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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마차(Pumpkin carriage) - 6 소극장은 우주와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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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07-02, 2017 21:19에 작성됨.

남자는 항상 정직하게 길을 가르쳐 줬어. 신데렐라들이 바르게 길을 나아갈 수 있도록 정직하게, 정직하게...”

 

“거기—! 뭐 하고 있어? 이쪽으로 가져와!”

아침부터 부산스럽다. 라이브가 코앞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태프들이 바삐 움직이고, 여기저기서 고함이 들렸다. 그러나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는다. 도리어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며 힐난을 받으니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프로젝트 드레스의 프로듀서—타카가키 카에데와 죠가사키 미카를 프로듀스하고 있는 남자는 라이브 전의 준비를 도왔다.

기본적인 시간의 조율부터 시작해서 방송 장비가 문제가 없는지 체크를 했고, 방송 관계자들에게 안내사항을 들었다. 잊지 않도록 메모를 하는 건 당연하고, 머릿속으로 집어넣어 하나도 빠짐없이 외우는 데 힘쓴다. 대략적인 걸 숙지한 다음에야 담당하는 아이돌에게 갈 수 있었다.

“여러분.”

무대의 뒤편에서 콘티를 확인하고 있는 아이돌.

몇 시간 전에 리허설을 끝내고 무대 의상으로 갈아입었다.

새하얗고 가느다란 목에는 은으로 된 목걸이 반짝이고, 그 아래로는 성의 연회에 참여하기 위한 청초한 드레스 차림이다.

오른쪽 가슴 위에는 연분홍빛 꽃잎이 반쯤 오므려있다. 새하얀 드레스 자락은 허벅지 부근부터 레이스로 층을 졌는데, 백색과 청색이 조화를 이뤘다. 허리 부근에는 세 개의 꽃 머리와 리본으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아, 프로듀서★”

프로듀서를 발견한 미카가 눈웃음을 짓는다. 여전히 활기차고 자신만만한 카리스마 갸루지만, 불안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다. 그래도 얼마 전에 봤을 때보다 안색이 한결 나아졌다.

“프로듀서 씨.”

카에데가 살며시 웃으며 인사했다.

완벽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미모. 평소에도 아름답지만, 치장하니 날개를 단 격이었다.

어떠한 미사 용구로 갖다 붙여도 부족하지 않을까.

‘아...’

그러나 평소의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내색하진 않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언제나 여유가 넘치고 마이 페이스를 유지하는 그 천하의 타카가키 카에데 조차 라이브를 앞두고 불안해한다.

신데렐라를 꿈꿔왔던 소녀들은—성의 연회장 앞까지 왔다. 마법사가 걸어준 마법의 드레스와 호박 마차에 타고 달리고 달렸다.

그러나 이야기만큼 그리 간단하진 않다. 새로운 세계에, 미지로 딛으려는 그 걸음은 쉽게 이어지지 않으니까.

이 앞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다. 무대를 보기 위해, 소녀들을 보기 위해서 와준 사람들이 있다. 많지는 않다. 처음부터 대형의 무대를 잡아줄 리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떨리는 건 매한가지였다.

“...불안, 한가요?”

프로듀서가 묻는다.

무대 밖에서도 보이지 않도록, 눈에 띄지 않는 정장 차림이었다. 소녀들과는 전혀 반대되는 모습이다.

그의 물음에 그녀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카리스마 모델인 내가 불안 같은 거 있을 리가...”

없잖아—.

그 뒷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벌어진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불안이라는 단어가 머리의 경종을 울렸다. 가슴 깊숙한 곳을 치고 파도처럼 출렁이며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냈다가 멈췄다. 그리고 한숨. 조금 전의 허세를 부리던 자신의 모습에 쓴웃음을 흘리면서 프로듀서의 물음에 다시 답한다.

“...프로듀서 앞에서 강한 척 해봤자 소용없겠지. 어차피 다 눈치 채고 있는걸.”

무대에 나서기 무섭지 않는다면 거짓말. 전과 달리 불안을 덜어냈다고 해도 여전히 남아있다.

