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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테이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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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3, 2017 03:25에 작성됨.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창조는 모든 것의 어머니.

그럼 모방은 무엇인걸까, 조금만 노력해내면 최소한 사랑 정도는 연성해 낼 수 있는걸까.

 

평화로운 사무소에 펑 하고 터지는 소리가 두어번 들린다.

오늘도인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사무소 내에 있는 불법 연구소들을 무단침입한다.

소녀들의 방이지만, 폭발음이 났기에 이 침입은 정당방위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면 말고.

소리가 두 곳에서 났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할까, 나는 잠시 두 곳의 복도를 보며 고민하다가 일단은 시키의 방 쪽으로 가 본다.

시키의 방 앞에 도착해 문을 여니 역시나 안은 폭발의 후폭풍으로 시야가 까맣다.

이번에는 무슨 화합물을, 혼합물이었던가, 어쨌든 무엇을 연구하다가 이런 일을 냈을까.

뿌연 검은 구름을 헤쳐 이 방의 주인이 있을만한 곳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본다.

하지만 내 손길이 닫기도 전에, 어느새 나에게 다가온 시키의 냣핫하♬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팔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무게감은 덤.

이건 무슨 무게일까, 나는 그런 신사답지 않은 질문을 머리속 저편으로 꾸욱꾸욱 밀어내고는 시키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이 그렇게도 즐거운 걸까, 이 폭발이? 일반인인 나로서는 천재인 그녀의 생각을 알 리가 없다.

어쨌든 그녀를 안전하게 회수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자 사명, 시키를 방 안에서 빼낸 후에 무슨 일이었냐고 물어본다.

 

시키 「별 일 아니야-♬ 그냥 배합법을 조금 바꿔봤는데 이렇게 되어버렸어-」

 

어떤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데는 예술성이 필요하다고, 어떤 화학공학자가 말했던가.

라부아지에였던가, 그 누구였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누가 말했든 뭐 어때,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진지한 말투로 시키를 야단친다.

나의 야단에 시키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고양이입을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꾸어낸다. 그렇게 해봐야 어른인 나는 야단을 멈추지는 않을테지만.

야단과 설교 그 중간쯤의 커뮤니케이션을 마치고 시무룩해하는 시키의 머리를 조금 쓰다듬고는 다른 연구실로 가봐야 한다고 말한다.

시키는 내가 오고나서부터는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듯이 고양이입을 비쭉이고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마치 다른 여자에게 짝을 빼앗길까 걱정하는 작은 소동물같은 시키의 표정. 하지만 나는 프로듀서인데다가, 그녀와 나는 짝도 아니다.

정말로 미안하지만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다른 연구소로 가봐야 한다고 말하고는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고 다른 연구실로 달려간다.

다른 연구실이라고 해봐야 아키하의 방이지만, 그 쪽에서도 폭발음이 난 것 같기 때문에 가지 않을수는 없다.

사무소를 가운데 놓고, 시키의 방과는 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는 아키하의 방으로 가기에는 조금 뛰어야 한다.

어쩔 수 없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빠른 속도로 번잡한 사무소와 기숙사를 통과해 아키하의 방문을 연다.

마치 짜고 친 듯이, 아키하의 방도 검은 구름에 전혀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몇 번이고 이 방을 왔기에,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방의 중간쯤으로 다가가 손을 뻗어본다.

시키와는 다르게, 작은 소녀의 조그마한 손이 마치 그 곳에 그의 손이 있을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쥐어진다.

우연이겠지, 나는 몇 번이고 그렇게 마음 속으로 몇 번이고 되새긴 말을 중얼거리고는 시키에게 했던 것과 같이 아키하에게도 설교를 한다.

나의 설교를 들은 아키하가 아하하, 하고 작게 웃고는 입을 연다.

 

아키하 「아하하, 미안하네, 조수. 예상 외로 회로가 부실해서 말이야.」

 

역시나 몇 번이고 똑같은 설교를 들었던 탓일까, 아키하가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나의 손을 꼭 잡는다.

폭발이 있을 때마다 잡는 아키하의 손. 기계를 꽤나 만지는것 치고는 보드랍고 말랑말랑하다.

아키하의 손은 부드럽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중얼거린다. 나는 왜 설교를 하다 말고 이런 말을 하는거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다.

나의 물음에 아키하가 이런 말은 처음 들어본다는 듯이 두서없는 말을 조금 늘어놓더니 으흠, 하고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입을 연다

 

아키하 「이 몸은 기계공학의 천재이기도 하지만, 아이돌이기도 하니까 말이지. 그 쪽의 에프터케어는 문제 없이 하고 있다고.」

 

아키하의 말에 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검은색 구름이 걷혀가는 방 안을 둘러본다.

그렇게 큰 폭발소리가 난 것 치고는 방은 꽤나 멀쩡하다.

공구상자도 그대로, 책상도 그대로, 방에 있던 개인 물건들도 때 타지 않은 상태로 그대로.

그렇게 큰 소리가 났는데 이렇게 멀쩡한게 이상한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키하를 쳐다본다.

검은색 공기를 너무 많이 마셨는지, 아키하의 얼굴이 조금 붉게 물들어있다.

일산화탄소 중독인걸까, 나는 말도 안되는 설명을 갖다붙이며 조금 늦은 감이 있는 시간대에 아키하와 함께 방 밖으로 나온다.

당연히 손은 그대로 잡은 채로. 내가 조금 세게 잡았는지 아키하의 손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다지 세게 잡지는 않았는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아키하를 쳐다본다.

조금 더 붉게 물들어있는 아키하의 얼굴. 아키하의 몸상태가 걱정되는 나는 어디 다친곳은 없냐고 물어본다. 

나의 물음에 아키하는 괜찮다는 듯이 나에게 장난치는 듯한 말투로 입을 연다.

 

아키하 「당연히 괜찮지! 나는 어떤 폭발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네,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이미 미소가 지어진 아키하의 얼굴 표정을 따라 미소를 짓는다.

저 쪽에서 귀찮다는 듯이 길게 하품을 하며 걸어오는 시키가 보인다. 그녀에게도 몸상태를 물어보지 않으면.

나는 잠시 아키하의 손을 놓고 시키에게 다가가 몸상태를 물어본다.

다행히도 시키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지, 늘 짓는 냣핫하♬하는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젓고는 입을 연다.

 

시키 「괜찮아괜찮아- 시키냥은 어떤 폭발에도 살아남을 수 있음-」

 

아키하도 똑같은 말을 했었는데, 마치 짜고 친 것 같네. 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나의 말에 시키와 아키하가 잠시 서로를 쳐다보더니 쾌활한 웃음소리를 내며 밝은 미소를 짓는다.

둘 다 별 문제는 없는거구나, 나는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두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의 쓰다듬에 아키하도, 시키도 나쁘지 않다는 듯이 미소를 짓는다.

아니, 오히려 이 순간을 위해 이런 일을 한다는 듯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이 알고리즘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처음 창조된 것을 모방하는 게임일지도 모르지.

아마도 그녀들도 이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를 것이다. 그녀들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 게임에 무슨 의미가 있든, 무슨 상품이 걸려있는 나는 모른다.

 

...아마도, 모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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