 상관없네.’ 라면서 그의 의견을 묵살했다.

자리에 앉아 데스크톱의 전원을 누른다. 손에 쥔 가방을 열어 오늘 필요한 서류를 꺼내 가볍게 훑어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무실 내에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라이브가 성공을 거둔 이후로 일이 물 밀려오듯이 쏟아졌지만, 상관없었다. 일이 없는 것보단 힘든 것이 낫다. 바쁘다는 건 아이돌의 활동도 많다는 뜻이니까.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집무실 밖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니 시침이 9를 가리켰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시작. 언제나 보는 광경. 무미건조한 잿빛 색채가 개인 집무실에 항상 그렇듯 감돈다.

그러나

“야호~프로듀서♪”

소녀가 불쑥 찾아왔다.

“이, 이치노세 양?”

프로듀서의 얼굴이 당혹으로 번졌다.

“어머나.”

치히로가 프로듀서의 얼굴이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봤다. 평소에 표정 변화가 몇 없으니 신기 할만했다.

그 사이 이치노세 시키는 종종걸음으로 집무실 내부에 성큼성큼 들어와 중앙의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또 소파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더니, 마음에 드는 듯 제자리에서 뒹굴 거렸다.

“후아아아...마음에 쏙 드는 실험실이야. 곳곳에서 당신의 향이 나서 특히나 좋은 걸♪”

“당신의 향!?”

사무원의 놀란 목소리. 어떤 오해를 했을지, 그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벌써 머리가 아파져 온다.

“...저, 이치노세 양.”

“응~?”

소파에 누운 채 팔만 흔드는 소녀.

“이곳에는 어쩐 일로...?”

“응? 어쩐 일이라니. 프로듀서는 뻔한 질문을 하는걸. 무슨 일로 여기에 왔을 것 같아?”

얼마 전의 일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키 쨩은 말이야—아이돌을 하러 왔습니다!”

냐하하 하고 기분 좋게 웃는 시키

“아이돌...?”

치히로가 의아한 듯 눈을 껌뻑인다. 조금 전의 놀란 건 그렇다 쳐도, 아이돌이라는 말이 신경 쓰였다.

“프로듀서 씨를 만나러 왔다고 해서 아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요? 아니, 그보다 아이돌이라니...?”

미시로의 아이돌은 프로젝트 드레스뿐—그 인원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있다.

이치노세 시키라는 이름은 그중 어디에서도 없었고, 프로젝트의 후보 이름으로도 올라온 적도 없었다.

타 사무소처럼 스카우트할 수 있었다면 수긍했겠지만, 그것도 아니니 머리가 옆으로 기울어졌다.

“이치노세 양, 어떤 마음인지는 알겠습니다만...”

아무리 프로젝트에 대한 권한을 대부분 위임받았다 할지라도 마음대로 아이돌로 삼을 수는 없었다.

미시로가 괜히 전 모델이라거나 혹은 아나운서 등 연예계 사람들을 데려온 게 아니다. 그 지침을 무시하고 독단으로 결정할 수는 노릇이니 되돌려 보내야만 했다.

“그러면 연구생은 어떻나?”

“아, 부장님.”

이마니시 부장이 집무실 내에 자연스레 녹아들면서 제안했다.

“이치노세 군...이라고 했나.”

이마니시 부장의 눈이 시키에게로 향했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면 몇 가지 물어봐도 괜찮겠나?”

“No problem!”

“전에 모델이었다거나, 배우...연예계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나?”

“아—니—시키쨩은 유학파야. 공부하러 외국에 다녀왔어.”

“음, 그렇다면 ‘지금은’ 아쉽게도 아이돌로 데뷔할 수는 없네. 다만, 연구생으로는 있을 수 있지.”

치히로가 이마니시 부장의 의도를 눈치채고 수긍 가는 표정으로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프로듀서 군.”

인자하게 웃으며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목소리. 그 눈에는 프로듀서에게로 향한 신뢰가 묻어있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미시로에서 아이돌 부문에 많은 관심을 두고 여러 계획을 추진하고 있네. 신인들의 데뷔도 검토하는 중이니, 미리 준비한다 할지라도 문제는 없지 않겠나.”

“부장님...”

“그러니 그쪽은 걱정하지 말고 진행해보게.”

걱정하지 말고 진행해보아라. 이런 말을 하는 상관이 얼마나 있을까. 어떤 누구보다도 든든했다.

프로듀서는 가만히 서 있다가, 이내 결심한 듯 허리를 깍듯이 숙였다.

“...그렇다면, 부족하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치노세 시키—세 번째로 담당하게 된 아이돌.

프로듀서는 여태까지만 해도 시키가 아이돌에게 관련된 일을 열정적으로 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하아—, 오늘은 여기까지일까나—”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다. 트레이너를 소개하려고 레슨실에 도착하자마자 늘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댄스레슨, 지쳤다 지쳤어—잔뜩 춤췄어—.”

처음에는 장난하는 줄 알았다. 장난을 받아치는 성격과는 거리가 먼 프로듀서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만...’ 이라고 곤란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시키는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동자가 보이지 않도록 감고, 옅게 웃었다.

“아니, 이미 충분히 춤췄는걸—당신의 손바닥 위에서!”

무엇일까.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카아데나 미카와는 다르다. 아니, 여태껏 보아온 사람 중에서 이런 타입의 사람은 없었다.

상황을 판단하고, 시키의 속내를 알아보려고 탐색하는 사이 그녀는 말괄량이처럼 웃으며 자기 배를 매만졌다.

“그런고로 배, 가득해—! 빵빵—!”

“...”

장난을 치고 있는 걸까?

“장난 아니야, 장난 아니라구~”

진지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는 이치노세. 그리곤 마치 학생에게 가르치는 선생님처럼 설명조로 말한다.

“그저, 나, 쭉 대학에 처박혀져서 연구만 했었잖아?”

모른다.

“운동하질 않으니, 춤추는 건 모르잖아—?”

어깨를 으쓱이며 당연하다는 듯이 묻는다.

“시작품을 갑자기 움직인다거나 하진 않잖아? 그런 거지 뭐—.”

“...”

“그러니—잠깐 준비하고 와도 될—까? 금방 돌아올게! 그럼!”

답변을 말하기도 전에 사라져버린 아이돌. 아까 그 열정을 보여준 동일인물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아니, 그보다 이럴 때가 아니다.

지금은 그녀를 믿고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쫓을지가 고민이었다.

준비한다며 금방 돌아온다고 했으니, 따라가면 실례일지도 모른다. 그 탓에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돌—아니, 연구생이 된 첫날부터 내버려 두는 것도 여러모로 문제였다.

“...”

금방 돌아올게.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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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의 삽화는 엣플(트위터:@Hdgeplay)님이 맡아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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