“솔직히, 초 불안해. 모델일 때도 이벤트에 나간 적은 있지만 , 사람들 앞에서 노래라니...프로로서 노래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노래방하고는 다르기도 하고, 할 수 있다면 부끄러운 기억 같은 거 남기고 싶지 않고...”

무대 위에서 서서 안무를 잘못 춘다면?

목소리가 잘못 나오거나, 가사를 틀리기라도 한다면?

“저도...마찬가지예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카에데 말했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 점잖은 목소리로 다음 말을 잇는다.

“마음이 불안해서...무척이나 떨려 와서...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혹시나 실수하면 어쩌나, 하고.”

연령이나 모델의 경력 같은 건 상관없었다. 누구나 처음으로 내딛는 발걸음은 어렵고, 쉽지 않다.

그동안 신발이 닳도록, 목이 아파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로 연습했지만—불안감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프로듀서는 무대 회장 앞에 선 소녀들을 바라본다. 불안한 눈빛, 떨리는 손, 힘이 들어간 어깨까지.

무엇을 말해줘야 할까. 자신은 소녀들과는 다르다. 어디까지나 제삼자. 무대 뒤편의 사람. 앞으로 쏟아질 조명과 시선을 한 몸에 받을 입장은 아니었다.

경험자로서 조언할 수도 없을뿐더러, 애초에 막 프로듀서가 된 입장이라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몇 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부풀다가—어느 순간, 멈췄다.

“즐기고...오십시오.”

타카가키 카에데는 생각 이상으로 즐겁다고 말했다.

죠가사키 미카는 신나는 일들이 잔뜩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데뷔가 늦어진다고 했을 때 슬펐다. 아쉬웠다. 기대한 놀이공원을 가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아팠다.

그러니까, 언제나처럼 즐기면 되지 않을까.

“즐기고 오라니...그런 거, 할 수 있을 리가...”

말을 잇지 않았다. 뒷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 이상 해버리면 무언가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복잡한 표정을 짓는 아이돌에게 무언가 좀 더 말해주고 싶다. 그렇지만 막상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나가지 않으면...더 즐겁지 않을지도 몰라요.”

카에데가 미카를 대신해 말했다.

앞으로 실수할지도 모른다. 반응이 안 좋을지도 모른다. 걱정과 불안에서 시작된 두려움이 기다린다.

하지만, 그래도 나아갈 수밖에 없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즐겁지 않은 건 확실하니까.

“하아...”

미카가 한숨을 옅게 내쉬었다. 목소리의 묻어나는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지만,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여기선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나...응, 프로듀서.”

자신감이 넘치지도, 활기차지도 않은 목소리. 속삭이는 것처럼 작지만—그래도 주저함은 없었다.

“나—아니, 우리. 노래하고 올게.”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

하지만 나가고 싶지 않다는 것도 거짓말

“...가능하다면, 보이는 곳에 있어 주시겠어요?”

누구보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 성 앞까지 데려 와준 호박 마차이자 마법사—아이돌의 프로듀서.

얼굴이 무섭고 말재주도 없고 성격도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탱해줬다.

“관중석은 팬분들을 위한 장소라 무리입니다만...”

그래도

“무대 뒤라도 괜찮으시면, 그쪽에...있겠습니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 같다. 안심시키려는 웃음은커녕 딱딱하고 무섭고 재미없었다.

그러나 흔들림 하나 없는 얼굴이 묘하게 안심되는 것은 무엇일까. 평소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듯했다.

타카가키 카에데는 옅은 미소를 짓는다.

죠가사키 미카는 시원스레 미소 짓는다.

모델에서 아이돌로

소녀에서 신데렐라로

서로의 손을 붙잡은 채, 얼굴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혀 움직이지 않던 발을 드디어 내디뎠다.

“다녀올게.”

“다녀올게요.”

프로듀서는 빛으로 향하는 아이돌을 가만히 지켜본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은 소극장. 그러나 그 소극장조차 우주처럼 광활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무대 조명이 끝나는 부분의 바로 앞에 서서 그녀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뇌리에 담았다.

 

*

 

결과만 말하자면—라이브는 성공적이었다.

소극장 내부를 가득 메운 함성, 밤하늘에 펼쳐진 별빛처럼 아름답게 흔들리던 사이리움은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무도회장에 도착한 소녀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 주변을 열광시켰다.

연습의 성과를 보여주듯, 안무에 실수는 없었다. 박자에 맞춰 완벽하게 해냈고, 노래도 완벽했다.

그러나—라는 만약의 상황도 없었다. 무대 뒤의 스태프들도 철저했지만, 프로듀서의 솜씨도 대단했다.

괜히 프로젝트 담당자로 내정된 게 아니다. 인재가 수두룩한 미시로에서 인정받을 만큼 능력이 출중했다. 아이돌의 프로듀스부터 시작해서 사무 처리, 그 외에도 무대의 확인까지 도맡아 했다. 현장의 지휘자인 디렉터조차도 놀랄 만큼의 실력이었다.

발단, 전개, 절정, 결말—위기는 없었다. 흐름이 물처럼 자연스러웠다. 일반적인 이야기에선 빠뜨리면 재미가 없지만, 현실에선 상상도 하기 싫은 과정이다.

무대 회장에 오른 소녀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건 평소의 연습, 그리고 곁에서 지켜봐 주는 프로듀서였다.

“후아...”

막이 내린다. 시간이 지나 마법이 풀릴 시간이다. 소녀들이 무대 회장에서 내려왔다.

콧잔등을 타고 흐르는 땀을 반짝 빛나고, 무대의 열기를 두른 듯 주변이 후끈거렸다. 그 눈은 어딘가 모르게 취한 듯, 몽롱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던 프로듀서가 인사했다.

“아, 프로듀서...지켜봐, 주셨군요.”

카에데가 어딘가 모르게 환상에 빠져있는 얼굴로 말했다.

프로듀서가 “물론입니다.” 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미카가 입을 연다.

“전력을 냈지만...역시, 긴장해버려서...”

무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부모의 평가를 기다리는 아이가 떠오른다.

“엉망이었지?”

그녀의 물음에 그는 침묵한다. 습관처럼 목덜미에 손을 올리고, 잠시간의 고민. 이내 입을 연다.

“팬들은 어땠습니까?”

프로듀서의 반문에 미카와 카에데가 고개를 갸웃한다.

“팬들, 인가요...? 에...모두, 응원해 주셨어요.”

카에데가 머리를 살짝 기울이며 답하고 미카가 말을 잇는다.

“우리의 노래를 듣고, 콜...이라고 하나? 넣어 줘서...”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아직도 성난 소처럼 뛰는 심장 소리가 느껴졌다. 이 박동이 방금 있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춘 일, 노래를 부른 일, 팬들과 대화한 일까지 전부 꿈같아서—이제 막 잠에서 깬 기분이었다.

그러나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팬의 응원과 함성이 귓가에 남아있다. 사이리움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팬 여러분 모두가, 상냥했어요....”

카에데가 주먹을 살짝 쥐면서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의 멍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었고, 웃음이 대신했다.

“뭔가, 창피당하고 싶지 않다거나 생각했던 거, 바보 같아.”

“...저, 팬의 모두를 즐겁게 하고 싶어요.”

“응. 이번에야말로...더욱...제대로...!”

눈동자에 비치는 건 불안이나 걱정, 무서움이 아닌—빛남이었다.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열망 그 자체였다.

프로듀서는 앞에 선 소녀들을 마주 봤다.

원래라면 키의 차이가 있어 내려 봐야 하지만, 신기하게도 높이의 상관없이 마주 보는 것처럼 보였다.

“여러분들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

전혀 격양되지 않은 목소리. 언제나처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변함없는—무뚝뚝하고 재미없는 목소리였다.

표정도 마찬가지. 조금은 웃어줘도 괜찮잖아.

소녀들은 자그마한 불평을 삼키며,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지 않고 마주 보면서 말했다.

“...응, 고마워. 프로듀서.”

이번에는 더욱 좋은 노래를 전달할 수 있도록

아니, 최고의 노래를 전하는 우리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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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은 완결된 원고이며 7월 5일까지 통판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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